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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을빛 치마에 새긴 가족사랑
- 명칭이 항상 헛갈리는 곳! 은평한옥역사박물관이 맞는지 아니면 은평역사한옥박물관이 제대로 된 이름인지? 여러분은 어떻게들 알고 계시는지요? 오늘은 작심하고 그를 만나러 왔다. 그러나 그를 만나려면 삼가야 할 순서가 있다는 생각이다. 먼저 싸리문을 열고나 보자. 조선의 3대로를 아시는가? 큰길을 따라 서발, 북발, 남발의 삼발로가 조직되었으니 그중 한양에서 의주까지의 서로(서발)는 기발(말을 타고 이동)에 해당되는데, 바로 이곳 박물관 인근을 경유했던 것이다(구파발, 지명의 유래). 때문에 입구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조선의 역참제도에 대한 내용은 빼놓을 수 없을 터이다. 유리판 아래로 생생한 발굴 현장을 재현해놓은 김자근동 묘를 스릴 있게 체험하는 잔재미도 느껴보며(현재 유적 발굴 과정에 있는 서울 은평구 이말산에서 발굴됨), 세종의 6남 금성대군(단종 복위에 가담했다가 32세의 나이로 죽임을 당함)을 모신 사당인 금성당(실제는 은평뉴타운 우물골 소재) 코너에선 무속신앙, 즉 샤머니즘에 잠시 빠져보기도 한다. 2층의 한옥 상설전시관으로 오르다 보면 계단길 벽면으로 전국의 한옥촌을 사진으로 만나볼 수 있으며, 한복체험 코너에선 끼리끼리 방문 인증샷도 남길 수 있다. 멀리서 온 객을 위한 대접이 이만하면 융숭한 편이다. 자, 이제 헛기침 한번 해볼 차례다. 그가 버선발로 반겨줄지 모를 일이다. 노을빛 치마에 새긴 가족사랑 슬하에 자식 아홉을 두었던 그, 그러나 그중에 여섯이 그만 병사하고 마는데 자식을 먼저 보내는 어버이의 그 마음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어디 그뿐인가? “누리령 산봉우리는 바위가 우뚝우뚝, 나그네 뿌린 눈물로 언제나 젖어 있네. 월남리로 고개 돌려 월출산을 보지 말게, 봉우리 봉우리마다 어쩌면 그리도 도봉산 같을까.” 유배길에 전남 영암의 월출산을 바라보며 두고 온 집과 가족을 그렸을 그의 마음이 그대로 묻어나 있는 시다. 그러나 그는 지금 가는 이 길이 무려 18년간이나 지속되리라고 짐작조차 했을까? 참으로 헛헛한 독백이 아닐 수 없다. “주인 없는 초당엔 적막만이 가득하고, 처마 끝에 방울방울 낙수지어 반기는가?” 지금으로부터 약 20여 년 전, 친구와 함께 초당에 들린 적이 있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길을 더듬어 그를 만나러 갔던 그 길, 한적한 초당 대청에 걸터앉아 낙수에 손 비비며 그가 만들었다는 연못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던 기억이 오버랩된다. 부부간의 애틋함, 자식을 향한 아비의 마음은 옛사람이라고 다를 리 없고 오히려 더하면 더했지 뺄셈은 전혀 아니라는 생각이다. 유배생활을 하던 그는 부인이 보내온 치맛자락을 재단하여 두 아들과 그 후손들이 간직하도록 아비의 당부를 글로 표현한 서첩을 만드는데 그중 3첩이 남아 있다(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또 남은 천으로는 시집가는 딸에게 매화나무 가지 위에 두 마리 새가 앉아 있는 '매화병제도'를 그려줌으로써 다복한 가정을 꾸미고 집안이 번창하기를 기원했다. 바로 아버지의 이름으로. “내가 강진에서 수년간 유배 중일 때, 부인 홍씨가 해진 여섯 폭 비단 치마를 보내왔다. 세월이 오래 흘러 붉은색이 퇴색되었다. 네 첩의 글을 만들어 두 아들에게 보내고, 남은 천으로 작게 장정하여 딸아이에게 보낸다.” 짐작하셨겠지만 오늘 필자가 만나러 온 분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다. 하피첩, 은평에 오다 은 노을 하, 치마 피, 엮을 첩의 의미로 부인이 시집올 때 입고 온 붉은 치마가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색이 바랬음을 은유한 것으로 지어미에 대한 지아비로서의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그리 넓지도 않고 그렇다고 비좁지도 않은 기획전시실, 그 공간의 범위로는 감히 재단할 수 없는 선생의 마음과 정신은 결국 오랜 유배생활을 이겨내고 고향(남양주시 능내리)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고, 만년에도 저술을 놓지 않았던 선생은 회혼일(결혼 60주년 기념일)에 그만 세상을 떠난다. 생의 마직막엔 곁을 지켜준 부인이 있었으니 선생의 임종은 외롭지 않았으리라. , , 등 다산 사상의 핵심은 사회 현실을 바탕으로 제도와 법을 맞도록 바꾸자는 것이 그 골자로 정치 및 행정체제, 형률제도, 경제제도, 생산기술, 군사제도 등 제반 영역을 포괄하는 것이다. 선생이 저술한 책은 모두 503권이라고 한다. 인고의 세월 동안, 그리고 말년에도 평생 붓을 놓지 않았던 선생! 나는 어떤 남편이고 어떤 아버지인가? 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본 기획전은 6월 11일까지 이어지며 문의는 은평역사한옥박물관으로 하면 된다.
- 2017-05-22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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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 만에 치킨 집을 접은 친구
- 지난 10년간 치킨 집을 운영해오던 친구가 문을 닫는다며 친구들을 초대했다. 한창때 건설회사에서 일하다가 퇴직하고 나서 실업자로 6년을 놀았다. 부인이 그 사이에 치킨 집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댔다. 그러다 부인이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치킨 집을 인수해 부부가 같이 10년을 운영해온 것이다. 그간 우후죽순처럼 생기던 치킨 집들이 다 문을 닫았는데 굳건히 버텼다. 브랜드의 힘이기도 했고 친절과 성실, 그리고 배달 서비스의 신속함 덕분이었다고 한다. 이제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자녀들 시집, 장가 다 보냈으니 더 이상 고생하면서 돈을 벌 목적이 없어졌다고 했다. 그 사이에 배달 중 오토바이 사고로 죽다 살아난 고초도 겪었다. 인근 아파트들이 재건축에 들어가면서 향후 영업 전망도 밝지 못한 것도 문을 닫는 이유 중 하나였다. 치킨 집 운영은 고된 일이다. 더운 여름날에도 치킨을 튀겨내려면 죽을 맛이다. 추운 날에도 배달을 하려면 고생이 막심하다. 낮 12시부터 밤 12시까지 일해야 하는 고된 노동이다. 처음에는 연중무휴로 일하다가 일주일에 한 번은 쉬어가며 일하라고 충고하자 그러겠다더니 올림픽 등 특수가 오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자리를 비울 수 없으니 친구들 모임에도 못 나와 친구들이 치킨 집으로 모였다. 덕분에 우리 친구들은 맛있는 치킨과 맥주를 무한 리필해가며 즐길 수 있었다. 처음에는 친구들에게 돈을 받기가 미안하다며 돈을 안 받았다. 그러나 그러면 부담이 되어 못 간다고 하자 1인당 1만원으로 마음껏 먹고 가는 것으로 했다. 단, 주말은 바쁘니 피해달라고 했다. 이 친구가 원래 마초 같은 남자라서 부인에게 고압적이었다. 그러나 함께 일하면서 성격이 많이 고분고분해지고 부드러워졌다. 고생하는 부인을 물끄러미 볼 때 미안한 마음에 저절로 그렇게 되더라는 것이다. 부인도 그만한 위치라면 남편에게 할 말은 하게 되었다. 친구들이 와도 배달을 나가야 하니 같이 술 한잔 나누고 싶은 생각은 굴뚝이지만, 전화 벨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주문이 오면 달려나가야 했다. 치킨 집 운영은 주문을 기다리는 일이라 예측 불가능함이 가장 어려웠다고 한다. 재료를 잔뜩 준비해놓았는데 웬일인지 주문이 뚝 끊기는가 하면 반대로 주문이 폭주해 생 땀을 흘리기도 했단다. 물론 올림픽, 월드컵 등 큰 행사가 있을 때는 주문이 많아 나름대로 대비를 잘 했다. 그러나 도무지 예측 불가능한 주문 때문에 애로가 많았다고 한다. 이제 치킨 집을 접으면 강원도 한적한 곳에 전원주택을 마련해 노후를 보내겠단다. 부인도 처음에는 동의하지 않았으나 부인 명의로 전원주택을 사준다 하자 동의했단다. 사실 누구 명의가 되든 결과는 마찬가지인데 정작 당사자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마음으로는 넓은 텃밭에 이것저것 가꾸며 살고 싶지만 육체적인 능력이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소규모로 욕심을 줄였단다. 농사라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어서 저절로 크는 과일나무나 심어 재미로 따먹는 수준을 넘어서지 않으려 한단다. 덕분에 강원도에 갈 일이 많아질 것 같다. 우리 나이쯤 되니 강원도에 가서 살겠다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고 있기 때문이다.
- 2017-05-16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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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나는 것과 정리하는 것
- 6개월 전에 결심한대로 이번 5월 말에 오랜 세월 몸담았던 회사를 떠난다. 그동안 임기 연장에 대한 여러 유혹이 있었다. 일을 멈추는데 대해 불안 해 하는 아내의 저항도 만만찮았다. 무엇보다도 35년이 넘도록 새벽에 출근하고 밤에 퇴근하던 패턴을 어떻게 바꿀까 고민을 많이 했다. 떠나기로 결심하고 6개월 동안 이 문제를 고심했다. 결론은 60 이후의 삶을 좀 더 느리게 살자는 것. 이를테면 지금까지의 삶처럼 앞만 보고 뛰면서 살지 말고 옆도 바라보고 뒤도 바라보면서 느리게 걷듯 사는 게 좋겠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느리게 걷듯 사는 것... 그러나 어떻게 사는 것이 그렇게 사는 것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떠나는 것은 정리를 의미한다. 그동안 희로애락을 같이했던 직원들과 정리해야한다. 업무는 워낙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었으므로 정리가 필요 없다. 업무와 관련하여 당부하는 것조차도 사족이 될 듯싶다. 다만 감정 정리가 필요하다. 회사 전체에서 필자의 나이가 제일 많다. 신입사원들의 이력서에서 부모 나이를 보면 필자보다 어린 경우가 많다. 그동안 어린 직원들과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나이 든 직장 상사로서 그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의 고민을 많이 들어 주었다. 우리가 살면서 ‘미리 준비 했더라면’이나 ‘미리 알았더라면’하고 후회하는 일들이 있다. 그들이 필자와 이야기하면서 이런 것을 한 가지라도 알게 되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동안 업무를 하면서 관계를 맺었던 회사관계자들과의 정리도 필요하다. 필자가 떠나더라도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우리 직원들과 외부 회사와의 연결고리를 인계해 주어야한다. 그 회사들과 협업하여 진행할 향후 업무도 많고 콜라보 행사도 있어서 지속가능한 관계가 필요하다. 살아가면서 좋은 친구가 자산이 되듯이 좋은 협력회사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 회사의 자산이 된다. 오랜 세월 겪은 후에 진정한 친구가 생기듯 좋은 협력회사도 하루아침에 찾아지는 것이 아니다. 필자는 책 욕심이 많다. 필기구 욕심도 많다. 특히 손에 잘 잡히고 써지는 느낌이 좋은 필기구는 참지 못하고 구입한다. 건축을 전공했지만 지금 가지고 있는 책을 보니 건축 책보다 시집이나 인문학, 자기 계발서 등이 더 많다. 최근에 구입한 책들은 거의 ‘시니어’ 관련 책들이다. 그동안 저자 강연을 찾아다니면서 모아둔 책도 많다. 각종 건축 프로젝트의 서류를 모아 둔 파일도 엄청 많다. 이것들을 다 가지고 갈 수 없다. 그래서 서류 중에 중요한 것은 사진을 찍어서 그림파일로 저장하고 나머지는 파쇄 해 버린다. 책은 일부 주변 사람들에게 기증하고 나머지는 그냥 서가에 두고 떠나기로 했다. 필기구는 전부 가져간다. 그동안 전시회나 여행지에서 구입한 각종 소품과 도자기, 액세서리 등이 제법 많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사내 바자회를 열기로 했다. 직원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참여했다. 더 감사한 것은 여러 직원들이 자기들의 애장품을 바자회에 기증해 주어서 바자회가 한층 풍성해 졌다는 것이다. 수입금은 필자가 운영위원으로 있는 장애인 복지관에 기부하기로 했다. 필자는 짐을 정리하게 되었고 직원들은 기부에 동참하니 일석이조의 좋은 행사가 되었다. 그동안 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졌다. 그 중에는 아쉽게 떠난 사람도 많았고 떠나는 날 얼굴을 못 본 사람도 많다. 가장 적당한 때 잘 정리하고 떠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안다. 어쩌면 떠날 때 뒷 모습이 그가 살아온 모든 것을 대변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오늘 아침에도 책상 옆에 붙여놓은 이형기 시인의 ‘낙화’를 읽어본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
- 2017-05-11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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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 밤에 시집 한권 읽어볼까
- 나이가 들면 사랑이라는 감정과 멀어지고 세상만사에 무뎌지는 줄 알았다. 부모님이 그랬고 주변 어르신들이 그렇게 보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죽는 날까지 아름답고 황홀한 감정을 간직한 채 건강한 심장으로 살기를 원한다는 걸 알게 됐다. 필자 또한 겉모습은 점점 나이 들어 변해가지만, 실핏줄처럼 번지는 봄 밤에 두근거림은 여전하다. 이런 날 읽으면 좋을 시집을 한권 골라보았다. 로 유명한 신현림 시인의 ‘시가 나를 안아준다’ 라는 시집이다. 유명 작가가 되었지만 전업작가의 길은 만만치 않았는지 신현림 시인은 밥벌이가 늘 걱정이었다. 열심히 책 내고 애 키우며 생존하기 바빴던 시인은, 한겨울 보일러가 터져 고생을 하기도 하고, 새로 낸 책이 좋은 반응을 얻어 봄날을 맞이한 요즘에도 이사 갈 전셋집을 보러 다니느라 바쁘다. 선인세 받은 빚을 갚기 위해 책을 써왔다는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는, 선불로 받은 원고료를 위해 소설을 팔아야 했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가 떠올랐다. 힘들어 본 사람이 힘든 사람의 마음을 알고, 아파 본 사람이 아픈 사람 어루만져줄 수 있다. 저자는 삶과의 치열한 전쟁을 치르면서 시가 주는 위로의 힘을 알게 된 것 같다. 시인은 삶에 지친 이들을 위해 베갯머리에서 읽으면 좋을 세계시 91편을 추렸다. 톨스토이부터 만해 한용운 선생과 정호승 시인, 이해인 수녀에 이르기까지, 시인이 추려 고른 시들은 힘든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준다. 필자에게도 마찬가지다. 세상이 너무나 빠른 속도로 돌아가고 그 속에서 쉴 새 없이 움직여도 형편은 여전하다. 내가 힘드니 옆 사람을 돌아볼 여유는 더더욱 없다. 눈 둘 곳 찾기 어려울 정도로 화려한 꽃이 피어나는 봄날엔 나만 덩그라니 홀로인 것 같아 외롭다. 그러나 인생은 끝없이 자기를 내려놓는 일이라니, 베갯머리에서 시집을 펴고 사랑에 대해, 삶에 대해, 행복에 대해 쓴 시를 읽으며 자신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봄 밤에 읽는 시 한 편이 꽃 보다 더 따뜻하고 아름다울 것이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이대로 온종일 침대에 누워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잠시 그 갈망과 싸웠다창밖을 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나를 내려놓았다비 내리는 아침에나를 온전히 맡기기로이 삶을 다시 또 살게 될까?용서 못 할 실수들을똑같이 반복하게 될까?그렇다, 확률은 반반이다그렇다 레이먼 카버의 ‘비’
- 2017-04-27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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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극 '흥보 씨' 흥이 넘치는 우리 가락 공연
- 국립극장 달오름으로 창극 '흥보 씨'를 보러 갔다. 마침 티켓이 여러 장이라 친구들에게 연락하면서도 조금은 걱정스러움이 있었다. 구닥다리처럼 창극이 뭐냐고 할 줄 알았는데 모두들 좋다며 환호한다. 사실 필자는 음악이라면 모든 장르를 다 좋아한다. 그렇지만 아직 창극이나 판소리공연은 가보지 못했다. 젊은 날 팝송과 샹송, 칸초네를 듣고 거기에 잘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클래식까지 섭렵하면서도 우리 가락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가요 중에서도 트로트를 들으면 큰일 나는 것처럼 금기시했는데 옛말 그른 것 없다는 말이 딱 맞다는 것을 시니어가 되어서야 이해했다. 젊었을 땐 어른들이 왜 저런 노래를 좋아하는지 유치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남진 나훈아로 대표되는 트로트 가요나 민요, 판소리가 너무나 가슴에 와 닿고 듣기 좋은 음악이 되었으니 너희도 나이 들어 보라던 말씀이 딱 맞아떨어졌다. 창극이라면 대여섯 살 쯤 엄마 치마꼬리 잡고 극장에 따라가서 보았던 국극이 떠오른다. 보통 여자들로 구성되어 남자역도 여자가 했는데 눈썹과 눈을 까맣게 칠하고 우렁찬 목소리로 화려한 연기와 노래를 하던 그들이 흥미로우면서도 좀 무서웠던 기억이 있다. 오늘 본 창극 ‘흥보씨’는 젊은 국악인들이 판소리에 대한 고정관념을 뛰어넘어 연출한 흥이 넘치는 무대로 판소리와 리드미컬한 현대음악이 교차하면서 신선한 음악적 풍경이 펼쳐졌다. 주인공 흥보 씨는 요즘 촉망받는 유명하고 잘 생긴 국악인이어서 보는 재미가 더했고 출연진 대부분이 젊은 국악인이어서 참신했다. 국립극장 달오름에 창극을 보러 어르신들이 많이 올 줄 알았는데 관객 역시 젊은이가 대부분이다. 국립창극단과 각색의 귀재 연출가 '고선웅' 씨, 천재 소리꾼 '이자람'이 의기투합해 만들었다는 ‘흥보 씨’는 우리가 알고 있던 흥부놀부전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슬하에 자식이 없어 근심하던 연생원이 친척 집 문상을 다녀오다가 길에 버려진 아이를 발견하고 데려와 양자로 삼는데 가문이 흥하기를 바라며 ‘흥보’라 이름 짓는다. 그사이 연생원의 처 황 씨는 남편이 집을 비운 사이 다른 남자와 동침하여 이듬해 아들을 얻는데 혼외자식임을 모르는 연생원이 귀하고 놀랍다는 뜻으로 ‘놀보’라 했다. 그러니 놀부가 형이 아니고 흥부가 형이라는 설정이다. 우리가 알고 있듯 흥보는 심성이 착하고 놀보는 심술궂게 자란다. 스무 살이 되던 해 놀보는 착한 형 흥보를 졸라 소원이라며 형과 아우를 바꾸자고 한다. 그때부터 재산도 형이 된 놀보에게 넘어가 착하기만 한 흥보의 고난이 시작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흥보는 묘소에서 3년 상을 보내고, 돌아오는 날 아이를 낳지 못해 시집에서 쫓겨 난 여자 정 씨를 만나 부부의 연을 맺는다. 이들은 길에서 딱한 처지의 거지 아홉 명을 자식으로 삼아 집으로 돌아오는데 집에는 놀보가 버티고 있다. 원작에선 흥보가 금실이 좋아 자식을 여럿 두지만, 창극에서는 모두 데려온 자식으로 각색되었다. '흥보 씨'는 기존 이야기를 비틀어 새로운 이야기를 전하지만 권선징악인 작품 본래의 교훈은 그대로 담았다. 고선웅 연출가는 각색하는 과정에서 착한 사람이 손해 보지 않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까치가 물어다 준 박씨 덕분에 부자가 된다는 설정을 버리고 스스로 깨닫는 흥보를 만들었다. 고을 원님이 딱한 흥보의 편을 들어 놀보를 벌하는 심판자 역할을 하고 흥보에게 돌아가는 상은 금은보화가 아니라 다시 형이 되는 명예회복이다. 난데없이 외계인이 나타나 흥보에게 깨달음을 준다거나 행운의 제비가 나이트클럽의 춤꾼으로 나오는 등 웃음을 겨냥한 설정도 있어 재미있었다. 필자가 좋아하는 권선징악의 창극이 펼쳐져서 속이 시원했다. 젊은 국악인들의 노력으로 우리 가락이 널리 보편화하여 젊을 때의 필자처럼 편견을 갖지 않고 모두가 즐길 수 있으며 넓은 팬층을 만들어 세계적으로도 뻗어 나갈 수 있는 고유의 인기 있는 우리 창극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 본다.
- 2017-04-26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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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할 생각이 없는 총각, 처녀 어찌하오리?
- ‘인구절벽’이 우리 경제를 조여오고 있다. 1980년대부터 시작된 저출산으로 한국전쟁 후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베이비붐 세대를 이어 경제를 주도할 ‘생산인구’가 부족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5년 출산율은 1.25명에서 1.17명으로 크게 줄었다고 한다. 이처럼 생산가능 인구가 줄어듦으로써 정부의 세금 자원도 줄어 세금으로 이뤄지는 복지정책이 어렵게 되었다. 통계가 아니어도 저출산 현상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장가, 시집갈 나이가 훨씬 지났음에도 결혼할 생각조차 않는 총각, 처녀들이 많다. 결혼 적령기가 지난 딸을 둔 친구가 있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시집을 늦게 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가지 않겠다고 해서 그렇다. 딸의 논리 정연한 이유를 듣고 설득할 말을 잃었다고 실토한다. 혼자 살아도 행복하고 앞으로도 큰 문제 없을 것 같은데 왜 시집가서 남편을 섬기고 아이 낳는 고통까지 짊어져야 하느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30대 중반이 지난 필자의 아들 녀석도 같은 부류에 속한다. 혼자 살기도 힘든데 벌어서 여자까지 먹여 살려야 하느냐고 묻는다. 또 지금의 이 고통을 후세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고차원적 변명도 한다. 이해가 전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설득을 해야 할까? 자식들 인생이니 알아서 살도록 나둬야 할까? 생각이 복잡해진다. 부모는 자식들이 새 가정을 만들어 오순도순 살아가기를 바란다. 세상을 살다 보면 분명 힘든 일도 생기고 일심동체라 일컫는 부부도 격한 싸움을 할 때가 있다. 부부싸움이 잦은 사람에게 “그렇게 싸울 바에야 아예 헤어지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살려고 하니 싸우지 헤어지려면 뭐하러 싸워요!” 이해가 가는 말이다. 어떤 경우에도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 있을 때는 난관도 견디어내기 마련이다. 그게 가족의 힘이고 그 힘은 결혼을 해야 생겨난다. 어느 철학자는 “결혼은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한다”라고 하면서 하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 해보고 후회하는 편이 낫다고 덧붙였다. 자신의 결혼을 후회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 통계를 아직 보지 못하였지만,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주변이나 친구들을 봐도 결혼을 후회한다고 말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필자와 같은 세대는 독신으로 사는 사람이 적었다. 다만, 형편이 어려워 결혼이 늦은 사람들은 있었다. 결혼을 후회하는 경우는 결혼 자체가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불만 때문이지 않을까? 그래서 이혼을 해도 또 재혼을 하는 것 아닐까? 결혼 자체를 싫어한다면 재혼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기에 말이다. 배우자가 문제될 뿐인 것이다. 부부 사이가 좋지 않은 부모를 둔 자녀들은 결혼을 꺼리는 경우를 종종 본다. 부모의 결혼생활을 통해 미리 경험하고 상상하기 때문이다. 부모가 지지고 볶으며 싸우는 모습만 봐왔기 때문에 선뜻 결혼을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부모의 책임도 크다. 우주의 법칙은 무엇인가? 한 마리의 작은 잠자리도 종족을 이어가기 위하여 가을 하늘을 날며 암수가 사랑을 나눈다. 한 그루의 꽃도 씨를 남긴다. 모든 동물도 새끼를 낳아 기른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들이야 더 말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고귀한 새 생명의 탄생은 우리가 해야 할 대자연의 기본 법칙이 아닐까? 또한 자신을 세상에 있게 한 부모에 대한 보답이다. 왜 자기를 낳아 이렇게 고생하게 만들었냐고 반문하면 딱히 할 말을 찾기 힘들다. 그러나 결혼해서 참기름이 쏟아지도록 행복하게 사는 부부가 얼마나 많은가?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서로를 의지하며 행복하게 사는 노부부들을 보면 부럽다. 그들은 분명 결혼은 안 하면 후회한다고 말할 것 같다. 70대까지 독신으로 살아온 한 시니어가 KBS 1TV ‘내 말 좀 들어봐!’라는 코너에 출연해 혼자 사는 외로움을 실토하며 꼭 결혼하라고 몇 번이나 강조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혼자’라는 용어가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는 오늘날 혼자 살겠다는 처녀, 총각들을 어찌하오리? 저출산율에서 벗어나는 고민을 함께해야 할 때다.
- 2017-04-24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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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는 현재를 위해 존재한다
- 우리에게 익숙하던 20세기가 가고 21세기로 접어들면서 낯선 세계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진리라고 믿었던 것들이 하나둘 깨져나가는 경험을 하며 당혹감을 느낀다. 집값은 늘 올라가는 것으로만 알았는데 어느 날부터 내려가기 시작하고 은행 이자가 애들 껌값으로 전락했다. 콩나물 교실이 당연했던 기억은 사라지고 아이가 없어 폐교되는 학교가 속출한다. 그러나 이런 외적인 변화보다 더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것은 믿었던 가치 체계가 무너지는 일일 것이다. 우리는 어릴 때 이솝우화를 진리로 믿었다. 개미와 베짱이 중에서 개미가 진리이고 베짱이는 부도덕한 게으름뱅이일 뿐이었다. 그러나 21세기에서 개미들은 삶의 방향을 잃고 말았다. 믿었던 미래가 허구에 불과했던 것이다. 반면에 베짱이들이 득세하기 시작했다. 어떤 인터넷 편지에서 읽은 글이 생각난다. 어느 사이좋은 부부가 정년 은퇴 후의 여유로운 전원생활과 여행을 꿈꾸며 현재 자신들의 삶을 한없이 인색하게 살기로 작정했다. 현재보다 노후 대비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행복한 노후를 맞을 수 없었다. 남편은 정년을 2년 앞두고 폐암으로 죽었고 아내는 그 충격으로 우울증에 걸렸기 때문이다. 어느 날 시집간 딸이 혼자 사는 어머니 집에 들러 청소하던 중 벽장 속에서 종이 상자를 발견했다. 그 안에는 두 부부의 전원생활에 대한 계획과 여행안내 책자가 들어 있었다. 딸은 차마 그것들을 치울 수 없었다. 부모님의 이루지 못한 꿈과 노후 계획들이 가득 차 있어서 감히 들 수조차 없을 정도로 무거웠기 때문이었다는 내용이다. 어떻게 보면 진부한 신파적 내용으로 여겨지겠지만, 이것이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현실이고 맹목이다. 우리 세대는 오로지 미래만을 보고 현실의 고난을 견뎌왔다. 그러나 그 파랑새는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면 그런 허망한 미래를 위해 희생한 애꿎은 ‘현재’는 어찌할 것인가. 말하자면 지금 우리 세대의 좌절과 분노는 이런 바탕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미래에 대한 장밋빛 환상은 인류 역사에서 극히 예외적인 ‘성장시대’에 나타난 기이한 신기루일 뿐이다. 영원히 성장할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기대에 속아 만들어진 환상이라는 말이다. 사실 인간의 계획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가. 그동안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면 계획한 대로 진행된 일이 얼마나 되던가. 계획이란 결국 충실한 현재의 누적일 뿐이다. 미래 언저리에 도달한 우리가 현실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남루하다고 또다시 미래를 꿈꾸며 지금을 희생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영화 를 보면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여자를 놓칠 것만 같은 제시는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말을 한다. “저와 함께 비엔나에서 내리지 않을래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용기이다. 현명할 것을, 포도주는 그만 익혀 따르고. 짧은 인생, 미래에 대한 기대는 줄이게. 지금 우리가 말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우릴 시기하며 흐른다네. 현재를 잡게 Carpe Diem, 내일을 믿지 말고. - 호라티우스, 카르페 디엠 (기원전 65~8, 로마의 시인)
- 2017-04-13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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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속 불륜 미화가 우려스럽다
- 살다 보면 별의별 일이 다 생길 수 있다. 그래도 가정을 파괴하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속속들이 사정을 들어보면 자의든 타의든 그런 일이 종종 있기도 하다. 필자는 좀 보수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어서 어떤 사정이 있다 해도 외도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 단언했었다. 특히 잘나고 우위에 있는 쪽이 외도로 인해 상대방을 버리는 경우 더욱 분통이 터졌다. 그런데 요즘 드라마를 보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비록 외도로 만난 사이라 해도 너무너무 사랑해서 죽고 못 살 정도라면 그래 길지도 않은 인생 후회 없도록 한번 살아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드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판단에 따른 상처나 피해는 전적으로 당사자들이 짊어져야 할 일이다. 최근 주말 드라마를 재미있게 본 적이 있다. 남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어떤 면에서는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줘 흥미롭게 시청했다. 드라마 속 주인공은 외부의 요인(남편의 과거 여자, 시어머니의 계략 등) 때문이긴 했지만 엄연히 가정을 가지고 있는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에게 눈을 돌렸다. 그것도 상대가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잘생기고 능력 있는 의사였다. 필자는 매우 보수적이다. 그래서 왕자님을 만나 신분상승하는 신데렐라 신드롬도 싫고 매혹적인 모습으로 남자를 유혹해 불행에 빠뜨리는 팜므파탈도 싫다. 이런 사고방식의 필자가 남편 외의 이성에게 호감을 느끼고 일탈하는 여자에게 공감을 느낄 리는 절대 없다. 아, 물론 당사자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 정도는 이해할 수 있지만 어떤 경우에도 외도로 가정이 깨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데도 드라마를 보면서 가끔 아름다운 그 불륜 남녀에게 응원을 보내는 자신을 보며 멋쩍은 웃음을 짓곤 했다. 어느 날 불륜 남녀가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나무 아래서 포옹을 하는 장면이 나왔을 때 이성적으로는 ‘어어~ 저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속으로는 은근히 격려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니 이 무슨 조화속일까. 저렇게 선하게 생기고 잘난 남자가 괴로움에 빠진 여자가 마냥 좋다는데, 여자가 유부녀인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들 관계를 지지해주고 싶은 이 속마음은 뭘까. 다가오는 남자 배우가 너무 멋져서 여주인공이 필자였다면 과연 어땠을까 하는 상상도 해봤다. 그럴 때마다 마음속으로는 이미 외도를 허락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해서 화들짝 놀라면서 쓴웃음을 짓곤 했다. 그러고 보니 자극적인 소재의 드라마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도 알겠다. 아름다운 남녀 배우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불륜을 미화시키면서 드라마에 열광하는 일반 사람들에게 외도가 나쁘지 않다고 설득하는 것 같아 두렵다. 요즘 세상에는 어느 한쪽의 잘못을 참고 살아가는 부부는 드문 것 같다. 딸을 시집보낸 요즘 부모들은 자기 딸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절대로 속 썩지 말고 이혼하고 돌아오라 얘기한단다. 인간이므로 잠깐의 실수도 있을 수 있는데, 뭐가 문제인지 알아보면서 토닥이고 달래서 잘살 수 있도록 조언해줘야 하는 게 부모 입장인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이러하니 젊은 사람들이 부부관계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쉽게 다른 사람에게 눈을 돌리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모두가 천편일률적으로 도덕적이기만 한 세상도 재미없을 거라는 생각도 살짝 해본다. 그러나 외도 같은 위험한 상황에는 절대로 빠질 염려가 없는 나이에 와 있는 필자라서 할 수 있는 생각일 것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니 약간 서글프기도 하다. 어쨌든 결론은 자신만 생각하고 배우자를 고통 속으로 밀어 넣는 외도는 없는 세상이면 좋겠다.
- 2017-03-14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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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 뒤의 불행’
- 누구에게나 견디기 힘든 삶의 아픔은 있다. 그러나 그 순간 들을 잘 참아 낼 때 드디어 환한 한줄기의 행복이 살며시 찾아온다. 어느 날엔가 초췌해진 친구가 찾아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자초지종을 묻기 시작했다. 친구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기막힘을 털어놓는다. 어제 바로 교도소에서 나왔다고 했다. 필자는 눈을 크게 뜨고 어이가 없어 그냥 듣기만 했다. 갑작스레 나타나 교도소를 운운하니 어안이 벙벙했다. 언젠가 친구는 남편의 외도를 눈치 채기 시작했을 때, 어째야 하느냐고 눈물로 하소연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그때 필자는 그저 더 이상 알려고 하지 말고 일단은 참고 기다리라고 충고 아닌 충고를 했었다. 그리고 몇 달 만에 친구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오랫동안 연락이 없어 잘 돼가는 줄만 알았다. 결국 친구는 남편의 내연녀를 만나며 일은 벌어졌다고 했다. 손아래 시누이를 대동하고 혈압이 올라 참지 못하고 내연녀를 만났다고 했다. 이런저런 실랑이 끝에 싸움이 벌어졌다. 나이 어리고 철이 없던 시누이는 그녀와 함께 폭력을 휘둘렀고, 그녀가 끼고 있던 다이어 반지까지도 강제로 빼앗았다고 했다. 자기 오빠가 해준 것이 틀림이 없을 것이라며 내놓으라고 했단다. 끝내 남편의 내연녀는 경찰서에 신고를 했고, 그 자리에서 폭력 및 물건 갈취 이유로 유치장으로 향했다. 그길로 한 달 남짓 교도소 생활을 했고, 돈으로 겨우겨우 빠져나와 이제야 나왔다는 것이다. 정말 이해하기 힘든 말도 안 되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더구나 재판에까지 휘말린 친구는 더욱 난감하게 되어 시집에서도 코너로 몰리게 되었다. 시누이가 앞장을 섰건만 끝내는 남편은 물론이고 시부모들까지 알게 되어 졸지에 가해자로 몰리며 죄인 취급을 받게 된 것이다. 시부모는 시도 때도 없이 친구를 불러들여 무릎을 꿇리고 반성하도록 시켰단다. 여자가 참지 못하고 집안 망신을 시켰다며 온종일을 괴롭혔다고 했다. 시부모는 친구가 타고 다니던 차도 팔아 치었다. 차가있어 쓸데없는 짖을 하고 다녔다는 이유였다. 도저히 더 이상은 못 살겠다며 친구는 이혼을 강행했다. 필자도 더 이상은 어떻게 위로해줄 수가 없었다. 그저 며칠간 필자의 집에서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일 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 후, 필자가 한국에 돌아와 25년 만에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다행히도 다른 남편을 만나서 서로 의지하며 잘 살고 있었다. 그러나 전 남편은 결국 지난해 어이없이 저세상으로 갔다고 말을 했다. 그것도 자신의 넓은 땅에서 자기가 직접 운전하던 포클레인 차가 뒤집어져 그 밑에 깔려서 운명을 다했다고 했다. 가족들은 고사하고 부모님도 모르게 그 즉시 사망을 했다고 했다.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난 뒤, 필자는 무어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성남에서 손가락 안에 들던 어마어마한 땅 부자였는데 결국은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것이었다. 그것도 전 부인인 친구의 딸 이 둘, 새 여자와 살면서 입양한 자식인 딸도 하나, 그리고 새로운 부인에게서 뒤늦게 낳은 아들 하나를 남겨두고 순식간에 떠났다고 했다.장례식을 치르자마자, 자식들과 새엄마 그리고 친구까지 합세해 재산 전쟁이 진행 중이라고 했다. 필자는 친구의 덤덤한 이야기를 듣는 내내, 가슴이 답답해 왔다. 도대체 현실이 아닌 소설 속에 이야기처럼 황당한 이야기들 모두가 마치 꿈속에서 웅성거리며 들려오는 것 만 같았다. 사람들은 왜 그리도 무지 속에서 앞으로 다가올 운명을 눈감은 채 그렇게 마구 살아가는 것인지 참으로 모르겠다. 갑작스레 지난날 친구가 화려하게 결혼하던 장면이 눈앞을 스쳐갔다. 성남의 부잣집 장남에게 시집을 간다고 온 동네가 떠들썩했었다. 그때는 그 누구도 그들의 등 뒤로 다가오는 불행의 그림자가 그렇게 서서히 다가오고 있음을 몰랐을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 불과 60년도 못 살고 갈 것을, 사람은 돈과 욕정과 독선 속에서 한 가정이 갈기갈기 찢어져 엉망진창이 된 것이다. 물론 남은 가족들은 돈이 있으니 다 살기 마련일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 큰 불행이 가져다줄 해결의 실마리는 좀처럼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는 아무렇지 않은 듯 이야기를 술술 토해냈으나, 지난날 친구 남편의 부유에 넘친 웃음 띤 얼굴을 떠올려 보며 생각하니 가슴이 저며 왔다. 그렇게 매몰차게 친구를 내쫓고 새 여자 만나 한평생 잘 살 것 같더니만 결국은 그렇게 먼저 가고 말았다. 아무리 순서 없이 떠나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숱한 페이지를 진하게 장식한 친구의 삶이 못내 씁쓸하게 다가왔다. 필자도 가끔은 뒤돌아보며 오늘을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 수 없이 다가오는 내일에 후회가 없으려면 더욱 열심히 순간순간을 맞이해야 할 것이다. 친구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다가오는 인생의 뒤안길이 부끄러워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 2017-03-10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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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유재의 미술품 수집 이야기] 봄이 오는 길목에서
- “고등학교를 남보다 두 해 늦게, 고향 김천에 있는 농고(農高)로 들어갔지요. 그 무렵 구루병을 앓고 있는 사촌 누이동생과 문학을 교류하며 지냈는데, 그 누이가 이듬해 시름시름 앓다 사망했어요. 그 시절의 누이 모습이 잊히지 않아 ‘소녀’의 그림을 그려왔지요.” 창문이 열린 화실 밖, 밤나무에서 매미가 울었다. 박항률(朴沆律, 1950~ ) 화가는 창밖을 우두커니 바라보며 읊조리듯 낮은 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자화상 같은 소년의 모습들은 누이의 눈동자에 비쳤을 내 모습을 상상하며 그렸고요.” 화실 바닥에는 최근에 완성했다는 이 있었다. 1995년 전시 때 그의 그림을 눈여겨봐왔던 잔잔한 감동이 드디어 이태 뒤 그의 청담동 화실까지 찾게 한 것이다. 인물화만 그리지 말고 풍경화도 그려달라 부탁하려다 그만두었다. 동갑의 우리는 40대 후반의 가장으로서 어깨를 짓누르던 삶의 무게뿐만 아니라 시대의 서글픈 사회상을 공유하고 있어서 서너 시간 더 대화할 수 있었다. 그땐 머리 위에 삼층탑을 이고 있는 과 물고기를 안고 있는 의 두 그림을 갖고 있던 터라 한결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탁자 위에서 소리 없이 타오르는 침향(沈香)의 그윽한 향내가 화실을 맴돌다 옅은 보라의 연기 띠를 이루며 창가로 흩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서울예고,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한 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같은 미술학도인 아내와 가정을 꾸려 아이들을 낳고 전업작가를 선언하며 그림그리기에 용맹 정진할 무렵이었다. 그가 건네준 자작 시집 과 드로잉 한 점을 받고 돌아선 첫 만남은 한 화가의 진솔한 심상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의 그림의 주제는 단발의 소녀, 까까머리의 소년, 한 일사(逸士)의 인물 그림이지만 주변의 치밀한 장치가 아련한 그리움을 불러온다. 새벽의 안개, 고요히 타오르는 등잔불 등은 보는 이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선(禪)과 명상의 세계로 이끈다. 어떨 때는 신화(神話)와 현실이 혼재되면서 끝없는 상상력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이후 두 번의 화실 방문과 전시회장에서 여러 번의 만남이 이어졌다. 그의 화풍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침묵의 적막함, 고요의 깊은 바다에 잠기는 탈속(脫俗)한 사색인의 경지를 리듬감 있게 그리고 있다. 1~2호 크기의 소품에서도 그의 면밀한 구도와 아크릴 물감의 잔 붓질이 높은 밀도로 공간을 채우고 있다. 몽환적인 이상향 같은 새벽 풍경 서너 해 전, 잘 아는 인사동 화랑 주인이 이른 봄 섬진강으로의 탐매(探梅) 여행을 계획하면서 박항률 화가도 동행한다며 동행을 권유했으나, 가정사로 참여하지 못해 아쉬움을 남긴 일이 있었다. 남도의 강안(江岸)에 작은 배를 띄우고 강 건너 안개 낀 새벽 풍경을 특유의 스케치로 그려오더니, 드디어 채색이 완성되었다며 초청하기에 즉시 달려갔다. 그의 풍경화는 본 일이 없었으므로 설레는 마음이 더 가득했다. 30호(90.8cm×72.7cm) 크기의 대작이었다. 짙은 안개의 강둑 너머 고목이 즐비한 작은 마을에 소담한 집 몇 채의 안온한 정경이 새벽에 잠겨 있었다. 어쩌면 몽환적인 이상향을 보는 것 같았다. 그는 이미 네 권의 시집을 출간했는데 시인의 짙은 감성이 그대로 배어 나왔다. 절제되고 아껴왔던 시정(詩情)이 수묵담채처럼 새벽 강을 따라 질펀히 흘러 눈길을 비끄러매었다. 그는 늘 생각의 두께가 그림의 색칠로 침윤되기를 기원하는 구도자의 붓질로 화폭을 채운다. 은 목련꽃 아래 한 소년이 팔에 얼굴을 괴고 사색에 잠기는 찰나를 그린 아주 작은 작품이다[그림 1]. 이 소년이 곧 화가의 자화상이 되고, 보는 이의 감성에 이입되어 일체를 이룬다. 나른한 봄날의 한때가 침묵 속에 머물러 있다. 깨끗함과 따뜻함 보여주는 화가 미술품을 수집하면서 제일 큰 갈등이 일어날 때는 작품을 고르는 순간이다. 작가의 이력이나 다른 작품들을 함께 볼 수 없을 때는 더 곤혹스럽다. 눈과 가슴을 일렁거리게 하는 작품들이 안 보일 때 그 답답함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벌써 10여 년 전이다. 늦겨울 인사동을 거닐다가 한 화랑 전시대에 걸린 을 만났다[그림 2]. 인도 위에는 잔설이 아직 희끗희끗한데, 노란 개나리가 흐드러진 곳에서 하얀 어미 닭과 노란 병아리 세 마리가 한낮의 햇빛을 즐기는 이 그림은 무한한 희열과 따뜻함을 느끼게 했다. 사실 이 그림을 만나기 전까지 권사극(權師極, 1959~ )이란 화가를 알지 못했다. 한참을 서서 그림에 빠져 있는데 화랑 주인이 문을 열고 들어오라 했다. 차 한 잔을 마시며 “우중충한 겨울이 싫어서 빠른 봄맞이를 해봤다”는 주인과 함께 을 찬찬히 감상했다. 무성한 개나리꽃이 농염한 가지에, 파릇한 잎도 슬며시 내밀고 어미 닭의 흰색과 옅게 찍어놓은 붉은 벼슬, 병아리의 붉은 발목이 거슬리지 않게 조화를 이루었다. 인사동 화랑들은 우리나라 그림시장의 방향타 같아서 화력이 짧은 아마추어들의 작품을 내거는 일이 없다. 그만큼 전시 작품에 심혈을 기울인다. 주인이 내민 몇 권의 도록으로 이 화가의 다른 작품들을 보았다. 대부분 꽃을 그린 그의 작품들에서 받는 공통된 느낌은 ‘따뜻함’과 ‘깨끗함’이었다. 마음에 든다면 주저 말고 수집 이 화가의 그림에서는 꽃들의 잔향이 뿜어져 나온다. 발로 열심히 다니며 찾다 보면 비록 화력(畵歷)이 짧고 값비싸지 않아도, 예술성 높은 작품을 찾아내고 수집하는 기회가 온다. 무명의 작가가 훗날 미술계에 우뚝 서는 작가로 성장해 작품 가격이 치솟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래서 ‘마음을 움직이는 미술품을 만나면 주저 없이 수집해야 한다’는 수집가들의 격언이 있다.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그런 작품을 만나기 어렵다. 나의 경우, 미술품 수집의 우선순위는 오랜 시간의 깊은 관찰이다. 마음에 거슬리지 않으면서 보면 볼수록 괜찮은 그림을 보면 작가의 이력과 다른 작품도 보게 되고, 화랑 주인이나 다른 수집가의 조언도 참조한다. 작가를 직접 찾아가 그의 예술관도 경청해본다. 작가가 교만하거나 작품이 기교에 차 있으면 경계해야 할 일이다. >>이재준(李載俊) 1950년 경기 화성 출생. 아호 송유재(松由齋). 미술품 수집가, 클래식 음반 리뷰어.
- 2017-02-27 1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