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주재하신 식사 모임
감독; 조지 틸만 주니어
주연; 바네사 윌리엄스, 이르마 피 홀
제작연도; 1997년
상영시간; 115분
흑인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아줄 수 있는 영화로 가 빠질 수 없다. 할머니가 구심점이 된 삼대에 걸친 대가족 이야기. 여성의 희생과 헌신이 가정의 평안을 유지시킨다는 할머니의 교훈은 진부할지 모르지만 할머니의 딸들은 직업과 사랑, 자아실현을 위해 고분군투하고 손자에 의해 가정의 전통이 이어진다는 내용이다. 여성이 맡아왔던 화해, 안정의 역할을 손녀가 아닌 손자에게 맡겼음을 신선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성장해가는 아이들 모습을 담은 사진이 죽 나열된 후 소년 아마드(브랜드 하몬드)의 내레이션으로 영화가 전개된다. 할머니 조(이르마 P. 홀)는 미시시피에서 시카고로 이주해온 후 도박사였던 할아버지가 전 재산을 날리자 홀로 집안을 일으켜 세워 온 가족의 존경을 받고 있다. 할머니가 40년째 주재해온 일요일 저녁식사 모임은 세 딸과 그들의 남편, 아이들이 모두 참석해야 하는 가문의 전통이다. 할머니는 여자가 참고 개척해나가면 집안은 잘 유지되며 인스턴트 대신 손수 만든 음식이 인간의 영혼을 살찌운다고 설교한다.
장녀 테리(바네사 윌리암스)는 미모와 실력을 겸비한 변호사이며 남편 마일즈(마이클 비치) 역시 변호사여서 이들 가정은 경제적으로 가장 윤택하다. 테리는 성취욕과 자기주장이 강하며 변호사 일에 만족하고 있는 데 반해, 마일즈는 변호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취미로 즐겨온 음악가로 전업하고 싶어 한다. 아기가 없는 이들 가정은 이래저래 충돌이 잦다.
차녀 맥신(비비카 A. 폭스)은 전업주부로 이해심 많고 자상하며 노동자 계층인 남편 케니(제프리 D. 샘스)도 더할 나위 없이 성실한 가장이다. 맥신 부부는 아마드 외에 딸 하나를 더 두었고, 맥신이 또 임신한 상태. 이들 부부의 문제라면 케니가 테리의 연인이었다는 사실, 자신의 결혼생활에 만족하지 못하는 테리는 맥신에게 시비를 걸어 가끔 다툰다.
미용사인 막내 딸 버드(니아 롱)는 램(메키 파이퍼)과 사랑에 빠져 임신부터 했는데, 램이 전과자여서 변변한 직장을 얻지 못해 속상해하고 있다. 버드는 옛 애인에게 도움을 청해 램을 취직시키는데,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램이 자존심을 건드렸다며 행패를 부린다. 램의 꼬락서니를 보다 못한 장녀 테리는 깡패 삼촌에게 램을 두들겨 패달라고 부탁하고, 램은 총으로 맞서다 다시 감옥으로 끌려간다. 이 때문에 테리와 버드는 으르렁거리게 된다.
할머니의 가치관은 시대 상황 등을 고려해볼 때 당연한 것이고, 음식을 통한 영혼 고양에 대한 설교는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향수를 자극하는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우리에겐 세 딸의 성격이나 가치관이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감독은 차녀 맥신, 그리고 그녀의 아들 아마드로 이어지는 할머니의 가치관 잇기를 기둥 줄거리로 삼고 있어서, 일견 시대착오적이며 안일한 선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맥신의 생각이나 행동은 여성만의 인내 운운하는 선이라기보다 보편적 선, 중용 정신, 전통 존중 등이므로 편협하게 볼 것이 아니다. 각박한 현대사회, 가족 이기주의, 흑인 사회의 모순을 염두에 둔 인물 설정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가장 끌리는 여성상은 장녀 테리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묘사는 성취욕 강한 여성에 대한 묘사가 우리나라나 서양이나 지나치게 이기적으로 그려지는 습성이 있어, 여성의 성취욕에 대한 몰이해와 한계를 드러냈다. 원만하고 너그러운 성격과 일에 대한 열정을 동시에 지닌 여성들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도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이런 여성들에 대해 제대로 그려내지 못한다. 작가의 인물 분석이나 구현력에 문제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테리는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어머니의 병환 등 집안 대소사에 들어가는 돈 문제에 댛새서는 테리에게 의존하는 가족들이 테리의 이 같은 처리 방식에 불만을 품는 것은 적반하장이다. 테리에게 금전적 도움을 받는 이들이 “돈이면 다냐”라는 식으로 대드는 것은 경제력 없는 사람들의 비틀린 심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늘 머리를 써야 하고 시간에 쫓기는 테리는 맥신처럼 집안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과 노동력을 제공할 수 없다. 대신 자신의 노력으로 번 돈을 내놓는 것이다.
돈에 관한 인간의 이중적 태도는 테리의 남편과 연결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테리의 남편은 성공과 돈을 위해 뛰는 테리를 인간미 없는 아내로 본다. 그리고 음악에 대한 열망을 잘 이해해주는 테리의 사촌 훼이스(지나 라베라)와 관계를 맺는다. 이모할머니의 딸인 훼이스는 성인 비디오 배우로 집안의 골칫덩어리인데, 갑자기 나타나 온 가족을 불안하게 한다. 음악이 돈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반대를 하는 테리의 현실적인 태도와 즉흥적으로 아무 일이나 저지르는 훼이스의 유혹.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한가.
어느 가정에서나 있을 수 있는 문제와 인간관계, 그리고 흑인 문제까지 얹어 아기자기하게 묘사하는 는 마지막까지 돈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10년째 방구석에 들어앉아 TV만 보던 할머니의 남동생 피트로 인해 찾게 된 돈이 이 가정의 분열을 잠재우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영혼을 살찌울 음식도 돈이 있어 가능한 것 아닌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현실이다.
영화 제목 는 ‘영혼의 음식’이라는 직역보다는 미국 남부지방의 아프로 아메리칸의 전통 음식으로 이해하는 편이 좋겠다. 1960년대 중반부터 ‘soul’은 아프로 아메리칸 문화를 수식하는 단어로 쓰였는데, ‘soul music’이 대표적이다. 에는 보이즈 투 맨의 ‘A Song for Mama’를 비롯해 ‘소울’ 가득 담긴 노래들, 재료의 풍미를 살린 푸짐한 흑인 가정 음식 등 들을 거리 볼거리가 풍성하다.
애틋한 인연은 뭐니 뭐니 해도 남녀 간의 인연이다. 집안 조카뻘인 K는 초등학교 영양사이며 그만하면 남들에게 빠지지 않는 예쁜 미모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얌전하다 보니 서른 살이 되도록 연애다운 연애 한 번 못해본 숙맥이었다. 결혼은 필연이고 숙명이라고 믿고 있는 육십이 훌쩍 넘은 K의 시골 부모는 애가 타들어갔다. 보다 못한 K의 부모가 필자에게 참한 신랑감을 중매해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아마 도시의 큰 직장에서 근무하는 필자 주위에 좋은 신랑감이 많을 거라는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부탁을 받았을 때는 중매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세칭 1등 신붓감이 교사라는데 학교 영양사이면 교육 공무원이고 그만한 미모라면 쉽게 신랑감을 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아버지가 많은 부동산을 갖고 있는 미래의 자산가도 만나보게 했고 고만고만한 봉급쟁이들도 소개를 했다.
그러나 결과는 생각만큼 신통치 않았다. 이쪽이 맘에 들면 저쪽이 싫어하고 저쪽이 좋아하면 이쪽이 싫어했다. 그러던 중 K와 같은 학교 교장선생님이 K를 눈여겨보고 교장실로 불러 자기 아들하고 선을 한 번 보라고 말을 한 모양이었다. 신랑감은 컴퓨터 회사에 다니는 평범한 회사원 P였다.
시아버지가 될 교장선생님이 좋아서 만나본 신랑감은 다 좋은데 키가 작아서 K의 마음을 확 끌어당기지 못했다. 다음 날 교장선생님이 K를 불러 자기 아들이 마음에 드냐고 물어봤다. 아들은 좋다고 했다며 K가 며느릿감이 다 된 것처럼 환한 웃음을 지었다. K는 안 그래도 어쩔까 내 마음 나도 몰라 하고 망설이고 있는데 교장선생님의 몰아치는 듯한 질문에 겁도 나고 당황해서 아직 결혼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마음속과는 좀 다르게 우회적으로 거절의 뜻을 밝혔다. 당사자가 싫다는데 교장선생님인들 어쩌랴. 필자는 K를 만나 키가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니고 젊음과 미모 또한 평생 가는 것도 아니니 당장의 외모보다 내면의 진면목을 보라고 충고를 했다.
그 후 K는 몇 번 더 이곳저곳에서 주선해주는 맞선을 봤지만 이유로 매번 결실을 맸지 못했다. 그러면서 필자의 충고 때문인지 스스로 남자를 보는 눈이 달라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퇴짜를 놓은 키 작은 남자 P가 점점 생각나는 모양이었다. 단지 키만 좀 작을 뿐이지 성실하고 변함없이 자기만을 사랑해줄 것 같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교장선생님에게 이미 마음을 전했는데 아들을 다시 만나보겠다고 말하기가 영 곤란했다. 그러던 어느 날 K는 필자에게 용기를 내어 교장선생님에게 P를 다시 만나보고 싶다는 뜻을 전해달라고 부탁을 해왔다.
교장선생님에게 필자가 직접 전화를 걸었다. K와 필자와의 관계를 설명하고 K가 P를 한 번 더 만나고 싶어 하니 다시 만나게 해주고 좀 더 사귀어보도록 하는 것이 어떠냐고 말씀을 드렸다. 그러자 교장선생님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안 그래도 자기 아들이 거절당했다는 사실이 기분 좋을 부모가 어디 있으며, 교장이라는 우월적 직분으로 아들과의 결혼을 강요했다는 말을 들으면 어쩌나 고민도 있었는데 이런 전화를 받고 보니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었다. 아들 의사를 타진하고 다음 날 필자에게 전화를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런데 다음 날 전화가 왔는데 이제는 자기 아들이 결혼할 마음이 없는 모양이라며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교장선생님도 아쉬운지 아들이 요즘 업무로 바빠서 그런 모양이니 시간을 두고 아들을 설득해보겠다고 시간을 좀 달라고 했다. 필자도 못을 박기 위해 계속 기다리기도 그러니 빠른 시간 안에 연락을 달라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가만 보니 아들 P가 지난번에 거절당한 것에 대해 앙갚음을 하고 있는 듯했다. 병적으로 키가 크거나 작은 것이 아니라면 사는 데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위기에 휩쓸려 상대의 가치를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고 허우대만 보고 선택을 한다면 후회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결혼해서 사는 동안 이런저런 세파를 견뎌내려면 배우자 선택이 매우 중요하다. 두 사람은 아마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결혼까지 골인할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상대를 보는 안목이 1차 때보다는 2차 때는 더 커진 것은 분명해보이니 K와 P가 다시 만나 좋은 결과로 이어지면 좋겠다.
사람이 가잘 절절한 아픔을 느낄 때는 바로 사랑하던 사람을 잃은 순간이 아닐까? 옛날 중국에서는 엄격한 유교적 전통이 살아있어 남녀 간의 사랑을 드러내는 것을 천시했다. 그러나 아내가 죽었을 경우만큼은 그 절절한 심정을 마음껏 표현할 수가 있었는데, 이를 도망시(悼亡詩)라 불렀다. 이 도망시의 원조인 시가 바로 서진(西晉)시대 반악(潘岳)의 3수다. 반악은 자가 안인(安仁)으로, 서진시대 육기(陸機)와 더불어 쌍벽을 이룬 최고의 문인이었다.
중국 역사상 가장 빼어난 미남으로 보통 두 사람을 꼽는데, 한 사람은 전국시대 초(楚)나라 삼려대부 굴원(屈原)의 제자인 송옥(宋玉)이며, 다른 한 사람은 후세에 반안(潘安)이란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는 이 풍운아다. 반악은 미남에다가 좋은 가문 출신,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손꼽혀 재모쌍전(才貌雙全)의 인재로 불렸는데, 당시 권문세가였던 서진(西晉)의 외척인 양씨(楊氏) 집안과 혼인을 하게 된다. 금슬도 좋았는데 하늘이 시기해서인지 그만 사랑하는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게 되었다. 그 애절한 슬픔을 노래한 시가 바로 3수이며 그의 대표작처럼 불리고 있다. 이후 아내를 잃은 슬픔은 이를 본떠 ‘도망(悼亡)’, 벗을 잃은 슬픔은 ‘도붕(悼朋)’ 등으로 표현했다. 3수 중 첫 번째 시의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을 소개해본다.
荏苒冬春謝(임염동춘사)
들깨 무성하다 겨울 봄에 그 자취를 감추고,
寒暑忽流易(한서홀류역)
계절은 홀연히 다시 바뀌니,
之子歸窮泉(지자귀궁천)
그댄 황천(黃泉)으로 돌아가,
重壤永幽隔(중양영유격)
아홉 층 깊은 땅 아래 영원히 격리되는구려.
작가는 원강(元康) 8년 초겨울, 아내 양씨가 병을 얻어 원강 9년 봄에 장사를 지내게 되는 과정을 첫 번째 구에서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두 번째 구는 망자(亡者)를 위해 복상(服喪)한 지 다시 1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간 것을 표현하고 있다. 복상기간도 끝나 탈상(脫喪)을 하게 되니, 소위 사자(死者)가 망자(亡者)로 바뀌는 슬픔을 ‘영원한 격리[永幽隔]’란 단어로 그 슬픔을 표현하고 있다.
워낙 유명한 시여서, 첫 구절에 나오는 ‘임염(荏苒)’이란 단어는 후대에 도연명과 두보 등 역대 유명 시인들이 다투어 인용을 했고, 이후로는 그 의미가 본래의 ‘들깨가 무성하다’는 뜻에서 1~2구의 전체 의미인 ‘세월이 덧없이 흘러간다’는 의미로 사용하게 된다.
如彼翰林鳥(여피한림조) 마치 저 숲을 나는 새처럼,
雙栖一朝隻(쌍서일조척) 쌍으로 살다 하루아침에 홀로 되고,
如彼遊川魚(여피유천어) 저 내에서 헤엄치는 고기처럼,
比目中路析(비목중로석) 나란히 다니다가 도중에서 헤어진 듯하네
중국의 전설에 의하면, 동쪽 바다에 비목어(比目魚)가 살고 남쪽 땅에 비익조(比翼鳥)가 사는데 비목어는 눈이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두 마리가 좌우로 달라붙어야 비로소 헤엄을 칠 수 있는 물고기이고, 비익조는 눈과 날개가 각각 한 개밖에 없어 암수가 좌우 일체가 돼야 비로소 날 수 있는 새라 한다. 모두 남녀의 떨어지기 힘든 사이를 의미하는데, 작가는 이 단어를 인용해 떨어질 수 없는 배우자를 잃은 자신의 고통을 절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초등학교를 사이에 두고 가까이 사는 쌍둥이 손주들과 아침마다 학교에 같이 간다. 엊그제 입학한 것처럼 생각되는데 어느새 2학년이 되었다. 새봄을 맞아 학교는 아이들의 건강을 위하여 ‘아침걷기운동’을 권장하고 있다. 고구려 기병들의 말발굽 먼지처럼 운동장이 온통 뿌옇다.
미세먼지도 없는 화창한 수요일, 손주들이 걷는 날이다. 여느 때처럼 쌍둥이가 운동장을 몇 바퀴 도는 동안 아이들의 책가방, 신발주머니와 과제물 가방을 한아름 들고 교실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몇 학년이세요?” 어느 아이가 물었다.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서 어리둥절하였다.
나도 모르게 “나는 7학년”이라고 중얼거렸다. 아이가 다시 “누구를 찾으세요?”고 물었다. 이제야 아까의 질문을 이해하였다. 그 사이 손녀와 손자가 운동장 돌기를 마치고 돌아왔다. 가방을 메고 교실 안으로 뛰어가면서 손을 흔든 모습이 대견스럽게 느껴졌다. “오후에 다시 보자”면서 교문을 나섰다.
아내와 함께 날마다 아침에 출근하는 아들과 며느리를 대신하여 가까이 사는 쌍둥이 등하교를 보살피러 간다. 아침 등교가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지난지금은 아이들이 기상, 씻기, 옷차림은 어른처럼 혼자서도 매우 잘한다. 여기까지는 다 자란 것 같아서 매우 행복한 생각이 들곤 한다.
하지만 학교수업이 끝나는 낮부터는 문제가 달라진다. 방과후 수업과 학원 보내기는 날마다 일정이 들쑥날쑥하여 도통 중심잡기 어렵다. 두 녀석 일정표를 집안 곳곳에 붙여 놓고 스마트폰에 올려서 내 일정표보다 더 열심히 쳐다보아야 하는 과제가 되었다. 집에서 대기하거나 적어도 비상시 즉시 달려올 수 있는 가까운 거리까지만 외출하여야 한다.
왜 ‘7학년’이라고 스스로 생각하였을까.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면서 독서량이 엄청 늘고 놀이문화도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아진다. 질문에 대답하기 곤란한 경우가 부지기수다. 모른다고 하면 대화상대에서 제외된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아이에게 거꾸로 질문을 하면 효과가 크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정말 열심히 설명한다. 훗날 엄청 큰 자산이 될 터이다. 하기야 손자에게도 배우라고 하지 않았는가.
오후가 되자 두 녀석이 즐거운 표정으로 집에 들어섰다. 한참 클 때가 되어서인지 손 씻자마자 간식부터 챙긴다. 손녀는 가까운 학원으로 같이 가고, 손주는 버스에 태워서 보낸다. 귀가시각을 아들네와 조율하면 하루해가 저문다. 뜨거운 사랑이 있는 가족만이 할 수 있는 일과임이 분명하다.
과거에는 수치로 여겼던 휴학과 유급을 요사이는 취업절벽 때문에 자청하는 경우가 많은 세상이 되었다. 부족해서만 배우고 익히는 것이 아니다. 보다 즐겁고 알찬 대화를 위하여 시니어의 하루는 바빠야 한다. 배우다 보면 어느새 꼼짝 없이 멋쟁이 제7학년 초등학생이 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는 1954년에 나온 고전영화다. 빌리 와일더 감독 작품이며 사브리나 역으로 오드리 헵번, 라이너스 역으로 험프리 보가트, 데이비드 역으로 윌리엄 홀든 등 쟁쟁한 배우들이 출연하여 유명한 영화다. 필자 출생 연도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영화이면서 오드리 헵번이라는 세기의 요정의 대표작이라고 해서 자주 들어봤다.
무대는 아일랜드의 부유한 가문 래러비 저택이다. 이 집은 고급 자동차 8대를 보유하고 있는데 운전기사 페어차일드가 운전은 물론 차량들을 관리하고 있다. 운전기사의 딸은 오드리 헵번이 연기한 사브리나다. 래러비 집안은 아들이 둘 있는데 장남 라이너스는 일찍 상처하고 사업에만 몰두하는 냉정한 사람이다. 둘째 데이비드는 사업에는 관심 없고 여성 편력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사브리나는 어렸을 때부터 나쁜 남자 데이비드를 가까이 보며 사랑하지만, 데이비드는 사브리나에게 관심이 없다. 사브리나는 상심한 나머지 파리로 요리 유학을 떠난다. 2년 후 그녀는 아름답고 세련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다. 그제야 데이비드의 마음도 사브리나에게 열리지만, 운전사 딸이라는 신분 때문에 집안에서는 반대한다. 그런데 데이비드가 다쳐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하는 동안 형인 라이너스에게 사브리나를 잘 돌봐주라고 했는데 두 사람이 뜨거워지고 말았다. 라이너스는 동생 데이비드와 사브리나를 놓고 갈등한다. 사브리나를 다시 파리로 보내려고 배표를 끊어놓고 데이비드에게 가라고 하는데 결국 데이비드의 권고로 라이너스가 그 배에 동승한다. 천하의 사업가가 여인의 미모에 반해 모든 것을 뒤로 하고 파리로 가는 것이다. 예쁜 여자라면 신분의 차이는 문제가 안 되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여자는 예쁘고 봐야 한다.
오드리 헵번의 매력은 작은 얼굴에 큰 눈, 가냘픈 몸매다. 영화계에서 은퇴하고 나서도 봉사 활동을 하다가 죽어 여전히 세계인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 여성미의 기준은 변하지만, , 등에서 보여준 그녀의 청순미는 여전히 인상적이고 독보적이다.
이 영화가 화제가 된 것은 세기의 명배우 오드리 헵번의 대표작이기도 하지만, 몇 가지 후문이 더욱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 영화의 중간에 오드리 헵번은 라이너스의 차 안에서 ‘La vie en rose’를 부른다. ‘장미빛 인생’이라는 뜻이다. 감미로우면서도 멜로디가 경쾌해서 지금도 사랑받고 있는 노래다.
또 한 가지는 오드리 헵번이 이 영화에서 명품 ‘지방시’를 입고 나와 지방시를 일약 유명 브랜드로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영화도 흥행에 성공했지만, 오스카 상 의상 디자인 상을 받았다. 그 덕분에 헵번과 지방시는 영화를 찍을 때마다 지방시 옷을 내보이면서 스타와 디자이너로 콤비를 이루었다. 둘의 관계는 40년 가까이 지속되었고 1957년 오드리 헵번을 위한 향수 ‘랭 테르디’를 만들어 향수 또한 명품 반열에 올랐다. 헵번 외에는 사용을 금한다는 ‘금지’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향수다. 지방시는 그 후 존 F 케네디의 장례식 때 부인 재키 케네디가 장례식에 입을 옷을 주문해 케네디 가문 전체가 지방시를 입음으로써 화제가 되었다. 상류층 브랜드로 입지를 굳히게 된 것이다.
걷기 모임이 있었다. 새로운 회원이 많아서 대부분 처음 보는 분이었다.
간단하게 서로의 인사말을 주고받았는데 잠시 후 점잖게 생긴 남자 분이 나직하게 말을 건네셨다.
필자 소개에서 다녔던 학교와 년도를 듣고 궁금한 친구가 생각났다며 대학동창과 아직도 연락되느냐고 물었다.
필자는 대학 동창들과 30년째 모임을 이어오고 있다.
궁금한 분이 누구냐고 했더니 이름을 말하는데 필자의 친한 친구이다.
와! 대학을 졸업한 지 40년이 넘었는데 대학생일 때 알았던 사람의 안부를 묻는 사람을 만났다.
필자가 알던 사람을 만난 것만큼이나 가슴이 뛰고 설레었다.
그 친구 잘살고 있다고 전해주었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도 안부가 궁금하다고 말하는 분의 표정 속에서 그 옛날을 그리워하는 듯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 풋풋한 청춘 시절 마음에 담아두었던 좋은 추억이었나 보다.
친구에게 안부 전하겠다고 했다.
한동안 싸이월드라는 사이트에서 친구 찾기가 열풍이었던 적이 있다.
따로 필자의 블로그를 갖고 있지 않을 때라 필자와 우리 동창들은 싸이월드를 만들어 사진을 공유하고 서로 댓글을 달아주면서 즐거웠다.
인터넷도 유행을 타는지 그렇게 열심히 사이트를 꾸미고 사진을 올려 서로 돌려보던 시간이 지나고 스마트폰을 갖게 되자 친구들 하나둘씩 싸이월드를 버리고 스마트 폰 꾸미기 열풍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싸이월드의 친구 찾기를 보면서 필자도 찾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이름과 나이를 알면 찾아볼 수 있었는데 필자가 찾고 싶었던 사람은 아마 싸이월드 회원이 아닌 듯 찾아봐도 나오질 않았다.
사귀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어린 시절 대전에서 살 때부터 알았으니 고향 초등학교 동창이라 할 수 있는 친구로 집안끼리도 아는 남자애다.
필자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 돈암동의 태극당에서 우연히 만난 이후로 친하게 지냈다.
성이 같은 박 씨라 서로 이성적으로 만날 수 없다는 걸 알았기에 우리는 정말 동성 친구처럼 지낸 사이였다.
자기는 관심 없는데 자꾸만 쫓아다니는 여자가 있다며 애인 행세를 해 달라고 해서 여자 친구인 척 따라 나간 적도 있을 정도로 친하게 지냈다.
어느 날 우리 엄마가 그 애 엄마와 모임이 있어 만났는데 그 친구가 책상 위 노트에 필자 이름을 가득 써 놓은 걸 보셨다고 은근히 경계하더라는 말을 전해 주셨다. 그러면서 너도 조심하라고 하셨다.
그 친구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지만, 그 후로도 서로의 이성 문제를 고민하고 상담하면서 편하게 지냈다.
필자도 젊은 시절 알고 지낸 이성 친구가 많았지만 지금 안부가 궁금한 사람은 그 애 하나뿐이다. 이번에 필자 친구의 안부를 묻는 사람을 보니 필자도 그 친구가 몹시 보고 싶다.
외대생인 그 친구를 찾아볼 아무 단서가 없지만 한 가지 국민배우 안성기 씨와 같은 과를 다녔다는 게 생각난다.
커피 광고나 공익광고에서 부드러운 모습의 안성기 씨를 보면 그 친구가 생각난다.
꼭 찾으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뭐 그러고 싶지는 않다.
그냥 필자 친구 경우처럼 우연히 소식을 알게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라고 일부러 담백하게 지내려고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그 애를 좋아했었나 보다.
안 가본 길이 궁금하고 아쉽다는 말처럼 어쩐지 그때가 아련하게 그립다.
친구에게 전화해서 걷기모임의 그 남자가 안부 묻더라는 말을 전했더니 깔깔 웃으며 사귀는 사이는 아니었고 당시 그 사람이 저를 속으로 좋아하는 걸 느꼈었다고 한다.
또다시 만나면 보고 싶다더라고 전해 달라며 명랑하게 웃는다.
글쎄, 필자가 다시 그 걷기모임에 나갈지 안 나갈지는 몰라서 그 말을 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지나간 옛일은 다 아름답게 생각되는 나이가 된 것 같다.
그러면서 누군가 필자를 찾는 사람은 없을지 은근히 궁금해서 웃음이 난다.
며칠 전 세 명의 60대 남자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막걸리를 곁들이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100세 시대로 화제가 넘어갔다.
“지겨운 배우자와 100세를 함께 사는 것은 고통이야.”
“100세까지 살려면 세 번은 배우자를 바꿔야 살 만하지.”
“그것도 모자란다.”
“난 먹을 것 충분히 주고 혼자 떠나고 싶어. 나를 찾아서.”
“그래서 졸혼(卒婚)이 유행이야.”
첫사랑, 첫 키스, 첫 남자. 처음처럼 신선하고 설레는 말이 또 있을까. 그런데 그 첫이 낡아서 헌것이 되어도 쓸모없어진 물건처럼 버릴 수 없는 게 문제다. 사람들은 싫증을 빨리도 낸다. 그래서 유행이 생기고 그 유행은 떠돌다 제자리로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유행이 유행을 싫증내는 것이다. 사랑도 싫어졌다가 핑계 대며 탕아처럼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부부가 의견이 안 맞고 화가 나도 선뜻 헤어질 수 없는 이유는 그 순수했던 첫사랑의 감정을 아직도 가슴이 기억하기 때문이다. *절절히 그리며 보고 싶어 했던 마음과 그 황홀했던 순간의 두근거림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남녀는 처음 만났던 시기의 모습을 호호백발이 되어서도 연상시키며 현재의 모습과 같이 *오버랩시키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구십 먹은 할아버지에게 팔십 먹은 할머니는 처음 만났던 20세 처녀의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단다.
남자들은 대부분 결혼 3년 차가 되면 신선함이 사라지면서 여성이 싫증이 나기 시작한다고 한다. 이 무렵은 출산과 육아로 여자가 자신을 가꾸는 것을 놓아버리기 쉬운 시기다. 김태희 같은 아내를 두고도 3년이 지나면 전원주 같은 여성과 바람을 피운다는 항간의 농담 같은 얘기도 있다. 신선함 뒤엔 편안함도 있고, 세련됨도 있고 느긋함도 따라오는데 그건 고려 대상이 아니고 성적 신선도에만 무게를 두는 것 같다.
남자도 여자도 자유를 꿈꾸기는 마찬가지다. 따스한 사랑을 꿈꾸기도 마찬가지다. “나는 사랑을 받기만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평생을 외롭게 살 가능성이 많다. 사랑받고 싶으면 먼저 가슴을 열고 상대에게 사랑을 줘야 한다. 경험자의 충고다.
요즘 졸혼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퍼지고 있다. 졸혼이란 서류상의 결혼은 유지한 채 실제의 결혼생활은 졸업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졸혼을 꿈꾸는 남자의 심리가 궁금했다.
자유로워지고 싶다.
잔소리 듣고 싶지 않다.
남자로서 인정받고 싶다.
가부장제에 익숙한 남자들의 반란일 수도 있다. 집안의 기둥이며 중심이었고 최고 경배의 대상에서 제외된 소외감일 수도 있다. 책임은 고스란히 남아 있으나 대접에서는 배제된 가장은 서열이 강아지 다음이라는 서글픈 풍자도 있다. 그래서 허무감과 급속한 추락을 견디지 못하고 탈출을 꿈꾸는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러 피터팬처럼 자유롭고 싶은 것이다. 자신이 누구인가를 질문하고 찾아가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졸혼이 유행처럼 번지는 것은 서글픈 것 같다. 그러니 일탈을 계획하는 남자들에게는 미리 줘버리자.
먹고 싶어 할 때 먹인다.
재운다.
자유를 준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일정한 거리 이상의 접근을 삼가자. 왜 나와 틀리냐고 잔소리하고 묻지 말자. 다른 색깔도 함께 어울리면 훌륭한 조화를 이루지 않는가.
필자에겐 예쁜 여자 조카가 두 명 있다. 둘째 동생과 막냇동생의 딸들인데 둘 다 외모가 출중하고 날씬하고 학벌도 좋아 신붓감으로 흠잡을 데가 없다.
그런데 막냇동생의 딸이 얼마 전에 먼저 결혼을 했다.
다행스럽게 중매쟁이나 어른의 소개를 거치지 않고 소개팅이라는 저희끼리의 만남을 통해 결혼까지 한 것이다.
신랑감도 조카와 어울리는 좋은 사람을 만난 것 같아 축하해주었고 엄마의 걱정을 덜어주었으니 효녀라고 칭찬해 주었다.
이렇게 축하해 주긴 했는데 실은 사촌 동생이 먼저 결혼을 한 터라 둘째 동생에게는 좀 걱정스러운 일이 되었다.
둘째 동생의 딸도 참 예쁘게 생겼다. 그런데 본인의 눈이 너무 높은 것인지 아직 인연을 만나지 못해서인지 서른을 넘긴 지가 언제인데 아직 시집갈 생각을 안 하고 있다.
스튜어디스로 오랜 시간을 해외에서 보냈기 때문에 퇴사하고 집에 있는 것이 엄마로서 아주 좋았다고 한다.
항상 보고 싶었던 딸을 옆에 두고 있으니 대만족이었는데 이제 나이 어린 조카가 먼저 결혼하는 걸 보고서 마음이 급해 졌나 보다.
아는 사람을 통해 중매를 부탁했다고 하는데 일단 50만 원을 내면 다섯 명의 신랑감을 선보여 준단다.
그 후에 잘 되어 결혼이 성사되면 100만 원을 사례금으로 내면 되고 안 되면 그것으로 끝이어서 다시 돈을 내고 선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참 답답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 조카는 왜 연애도 안 하는 것일까? 적령기의 선남선녀는 저희끼리 만나서 서로를 알아가며 정을 쌓고 결혼에 이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어떤 글에서 보니 결혼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20,30대 남녀의 몸부림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한다.
남자는 외모, 여자는 조건을 본다는 말은 옛말이고 남녀를 불문하고 불안한 미래를 보장받기 위해 사랑도 조건도 더 꼼꼼히 살피려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남녀 모두 배우자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로 성격을 들었다.
그 외에 남자는 외모, 경제력, 직업, 가정환경을 꼽았고 여자는 경제력, 직업, 외모, 가정환경을 우선순위에 두었으니 순위는 달랐지만 남녀 모두 성격, 경제력, 직업, 외모, 가정환경을 중요시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떤 커플매니저는 이전에 여성들이 따지던 조건들을 남성들도 많이 보고 상담을 해온다고 했다.
여성은 현재의 경제력을 중요시하는 반면 남성은 맞벌이를 할 수 있는 직업 안정성을 우선시한다는데 어떤 남성고객은 교사를 원한다고 하며 기간제교사인지 정년이 보장되는지도 꼼꼼히 묻더라고 했다.
이렇게 따지는 것 많고 원하는 것도 많으니 결혼시장에서 승리하기는 그리 쉬운 일 같지는 않다.
결혼정보회사에 등록하는 건 그만큼 집안이나 주위의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을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결혼을 염두에 둔 만큼 누구나 만남에 까다롭기 마련이지만 조건에 집착하다 보면 사람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니 생각을 줄이는 게 중요하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런 조건도 보긴 하지만 사실 진검승부는 만났을 때의 첫인상과 매력일 것이다
사진으로 보아도 실물과는 다를 수 있을 것이며 원하는 조건이 맞아도 만나보면 생각과는 다를 수도 있다.
결혼에 성공하는 커플은 조건보다는 사람에 이끌리는 게 대부분이라 하니 성공적인 결혼생활을 꿈꾼다면 남녀 모두 현재에서는 상대의 성실성을, 미래 시점에서는 상대를 신뢰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는 게 아주 중요하고 필요한 일일 것이다.
‘짚신도 짝이 있다‘라는 말처럼 언젠가는 좋은 짝을 만날 테지만 이제부터 다섯 명의 신랑감 후보를 만나보게 될 필자의 예쁜 조카가 빨리 좋은 사람 만나 시집가서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
2016년 한 해 동안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이용자가 가장 많이 찾아본 신조어 중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이 하나 있다. ‘츤데레’, ‘어남류’, ‘어그로’ 등에 이어 7위를 차지한 ‘졸혼(卒婚)’이다. 졸혼은 2015년과 비교해 2016년 많이 검색한 신조어 부문에서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졸혼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많은 사람이 생소해하는 신조어 ‘졸혼’을 단번에 관심사로 만들어 공론화하는 데 기폭제 역할을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중견 스타 백일섭(73)이다.
‘졸혼’이라는 용어는 2004년 일본 작가 스기야마 유미코(65)가 쓴 이라는 책에서 유래한 단어다. 졸혼은 ‘결혼을 졸업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부부가 이혼하지 않고 혼인관계를 유지하면서 서로 간섭하지 않고 자유롭게 독립적으로 사는 것을 말한다. 졸혼은 결혼의 의무에서는 벗어나지만 부부관계는 그대로 유지한다는 의미에서 이혼, 별거와 구별된다. 이혼이나 별거의 경우에는 정기적으로 만나지 않는다. 그러나 졸혼의 경우는 부부라는 관계가 유지되므로 정기적으로 만난다.
졸혼의 등장으로 함께 살거나 헤어지거나 둘 중 하나였던 결혼의 선택지에서 제3의 길이 추가된 셈이다. 스기야마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졸혼은 부부의 대대적인 재설정이다. 부부관계가 변화하면서 졸혼이 성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졸혼이 사회적 이슈로 부상되고 또 하나의 결혼 문화 트렌드로 자리 잡게 된 데에는 연예인 등 유명인들의 졸혼 선언 영향이 크다. 2013년 일본의 유명 코미디언 시미즈 아키라(63)는 졸혼을 선언해 적지 않은 충격을 주면서 ‘졸혼’을 사회적으로 이슈화했다. 34년간 함께 지낸 아내는 도쿄에 남고 시미즈는 산악지대인 나가노로 이주했는데, 당시 그는 부인과 이혼한 것이 아니냐는 언론의 질문에 “좋아하는 낚시를 하거나 집을 고치고 있을 뿐 결코 혼자가 된 것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2016년 11월 3일, 네이버와 다음 등 주요 포털사이트에서 졸혼과 백일섭이 인기 검색어 상위를 차지했다. 백일섭이 이날 방송된 TV조선의 에서 졸혼 사실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나쁜 의미로 표현되지 않을까 조심스럽다. 이혼이 아니라 결혼을 졸업하자는 생각을 했다. 배우인 아버지로서 집안에서 대우받고 위로도 받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것들이 서로 사이클이 맞지 않았다. 깊이 고민하다가 2015년 집사람한테 ‘나 나간다’ 하고 집을 나왔다.”
그가 36세 나이에 부부의 연을 맺어 30여 년간 결혼생활을 한 뒤 졸혼을 선택한 이유다. 백일섭은 아내와 함께 살던 집을 나와 따로 거처를 마련해 혼자 지내는 졸혼생활이 만족스럽다고 했다.
“집을 나와 혼자 생활하면서 마음이 편했다. 혼자 생활한 지 일 년이 넘었는데 전혀 불편하지 않다. 결혼한 뒤 일하고 집에 들어가면 편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여러 이유로 집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어수선했다. 이제는 아이들도 다 컸고 무엇보다 건강하게 일(방송, 영화)을 활발하게 하면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고 싶어 졸혼을 선택했다.”
백일섭의 졸혼 선택에 대해 아들 백승우씨는 “이상하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큰 감흥은 없다. 두 분이 안 싸우시고, 저는 편하다. 결혼은 부부의 문제다. 아버지의 선택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백일섭은 졸혼을 선언한 후 아들과 함께 고향인 전남 여수를 찾아 바다낚시를 하거나 지인들을 만나 술잔을 기울이기도 한다. 식당에서 혼자 밥 먹는 ‘혼밥’과 혼자 술 마시는 ‘혼술’에도 익숙해졌다. 그는 “혼자 살면 혼밥과 혼술은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 이제 요령이 생겨 편하고 행복하게 혼밥과 혼술을 한다. 혼밥과 혼술은 외롭거나 애처로운 것이 아니다. 마트에서 식재료를 사가지고 와 집에서 요리도 하고 밥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졸혼을 계기로 드라마와 영화, 예능 프로그램 등 연예활동도 활발하게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나이 칠십이 넘으니까 연기에 대한 의욕이 더 많이 생긴다. 좋은 연기를 하려면 건강해야 한다. 건강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혼자 산다고 막사는 것이 아니다. 철저하게 생활을 관리한다.”
방송을 통한 백일섭의 졸혼 공개는 졸혼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논란을 증폭시키며 큰 파문을 몰고 왔다. 그는 “졸혼은 개인의 선택이다. 부부간의 사정과 상황에 따라 함께 생활하면서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경우도 있고 나처럼 졸혼을 선택할 수도 있다. 졸혼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 졸혼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가진 사람이 의외로 많고 졸혼을 선택한 부부도 적지 않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결혼정보업체 가연이 지난해 회원 548명(남 320명, 여 228명)을 대상으로 졸혼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57%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특히 여성은 응답자의 63%가 졸혼 문화를 긍정적으로 봤고 남성은 54%가 찬성 의사를 보였다.
물론 전문가와 일반인 사이에서는 긍정적인 시각과 부정적인 시각이 엇갈린다. “졸혼은 이혼 수순으로 가는 가족 해체의 전 단계다. 부부간에 문제가 있다면 해결한 후에 건강한 부부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로 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라는 부정적 견해와 “이혼과 달리 졸혼은 자녀에 대한 미안함, 죄책감이 없으며 주변 시선에도 신경이 덜 쓰인다. 부부생활을 같은 공간에서 하지 않아도 부부관계나 자식과의 관계에 특별한 변화는 없다. 각자 독립적으로 살며 결혼생활 때문에 하지 못했던 것을 하며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다. 졸혼은 가족의 해체가 아닌 부부의 자존감을 높이는 결혼 문화다”라는 긍정적 견해가 있다.
현재 찬반 논란이 증폭되고 있기는 하지만, “행복하기 위해서 결혼을 선택했듯 졸혼도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살기 위해 선택한 것이다”라는 백일섭의 말에는 공감하는 듯 하다.
장충단 공원길은 필자에겐 참으로 익숙한 거리이다. 필자가 결혼하고 장충동 주택가의 시댁에서 5년간 사는 동안 많은 시간을 이 공원에서 보냈다.
속상한 일이 생기면 공원 깊숙한 벤치를 찾기도 했고 아이가 두세 살 무렵엔 포대기로 둘러업고 산책 나오기도 했다.
공원 한 바퀴 도는 동안 아기는 새근새근 잠들고 공원 안의 평화가 참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보았던 어린이 야구장이 아직도 건재해서 많은 경기가 이루어지고 있다니 기분 좋은 일이다.
국립극장에 가려면 전철 동국대역에서 나와 장충단 공원길 코너를 돌아 국립극장 셔틀버스 정류장으로 가면 된다.
공연 시각 전까지 관객들을 무료로 극장 안마당까지 태워다 주어 매우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는 고마운 교통수단이다.
국립극장은 매우 큰 공연장인 해오름과 중간의 달오름 그리고 소극장인 별오름이 있다.
별오름에서 본 연극공연은 대학로의 여느 소극장과 비슷한 규모의 아담한 공간이었다.
필자가 가끔 보는 공연은 주로 달오름 극장이다.
국립극장에 가기 위해 장충단 공원길을 걸으니 새삼 결혼 초의 옛 생각으로 무언가 그리운 느낌의 감회가 새롭다.
이날은 국민 여동생이라 불리는 여배우 문근영의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이 있는 날이다.
많은 연예인 중에서도 유독 마음 가는 여배우가 있다면 문근영 양이다.
아역부터 시작했으니 나이 어린 배우라 해도 경력이 만만치 않은 중견이다.
더구나 어린 나이임에도 기부를 많이 하고 있다는 착한 배우라서 좋은 이미지로 떠오른다.
문근영의 눈을 보면 선량하다는 게 무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커다랗고 동그란 눈동자는 사람을 끄는 매력으로 호수처럼 맑아 보인다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이날 공연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그러니 어떤 내용이 펼쳐질까보다는 배우들이 어떤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여줄지의 기대가 더 컸다.
거기엔 예쁜 문근영이 줄리엣을 맡아 연기한다는 데 더 큰 관심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팸플릿을 보니 요즘 TV에서 볼 수 있는 감칠맛 나는 조연인 유명 배우들과 아이돌처럼 예쁜 남자 연기자들이 출연하고 있다. 물론 실물로 본 문근영은 정말 예뻤다.
내용은 잘 아는 연극이지만 무대 활용이나 공간을 이용하는 방법이 독특했다.
배우들이 갑자기 뒤편에서 나타나 좌석 옆 계단으로 종횡무진 등장하는가 하면 객석의 관객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는 등 관객과 함께한다는 생각으로 즐겁게 무대를 이어나갔다.
너무나 많이 알려진 내용이므로 다 이해한 줄 알았는데 실은 마지막에 가짜 독약을 마신 줄리엣을 보고 로미오가 어떻게 죽었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아서 극에 몰두하여 보았다.
다들 잘 아는 이야기로 베로나지방의 유명 가문 캐플렛가와 몬테규가는 원수 집안이다.
캐플렛가의 파티 날 장난스럽게 숨어 들은 로미오는 줄리엣을 보고 한눈에 반한다. 두 원수 집안의 아들과 딸인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렇게 사랑에 빠진다.
그들이 보여준 순수한 사랑과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 죽음까지 불사하는 불꽃 같은 열정은 낭만을 찾아보기 힘든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강렬한 이미지로 각인될 것 같다.
줄리엣의 사촌과 대결 중 그를 살해하게 된 로미오가 만투스로 추방당하고 이미 저희끼리 결혼맹세를 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고통스러운 시간이 시작된다.
명문가문의 자제와 결혼을 명한 아버지의 명령에 신부님을 찾은 줄리엣은 가짜 독약을 마시고 42시간만 잠들어 있기로 하고 약을 마신다.
그 소식을 로미오에게 알려야 하는데 만투스 지방에 역병이 돌아 소식을 전하지 못하게 되고 줄리엣이 죽었다는 소문을 들은 로미오는 줄리엣이 안치되어있는 회당에 찾아와 미리 준비해 온 진짜 독약을 마시고 숨을 거둔다.
이에 42시간 만에 깨어난 줄리엣은 죽은 로미오를 보고 너무나 슬퍼 칼로 심장을 찔러 자살하고 로미오 옆에 눕는다.
아름다운 젊은이들의 죽음이 있고 난 뒤에야 잘못을 깨달은 두 가문은 화해한다.
잘 아는 내용이지만 생동감 있게 펼쳐진 연출에 필자 자신이 극에 참여한 듯 즐거운 관람을 할 수 있었다.
어떤 이야기인지 잘 안다고 해도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력에 따라 참신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게 연극이라는 생각으로 재미있는 시간을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