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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산에서 치러진 셀프 접골
- 산행은 봄·여름·가을·겨울 사철 쉼이 없다. 어린 시절 눈이 잘 오지 않는 따뜻한 남쪽에서 자랐던 터라, 흰 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 산행을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그러다 설상에서 손가락 탈골사고가 나고 말았다. 자기 손가락을 스스로 접골하는 희대의 사건전말은 이렇다. 2013년, 새해 초부터 눈이 엄청 많이 내렸다. 그날은 학교 동문 전체 산악회에서 북한산 백운대를 등반했다. 아침에는 눈이 별로 오지 않았는데 도선사 입구 탐방지원센터에 이르자 폭설로 바꾸었다. 안내자가 “오늘은 입산통제다, 뒤돌아가라” 했다. 그 말을 듣고 회원들의 의견은 중구난방이었다. “기다려보자, 식당으로 가자”는 의견도 있었다. 그렇게 시간만 흐르고 있었다. 기별 동창모임은 거의 또래이기 때문에 의견통일이 잘 안 되었다. 하지만 전체 동문모임은 달랐다. 기별, 나이가 뒤섞여 선후배가 따로 없었다. 일부는 하산하고 나는 20여 명과 함께 기다렸다. 소나기는 피하라고 했던가. 몇십 분이 지나자 눈발이 그치고 날이 환해졌다. 입산통제는 해제했지만 그동안 내린 눈이 발목을 덮었다. 하루재를 향해 걷고 있는데 또 시커먼 눈구름이 몰려왔다. 우리 일행 뒤에는 사람의 그림자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또 입산통제. 그러기를 몇 차례 반복하면서 쌓인 눈을 헤치면서 산에 올랐다. 눈구름이 다른 날의 안개처럼 인수봉의 파도가 되었다. 인수봉은 파도에 묻혔다 솟아나기를 반복했다. 얼마 뒤 우리는 쇠줄에 매달려 백운산장을 거쳐 백운대에 올랐다. 백운대 상판에 상고대가 피어 있었다. 나뭇가지의 상고대는 가끔 봤지만 돌 위에 핀 몇십 cm 두께의 상고대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내려올 때를 생각하지 않은 일행의 행복은 거기까지였다. 산은 내려올 때 더 조심하라고 했던가. 내려오는 길은 오를 때와는 사정이 완전히 달랐다. 눈이 쌓여 보호용 쇠말뚝 머리 외에는 길의 흔적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조심! 조심!”을 외치면서 발로 길을 더듬는 방법밖에는 별도리가 없었다. 젖 먹던 힘까지 내야 할 막다른 골목이었다. 모두 입을 꼭 다물고 거친 숨만 내쉬었다. 넘어지고 미끄러지고 큰 사고가 없기만을 바랄 뿐 두 눈의 살기마저 느낄 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오는데 손가락 감각이 좀 이상했다. 장갑을 벗고 보니 오른손 약지 끝마디가 축 늘어져 덜렁거렸다. 손가락 탈골이었다. 그런데 아프지도 않았고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도통 짐작이 되질 않았다. 접골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았으나 누구 하나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하산 후 병원에 간다면 손가락이 얼어버릴 것 같았다. 해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왼손으로 셀프 접골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 손으로 한 접골은 성공했다. 곧 손가락에 온기가 돌아왔다. 병원에 한 번 안 가고 후유증도 없이 그날의 탈골은 셀프로 마무리했다.
- 2018-12-12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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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마트한 일상을 위한 스마트 팁
- 전화, 문자, 카메라 정도로만 스마트폰을 활용하고 있다면, 10년 전 휴대폰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처음 휴대폰이 나왔을 때 우리가 경험했던 편리함보다 훨씬 더 많은 스마트 서비스가 넘쳐나는 시대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둘러보면 ‘이런 것도 다 되는구나’ 하고 감탄할 만큼 다재다능한 앱들을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물론 단순히 발견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사용해보며 익숙해져야 제대로 된 스마트 라이프를 누릴 수 있다. 상황별로 시니어가 활용해볼 만한 스마트 앱과 서비스를 소개한다. ◇ 낯선 나라도 문제없다, 해외여행 필수 앱 체크리스트 해외여행을 떠날 때 여권, 티켓, 옷, 상비약 등 준비물 체크리스트를 마련하곤 한다. 이젠 이러한 기본 체크리스와 더불어 해외여행용 스마트폰 체크리스트도 꼭 필요하다. 첫 번째 체크리스트는 여행지 구석구석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정보 앱이다. ‘트립어드바이저’는 여행지에서 가볼 만한 관광지와 맛집, 숙소 정보 등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 실패하지 않는 여행을 계획하는 데 도움을 준다. 누구나 여행지에서 지저분한 호텔, 맛없는 음식점, 불친절한 가게 등을 피하고 싶을 것이다. 이때 업소에서 제공하는 정보는 장점만 늘어놓기 때문에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기 어렵다. ‘트립어드바이저’는 한마디로 여행자의 방명록이다. 리뷰 메뉴를 통해 해당 여행지 곳곳을 다녀간 이들의 솔직한 리뷰를 확인할 수 있다. 단순히 좋다, 나쁘다 수준의 리뷰가 아닌 여행지에서 겪은 경험과 유용한 팁, 꼭 가봐야 할 곳, 놓치지 말아야 할 즐길 거리, 현지에서의 애로사항 및 문제점 등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리뷰를 통해 여행지 리스트를 정리했다면, 항공권과 숙소 예매까지 ‘트립어드바이저’를 통해 원스톱으로 해결 가능하다. 패키지가 아닌 자유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가장 든든한 가이드가 되어줄 앱이다. 두 번째 체크리스트는 낯선 도시를 돌아다닐 때 반드시 필요한 지도 앱 ‘구글지도’다. 특히 처음 가보는 해외에서는 모두 길치가 될 수밖에 없다. 이때 ‘구글지도’가 구세주 역할을 한다. 지도 앱은 많지만 ‘구글지도’는 어느 나라를 가도 현지 언어와 한국어가 동시에 표시되기 때문에 가장 권할 만하다. 가고 싶은 관광지 이름을 알고 있을 때 원어가 아닌 한글로 입력해도 지도에 목적지가 표시된다. 예를 들어 일본 삿포로에 여행 가서 근처 오도리공원으로 산책을 나가고 싶을 때, 앱 검색창에 ‘오도리공원’이라고 한글로 쳐서 검색하면 지도에 위치가 나타난다. 물론 현지어로도 표시가 된다. 목적지까지의 교통편과 소요시간을 알고 싶으면 ‘길찾기’ 메뉴를 이용하면 된다. 차로 이동할 경우, 대중교통으로 이동할 경우, 걸어서 이동할 경우의 루트와 시간을 각각 확인할 수 있어 여행 스케줄을 짜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대중교통으로 이동할 때는 버스정류장과 지하철역까지 친절하게 알려줘 처음 방문하는 도시라도 내가 살던 동네처럼 편안하게 둘러볼 수 있다. 세 번째 체크리스트는 번역 앱이다. 깊이 있는 대화는 어렵지만 길을 묻거나, 식당에서의 주문 등 간단한 대화는 번역 앱으로도 충분하다. 해외여행자들은 영어, 중국어, 일본어뿐만 아니라 생소한 언어권에서도 활용도가 높은 ‘구글번역’을 가장 많이 애용한다. ‘구글번역’은 스마트폰 앱 화면에서 한국어와 원하는 언어를 선택하고 말을 하면 자동 번역을 해준다. 예전에는 내가 먼저 말하고 상대방이 말할 때 다시 번역 버튼을 눌러야 했지만 ‘대화’ 기능이 추가돼 스마트폰을 앞에 두고 각자의 언어로 말을 하면 자동 번역을 해준다. 번역 앱의 능력과 편리함을 경험하면 해외여행의 질이 달라지는 것을 몸소 느낄 것이다. 언어의 장벽을 허물어내고 거침없이 낯선 세상 속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고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여행지에서의 기쁨은 배가된다. >>단체여행 갈 때 여럿이 함께 쓰는 ‘포켓와이파이’ 여행 떠나기 전 아무리 꼼꼼하게 준비해도 현지에 가면 그때그때 필요한 정보를 다시 찾아볼 수밖에 없다.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려면 데이터가 필요한데, 아무 준비 없이 해외에서 데이터를 마구 쓰면 요금폭탄을 맞을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각 통신사의 데이터 로밍 서비스인데, 이 역시 혼자서만 사용이 가능하고 여행기간이 길어지면 비용 부담이 커진다. 여러 명이 함께 떠나는 해외여행이라면, 무선 와이파이 도구인 ‘포켓와이파이’를 활용해보자. 이름처럼 주머니에 쏙 넣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작아 휴대도 간편하다. 무엇보다 저렴한 요금으로 데이터를 알뜰하게 쓸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현지 통신망을 잡아 무선 와이파이로 바꿔주는 도구이기 때문에 여행지에 따라 요금이 달라지지만, 아시아권에서는 하루 사용 요금이 5000원 정도밖에 안 된다. 또 여러 사람이 함께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기기 하나에 최대 10명까지 연결이 가능해, 단체여행 시에는 가장 합리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대여 방법도 어렵지 않다. 포털 검색창에 포켓와이파이를 검색해 해당 업체에 여행지, 여행기간, 연락처를 입력하고 금액을 결제하면 여행 당일 공항에서 받아볼 수 있다. ◇ 부르면 달려오는 스마트 서비스 밖이 추울 때는 마냥 따뜻한 집 안에서만 머물고 싶다. 이런 날엔 뭐니 뭐니 해도 배달이 최고다. 익히 사용하고 있는 음식 배달 앱이나 장보기 앱도 유용하겠지만, 최근 가장 핫하게 떠오르는 서비스는 반찬배달 앱이다. 자녀들이 결혼해 출가하고 나면 요리하는 횟수도 줄어들고 예전처럼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일도 적어진다. 부부가 단출하게 사는 경우에는 반찬을 해도 식재료가 남아 골칫거리가 되곤 한다. 이럴 때는 직접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드는 것보다 먹을 만큼 반찬을 주문하는 편이 더 효율적이다. 반찬배달 서비스 앱 ‘배민찬’은 밑반찬부터 국, 찌개 그리고 손이 많이 가는 잡채, 사골곰탕까지 배달해준다. 반찬의 특성상 배달이 늦어지면 신선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낮 1시까지 주문을 받고 다음 날 아침 7시까지 현관문 앞으로 반찬을 배송한다. 아침에 눈을 뜨고 문을 열면 반찬이 도착해 있어 포장만 뜯어 그대로 놓기만 하면 손쉽게 밥상이 차려진다. 배달되는 자동차도 있다. 카 셰어링은 차를 소유하지 않고 주변에 있는 공유 자동차를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다. 은퇴 후 자가용의 필요성이 적어지면, 갖고 있던 차를 처분하기도 한다. 자동차를 이용하는 일은 줄어드는데도 보험료, 차량 수리비, 세금, 주차료 등 들어가는 비용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동차를 처분했는데, 조금 아쉽고 불편하기도 하다. 이럴 때는 이용한 시간만큼 비용을 내는 카 셰어링 서비스를 활용하면 된다. 카 셰어링 서비스를 이용해보면, 공유 자동차가 집 근처에 있을 때도 있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직접 가서 차를 가지고 와야 한다. 편하려고 이용하는데 차를 직접 끌고 와야 하는 불편한 상황이 일어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럴 땐 카 셰어링 앱 ‘쏘카’의 ‘부름’ 호출 서비스를 활용해보자. ‘부름’은 내가 자동차를 이용하고자 할 때 내 집 앞까지 차를 가져다주는 서비스다. 2시간 전에만 예약하면 내가 원하는 시간에 집 앞 주차장에 차를 가져다주고, 사용 후 다시 집 앞에 주차하면 대신 가져간다. 달려오는 서비스 중 ‘세탁 앱’도 아주 유용하다. ‘세탁특공대’는 원하는 시간과 장소로 방문해 세탁물을 수거해가고 다음 날 다시 배달해준다. 기존 세탁소를 이용하려면 왔다 갔다 해야 했지만 ‘세탁특공대’ 앱으로 주문하면 직원이 30분 이내로 출동해 세탁물을 수거해가 세탁을 한 뒤 다시 현관문 앞까지 가져다준다. ◇ 새해 계획의 성공을 도와주는, 목표달성 앱 새해 계획과 목표가 아무리 그럴듯해도, 작심삼일이 되지 않도록 실천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계획을 매일 실천하고 습관화할 수 있도록 체크해주는 앱이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Loop습관제조기’는 좋은 습관을 갖게 해주고 관리해주는 앱이다. 사용법은 단순하다. 매일매일 실천하고 싶은 것들을 정한다. 예를 들면 아침운동, 글쓰기, 명상, 저녁 간식 안 먹기 등 일상에서 실천하고 싶은 목록을 정하고 실천을 한 뒤 완료 버튼만 누르면 된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알람을 맞춰 정해진 행동을 반복하고 체크하면 목표를 얼마나 잘 이행했는지 그래프와 통계로 보여준다. 날마다 쌓이는 활동 이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서 부진한 결과에 반성할 수도 있고, 꾸준한 실천에 뿌듯함을 느낄 수도 있다. 스마트폰 앱 활용도 편리하지만, 매일 체크하는 게 귀찮은 사람은 손목에 차는 ‘스마트밴드’를 이용해보자. 스마트밴드는 걸음 횟수, 이동거리, 심장 박동수 등을 표시해준다. 너무 오래 앉아 있으면 일어서라는 표시로 손목으로 진동이 전해지고 내가 목표로 정한 걸음 횟수가 달성되었을 때는 잘했다는 진동 알람이 울린다. 손목에서 알려주는 이 같은 알람에 따라 더 움직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스마트밴드는 브랜드, 기능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지만 처음부터 부담스러운 제품을 사지는 말자. ‘미밴드’라는 2만 원대의 저렴한 스마트밴드로도 좋은 습관 만들기 연습이 충분하다. 스마트밴드는 사용하는 친구들끼리도 연결이 되어 누가 더 많이 걸었는지 확인이 가능하다. 친구의 운동량과 비교하다 보면 승부욕도 생기고, 서로 목표 성취를 위해 독려하는 분위기도 만들어진다.
- 2018-12-06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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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소원이 있습니다
- 반려견, 아니면 더 넓게 반려동물에 대한 사랑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학생은 제대하고 복학한 친구인데, 수업시간에 ‘관계’라는 주제로 발표를 하다 자기가 키우던 개가 죽은 이야기를 하면서 글자 그대로 엉엉 울었습니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고 묻자 다섯 달 전이라고 했습니다. 이와 비슷한 또 다른 예를 제가 사는 아파트 이웃에서도 들었습니다. 키우던 강아지가 ‘세상을 떠나자’ 슬픔에 빠진 자기 딸이 결국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일, 그것은 아름답고 고귀하고 감동스러운 일입니다. 사람 간에도 그렇고 짐승과도 다르지 않으며 꽃이나 나무와도 다르지 않습니다. 사랑은 온갖 관계의 가장 드높은 완성입니다. 그러므로 앞에 든 사례를 놓고 부모상을 당해도 흔하지 않을 모습을 보면서 그 슬픔을 견디기 힘들었던 사람들을 언짢게 이야기할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런 일에서 마음이 쓰이는 것이 있습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렇게 가슴이 저리도록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오래 함께 살다보면 정들고, 그러다 보면 서로 아끼고 살피며 죽자 살자 하나가 되는 건데 그 까닭을 묻다니!” 하시면서 제 생각을 무척 탐탁잖게 여기실 분도 계실 겁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살이 또한 그러니까요. 그런데 저는 이런 물음을 묻고 싶은 것입니다. 개가 또는 고양이가 말을 해도 그렇게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을요. 저는 개가 겨우 짓기만 할 뿐이어서 다행이지 말을 한다면 반려견을 키우는 집안이 한시도 조용할 수 없을 거라고 단정합니다. 개가 말을 한다면 얼마나 주인한테 할 말이 많겠습니까? 이견, 주장, 고집, 항변 그런 것들이 서로 뒤엉키면서 사람이나 개나 마음에 상처를 받고, 나아가 미움이 자라고, 마침내 서로 내치는 일이 상상도 할 수 없이 많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어쩌면 개들은 이런 결과를 미리 알고 말을 하지 않기로 작정했는지도 모릅니다. ‘무릇 침묵이 최선의 평화를 위한 처신이다’라고요. 말은 어마어마한 힘을 가졌다 말을 안 하고 살 수는 없는데 말하기처럼 힘든 일이 없습니다. 말은 어마어마한 힘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철학자들은 그런 이야기를 했죠. 말은 사물을 있게 한다고요. 없게 한다는 뜻도 당연히 거기 담겨 있습니다. 하느님도 말로 천지를 만들었다 하니 말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그저 우리네 말로 한다면 말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무서운 일’을 아무렇게나 해댑니다. 앞뒤 안 가리고 말을 쏟아냅니다. 좋은 말도 흔하면 별로 좋지 않게 되는데 온갖 고약하고 못된 말을 아무 생각 없이 뱉어냅니다. 아니, 아예 어떤 말이 좋은 말인지 못된 말인지 구분조차 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적재적소에 맞추어 말을 할 까닭이 없습니다. 게다가 꾸미고 감추고 짐짓 아닌 척하는 말도 어지럽게 흩뿌립니다. 더구나 나이를 먹으면 안하무인격이 되어 말하는 데 거의 조심을 하지 않습니다. ‘늙은이 추한 모습’ 중에 으뜸이 바로 말 마구 하는 몰골입니다. 그런데 말을 안 하는 개처럼 자존심을 버리고 살 수는 없고 어차피 말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그러니 어떻게 하면 말을 다듬어 잘 덕스럽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늘 숙제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말을 잘하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저는 제 소원의 한 항목으로 삼고 새해 첫날 다음과 같은 다짐을 해보았습니다. 벌써 한 해가 반이 지났는데 되짚어 그 다짐을 새삼 되뇌어봅니다. 저는 소원이 있습니다. 그 꿈을 실현했으면 좋겠다는 꿈을 꿉니다. “이 나이에 무슨…” 하는 부끄러운 자의식이 없지 않습니다만 “이 나이에 욕을 먹은들…” 하는 생각이 겹치니 여간 다행스럽지 않습니다. 올해 제 소원은 이러합니다. 내 언어가 맑았으면 좋겠습니다. 감추고 가린 것이 없는 언어. 겉에 발언되는 언어와 다른 속내 언어가 없는 언어. 그렇게 투명한 발언을 하는데도 그 언어가 예(禮)에 어긋나지 않는 언어. 다른 사람이 내 발언을 듣고 나서 나를 잘못 알게 되지 않는 언어. 흐린 흐름이 흘러들어도 마냥 맑은 그런 언어를 발언하고 싶습니다. 내 언어가 순했으면 좋겠습니다. 본래 결이 고와 순하든, 아니면 곱게 다듬어져 결이 순하든, 엉겅퀴 같지 않은 언어를 발언했으면 좋겠습니다. 멍들게 하지 않는 언어. 상처 내지 않는 언어. 남녀노소 빈부귀천이 함께 있어도 누구나 두루 다 알아듣는 감치는 언어. 질기지 않고, 딱딱하지 않은 언어. 그런 언어를 발언하고 싶습니다. 내 언어가 따뜻했으면 좋겠습니다. 시린 마음이 더 듣고 싶어 하는 언어. 따뜻한 마음이 공명(共鳴)하는 언어. 오래 기억되어 문득문득 되살아나 온기를 전해주는 언어. 그래서 그 언어 속에서 유영(遊泳)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하는 언어. 그 언어의 메아리 안에서 손발이 얼었던 시절을 따뜻하게 회상할 수 있는 그런 언어를 발언하고 싶습니다. 내 언어가 아름다웠으면 좋겠습니다. 듣고 있노라면 소리가 아니라 풍경이 보이는 언어. 갑자기 무지개가 뜨고 별의 운행이 보이는 언어. 높고 낮은 소리나 모질고 둥근 소리들이 함께 어울리는 모습이 보이는 언어. 즐겁고 행복하여 그 발언에 참여하여 함께 춤추고 싶어지는 언어. 이런 언어를 발언하고 싶습니다. “꿈도 야무지지…” 하시는 말씀이 그대로 들립니다. 그렇습니다. 꿈인데, 현실이 아닌데, 그거야말로 한번 야무져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삼가 소원성취하시길 기원합니다.
- 2018-06-26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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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세 이상 주축으로 한반도 평화 만들기 ‘은빛순례단’
- SNS를 통해 솔깃한 소식이 들려왔다. 젊은 시절, 사회에서 한몫 제대로 하던 시니어들이 뭉쳐 모종의 계획(?)을 꾸민다고 했다. 앉아서 말로만 걱정할 게 아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밖으로 나가 세상 이야기를 들어보자. 세대와 이념, 종교를 떠나서 터놓고 우리 얘기 좀 해봅시다!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음 세대에게 불안하지 않은 미래를 물려주고 싶다는 이들이 모였다. 열정만큼은 청춘인 60대 이상 시니어가 주축인, 이름하여 ‘한반도평화만들기 1000인 은빛순례단(이하 은빛순례단)’이다. 갈등을 넘어서 마주 보다 “걸으면서 세상과 나누고 귀를 기울이는 행동을 하자.” 이런 의견이 모인 것은 작년 9월 지리산 실상사에서 있었던 연찬 모임에서였다. 남북에 불어온 훈풍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던 시기였다. 한반도 전쟁 위기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흘러나왔고 이 땅을 물려받을 미래 세대를 위해 뭔가해보자며 의견을 모은 것이 ‘은빛순례단’을 탄생시켰다. 지난 3월 1일 서울 승동교회에서 성대하게 출발 행사를 치르고 난 뒤 은빛순례단의 첫 번째 행보는 국립 현충원 참배였다. 호국영령을 모신 현충원은 엄숙한 장소이면서도 정치 대립이 극명한 곳이다. 소위 내 편의 영령만 찾아가 고개를 숙이고 참배한다.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이부영 이사장은 은빛순례단으로 발을 떼면서 난생처음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를 찾았다. 1974년 동아일보에서 해직된 뒤 민주화운동에 투신하다 민주당 국회위원을 지낸 인물. 그가 박정희 묘역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고 말하면 놀랄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한 이부영 이사장은 “마음이 복잡했지만 이것을 넘어서지 못한다면, 우리 역사가 또 다른 질곡 속에서 갈등과 대결을 되풀이할 뿐이라 생각했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 참배로 인해 마음속 무엇인가가 씻겨나간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단순히 분노와 적개심이 아니라 이해와 성찰, 현재의 과제를 생각하게 해준 계기였다고. 이를 옆에서 지켜본 도법 스님(조계종 화쟁위원회 위원장)은 감동적이었다고 했다. 일생 지켜왔던 자기 원칙을 깨기란 쉽지 않은 나이이기 때문이다. 은빛순례단의 운영단장을 맡고 있는 수지행 실상사 기획실장도 현충원 방문이 꽤나 충격적이고 놀라웠다고 말했다. “애국지사 임정요인(臨政要人) 묘역에서 돌아가신 대통령의 묘역 말고도 신돌석 의병장, 홍범도, 김규식 등의 묘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며 “우리나라를 지킨 분들 또한 잠들어 있는 곳인데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새해 어떤 정당인이 누구의 묘소에 참배했는지 그 사실에만 가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박정희 대통령을 두고 부정적 시각으로 적대시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 또한 인정하고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은빛순례단의 생각이다. 이후 은빛순례단은 몽양 여운형 선생 묘소와 4·19 기념탑을 참배하고 종교계 인사를 만나는 등 비교적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4월에는 충주, 충북 음성, 옥천, 영동 등지에서 걷기 순례와 연찬, 방문 순례를 했다. 5월에는 전남 일대를 돌며 평화의 소중함을 알렸다. 도법 스님과 느리게 함께 걷는다 인천 지역에서 은빛순례단 걷기 모임이 있던 날, 도법 스님과 수지행이 지하철을 타고 이동한다기에 함께 가기로 했다. 이날은 문화해설사와 함께 인천 차이나타운 일대를 걸으며 개항의 역사를 비롯해 한국전쟁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듣는 역사 탐방으로 꾸며졌다. 60세 이상을 은빛, 이하를 금빛이라 칭하는 은빛순례단. 은빛과 금빛이 어울려 신구 세대가 함께 조화롭게 어울려 걷는 아름다운 동행이었다. 은빛순례단은 3·1운동 100주년인 내년까지 연찬 모임, 방문 순례, 걷기 모임 등을 통해 세상과 경계 없이 나누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행동을 이어나간다. 이날 모임에는 도법 스님 외에도 이삼열(대화문화아카데미 이사장)·손이덕수(디자인 아티스트) 부부, 정세일(생명평화기독연대 공동대표) 씨 등 은빛순례를 함께하고자 하는 50여 명이 동참해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도법 스님이 세상을 향해 얼굴을 든 것은 20여 년 전. 지리산 댐 건설 반대운동을 펼치던, 지리산 실상사 주지 시절이었다. 2004년에는 주지 자리를 내려놓고 탁발순례길에 나서기도 했다. 깨달음과 가르침을 찾아 전국을 누비고 세상과 마주했다. 수지행은 도법 스님을 도와 일정을 짜고 다양한 이벤트를 기획한다. 수지행이 일정을 짜주면 도법 스님은 따져 묻지 않고 순례길에 응했다. 매일같이 10km를 걷는 강행군을 계속해온 순례의 달인들이다. 인천으로 향하던 지하철 안에서 문득 궁금해 도법 스님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길에서만 사시냐?”고 말이다. 도법 스님은 “나는 할 줄 아는 게 걷는 것밖에 없다”며 미소를 짓는다. 잠시 생각을 하다 “순례, 즉 걸으면서 얻은 것이 많았다”고 했다. 순례는 꼭 걷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주제가 있는 활동도 하는데 그중 첫 번째가 ‘경청 순례’라고 했다. “우선 각 종교계를 먼저 만나고 있어요. 천주교 주교회의장 김희중 대주교를 만났습니다. 은빛순례단의 취지에 대해 말씀드리고, 종교계가 우리 사회 통합에 역할을 해주시기를 바란다는 얘기를 전했습니다. 천도교, 기독교, 진보 성향과 보수 성향의 단체들도 만나볼 생각이에요. 한국 사회에서 갈가리 찢어져 있는 마음을 잇고 벽을 허물어 넘어설 것인가가 화두이자 과제입니다.” 두 번째는 연찬 순례다. 대중을 상대로 평화의 한반도로 만들려면 과연 뭘 어떻게 해야 할까 서로 이야기하는 마당이다. 그리고 주말에는 현장을 찾아가는 걷기 순례를 한다. 걷게 되더라도 많이 걷지는 않는다. 시니어가 주축이다 보니 걷기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은 있다고. 매일 8km 정도는 걸을 생각이었으나 좀 더 시니어 세대의 상황에 맞게 계획을 바꿨다. 도대체 왜 걸으십니까? 단도직입적인 질문을 하고 말았다. 걷지 않고 편히 쉬면 그만 아니냐? 걷는 행위를 거스를 수 없는 순례길. 다리도 성하지 않을 텐데 왜 굳이 길 위를 선택했는지 궁금했다. 장수시대인 만큼 환갑을 넘겼다고 해서 뒤로 물러나 안주하는 시대는 아니라고 도법 스님은 말했다.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배우지 못하고 나이가 들어버린 것입니다. 옛날과 비교해 뭔가 할 일이 없는 세대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할 게 많은 시대인데 그것을 못 찾고 있는 것이죠.” 은빛순례단 중심에서 도법 스님과 함께하는 이부영 이사장에게서 들은 가족 이야기를 꺼냈다. 전쟁 불안이 고조되니 자녀들 입에서 이민을 가고 싶다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이부영 이사장이 이렇게 생각했답니다. 내가 젊었을 때 뭘 한다고 설치고는 다녔는데 결국 내 손자, 손녀들한테 전쟁 불안을 대물림해야 하는 상황이구나. 자신이 뭔가 잘못했나? 헛살았나? 하는 자괴심이 컸다더군요.” 이부영 이사장은 남은 세월이라도 이 땅의 미래 세대들이 평화롭게 꿈꾸며 살아갈 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면 스스로와 아이들에게 떳떳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또 사람들과 만나고 함께 걷고 이야기하는 순례가 시니어에게 더욱 적합한 사회운동이자 시민운동이라 생각했기에 선택했다고 했다. 세대가 극단적으로 충돌하다 도법 스님 눈에도 우리 사회의 씁쓸한 단면이 포착됐다. 은빛순례단이 출범식을 하던 날, 태극기와 함께 한쪽에서는 성조기를, 한쪽에서는 한반도기를 흔들며 서로에 대해 극단적으로 불신과 적개심을 표출하던 모습. 99년 전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태극기를 드높이던 우리 조상들이 원하던 미래는 아니었을 거란 생각을 했다. “독립이라는 대의를 위해서 모든 종교와 이 편과 저 편이 벽을 넘어서 함께 독립선언을 했습니다. 그날을 기리는 날 후손은 서로를 불신하고 적개심을 표출했죠. 독립선언을 했던 선조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서로 반목하는 모습, 이것을 풀어내지 않고서는 우리 아이들에게 편안하고 평화롭게 꿈꾸며 살아갈 수 있는 한반도를 넘겨주는 것은 불가능하죠. 그러려면 누군가가 벽을 허무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바로 어른들이 나서서 해야 하지 않을까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누구든 다 만날 겁니다. 찾아가서 만나는 것과 만나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다르니까요.” 도법 스님은 사회를 좀 더 종합적으로 균형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며 새의 날개 이야기를 했다. “흔히 새는 두 날개로 난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온몸으로 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온몸으로 날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않아요. 대한민국이라는 새도 온몸으로 날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좌우 갈등만 있었는데 지금은 세대 갈등도 있습니다. 어른과 젊은이들 사이가 대단히 불편하고 부담스럽고 불만스러운 것이죠. 모든 관계가 소중하고 고마워야 하는데 그런 마음들이 깨진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보여야 한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해지려면 삶의 모든 과정을 평화롭게 다뤄갈 수 있는 실력과 방법, 정화의 체질화, 문화 풍토가 만들어져야 한다. 기본이 돼야 한다. 평화운동은 통일이 돼도 지속돼야 한다. 일상의 평화. 결국 은빛순례단이 미래 세대를 위해 다지고 싶어 하는 기본이란 일상 속에서 서로를 존중하며 상생하는 평화가 아닐까.
- 2018-06-20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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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의 역습
- 대한항공 사태가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이번엔 한진家가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불법고용한 정황이 포착돼 서울출입국외국인청 이민특수조사대가 대한항공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딸은 미국인, 가사도우미는 필리핀인. 국제적 항공사답다. 세간의 숱한 조롱과 성토가 난무하고 있음에도 시종일관 묵묵부답하고 있는 대한항공 총수의 의연함 또한 ‘재벌(?)답다’. 대한항공 직원들은 지난 5월 12일 서울역 광장에서‘조양호 일가 퇴진’ 2번째 촛불집회를 가졌다. 세종문화회관 앞 첫 촛불집회에 이은 8일 만에 가진 ‘을(乙)의 역습(逆襲)’인 셈이다. 사실 ‘갑(甲)의 횡포(橫暴)’는 예전부터 비일비재했다. 적폐(積弊)였다. 그런데도 이를 묵과 하고 감내했던 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나 하나만 참으면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방임주의가 자초한 부메랑 효과였다. 그런데 SNS 시대가 뿌리를 내리면서 세상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전화 통화를 녹음하는 일은 예전보다 더 쉬워졌고, 스마트폰 문자메시지는 훗날 근거로 남아 법적 다툼에서 증거 채택의 분수령을 이룬다. 특히, 을을 만만하게 보던 갑의 어긋난 윤리관이 표적이 되면서 변모 또한 요구받고 있다. ‘대한항공 사태’가 4년 전 땅콩 회항 사건 이후 다시금 발화한 이유는 해(年)가 바뀌어도 마음은 새해처럼 바뀌지 않는 인간성의 고질적 한계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금도 흔히 호출되는 ‘경주 최 부자 집 부의 비밀’에 따르면 ‘벼슬은 하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마라’가 돋보인다. 이어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와 ‘흉년기에는 땅을 사지 마라’ 역시 자그마치 12대에 걸쳐 300년 동안이나 존경받는 부자로 가문을 유지할 수 있었던 초석이기에 존경스럽기 그지없다. 빈부의 격차가 빈자(貧者)를 부자(富者) 앞에서 고개 숙이게 했다. 이에 부자는 거들먹거리며 ‘역시 사람은 잘 살고 봐야 해!’라며 더욱 기고만장했다. 그러나 빈자가 가슴에 품고 있는 반격(反擊)의 비수(匕首)를 부자는 결코 간과해선 안 된다. 이른바 ‘을의 역습’이다. 이를 방관하거나 무시할 경우 언제든 뒤통수를 맞을 수 있다. 을이 갑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지만 ‘나도 언젠가는 너를 능가할 거야!’라며 속으로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칼을 새파랗게 벼르고 있기 때문이다. 손자병법(孫子兵法)의 삼십육계(三十六計)를 보면 ‘이일대로(以逸待勞)’가 등장한다. 이는 ‘편안함으로써 피로해지기를 기다린다’라는 뜻이다. 즉, 적군보다 먼저 싸움터에 당도하여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아군의 전력을 비축한 뒤에 먼 길을 오느라 힘들어진 적이 쉴 틈도 없이 공격하여 승리를 취하는 전략이다. 기업을 경영하는 자 역시 전장(戰場)의 장수(將帥)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삼십육계’는 경영의 바이블(bible)로 통하고 있다. 재벌의 총수, 즉 장수(將帥)는 사방이 적이므로 항상 긴장의 끈을 늦춰선 안 된다. ‘이일대로’의 반격으로 전세를 만회하는 승부수의 소지(所持) 역시 장수의 기본 전술이다. 더불어 수신제가(修身齊家)에서도 탄탄한 방어벽을 구축했어야 옳았다. 재벌 회장은 진사 이상의 벼슬을 이미 뛰어넘었다. 따라서 ‘사방 백 리’가 아니라 최소한 자사(自社) 안에서 ‘굶어 죽는 사람’, 예컨대 불만을 가진 직원의 아우성을 막았어야 했다. 밀수 혐의에 이어 외국인 가사도우미 불법고용이라는 추문까지 겹치면서 그 모양새가 가관이다. 결론적으로 을의 역습과 ‘삼십육계’까지 간과한 때문에 지금 대한항공은 자중지란(自中之亂)의 내홍까지 겪고 있다. 물론 그 원인이 자식 교육을 올바로 못한 데 따른 자업자득(自業自得)이긴 하더라도.
- 2018-05-14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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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망한 새해 인사말
- 설 연휴 동안 전화 혹은 문자로 가장 많이 받은 인사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궁색하게 같은 말로 화답하거나 답장을 보내지만, 왠지 낯간지럽고 어색하다. 왜냐하면 바로 얼마 전 정초에 이미 서로 주고받은 인사말이기 때문이다. 새해가 된 지 한 달 반이나 지났는데 다시 같은 표현의 인사말을 동일한 사람과 주고받는다는 것이 어찌 이상하지 않단 말인가. 물론 인사말은 그저 형식으로 주고받는 것일 뿐이니 내용에 크게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긴 하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는데 “아니 지난번에 하셨잖아요”라고 답하면 더 이상할 것 같아 까짓것 복이야 많이 받으면 좋은 게 아닌가 하는 마음으로 한 번 더 선심을 쓰고야 만다. 그러나 아무래도 찜찜한 건 마찬가지다. 이참에 설날에 쓸 수 있는 인사말을 하나 개발해 볼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사실 글을 쓸 때마다 판에 박힌 상투적 표현밖에 떠오르지 않을 때면 무척 난감하다. 예컨대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나 ‘어떤 기능을 장착하고’ 따위의 표현들이다. 조금 달리 표현하고 싶어도 적당한 어휘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새 말을 개발해 혼자 쓴다고 그 표현이 통용되는 것도 아니다. 그동안 언론 등에서 새로운 표현을 만들어 유통시키려 애썼지만, 우리의 뇌리에서 사라진 말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남들이 하는 대로 ‘새해 복 많이 받기’를 권하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 다만 이런 인사가 정착된 이유와 그 속뜻 정도는 알고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이 인사가 언제부터 유행했는지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으나 ‘복’을 받기를 덕담하는 것을 보면 ‘복’이 우리에게 중요했던 것만은 확실하다. 도대체 ‘복’의 정체가 무엇이기에 너도나도 복을 축원하는 것일까. 복(福)은 하늘로부터 내리는 것이니 인간의 힘으로 좌우할 수 없는 타고나는 팔자소관이라고 정의하면 매년 복 많이 받으라고 빌어봐야 소용없다. 그러나 타고난 금수저는 아니지만, 가끔 지지리 궁상으로 살다가 로또 같은 대박을 치기도 하니 아마 이 인사말은 그런 번개를 두 번 맞을 확률이나마 기원해 보는 것일 게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에 그런 복에나마 의지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그런 복이라면 무슨 의미를 담았다기보다 립서비스 정도의 인사로 볼 수 있겠다. 그런 인사가 그리 나쁠 것은 없지만, 그런 입에 발린 공허한 의미가 아닌 주체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행복’으로 해석한다면 좀 더 긍정적인 인사가 될 수도 있을 듯하다.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새해 인사를 나누며 행복을 생각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 또한 의미 있는 일이니까. 올 한해 행복해지기 위해 여러분은 어떤 대책을 세우셨는가. 최근 이라는 책을 낸 롤프 도벨리의 행복론은 조금 특이하다. 책 제목처럼 행복하려고 애쓰지 말고 그냥 불행을 피하라고 한다. 성공은 우연의 결과일 뿐이니 부러워하지 말고 겸허하고 절제할 때 삶이 풍성해진다고 말한다. 인생은 어차피 불공평하니 투덜대지 말고 자신의 일에 집중하라고 권한다. 행복은 한방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행복감을 자주 느끼는 것이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저자 서은국은 말하지 않았는가. 설날 인사를 이제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 “불행 없는 한 해 되세요” 나 “새해 행복 자주 느끼세요” 제법 근사하지 않겠는가?
- 2018-02-18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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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소통’
- 베트남 커피 진하게 한잔 내려서 거실 소파에 앉아 일간지를 펼쳐든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새벽녘 잠결에 ’받들어 버린‘ 마나님의 분부가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이다. 엄명을 좇아 먼저 베란다 구석에 있던 큼지막한 빨래 통을 옮겨온다. 아내가 덮고 자는 흰 이불을 그 안에 담는다. 세재를 세 가지나 섞어 골고루 뿌려준다. 충분히 적실만큼 물을 쏟아 붓는다. 그리곤 자근자근 밟는데 철퍼덕 철퍼덕 거품과 더불어 주말 오전 한바탕 소동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결혼이후 처음이지 싶다. 온몸 여기저기 축축해진 땀방울에 이만하면 되었을까 하는 순간, 귀신같이 보내온 아내의 메시지엔 베란다 세탁기 돌리는 방법이 마저 적혀있다. 헹굼, 탈수 등 순서에 따라 꾹 꾹 버튼을 눌러 세팅을 따라하는데 제대로 된 건지 미심쩍다. 외출한 사람한테 전화를 하자니 그것도 뭣하다. 오래된 세탁기라 그런지 필자로선 참 복잡하기만하다. 씨름 끝에 이윽고 좔 좔 좔 쏟아지는 급수를 확인하곤 겨우 한숨을 돌려 본다. 그 사이 식어버린 잔속엔 아직도 반 넘게 남아 있는 커피. 여기까진 좋았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그래~ 이왕이면 묵혀둔 숙제도 해버리자, 새해특집으로 칭찬도 함 받고.” 그것은 바로 현관 센스 등 교체 미션! 가끔씩 깜빡거리던 센스등은 요즘 들어 부쩍 그 상태가 심각해졌다. 아예 잘 켜지지도 않아 제법 성가셨는데도 차일피일 해왔던 것이다. 새삼 올려다보니 제법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게 현관 센스 등. “어디 잘 함 해보셔” 하는 표정도 역력하니. 우선 스페어 전구를 찾고(실은 한 참 만에 겨우) 의자도 가져온다. 손 장갑도 껴보는데 드라이버도 기본으로 있어야지 싶다. 소매를 걷고 몸을 위로 올려 허공으로 두 팔을 뻗어본다. 손끝으로 대충 만지작거리니 원형커버는 어렵지 않게 분리할 수 있었다. “뭐 이정도면 어렵지 않네, 이젠 전구만 교체하면 되겠지.” 아뿔싸 그만 쑤셔오기 시작하는 양 어깨와 팔. 까치발을 딛고 커버 안쪽의 백열전구를 겨우 돌려서 빼내는데 급기야 부르르 떨리기까지 한다. 천장이 높은 탓만은 아닐 것이다. 정작 문제도 다른 데 있었다. 스페어 전구로 갈아 끼웠는데도 깜빡거림은 마찬가지다. 슬슬 열리기 시작한다. 이때 갑자기 떠오른 생각 한 자락. 동생은 바로 전기기술자! ‘득템’이라도 한 듯 바로 콜을 외쳐본다. 그런데 동생은 무릎을 다쳤다며 지금 병원에 입원중이라고. “여기까지 인가? 그만 스톱? 아니다 해도 밝았는데 마나님한테 새로운 면모도 보여 주어야지” 원격으로라도 설명해 줄 수 있다는 동생의 말을 믿고 한 걸음에 마트로 달려간다. 여러 제품들 중 고른 것은 15W용으로 가격은 17500원인데 아예 전구도 필요 없는 제품. “뭐라고” 잠시 놀라기까지 한다. ‘생활의 발견’이랄까? 포장지를 뜯고 매뉴얼을 훑어보는데 설명은 비교적 간단하다. 다시 걸상위로 올라가 천정에서 나온 한 가닥 전기선의 피복을 벗기는데 혹여나 감전 때문에 마음을 졸인 탓이리라. 손가락은 마구마구 떨려오고 높이 때문에 전선 연결부위 등이 잘 보이지도 않는다. 몸체를 천정에 고정 하려는데 드라이버 끝에 매달린 나사못이 끝내 구멍을 못 찾고 바닥으로 떨어져 자취를 감추고 만다. 오 마이 갓. 사단은 실은 지금부터다. 꼬인 전선 가닥을 풀려는데 갑자기 지지직거리며 불꽃 아닌 불꽃이 번쩍 거린다. 분명 스위치는 내렸는데 어떻게 된 것일까? 더욱 더 떨리는 손끝으로 전기선 가닥을 만져보는데 왠지 전류가 통하는 듯 느낌이 영 별로다. 그냥 동네 철물점 아저씨나 부를 걸 괜히 뭔 짓인지? 직접 했다며 시침 뚝 떼면 그만일 테고 출장비 몇 만 원이 대수인가? 이러다 괜히 불상사라도 생기면? 별 생각이 다 든다. 바로 그 순간이다. 현관문이 열리며 이윽고 계단을 오르는 소리! 지나치다 건네는 눈인사가 전부였던 아래층 아주머니다. 뒤이어 그 아래층 아저씨도 계단을 쿵쿵 거리며 올라온다. TV보는데 갑자기 맛이 갔다며 인터넷도 안 된다고. “전 특별히 따로 손댄 게 없는데요?” 일단 시치미부터 떼고 본다만 켕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까 그 ‘지지직’ 스파크가 필시 문제를 일으킨 모양이다. 이웃의 재발견이랄까! "저희 집도 마침 센스 등에 문제가 있어 전기아저씨 부를 참이었는데 이참에 한 번에 해결 하시죠", "전 테스트기 가져올 테니 잠시 기다려보시죠" 평소 주차 때문에 한 번씩 교대로 콜을 주고받던 2층 아저씨, 테스트기로 한 번 더 문제점을 체크해 주신다. 천군만마를 만난 기분이다. 방학한 아이들 잘 있냐며 오히려 안부까지 물어 오시는 3층 아주머니, 이제 보니 무지 말씀을 잘 건네신다. 잠시 후엔 장을 많이 봤다며 아이들 간식까지 내민다. 두 분 다 성도 안내고 참 신기한 일이로다. 2층 아저씨랑 합동 점검에 들어간 끝에 원인제공은 당연히 필자의 서투른 작업과정 에서 스파크가 생긴 탓이었다. 그 때문에 건물 1층 현관 입구에 있는 메인 차단기가 내려간 것이었다. 처음엔 생각이 거기까진 미치지 않아 각자 집안의 스위치만 온오프를 반복하고 있었던 거였다. 원인을 찾아내고 나니 그 뒤론 저절로 풀린다. 옆에서 보조를 해주니 없던 힘도 생기고 진척도 빠르다. 센스 등 몸체를 양쪽으로 두 개의 나사못으로 단단히 고정하고 드디어 스위를 ON 해본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대박. 너무 환하다. 마치 대낮같다. “진작 할 걸” 일을 하다 보니 새롭게 배운 꿀팁 하나. 센스 등 한 귀퉁이엔 옵션모드가 있더라는 사실. 낮에도 켜지게 하는 모드와 밤에만 켜지게 하는 모드가 그것이다. 벌건 대낮에 굳이 센스 등이 켜질 필요는 없지 않은가? 어두운 실내를 제외하곤 말이다. 의기양양해진 필자, 2층 3층의 센스 등도 들여다보곤 모드를 조정해주는 오지랖을 발휘한다. 흠흠. 우연찮게 시작된 두 이웃과의 대화는 센스 등에서 출발해 겨울철 실내 단열문제, 옥상 방수 및 누수문제로 이어지며 서로의 집도 왕래하면서 제법 시시콜콜한 대화까지 나누게 되었다. 십여 년 가까이 살면서 처음 있는 ‘대단한 사건’이었다. 처음에 소동은 일으켰지만 결국 필자의 손으로 현관 센스 등도 무사히 교체했고 덕분에 이웃과의 ‘소통’도 ‘연결’도 복원하는 결과를 낳았다. 정말 큰일 했다는 생각이다. 지금 당장 여러분의 현관 센스 등을 확인해 볼 일이다. 정말이다.
- 2018-02-1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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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필휘지(一筆揮之) 한 획(劃)의 힘
- 이른 아침이다. 간밤에 내린 눈이 소복소복 쌓여 세상이 하얗다. 나뭇잎이 다 떨어진 나뭇가지에도, 들녘을 구비 도는 길에도 빈틈없이 내렸다. 평평한 대지 위에는 하얀 종이를 깔아놓은 듯하다. 아침마다 산책하는 들판 길옆 꽁꽁 얼음이 얼어붙은 농수로(農水路) 위에도 하얗게 내려 마치 화선지 두루마리를 펼쳐놓은 듯하다. 수로의 중간쯤 얼음 사이로 뚫린 숨구멍이 마치 글자의 한 획을 그은 듯하다. 화선지 위에 붓으로 힘차게 내려쓴 글씨를 빼닮았다. 눈이 부실 듯 하얀 종이 위에 단숨에 쓴 일필휘지(一筆揮之)의 처음 한 획, 삐칠 ‘별(丿)’이 확연하다. 명상하는 고승처럼 고요히 앉아 붓끝에 집중하는 대 서예가가 눈에 보이는 듯하다. 신비로운 형상을 발견한 필자는 카메라 렌즈로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다. 무슨 이야기를 이 사진 속에 담을 수 있을지 고민한다. 상상의 나래를 편다. 무지개 저편의 행복을 찾아 떠나는 동심이 된다. 누가 썼을까? 찬바람이 쌩쌩 일었을 새벽녘에 어느 누가 붓을 잡고 획을 그었을까? 새해를 맞아 고귀한 휘호 하나를 남기려 하였을까? 왜, 한 획만 긋고 멈추었을까? 쓰려던 글자는 무엇일까? 또 다른 가르침을 스스로 깨닫게 하려 함인가? 어둠을 타고 펑펑 내리던 눈이 그친 자정이 지나고 어둠이 더 짙어지는 동틀 무렵의 새벽이었을 테다. 수만 리 하늘 저만치서 바람을 타고 선인이 선녀와 함께 내려와 눈(雪)으로 만든 화선지를 앞에 놓고 휘호를 쓰다 떠난 흔적이 아닐까? 치마폭 고이 접고 선비 곁에 앉은 선녀가 반들반들 고색창연한 벼루 한쪽에 정화수 조심스레 따르고 섬섬옥수로 까만 먹을 잡아 작은 동그라미 서서히 그리듯 짙은 먹물을 만들었다. 선인은 조심스레 붓에 먹물을 묻혀 휘호 한 줄을 쓰기 시작했음이 분명하다. 삐칠 별(丿) 변이 들어가는 어떤 첫음절로 시작하려 했을까? 시간 가는 줄 모르던 그들은 새벽닭 울음 울 기척 보이자 황급히 천상으로 떠났나 보다. 쓰려던 일필휘지 한 줄의 한 획, “별(丿)”만 남기고서. 오늘 밤에 다시 내려와 쓰려던 글을 마저 쓰고 갈까? 내일 아침은 어떤 모습이 필자를 기다릴까? 삶을 설렘으로 만드는 일상이 있어서 즐겁다. 우리가 살아가는 작은 희망의 씨앗인지 모른다. “오늘은 무엇을 찍으세요?” 필자가 촬영에 몰입해 있는 곁을 지나던 길손이 다가와 말을 건넨다. 그제야 카메라에서 시선을 돌리고 펼쳤던 상상의 나래를 접는다. 가끔 만나는 산책길의 이웃이다. 소소한 피사체에 몰입해 있는 모습이 늘 궁금하였나 보다. 촬영한 영상을 보여주며 카메라로 쓴 한 편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해가 될 듯 말 듯 한 지 고개를 갸우뚱하며 가던 길을 재촉한다. 짙게 내려앉은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필자는 조금 전에 찍은 영상을 다시 띄워보며 빙그레 웃는다. 사진 한 장에 한 편의 이야기를 쓴 만족감의 표현일 테다. 무언가 이루었다는 쾌감에 오늘 아침도 행복하다. 저 하늘을 향하여 소리쳐 본다. “세상은 아름답다! 보기 나름이다. 내 인생의 행복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지!”
- 2018-01-20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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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을 노래하는 가객 최백호
- 접하는 순간 누구나 직관적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곧 칠순을 앞두고 있는 최백호(崔白虎·68) 가 부르는 노래에는 수많은 감정이 담겨 있다는 것을. 그 소리는 흐르는 세월 속에서 수만 가지 감각들이 응축되어 만들어진 예술품에 가까운 인상을 준다. 그렇게 자신만의 독보적인 세계를 만들어낸 흔치 않은 예술가의 자리를 갖게 된 그가 이제 영화감독이라는 오랜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시간이 지나도 멈추지 않고 종합적인 예술인으로서의 자신을 완성해가고 있는 최백호를 만나 미래로 나아가는 그의 모습을 확인해봤다. 청년 최백호는 친구 매형의 라이브 카페에서 가수생활을 시작했다. 1977년에 첫 앨범을 낸 이후 어언 40년, 이제 그의 목소리에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두터운 세월의 결이 느껴진다. 그러나 1950년에 태어나서 전후 베이비붐 세대와 함께 살아오면서 많은 히트곡을 만들어낸 그는 지금 ‘은퇴’라는 단어와 가장 거리가 먼 가수 중 한 명일 것이다. 이적, 아이유, 박주원 등 젊은 실력파 후배들과의 협업과 월드 뮤직 요소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도전 등 최백호는 새로운 피로 자신의 감수성을 뜨겁게 채우고 있는 중이다. 계획하며 살지 않는 사람 그뿐만이 아니다. 최백호의 예술적 취향은 일찌감치 화가 쪽으로도 뻗어서 다수의 작품 전시회를 가졌다. 그리고 2018년 4월에 열릴 다섯 번째 전시회도 준비 중이다. “스무 점 정도 올릴 예정이에요. 테마는 나무고요. 제가 나무밖에 못 그리기도 하고.(웃음)” 그는 자신이 계획하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고 밝혔다. 그런데 그의 ‘그때그때 대충대충 살아왔다’는 말은 ‘먼 계획을 세우기 어려울 정도로 그때그때 할 일이 너무 많다’는 의미도 될 수 있겠다 싶었다. “주변 사람만 피곤하죠.(웃음) 41주년이 되는 올해는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영화감독에 도전하고자 합니다. 갑작스런 일이 아니고 사실 오래 준비해왔어요. 시나리오를 썼고 홍보 계획도 세웠고. 그런데 남자 주인공이 없어서 못 만들고 있었죠. 마음에 딱 맞는 사람이 없었어요.” 영화 제목은 ‘미사리’. 그는 남자 주인공으로 가수를 생각하고 있다 했다. 영상과 음악 위주의 영화가 될 것이기에 자연스러운 연기를 위해선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영화감독으로의 새로운 도전 기왕 미사리 얘기가 나왔으니 미사리와 음악에 관한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은 시니어에게 추억의 장소로 기억되는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미사리에서는 4~5년 정도 공연을 한 적 있어요. 지금은 미사리 카페가 두세 군데 남았나. 사실 처음부터 그렇게 조금 있어야 했는데, 우리나라는 뭐든 잘된다고 하면 다 달려들어서 하려다가 힘이 더 드는 지경이 되고 말아요.” 미사리가 쇠퇴한 이유는 가수 출연료 때문이었다고 한다. 인기를 끌자 라이브 카페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출연 가수들 출연료가 치솟게 됐다. 그런데 문제는 가수 출연료가 오르면 음식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아무리 노래가 좋다고 해도 음식 맛이 없으면 누가 찾겠는가. “그래서 가수들이 모여서 출연료를 올리지 말자고 얘기했어요. 출연료 기준은 송창식 선배에게 두자고 했죠. 그런데 그게 안 지켜지더군요. 그래서 시장이 흐려졌고…. 우리나라는 참 낭떠러지가 있는데도 밀려가요.” 혹시 미사리 같은 음악의 대안공간을 다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는 그러한 궁금증에 선유도가 좋은 공간이 될 수 있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선유도 안에 공연장이나 레코딩 스튜디오를 만들고, 코너마다 버스킹을 할 수 있게 한 다음 입장료는 3000~5000원 정도 받으면 좋은 이벤트 공간이 되겠다는 생각을 해요. 홍대와도 연결돼서 다리에서 버스킹도 가능할 테고, 좋은 관광코스로도 활용할 수 있죠.” 과거에는 자연주의적인 느낌이 있었지만 요즘은 도로가 나고 식당이 난립해서 이제 변해버린 미사리의 운명에 대하여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어쩔 수 없는 씁쓸함이 배어나왔다. 그러한 느낌이 그가 만들 영화에도 담기게 될까 궁금했다. “영화감독은 어릴 때부터의 꿈이었어요. 원래는 미대를 가고 싶어 그림 공부를 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대학을 포기하고 군대를 갔죠. 그런데 군대에서 몸이 안 좋아서 나오게 됐고, 생활 때문에 노래를 시작했죠. 영화는 머릿속에 계속 갖고 있던 생각인데, 아마 이번 영화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거예요.(웃음)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로 만들고 싶어요.” 최백호의 고민 사단법인 한국음악발전소 대표, 그리고 문화관광부와 마포구가 협약해 만든 음악 창작공간인 뮤지스땅스 대장으로도 일하고 있는 최백호는 어찌 생각하면 가수 일 이상으로 행정적인 영역들과 연결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그런 입장에서 나오는 목소리에는 현장에서 부딪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현실감이 있었다. 그가 이끄는 한국음악발전소는 무소속 프로젝트라 하여 소속사 없는 실력 있는 뮤지션들을 모아서 경연대회를 하고 있다. 413개 팀들 중 8팀을 뽑아서 앨범을 만들었고 지난 연말 12월 15일에 홍대 상상마당에서 공연을 했다. 연령, 장르 제한은 없다. 덕분에 힙합부터 국악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독립음악가들을 발굴하는 콘테스트로 참여율이 높은 편이다. 그런데 올해가 4회째인데, 예산이 없어서 문제가 되고 있단다. 지원해주던 단체에서 지원을 끊은 것이다. 다행히 3회는 CJ에서 지원해 무사히 프로젝트를 마칠 수 있었다. 그에게 행정가로서 겪어야 하는 이러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었다. “음악창작소 프로젝트가 있는데 정부에서 전체 운영자금으로 10억 원 규모를 책정했어요. 원래 시작은 전국 세 군데에서 했어요. 그래서 세 곳으로 자금이 나뉘어 지원됐죠. 그런데 지방에서도 참여하기 시작해서 지원해야 할 곳이 여덟 군데로 늘어난 거예요. 문제는 인디밴드가 없을 것 같은 지역에도 지원금이 들어간다는 거죠. 인디밴드를 한다는 사람들은 다 서울로 오는 게 현실인데, 여덟 곳으로 늘어났어도 세 군데일 때의 예산으로 계속 쓰고 있어요. 우리가 생각하면 말도 안 되잖아요? 그래서 15억 원으로 늘려달라고 요청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죠.” 뮤지스땅스 대장으로서 속 터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래도 자체 운영이 잘되고 있으며 후배들이 좋아한다는 게 보람이다. 한마디 잘못하면 삶이 무효가 되는 세상 단체의 장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람 만나는 일을 많이 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음악 작업 차원에서도 인디밴드부터 아이돌 등 10대부터 노년까지 남녀노소를 다 만나며 사는 것이 최백호의 요즘 삶이다. 그렇게 많이 만나다 보면 사람 보는 눈이 생기지 않을까. “특별히 사람을 평가해서 만나는 건 아니에요. 거리를 어떻게 두느냐의 차이죠. 그런데 오랜 경험으로 처음 보고 대화를 한 번 해보면 대충 그 사람을 알게 되는 것 같아요.” 나이 들면서 더 멋있어 보인다고 하자 그는 너털웃음을 날렸다. “젊었을 적에 워낙 별로여서 나이 드니 조금 나아진 거지.(웃음) 나이 들수록 조심해야 될 게 많아요. 사람을 사귈 때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그래요. 가장 중요한 게 말이죠. 말을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해요. 우리말이 거칠고 극단적이어서 잘 써야 하거든요. 아주 품위 있는 말도 가능하고 정말 천박한 말도 가능하고. 외국어에 비해 그 폭이 훨씬 크니 상처를 주게 되는 게 우리 말이죠.” 그러고 보니 그는 SBS 라디오에서 ‘최백호의 낭만시대’ 진행을 맡고 있다. 대중과 소통하는 중심에 있으니 당연히 말에 대해 더욱 민감한 경험을 쌓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올해 10년이 되죠. 라디오를 하고 있어서 그런 경험을 많이 했어요. 요즘은 한마디 잘못하면 삶이 리셋되는 세상이에요. 그래서 말을 조심하려면 되도록 사람 만나는 걸 줄여야 해요.(웃음)” 말의 무게를 아는 사람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것처럼, 그도 사람들이 SNS를 하는 것을 이해 못한다고 말했다. “특히 연예인들이 SNS에서 서로 모여 왜 자기 생각을 그리 밝혀야 하는가 싶죠. 책임을 지려면 사회적 활동을 하든지…. 저는 모르겠어요. 자기 일만 열심히 해도 될 텐데.” 최백호의 희로애락 최백호는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시기가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라고 회고했다. “재수할 때였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노래를 한다고 3~4년 고생했죠. 결핵을 앓았어요. 생활은 안 되고. 그 시절 너무 심한 고생을 했기 때문에 지금도 어지간한 일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의 아버지는 고 최원봉 국회의원. 제2대 국회의원이었으며 스물여덟 살의 어린 나이에 당선됐지만 최백호가 태어난 지 5개월 되던 때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아버지에 대해선 무한한 존경심이 있어요. 비록 일찍 돌아가셨지만 그 존재는 계속 제 곁에 있었고, 제가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그는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딸이 태어났을 때, 그리고 그녀가 시집갔을 때를 꼽았다. “딸아이는 사정 때문에 다섯 살 때 미국으로 갔어요. 처가가 미국에 있거든요. 그때부터 딸을 일 년에 두 번 정도 보면서 살았죠. 딸이 사춘기를 겪었을 때 아내는 옆에 있었지만 나는 없었어요. 그 아이가 스무 살에 한국으로 잠시 왔는데, 그때만 해도 저와 거리가 있었고 자주 싸웠죠.” 그 시기 이후 딸은 다시 공부를 하러 외국을 가게 됐고 나이를 먹으면서 아버지를 이해하게 됐다고 한다. “아버지가 왜 자신을 그렇게 멀리했나를 이해하면서 굉장히 친해졌어요. 이젠 뭐 친구처럼 모든 걸 알고 지내요. 결혼식도 예식장에서 하지 말고 바닷가에서 하라고 했더니 정말 바닷가에서 했고. 저도 딸을 이해하게 됐죠. 딸아이도 저에 대해선 이제 무한한 신뢰를 보내고 있구나 싶어요. 정말 큰 행복이죠.” 가진 것보다 훨씬 많은 걸 얻었다 “제 인생을 돌아보면 능력에 비해 많이 성공했다 싶죠. 공부를 잘한 것도 아니고, 그림도, 음악도 따로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가진 것보다 훨씬 많은 걸 얻었어요.” 시간은 그를 성장시켰고 변화하게 만들었다. 그는 옛날에는 곡을 써도 남을 안 줬다고 한다. 자신이 불러야 하는 노래다 싶어서 욕심이 나서 계속 안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정말 탐이 나는 곡이라도 주변 후배들에게 준다. 히트곡을 더 만들고 싶은 욕심은 없기에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게 그의 말이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생긴 또 다른 변화, 그는 좀 더 세심해졌다. 그가 현재 부산에서 진행하고 있는 ‘깡깡이 마을 프로젝트’도 과거 같으면 벌써 끝났어야 할 일이다. 깡깡이 마을 프로젝트는 과거 조선소가 있었던 마을을 문화마을로 키우려는 공공예술 프로젝트다. 이 작업에 그는 두 달간 매달려 있는 상태다. 그러나 시간이 늦어져도 그만큼 결과물이 좋아지니까 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젊을 때 성격이 급했고 지금도 급한 편이라고 말하는 그는 그러한 상황에서 자신이 변화된 모습을 새삼스럽게 발견하고 있다. “새해 소망은 올가을부터 만들기 시작할 영화를 잘 완성하는 거예요. 그러려면 돈이 있어야 하니까 자금을 마련하는 일이 큰일이 되겠죠.” 원로임에도 고고하지 않고 일가를 이뤘음에도 계속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다. 그가 가진 그러한 소탈함이 단단한 철학으로 다듬어져 있는 것이야말로 그는 영원히 예술가이며 계속 우리 곁에 있으리라는 안정감을 주는 것 아닐까. 최백호의 새로운 도전인 영화가 어떤 미학을 보여줄지 기대되는 이유다.
- 2018-01-20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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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쉽게 배우는 컬러링] 먼저 피는 꽃 ‘동백’
-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무술년 새해에 독자를 위한 새로운 페이지를 준비했습니다. 브라보 세대에 새로운 취미로 떠오르고 있는 컬러링입니다. 매달 한 페이지씩 브라보와 함께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색연필만 있으면 됩니다. 1월의 주제는 연중 가장 먼저 피는 꽃 ‘동백’입니다. 1 밝은 핑크톤으로 정밀묘사하듯 꽃잎의 표면 굴곡과 빛에 의해 생기는 음영을 전체적으로 곱게 채색합니다. 밝은 옐로로 꽃술을 채색하고 오렌지로 꽃술의 어두운 부분에 채색합니다. 2 레드톤으로 꽃잎의 어두운 부분에 채색하고, 꽃술대를 가는 라인으로 그리면서 주변부의 어두운 부분에 채색하여 깊이를 표현합니다. 밝은 옐로나 그린으로 이파리의 굵은 주맥과 측맥을 눌러 그려 자국을 냅니다. 3 꽃잎과 마찬가지로 밝은 그린으로 하이라이트를 남기면서 곱고 촘촘하게 채색합니다. 어느 정도 초벌 채색한 후에 가는 철펜이나 종이가 뜯기지 않을 정도의 뾰족한 도구를 이용해서 가는 맥들을 그려 자국을 냅니다. 4 어두운 그린으로 잎을 채색하면 자국 낸 가는 잎맥들이 나타나면서 자연스러워집니다. 밝은 브라운으로 나뭇가지에 초벌 채색한 후 더 어두운 부분에 음영을 더해줍니다. *** 직접 칠해 볼 수 있는 도안은 를 구매하시면 손쉽게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이해련 작가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과 대학원에서 환경디자인을 전공했다. 이화여자대학교 글로벌미래평생교육원과 신구대학교 식물원 보태니컬 아트 전문가 과정의 겸임교수이며 한국 보태니컬 아트 작가 협회(KSBA)와 보태니컬 아트 아카데미 ‘련’의 대표다. 영국 보태니컬 아트 작가 협회(Society of Botanical Artist)의 Annual Exhibition 2017에 참가하는 등 국내외 각종 전시에서 활동 중이다.
- 2018-01-17 09: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