정신이 혼미할 정도의 무더위가 몰아쳤다. 매스컴에서는 111년 만에 찾아온 최고의 무더위라고 연일 뉴스특보를 소식을 전한다. 40도가 오르내리는 폭염이 숨을 몰아쉬게 한다. 수돗물조차 미지근해서 방금 샤워를 하고 나와도 땀이 흐른다. 열대야로 밤을 설치기 일쑤다. 벌써 수 일째 비 소식은 없고 저수지는 바닥이 쩍쩍 갈라지고 농작물은 바짝 타들어 가고 있다.
이렇게 더운데도 해야 할 일이 있다. 몇 해 전 형제들이 나눠 먹자고 심어놓은 아로니아 수확이다. 한때 유럽 왕실에서 만병통치약으로 사용했다 한다. 안토시아닌과 폴리페놀 성분이 포도의 80배, 크린베리의 10배, 복분자의 20배, 블루베리의 5배가 있어 시력 개선, 당뇨억제, 치매 예방, 기억력상실 방지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그래서 베리 중의 왕 킹스베리(King’s 베리)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만큼 효능이 뛰어나서다.
봄부터 포기마다 거름 듬뿍 주고 풀 뽑아 주고 관리를 해야 한다. 문제는 수확기가 가장 무더운 한여름이다. 기계에 의지할 수도 없고 일일이 사람 손으로 따야 한다. 형제들 온 식구가 모여 수확을 한다. 이날은 각지에 흩어져 사는 처가집 형제들이 한 군데 모여 맛있는 점심을 함께 나누는 날이기도 하다. 형제들 간 우의를 나누고자 옛날 집 텃밭에 밭을 가꾼 것이다. 한때 시끌벅적 하던 집에 자식들은 모두 출가하고 빈 둥지가 된 집에 이날은 모두 모여든다.
올해 아로니아 수확을 위해 바삐 손을 움직이는 데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발견했다. 새 둥지였다. 아로니아 나무에 집을 짓고 알을 낳아 새끼를 키운 것이다. 찾아보니 여기저기 여러 개의 둥지가 있었다. 나무가 크게 자라고 숲을 이루니 집 짓고 새끼치기에 최적의 환경이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수확기 이전에 모두 키워 내보낼 수 있다는 판단이 섰던 것일까?
아무튼 이미 새끼는 다 나가고 빈 둥지만 남아있다. 그 작은 입으로 한오라기 한오라기 물어다 빈틈없이 완벽한 둥지를 만든 것이 신비롭다. 알이 굴러떨어지지 않게 깊고 둥글게 지어진 둥지. 그리고 알에서 깬 새끼들을 위해 벌레를 잡아 한 입, 한 입 넣어주었을 어미 새의 정성이 보이는 듯 했다.
빈 둥지를 보니 아로니아 수확 못지않게 큰 기쁨이 느껴졌다. 우리가 키운 저 밭에 누군가가 살 집을 마련해 주었고, 그 속에서 어릴 때 우리가 살았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잠시나마 상념에 젖을 수 있어서다. 언젠가 내 젊은 시절, 서울로 학교 다니러 올라와 밤 야경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었다. 저 많은 집 중 내 집은 없구나. 그러기를 수년, 결혼하고 조그만 내 집을 마련했을 때의 기쁨이란 얼마나 컸던가? 그런 내 집을 무상으로 저렇게 많이 기부했다 생각하니 얼마나 가슴 뿌듯한 일인지 모르겠다.
더위도 잊은 채 여기 저기 빈 둥지를 보며 자연과 동화되는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내년에도 또 오너라, 친구들도 더 많이 데리고 ~~
백십 년 만의 무더위라고 하는 폭염이 계속되는 요즘이다. 한여름이니 아이들도 방학을 맞았다. 유치원생인 손녀와 어린이집에 다니는 손자도 일주일간 집에서 쉬게 되었다.
얼마 전까지 전업주부였던 며느리가 직장에 나가고 있다. 다행히 아침에 큰아이를 유치원 통원버스에 태우고 작은아이는 어린이집에 보낸 후 출근하고 아이들 끝나는 시간 전인 4시에 퇴근하는 직장이라 무리 없이 지내고 있었는데 이제 문제가 생겼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 미술 하는 날과 발레 하는 날만 유치원에서 손녀를 픽업하여 학원에 보내는 임무를 갖고 있었는데 이제 방학을 맞아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안 가는 아이들을 며느리가 퇴근해 올 때까지 돌봐야만 하게 되었다.
물론 예쁜 손녀 손자를 매일 볼 수 있는 건 행복하지만, 시니어가 된 이후 내 일정도 만만치 않게 바빠서 걱정이었다. 그래도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 손녀 손자 봐주는 일이므로 다른 일정은 당분간 모두 보류되었다.
생각해 보니 여태까지 아이들에게 음식을 만들어 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제 어미가 알아서 했기 때문에 나는 그냥 예뻐하기만 하면 되었는데 이제 방학 일주일 동안 먹이고 씻기는 일이 다 내 차례가 되어서 난감했다. 아들이 어릴 땐 좋은 음식만 먹인다고 요리 연구도 꽤 했는데 너무 오랫동안 아기들을 위한 음식을 해보지 않아 서툴렀고 먹지 않으려는 작은아이 밥 먹이는 일도 큰 난관이었다.
두 아이 돌보기가 매우 힘들 거라는 며느리의 조언대로 아침 식사 후에 키즈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키즈카페의 실상을 알고 나는 좀 놀랐다. 우리 어릴 땐 방학이 되면 골목길에 친구들이 모여서 소꿉놀이도 하고 술래잡기 등을 하며 하루를 보냈는데 요즘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키즈카페는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었다.
두 아이를 데리고 모 백화점 키즈카페에 갔다. 요 녀석들은 이전에도 와봤는지 무척 신났고 즐거워했다. 먼저 입장료는 한 시간에 8.000원이고 십분 초과마다 1.000원씩 추가된다고 한다. 보통 아이들이 두세 시간은 뛰어노니 두 아이의 놀이 비용이 꽤 나갔다.
물론 쾌적한 환경에 퍼즐이나 블록 등 장난감도 구비되어있고 볼 풀이나 안전하게 뛰어놀 수 있는 시설이 되어 있으므로 아이들도 좋아하고 엄마에게도 휴식을 줄 수 있다고 한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뛰어놀던 내 어릴 적과는 매우 다른 놀이문화다. 점심을 사 먹이고 아이스크림까지 먹은 후 집에 돌아오는 과정이 며칠 계속되었다.
온종일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도 힘에 부치니 역시 나이는 못 속인다는 말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래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 손자이니 기쁜 마음으로 돌보지만 이렇게 방학 동안 봐줄 사람 없는 맞벌이 부부의 경우 어찌하는지 걱정스러워 며느리에게 물었더니 다 방법은 있었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방학이라도 선생님들이 순번을 정해 맞벌이 자녀를 위해 출근하는 제도가 있다는 것이다. 천만다행이라는 생각과 이런 복지제도를 정부 차원에서 잘 운영해서 걱정 없이 아기들을 낳아 기를 수 있는 제도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돌 봐줄 사람 없는 맞벌이 가정 아이들도 안심하고 유치원에서 보호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월요일부터 닷새 동안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이런 북새통을 며느리는 매일 겪고 있을 테니 참 대견하고 고맙다. 피곤하기도 했지만, 오롯이 내 것이었던 아이들과의 시간이 행복했다. 이제 방학이 끝나 아이들도 일상으로 돌아갔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반갑게 만나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아기들을 생각하니 즐거워서 미소가 계속 피어난다.
기온이 비현실적으로 올라가니 세상도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모든 사물이 흐느적거리고 시간은 느리게 흘러간다. 카뮈의 ‘이방인’에 나오는 주인공이 뜨거운 태양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는 고백이 이해될 지경이다. 문득 카뮈가 겪었던 모로코의 더위가 이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부극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그렇게 얼굴을 찡그렸던 건 바로 그 황야의 불쾌지수 때문이었으리라.
어디를 간다는 것도 엄두가 나질 않고 집에 있자니 전기료 걱정에 에어컨도 마음대로 켤 수 없다. 저잣거리에서 들리는 소문은 온통 흉흉하고 머릿속으로만 그리던 남쪽 바다는 바닷물 온도마저 30도를 넘어 양식 중이던 물고기가 떼로 죽어 나간다는 소식이다. 예전에는 이런 때가 되면 TV에서 납량특집도 많이 하더니만 요즘은 그것도 뜸하다. 하기야 사는 현실이 하루하루 납량특집이니 흥도 안 나리라.
그나마 요즘 마음속 납량특집 삼아 찾아보는 프로그램이 나영석 PD가 만드는 ‘꽃보다 할배’라는 여행 프로그램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필자는 이 프로가 처음 시작한 때부터 등장하는 할배들에게 감정 이입해가며 즐기다 보니 어느새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이번에 방영되는 베를린, 체코, 오스트리아 편을 보니 세월의 흐름이 완연히 느껴진다. 할배들의 기력이 여전만 못함이 드러나 마음이 짠하다.
이 프로그램의 묘미는 뭐니 뭐니 해도 등장하는 인물들의 캐릭터가 주는 재미다. 자신도 모르게 드러나는 갖가지 연출되지 않은 모습과 행동들로 멀게만 느껴지던 배우들의 삶이 우리네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드라마로 형성됐던 고정관념을 깨는 순간들이 주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 중 극 중 역할 때문이겠지만, 매우 날카롭고 깐깐해 보였던 박근형이 의외로 로맨티시스트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순재 할배는 ‘직진순재’라는 별명처럼 여행 초기 일행을 벗어나 항상 돌출행동을 하여 시청자들을 걱정시켰지만, 그것이 끊임없는 지적인 호기심 때문임이 밝혀지면서 나이를 잊고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이 무언지 알게 해 주었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는 앞장서서 일행을 이끌던 초기의 활달함이 많이 수그러들었다. 체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일행을 배려하는 마음이 원숙해진 이유도 있으리라.
가장 변화가 많은 문제가 있는 캐릭터는 바로 백일섭이다. 초기에는 자기중심적인 태도로 시청자들에게 불편함을 주기도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불편한 몸 때문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는 그 불편함이 심해져 시청자들을 오히려 불편하게 한다. 두 번의 수술로 불어난 체중을 지탱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더하고 그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과장 행동이 안쓰럽다.
이번 여행의 백미는 무엇보다 김용건의 등장이다. 배우로서 몰랐던 그의 진면목이 만천하에 드러나 시청자를 즐겁게 했다. 그의 끊임없는 유머와 농담은 자칫 지루해질 가능성을 차단하고 여행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아울러 그의 시선은 드라마의 균형을 잡듯이 조용한 신구와 소외된 백일섭을 부축하고 견인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삶의 윤활유로서 유머의 가치를 입증한다. 여행 파트너로 우리 식구들은 만장일치로 그를 선택했다.
프로가 방영되는 한 시간 반 동안 알프스 자락에 자리한 잘츠부르크의 풍광과 볼프강 호수, 그리고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촬영장소를 할배들과 함께 다니느라 더위를 잊었다. ‘그래 더 늦기 전에 우리 할배와 한번 다녀와야지.’ 나만의 즐거운 납량특집이었다.
여름은 무더워 신체가 상하기 쉬운 계절이다. 누구나 기진맥진해하고 힘들어한다. 선풍기나 에어컨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몸이 허약하면 선풍기나 에어컨 바람도 싫어진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계절이다. 나이 든 사람일수록 더 힘들다. 고산이나 북쪽의 서늘한 곳으로 피서를 떠나는 것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한두 달 피서를 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외부의 더위를 피할 수 없다면 신체 내부의 환경을 바꿔 열을 식혀야 한다. 여름 무더위는 한의학적으로 습열이라 하는데, 폐가 이 습열을 식혀준다. 그런데 몸이 약해지면 폐가 손상되어 습열을 제거하지 못해 비위와 콩팥 기능까지 떨어진다. 이것이 바로 여름 병증이다.
이번 호에는 무더위를 이기는 맛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무더위를 이기는 맛은 약한 신맛과 약한 짠맛, 그리고 단맛이다. 이미 우리의 음식 문화에는 이런 맛이 여름 먹거리로 녹아들어와 있다.
첫째 약한 신맛은 약간 시큼한 맛이다. 황매실차, 오미자차를 먹어보면 새콤한 맛이 느껴지면서 침이 고인다. 그리고 전신의 피부가 닭살처럼 일어난다. 새콤한 맛은 피부의 땀구멍을 닫아주는 효과가 있다. 더위를 먹는다는 것은 폐의 기운이 부족해 피부의 땀구멍이 열려 땀이 줄줄 흐르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면 기운이 떨어지고 밥맛도 없어진다. 새콤한 맛은 땀구멍을 닫아 기운이 새어나가는 것을 막아준다. 중국 명의인 손진인 선생이 “여름철에는 늘 오미자를 복용해 오장의 기운을 보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이 때문이다. 매실차는 3년쯤 묵힌 황매실차가 좋다. 갓 담근 매실차는 강하게 시큼한 맛이라 체했을 때 소화제로는 좋지만 여름 보양 음료로는 적합하지 않다.
장수 음식으로 꼽히는 흑초도 좋다. 현미식초를 먹어보면 강하게 시큼한 맛이 느껴지다가 끝 맛이 쓴데, 이런 맛은 체한 것을 풀어주지만 여름 보양 음료로는 적합하지 않다. 흑초나 홍초는 약간 시큼하다가 끝 맛이 달면서 입에 침이 고인다. 이런 맛이라야 여름 보양 음료라 할 수 있다. 또 당연히 오래 묵힌 것일수록 효능이 있다. ‘동의보감’에서는 오미자가 들어간 생맥산(生脈散)을 여름 보양 음료로 추천한다. 맥문동 8g, 인삼 4g, 오미자 4g을 물에 달여 여름철에 늘 마시면 좋다고 했다. 여름철 보양식으로 유명한 보신탕도 약한 신맛이 나는 음식이라 구분할 수 있다. 보신탕에 넣는 부추도 약한 신맛을 낸다.
둘째 약한 짠맛이다. 약한 짠맛이란 처음에는 약간 짭짜름하다가 단맛이 나면서 입에 침이 고이는 맛을 말한다. 찌는 듯이 더운 사막을 횡단하는 카라반은 소금을 늘 먹어서 기운이 땀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한다. 약한 짠맛을 먹으면 진액을 끌어당겨 땀이 덜 나가게 한다. 몸의 열을 내려주는 효과도 있다. 음식점에 가면 보통 고춧가루나 식초가 놓여 있다. 그런데 여름에만 특별히 놓이는 양념이 있다. 바로 소금이다. 여름철에 콩국수를 주문하면 소금이 따라 나온다. 보신탕, 삼계탕을 주문해도 소금을 준다. 여름철 별미인 우무에도 소금이 들어간다. 뱀장어도 여름에는 소금을 곁들여 먹는 것이 좋다. 운동하고 나서 땀을 많이 흘린 후 마시는 미네랄 음료도 약한 짠맛이다. 약한 짠맛은 흡수가 빠르고 소변을 잘 보게 해 열을 가라앉혀준다.
그런데 어떤 소금을 쓰는가가 중요하다. 정제염이나 갓 만든 천일염은 아니다. 이들 소금은 매우 짜면서 끝 맛이 쓰고 입이 말라 물이 당긴다. 3년 이상 묵힌 천일염이나 구운 소금, 죽염, 함초 소금은 약간 짜면서 끝 맛이 달고 입에 침이 고인다. 여름에 기운이 없을 때는 생수 1ℓ에 죽염 4g 정도를 녹인 물을 한 모금씩 마시면 좋다. 기운이 나고 땀도 덜 난다. 너무 싱겁게 먹으면 여름이 힘들고 기운이 없어진다.
셋째 단맛이다. 더운 여름에는 체력 소모가 많아, 이를 보충하기 위해 단것을 많이 먹는다. ‘동의보감’에서도 “더위는 기를 손상시키니 진기를 보하는 것이 요체다”라고 했다. 더운 동남아와 중동 사람들은 단것을 엄청 많이 먹는다. 수박과 참외, 야자 등 여름철 과일과 열대 과일류는 대부분 달다. 이때의 단맛은 정제 설탕 맛과 다르다. 정제 설탕을 먹으면 달달하다가 입이 텁텁해지면서 물이 당긴다. 초콜릿을 먹어도 달다가 입맛이 쓰면서 물이 당긴다. 이런 맛은 여름 먹거리로 적합하지 않다. 야자즙, 망고 등 천연과일은 달달하면서 입에 침이 고인다. 이런 단맛이라야 여름 더위를 이길 수 있다. 그런데 참외나 수박처럼 차가운 과일은 적당히 먹어야 한다.
‘동의보감’에서는 사계절 중 여름철 건강관리가 가장 힘들다고 했다. 더워서 겉으로는 땀이 나지만, 속은 반대로 차가워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땀을 과도하게 흘려 탈진하거나 더위를 먹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더워도 위장은 차갑기 때문에 차가운 음식을 주의해야 한다. 여름철에 얼음물과 차가운 채소와 과일을 많이 먹으면 가을철에 추웠다 더웠다 하면서 배변 상황이 나빠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현대인은 에어컨 때문에 여름에 오히려 냉방병에 걸리기 쉽다. 머리가 아프고 몸이 쑤시면서 발열, 오한, 복통, 구토, 설사를 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중간중간 따뜻한 음료를 마셔야 한다. 곽향정기산(藿香正氣散)을 쓰면 효과가 있다.
여름은 콩팥이 가장 약해지는 시기이기도 하므로 과도한 성생활이나 음주를 주의해야 한다. 콩팥이 손상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더울 때 갑자기 찬물로 세수를 하면 눈에 혈액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시력이 나빠질 수도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더운 곳에 나갔다가 돌아오면 찬물로 양치하되 삼키지는 말아야 한다. 인체 내부로 갑자기 찬물이 들어가면 손상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철한(崔哲漢) 본디올대치한의원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본초학교실 박사. 생태약초학교 ‘풀과나무’ 교장. 본디올한의원네트워크 약무이사.
저서: ‘동의보감약선(東醫寶鑑藥膳)’, ‘사람을 살리는 음식 사람을 죽이는 음식’
자고 나면 줄줄이 올라오는 다른 동년기자들의 글이 쌓여 가도록 생각의 언저리에서만 서성이고 있었다. 동년기자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글쓰기’에 대한 기본기를 다지고 싶었다. 무조건 해보자는 결단으로 글쓰기 강좌를 신청했다. 물론 기사를 쓰는 형식과는 다르겠지만, 기본 글쓰기가 능수능란해지면 기사에서도 ‘요것 봐라?’하는 재치를 가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인생2막 글쓰기’라는 강의 부제에 걸맞게 50대부터 80대까지의 학생이 모였다. 일주일에 한 번씩 총 8주 과정으로, 장르나 주제에 관계없이 글을 메일로 전송하면 선생님의 첨삭 출력물을 수업 전에 받아볼 수 있다. 30여 명 수강생 중에 보통 10명 정도의 작품은 선생님이 직접 읽고 학생들은 경청한다. 그러고 나서 토론을 하는데, 이때 나오는 이야깃거리가 아주 풍성하다.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자란 유년기를 풀어낸 글, 울음 끝에 웃음을 주는 글, 자신의 일터가 고스란히 담긴 글 등 각양각색이다. 그중에서도 수십 년 전 첫사랑 얘기는 단골 메뉴다. 조각보 같은 학생들의 재주에 감탄이 이어진다. 그 틈에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맛에 다음 시간이 더 궁금해지기도 한다.
하필 폭염기와 수강 기간이 겹쳐 힘들기도 했다. 그런 중에도 대전에서 KTX를 타고 다닌다는 유치원 원장님은 술떡을 한 상자 해 오셨다. 그다음 주는 다른 수강생이 달걀을 삶아 왔고, 누군가는 찰떡을 가져오는 등 수업 내내 간식이 끊이질 않았다. 그런 학생들의 인정과 열정 덕에 지치지 않고 공부할 수 있었다. 마지막 수업을 남겨두고는 가는 더위마저 퍽 아쉬웠다.
글쓰기를 배우려면 책으로 독학할 수도 있고, 강연을 찾아갈 수도 있다. 또, 이런 수업을 통해 자신의 글을 여러 사람에게 보여주고 느낌을 나누며 전문가에게 조언을 얻는 방법도 있다. 내 글의 민낯을 보이는 과정이 어쩌면 부끄러울 수도 있지만 토론과 개별 첨삭은 우등생이 되기 위한 오답노트 같기도 하다. 달고 쓰게 공부한 노트가 켜켜이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글 좀 쓴다는 속 빈 격려라도 받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수업 내내 기록이 꼼꼼해지고 귀가 쫑긋해졌다.
우선 펜을 잡아 보자는 생각으로 나선 글쓰기 수업이었다. 하루 한 시간 무조건 써보는 작은 습관이 중요함을 인정하게 됐다. 처음엔 잡지 기사를 잘 써볼 요량으로 시작했지만, 어쩌면 그 이상의 더 큰 무언가가 뭉게뭉게 피어오를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바라고 원해서 한 일인 만큼, 글쓰기가 나에게 인색함 없는 행복을 한없이 안겨 주리라 생각한다.
연일 기록적인 폭염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11일 시작된 폭염은 24일인 오늘까지 계속돼 기상청 관측 이래 3번째로 장기화되고 있는 상태다.
이런 무더위로 대부분 가정에선 에어컨 등 냉방기를 쉴 틈 없이 가동하고 있는데, 전문의들은 실내외 온도차가 심할 경우 관절에도 냉방병이 올 수 있어 취약계층인 노약자들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경고한다.
관절 냉방병은 더운 여름에 적응된 신체가 낮은 온도에 장시간 노출됐을 때 발생하기 쉽다. 관절 냉방병의 원인은 혈액순환에 있다. 낮은 온도가 뼛속 말초 혈관을 수축시켜 혈액의 순환 방해하기 때문이다. 혈액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으면 관절이 경직되고, 뼈 사이 관절액이 굳어 움직임에 장애를 일으킨다. 수면 시 찬 바람을 직접 장시간 쐬는 것도 질환의 원인이 된다. 냉방으로 밤새 근육이 경직되면 관절에도 좋지 않고, 수면에도 장애가 생기기 쉽다.
때문에 전문의들은 체온 유지를 위해 지나친 냉방을 삼가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냉방을 조절할 수 없다면 겉옷 등으로 체온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평소 요통이나 관절통이 있는 중장년들에게는 복대나 보호대도 도움이 된다.
만약 냉방으로 인해 어깨나 허리에 통증이 나타나면 반신욕이나 온찜질을 통해 관절의 혈액순환을 돕는 것이 좋다. 근육을 풀어주는 스트레칭도 관절 냉방병에 좋다. 이 같은 노력에도 요통이나 관절통 증세가 지속되면 바로 병원을 찾아야 한다.
정형외과 전문의인 더본병원의 김준한 대표원장은 “냉방 관절통이 발생했을 때 대부분 휴식이나 따뜻한 찜질만 정성스럽게 해도 쉽게 증상 호전을 기대할 수 있지만, 평소 디스크나 척추관협착증, 관절염이나 골다공증 등 만성 근골격계 질환이 있는 경우 약물치료나 물리치료, 드물게는 수술까지 필요한 경우도 있기 때문에 한 번 생긴 통증이 1주일 이상 지속되거나 심해지면 꼭 병원을 찾아 정확한 진단을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매일 아침이 느긋하다. 차 한잔하면서 직장에 매이지 않은 자유로움을 실감한다. 퇴사한 지 일 년. 가끔 지금도 근무하는 꿈을 꾸는데 잠에서 깨면 어떤 게 진짜 나 자신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아마도 정년을 다 못 채우고 그만뒀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있어서 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틈 없게 내 나름대로 활동과 계획을 만들어 충실히 움직인다. 그중 하나로 며칠 전 동네의 작은 도서관을 가보았다. 직장 다닐 때 출퇴근 하며 그저 눈길만 스치던 그곳, ‘희망마을작은도서관’이다.
‘희망마을작은도서관’이 있는 대전시 유성구 봉명동은 구도심으로 골목이 거미줄처럼 촘촘하다. 봉명(鳳鳴)동은 숲이 많아 부엉이가 찾아와 울던 곳이라고 해서 예로부터 ‘부엉이마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내가 사는 구암동 이웃 동네인 봉명동은 길쭉하게 생긴 유성구 중앙쯤에 있다. 봉명동 주변의 노은동(유성구)과 도안동(서구)이 아파트단지로 개발돼 들어섰지만 봉명동은 옛날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그래도 도서관을 중심으로 유성온천과 유성시외버스터미널, 유성 오일장 등이 어른 걸음으로 10여 분 거리. 개발 더딘 곳이라지만 누구든 접근할 수 있어 도서관이 있기에 딱 적당한 곳이 바로 봉명동이다.
작정하고 도서관을 찾아갔지만 정기휴일이었다. 평소 월요일에 도서관이 쉰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깜박했다. 이왕에 걸음 했으니 도서관 분위기를 살피기로 마음 먹고 두리번거렸다.
돌아보니 도서관 건물 1층은 봉명동 어르신을 위한 경로당이었다. 마침 할머니 한 분이 어린 손주를 업고, 마치 이웃집 놀러 가 듯 안으로 들어갔다. 도서관과 경로당이 어울려 있는 것이 우리 옛 마을에 아이와 노인이 함께 살던 모습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무더위쉼터’라는 팻말이 걸린 경로당 앞에는 ‘누구나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있다. 의자에는 부엉이 그림이 그려져 있다. 등허리를 세우고 엉덩이를 깊숙이 넣어 앉아 바닥을 보니 화분이 나란하게 줄지어 서 있다. 테두리 한 귀퉁이가 떨어진 것, 사기 재질로 길쭉하게 키가 큰 것 등, 고만고만한 플라스틱 화분들이 삼대가 같이 사는 대식구처럼 느껴졌다.
‘부엉이 할매 그림나무’라고 쓰인 게시판도 눈이 들어왔다. 나무 그림 위에 부엉이 마을에 사는 할머니들의 ‘자랑’이 목재로 만든 작은 이파리마다 쓰여 있었다.
나는 바느질을 잘한다.
나는 잘 웃는다.
나는 노래를 좋아한다. 기쁠 때 슬플 때 위안이 된다.
나는 노래를 잘한다. 즐겁게 산다. 행복하다.
인생의 후반을 사는 경로당 어르신들이 적어놓은 인생의 단상들. 세상 사는 것에 있어 어떤 것이 중요한지를 단순하고 소박하게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옷을 지어 입던 시절, 당신 세대에서 바느질을 잘한다는 건 매우 중요했을 것이다. 노래는 시대를 불문하고 기쁨을 더하거나 시름을 덜어주는 치유가 되기도 한다. “노래 부르고 이웃과 즐겁게 지내니 행복하다”는 부엉이 할매의 자랑은 내게 위로와 격려로 다가왔다. 그리 조급해하며 만들어놓은 계획표에 가끔 느슨하게 움직여도 괜찮을 거라고. 오늘 도서관에 왔다가 헛걸음 한 시간도 그 나름대로 의미 있다고 말이다.
지난 여름 열대야는 대단했다. 에어컨을 밤낮으로 틀고 살아야 했다. 아차! 전력요금하고 에어컨을 끄고 선풍기를 방마다 틀었더니 선풍기 자체 열에 의해 더운 바람이 나올 정도였다. 가정의 전력요금은 누진제 영향으로 많이 쓰면 쓸수록 단가요금이 높아진다. 앞으로 원자력 발전소를 줄이고 신재생 발전소로 대체한다고 하지만 이는 곧 전력요금인상을 불러오는 것은 자명하다. 이를 막으려면 가정에서는 절약밖에는 묘수가 없다.
전기절약을 위해 정부당국에서 하는 방법으로 전기요금을 비싸게 하여 소비자가 스스로 알아서 덜 쓰게 하는 방법이다. 이것이 바로 누진제의 기본개념이다. 또한 법으로 강제적으로 못쓰게 하는 것이다. 전기가 한참 부족할 때에는 네온사인을 못 켜게 하고 냉방기를 28도 이상이여야 가동하도록 하고 최근에는 에어컨 켜는 상점은 출입문을 열어둔 채 영업을 하지 못하게 하는 등 제도를 통해 단속하는 방법이다.
다음으로 민간차원에서 똑같은 성능을 발휘하면서도 전력사용량은 적은 고효율기기를 제조업체에서 만들어 내는 방법이 있다. 예전의 냉장고나 에어컨에 비하면 신형 가전제품은 확실히 소비전력이 적다. 오래된 가전제품이 있다면 고효율 가전제품으로 교체를 고려해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정부에서 권장하는 태양광 발전이나 지하수를 이용하는 지열발전이 있는데 초기비용이 많이 들고 건물의 구조나 면적에 따라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
가정집의 전기절약을 위한 방법으로 귀에 익을 것들을 상기해보면 한집 한등 끄기 운동도 있었고, 텔레비전 등 가전제품을 사용하지 않을 때는 대기전력을 없애기 위해 플러그를 뽑으라고 했다. 또 세탁할 때는 세탁물을 모아서 한번 에 하자는 운동도 있었고 필요한 TV방송만 보고 시계대용으로 텔레비전을 커놓지 말자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실제 절약 효과는 별로였다고 본다. 마른수건을 또 짜는 분위 조성에는 성공했어도 대다수 서민들은 그렇게 절약하고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절약하기가 어려웠다.
우리 집은 무더위로 에어컨을 많이 사용했는데도 작년과 비슷하게 전기 요금을 냈는데 크게 두 가지 방법이 효과를 봤다. 첫째는 냉장고, 김치냉장고, 텔레비전, 컴퓨터 등 전력사용기기를 청소했다 특히 열이 나는 발열부분에 먼지를 말끔히 닦아내서 효율을 올렸다. 모든 전기제품의 수명과 효율은 발열이 좌우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열을 내리는 방법은 주위 공기에 의해 자연히 식도록 하는 자연 순환방식과 강제로 휀을 돌려 바람을 보내는 강제송풍방식이 있다. 다음으로 물로 식히는 수냉식과 기름으로 식히는 유입식이 있는데 휀으로 공기를 순환시켜 식히는 방법이 대부분이다. 가전제품의 냉각계통을 잘 알아서 주기적으로 청소를 해야 한다.
두 번째 전구를 전부 LED 등으로 교체했다. LED자체의 가격은 비싸지 않는데 조명기구 값이 비싸다, 내가 잘 아는 LED부품 취급업소에 우리 집 등 기구를 몽땅 뜯어가서 외부 조명기구(CASE)는 그대로 살려서 사용하여 비용이 거의 들지 않았다. 식탁 위 전구형 LED등만 시장에서 6천원 주고 100W밝기와 맞먹는 12W LED 등을 샀다. 시장조사를 해보니 LED등이 값이 많이 내렸다. 이런 노력으로 월 50KW는 절약한 것 같다. 절약이란 사용해야 하는 것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허비 되고 있는 곳을 찾아서 효율적으로 개선하면 적어도 10%는 절약할 수 있다.
장마철은 이미 지났는데 요즘 폭우가 계속 내리고 있다.
얼마 전까지 34도가 넘나드는 무더위로 힘들었었기 때문에 오히려 비가 내려 선선해지니 기분이 상쾌하다.
오락가락하는 빗속을 뚫고 일요일 오후 뮤지컬 한 편을 보러 강남 나들이에 나섰다.
역삼동의 LG아트센터에는 뮤지컬을 즐기러 온 사람들로 활기가 넘친다.
이날의 공연은 로 프랑스 극작가 에드몽 로스탕의 희곡 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뮤지컬이다.
‘시라노’는 남보다 훨씬 크고 못생긴 코가 콤플렉스지만 아름다운 시를 쓰는 시인이자 철학자이고 용맹한 검객이자 모험가로 외모 외에는 모든 것이 완벽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뮤지컬이나 오페라에 등장하는 ‘시라노’는 실제 모델이 존재한 인물로 작가였다.
그는 유난히 큰 코 때문에 외모 콤플렉스가 있었지만, 지적인 달변가로 그의 코에 놀란 사람들도 그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귀를 기울이고 그에게 빠져들었다고 한다.
필자의 젊은 시절 명동 한복판 가장 번화한 예술의 전당 건너편에 ‘시라노’라는 이름의 작은 미니 백화점이 있었다.
유명한 음악가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씨의 어머니가 운영했다는 이 백화점의 이름을 ‘시라노’라고 지은 건 외면보다 내면의 그 인품이 뛰어났기 때문에 선택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라노’라는 인물은 매력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다.
뮤지컬의 주인공 ‘시라노’는 시를 사랑하는 검객으로 싸움과 도전을 좋아하는 호쾌한 남성이다.
그러나 마음으로 사랑하는 연인 ‘록산’ 앞에만 서면 콤플렉스인 큰 코 때문에 몸을 숨기기 급급하다.
뮤지컬은 한 여자와 세 남자가 얽히는 서사시이다. 어린 시절을 같이 보낸 사촌 동생인 아름다운 ‘록산’을 좋아하지만 ‘시라노‘는 그녀에게 다가가기엔 자신의 외모가 너무 흉하다고 생각해 가까이하지 못한다.
부대의 지휘관인 ‘드기슈’가 ‘록산’에게 구애하지만, 어느새 ‘록산’은 ‘시라노’의 친구인 잘생긴 ‘크리스티앙’에게 마음을 사로잡힌다.
‘록산’의 마음을 안 ‘시라노’는 ‘록산’의 행복을 위해 두 사람을 이어주겠다며 지식이 부족한 ‘크리스티앙’ 대신 편지를 써주게 된다.
‘크리스티앙’의 편지를 본 ‘록산’은 유려한 글에 더욱 빠져들고 그와 결혼하기로 결심한다.
이를 안 ‘드기슈’는 질투로 ‘시라노’와 ‘크리스티앙’이 있는 부대를 최전방의 전쟁터로 내보낸다.
전쟁터에서도 ‘시라노’는 ‘크리스티앙’을 대신해 계속 편지를 쓰는데 사실 그 편지는 자신의 심경을 표현한 것으로 ‘록산’을 향한 마음이 더욱 깊어진다.
그의 편지로 ‘록산’의 ‘크리스티앙’에 대한 마음이 점점 더 커지는데 필자는 편지를 쓴 사람을 ‘록산’이 알아봐 주기를 가슴 조이며 바라보았다.
결국, 세월이 흐른 후 ‘록산’은 ‘시라노’가 죽음을 앞둔 순간에 그가 편지를 쓴 사람이었음을 알게 된다.
‘록산’은 눈먼 사랑을 한 자신을 한탄하지만 ‘시라노’는 ‘크리스티앙’의 사랑도 자신만큼 진심이었다고 말해 준다.
참으로 품위와 예의를 지키는 성숙한 멋진 남자라는 생각이다.
못생긴 외모를 연기한 배우가 매우 미남이었다는 점이 재미있다.
안생에 한 번쯤은 그 무엇도 막을 수 없는 사랑이 찾아온다고 한다. 그 사랑을 겪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슬픔이라는 뮤지컬 의 말이 가슴에 남아 필자의 지난 날 그런 사랑이 있었을지 되돌아보게도 했다.
가슴 뭉클하고 감동적인 뮤지컬이 마음을 울렸다.
가끔은 손 글씨로 한 줄 두 줄 써 내려간 편지가 그리워진다. 즉각 전달되는 긴 안부 문자보다 사나흘 걸리는 편지가 정겹게 여겨지기도 한다. 먼저 접한 가을 소식을 한 장의 엽서에 담아 보내면 어떨까? 카메라로 한 장의 ‘가을엽서’를 그렸다. 결실을 기다리는 그대에게 띄운다.
계절이 오는 길목은 다양하다. 봄은 남녘에서 길을 만들고 가을은 북으로부터 다가온다. 추위가 다가옴을 미리 알아차리고 겨울 준비를 서두르는 자연의 섭리다. 숨통을 쥐어짜듯 무덥던 여름이 서서히 꼬리를 내리는가 보다. 필자가 사는 동네는 서울보다 북쪽 지역이어서 평소 온도가 2, 3도 낮기도 하지만, 아침저녁이 선들하고 열어둔 창문을 넘어 슬쩍 들어오는 새벽녘 찬 기운에 홑이불을 챙긴다. 온몸이 으스스 감기 들까 봐 새우처럼 움츠리는 환절기다. 세월의 흐름 속에 계절 변화는 여지없이 나타난다. 전혀 물러갈 것 같지 않던 무더위도 숨을 죽여간다. 머지않은 시기에 입추 절기가 자리하고 있다. 오늘이 7월 말일이고 입추가 8월 7일이니 한 주 정도 남았다. 태양이 중천에 머무는 시간대면 그래도 아직 더위가 몸을 데우지만, 중복이 지난 시점에서 가을 문턱의 기운은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필자는 일산 신도시 근처에 논밭이 즐비하고 나지막한 산으로 둘러쳐진 시골 같은 마을에 산다. 자연과 함께한다. 때로는 자연 속의 한 배역이 되기도 한다. 달을 따라 하늘을 날기도 하고 꿀을 따는 벌과 무지개를 좇기도 한다. 텃밭에 열린 오이를 따서 옷에 쓱쓱 문질러 한 입 베물기도 하며 자연스레 살아가려 한다. 가수 효리의 민박집이 인기이듯 자연스러움은 곧 사람 냄새가 나는 삶으로 모두가 그리워한다.
그 꿈을 위하여 3년 전에 전원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계절의 변화를 어느 사람보다 먼저 알아차린다. 콘크리트 감옥 같은 도회에서 느낄 수 없는 생활을 해서일 테고 한 걸음 더 자연의 품에 안겨서다. 은퇴하면 많은 사람이 전원에서의 삶을 갈구하고 대도시 주변 산이 시간을 가리지 않고 붐비는 이유도 그럴 테다. 전원풍의 마을에 사는 필자는 계절의 감각을 빠르게 느낀다. 봄.여름.가을.겨울 모두가 그렇다. 요즘도 계절의 변환 시기다. 벼를 심은 논에 벌써 가을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음을 순간 발견해서 그렇다. 오늘 아침에야 벼 이삭이 패고 있음을 발견했다. 모내기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벼 이삭이 논의 군데군데 보인다. 어제 아침과 오늘 아침이 다르다. 물이 끓는 모습은 일순간에 나타나도 끓기 위한 과정은 눈에 보이지 않게 진행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봄부터 여름 내내 밤이면 별을 세고 바람결에 흔들리며 고요한 시간과 이슬을 머금고 조금씩 조금씩 키를 키우더니 입추를 눈앞에 둔 지금 벼 포기의 키가 훌쩍 컸다. 진초록 볏줄기를 비집고 연둣빛 이삭이 하늘을 향한다. 그 위로 잠자리 떼 쉴 사이 없이 날고 있다. 가을이 싹튼다. 오래지 않아 따사한 햇살에 벼는 탱글탱글 익어 가고 검붉게 탄 구릿빛 얼굴의 농부가 논둑에 서서 넉넉한 미소로 황금빛 들녘을 바라보는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필자는 오늘도 논과 농수로를 사이에 한 들길을 걸으며 모르는 사이 갓 패어난 벼 이삭에서 가을 소식을 전해 듣는다. 카메라로 희망의 메시지를 담아 ‘가을엽서’를 만들었다. 그대에게 띄우는 ‘가을엽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