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냉장고가 안 돌아가서 내부에 있는 모든 식품을 다 버리다시피 한 적이 있나요?”
주부라면 확 와 닿을 내용이다. 아침에 냉장고에서 시원한 음료를 꺼내 마시면서 오늘도 감사한 하루다.
호사다마라는 사자성어를 찾아본다.
好:좋을 호
事:일 사
多:많을 다
魔:마귀 마
좋은 일 있다면서 지인들에게 밥 사고 단체 카톡방에서 자랑하고 축하받고 그러던 분들이 얼마 안 있어 안 좋은 일이 생기기도 한다. 크게 축하받을 일 없어도 좋으니 이 평화로움이 오래오래 이어지기를 바란다.
바쁜 일정 때문에 하루 스케줄을 조절하며 살 때가 있었다. 요즘은 경기가 안 좋은 상황임을 온몸으로 느낀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감사한 마음이 더 커진다. 이런저런 일들이 잘 풀리지 않아 힘들었던 시절, 한참 지나서 생각하면 그때가 오히려 감사한 상황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것도 모르고 감사함을 느끼지 못한 날들이 후회스럽고 회계의 마음이 저절로 든다.
필자가 시니어분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는 날이면 첫마디로 하는 말이 있다.
“오늘 스스로 택시를 타고 오셨든, 전철을 이용하셨든, 걸어서 오셨든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 오셨다면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라고 말씀드리고 강의를 시작한다.
일시적으로 다리를 다치셨거나 관절 상태가 안 좋으신 분들은 공감하고 또 동감할 것이다.
“이글을 읽는 여러분은 무서운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신의 존재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배우자가 무섭다는 농담도 나올 수 있다. 그 밖에 또 무엇을 무서워할까? 필자는 요즘 계단이 무섭다. 노트북과 무거운 카메라를 몇 년간 메고 다녔더니 슬슬 관절에 무리가 된 것이다. 자신의 다리로 어디든 갈 수 있다면 매우 감사한 일이다.
무거운 백팩을 메고 7호선 가파른 계단을 짧은 다리로 두세 계단씩 다다다다 하고 바삐 오르내리던 시절이 불과 몇 년 전 일이다. 이제는 한 계단씩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도 힘들다.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한 지 꽤 됐다.
안경을 쓰고 정상 시력이 나온다면 그것도 감사한 일이다. 스스로 식사할 수 있고 옷 입고 일상생활이 가능한 것 그것도 감사한 일이다. 얼마 전 집 안의 전등을 모두 LED 등으로 바꿨다. 일하는 아내를 위해 전등을 달다 남편이 가정용 사다리에서 떨어져 갈비뼈에 살짝 금이 가서 기침도 잘 못하고 한 해 마무리를 혹독하게 보내고 있기에 매일 잘 켜져 있는 전등조차 감사하다. 별걸 다 감사하는 필자가 되어간다.
평화로운 일상, 특별한 일 없는 일상이 이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직접 내린 커피와 빵 한 조각 남편과 나눠 마시는 것에 감사하며 오늘도 하루를 시작한다.
대학생 아들을 둔 김성경(45), 자신감 하나는 국가대표급이다. 이것이 오늘의 대체 불가능한 방송인 김성경을 만든 원천이 되었고 그녀는 현재 아나운서가 아닌 방송인으로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자신보다 훨씬 더 강한 남자가 리드해줄 때 성적 판타지가 충족될 것 같다는 그녀는 이제야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글 이봉규 시사평론가 사진 오병돈 프리랜서(Studio Pic) obdlife@gmail.com
김성경과는 TV조선의 이란 프로그램에서 3년 이상 같이 방송을 하다 보니 너무 친해져서 오누이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막말로 성경이가 홀딱 벗고 덤벼들어도 아무 감흥이 없을 것 같다. 남자 친구가 생기면 곧바로 나에게 보고할 정도다. 지금은 특별한 사이의 남자친구는 없고 이 남자 저 남자 만나보고 있는 중이란다.
에서 잡힌 강한 여자 캐릭터 때문에 손해가 막심하다고 투덜댄다. 어찌하다 보니 강하고 드센 여자가 되어버렸고, 남자들이 자기를 어려워해서 잘 달라붙지 않는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덩치가 큰데(173cm) 캐릭터까지 강하게 잡혀서 속상하다는 자기 진단이다. 실제로 그 이유로 인해 고민하다가 일시적으로 에서 하차했던 적도 있다(나중에 다시 복귀했지만).
본인은 강한 여자 캐릭터가 부담스럽겠지만 이봉규가 분석하기에는 김성경이 오히려 그 덕을 봤다. 그 덕에 아나운서가 아닌 방송인으로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고, 최근에는 영화 주인공까지 맡아 촬영에 들어갔다. 이 영화에서 김성경 역할은 드세고 강한 성격의 하숙집 주인으로, 최성국과 부부로 나온다. 만약 지금까지 김성경이 연약하고 고상한 여자처럼 억지로 꾸며왔으면 영화 주인공으로 캐스팅될 일도 없고(실제로 감독이 을 보고 김성경을 여자 주인공으로 점찍었다고 털어놨다), 방송인으로서 지금 같은 확고한 입지의 김성경은 없었을 것이다. 자기가 친언니인 김성령처럼 미스코리아(진) 출신의 엄청난 미인도 아니면서 복에 겨워 투덜댄다.
아마 남자들이 못나서 김성경을 잘 다루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봉규의 심야데이트’를 위해 인터뷰하는 날 김성경은 “내가 아무리 강한 척해도 그걸 좋게 귀엽게 봐주는 남자가 드물다”고 털어놓는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자기를 무섭게 여긴다는 것이다. 또박또박 자기주장을 펼치면 강하고 드센 여자로 보고 부담스러워 도망간다는 푸념이다. “남자들의 자격지심이냐?”라고 나에게 쏘아붙인다. 그녀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한량 이봉규도 김성경을 가끔 무섭게 느낄 때가 있으니까 얌전하고 젠틀한 남자들은 김성경 앞에 서면 주눅이 들어 도망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돈 많은 남자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하다”고 김성경은 진단한다. 돈이 많으면 자격지심 같은 것은 없을 테고 뭔지 모르게 당당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강한 여자에게 오히려 매력을 느낄 수도 있겠다. 실제로 언니 두 명 다 돈 많은 남자들과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살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간접적인 영향도 받았을 것이다. 둘째 언니인 톱스타 김성령의 남편은 부산에서 알아주는 준재벌급의 사업가이고, 첫째 언니의 남편은 대형 종합병원 부원장이라 돈 걱정 안 하면서 아주 잘살고 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형부 둘 다 언니들에게 꼼짝 못하고 산다고 하니 김성경은 “돈 많은 남자들이 자격지심 같은 것은 없고 오히려 마음이 여유로울 것 같다”는 판단을 할 수도 있겠다.
‘성적 판타지(sexual fantasy)’를 물으니 아이러니하게도 남자가 자기를 벽에 강하게 밀치고 키스 세례를 퍼붓기를 원한다고 하니 어쩌면 강한 여자의 콤플렉스일지도 모른다. 자신보다 훨씬 더 강한 남자가 리드해주길 원하는 것일까? 고전 영화 에서 율 브린너가 데보라 카를 강하게 리드했듯 그런 판타지를 꿈꾼다고 말하는 김성경의 눈빛이 간절하다. 영화 에서 데보라 카는 정숙하고 우아한 영국 여인이다. 김성경도 데보라 카에 자신을 대입시키고 싶은 마음일까? 하여간 영화에서 데보라 카는 다소 거칠고 자기밖에 모르는 왕(율 브린너)과 사사건건 충돌하지만 그러는 사이 왕에게 묘한 애정을 느낀다.
참고로 이봉규가 보기에는 세 자매 중 첫째 언니가 영화의 여주인공 데보라 카와 가장 닮았다. 그리고 세 자매 중 첫째 언니가 가장 매력적으로 생겼다. 그다음이 성령이고 성경이 인물로는 제일 처진다. 물론 이봉규(나름 고수)의 판단이지만 김성경은 자기가 제일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내가 미스코리아 대회에 안 나간 것은 언니가 진으로 뽑혔기 때문에 더 이상 할 것이 없어서”라고 큰소리친다. 자신감 하나는 국가대표급이다. 이것이 오늘의 대체 불가능한 방송인 김성경을 만든 원천일 것이다.
김성경은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각별한 사랑으로 자신감 넘치게 살아왔다. 지금도 어머니는 성경이를 세 딸 중에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예쁜 언니들보다 자기 할 말 거침없이 다 해대면서 강한 여자로 방송하고 강연 다니는 막내딸이 자랑스럽다. 어머니는 종갓집의 둘째 며느리로서 내리 딸을 두 명 낳고 셋째는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고 시집에서도 은근 압박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마침 태몽도 좋아서 아들인 줄 확신했는데 또 딸이 태어나니까 아빠는 실망해서 담배만 뻐끔뻐끔 피우고 아무 말이 없었다고 한다. 그때 어머니는 “열 아들 부럽지 않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했다. 어머니의 기도가 현실로 이루어졌으니 대견스러움을 넘어 자랑스러워할 만도 하다. 어머니는 성경이 태어나고 세 번 놀랐다고 한다. 당연히 아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딸이 나와서 놀랐고, 진통도 없이 쑥 순산해서 놀랐고, 구정 날에 태어나서 놀랐다고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가족들을 놀라게 했으니 강한 캐릭터를 가진 것도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강한 여자인 그녀의 인생이 늘 씩씩하고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이혼의 아픔도 겪었고 혼자 힘으로 아들 키우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에서도 밝혔듯이 이혼 이유가 남편의 외도 때문이었으니 그 아픔이 남다를 수 있다. 짓궂은 멤버들의 이혼에 관한 질문 공세에 김성경은 쿨하게 대답했다. “10여 년도 더 된 이야기다”라며 “처음에는 성격 차이였다”면서 “하지만 주변에서 ‘여자가 있을 것이다’라는 말을 해줬고, 결국 확인했다”고 방송에서 털어놨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이상하게 크게 화가 나지 않았고 그냥 쿨하게 보내줬다”고 한다. 그녀는 한술 더 떠서 “내가 먹고살려고 이런 이야기까지 해야 하나 싶어 방송 중에 울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나 강한 여자인 그녀도 이혼의 아픔과 혼자 아들을 키워온 자신의 인생 스토리에 눈물이 저절로 나올 법하다. 다행히 아들이 잘 자라주었다. 지금 뉴욕대(NYU)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고 있다. 아들이 대학을 가니까 홀가분해진 느낌이라고 말한다. “예전에는 지성과 미모를 숨기고 살았는데 이제 아들도 잘 키웠으니까 스스로 자신이 자랑스럽다”고 금방 분위기가 뜬다. 이게 김성경의 캐릭터이고 그녀만의 독특한 매력 포인트다.
그녀가 자랑할 만도 한 것이 아들은 남의 나라 말로 그 어려운 공부를 하면서도 엄마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레코드 가게에서 알바하려고 인터뷰 신청을 해두었단다(지금쯤이면 일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미국 유학의 경험이 있지만 첫 학기 때는 학업 스케줄을 따라가기가 보통 어렵지 않다. 첫 학기부터 알바를 하려고 마음을 먹는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효심이고 아들 또한 엄마를 닮아서 자신감이 넘친다고 봐야 한다.
아들은 그녀에게 “엄마 왜 결혼 안 해? 앞으로는 내 생각 말고 엄마 행복만 생각하고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해!”라고 입버릇처럼 주문을 한다니 대견스럽다. 그녀 생일에 아들에게 온 카톡을 읽으니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 글을 쓰는 데 참고만 하겠다고 내 카톡으로 전달해달라고 부탁해서 겨우 받아냈다. 그녀에게 허락도 받지 않고 지면에 그대로 옮긴다. 나중에 분명 강한 여자 김성경에게 야단을 맞을 게 뻔하지만 절친 오빠인 이봉규만 보기 아까워서 소개한다.
엄마 생일축하해요! 너무나도 감사하고 지금까지 계속 나를 믿고 이해해주셔서 감사해요. 제가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다 엄마 덕분이에요. 엄마 때문에 더 노력하고 더 열심히 하고… 저한테 그럴 수 있는 힘이랑 Motivation을 주셔서 너무나도 감사해요! 제가 힘들 때도 있고 엄마도 힘들 때도 있겠지만 둘 다 서로를 사랑하고 도와주는 우리 모자 사이, 전 이런 게 있는 게 너무나도 기쁘고 감사해요. 이런 엄마를 가질 수 있게 해주신 할머니 할아버지도 감사하고, 하늘에 계신 아빠도 너무 감사해요. 제가 지금 곁에 있지 못하는 게 너무나도 안타깝지만 저의 마음과 생각은 바로 거기에 있어요. 엄마가 저한테 힘을 주시는 것처럼 저도 엄마한테 힘이 됐으면 좋겠어요. 생일 축하해요, 사랑해요~~~
대학교 1학년의 아직 어린 나이인데 참 대견스럽다. 그 아들의 바람대로 앞으로 강한 여자 김성경을 벽에 화끈하게 밀치고 키스 세례를 퍼부을 멋진 남자가 나타나길 고대해본다. 그때는 이 오라비가 그놈의 발바닥을 사정없이 다디미 방망이로 후려칠 것 같다.
그녀 아들의 바람대로 앞으로 강한 여자 김성경을 벽에 화끈하게 밀치고 키스 세례를 퍼부을 멋진 남자가 나타나길 고대해본다. 그때는 이 오라비가 그놈의 발바닥을 사정없이 다디미 방망이로 후려칠 것 같다.
지난 6월호에서 손주의 잉태 소식을 ‘생명은 기계가 아닙니다’라는 제목으로 전해드렸습니다. 이제 그 아기를 만나보고 몽골로 돌아왔습니다. 드디어 세상에 태어난 아기를 만나러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따로 따로 버스를 타고 비행기를 갈아타며 다시 빨리 달린다는 열차와 자동차로 이름도 생소한 독일 에어랑엔(Erlangen)의 헤르초게나우라흐(Herzogenaurach)에 밤늦게 도착했습니다.
제 아내, 즉 아기의 할머니는 나보다 먼저 출발했고 할아버지인 나는 한 달 후에 닿은 것입니다. 세 살과 네 살인 아기 오빠는 아직 동생이 생소합니다. 언제라도 뛰어가 안길 수 있었던 엄마의 품안엔 아직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아기가 있습니다. 자기들과 항상 놀아주던 엄마와 아빠가 새 아기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생소하면서도 한편으론 이해가 될 듯도 합니다. 자기들과 비교할 수도 없는 너무나 어리고 여린 생명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예 경쟁을 포기하고 자기들끼리 눈치껏 알아서 노는 데 익숙해지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도 어른들이 보기에 착하게만 굴 수 없는 나이라서 어른들이 챙겨줘야 할 일들은 끊이지 않고 터집니다. 두 녀석의 활기찬 에너지는 언제나 생기가 넘쳐 어른 한두 명이 감당하기가 벅차다는 것은 현장에 도착하기 전 이미 아내의 카톡을 통해 내 머리에 입력되었습니다.
밤늦게 도착해 자고 나서 현장에 투입되니, 역시 내 주된 일이 그 두 녀석과 노는 것입니다. 내가 도착하기 전 아내는 어떻게 혼자서 이 일들을 감당하고 있었는지 존경스럽습니다. 나 혼자서도 만만치 않은 개구쟁이 두 녀석을 돌보는 일을 아내는 짬짬이 하는 곁다리 일로 담당했다니!
몸을 추스르고 있는 며느리가 행여 나중에라도 뒤탈이 있을까봐 아내는 모든 빨래와 집안 정리와 청소, 거기에 세끼의 식사를 정성을 다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단독주택이라 지하층부터 3층 다락방까지 오르내리기를 쉬지 않습니다. 두 녀석 유치원엘 자동차로 데려다주고 데려옵니다. 장을 봅니다. 그 와중에 아이들과 친분이 있는 가족들을 초대해 칭찬받을 대접도 하였습니다. 한국 아줌마의 놀라운 힘을 곁에서 직접 보니 정말 여러 번 혀를 내둘러야 했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지내다 드디어 늦게 일어나도 되는 토요일 새벽입니다. 다 쉬고 있는 새벽입니다. 깊이 자고 있는 저를 깨워 보여줄 게 있다며 아내가 조용히 문을 열고 골목골목을 돌아 데려간 곳은 새벽안개가 피어나고 있는 벌판이었습니다. 삶의 현장을 떠나 갑자기 다른 세상에 온 것입니다. 공간적으로의 이동뿐 아니라 시간의 공백도 느껴졌습니다.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읽은 헤르만 헤세의 시가 정확히 떠올랐습니다. ‘Im Nebel(안개 속에서)’였습니다. 전혀 내 머릿속에는 이미 없을 거라고 당연히 치부하고 있었던 독일어 수업시간이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되었습니다. 정말 기적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며 꿈에도 생각 못했던 독일의 안개 속에 오십 년의 시간적 공백을 느끼며 바라보았습니다.
Im Nebel
Seltsam, im Nebel zu wandern!
Einsam ist jeder Busch und Stein,
Kein Baum sieht den andern,
Jeder ist allein.
Voll von Freunden war mir die Welt,
Als noch mein Leben licht war;
Nun, da der Nebel fallt,
Ist keiner mehr sichtbar.
Wahrlich, keiner ist weise,
Der nicht das Dunkel kennt,
Das unentrinnbar und leise
Von allem ihn trennt.
Seltsam, im Nebel zu wandern!
Leben ist Einsamsein.
Kein Mensch kennt den andern,
Jeder ist allein.
안개 속을 헤매면 이상하여라!
숲과 돌은 저마다 외로움에 잠기고
나무도 서로 보지 못한다.
모두가 다 혼자다.
내 삶이 아직 밝던 시절엔
세상은 친구들로 가득했건만
이제 안개 내려
아무도 보이지 않는구나.
어쩔 수 없이 조용히 모든 것에서
사람을 떼어놓는 그 어둠을
조금도 모르고 사는 사람은
참으로 현명하다 할 수 없다.
안개 속을 헤매면 이상하여라.
인생이란 고독한 것.
사람들은 서로 모르고 산다.
모두가 다 혼자다.
그렇게 그 시를 조금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우리의 나이를 헤아려보며 아내의 손을 조금 더 느껴보았습니다. 조금 더 넓게 보기 위해 구릉에도 올라가 보았습니다. 풀에 맺힌 안개 이슬로 신발과 바지 섶이 젖었습니다. 마을로 되돌아와 아들 집에 이를 때 안개 속에 뿌옇게 떠오르는 해를 보며 조금 더 굽어진 나의 등을 실감하였습니다. 아직 오십 년의 시간을 되돌리고 있는 중이었나봅니다. 아내의 한마디에 정신이 확 깨었습니다.
뭐해? 셀라 트림시키지 않고.
셀라: 지금 독일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둘째 아들의 셋째 아이 이름입니다. 성경 시편에 나오는 ‘멈춰서 들으라, 내용을 묵상하라’는 뜻의 후렴구, 추임새. 셀라! 제 입에 넣고 굴릴수록 너무나 마음에 드는 이름입니다. 셀라.
개인적인 생각을 안개로 전하면서, 우리 대한민국이 자꾸 보고 싶어집니다. 이럴 때 이런 기회에 사랑하는 나의 대한민국에 전하고 싶은 믿음이 제게 하나 자라고 있습니다. 외국에서 겪을 수 있었던 우리의 놀라운 힘입니다.
전 한국전쟁의 비참한 문제들 가운데 자랐습니다. 철이 들면서 4·19를 보았고, 돈벌이를 위해 중동과 해외를 다녀야 했습니다. 6·29선언을 거쳐 IMF를 맞을 때, 세계는 우리 대한민국을 비웃으며 놀렸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놀림이 놀람으로 바뀌는 사건을 현장에서 겪었습니다. 이번에 당면한 놀림거리로도 우리는 다시 한 번 더 세상을 놀라게 할 것을 확실히 믿고 있습니다.
여기 몽골에서는 고려가 몽골의 속국이었다는 징기스칸제국의 지도를 자주 만나는 곳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더 큰 사랑과 진정으로 몽골이 잘되도록 도와주고 있음을 서로 간에 알고 있습니다.
역사를 배우며 우리는 세상의 비웃음에 처했을 때마다 언제나 그들의 놀림을 딛고 일어나 그들을 놀라게 해왔던 자랑스러운 민족임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국가적 부끄러움을 만났지만 이 안개가 걷히면 우리 대한민국의 저력으로 오히려 세계가 놀라게 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소용돌이치는 우리의 힘이 드디어 응집되고 있습니다. 고요히 흐르던 물이 지금 바로 깊고 좁은 계곡을 만났습니다. 급변할수록 우린 서로 끌어안는 힘! 대동단결, 두레의 에너지가 분출되는 한민족이기 때문입니다.
>> 함철훈(咸喆勳) 사진가·몽골국제대학교 교수
1995년 민사협 초청 ‘손1’ 전시를 시작으로, 2009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 2012년 이탈리아 밀란시와 총영사관 주최로 전을 FORMA에서 개최. 2006년 인터액션대회(NGO의 유엔총회)서 사진으로 대상 수상. 저서로 , 등이 있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욘사마 열풍’이 한창이던 시절, 시청 앞 광장과 남대문시장 그리고 압구정 로데오거리를 걷다 보면 배낭을 메고 지하철 지도를 손에 든 채 어설픈 한국어로 길을 묻는 중년의 일본 여성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아이돌에 열광하는 10대도 아니고 40대를 훌쩍 넘은 중년 여성들이 왜 욘사마를 찾아 한국까지 왔을까 무척이나 궁금했는데, 평소 친분이 있던 일본인 교수 덕분에 그 수수께끼가 풀렸다.
일본의 중년 여성들이야말로 한때는 입시지옥 아래 자식교육에 올인하기도 했고, 이젠 거품으로 끝나버린 부동산 버블의 주역을 담당하기도 했다 한다. 그런데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10년을 지나 저속 성장과 끝 모를 불황의 늪에 빠지자 ‘자식도 아니고 돈(부동산으로 대변되는)도 아니더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바로 이들 중년 여성이 ‘욘사마 열풍’을 주도하면서 의 자취를 찾아 한국 땅을 밟는 것이라는데, 정작 이들이 찾아 나선 건 욘사마가 아니라 를 보며 첫사랑의 아련한 추억에 가슴 설레어하는 자기 자신이었다는 것이다. 자식 뒷바라지 하랴, 빠듯한 남편 월급으로 살림하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잃어버렸던 자신을 뒤늦게나마 찾아 나섰다는 것이다. 일본 중년 여성들의 절실함이 왠지 남 이야기 같지 않다.
언젠가 고령화를 다룬 책을 읽다가 멋진 문장을 만나게 되었다. “부부 나이를 합해 100세가 되면 라이프스타일 이주(移住)를 준비하라. 결코 빠르지 않다. 나이 들수록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호기심도 떨어지고 생각한 바를 행동으로 옮기는 실행력도 감퇴되게 마련이다. 그러니 50대가 시작되면 인생 이모작을 시작해보라”는 내용이었다.
책 쓴 이의 주장에 깊이 공감하던 차에 정말 우연치 않게 주말이면 초보 농사꾼으로 변신할 수 있는 기회가 내게 찾아왔다. 오래전 세종시 인근에 땅을 사두셨던 이모님께서 은퇴 후 이모부와 사별하고 귀농을 결심하시면서 ‘가족농장’을 시작한 덕분이었다. 그때 내 나이가 쉰둘이었는데, 어느 새 햇수론 7년이 지났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 농사라곤 대학교 1, 2학년 때 소양강 근처의 부귀리란 마을로 농촌 봉사활동 가서 콩밭의 풀 뽑았던 경험이 전부였던 내가, 겁도 없이 농사에 살짝 한 발을 걸쳐보았는데, 의외로 농사일이 적성(?)에 맞는 것이 아닌가.
무엇보다 살아 있는 생명을 다루는 데서 오는 기쁨이 남다른 것 같다. 농사 첫해엔 소나무 묘목을 심었는데 “나무는 사람 발자국 소리를 들으면서 크는 것”이라고 했던 마을 이장님 말씀이 지금도 귀에 들리는 듯하다. 말 못하는 나무도 사람의 손길을 이토록 탄다는데, 하물며 사람 하나를 키우는 데는 얼마나 깊은 사랑과 남다른 정성이 필요한 것인지….
소나무 키우기의 묘미는 가지치기라는 주변 이야기가 아니어도, 해마다 쳐내야 하는 잔가지와 굵은 가지들이 초보자의 눈에도 선명하게 들어온다. 전문가들이라면 수년 후의 나무 모양까지 정확히 머릿속에 그리며 과감히 가지치기를 하겠지만, 초보자 눈엔 어느 가지를 쳐내야 좋을지 판단이 서질 않아 망설일 때가 잦다. 우리네 삶도 끊임없이 가지치기를 해야 크고 굵은 가지들이 시원시원하게 뻗어나갈 수 있으련만, 과한 욕심에 필요 없는 가지를 늘어뜨리고 이것도 저것도 포기 못 한 채 초라한 삶을 지나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쓰잘데없는 상념도 잠시, 소나무 밭에 앉아 가지치기를 하고 있노라면, 잡념도 없어지고 머리도 맑아지는 것이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농사 두 번째 해엔 2년생 블루베리를 심었다. 어릴 때는 생김새가 비슷해 품종을 구분하기 어려웠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하다. 조생종 패트리어트는 열매가 다닥다닥 붙어 있어 엉덩이 부분이 익었는지 판별이 어렵고 열매의 신맛이 강한 대신, 가을 단풍은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빨강 빛으로 물이 든다. 중만생종인 토로는 넓적한 이파리에 가지 또한 자유분방하게 뻗어나가는데 열매의 끝 맛에 달달함이 오래도록 남는 것이 일품이다. 만생종 넬슨은 유선형의 날렵한 잎에 큰 키를 자랑하는데 시큰한 맛과 달콤한 맛의 조화가 매력적이고 탱탱한 식감도 훌륭하다.
예전에 대학 은사님께서는 “인생은 혼자 뛰는 마라톤이다. 비교급으로 살지 말고 절대급으로 살아라’라고 말씀해주셨는데, 사노라면 항상 나보다 잘난 사람들 때문에 주눅 들고 상대적 박탈감에 좌절하면서 스스로를 초라하게 몰아가기도 한다. 꽃이든 열매이든 자연 속에선 아무도 서로를 비교하지 않는데 말이다.
동네 어르신 한 분이 “어쩌다 농사가 잘되면 3년을 고생하고 한 해 농사를 망치면 3년이 편안하다’라고 한마디 툭 던지고 가신다. 왜 농사를 망쳤을까. 두루두루 이유를 찾다 보면 배수도 챙기고 거름도 제때 주고 풀 관리도 열심히 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연한 행운보다는 노력이 더욱 값진 것임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주옥같은 말씀이다.
얼마 전 카톡방에 유튜브 동영상이 전달되었다. 열어보니 미국의 대학 강의실인 듯했는데 교수가 학생들과 함께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하고 있었다. 유리병을 채우는 실험이었는데 먼저 조약돌로 유리병을 가득 채우도록 했다. 다음은 작은 자갈을 가득 넣도록 했다. 그다음엔 모래를 살살 뿌려 유리병을 채우도록 했다. 마지막엔 물을 가득 붓도록 했다. 실험을 끝내며 교수님 왈, “여러분, 만일 순서를 바꾸어 물부터 부으면 유리병 속에 모래와 자갈과 조약돌을 넣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네 인생길에서 조약돌과 자갈 그리고 모래와 물이 무엇일지 새삼 생각해보게 된다. 조약돌이야말로 평소엔 잊고 사는 삶의 의미, 삶 속에서 이루고자 했던 꿈,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소중한 가치 등이 아닐까.
경제학 용어에 ‘한계효용(marginal utility)체감의 법칙’이 있습니다. 하나가 추가될 때마다 얻는 효용(만족감)은 줄어든다는 경제 용어입니다. 경제학자들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배고픈 사람이 첫 번째 빵을 먹을 때는 큰 만족감을 느끼지만 2개3개 4개를 계속 먹어 갈수록 만족감이 줄어든다고 합니다. 배가 불러 올수록 더 이상 빵에 대한 호기심이나 갈구하는 마음이 줄어듭니다. 그러나 세상은 빵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배우고 채워도 질리지 않는 신기한 것들이 많습니다. 세상은 호기심을 유발하는 진기명기한 일들이 즐비합니다.
나이를 먹으면 원만한 것은 보고 듣고 느끼고 해도 어지간해서는 감동하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는 새로운 것을 늘 보니 기뻐서 하루 800번을 웃지만 어른은 하루 8번 웃기도 어렵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궁금한 것이 많아서 어른들에게 계속 질문 합니다. 하지만 어른들은 어지간해서는 그러려니 하고 스스로 답을 얻고 말지 궁금해서 또는 호기심으로 질문하지 않습니다. 알고 싶은 욕망이 강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여주 신륵사에 선배님을 모시고 갔습니다. 선배님은 다리가 아프신지 “신륵사 절이라고 뭐 다르겠어. 절 다 그렇지 뭐 나 여기서 쉴 테니 자네들끼리 다녀오게 ” 하면서 벤치에 주저앉습니다. 불과 300m만 가 면 절 구경을 할 거리에서 멈추어 버립니다. “선배님 나와 함께 천천히 올라가시지요.”했더니 손사래를 칩니다. 표정을 보니 확실히 가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절 구경이 궁금하지도 않고 흥미도 없습니다. 처음에는 선배님이 착실한 기독교신자 여서 절은 싫어하나보다고 만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선배님의 마음에는 사찰의 대웅전이나 부처님에 대한 호기심이 없습니다. 호기심이 없어지면 생각은 고루해지고 마음은 늙어가고 몸은 움직이는 것을 멈추려합니다. 물론 모든 사찰의 부처님은 대동소이합니다. 크게 보면 같지만 쪼개어 살피면 다 다릅니다. 누워있는 부처도 있고 받침대의 모양이나 앉은 위치 크기도 다 다릅니다. 나이 들면서 그러려니! 그럴 거야! 하고 질문을 닫아버리는 순간 우리의 뇌는 이미 늙어 감을 인정해야 합니다. 소녀들은 돌 굴러가는 것을 보고도 까르르 웃습니다. 하지만 나이 들면 바위가 굴러가도 겁만 먹을 뿐 즐거워 웃지 못합니다. 개그맨이 직업적으로 웃겨도 팔짱을 끼고 ‘웃기려면 웃겨봐라’ 노려보며 시큰 둥 합니다.
필자는 스스로 호기심을 만들어 냅니다. 카톡으로 자식들한테 문자나 그림을 날리면서 이놈 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해 합니다. 예상한 반응을 보이면 재미있습니다. 오늘만 해도 도서관에 유지송님이 쓴 ‘은퇴달력’이라는 책이 철학 분류기호인 100번을 달고 있습니다. 뭔가 이상합니다. 왜 틀린 분류표 명찰을 달았는지 궁금합니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전문가인 사서 도서관 직원에게 300번 대의 사회분류표를 달아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금방 알아듣고 잘못을 시인합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실수로 잘못한 것일 뿐입니다.
사람들과 이야기 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그 사람이 살아온 과거 이야기도 궁금하고 앞으로 살아갈 이야기를 듣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오늘 커피를 나눈 분은 젊어서 건설업에 종사했는데 시골에 한옥 황토방을 만들어 귀향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흥미진진한 건설현장 이이야기도 듣고 황토방의 좋은 점을 터득합니다. 책에 없는 호기심을 채워주는 좋은 이야기는 경험한 사람에게 직접 듣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려면 상대방에 대한 호기심이 있어야 합니다.
늙어가는 잣대는 바로 호기심이 얼마나 있느냐 입니다. 궁금하지 않고 알고 싶은 것이 없으면 즐거움도 없습니다. 공자님 말씀에도 ‘배우고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현대판 평생학습입니다. 호기심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은 온통 호기심 천국입니다. 우리에게 호기심이 있는 한 우리는 영원한 청춘입니다.
아들이 퇴근길에 아버지랑 술 한잔 하고 싶다고 전화를 해왔습니다. 시간과 장소는 필자더러 정하라고 합니다. 둘이 만나기 편한 장소와 시간을 정했습니다. 잠깐 생각해보니 며느리와 손자 손녀를 불러 내가 저녁을 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아들네 집 가까운 전철역 쪽으로 갈 테니 식구들 모두 부르고 저녁 값은 필자가 내겠다고 역제안을 했습니다.
아들네는 여섯 살짜리 손녀와 네 살 손자, 두 살 손녀 등 모두 5명입니다. 전철역에 도착하니 아들이 필자를 마중 나와 기다립니다. 좀 있다가 며느리가 아이들 셋을 차에 태워 예약된 음식점 앞으로 옵니다. “할아버지~” 하고 먼저 큰손녀가 뛰어와 안깁니다. 뒤이어 네 살짜리 손자가 뛰어옵니다. 막내둥이 손녀는 뭔지도 모르고 제 엄마 품에 안겨 손뼉을 치며 “아빠, 아빠” 합니다. 한 번씩 안아주고 식당 안으로 들어갑니다.
메뉴는 며느리에게 일임합니다. 아무래도 젊은 사람이 메뉴 선택도 잘하고 식당에 요구할 것도 당당히 말합니다. 역시 내 예측대로 아이들 의자를 달라 하고 아기 숟가락도 주문합니다. 필자 같으면 대충 아이들도 옆자리에 앉히고 어른 숟가락으로 먹도록 했을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이라 밥 먹는 것은 뒷전이고 식당에 설치된 놀이터로 뛰어갑니다. 큰손녀가 뛰어가니 네 살 손자도 달려갑니다. 얼마 안 있어 손자의 울음소리가 납니다. 아이 아빠가 금방 자식의 울음소리를 알아듣고 뛰어갑니다. 손자는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면서 누가 자기를 밀어서 넘어졌다고 합니다. 달래면서 눈물을 닦아준 뒤 밥을 먹으라고 하니 몇 숟가락 먹다가 또 놀이터로 달려갑니다.
며느리는 연신 고기를 구워 필자 접시에 올려줍니다. 아이들 셋에게 밥 먹이랴 고기 굽느라 참 바쁩니다, 옆에서 아들도 고기 굽는 것을 거들면서 쌈으로 고기를 싸서 아내에게 줍니다. 우리 세대에는 부모님 앞에서 아내에게 고기쌈을 싸서 준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시대가 많이 변했다고 느끼면서 그런 아들이 참 멋있어 보입니다.
손녀와 손자는 지긋이 한자리에 앉아서 밥을 먹지 않습니다. 할아버지에게 유치원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를 재잘거립니다. 다 알아듣지 못해서 통역 겸 며느리가 대화에 끼어들어야 합니다. 그러다 또 뛰어 돌아다니고 이것저것 달라 하고 주면 안 먹는다고 하고 변덕이 죽 끓듯 합니다. 아이들의 그런 모습도 필자 눈에는 참 귀엽습니다. 마지막에 누룽지죽을 시켰는데 두 살짜리 손녀가 넙죽넙죽 잘도 받아먹습니다. 손녀의 입맛에 맞나봅니다. 한 번 더 먹이겠다고 남은 것은 싸달라고 말하는 며느리가 대견합니다.
며느리는 현재 아이들 양육을 위해 육아휴직을 냈습니다. 첫째는 유치원에, 둘째는 유아원에도 보내고 발레 학원도 보냅니다. 병원에도 자주 가야 합니다. 혹처럼 붙어 있는 두 살짜리는 업고 동동걸음을 하기도 하고 승용차로 운전도 해야 합니다. 물론 아들이 적극 돕지만 아이의 양육은 대부분 엄마의 손이 필요합니다. 며느리가 참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도 아내의 손을 잡고 고맙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그 의미를 알 것 같습니다. 집으로 오는 길에 며느리가 카톡으로 항상 감사한 마음이라고 글을 보내옵니다. 필자도 고맙다고 답글을 달았습니다.
어릴 적부터의 친구 셋이 오랜만에 만났다. 한 친구가 치킨집을 운영하고 있어 자리를 못 비워 두 사람이 가게로 갔다. 저녁시간은 치킨 배달이 많아 바쁘니 점심시간에 만났다.
치킨 집 친구는 올해 말까지만 치킨집을 하다가 은퇴하겠다고 했다. 그동안 부부가 같이 장사하느라고 너무 고생을 많이 했고 돈도 벌 만큼 벌어 노후자금은 확보해놨다는 것이다. 이제 그 친구를 치킨집에서 볼 날도 얼마 안 남았다. 친구도 그만 둘 날이 며칠 남았다며 손가락으로 세고 있었다. 그만둘 생각을 하니 주문에도 더 적극적이고 친절해졌다고 한다. 그동안 쓰던 주문 전화번호도 꽤 알려져 있는데 프리미엄을 받고 넘겨줄 생각도 하고 있었다. 문제는 적당한 권리금을 갖고 들어올 작자가 아직 없다는 것이다. 수년간 자리를 지켰을 만큼 어느 정도의 매출은 보장이 되는 가게인데도 그 동네가 곧 재건축에 들어가게 되면 재입주하기 전까지는 매출이 부진할 것이라는 약점이 있다. 결국 권리금을 좀 깎아주겠다는 당근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치킨집이 팔리면 양평에 전원주택을 하나 사서 노년을 텃밭이나 가꾸며 살겠다고 했다. 마침 먼저 자리 잡은 친구가 있어 마음을 굳힌 것 같다. 농사지어 수익을 낸다는 것은 또다시 노동을 요구하니 어렵고 과일나무 심어 과일이나 따 먹고 즐기는 수준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전철로도 갈 수 있으니 앞으로 자주 가게 될 것 같다.
또 한 친구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파는 사업을 하는 친구다. 비서 한 명 두고 몇 명 안 되는 직원들과 일하는데 지식을 파는 사업이기 때문에 자신이 은퇴하면 회사가 문을 닫아야 한다는 것이다. 노인복지의 최고 좋은 방법이 일하는 거라는데 하는 데까지 할 생각이라고 했다. 늘 바쁘게 살아 자주 볼 수 없어서 원망을 많이 했다. 전성기만큼은 아니더라도 차츰 일을 줄이고 스트레스 덜 받는 방향으로 회사를 유지하겠다고 했다.
어릴 적 어울리던 친구 세 명은 일찌감치 미국으로 이민 가서 살고 있다. 최근 카톡으로 자주 연락하고 산다. 그러다 보니 이제야 자주 만나자는 스케줄을 짜게 된다. 일단 그 친구들이 한국에 와서 보내는 스케줄을 짠다. 당일 만남은 물론 일박으로 단풍여행 계획도 짜본다. 당일이면 계룡산 정도를 행선지로 잡고 일박이면 경상도의 우장산이나 전라도의 내장산까지도 가보자는 계획을 짜본다. 내년 3월에는 한국 친구들이 미국에 부부동반으로 열흘간 놀러간다는 계획도 잡아본다. 미국 친구 한 명은 벌써 캠핑카를 알아보고 있다고 한다.
이제 내년부터는 우리 친구들이 65세가 된다. 각자 다른 길에서 바쁘게 살았다. 다시 모여 풀냄새 난초 냄새나는 우정의 지란지교로 돌아가야 한다. 딸린 식구도 생겼다. 모두의 공통점은 여행이나 자주 다니자는 것이다. 어딜 가나 경로우대를 받을 수 있으니 더 좋다. 그러자니 내 주변의 스케줄을 줄여야 한다. 고정적으로 시간을 내야 하는 일부터 정리해야 한다. 놀 준비를 하자는 것이다. 여행을 감당할 체력도 다져야 한다. 의상이나 신발 등 장비도 점검해야 한다. 여행 갈 때 새 신을 신었다가 곤욕을 치른 경우가 많으니 신발도 지금부터 길을 들여놓아야겠다.
요즘 들어 뮤지컬 볼 기회가 많다. 오늘 관람한 공연은 정말 신바람 나는 노래와 춤의 향연이었다. 제목은 좀 생소한 다. 뮤지컬 티켓을 받아 들고서도 나는 ‘킹키부츠’가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부츠라고 하니 구두일 것이라는 짐작만 했는데 카탈로그 사진을 보고서 ‘아-이게 킹키부츠구나’ 했다.
80센티미터의 길이에 강렬한 색상과 아찔한 높이의 킬 힐이 ‘킹키부츠’로 여장 남자들이 신는 부츠의 종류를 말하는 것이라니 범상치 않은 구둣가게 이야기일 것으로 생각되었다.
내게는 영화나 연극, 뮤지컬 공연을 같이 다니는 삼총사 친구가 있다. 이번엔 티켓 값이 무려 14만 원이나 했는데 할인 구매한 티켓이 4장이어서 삼총사 외에 동창을 한 명 더 초대했다. 공연 시작이 7시 30분이라 우리는 5시쯤 이태원 블루스퀘어 공연장 앞에서 만나 오랜만에 경리단 길도 걷고 맛있는 식사도 즐겼다.
시작 시간에 맞춰 공연장으로 가니 주말이어서 그런 건지 뮤지컬 배우들의 인기 때문에 그런 건지 객석이 빈틈없이 꽉 찼다. 얼마 전에 봤던 나 등은 알고 있는 내용이었는데 오늘 관람하는 는 줄거리를 전혀 알지 못해 더 흥미롭고 기대되었다.
스토리는 영국 노샘프턴에 있는 ‘프라이스 & 선 제화점’이라는 구둣가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였다. 주인공 ‘찰리’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구두공장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구두만이 전부인 세계에서 자랐다. 찰리의 아버지는 고급 수제 남성화만 고집하는 사람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찰리는 여자 친구 ‘니콜라’와 함께 지겨운 시골 마을에서 벗어나 런던에서 새 삶을 시작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새로운 곳에서 짐을 풀기도 전에 아버지의 사망으로 구두공장을 물려받게 된 찰리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고급스럽지만 유행에 뒤떨어진 수제 구두만 고집했던 아버지의 구두공장은 마구 밀려드는 저가 수입 제품 때문에 문을 닫아야 할 형편에 놓여 있었고 오랜 시간 함께 일한 공장 식구들도 해고해야 할 상황에 이르러 있었다.
이때 똑똑한 여직원 ‘로렌’이 새로운 틈새시장을 개척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찰리는 망해가는 공장을 다시 일으킬 결심을 한다. 찰리가 아는 사람 중에는 유쾌한 여장 남자 ‘로라’가 있었다. 로라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은 찰리는 여장 남자들이 편하게 신을 수 있는 아름다우면서도 튼튼한 ‘킹키부츠’로 공장을 다시 일으킬 계획을 세운 뒤 로라를 구두 디자이너로 데려와 밀라노에서 열리는 패션쇼에 ‘킹키부츠’를 선보이려 한다.
그러나 여장 남자인 로라를 공장 사람들은 탐탁해하지 않았고 사사건건 시비가 붙었다. 그러던 어느 날 로라는 공장 직원인 ‘돈’과 권투시합을 하게 된다. 사실 로라의 아버지는 권투선수였다. 자신을 남자답게 기르려고 어릴 때부터 권투를 가르쳤던 아버지 덕분에 로라는 권투를 잘하게 되었다. 그러나 시합 날 로라는 일부러 돈에게 져주었고 그걸 알게 된 공장 사람들은 로라를 좋아하게 된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킹키부츠’로 성공하게 된다는 이야기인데 주인공 찰리 역할은 탤런트 ‘이지훈’이 맡았고 로라 역할은 ‘정성화’가 맡아 열연을 펼쳤다. 정성화는 뮤지컬 에서 안중근 역으로 감동을 주더니 이번 작품에서는 여장을 하고 나와 관객을 즐겁게 해줬다. 특히 로라와 함께 여장 남자로 분장한 엔젤 팀 남자 배우들이 어찌나 예쁜지 나는 그들이 남자라는 사실을 극 중반에야 알았다. 6명의 엔젤 중에 예쁘긴 한데 어쩐지 남자 같은 이미지가 느껴져 옆자리 친구에게 “저기 두 번째 있는 사람은 남자인가봐.” 했더니 “다 남자야.” 해서 깜짝 놀랐다. 여자보다 더 예쁜 남자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허벅지까지 오는 킬 힐의 ‘킹키부츠’를 신고 노래와 춤을 췄다. 그들이 얼마나 열심히 연습을 했을지 짐작이 되었다. 다른 뮤지컬과 다르게 관객들이 소리도 지르고 손뼉도 치며 호응하는 모습이 매우 흥겨웠다. 나와 친구들도 마구 환호하며 신나게 관람했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엔젤 팀의 여장 남자들이 객석을 돌아다니며 관객의 호응을 유도했다. 관객들이 모두 일어서서 몸을 흔들며 손뼉을 치고 있는데 갑자기 누가 내 어깨를 두드려서 돌아보니 예쁜 엔젤들이 지나가며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이파이브도 하고 객석이 들썩일 만큼 즐거운 시간이었다. 배우들이 객석을 누비고 다니며 관객과 소통하는 모습은 끝까지 많은 감동을 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함께 공연을 본 친구들에게서 카톡이 왔다. 오랜만에 신나는 공연 봐서 좋았다며 고맙다고 했다.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유쾌하고 신나는 뮤지컬로 우정도 다지고 맘껏 즐거웠던 하루였다.
요즘 카톡에서도 ‘행복하세요’라는 말이 ‘건강하세요’,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을 제치고 단연 1위에 올라선 것으로 짐작됩니다. ‘행복’이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국어사전에서는 행복을 ‘복된 좋은 운수’라고 설명합니다. 복, 운수라는 말이 자신의 노력과 상관없는 것 같은 말이어서 정답이 아닌 것 같습니다. ‘복 많이 받으세요’와 ‘행복하세요’가 같은 의미의 말이라니 더더욱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듭니다.
백과사전에는 ‘행복(幸福, happiness)’을 자신이 원하는 욕구와 욕망이 충족되어 만족하거나 즐거움을 느끼는 상태, 불안감을 느끼지 않고 안심하거나 또는 희망을 그리는 상태에서의 좋은 감정으로 심리적 상태 및 이성적 경지를 의미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다분히 주관적이라는 느낌이지만 욕심을 줄여서 만족하고 즐거운 감정을 느끼면 행복이라고 정의합니다.
석천 박재희 교수에 의하면 ‘행복’이라는 단어는 동양에서 사용되던 말이 아니고 영어의 ‘happiness’를 직역한 말이라고 합니다. 고전에는 행복을 대신하는 말로 지금의 내 마음상태가 상쾌하고 만족스럽다는 뜻을 담고 있는 ‘쾌족(快足)’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우리가 자주 쓰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의 출처는 ‘대학장구’의 ‘성의’장에 나오는데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성기의 무자기(誠基意 毋自欺) 차지위자겸 겸쾌족(此之謂自慊 慊快足): 내 뜻을 성실하게 갖는 것은 나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이다. 이것을 스스로 만족스런 상태라고 한다, 겸은 쾌족한 것을 의미한다.”
사람이 살다 보면 운이 좋을 때도 있고, 길가다 똥 밟는 일처럼 본의 아니게 안 좋은 일에 엮일 때도 있습니다. 인간지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좋은 운이 끝까지 이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성공의 잣대와 관계없이 자신을 속이지 않고 스스로 만족스러운 쾌족의 삶을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면 행복이 가까운 느낌입니다.
유트브에 인기 동영상으로 사랑을 받는 법륜스님의 ‘즉문즉답’은 고민이 있는 사람들의 카운슬러 이야기입니다.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도 많습니다. 하지만 답은 한결같습니다. 남을 이해하라는 것입니다. 남을 고치려 하지 말고 자신을 고치라고 합니다. 또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내 마음속에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부족해도 감사한 마음으로 만족해하고 모든 문제는 남이 아니고 내게 있다는 생각을 할 수만 있다면 저절로 행복해지리라 봅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행복해지길 희망합니다.
내게는 두 딸이 있다. 첫째 딸은 현재 LA에 살고 있고 딸만 한 명이다. 둘째 딸은 쌍둥이 딸 둘과 아들 하나를 두었는데 모 그룹의 호주 지사장으로 발령이 나서 가족 모두가 호주에서 4년 동안 살다 얼마 전에 귀국했다. 유치원에 다닐 무렵 호주로 떠난 손주들은 그곳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 지금은 귀국해서 서초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귀국하기 전 4년 동안 나는 전화와 카톡으로 손주들과 거의 매일 대화를 나눴다. 세상이 참 좋아져 무료통화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손주들을 향한 내 사랑
휴가 때면 한 달씩 서로 오가며 만나기도 했지만 손주들에 대한 그리움은 나를 우울하게 했다. 그래서일까. 내가 세상에 태어나 사랑한다는 말을 제일 많이 한 것은 그때였다. 내 사랑의 대상은 당연히 손주들이다. 내 자식 키울 때보다 훨씬 많은 사랑이 솟는다. 내 자식 키울 때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부담이 커서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손주들하고 대화할 때 꼭 안아주며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 또 손주들이 내 집을 방문할 때는 옛말로 표현해서, 버선발로 뛰어나가 반긴다. 손주들이 네댓 살쯤 되었을 때는 손주들 키에 맞춰 앉아 신발도 직접 벗겨줬다. 올망졸망한 발을 보고 있으면 너무 사랑스럽고 행복했다.
나는 손주들이 집에 오는 날이면 좋아할 만한 간식을 직접 만들어 준비해놓는 일도 빼놓지 않는다. 얼마 전에는 연휴를 맞아 함께 임진강 근처로 놀러갔다. 오가는 시간이 서너 시간 걸리는 거리여서 둘째 딸이 간식을 준비해 왔지만 나도 차 안에서 손주들에게 먹일 수 있는 간식거리를 준비했다. 내가 늘 먹을거리를 준비해 온다는 것을 알고 있는 손주들은 교외로 나갈 때마다 ‘이번에는 할머니가 무엇을 싸오셨을까?’ 하고 소풍 도시락 열어보듯 설레어한다. 내가 힘들게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손주들에게 건강한 음식을 먹이려는 마음에서다. 그래서 땀 뻘뻘 흘리며 과일 잼도 직접 만들어 먹인다.
아이들은 보는 대로 배운다
얼마 전에 손주들한테 용돈을 줘야 할 일이 생겼다. 나는 용돈을 줄 때마다 새 지폐를 마련해 반드시 짧은 글이라도 써서 깨끗한 봉투에 넣어서 준다. 헌 돈과 새 돈의 가치는 똑같지만 시장에서 거스름돈으로 더럽혀지고 심하게 구겨진 돈을 받았을 때는 새 돈을 받았을 때와 기분이 다르다. 은행이 막 찍어낸 듯한 빳빳한 새 돈을 받으면 마치 나를 위해 준비된 돈처럼 귀중한 느낌이 든다. 이렇게 용돈을 줄 때도 정성을 다하는 것은 손주들이 어려서부터 돈을 귀하게 여기도록 하려는 교육적인 의미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손주들이 용돈 봉투를 열고는 “와~ 새 돈이다!” 하며 기뻐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다. 그래서인지 손주들도 내게 줄 선물을 준비할 때는 정성을 다하고 예의를 갖춘다. 아이들은 어른의 거울이라는 말이 맞다.
시간이 흘러도 남아 있는 사랑의 흔적들
사랑하는 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것과 글로 표현하는 것은 그 느낌과 강도가 다르다. 손주들도 그것을 아는 것 같다. 말은 그 순간에 제 역할을 다하고 사라지지만 편지로 정성스럽게 표현한 마음은 시간이 지나도 손주들 책갈피에서 종종 다시 발견되기도 하니 말이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해주고 내가 써준 편지들을 보고 자란 탓인지 아이들도 내게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참 행복하다.
LA에 사는 손녀는 멀리 있어 행여 할머니 사랑이 부족하면 어쩌나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서울에 올 때마다 내가 사용하는 붓과 책 등의 물건들에 “할머니 사랑해요!”라는 글을 몰래 남기고 가는 것을 보면 기우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돌아간 후 여기저기에서 발견되는 손녀의 흔적을 볼 때마다 어린 마음에도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생각을 하는 것 아닌가 해서 짠해진다. 그리고 LA로 돌아가 정성을 다해 쓴 ‘할머니의 Love Letter’를 보고 까르르 웃으며 곧 답장을 보내올 손녀가 그때부터 그리워진다.
손주를 예뻐하느니 홍두깨를 예뻐하라는 옛말이 있다. 사랑이 영원할 거라고 믿으면 그 순간부터 상처를 받을 수 있다. 사랑은 그저 순간순간 느끼면 되고 그 순간이 쌓이면 한 권의 아름다운 책만큼 풍성한 이야기들이 남겨질 것이다. 그리고 훗날 추억을 더듬듯 그 책을 살며시 펼쳐보면 얼마나 행복할까. 내 사랑하는 정민, 지민, 성수, 멀리 바다 건너에 살아 자주 볼 수 없는 솔라야 예쁘고 바르고 씩씩하게 성장해줘서 참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