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와 함께 사는 6·25 참전유공자가 위로금을 받는다.
재단법인 우민재단(이사장 장덕수)이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오는 11일 오전 11시 청주보훈지청 회의실에서 '6·25 참전유공자 조손가정'에 위로금을 지급한다.
재단은 국가에 헌신하고도 법적·제도적 제약으로 국가유공자로 지정되지 못한 50가구를 선정해, 총 5천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전달식이 끝나고 재단은 요양시설과 병원에 방문해 입원 중인 유공자도 위문할 예정이다.
장덕수 이사장은 "오늘날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것은 국난에 몸소 참전하신 분들의 노고 덕분"이라며 "조그마한 보답이나마 해드릴 수 있음에 감사하다"고 밝혔다.
이 재단은 장덕수 이사장이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170억원의 개인 재산을 출연, 올해 초 설립됐다.
※네이버 지식IN 파워지식인으로 활동하고 계신 스머프 할배 정성기님의 블로그 글을 저희 '브라보 마이 라이프' 사이트 성격에 맞게 재구성-편집한 기사입니다.
글ㆍ사진| 정성기
이 늙은 취사병이 오늘은 다이어트를 하는 아줌마들에게 좋고 징글맘과 꼬맹이 손녀들에게 아주 좋은 우엉을 채로 잘게 썰어 쇠고기와 볶아 맛도 좋고 영양 만점인 '쇠고기 우엉채볶음' 만드는 법을 아주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려고 해요.
오늘 요리의 주재료인 우엉은 당질의 일종인 이눌린이 풍부해 신장 기능을 높여주고 섬유질이 풍부해 배변을 촉진하기 때문에 변비치료에 좋고 다이어트에도 효과적입니다. 신장 기능을 향상시켜 이뇨작용에 효과가 있어 여자들의 다이어트 식품으로 좋을 뿐만 아니라 어린이와 노인을 위한 건강식품으로도 아주 좋고 말려서 우엉차로 먹어도 좋습니다.
우엉은 귀찮아도 직접 흙이 묻은 것을 사서 껍질을 벗겨서 채로 썰거나 칼로 잘게 썰어서 요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 이유는 잘게 김밥용으로 파는 것들은 99%가 수입산이고 약품으로 껍데기를 벗겨서 대량 생산하는데 생산 공정이 너무 비위생적이기 때문이죠. 이런 우엉은 내 가족이 먹는 음식으로는 기분이 안 좋아 처음부터 기본에 충실해 원점(흙이 묻은 우엉)에서 시작하려고 합니다.
우엉은 껍질을 금방 벗겨도 이렇게 색이 변해요. 하지만 바로 볶을 것이니 조리를 하면서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우엉으로 반찬을 조리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우엉을 채로 썰든 칼로 떡국처럼 썰든 식초물에 10분 이상 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래야 소독도 되고 섬유질이 부드러워져 반찬으로 만들었을 때 맛도 좋고 씹기에도 편해져요.
양념소스는 조림간장 또는 진간장에 올리고당(설탕도 가능)에 다진 마늘을 티스푼으로 하나 정도 넣고 생수를 붓고 맛을 조절하면 됩니다.
우엉을 끓는 소금물에 먼저 5분 정도 끓이면 더 부드러워지는데 끓인 후에 바로 흐르는 물에 씻어 소쿠리에 놓고 식초물을 빼야겠지요.
궁중프라이팬에 식초물로 한번 끓인 우엉채와 다진 쇠고기 100g을 넣고 오늘의 요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궁중프라이팬에 있는 우엉채와 다진쇠고기 위에 양념소스를 붓고 청주나 맛술을 첨가하면 좋은데 오늘 여기서는 소주 한잔을 부었지요.
모든 재료를 프라이팬에 넣고 센 불로 5분 정도 끓이면서 비비고 볶으면서 잠시 약한 불로 조절하고 징글맘께서 드시기에 좋게 우엉채를 가위로 다시 더 잘게 썰면서 요리를 서서히 마감하면 됩니다.
우엉을 잘게 채로 썰었지만 다시 조리과정에서 가위로 더 잘게 썰어야 징글맘께서 드시기에 아주 부드러워져 제대로 된 '쇠고기 우엉채볶음'이 됩니다.
이렇게 잘게 우엉채를 썰어 요리를 하여 징글맘께서 쇠고기맛과 어우러진 이 요리에 밥을 비벼드셔도 좋고 손주들도 먹을 수 있는 고급요리가 탄생되었답니다.
“부모님은 돌아가실 때까지 자식이 모시는 게 도리 아니겠습니까”
노부모를 함부로 대하는 ‘못난 자식’들이 지면을 채우곤 하는 요즈음, 충북도청의 윤상기(56) 보육지원팀장은 보기 드문 효자다.
윤 팀장은 부인, 두 딸과 함께 청주시 상당구 금천동의 한 아파트에서 94세의 장모를 모시고 산다.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고 치매까지 앓아누워만 계시는 장모를 볼 때마다 그는 눈시울을 붉힌다.
“일어나실 수가 없어 누워계시다 보니 등에 욕창까지 생기셨어요. 얼마나 더 사실지 걱정이네요”지난해 11월 당시 92세의 어머니가 세상을 뜨기 전까지만 해도 윤 팀장의 집에서는 10년이 넘게 두 사돈이 함께 살았다.
그의 어머니 역시 아들과 며느리, 손녀들의 병 시중을 받으며 생활했다. 치매에한쪽 눈까지 실명했으니, 병세가 사돈보다 못한 편은 아니었다. 돌아가시기 7년 전에는 뇌병변까지 얻었다.
몸이 성치 않은 두 사돈의 동거는 너무나 쉽게 성사됐다.
부인이 몸이 불편한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으니 윤 팀장 자신은 장모의 병수발을들겠다고 나선 것이다.
윤 팀장의 어머니와 장모가 동거를 시작했을 때는 성치 않은 몸을 가누기 힘들다 보니 서로에게 화를 내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한다.
그러나 어머니와 장모의 건강이 더욱 나빠지면서 다툴 기력조차 잃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윤 팀장은 오히려 한없이 가슴이 시렸다.
부인이 초등학교 조리장으로 근무하게 되면서 장모를 보살피는 일은 중학생인 두 딸의 몫이 됐다.
오전에는 요양보호사가 있지만 오후에는 두 딸이 외할머니의 몸을 닦아 드리고 밥도 먹여 드린다. 어머니가 안 계실 때 대소변을 치우는 것도 두 딸의 일이다.
부모는 돌아가실 때까지 자식이 모셔야 한다는 게 윤 팀장의 변함없는 지론이다.
윤 팀장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효라는 것은 말이나 책으로 가르칠 수 있는 게 아니다”며 “부모가 돌아가실 때까지 모시며 자식 된 도리를 다하는 걸 아들·딸에게 보여주는 것이 참 교육”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윤 팀장은 외할머니에게 극진한 두 딸을 볼 때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대견스럽기만 하다.
주변 지인들이 “요양원에 보내시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할 때면 그런 말 하지 말라며 손사래부터 친다.
집에서는 장모에게 지극 정성이고, 직장에서는 노인복지, 다문화가족, 영유야 보육업무를 척척 해 내는 윤 팀장은 동료들 사이에서도 ‘보배’다.
이런 윤 팀장도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어려움을 겪었다.
집에서 돌아가셨다고 병원 의사들이 사망 진단서를 떼어주지 않아 고생하다가 한나절이 지나고 나서야 검안서를 받아 영안실에 모셨다고 한다.
윤 팀장은 이런 경험 덕에 우리사회에 만연한 잘못된 관행과 제도를 바로잡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모님이 건강하게 오래 살았으면 하는 바람뿐”이라고 말하는 윤 팀장의 눈가에는 금세눈물이 그렁거렸다.
이 시대에서 노인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평균수명은 늘고 있지만 은퇴연령은 갈수록 낮아지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 오늘날의 한국이다. 빈곤을 떨치기 위해 일평생을 처절하게 저항해도 나이 들어 맞닥뜨리는 것은 계속되는 빈곤에 소외까지 더해진다.
살기가 팍팍해지면서 노화는 단순히 나이로만 정의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닌 것이 됐다. 오근재 전 홍익대 교수(현 연세대 특별초빙교수)가 자신의 저서인 ‘퇴적공간’에서 지적했듯 건강한 신체와 지적 능력을 지닌 사람이라 해도 노동시장에서 퇴출되면 한 순간에 노인으로 전락한다. 노화는 한 개인이 노동시장으로부터 밀려나는 거리에 비례한다는 것이다. 이는 저성장시대에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환경 속에서 누구나 노인이 될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한때 사회를 이끌어온 주역이었으나 지금은 떠밀리다시피 ‘잉여’의 존재로 전락한 그들. 청주, 인천, 안산에서 만난 노인들은 하나같이 ‘갈 곳이 없다’고 호소했다. 왜 다른 선진국에서는 볼 수 없는 노인의 군집현상이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이 문제를 남보다 먼저 고민한 오근재 교수(사진)를 통해 들어봤다.
◇전통적 가족붕괴가 노인 소외의 뿌리
“가까운 일본에는 서울의 종묘시민공원 같은 노인들만의 퇴적공간은 없습니다.”
오 교수는 한국 노인의 군집현상을 전통적인 가족제도의 붕괴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일본도 에도시대 장인들 사이에 장남에게 직업을 물려주는 은퇴제도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일정한 연령을 기준 삼는 방식이 아니라, 언제든지 부모가 장남에게 ‘이제 맡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는 시점에 자식에게 직업을 물려주는 방식이었다.
부모는 장남의 휘하에 스스로 들어가서 가게의 일을 도왔고 은퇴한 노인들은 아들의 존경을 받으면서 세습자의 조력자로서 여생을 보낼 수 있었다. 일본의 이런 세습제는 지금도 여전히 큰 흐름이 유지되고 있다.
일본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은퇴한 노인은 가정과 사회에서 배제된다. 가족제도의 붕괴로 개인의 고립이 심화되면서 노인들이 위안을 구하고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퇴적공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는 것이 오 교수의 분석이다. 비슷한 처지에 놓인 수많은 이웃을 목격함으로서 안도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빠른 산업화는 가족제도 붕괴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 산업화의 부작용으로 가족제도의 붕괴가 가속화됐기 때문이다.
“서구의 산업혁명은 약 250년이라는 세월 속에서 사회적 충격을 흡수하면서 점차적으로 진행됐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지난 50년 동안에 속도 빠르게 이뤄졌어요. 지금은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의 반열에 올랐지만 급속하게 사회가 변해가는 과정에서 속도에 적응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그 충격으로 쓰러졌습니다. 현대인들은 변화의 내용보다 그 변화의 속도에 충격을 받아요. 그 결과로 지금의 노인 집합이 나타났다고 봅니다.”
소외란 원래 자기 자리에 있어야 할 존재가 어떤 이유로 그 자리로부터 떠나 있는 현상이다. 노인의 소외는, 노인이 원래 있어야 할 자리를 잃어버리고 그 자리를 떠나게 됨으로 일어난다.
그는 “가족구성원인 노인 가족의 존경을 받으며 가정을 지킬 때 소외되지 않을 수 있다. 전통적인 가족제도에서는 그 자리가 노인의 자리였기 때문”이라며 “이런 측면에서 일차적으로 가족제도의 붕괴가 노인을 소외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더 이상 내다팔 것이 없는 노인들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오 교수는 가족제도의 붕괴뿐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노동력의 상실도 노인이 소외되는 중요한 이유로 지목한다. 자신을 구성하는 모든 것을 돈으로 바꾸면서 자신의 가치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살고 있는 인간은 돈이 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시장에 내다 팝니다. 지식도, 체력도, 몸매의 아름다움도, 심지어 감정까지도……. 사람들은 이들을 노동이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내다 팔아서 동가물인 화폐와 교환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원래 인간에게 고유한 것들입니다. 인간 활동과 감정은 인간 자신의 구성물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지니고 있었던 돈이 될 만한 것들을 모조리 팔아서 소진되었을 때, 인간은 소외된다. 원래 자기의 것들을 모조리 팔아버려서 이제는 더 이상 팔 것들이 남아 있지 않을 때, 인간은 어느 순간 자신이 빈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마치 술병에 술이 더 이상 남지 않을 때처럼 말입니다. 이때도 그 병은 술병일까요? 자본주의 체제에서 젊음을 바쳐온 이 시대의 노인들도 마치 빈 술병처럼, 자신의 것들을 모조리 팔아버리고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에 빠져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돈이 될 만한 것을 더 이상 갖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오 교수는 빈곤층과 노인의 소외현상을 비슷하게 평가한다. 인간은 개나 소처럼 생물학적인 존재지만 문화적 가치를 높게 친다.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모든 교환가치는 결국 문화적 가치와 연계된다. 이런 식의 가치부여가 자본주의 사회의 시장가치를 형성하는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빈곤층은 노인들처럼, 시장에 내다 팔가치를 지니지 못한 계층입니다. 그러므로 문화적 존재에 근접하지 못하고 생물학적인 존재에 근접한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인들이나 빈곤층을 이루고 있는 하층계급에 속한 사람들, 이들은 원래 문화적 존재가치를 인정받으면서 살아야 마땅하며 그렇게 살고 싶은 존재들인데, 그들의 자리에서 떨어져 나와 생물학적인 존재에 가까운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복지정책은 가족관계 복원에 힘써야
오 교수는 정부의 복지정책도 가족해체와 노인소외의 중요한 이유라고 주장한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더 많은 보조금을 타내기 위해서는 가족과의 관계를 부정할 수밖에 없는 현행 복지정책이 노인의 고립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는 생각이다. 현재와는 정반대로 가족관계를 강화시키는 복지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오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우리나라의 복지제도가, 어린아이든 젊은 부부든 노인이든 가족관계로부터 이탈되면 이탈될수록 지급액이 커지는 지급방식을 채택하고 있어 시간이 흐를수록 노인들을 소외시켜나갈 것이라고 예상한다.
“지금의 복지제도는 인간을 개인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영유아를 집에서 엄마가 직접 양육하는 경우보다 영유아 보호시설에 위탁하는 경우에 정부나 지자체의 보조금이 많아집니다. 노인도 홀로 남아 있을 때일수록 보조금 지급액이 커집니다. 아무리 혼자 힘들게 생활하더라도 아들이나 딸이 서류상 가족관계로 남아 있으면 그들로부터 실질적으로 아무런 생활보조비를 얻어 쓸 수 없다고 하더라도 정부로부터의 복지비용은 격감합니다.”
노인들이 한 푼이라도 복지비용을 더 받으려고 자녀들과 자신의 삶이 부정하기 위해 몸부림친다는 게 오 교수의 견해다. 그래서 그는 우리 사회에서 복지정책 뿐 아니라 모든 정책이 가족관계를 복원하는 방향으로 입안되고 추진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민 개개인의 소외감을 줄이고 행복감을 증대시키기 위해서다.
“이는 안보와 국가방위의 문제와도 직간접적으로 연계됩니다. 지켜야할 부모나 자식도 없고 사랑하는 이웃도 없는 국민들로 국가가 구성되었을 때, 자기의 목숨을 걸고 조국을 지킬 수 있는 개인은 흔치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노인들을 돌보는 복지센터와 같은 곳도 가정을 지원할 수 있도록 방향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복지센터는 ‘상처 싸매기’와 같은 대증요법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 보다 바람직한 일은 노인들이 가정으로부터 더 이상 시가지를 배회하지 않도록 새로운 복지정책을 만드는 것이다.
“법의 정신은 마침내 법 없는 사회를 추구한다는 말처럼, 길거리에서 소일하는 노인들의 숫자가 줄어들어 노인복지센터가 쓸모없는 기구가 되는 날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저는 복지정책의 입안자도 시행기관의 관리자도 아니지만 보다 길고 인내를 요구하는 정책을 세우고 이를 시행해나가야 한다고 보는데……. 이러한 일을 공약으로 내거는 정치집단이나 정치가는 없겠죠. 그러한 공약으로는 표를 얻어낼 수 없을 테니까요.”
오 교수는 노인만을 위한 공간이 사라지고 우리 모두가 어우러지는 공간을 꿈꾼다. 분리되고 격리돼 있기 때문에 ‘노인만을 위한 공간’이라는 꼬리표가 붙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방황하는 노인들의 군집이 많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그 만큼 불확정성이 높은 사회라는 지표이기도 하다.
“노인만을 위한 공간이란, 그것이 아무리 좋은 시설, 좋은 운영시스템을 지녔다할지라도, 그것은 우리 사회의 주류로부터 격리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 사회가 분류되고 찢기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모두가 어울려 사는 사회가 궁극적으로 우리가 추구해나가야 할 바람직한 사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광만의 나무 이야기 - 진달래
진달래는 봄이 되면 우리 산하의 도처에 지천으로 피어 우리 민족의 정서를 그대로 나타내주는 꽃이자, 우리와 가장 낯익은 꽃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북쪽 지방에서는 잘 살지 못하는 무궁화보다는 차라리 전국 어느 곳에서도 잘 사는 진달래로 국화를 삼자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이른 봄이면 여수 영취산, 완주 모악산, 창원 천주산, 밀양 종남산, 대구 비슬산, 부천 원미산, 강화도 고려산 등에서는 진달래 축제가 벌어진다. 한라산의 철쭉제는 진달래꽃의 축제이다.
중부지방에서는 진달래를 참꽃이라고 하는데, 이는 봄에 꽃을 따서 그대로 먹거나 전(煎)을 붙여 먹기 때문에 ‘참(眞)꽃나무’라 하고, 이에 비해 철쭉꽃은 유독성이어서 먹을 수 없으므로 ‘개(狗)꽃나무’라고 한다. 화전은 꽃전이라고도 하며 진달래꽃을 따서 꽃술을 제거하고, 찹쌀가루를 묻혀서 참기름에 띄워 지져 먹는 떡을 말한다. 조선 후기의 세시풍속지 에도 ‘삼월 삼짇날에 진달래꽃을 따서 찹쌀가루에 묻혀 떡을 만들어 참기름에 지진 것을 화전이라 한다’고 적고 있다. 또 진달래술은 두견주(杜鵑酒)라 한다. 진달래 꽃의 꽃술을 제거하고 꽃잎만 사용해서 만드는데 청주를 빚을 때 찹쌀 고두밥과 진달래 꽃을 층으로 쌓아 빚거나, 청주 항아리 속에 진달래 꽃을 명주 주머니에 넣어 한 달쯤 담궈두어 숙성시키는 방법을 사용한다.
남도지방의 은어에 어린 처녀를 일컬어 연달래라 하고, 성숙한 처녀는 진달래, 그리고 과년한 노처녀는 난달래라 한다. 이규태 칼럼에서는 이것을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진달래는 꽃 빛깔이 달래꽃보다 진하다 하여 진달래란 이름을 얻고 있다. 진달래꽃의 빛깔이 달래의 그것보다 연한 것은 ‘연달래’라 하며, 숙성한 처녀를 ‘진달래’, 그리고 시드는 장년 여인을 ‘난(蘭)달래’라 불렀는데 그것은 바로 그 나이 무렵의 젖꼭지 빛깔을 연달래, 진달래, 난달래의 꽃 빛깔로 비유한 것이니 아름다운 외설이 아닐 수 없다”
진달래의 중국이름은 두견화(杜鵑花)이다. 이는 두견새, 즉 소쩍새가 울기 시작할 무렵에 꽃이 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두견화에는 슬픈 전설이 전한다. 촉나라의 망제(望帝) 두우(杜宇)가 위나라에 망한 후, 다시 나라를 찾으려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죽어 그 넋이 두견새가 되었다고 한다. 한 맺힌 두견새는 피를 토하며 울었는데, 그 피가 진달래 꽃잎에 떨어져 꽃잎이 붉게 물들었다고 한다. 또 두우가 촉나라로 돌아가고 싶어서 귀촉(歸蜀)귀촉하며 피를 토하듯 운다고도 전한다. 두견새는 봄이 되면 더욱 슬프게 밤낮으로 울어 한번 우는 소리에 진달래꽃이 한 송이씩 떨어진다고도 한다.
어쨌거나, 진달래꽃은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시는 님이 고이 돌아오시도록 걸음걸음에 뿌리는 아름답고도 슬픈 우리 민족의 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