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도 없는 화창한 수요일, 손주들이 걷는 날이다. 여느 때처럼 쌍둥이가 운동장을 몇 바퀴 도는 동안 아이들의 책가방, 신발주머니와 과제물 가방을 한아름 들고 교실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몇 학년이세요?” 어느 아이가 물었다.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서 어리둥절하였다.
나도 모르게 “나는 7학년”이라고 중얼거렸다. 아이가 다시 “누구를 찾으세요?”고 물었다. 이제야 아까의 질문을 이해하였다. 그 사이 손녀와 손자가 운동장 돌기를 마치고 돌아왔다. 가방을 메고 교실 안으로 뛰어가면서 손을 흔든 모습이 대견스럽게 느껴졌다. “오후에 다시 보자”면서 교문을 나섰다.
아내와 함께 날마다 아침에 출근하는 아들과 며느리를 대신하여 가까이 사는 쌍둥이 등하교를 보살피러 간다. 아침 등교가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지난지금은 아이들이 기상, 씻기, 옷차림은 어른처럼 혼자서도 매우 잘한다. 여기까지는 다 자란 것 같아서 매우 행복한 생각이 들곤 한다.
하지만 학교수업이 끝나는 낮부터는 문제가 달라진다. 방과후 수업과 학원 보내기는 날마다 일정이 들쑥날쑥하여 도통 중심잡기 어렵다. 두 녀석 일정표를 집안 곳곳에 붙여 놓고 스마트폰에 올려서 내 일정표보다 더 열심히 쳐다보아야 하는 과제가 되었다. 집에서 대기하거나 적어도 비상시 즉시 달려올 수 있는 가까운 거리까지만 외출하여야 한다.
왜 ‘7학년’이라고 스스로 생각하였을까.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면서 독서량이 엄청 늘고 놀이문화도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아진다. 질문에 대답하기 곤란한 경우가 부지기수다. 모른다고 하면 대화상대에서 제외된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아이에게 거꾸로 질문을 하면 효과가 크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정말 열심히 설명한다. 훗날 엄청 큰 자산이 될 터이다. 하기야 손자에게도 배우라고 하지 않았는가.
오후가 되자 두 녀석이 즐거운 표정으로 집에 들어섰다. 한참 클 때가 되어서인지 손 씻자마자 간식부터 챙긴다. 손녀는 가까운 학원으로 같이 가고, 손주는 버스에 태워서 보낸다. 귀가시각을 아들네와 조율하면 하루해가 저문다. 뜨거운 사랑이 있는 가족만이 할 수 있는 일과임이 분명하다.
과거에는 수치로 여겼던 휴학과 유급을 요사이는 취업절벽 때문에 자청하는 경우가 많은 세상이 되었다. 부족해서만 배우고 익히는 것이 아니다. 보다 즐겁고 알찬 대화를 위하여 시니어의 하루는 바빠야 한다. 배우다 보면 어느새 꼼짝 없이 멋쟁이 제7학년 초등학생이 되어 있음을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