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마케팅 강의시간 중에 SNS의 여러 가지 특성과 장단점을 비교하게 되었다. SNS는 조금씩 다른 특성이 있고 개인 간의 소통이나 단체의 성격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한다. 한 번 발송하면 수정이 불가능한 카카오톡의 위험을 강조하면서 애인에게 보낼 문자를 아내에게 잘못 보냈을 때를 예로 들었다. 그러자 얼른 집에 가서 아내 휴대폰에서 자신이 보낸 카톡 내용을 지우면 된다고 한 수강생이 괴짜 아이디어를 내서 모두 폭소를 터트렸다.
그러나 단체 카톡 방에 잘못 올린 글은 회원들 휴대폰에서 다 지울 수 없어 때론 심각한 상황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정치, 종교, 여성 이야기를 잘못 했다가는 매장되기가 쉽다. 지난 선거 때 그런 일이 생겼다. 필자가 회원으로 있는 대학교 동기 단체 카톡 방에서 정치 관련 논쟁이 격렬해지더니 급기야 욕설까지 했다. 지켜보면서도 참 불편했다. 그 논쟁에 끼어들었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몰라 눈팅만 했다. 급기야 몇 명이 탈퇴하고 동기끼리 불편한 관계가 되는 것을 보면서 서로 대면하지 않고 문자로 의사표현을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실감했다.
또 다른 단톡 방에는 특정 종교와 관련한 글을 매일 올리는 사람이 있다. 물론 다 좋은 내용이다. 그러나 단톡 방에는 무신론자부터 다양한 종교 신자들이 있다. 자기가 믿는 종교와 관련한 글을 계속 올리는 것은 누가 봐도 문제가 있는데 정작 본인은 거룩한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우리는 SNS 홍수 시대에 살고 있다. 카카오톡, 밴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유튜브, 카페, 블로그 외에도 생소한 이름의 SNS가 많다. 개인 대화방도 있고 단체방도 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 초대되는 일방적인 방도 있고 자신의 의지대로 가입하는 선택적인 방도 있다. 지인들과 정보를 주고받고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 용도로 사용하지만 마케팅이나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통계를 보면 연령대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소통 수단으로는 카카오톡, 밴드, 페이스북을 주로 사용한다.
문제는 이러한 SNS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의외로 많고 때로는 관계를 망가뜨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탈퇴하기 어려운 이유도 있어 버티고 있자니 예의 없는 회원들 때문에 무척 힘들다.
그래서 SNS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인 에티켓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그것들을 정리해본다. 먼저 프로필에는 본인 사진을 넣어야 한다. 프로필에 아예 사진을 넣지 않는 사람도 있다. 본인의 근황을 노출하고 싶지 않은가보다 하고 짐작은 되지만 얼굴 실루엣만 있는 그래픽을 보면 뭔가 숨기는 것 같아 친밀감이 사라진다. 꽃 사진이나 개, 고양이 등 동물 사진을 넣는 사람도 있는데 역시 호감이 가지 않는다. 대면하지 못하는 사이버 공간에서 원활히 소통 하려면 상대의 얼굴 정도는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본인 얼굴이 노출되면 좀 더 예의를 갖출 가능성도 있다.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모르겠고 나이도 짐작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야간이나 새벽 시간대에 글을 올리는 것도 결례다. 단톡 방에서 사적 대화를 지켜보는 것도 괴롭다. 검증 안 된 가짜 뉴스를 퍼 나르는 것도 좋지 않은 습관이다. 정치적인 글이나 특정 종교와 관련한 글은 정말 불편하다. 끊임없이 그런 글을 올리는 사람들은 편협하거나 타인과 소통이 어려운 성격처럼 보인다. 그래서 아예 그런 사람들이 올린 글은 내용을 확인하지 않게 된다.
괴이한 이모티콘을 남발하는 사람도 있다. 괴물의 입에서 불이 뿜어져 나오거나 회전하면서 춤을 추기도 하고 폭파 장면이나 흉측한 동물도 등장한다. 이모티콘이 뜰 때마다 휴대폰이 징징거린다. SNS를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단톡 방 활동도 한다. 단톡 방에서 이모티콘이 남발되면 종일 휴대폰이 울려대고 정작 중요한 내용은 자꾸 위쪽으로 사라져버려 이중으로 불편하다.
본인 동의 없이 단톡 방에 초대하는 것도 실례라 생각한다. 사이버 공간에서도 같은 방에 있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과 강제로 한 공간에서 엮이는 것은 괴롭다. 탈퇴하면 되지만 그 공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누가 탈퇴하는지 알게 되어 있어 초대한 사람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면서 탈퇴하는 것도 신경 쓰이는 일이다.
결정적으로 괴로운 것은 교훈이나 삶의 지침이 되는 긴 글을 매일 올리는 사람들이다. 세상을 살면서 뭐가 교훈이 되는지 삶의 지침이 되는지 이제 다 알 만한 나이다. 도덕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글들은 때로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내용이다. 그 많은 지침을 다 지키는 게 가능할까 하는 생각에 오히려 반발심도 생긴다. 이런 글을 매일 찾아 올리는 사람의 정성을 무시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온라인에서 이렇게 일방적인 행태를 보이는 사람은 오프라인에서도 타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일방적일 가능성이 많다.
SNS는 이제 우리 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온라인 공간의 관계망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이루어질 때 잘 유지될 수 있다.
우리 집은 딸과 아들이 애를 둘씩 낳아 손주가 넷이다. 식구가 늘다 보니 가족들과의 소통을 위해 단톡방을 개설하기로 했다. 필요한 소식을 주고받기도 하지만 사소한 집안일이나 유익한 생활정보까지도 올려놓는다. 그런데 한 달 전 딸애가 사진으로 찍어 올린 톡 내용은 매우 황당하기도 했고, 애들이 어른들에게 한 방 펀치를 날리는 충격을 주었다.
사연은 이렇다. 올해 초등학교에 간 지 2개월밖에 안된 셋째 손녀가 학교숙제를 집에 와서 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숙제의 교육내용은 ‘식구들이 같이 돈을 모았다면 가족여행을 가는 것도 좋지만, 이 돈을 어려운 불우이웃을 돕는 데 쓰면 더 좋다’는 취지였다. 이런 설명을 한 후에 애들에게 질문을 통해 선한 행동으로 유도하려는 학습 내용이었다.
“만약 여러분의 가족이 함께 모은 돈이 있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하고 싶나요?”
“집을 살 거예요!”
“그와 같이 생각한 까닭을 써보세요.“
“엄마가 자꾸 부동산에 가서….”
실은 딸애가 몇 달 전부터 학군이 좋은 강남 쪽으로 이사해볼까 해서 전셋집을 물어보러 복덕방에 다니고 인터넷에서 자주 부동산을 검색한 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어린 애들은 거짓이나 꾸밈이 없다. 본 대로 들은 대로 배우고 어른들을 따라서 행동을 한다. 처음 당해보는 일이라 어이가 없고 황당해하는 딸에게 무슨 답을 할까 하다가 나는 이렇게 카톡에 올렸다.
“애들은 어른들의 거울이란다. 그래서 예로부터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자란다고 했다.”
이런 현상은 어린애들에 그치지 않으며 성장을 해서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 누구든지 부모들은 자기의 애들이 핸드폰에 무어라고 입력해두었을까 궁금해하는 경우가 많다. 의외로 엄마, 아빠라고 그대로 찍혀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한다. 지난해 송년회 모임에서 외교관 출신 정부 고위관료였던 국장이 실토한 실제 이야기다.
모처럼 일요일 집에 있는데 갑자기 고2에 다니는 딸애가 학원을 가려고 나서던 차 핸드폰이 안 보인다고 야단법석을 떨며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혹시 집 어디엔가 떨어져 있을지도 모르니 전화를 해보라고 했다. 그때 그가 파자마 차림으로 앉자 있던 소파 밑에서 전화가 ‘삐르르’하고 울렸다. 평소 딸애한테 아빠로서 최선을 다해주었다고 생각해왔던 그는 딸이 핸드폰에 무어라고 입력해놨을까 궁금하던 차에 이를 확인해볼 절호의 기회라 생각되어 흘깃 바탕화면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왕 짜증!’
순간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하나밖에 없는 딸을 애지중지 키우며 아버지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나. 세상이 무너지는 거 같았고, 인생을 헛되이 살아온 박탈감까지 일 다 보니 울화가 치밀었다. 도저히 그 마음을 어떻게 주체할 수 없어서 마음을 달래려고 집을 나와 평소 다니던 절로 달려가 스님을 찾아갔다. 그러나 스님은 대수롭지 않은 듯 한마디만 던졌다.
“다 업보입니다. 그 답은 오직 거사님 마음 안에 있습니다.”
그때 TV프로 '아이가 달라졌어요!'를 본 기억이 났다. 아이가 문제라고 생각하던 부모들이 CCTV에 찍힌 자신의 모습을 보고 아이는 단지 부모를 따라 할 뿐이라는 걸 깨닫고 비로소 자신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장면이 생각났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생각해보았다. 한참 지난 뒤에야 모든 게 다 나의 잘못임을 깨달았다.
아침 새벽에 일어나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등교해서, 학교로 학원으로 하루 16시간을 공부에 지쳐 녹초가 돼 들어온다. 현관문에 들어서는 딸을 보고, '얼마나 힘들었냐' 위로는 고사하고 ‘빨리 씻고 공부 좀 더 하다 자라’고 다그치기 일쑤였다. 또 한 달 내내 죽도록 고생하고 시험 봐서 성적표 받아오면 수고했다는 격려는 못 할망정 ‘너는 아빠 닮아서 머리는 좋은 데 노력을 안 해서 이렇다’라는 둥 몰아붙이기만 했으니…. 짜증이 날 만도 하다. 왕짜증 맞다!
그 뒤로 개과천선이라고나 할까. 예전과는 완전히 달리 딸애의 입장에 서서 친구 같은 눈높이에 맞게 화법 먼저 바꾸었다. 무조건 잘 해주고 베풀기보다 딸애가 원하는 쪽으로 하나씩 다가갔다. 처음에는 서로 너무 어색했지만, 서서히 딸애의 태도와 행동도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였다.
2년 뒤 대학에 들어간 딸이 아버지의 생일이라면서 일찍 집에 오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그날따라 설레는 맘으로 딸이 무슨 말을 할까 너무도 궁금했다. 빨간 장미꽃 몇 송이와 함께 딸애가 준 최고의 선물은 스마트폰에 찍힌 왕짜증이 이렇게 바뀐 문구였다.
‘대한민국 최고 울 아빠!’
대전 유성 5일장이 서는 날이다. 오후 늦게 장바구니 하나 들고 가볍게 집을 나섰다. 한 시간 후면 남편 퇴근시간과 얼추 맞아 떨어지니 만날 시간과 장소를 카톡으로 보냈다. 무엇을 살지 작정하진 않았지만 내 눈에 푸성귀 하나가 자꾸 들어왔다. 미나리다. 저녁엔 미나리 전과 막걸리를 식탁에 올려볼까 싶었다. 모처럼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떠올린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스스로 기특(?)했다. 나는 밭에서 자라는 손가락 한 뼘 길이의 향이 진한 돌미나리를 골랐다. 내 옆에서는 다른 손님이 무장아찌를 비닐에 대여섯 개 정도 담아 값을 흥정하는 중이었다.
“하나 더 줘요. 단골로 오는데.”
“큰 건 안돼, 쩌~기 째깐한 거 하나만 가져가.”
무장아찌를 놓고 두 사람의 오가는 얘기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얼마나 맛있기에 장아찌를 저렇게 많이 살까싶어 손님한테 내가 넌지시 물었다.
“그게 그렇게 맛있어요?”
“입맛 없을 때 괜찮지. 매운 고추 쫑쫑 썰어서 깨소금하구 참기름 살짝 둘러 먹으면 맛있어~.”
평소엔 보이지도 않던 무장아찌다. 나는 5천원을 내고 돌미나리 한 봉지와 손바닥만한 무장아찌 한 개를 받았다. 물건을 파는 아주머니가 돌아서는 내게 당부하듯 말한다.
“장아찌 간이 삼삼한 께 짠기(짠맛)를 따로 빼지 말구, 한 번 씻어서 먹기만 하면 되야.”
미나리와 무장아찌라니. 두 가지 다 먹고 싶어 산 건 아니다. 사 놓고 보니 남편 식성에 맞춰 산 게 되었다. 파장 분위기가 되면서 여기저기 떨이로 내놓는 물건들 값이 반 이상으로 내려간다. 혹시나 무거운 짐을 들었을까 싶어 남편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온다. 집으로 가면서 저녁엔 미나리전과 막걸리를 먹을 거라고 하니 남편은 그렇잖아도 장에서 미나리를 사고 싶었는데 마누라 번거롭게 할까봐 말을 안했단다.
미나리를 물에 담그니 점점 생기가 돈다. 부침개를 하기엔 양이 너무 많아 반은 데쳐서 새콤달콤 무치기로 한다. 지글지글 부친 미나리전과 막걸리로 입가심을 하는 남편의 입이 귀에 걸린다. 술은 딱 한모금만 맛나게 먹을 수 있는 나. 그 뒤에 오는 맛은 맛있게 받아들일 수 없는 구조라 술 한모금 뒤에는 물잔으로 술을 대신한다.
데친 미나리를 무치려고 다진 파와 찧은 마늘, 매실청을 넣었다. 주방에 서서 오른손이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씽크대 선반 문을 열었다. 소금, 설탕, 고춧가루 등 양념통들이 올망졸망 모인 칸에 깨소금이 들어있는 유리병이 보였다. 그 병을 꺼내려면 병 위에 올려놓은 또 다른 병을 치워야 했다. 그 순간 병 하나가 손쓸 새도 없이 떨어졌다. 바닥에 부딪치며 뚜껑이 열렸다. 아마 지난번에 뚜껑이 덜 닫힌 것 같았다. 병은 주방 씽크대와 남편이 앉아있는 식탁, 그리고 냉장고를 둥글게 구르며 깨소금이 몽땅 쏟아졌다. 남편이 안 됐다는 듯 말했다.
“병을 층층이 쌓으면 위험하다고 지난번에도 얘기했는데...”
할 말이 없었다. 그때도 치워야지 했다가 그만 잊어버리고 오늘 드디어 사단이 났다. 남편은 막걸리를 먹다 말고, 나는 미나리 초무침을 하다 말고 바닥에 깔린 깨를 쓸고 정리했다. 친정어머니가 국산 참깨 볶은 거라고 따로 챙겨준 건데, 그 깨를 쓰레기통에 넣는 마음이 쓰렸다. 미나리 초무침은 깨소금 없이 식탁에 올렸다.
무장아찌를 잘 씻어 채를 썰었다. 한 개 집어먹으니 오독오독 씹는 맛이 정말 괜찮다. 아주머니 말대로 짜지 않고 삼삼하다. 고추를 쫑쫑 썰어 참기름을 두르고 나니 깨 없는 아쉬움이 더 크다. 남편이 웃으면서 말했다.
“와, 당신 이런 거 별로잖아. 어찌 장아찌가 눈에 들어왔담?”
누가 ‘촌놈’아니랄까봐. 남편은 어릴 때 자주 먹던 장아찌라며 반색했다. 하긴 나도 이제 그 짭짜름하고 쉽게 변하지 않는 은근한 ‘촌맛’이 좋을 만큼 나이를 먹었다. 막걸리와 미나리전, 거기에 무장아찌가 있는 식탁에서 기분이 업 되면 나오는 남편의 흥얼거림이 집 안으로 번진다. 덩달아 나도 상승되는 기분이다. 깨소금이 가 다 쏟아져 한 톨도 넣지 못했지만 또 다른 깨가 쏟아지는 저녁이었다.
가족들이 주고받는 ‘단톡’방에 아들애가 보낸 사진과 글이 떴다. 생후 한 달쯤이나 지났을까 싶은 새끼고양이 두 마리다.
“공사판에서 주움”
톡을 확인한 필자와 남편, 딸애가 각자의 공간에서 이모티콘이나 글을 올렸다. ‘에미가 찾을 텐데 새끼가 있던 자리에 다시 놔줘라, 까페에 올려서 입양할 곳을 알아봐라, 지금 뭘 먹고 있나, 귀는 깨끗한가, 화장실 준비는?...’
아들애는 새끼고양이를 주워 온 즉시 밥(사료)과 모래를 준비했단다. 두 마리가 함께 있으니 집을 비워도 부담이 덜 하고 서로 별 탈 없이 잘 지낸다고 했다. 내가 고양이 털 빛깔로 ‘깜냥’이와 ‘누렁이’이로 표현하자 식구들은 그렇게 이름으로 부르면 정드니까 A, B로 하잔다. 자취하며 대학에 다니는 아들애는 한창 시험기간인데 어쩌다 길냥이들이 눈에 띄었던 것 같다. 주워 온 곳이 공사장이어서 데려오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었단다.
우리는 저마다 속한 모임의 까페나 단체 카톡방에 깜냥이와 누렁이의 사연을 올렸다. 시간이 얼추 지나 한 지인한테 연락이 왔다. 검은고양이 한 마리만 키우고 싶은데,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려달란다. 아들애는 두 마리가 같이 입양되는 줄 알았다가 실망했다. 깜냥이가 입양되고 누렁이가 혼자 남으면 우리 ‘상냥이’와 같이 키워야겠다고 나는 내심 마음먹고 있었다.
상냥이는 작년 가을, 아들애가 집 근처에서 ‘냥줍(길에서 고양이를 줍는다는 뜻)’했다. 에미가 주변에 있을까봐 두고 봤는데, 이틀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아 아무래도 상냥이가 자기를 선택한 것 같다면서 키우게 되었다. 상냥이는 아들애 가운뎃자 이름과 길냥이의 냥이를 붙여 ‘상냥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지난 겨울방학 때, 아들애가 상냥이를 집에 데리고 왔다. 마치 신생아를 맞이하는 것처럼 식구들 관심은 온통 상냥이에게 쏠렸다. 3색깔로 암놈인 상냥이는 저를 쓰다듬기라도 하면 손을 물었다. 에미한테 옮았는지 귀에는 진드기가 있었다. 엉덩이가 앙상할 정도로 영양상태도 부실했다. 두 애들이 번갈아가며 상냥이를 데리고 병원에 드나들었다. 진드기치료를 받고 영양제를 구입했다. 온라인을 뒤져 사료와 별개로 습식사료 캔과 짜먹는 닭고기맛 츄르, 건빵에 별사탕 골라먹듯 사료에 넣어주는 맛과자 등을 구매했다. 게다가 장난감은 흔들면 반짝이며 팔랑거리는 것과 불빛을 따라 뱅뱅 돌게 하는 것으로 지루함을 피하고 운동량을 생각해서 골랐다.
상냥이가 에미로부터 받아야 할 ‘사회화’가 덜 된 만큼 식구들은 세심하게 관찰하고 보살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날 상냥이 울음소리가 평소와 달랐다. 알고 보니 발정이 난 것, 수술은 불가피했다. 날짜를 예약하고 수술하고 온 날, 플라스틱 깔대기가 상냥이 목에 둘러 있었다. 보기만 해도 불편스럽고 털 고르기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허공에 몸짓만 계속 움직이는 게 안쓰러웠다. 딸애는 헝겊으로 된 에코백을 잘라 플라스틱 깔대기를 빼고 대신 씌웠다. 목 둘레가 번거롭긴 해도 훨씬 움직임이 유연했다. 소독하고 약을 먹이고 수술한 곳의 실밥을 풀러 병원에 가는 일을 겪으면서 상냥이는 점점 상냥스럽게 변해갔다.
상냥이의 ‘야~옹’ 하는 소리는 상황에 따라 감이 다르다. 밖에 나갔다 돌아오면 냉큼 현관 앞으로 나와 꼬리를 바짝 세운다. 왜 이렇게 오래 있었어, 내가 얼마나 심심했는지 알아? 라는 표정으로 자기 몸을 슬쩍 비빈다. 간식을 줄 거라는 건 소리로 알아채며 식탁으로 다가온다.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는 기대의 눈빛은 애절하다. 이제 저음으로 ‘앉아!’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앉은 자세를 하며 기다린다. 아침에 일어나면 방울달린 쥐장난감을 물고 와서 ‘호~옹’한다. 제 딴엔 전리품을 내세우는 것 같다. 때로는 냉정하게 토라져서 혼자 고독한 뒷모습을 보인다. 식구들이 얼굴을 자기 얼굴에 들이밀면 분홍젤리같은 손바닥으로 살살 토닥인다.
상냥이는 이제 10개월 정도로 사람으로 보자면 질풍노도의 18세에 해당된다. 상냥이와 함께하며 우리의 생활영역은 예전 같지 않다. 문이 열린 어느 곳이든 침범하며 책상 위는 말할 것도 없고 책꽃이, 장롱, 냉장고, 에어컨 등 물건의 꼭대기는 모두 올라간다. 털은 또 어떤가. 바닥청소는 물론이고 하루에도 몇 번씩 수시로 ‘돌돌이’를 돌리고 박스테이프나 어쩌다 돌아다니는 스티커 등으로 털을 찍어낸다.
아들애가 깜냥이와 누렁이를 데리고 출발한다고 했다. 상냥이가 새끼고양이들을 만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무척 궁금했다. 새끼고양이와 9개월 정도의 차이가 있으니 에미처럼 돌봐줄지, 아니면 시샘과 질투를 할지 걱정과 기대가 교차됐다. 한 시간이 지난 후, 아들애한테 연락이 왔다. 출발하기 직전, 까페에 올린 글을 보고 동아리선배가 두 마리를 같이 입양하겠다고 했단다. 다시 가족톡의 알람이 계속 울렸다. ‘오~정말다행!!, 형제끼리 헤어지는 줄, 누군지 복받을 거얌’ 이라는 글과 이모티콘이 줄줄이 떴다.
어쩌다 한 식구가 된 상냥이는 고양이로 태어났으나 점점 개의 ‘충성심’을 보이고, 때로는 ‘냥냥’ 거리면서 간식을 내놓게 유도한다. 귀차니즘의 딸애가 날마다 화장실을 청소하고 손톱을 깎아주며 눈곱과 코딱지 떼 주는 일을 자발적으로 하게 만든다. 아프면 보험이 안 되는 진료비를 충당해야 한다고 더 적극적인 아르바이트가 필요하다며 아들애를 움직이게 한다. 이 모든 걸 감내하고라도 우리는 날마다 ‘묘한 가족’의 매력과 함께한다.
출근해서 근무를 하는데 아내가 보낸 문자가 도착했다. “우리 사위가 대리로 승진했대요!” 반가움이 와락 훈풍으로 몰려왔다. 그래서 가족 카톡방을 통해 축하 글을 올렸다.
“와~ 우리 사위 축하해! 역시 명불허전이야!” 필자의 칭찬에 딸도 냉큼 피드백 개념의 답신을 올렸다. “아빠, 고맙습니다! 사위한테도 전해줄게요.” 아들도 반가움의 글을 올렸다. 가족 카톡방은 작년에 아들이 만들었다.
여기엔 우리 부부와 아들, 딸이 참여하는데 앞으론 사위와 며느리도 들어왔으면 좋겠다. 사위의 대리 승진 이전인 지난 3월엔 아들이 과장으로 승진했다. 결혼 전의 낭보였지만 사돈어르신께서도 퍽이나 좋아하셨음은 물론이다.
승진은 직장인 모두의 희망이다. 직장인이라면 모두 제때에 승진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런데 같이 입사를 했으면서도 승진이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걸까.
전문가는 아니지만 경험상 이는 당사자가 어떤 마인드를 지니고 있느냐에 달렸다고 본다. 또한 평소 열정적으로 일을 하느냐 아니냐의 차이라는 것이다. 회사는 직원을 고용해 급여를 주는 고마운 대상이다.
반대급부로 직원은 회사를 향해 충성해야 한다. 이익을 창출하는 데 있어서도 게으름을 피우면 ‘찍힌다’. 회사는 자원봉사단체가 아니며 또한 어영부영 놀고먹는 직원을 결코 간과하지 않는다. 이런 관점과 정서에서 아들과 사위의 연이은 승진은 평소의 잠재력과 깜냥까지를 모두 쏟아 부은 데 따른 당연한 성과로 본다.
필자는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이는 공직에도 적용된다)을 세 부류로 본다. 회사에 꼭 필요한 사람, 있으나 마나 한 사람, 있어선 안 될 사람이다. 이 같은 부류는 필자의 직장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다만 이러한 객관적 지적에 대하여 정작 당사자는 모르쇠 내지 “나는 아니다!”라고 강변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현실적 괴리가 꿈틀대긴 하지만.
필자가 군복무 뒤 입사한 첫 직장은 영어회화 교재 영업직이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승부사적 기질이 다분했기에 지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명함과 팸플릿을 돌렸다. 영어회화 교재와 테이프의 내용을 토씨 한 자 안 틀리게 모두 달달 암기했다. 그런 열정이 담보되었는지 판매 실적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처럼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 공로를 회사에서도 인정했다.
덕분에 약관 20대 중반에 전국 최연소 사업소장으로 승진할 수 있었다. 내근직이었다면 어림도 없었을 파격의 승진은 오래도록 회사 직원들에게 회자되었다. 이는 그러니까 회사가 준 동기부여의 인센티브였다.
기실 승진은 일을 더 많이 하라고 주는 ‘합법적 족쇄’이기도 하다. 족쇄는 심신을 억압한다. 아들과 사위, 그리고 며느리와 딸은 아직 신혼이다. 앞으로 ‘두 남편’은 가정보다는 회사 일에 더 매진할 경향이 농후할 터다. 따라서 이를 ‘두 아내’가 현명하게 대처하면서 그에 걸맞은 나름의 내조까지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들이 신혼여행을 떠난 지도 어느새 열흘이 넘었다. 출국하던 날 공항에서 문자를 보낸다고 했다. 그래서 귀국하기 전까지는 문자도 카톡도 보내지 말고 오로지 노는 데만 충실하라고 했다.
열흘째 되던 어제 문자가 왔는데 모리셔스 공항으로 가는 중이라고 했다. 한국으로 오는 데만 12시간 이상이나 걸린다는 곳이 모리셔스란다. 그것도 중간에 두바이를 경유해야 한다니 대체 얼마나 먼 곳일까.
아들로부터 문자가 다시 왔다. 태풍이 심해서 비행기가 뜨지 못햇다고, 그래서 호텔에서 하룻밤을 더 묵은 뒤 오는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었다. “하는 수 없지 뭐, 기왕지사 그리 된 거 맘 편히 먹고 더 푹 쉬다 오렴”이라고 답신을 보냈다.
아들은 아직 귀국을 안 했지만 필자의 뒷갈망은 벌써 시작됐다. 떡을 맞추고 음료까지 사서 직장 동료들과 지인들에게 돌리기 시작했다. “덕분에 혼례 잘 치렀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안 하셔도 되는데.”, “아닙니다. 인사는 해야죠!” 지금은 야근 중이다. 새벽 4시 10분. 오전 7시경 퇴근하면 눈부터 붙여야 한다. 두어 시간 잠을 잔 뒤엔 지인과 약속한 장소 식당으로 갈 참이다. 아들의 결혼식을 빛내 준 지인에게 점심을 사야 하기 때문이다.
“전화 준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밥까지 사겠다고?” 지인은 그럴 필요까지 있냐고 했지만 신세를 졌으면 갚아야 하는 게 인간의 도리다. 인간은 대부분 세속적 동물이다. 준 만큼 받으려는 반대급부의 성향이 존재한다. 때론 그 정도에서 벗어나려는 경향까지 보인다. 예컨대 “나는 네 아들이 결혼할 때 부조(扶助)했는데 너는 내 아들이 장가간다는데 코빼기도 안 비춰? 이런 괘씸한!” 그러나 그렇게 지탄을 받는 대상 또한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런 소리 말어. 자네는 애가 둘인 반면 나는 달랑 하나 뿐이잖어. 까놓고 말해서 자네 딸이 먼저 결혼했을 때 나도 부조했어. 그러니 그걸로 쌤쌤(상쇄라는 의미)하면 되지 뭐.” 필자도 아들 결혼시키면서 경험한 ‘팩트’다. 심지어 문자는 물론이고 모바일 청첩장까지 보냈음에도 안 받았다고, 아니면 못 봤다고 시치미를 떼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일부 계제자(計除者)의 에고이즘을 굳이 따지자는 건 아니다.
어쨌거나 사람 관계는 끝이 좋아야 한다는 말도 있듯 아들 혼례와 연관된 뒷갈망(일의 뒤끝을 맡아서 처리함)은 상당 기간 계속될 것이다. 축의금은 조의금처럼 반드시 갚아야 마땅한 빚이기 때문이다. 뒷갈망은 조금 럭셔리한 밥과 술을 사는 것이 가장 괜찮다. 뒷갈망을 제대로 안 하면 똥 누고 밑 안 닦은 것처럼 기분이 매우 찝찝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연극표 두 장이 공짜로 생겼다. 같이 갈 한사람의 여분이 있다. 평소 알고 지내던 K가 선 듯 같이 가지고 한다. 흔쾌히 OK사인을 보냈다. 혹 잊어버릴지 몰라 전날 카톡을 보내고 연극시작시간 두시간전에 카톡을 다시 보냈다. K가 읽었다는 표시를 확인하고 태평하게 있었다. 그런데 연극시간 다 되도록 만나기로 약속한 매표소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전화를 걸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지금 전화해도 어차피 오지 못할 시간이다.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끓어오르는 화를 ‘무슨 일이 있을 거야! 그냥 약속을 지키지 못할 사람이 아니야 ’하고 속으로 좋게 생각하려고 했다. 다음날 아무렇지도 않게 어제 바빠서 못 갔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당신도 공짜표가 생긴 것이니 손해 본 것도 없지 않느냐는 말투다. 그럴수록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약이 더 오른다.
동호회 모임에서 어떻게 해서 사람이 빨리 늙는가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술, 담배, 스트레스, 질병 등 여럿 이야기가 나왔지만 결론을 큰 그림으로 간추리고 엮어가니 ‘사람을 많이 만나지 마라’로 귀결되었다. 사람을 많이 만나기 때문에 술도 먹게 되고 스트레스도 받게 된다는 논리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 들면 마음이 대범해지기보다는 오히려 섬세해지고 소심해진다. 젊었을 때는 별것 아닌 말로 한쪽귀로 듣고 한쪽귀로 흘러들을 말도 나이 들면 무시당한다는 느낌이 강해 서럽고 마음의 상처를 받는다.
50대 중반의 S여사는 치매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필자가 치매봉사활동을 하는 것을 알고 치매에 대한 이런저런 상식을 얻고자 했다. 보건소에서 치매예방 교육이 있는 날 장소와 시간을 알려주고 올 수 있으면 오라고 했다. 하필이면 그날 눈이 오고 영하 10도의 추운 날씨였고 길바닥이 빙판이 되었다. 집도 멀고 당장 필요한 교육도 아니니 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약속을 지켜 왔다. 내심 놀랐다. 필자와의 약속 때문인지 아니면 치매에 대한 궁금증이 너무 커서 왔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약속의 신뢰를 지켜준 것에 감사했다. 시니어들과의 약속은 부도 약속이 많아 속상할 때가 자주 있다. 교육시간에 늦게 참석해도 도대체 미안한 기색이 없다. 강사의 면전에서 버젓이 카톡을 즐긴다. 강사의 입장은 아예 무시해 버리고 나이를 벼슬 삼아 안하무인의 행동 한다.
블로거들의 모임인 ‘한국블로거협회’가 있다. 모든 모임은 고지한 정시에 시작하고 정시에 끝낸다. 늦으면 뒷자리는 당연하고 서있어야 하는 불이익을 의도적으로 준다. 처음에는 불평불만이 있었지만 점차 시간관념이 자리를 잡아 이제는 지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졌다. 나쁜 습관은 좋은 습관으로 고쳐야 한다.
빨리 가는 것보다 가는 방향이 더 중요하다. 사람을 많이 알고 있는 것보다 신용 있는 사람을 알아야 한다. 나이 들수록 많은 사람을 만나기보다 인맥을 다이어트해서 필요한 사람을 적절하게 만나고 싶다. 어중이떠중이 많이 안다고 좋다는 보장이 없다. 이기심이 너무 많은 사람, 남을 배려할줄 모르는 사람,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을 인맥 주머니에서 골라낸다.
일주일 전 혹시 아내가 3월 9일 콘서트 약속을 잊을까 염려되어 아내에게 카톡을 보냈는데 집에 와 보니 아내가 집에 없었다. 아내는 카톡을 보고 지웠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아 당일인줄 알고 약속장소인 국회의사당 역에 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프닝으로 참가 연습을 한 후에 어제는 정확하게 함께 만나 작년 음악회 때 식사를 했던 생선구이 집에서 연어구이를 맛있게 먹고 KBS 본관 매표소에서 공연 입장권을 받고 대기 중 오랜만에 만난 동년 가자단 지인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동년가자단원 모두가 일필휘지에 품위가 있는 분들이라 함께 만날 때 마다 정겹고 반가웠다. 다음에는 미리 약속을 잡고 좀 일찍 와서 함께 식사하고 차도 마시면 마치고 바로 헤어지더라도 아쉬움이 좀 덜할 것 같다.
이날 공연의 진행은 미스코리아 출신 아나운서 서현진의 준비된 사회로 아주 매끄럽고 깔끔하게 진행되었다. 공연의 전반부는 K' ART 발레단의 우아한 연기, 세계에서 하나 밖에 없다는 김남윤 예술 감독의 바이올린 오케스트라의 다양하고 화려한 연주로 진행되었고, 후반부는 작년 연말 팬텀 싱어 최종 우승팀인 남성 중창단 포르테 디 콰트로의 노래와 가수 김범수의 우렁찬 가창력이 돋보인 무대였다. 한 마디로 전반부가 깊이 있는 순수음악이었다면 후반부는 관객을 웃고 울고 즐겁게 해주는 대중음악의 무대였다.
기회가 있을 때 마다 느꼈던 바이지만 오늘 6회째를 맞는 따뜻한 콘서트를 맞아 사회자와 대담을 나눈 이 투데이 김상우 부회장의 간결하고 멋있는 인사말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항상 고객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음악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국민이 부자가 되고 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 발전하는데 힘이 되도록 이투데이가 경제신문으로 소명과 역할을 다하겠다” 는 짧은 메시지 속에 독자와 광고주 그리고 임직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을 깊이 있게 전달해 주는 것 같았다. 동년 기자단의 일원으로 이 일에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세계적인 평판을 받고 있는 프로수준의 무대라서 그런지 K' ART 발레단의 발레리나와 발레리노의 연기는 손동작 몸짓 하나하나가 우아하고 아름다웠으며 과감한 연기는 관객들의 호평을 받기에 손색이 없었던 것 같다. 나와 같은 발레의 문외한도 그런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국예술영재교육원의 바이올린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사우드 오브 뮤직’ 등 관객들에게 친숙한 노래와 함께하여 관객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어린 아이부터 대학생까지 많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영재들이라 그런지 일사불란한 연주라 더욱 좋았다.
2017년 '팬텀싱어'의 우승자인 포르테 디 콰트로의 우렁찬 가창력과 화음으로 우승자의 면모를 다시 한 번 더 관객들에게 각인 시킨 것 같았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콘서트의 대미를 장식한 가수는 김범수였다. 가수생활 20년째를 맞는 경력에 어울리게 관객들을 웃고 울게 만들었으며 일어나서 춤을 추게 하는 정말, 열기 넘치는 따뜻한 음악회로 만들었다.
이제, 봄은 이투데이가 주최하는 ‘따뜻한 콘서트’에서 시작하는 것 같다. 관객과 관계자 모두를 행복하고 즐겁게 하는 그 힘으로 김상우 부회장의 말씀처럼 한국경제 발전과 국민 모두에게 도움을 주는 더욱 발전된 모습의 그런 2019 따뜻한 콘서트가 기다려진다.
요즘은 관계를 맺거나 끊는 것이 아주 쉽다고들 한다. 마음만 먹으면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기능을 이용해 한 줄 보내기만 하면 되니까 말이다.
만남도 쉽지만 이별할 때도 카톡으로 통보를 한다고 하니 기성세대가 살았던 시절과는 참 많이 달라진 세상이다.
어느 사진작가는 나무 사진을 찍을 때 나무 둘레를 천천히 한 바퀴 쭈욱 돌아본다고 한다. 사진 찍는 걸 나무가 동의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동의를 구했을 때만 좋은 사진이 나온다는 말을 필자는 믿는다. 나만 좋으면 그만인 이기적인 마음에는 소통되지 못한 불협화음이 남아 있다. 그저 내 맘에 들지 않는다고 즉각 무시하거나 툭 잘라내는 행위는 일상의 기쁨을 느낄 줄 아는 평범하면서도 선한 마음을 잃은 흔적일 수 있다.
이제는 사람과의 관계보다 나만의 나무 한 그루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상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모두들 함께하는 시간보다는 개인적인 시간을 더 추구하는 시대다. 굳이 누가 내 편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내 일과 내가 원하는 장소, 도구만으로도 소통을 하고 위안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오늘날에는 다양한 문명의 이기가 있다. 개인주의적 삶에 익숙해지고 있는 세대들에게 문명의 이기가 선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그것들이 창조되고 흡수되는 과정에서 잠깐씩 가까운 이들을 잊고 살기도 한다. 심심할 때는 친구가 되어주기도 하고 불편할 때는 도움도 준다. 반드시 사람을 통해 위로받아야만 인간적이고 따스한 감정이 전달된다고 믿었던 시절과는 많이 달라진 요즈음이다.
기성세대들은 흔쾌히 동의하지 못하겠지만 문명의 이기가 삶이 동력이 되고 있는 시대의 메시지는 진취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사람들에게는 제각각의 결핍이 있다. 그래서 위로를 받고 누군가 내 편이 되어주길 바라기도 한다. 반면 상대의 그런 마음을 아프게 건드리는 방법으로 자신을 드러내 보이려는 사람도 있다. 상대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자신이 진정성 있는 위로를 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이들의 모습도 본다. 허약한 인간의 마음과 각자의 결핍이 만들어낸 어두운 그림자다. 필자도 최근에 가까운 사람에게 그런 식의 상처를 받고 인간이 주는 위로에서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렇다고 인간이 주는 위로가 낡은 가치로 전락되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인간사회와 문명사회의 장단점을 자신에게 맞게 부분적으로 수용하면 된다. 물론 인간과 만나 풀어야 할 문제까지도 기기들에게 의존하고 위안을 받는 요즘 세대들을 바라보며 공감하지 못하는 시니어도 있다.
그러나 삶의 방식에 정답은 없다. 새로운 문명사회를 억지로 이해하기보다는 인정해버리면 된다. 그렇게 두 시대를 공존할 수도 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적당한 어울림. 그 속에서 각자 자신에게 맞는 위안을 찾으면 된다. 어쩌면 이 둘은 서로의 결핍을 보완해주는 존재가 될 수 있다. 끊임없이 상처를 받으면서도 내 편이 되어줄 대상을 찾으며 의존적으로 살아갈 것이 아니라 시대 변화에 맞춘 또 다른 삶의 방법도 찾아야 한다. 오직 인간 속에서만 본연의 가치를 찾기보다는 급변하는 세상에 맞춰 자유롭게 사는 방법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렇게 살면서 자신을 더욱더 사랑하면 될 것 같다.
필자는 스마트 폰을 허리 벨트에 차고 다닌다. 대표적인 ‘할배 스타일’이라며 힐난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래도 이 방식이 가장 편하다. 필자 같은 사람이 별로 없는지 벨트 형 스마트폰 케이스는 취급하는 곳이 드물어 사기도 어렵다.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주머니가 불룩해서 보기 안 좋다. 손에 들고 다니는 사람들은 어디 앉았다 하면 스마트 폰을 꺼내 테이블이 놓고 나와서 분실하기도 한다. 시함 사람은 스마트폰을 벌써 10여 차례 분실했다는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벨트에 차고 다니는 짓은 못하겠다는 것이다. 남의 눈치를 지나치게 보는 사람이다.
스마트 폰을 허리 벨트에 찼을 때 진동으로 전화나 문자가 온 것을 알게 된다. 영화관이나 회의, 교육장 등에 참석할 때 진동으로 해 놓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때는 진동이 울린 것으로 알고 스마트폰을 열어 봤는데 전화가 온 것도 아니고 아무 문자도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것을 ‘유령 진동 증후군’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이런 현상은 필자가 카톡 등을 소리 나지 않게 설정해 놓았기 때문에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면 급한 연락 때 금방 답을 못한다. 민폐라는 것이다. 전철 타고 가다가 우리 집 근처에 다가 오니 잠시 만날 수 있느냐는 등의 연락 등이다. 답이없으니 그냥 지나쳐 가는 것이다. 이처럼 긴급 번개 모임 등을 하려고 연락했는데 답이 없어 취소하거나 카톡에 대한 아무 대꾸가 없어 카톡도 안 보고 다니느냐는 원망을 자주 들었다. 그러다 보니 불안감과 강박관념 때문에 부지런히 스마트폰을 자주 열어 봐야 한다. 진동이 울리지도 않았는데도 신경이 반응하는 것이다. 하긴 원래 유령진동 증후군은 팔다리가 절단 된 사람도 발가락이나 손등이 가렵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의학적으로 ‘환영사지증후군’(phantom limb syndrome)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필자는 동전을 왼쪽 바지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꼭 필요한 동전으로는 500원, 100원, 10원짜리 동전 하나씩만 있으면 가장 좋다. 커피 빼 먹을 때 500원 동전을 쓰고 마트에서 상품을 사고 거스름돈으로 100원이나 10원짜리 동전 하나가 없어서 거스름돈으로 동전 900원, 90원을 받을 때 이런 동전 하나의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전을 계속 왼쪽 주머니에 쓸어 담다 보면 주머니가 불룩해지고 동전이 피부에 닿는 허벅다리 근처가 간지러워진다. 동전을 그래서 빨리 처분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음식점에 1000원짜리 지폐 대신 동전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껏해야 생수 한 병 사는 게 고작이다. 그래서 동전은 따로 모아 둔다. 언젠가는 은행에 가서 지폐로 교환을 할 작정이다. 그런데 동전을 주머니에서 빼고 난 후에도 동전이 그득하게 들어 있다는 착각이 생긴다. 동전과 닿았던 피부가 아직 동전이 그득하던 기억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역시 유령 진동 증후군과 비슷한 증상이다.
필자는 이런 현상을 큰 문제는 없다고 본다. 자율신경이 다소 과민한 편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자율신경이 민감하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순발력이 좋다는 얘기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