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나 지자체의 정책 입안자들이나 사회복지 연구자들은 노인을 인구통계학적 인식 대상으로 본다. 성별로 나누고 소득수준으로 가르며 돌보미 유무를 파악해, 어떤 대상을 어느 정도의 복지 수준으로 대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그래서 노인은 언제나 보이는 대상으로 물성화될 뿐, 주체성을 지닌 인간으로 대접을 받아 본 적이 없다.’ 오근재 전 홍익대 교수(현 연세대 특별초빙교수)의 저서 ‘퇴적공간’의 일부다. 그는 우리 사회 노인들을 ‘시대의 강물에 떠밀려 잉여의 존재로 퇴적공간에 쌓여 있다’고 표현했다. 한때는 사회의 주역으로, 자랑스러운 아버지였던 그들이 이제는 ‘잉여’로 전락해 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계속 ‘잉여’로 남아있을 수 밖에는 없는 것인가. 전문가들의 견해와 조언을 들어봤다.
글 한국노인상담연구소 김은주 소장
어느 시군이나 노인들이 모여드는 대표적인 공원이 있다. 종로 탑골공원, 청주 중앙공원, 인천 자유공원, 안산 화랑유원지, 수원 장안공원 등엔 특히 건강한 남자 노인들이 모여든다.
우리나라 노인복지법 제36조에 의해, 노인여가복지시설로 노인복지관, 경로당, 노인교실 등이 운영되고 있다. 저소득이거나 건강문제를 가지고 있는 노인들을 위한 서비스 외에 건강한 노인을 위한 여가시설인 노인복지관이 없는 일본이나 동네마다 하나씩 있는 경로당에 대해서 경외롭다고 외치는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 놀라울 만큼 건강한 노인들을 위한 많은 여가시설을 설치․운영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여전히 소외되고 있는 노인들이 공원에 모여든다는 것은 아이러니할 수밖에 없다.
우선, 아무리 많은 여가시설을 설치해도 현재 노인들의 다양한 욕구를 다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 사회에서 노인들이 갈 곳이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서 노인들은 철저하게 소외된다. 젊은이들과 섞이는 것 자체를 노인들도 또 젊은이들도 원치 않는다. 마치 장애인들과 섞이는 것을 장애인들도 비장애인들도 서로 원치 않는 것처럼. 우리는 현재 우리와 다르다고 생각하는 계층을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 작은 지역사회 중심으로 마을 공동체 안에서 다른 이들이 서로를 인정하며 서로에게 배우고 도우며 함께 살아가는 법을 순식간에 잊어가고 있는 듯하다.
만 65세 이상으로 구분하여 서비스 제공의 자격을 구분하는 법과 제도가 많을수록 우리는 노인을 우리와는 다른 계층으로 분리시키게 된다. 노인복지법이 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공경과 특별대우를 제도화 할수록 더욱 그렇다. 아무리 지원제도가 좋아져도, 사회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은 행복할 수가 없다. 외국에서는 ‘노인’이라는 기준과 용어를 없애고 ‘senior citizen(선임시민)’으로 시민으로서의 공통성을 강조하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구분된 노인이 아닌 통합된 시민으로서 자연스럽게 마을주민들, 젊은이들, 아이들과 어울려 살 수 있도록 배려하고 이를 활성화 할 제도가 필요하다. 마을 단위에서 노인들의 긍정적인 역할을 지원하고, 지역사회 안에서 노인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다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법과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노인은 다른 계층이 아니라, 미래에 다가올 우리자신의 모습이다. 노인이 행복해야 우리의 내일이 행복하다.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지금 노인이 행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덧붙여, 현재 운영되고 있는 여가복지시설들이 지나치게 일원화된 서비스를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것도 문제일 수 있다. 사회복지사를 중심으로 일방적으로 프로그램이 제공되는 노인복지관은 여가생활을 적극적으로 즐기길 원하는 다수의 여성노인들이 중심이 된다. 소극적이고 대인관계에 서툰 남성노인들에게 적극적이고 활발한 복지관 분위기는 부담스러울 뿐 아니라, 사회복지사의 서비스를 받는 것도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는 것도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꺼려진다. 누구에 의해 제공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거나 소수의 사람들과 어울리며 자신의 특화된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자발적인 커뮤니티센터 등 노인복지법의 노인여가시설이 다양화될 필요가 있다.
서울 탑골공원, 종묘공원처럼 인천의 자유공원, 안산의 화랑유원지, 청주의 중앙공원 등 노인들이 모여드는 곳은 주로 공원이다. 청주 중앙공원의 모습은 적막한 서울과는 또 다른 분위기다. 하루 400여명의 노인이 모여 5만~10만원씩 적지 않은 금액으로 내기 윷놀이를 하거나, 술판을 벌이고 소란을 피우는 등의 행위가 이어지고 있었다. 결국 ‘공원 내 음주소란·사행성 오락 등 불법 무질서 행위 강력단속’이라는 경찰의 현수막이 내걸리며 그들은 또 다른 테두리 안에 갇혀버렸다.
인천 자유공원 역시 노인들이 모여드는 것을 반기는 이는 거의 없었다. 지난 4월 브라보 마이 라이프 기획취재 당시 고량주 나발을 불며 길거리를 활보하는 노인을 지켜보던 김모(29)씨는 “집에 계시는 것이 적적해 나온 것은 이해하지만 술 마시고 위화감을 조성하는 것에는 눈살이 찌푸려진다”고 말했다. 정모(68)씨는 “젊은이들의 눈치가 안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이곳에라도 와야 바둑을 두는 사람도 있고, 말벗도 있어 외로움을 달랠 수 있다”고 하소연했다. 공원마다 노인들의 모습과 분위기는 달랐지만, 이들 모두 ‘그것이 있어 그곳에 간다’라는 느낌을 주지는 못했다.
기자가 안산의 한 공원을 방문했을 당시 한 노인에게 “무엇 때문에 공원으로 모이는가”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는 “그럼 공원 말고 우리(노인)가 어디에 가야 어울리겠는가”라고 되물었다. 그의 말처럼 공원만큼 노인과 어울리는 공간을 찾기란 쉽지 않다.
“젊은사람들은 노인들에게 뭐든 양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탔다가 ‘특별히 할 일 없으면, 이렇게 사람 많은 시간은 피해서 타면 안 되나. 어차피 공짜로들 타면서’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이제는 할 일 없는 노인이라는 이유로 뭐든지 뒷전으로 밀리는 거 같아 화도 나고 서운했다.”
종로3가 지하철역사에서 만난 70세 노인의 푸념이다. 그는 그나마 종로에 노인들이 몰린 곳에 오면 ‘그런 양보’는 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어쩌면 노인들이 공원으로 모이는 까닭은 ‘그들(노인)이 원해서가 아니라, 그들(젊은이)이 원해서’가 아닐까.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모든 욕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젊은 시절 못해 봤던 것, 더 나이 들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로 그 어느 세대보다 욕구, 아니 욕망이 넘친다. 하지만 그들의 욕구를 ‘욕심’ 또는 ‘주책’이라 말하는 젊은이들의 시선에 그들의 꿈은 점점 작아져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