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장 3kg가 공짜?

기사입력 2016-09-19 12:33 기사수정 2016-09-19 12:33

▲아주머니들이 모여 경쟁하듯 물건을 샀다.. (박혜경 동년기자)
▲아주머니들이 모여 경쟁하듯 물건을 샀다.. (박혜경 동년기자)
길을 지나다 보면 한 무리의 아주머니들이 양손 가득 똑같은 화장지나 꾸러미를 들고 가는 걸 볼 수 있다.

처음엔 이상했지만, 실상을 알고부터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재미있게 해 준다며 불러 모으고는 값싼 물건을 비싸게 팔아먹는 사기꾼 모임에 다녀오는 길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노인 대상의 사기가 넘쳐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남자들보다는 대부분 아주머니나 할머니가 대상이다.

며칠 전 TV에서 할머니들을 모아놓고 재미있게 해주다가 값싼 물건을 고가로 팔아먹은 사기꾼 일당 이야기를 보았다. 그런데 오히려 그 자리에 계시던 할머니들이 우리를 재미있게 해주고 마음씨도 착한 사람들을 왜 못살게 구느냐면서 항의를 했다 한다. 얼마나 외로우셨으면 재미있게 해주었다는 이유로 사기꾼들을 두둔까지 하셨을지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웠다. 몇 해 전의 일이 생각난다. 외출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우리 동네 사는 수영이 엄마가 필자를 붙잡았다. 지금 안 바쁘면 어디 좀 같이 가자고 한다. 별일은 없었지만 나갔다 오는 길이라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었는데, 그래도 잡아끄는 대로 이끌려서 동네 입구의 어떤 건물 지하에 가게 되었다. 지하로 내려가 보니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꽤 넓은 공간이 있었고 그 안에 아줌마들이 바글바글 모여 앉아있었다.

필자가 여기 왜 따라왔나 생각해 봤더니 수영이 엄마가 같이 오면 고추장 3kg을 공짜로 준다고 해서였나 보다. 그런데 공짜가 어디 있겠는가. 뉴스에서 본 대로 젊은 남자와 중년 남자 몇 명이 앞에서 아줌마들을 선동하며 게임도 시키고 노래도 부르며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아무것도 안 사도 된다고 수영이 엄마는 말했지만, 그 남자들은 이런저런 물건을 소개하며 구매할 것을 종용하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이쪽 팀 저쪽 팀 나누어서 경쟁을 시키니 아줌마들이 비싼 냄비며 건강식품들을 마구 주문하는 것이었다. 결국, 수영이 엄마도 냄비세트를 구매했다.

필자는 정말 민망했다. 사고 싶은 물건도 없었고 필요한 물건도 없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살 생각이 없었다.

직원은 그래도 괜찮다며 참가했으니 선물을 준다면서 고추장 3kg 들은 플라스틱 통을 주며 출석카드 한 장을 건네주었다. 내일 또 오시라며 웃는 앳된 청년이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자기에게 맞는 직장을 찾지 못하고 이런 일을 하고 있으니 안타깝고 걱정스럽다.그 후로도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는데 거기 모인 아줌마들 대부분이 매일 출석을 한다고 했다.

그렇게 재미있다고들 말하고 있었는데 필자는 그곳에 있는 시간이 재미있지도 않았으며 유치한데다 사기성이 농후해 보였는데도 다들 즐거워하고 있었다.

할머니도 아닌 아줌마들도 외로워서 그런 행사에 참여를 하는 걸까?

직원인 그 남자들이 내일도 또 오라고 하는데 나는 마음속으로 빨리 벗어나고만 싶었지 또 갈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물건을 사지 않는 민망한 시간을 버틴 대가로 고추장 3kg을 받아서 잘 먹긴 했다. 너무나 민망한 시간이었기 때문에 다음엔 아무리 잡아끌어도 다시는 따라가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고 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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