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니어들이 결혼 하던 시절인 1970년대 말에는 남자 27세, 여자 25세 정도에 결혼하는 사람이 많았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란 가족계획 시대였으므로 보통 여자 30세 이전에 자녀 둘을 가진 가정이 많았다. 그러므로 여자가 30세를 넘으면 ‘노처녀’라며 시선이 곱지 않았다.
요즘은 풍속도가 많이 달라졌다. 여자 30세까지 결혼하지 않은 여자들이 많다. 30세 정도는 노처녀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심지어 결혼도 40% 정도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한다.
내가 갓 결혼했을 때는 가족계획이 따로 없었다. 결혼했으니 아이가 생기면 낳고 둘째까지는 그렇게 유지했다. 그 당시만 해도 맞벌이는 흔치 않았으나 맞벌이를 하게 되면 사람을 두고 애를 보게 했다. 처음에는 애 봐주는 할머니 봉급이나 직장에서 받는 봉급이나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서 직장은 승진이 있으니 그 격차가 벌어지면서 애 봐주는 할머니 봉급을 감당할 수 있었다. 문제는 애 봐주는 할머니를 더 이상 구하기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요즘은 아이들 맡길 시설이 많이 생겨 사정은 나아졌다.
요즘 30대 여성들은 20대에 결혼한 사람과 30대에 결혼 사람의 예에서 큰 차이가 있다고 들었다. 20대에 결혼한 사람은 20대에 아이가 생기면 곧바로 퇴직하고 집에 눌러 앉아 경단녀가 된다. 직장 봉급이 아직 초급 사원 때이기 때문에 많지 않아서 포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예 결혼을 포기하거나 연기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30대에 아이를 갖게 되면 이미 직장에서 과장 급 정도의 관리자가 되어 있을 때라는 것이다. 직급도 높아져 그동안 쌓아 온 경력을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이가 생겨도 육아 휴직을 일찍 끝내고 회사로 복귀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 하나도 버겁다. 둘째는 아예 꿈도 못 꾼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녀가 결합하여 둘을 낳아야 인구가 유지되는데 하나만 낳으니 인구가 감소하게 되는 것이다.
양육비용도 만만치 않다. 우리 때처럼 학교만 다니던 시절이 아니라 각종 과외 수업을 필수적으로 받아야 하는 시대이다. 남들도 다 그렇게 하니 안 할 수도 없다. 감당이 안 된다는 것이다.
30대 중반에 첫 아이를 낳으면 그 아니가 제 밥벌이를 하려면 25년 이상이 필요하다. 퇴직연령이 점점 빨라지는 세태를 보면 아이에게 한창 돈이 들어갈 나이에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것이다.
인구 감소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많이 낳으라는 구호뿐이다. 여건이 많이 나을 형편이 아닌데 말로만 많이 낳으라는 것은 설득력도 없고 실효성도 떨어지는 것이다.
20대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사회 모든 여건이 바뀌어야 한다. 머리가 더 커지면 배우자를 고르는 눈높이도 높아져 점점 더 결혼이 어려워진다. 굳이 대학교를 나와야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지금의 교육제도도 고등학교나 전문대학 만 졸업하면 취업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학교를 나와도 취업이 안 되니 대학원에 가다 보니 결혼이 점점 늦어지는 것이다. 청년 취업은 그래서 중요하다.
지피지기, 즉 적을 알면 백전백승. 하지만 손주는 적이 아니다. 쌍둥이에게도 세대 차가 있다는 유머처럼 아무리 인생의 대선배이지만 손주를 접하는 방법에 자식인 부모와 차이가 있고, 또 그 아이인 손주와도 세대와 문화의 차이가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런 모든 걸 뛰어넘어 손주랑 멋있게 그리고 알차게 지내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태문 동경통신원 gounsege@gmail.com
1.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착각
손주가 잘 안 따른다며 고민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많다. 당연히 귀여운 손주를 보고 싶어서 어루고 달래지만 손주가 좀처럼 익숙해하지 않고 길들지 않는다면 무조건 사랑을 쏟아부을 게 아니라 왜 그런지 환경, 조건, 그리고 자신에게 문제는 없는지 등 먼저 그 원인을 찾아봐야 할 것이다.
2. 며느리의 고민
할머니가 세 살짜리 손주를 때리는 걸 보고 정말 기가 찼다. 때린다고 해결될 것도 아니고 더 꺼리고 싫어질 텐데…
손녀에게 ‘손’하며 내미는 손을 잡고 웃는 할아버지 얼굴을 봤는데, 강아지도 아닌데 그런 식으로 다루다니…
이런 속사정의 며느리가 있는 게 현실이다. 매를 들더라도 그것은 부모의 몫이고, 자칫하다가는 학대로 비칠 수도 있으니 절대로 삼가야 한다. 또한 손주는 절대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애완동물도, 장난감도 아닌 엄연한 인격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3. 둘만의 원칙을 정하기
놀이를 통해 배우는 건 운동 및 인지, 판단 능력만이 아니라 협력과 문제 해결 과정의 사회성이다. 용돈을 주면서 돈의 가치와 쓰임새, 그리고 활용에 대해 함께 가르쳐 준다면 더 큰 효과가 있듯이 자칫 고집불통, 독불장군으로 자라지 않도록 적절한 원칙을 만드는 게 중요할 것이다.
놀이터에서 놀 경우에도 시간을 정하고, 간식을 주더라도 양을 정하는 식으로 무한 애정과 무한 만족은 구분해야 하겠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즉 지나친 건 부족한 것만 못하다는 말처럼 뭐든지 정도껏 원칙 아래에서 행해져야 그 효과도 클 것이다.
4. 좋은 놀이법 공유하기
눈높이 교육이라는 말이 있듯이 손주의 시선에 맞춘 돌보기는 결국 손주가 받아들이기 쉽다는 걸 뜻한다. 앞서 소개했듯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어렸을 때 즐겼던 놀이를 함께 하는 것도 좋을 것이고, 요즘 유행하는 놀이법도 배워서 서툴지만 함께 즐겼을 때 그 기쁨은 더 클 것이다
또한 같은 또래의 아이들에게 적극 물어보고, 같은 세대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어떤지 그 사정도 들어본다면 정보의 폭도 넓어지고 시행착오도 줄일 수 있다. 게임중독에 빠진 청소년, 밖에서 뛰어놀지 않고 방에 처박혀 공부만 하다 체력이 약해진 요즘 어린이 등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되고 있는 이런 것들도 결국 평소의 습관, 그리고 첫 단추를 어떻게 꿰느냐가 관건인데, 부모와 놀이법에 대해 상의하고 공유한다면 자신에게도 신선한 자극과 좋은 공부가 될 것이다.
5. 새 육아법을 받아들이자
할아버지 할머니와 부모 세대간 흔히 문제가 되고 갈등의 씨앗이 되기 쉬운 게 바로 ‘육아에 대한 생각’, 즉 육아법의 차이다. 예를 들면, 툭하면 안기려는 버릇이 생기니 좋지 않다, 오냐오냐하면 버릇이 나빠진다 등등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간섭하게 되면 손주 때문에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나빠질 수 있다.
새로운 육아법은 받아들이되 선배로서 조언하는 것까지 포기할 필요는 없다. 적절한 선에서 참고할 만한 경험과 지혜, 그리고 도움이 될 수 있는 조언을 아낌없이 전하고 함께 나눈다면 세대의 벽도 쉽게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손주와의 커뮤니케이션은 결코 어려운 게 아니다. 가장 자연스러운 평소의 모습 그대로 손주와의 관계를 차곡차곡 쌓고, 함께 나누며 지내는 시간은 알찬 삶의 활력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6. 기억은 규칙 속에서 추억으로
일회성은 피하자. 뷔페 같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음식은 오히려 질리기 쉽고 식상하기 마련이다. 원하는 대로 뭐든지 들어주는 게 결국 손주를 유아독존(唯我獨尊)의 괴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걸 명심하고, 일회성보다는 반복, 그리고 규칙적으로 행하자.
집 냉장고에 있는 음식 재료로 요리를 함께 만들어 보는 걸 일주일에 한 번씩 해 보든가, 동네 산책을 매번 다른 길로 다녀 보는 것도 좋겠다. 아니면, 편의점과 슈퍼마켓에서 음식을 살 때 재료가 뭔지 성분과 열량 표시에는 뭐가 씌어 있는지 읽으며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면 금상첨화이겠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횟수를 거듭할수록 커뮤니케이션도 깊어지고, 반복되는 경험 속에서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 잡아 나이가 들어도 잊지 못하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존재를 떠올리며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것이다.
7. 손주보다 자식에게 사랑을
손주가 귀여운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손주를 가장 사랑하는 존재는 자신이 아니라 부모임을 잊지 말고, 먼저 손주를 흐뭇하게 쳐다보기 이전에 자식에게 사랑을 쏟고 있는지, 혹은 손주 앞에서 자식을 혼내지는 않는지 뒤돌아볼 일이다.
매일 무의식적으로 반복되는 식사와 대화, 놀이에서 우선 순위를 정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리사랑이라는 말처럼 자식에 대한 사랑이 결국은 손주에게 이어지고 더 커진다는 점을 명심하자.
자식과의 신뢰 관계, 그 태도를 보고 손주가 크며, 또한 손주를 가장 아끼고 사랑할 자격이 있는 건 바로 자식임을 인정한다면 손주를 대하는 방법에 변화가 생길 것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로서 존경 받고 오래 살기를 바란다는 손주의 듬직한 말 한마디를 듣기 위해서라도 듬뿍 사랑을 쏟는 게 어쩌면 자식과 손주에게는 지나친 관심이고 간섭일 수도 있다.
8. 할아버지 할머니의 역할을 알자
앞서 말했듯이 귀여운 손주의 재롱과 투정, 그리고 어리광에 그저 오냐오냐 응해주거나 혹은 넘치고 남을 만큼 모든 걸 주는 건 과잉보호일 수 있다. 부모가 보더라도 좀 심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분에 넘친 사랑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고, 도를 넘어선 간섭이 된다.
일단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역할에 대해 조금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 오면서 많은 경험을 쌓아온 대선배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든든한 매력이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연 날리기, 비눗방울 만들기 등 놀이 방법을 가르치면서 커뮤니케이션을 꾀하는 방법도 있다. 물론 놀이를 통해 인사법과 식사 예절 등을 가르쳐도 좋을 것이다.
특별히 손주를 가르친다고 의식하지 말고 평소 말투 그대로 이야기하며 함께한다면, 손주는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배워 나갈 것이다.
지난해 3월 하순의 어느 날, 아내와 함께 전남 구례군 산동면의 산수유 축제현장을 거니는 도중 아내가 불쑥 얘기했습니다.
“나무들은 매년 봄이면 다시 꽃을 피우는데, 사람은 한번 늙으면 그만이라는 게 참 허무하네요. 우리도 이 산수유 꽃처럼 다시 새봄을 맞을 수 있다면 좋겠네…”
저는 이렇게 대꾸했습니다.
“나무는 매년 꽃을 피워서 되살아나지만, 우리에게는 손자들이 있잖소. 그 녀석들이야 말로 우리 인생의 새봄 아닐까요.”
아내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지난 호(號)에서 은퇴한 남자의 행복한 노후를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배우자와의 관계’에 대해 얘기했습니다만, 오늘은 그에 못지않게 소중한 손주들과의 좋은 관계, 그리고 그 관계의 키(key)를 쥐고 있는 며느리와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제가 여기서 손주들과의 관계만을 애기하는 건 제게 외손주가 없기 때문일 뿐이지, 외손주들과의 관계가 친손주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절대 아닙니다.
친외손 가릴 것 없이 하나같이 귀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것은 “외손자들의 육아에 가담한 것은 오직 ‘내리사랑’이라고밖에는 일컬을 수 없는,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웅크리고 있었던, 제어 불능의 끌림 때문이었다고 해야 옳겠다” 는 정석희 님의 증언에서 여실히 드러납니다. (정석희 저 - )
이처럼 내 핏줄에 끌리는 것은 본능이니까요.
그는 외손자를 키우며 쓴 책의 말미에서 “내 인생이 다 저물기 전에 이처럼 아이들의 시작과 내 삶의 끄트머리가 겹쳐질 기회가 주어졌으니, 이것이 축복이 아니면 무엇이랴. (중략) 아이들의 존재란, 경험한 적 없으나 응당 그럴 것이라 상상되는 마약처럼 황홀하고 중독성이 강했다. 나의 노년에서 가장 행복하고 충일했던 시기를 손자 녀석들과 함께 보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지난 6년 가까운 세월에 걸쳐 두 손자를 키워 온, 아니 그 녀석들이 커가는 걸 옆에서 지켜본 저의 생각도 정석희 님의 고백과 꼭같습니다. 저는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전형적인 ‘손자 바보’입니다. 그걸 부인하기보다는 저는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다닙니다. 어찌 보면 구제불능인 사람이지요.
저는 두 손자가 태어난 이후로 가능하면 많은 시간을 손자들과 보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제 취미를 살려서 두 손자가 자라나는 과정을 사진으로 담고, 거기에 제 나름의 설명과 소회를 담아 ‘바보 할배의 육아일기’라는 제목으로 블로그에 올리는 걸 낙으로 삼고 있습니다.
언젠가 동창 모임에서 한 친구가 “야! 뭐 때문에 그런 일에 아까운 시간을 다 보내나? 그래 봐야 손자들이 크고 나면 할아버지가 잘 해준 것 기억도 못한다”라고 타박을 하더군요. “그거야 자네 생각일 뿐이고…”라며 웃고 말았습니다.
두어 달 후 저녁 자리에서 바로 그 친구가 “나는 밥 후딱 먹고 먼저 갈 거다. 오늘 손자가 집에 오는 날이거든…”
“손자가 얼마 만에 오는데?” 하고 물으니 “한 달에 한 번 정도…”하고 말끝을 흐리더군요. 두어 달 전 그 친구의 타박이 저에 대한 부러움의 표현이었다는 걸 그때서야 알아차렸습니다.
세 손주들을 적어도 일주일에 한 차례 이상, 어떨 때는 녀석들이 집에 가지 않으려 해서 일주일 이상 함께 자고, 먹고, 뒹굴기도 하는 제 입장에서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손자를 보려고 달려가는 그 친구의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했다니까요.
요즘은 남자고 여자고 할 것 없이 50~60대가 한자리에 모이면 저마다 손주들 사진 꺼내놓고 자랑하기가 바쁘다고 합니다. 동창 모임 같은 데서는 손자 얘기하고 싶은 사람은 미리 만원씩을 내놓고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지요.
뿐만 아니라, 손주가 있는 친구들은 예외 없이 지갑 속이나, 휴대폰에 손주들 사진으로 가득합니다. 실버 라이프에 있어서 손주들의 중요성을 입증해주는 사례들입니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어쩌다 한 번 손주들을 보면서, 사진으로나마 애끓는 그리움을 달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내 피를 받아 세상에 나온 손주들을 매일 보고 싶은 실버들에게는 그러지 못한다는 사실은 일종의 고통이기도 합니다.
손주들을 자주 볼 수 없다는 사실은, 손주들이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친밀감을 느끼지 못해서이거나, 아니면 며느리들이 손주를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자주 보내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손주들을 자주 보고 싶다면 무엇보다도 할아버지, 할머니와 손주들과의 관계, 그리고 손주들의 엄마, 즉 며느리와의 관계를 보다 친밀한 방향으로 개선해나가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손주들과 친밀한 관계로 발전할 수 있을까요… 물론 돈으로 손주들의 환심을 살 수도 있습니다만, 그건 그때뿐입니다. 정말 손주들과 좋은 사이가 되고 싶다면 무엇보다 시간과 마음을 투자하십시오. 즉, 할아버지가 먼저 동심으로 돌아가서 손주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진정한 친구가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저는 손주들이 집에 오면 그때부터 녀석들과 친구가 되어 놉니다. 놀이터로 가 같이 미끄럼도 타고, 같이 달리기도 하며, 모래판에서 씨름도 합니다. 키즈 클럽에 가면 함께 작은 공이 가득한 풀에서 넘어지기도 하고, 좁은 미로 속을 같이 기어 다니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어릴수록 같이 노는 친구를 필요로 하고, 좋아하기 마련입니다.
며느리는 자신과 불편한 관계에 있는 시댁, 혹은 시부모와 자신의 아이들이 가까워지는 것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며느리와 사이가 썩 편하지 않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당연히 손자와 가까워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결혼 전에 심하게 반대를 했다거나, 예단 등의 문제로 며느리에게 격하게 스트레스를 준 원죄가 있다면 ‘구원의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습니다.
며느리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그리고 손주를 맡겨도 좋겠다는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먼저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른들 스스로가 자신이 어른으로서 예우 받아야 한다는 권위의식을 내려놓는 일입니다. 쓸데없는 권위의식을 버리지 못하고 며느리에게 어른 대접을 받으려 하거나, 한 술 더 떠서 며느리가 자란 환경을 은연중 무시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노후의 행복 한 가지는 포기하는 것이 나을 것 같기도 합니다. 일체의 권위를 다 내려놓고,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는 사랑으로 먼저 다가갈 때, 며느리도 그에 상응하는 반응을 보여주게 될 것입니다.
또 하나, 며느리에게 시댁에 올 때 느끼게 되는 부담감을 덜어 주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제 경우는 아이들이 집에 오는 날은 기본적으로 외식을 하되, 메뉴는 반드시 며느리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도록 합니다. 그게 저녁시간이면 아들, 며느리와 함께 폭탄주 한두 잔을 곁들이기도 하지요. 시아버지가 ‘말아주는’ 폭탄주 한두 잔이면, 웬만큼 두터운 장벽도 다 허물어지게 마련입니다.
이렇게 하면 며느리가 시댁에 와도 밥 짓고, 청소하고, 설거지하는 기본적인 부담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거기에 자신이 좋아하는 외식을 하게 되니 손해 볼 게 없는 장사가 되는 것이지요. 여유가 있어서 아이들이 돌아갈 때 신사임당 초상화 몇 장 찔러 줄 수 있으면 금상첨화겠지요.
손주들과 노는 시간에 간혹 역사상의 위인 전기와 같은 교훈이 되는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들려주는 할아버지가 된다면 더욱 좋습니다. 손주들이 바른 인성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게 하는 데는 할아버지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명심합니다.
결론적으로, 손주들은 인생의 끄트머리에서 얻은 가장 큰 축복입니다. 그리고 그 손주들이 할아버지를 좋아하고 자주 찾아와 준다면 그건 인생 최고의 훈장이기도 합니다.
이런 축복, 이런 훈장과 거리를 두고 살아야 하는 인생이라면 다른 어떤 것으로 노년의 무료함과 공허함을 메울 수 있겠습니까.
>> 조용경(趙庸耿)
경상북도 문경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대를 졸업해서 한국은행을 거쳐 포항제철(현 포스코)에서 故 박태준 회장의 비서부장과 홍보부장과 회장 보좌역으로 일했다. 포스코건설 인천 송도신도시사업본부장과 지난 2009년부터 2012년 3월까지 포스코엔지니어링(전 대우엔지니어링) 대표이사 부회장을 지냈다. 현재 포스코엔지니어링 상임고문, 한국트라이애슬론연맹 부회장, (사)글로벌인재경영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행복한 노후’ 즉 은퇴 이후 시작되는 ‘시니어 라이프’를 행복하게 영위하기 위한 조건으로는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얘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인의 의식 구조 속에서는 노후 생활의 행복은 자식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 특히 자신의 분신인 손자들을 자주 만날 수 있고,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특별히 중요한 조건이라는 사실을 언급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 나의 분신, 현우와 승우
제게는 지금부터 4년 여 전, 거의 비슷한 시기에 두 손자가 태어났습니다. 녀석들이야 서로 4촌 간이지만, 저로서는 마치 쌍둥이 손자를 안은 느낌이었습니다. 두 아들 집을 왔다갔다 하며 녀석들을 어르기도 하고, 사진도 찍어주고 하던 어느 날, 마침내 대오각성(大悟覺醒)의 순간이 다가오더군요.
“두 손자 현우(炫宇)와 승우(承宇)는 내 피를 받아 세상에 나온 나의 분신들이며, 앞으로의 내 인생에서는 이 녀석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중대한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밤 안으로, ‘앞으로 살면서 손자들과 함께 하고 싶은 일’의 리스트를 작성했습니다. 두 손자들은 제가 앞으로 많은 시간과 정성과 마음을 쏟아서 사랑해 주어야 할 제 인생의 소중한 열매들이니까요.
나중에 아들, 며느리들과도 협의를 거쳐 완성한 리스트 가운데는 ‘두 손자들과 몽골의 초원에 누워 밤하늘의 별 바라보기’ ‘유치원 시절부터 두 손자들에게 한자 가르치기’ ‘사진을 바탕으로 한 손자들의 육아일기 쓰기’와 같은 항목들이 포함돼 있습니다.
그 뒤로 손자들에게 가급적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손자바보’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두 녀석도 유달리 할아버지를 좋아해 주었으며, 특히 먼저 태어난 현우는 집도 가깝고 해서 두 돌이 되기 전부터 종종 제 곁에서 자고 가기도 했지요.
◇ 블로그에 올리는 두 손자의 육아일기
요즘도 변함없이 수시로 손자들의 사진을 찍고 간단한 글을 써서 블로그에 올리는 일을 지속하고 있는데, 앞으로 2년 쯤 후에 만약 여건이 된다면 ‘바보할배의 육아일기’라는 제목으로 책을 내볼까 생각중입니다. 이 목표가 성사된다면 아마도 손자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손자들이 가슴 속에 아름다운 꿈을 간직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일, 그리고 손자들을 정서적인 사람으로, 또 배려심을 갖춘 사람으로 키우는 일에 특히 노력을 해 왔습니다. 어린이집을 거쳐 금년에 유치원에 들어간 손자 녀석들이 지난 7월 말에 난생 처음으로 방학이란 걸 했습니다.
◇ 농가주택에서 두 손자를 위한 캠핑
두 손자의 아비, 어미들이 한참 전부터 두 아이의 방학을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지를 두고 많은 생각들을 하기에, 제가 아이들에게 춘천 농가주택에다 여름캠프를 만들어서 일주일쯤 데리고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얘기했지요.
일단 두 손자 녀석들은 서로 무지하게 좋아하는 사촌 형제와 일주일 동안을 같이 지낸다는 사실에 잔뜩 흥분을 해서 어쩔 줄 모르더군요. 그리고 녀석들을 보내는 입장의, 최근에 둘째 아이를 낳아서 육아에 여념이 없는 둘째 며느리 현우어미도, 직장생활을 하는 큰며느리 승우어미도 큰 걱정을 하나 덜어낸 홀가분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래서 미리미리 손자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한 다양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 나무 그네와 수영장
텃밭에다 벤치형 나무 그네를 사다가 설치했고, 한쪽으로는 텐트를 치고 그 안에서 놀 수도, 잘 수도 있도록 평상을 만든 다음 평상 위에 두꺼운 비닐 장판을 깔았습니다. 또 전기선을 끌어다 텐트 안에 예쁜 전구와 함께, 모기나 나방을 잡는 ‘블랙홀’이라는 기구도 설치했습니다.
또 장난감 가게에 가서 전시용으로 사용하던 미니 플라스틱 수영장을 사다가 낮은 평상 위에 설치를 끝냈습니다. 물론 아이들이 중간에 무료하지 않도록 수영은 물론 물총, 비눗방울 기구, 그리고 종이찰흙 등 자질구레한 장난감 소품들도 몇 가지를 사다 놓았지요. 마침내 7월 24일(금), 두 손자를 데리고 춘천으로 와 아내와 같이 상당 기간 연구를 하고 정성을 다해 준비한 여름방학 캠프를 녀석들에게 선보였습니다.
녀석들의 반응이 어땠냐고요?
상상 이상이었지요. 아이들 말로 ‘뿅!’ 가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캠프 생활에 녀석들은 잘도 적응해 주었습니다. 해주는 대로 밥도 척척 잘 먹었습니다. 특히 야채 종류는 입에 대기도 싫어하던 승우 녀석이 사나흘 지나더니 밥상 앞에 앉으면 스스로 손바닥에 상추 한 잎 올려놓고, 그 위에 밥과 삼겹살 한 점, 쌈장을 얹은 다음 입속으로 밀어넣고 우걱우걱 씹는 모습이란… 세상에 그보다 더 할아버지, 할머니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모습이 또 있을까요.
밤이면 두 녀석이 제 양 옆을 차지하고는 제 팔을 베고 누워서, 제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를 들으며 서서히 꿈나라로 빠져 들어가는 그 사랑스러운 모습들… 그보다 더 행복한 순간이 앞으로 또 있겠습니까? 이렇게 해서 8월 1일 저녁까지, 8박9일에 걸친 손자들의 여름캠프는 성공적으로 끝이 났습니다. 일주일을 목표로 하기는 했지만, 일주일을 넘어 9일 동안을 할아버지, 할머니와 잘 지내주었습니다. 집에 갈 때도 얼마나 서운해하며 돌아갔는지 모릅니다. 손자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나니 이틀 정도는 몸이 물 먹은 솜처럼 늘어지더군요. 그러나 참으로 즐겁고 행복한 피로였습니다.
그 모습을 SNS를 통해서 본 어떤 분이 “손자를 위해 희생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그래 봐야 학교 들어가고 나면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는 건 그걸로 끝인데, 왜 그렇게 애를 쓰느냐”고 물으시더군요. 삶의 행복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참 이기적인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에 투자하지 않고, 수고하지 않고 얻어지는 행복이란 게 과연 있을까요?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고, 할아버지, 할머니를 자주 못 본다고 해서, ‘9일 간의 캠프생활’이란 그 아름다운 기억마저 녀석들의 머릿속에서 지워져 버리는 건 아니잖아요?
저는 그분의 글에 이렇게 답글을 남겼습니다.
“세상에 투자 없이 얻어지는 건 아무 것도 없을 겁니다. 저는 손자들과 함께하는 행복이란 할아버지, 할머니의 수고에 대한 훈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손자들이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을 바탕으로 바른 인성을 가진 사람으로 자랄 수 있다면 지금보다 더한 어떤 투자도 다할 생각입니다. 그렇게 하면 제가 행복하니까요.”
>>>글·사진 조용경 전 포스코엔지니어링 부회장
좀 과장해 온 방송이 ‘먹방(먹는 방송)’이고 ‘쿡방(요리 방송)’이다. 정규 편성표를 가득 점령한 본방송에, 채널을 가리지 않고 거의 무한 재생되는 재방송까지 더하면 브라운관에서 요리하고 먹는 장면이 끊이지 않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 덕분에 이른바 스타 셰프들이 연일 미디어의 중심에서 활약하고 있다. 어떤 이는 만능 요리 비법을 선보이며 사람들을 주방 안으로 끌어들이고, 또 어떤 이는 허세 가득한 동작과 신출귀몰한 요리 기술로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
미디어의 중심에 선 이들 대부분이 남성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심영순, 홍신애 등 여성 요리인 또는 푸드스타일리스트들의 활약이 돋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허셰프’라는 별칭으로 사랑받는 최현석을 비롯해 샘 킴, 이찬오, 레이먼 킴 등 최근의 요리 유행을 이끄는 주동력은 역시 남성들이다.
하필 지금에 이르러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이는 “인간의 대표적 본능인 ‘식탐’을 자극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지만 지나치게 단순한 분석이 아닐까 싶다. 식탐을 자극하는 방송 프로그램이 최근 들어 갑작스레 만들어지진 않았기 때문이다. “요리하는 남성이 여성에게 성적으로 매력적이기 때문”이라는 추측 역시 마찬가지. 요리 잘하는 남성이 여성에게 인기가 많은 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최근 들어 유독 요리 유행이 도드라진 데는 분명 또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중심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옮아가는 도중에 필연적으로 생겨난 현상’이라는 분석은 귀 기울일 만하다. 남성의 도움 없이도 생활할 수 있게 된 여성들이 강한 남성보다는 모성적 남성을 원하면서 요리 잘하는 남성의 인기가 더욱 높아지고 더불어 남성들이 요리에 더 관심을 갖게 됐다는 주장이다.
가족 해체 등의 사회 불안이 이른바 ‘집밥 열풍’의 주요인이라는 설도 설득력을 갖는다. 먹고살기 힘들어지면서 남성들이 어머니가 해주는 밥을 먹을 때와 같은 편안함을 갈구하게 됐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복고주의’라는 견해도 있다. 원시사회 때부터 임신 및 육아가 여성의 몫이었던 반면, 식량 획득과 요리는 남성의 몫이었으므로 최근의 유행은 과거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성적 분업 이론(남성과 여성의 생리학적 특징의 차이에 따라 일이 나뉜다는 학설)에 근거한 주장이다. 개인적으로는, 돌아가려는 시기와 현재 사이의 간격이 터무니없이 멀어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이런 맥락과 비슷한 주장들이 최근 유행과 더불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요리에 진실로 그리워하는 것이 있다
더러는 지겨울 만도 하다. 튀기는 소리, 지지는 소리, 끓는 소리에 맛있다는 호들갑까지 더해진 천편일률적 요리 방송이 시청자들에게 쾌감만 선사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백과사전이 ‘미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저술가이자 환경운동가’라고 설명하는 마이클 폴란은 저서 에서 현대인들이 직접 요리하지 않고 텔레비전 등 미디어를 통해 요리에 심취하는 현상을 ‘요리의 역설(Cooking Paradox)’이라 지칭했다. 미디어의 영향으로 요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잘난 듯 떠들어대지만 사람들이 실제로 요리하는 시간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폴란은 ‘1960년대 중반 이후 미국 가정에서 식사 준비에 필요한 시간은 하루에 고작 27분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또 다른 저서 에서는 “우리는 음식의 홍수에 빠져 있지만 정작 ‘진짜 음식’은 드물다. 슈퍼마켓 선반에서 ‘진짜 음식’이 사라지고 ‘그럴싸한 음식’을 가장한 가공식품이 빼곡히 들어찼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최근 요리 유행의 핵심은 손쉬운 요리, 값싼 요리, 다가가기 쉬운 요리다. 폴란은 그런 요리들을 떠받쳐줄 기둥이 그다지 깨끗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라고 다를 리 없다. 음식평론가 황교익 씨는 우리나라 특유의 ‘치맥’ 유행을 ‘값싼 육류를 제공하려는 정부와 산업계의 노림수가 대중에 통한 결과’라고 비판하고, 요리사 겸 저널리스트인 박찬일은 모 언론에 기고한 칼럼 ‘달걀의 운명’에서 달걀이 대량 생산되는 현실을 두고 ‘이 불안한 풍요가 실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 불안해한다. 우리 삶에 가장 가까운 닭고기와 달걀의 현실이 이럴진대 다른 식재료는 오죽할까.
요리 방송이 주로 밤 시간대에 편성된 것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유는 간단하다. 먹지 않아도 될 시간에 식욕을 지나치게 돋움으로써 건강상 부작용을 일으킬 소지가 높기 때문이다.
굳이 렙틴(Leptin)이니 글렐린(Glehlin)이니 하는 신경호르몬 이름을 들먹이지 않아도, 요리 방송의 부추김에 떠밀려 맥주 캔과 더불어 기름진 안주거리를 찾은 경험이 누구든 한두 번쯤은 있을 터. “이른바 ‘쿡방’ ‘먹방’의 영향으로 뇌에 내성이 생기고 더 자극적인 음식을 찾게 돼 비만 등 건강에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의사들의 진언은 괜한 걱정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바람을 선선하게 느낀다. 갖가지 역효과에 눈 감으려는 무책임함 때문이 아니다. 어떤 잇속이 걸려 있기 때문도 아니다. 무엇보다 나쁜 영향 못지않게 결정적으로 좋은 영향이 분명 그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남자에게 요리는 무슨 존재인가
요리 늦바람이 골프나 주식투자보다 재미있고 가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남이 해주는 요리만 먹던 ‘상남자’들이 아내의 전유물로만 여기던 칼을 집어든 이유는 뭘까.
은퇴한 남편이 집에 돌아오는 것과 달리 중년 부부의 경우 아내는 점차 밖으로 활발하게 움직인다. 남자들의 요리는 가정 평화는 물론, 고령화시대에 대비해 반드시 익혀야 하는 필수 학습으로 회자되고 있다.
남자들의 요리는 생의 진실을 담아낸 영화처럼 따뜻하며 때로는 코끝 찡하게 먹먹하다.
결국 우리의 인생이 맵고 짜고 달고 시큼하기 때문일 것이다.
요리는 섬처럼 고립된 개인들을 잇는 역할을 한다. 누군가를 위해 상을 차리고 함께 나눠 먹는 것은 상대방의 입맛과 식습관, 식탁 위를 넘나드는 이야기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다. 영화 의 주인공 도완득은 언제나 혼자 밥을 먹고 등·하교하며 자신의 삶에 누구도 초대하지 않는 다. 그러나 영화 말미에서 끈질기게 거절하던 반 친구의 “라면이나 먹고 가자”는 말에 “그러자”고 답한다. 그는 이제 누군가와 함께 밥상에 앉는 것을, 자신의 삶에 타인이 들어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영화 은 핀란드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주인공과 각자 상처를 지닌 채 식당을 찾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 따뜻한 영화다. 카모메 식당은 우리나라의 분식집쯤 되는 작은 동네 식당. 세 여인은 이곳에서 시나몬 롤과 오니기리를 먹으며 각자의 상처를 치유한다.
요리를 하거나 음식을 제공하겠다는 것은 상대와 유대관계를 맺겠다는 적극적 신호다. 어릴 적부터 여기저기에서 자주 들어왔던 “한술 뜨라”는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언어 습관은 바로 그 정신에서 출발했다.
제임스 L. 브룩스 감독의 걸출한 코미디 영화 에서 타인을 거부하던 시절의 주인공 멜빌 유달(잭 니컬슨)은 홀로 식당에서 음식을 사먹기만 한다. 그러다가 이웃집에 사는 게이 화가 사이먼(그레그 키니어)을 받아들이면서부터는 중국식 수프를 나눈다. 편견에 사로잡혀 있던 주인공이 게이 화가에게 마음의 문을 열었음을 보여주는 장치로서 음식을 선택한 것은, 실로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이다. 음식에는 그런 힘이 분명히 있다.
지금의 요리 열풍에도 그처럼 명쾌한 힘이 내재돼 있다. 그 동안 우리 가장들은 나쁜 의미에서 독야청청했다. 전통적 가부장제의 영향으로 근엄함과 배타심을 구분하지 못하고 스스로 차단막을 내걸었던 이가 많았다.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가 그로 인해 자기 고립의 함정 속으로 스스로 빠져들고 말았다.
‘삼식이’라는 말을 아시는가? 은퇴 후 삼시세끼를 부인이 해주는 식사로 해결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뉘앙스부터 천박하고 불쾌하기 짝이 없으니 바람직하지 않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생산 가능 인구(15세에서 64세 사이)와 생산 불가능 인구 사이의 비율이 2060년에 이르러 50대50이 된다는 고령화 사회에서 누구도 그 유행어의 비극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쉽게 말해, 한때 배달의 기수였던 남성들이 현대에 이르러 계륵 같은 존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요리 유행은 계륵과 가족 사이에 음험하게 드리워진 차단막을 걷어내도록 하고 있다. 음식을 타인과 나누는 요리의 정신이 계륵들로 하여금 스스로 벽을 허물게 만들고 있다.
최근 요리 열풍의 핵심에 나이 지긋한 남성들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보자. ‘차줌마’로 일컬어지는 차승원, ‘백 주부’라는 애칭으로 사랑받는 백종원, 중화요리의 대가라는 이연복 등은 모두 마흔을 훌쩍 넘긴 중년 남성들이다. 그들은 방송의 중심에서 너나 할 것 없이 “요리는 어렵지 않다”, “당신도 할 수 있다”고 외치면서 그 동안 요리에서 소외돼 있던 계층, 다시 말해 중년 남성들을 주방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그런 점이 오히려 쉽게 요리에 접근하고자 하는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게 아닐까.
백 주부는 자신의 요리를 세발자전거에 비유했다. 어린 아이도, 할머니 할아버지도, 자전거를 한 번도 안 타본 사람도 겁내지 않고 타 볼 수 있는 세발자전거처럼 누구나 시작해 볼 수 있는 수준이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저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는 용기를 주어 다음에는 두 발 자전거 타기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주방 안으로, 관심 속으로
최근 은퇴 전후 남자들에게 요리교실이 인기다.
실제로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초문화원의 ‘아버지요리교실’은 정원 25명으로 3개월씩 진행하는데, 은퇴 전후의 50, 60대가 주축이다. 서울대 노화고령화사회연구소와 이화여대 글로벌식품영양연구소, 순창군이 함께 시행하는 ‘골드쿡’ 프로젝트는 은퇴 전후의 중·장년층 남성들을 대상으로 한 요리실습이다. 서울특별시 양천구청이나 강남구청 등이 꾸준히 운영해온 중년 남성 대상의 ‘아버지 요리교실’ 등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남양주 시청의 ‘아버지 요리교실’, 광주광역시 농업기술센터의 ‘아버지 요리교실’ 등 최근의 요리 유행에 힘입어 개설된 아버지 대상의 요리교실 역시 하나둘이 아니다.
고양시 ‘젠틀맨 생활 요리 교실’은 55세 이상의 은퇴 남성을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남성을 위한 요리 교실로, 실생활에서 꼭 필요한 간단한 생활 요리법을 전수해준다. 수업 소개란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 있다. ‘남성만의 요리 교실로, 새로운 인간관계와 자아를 재정립하고 그동안 소원했던 가족들과 가까워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유익한 강좌’라고.
여기에 경기 부천시, 광명시, 고양시, 충북 음성군, 강원 영월군, 경북 칠곡군 등 군 단위에서 시행되는 남자 요리교실과 ‘시니어 요리교실’ ‘행복남요리교실’ ‘츠지원’ 같은 사설 요리 강좌까지 합치면 중년 남성 대상의 요리 강좌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해외 유명 셰프를 초빙하는 경우도 있고 값비싼 식자재와 조리도구를 사용한다. 8~10명 정도의 수강생만 받아 소수 정예로 운영되는 만큼 전문직이나 높은 사회적 위치와 함께 경제적 여유가 있는 수강생들이 찾는 것이 보통이다.
이런 강좌에 참가하는 남성들의 마음은 한결 같다. 가족을 비롯한 사랑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요리를 대접하겠다는 것, 그래서 그들과 좀 더 가까워지려는 것이다.
요리 잘하는 최철주 전 중앙일보 논설 고문은 “나이 먹은 남자들의 요리는 치유일 수밖에 없다”며 “가족을 위해, 혹은 지친 누군가를 위해 배려와 진심을 담아 요리하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가치 있다”고 말했다. 요리는 다름 아닌, 자신의 진심을 상대에게 전하는 커뮤니케이션의 강력한 한 방법이다.
마이클 폴란은 요리 방송이 요리에 대해 떠들기 좋아하게 만들 뿐 요리 자체로 끌어들이지 못한다고 역설했지만, 우리나라에서 일고 있는 요리 유행은 그와 양상이 사뭇 다르다. “요리는 어렵지 않다”는 어떤 요리인의 주장에 고무돼 실제로 많은 남성들이 요리에 도전하고 있으며, 적어도 도전하려 하고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요리는 사람들의 유대관계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게 분명하다. 부작용을 여럿 양산한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지만, 요리가 가족 또는 타인과의 벽을 허물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최근의 요리 유행을 반갑게 맞이하고 싶다.
예나 지금이나 ‘밥’은 중요한 소통 수단이다. 어느 종교 지도자는 밥을 나눈다는 것은 음식과 시간을 함께하는 것만이 아니라 미래의 꿈과 비전도 함께 나누는 것이라고 했다.
중년 남자들이 ‘먹방’과 ‘집밥’을 통해 찾고자 하는 것은 ‘맛’이 아닌 ‘정’이고 ‘온기’가 아닐까. 분명, 요리라는 행위에는 그처럼 명쾌한 힘이 있다.
{ 남자가 가도 괜찮은 요리 수업 }
양천구 ‘아버지 요리 교실’
3·6·9·12월, 1년에 4회 양천구 지역 남성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요리 강좌. 한 달 과정으로 매주 토요일 4회 수업한다. 장어구이, 들깨수제비 등 비교적 난도 있는 요리 수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초문화원 ‘아버지 요리 교실’
10~12월 3개월 12주 과정으로 진행하며, 강의 신청은 10월 31일까지 받는다. 매주 목요일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수업한다. 단호박 밤수프부터 제육볶음, 황태찜, 연어 스테이크 등 반찬과 일품요리를 두루 배울 수 있다.
롱런아카데미 ‘아빠 요리 교실’
분기별로 2개월 8주 과정. 매주 월요반과 수요반 2회 운영한다. 두 강좌 모두 요리의 기본인 계량법과 밥 짓기로 시작해 떡갈비 같은 접대용 음식은 물론이고 생선 손질법과 찌개 끓이는 법 등 생활에 꼭 필요한 지식을 알려준다.
고양시 흰돌종합사회복지관 ‘젠틀맨 생활 요리 교실’
은퇴한 남성이 노후에 자신의 손으로 직접 요리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개설한 요리 강좌로 기본적 요리 용어부터 꼼꼼하게 알려준다. 매주 목요일 12회 수업을 진행한다.
손자녀들을 보면 괜히 미소가 나온다. 보고 있으면 맛있는 것 입에 넣어주고 싶고, 좋은 옷 입히고 싶은 것이 조부모 마음 아닌가. 그런데 가끔은 자녀들이 아이를 잘못 키우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때도 있다. 우리 때와 다른 육아 방식으로 아이를 키우고 있으니까. 그러나 그것은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니다. 좋은 조부모가 되는 방법, 자녀·사위·며느리와 부딪히지 않고 육아 잘하는 비결을 SBS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의 자문위원인 백종화 아동청소년심리상담센터 소장이 알려준다.
◇손자녀에게 다가가려면 자녀를 노크하라
좋은 조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자녀라는 문을 두드려 손자녀에게 다가가는 것이 좋다. 손주 교육에는 방관과 관심의 균형을 적절히 맞추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자녀들이 손주를 키우는 철학이나 양육 방법을 듣고 존중해야 한다. 이런 것들이 자녀와 상충됐을 때 마찰이 생기는 것도 문제지만, 무엇보다도 손자녀가 불안함을 느끼고 혼란스러워 할 수 있다. 그러면 아이가 신경질적인 기질로 변할 수 있다.
또한 손자녀에게 주는 지나친 관심은 손자녀들이 보상을 해줘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아이가 아이답게 크지 못하고 조부모의 눈치를 보며 조부모가 원하는 행동을 하게 된다. 이것이 손자녀들이 느끼는 부담감이다. 부담감을 가진 손자녀들은 성장할수록 조부모를 만나는 것을 꺼리게 된다.
자녀의 양육 방식과 철학을 이해하고 그런 방식을 존중할 때 손자녀들은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존중 받는 사람이다’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달아 존중이라는 덕목을 체득할 수 있다. 거기에 자녀들도 부모들이 자신들의 방식을 존중해 준다는 것에 고마움을 느껴 더욱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게 될 것이다.
자녀는 손자녀에게 다가가기 위한 필수 관문이다. 자녀의 방식과 의견을 얼마나 존중해주느냐에 따라 손자녀의 행동도 달라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가족문화를 만들 때는 추진력 있게 이끌어라
조부모에서 자녀, 손자녀로 이어지는 3대 가족 문화를 만들 때는 조부모의 역할이 커야 한다. 이때는 가족의 큰 어른으로서 목소리가 커도 괜찮다. 어떤 가족이 그 가정만의 뚜렷한 문화가 있다는 것은 10세 이하 손자녀의 정서 안정에 큰 도움을 준다. 가족 문화는 제사나 생일 등의 대소사도 있지만, 한 달에 한 번 함께 밥 먹기, 3개월에 한 번 할머니 집에서 자기 등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도 좋다. 특히, 조부모와 함께 하루를 공유한 후 잠을 같이 자는 것이 좋다. 하루를 함께 공유하면 아이는 가족의 틀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게 되는데, 이는 나중에 사고를 넓히는 데 영향을 미친다.
백종화 소장은 “삶을 섞어라. 자녀·손자녀와 지지고 볶아라”라고 조언한다. 손자녀들이 부모에게서 떨어져 조부모와 삶을 섞는 것은 다양한 환경을 체험해 다양한 상황에서 적응력을 높이는 데 이롭다. 그래서 백 소장은 1년에 두 차례 손자녀와 함께 잠자리를 할 것을 추천한다. 지금까지 그렇게 하지 못했다면 손자녀들과 함께 손잡고 하루만 자연체험을 하고 같이 잠자자. 조부모들이 자연에서 자랐던 경험과 그 느낌, 분위기는 아이들의 감성을 풍부하게 해 줄 수 있다. 여행은 삶을 섞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문화 중 하나다. 자녀·손자녀와 함께 정례적인 여행를 가는 것도 좋다. 격년으로 한 번씩 여행을 같이 하거나, 자녀·손자녀와의 5박 6일 여행 중 2박 3일을 함께 여행해 보는 것은 어떨까. 거기에 가족의 화목을 도모하는 가족 단체티까지 맞춰 입고 간다면 금상첨화다.
◇손자녀들의 느티나무, 넓은 땅이 되라
조부모들이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조부모의 역할은 부모의 역할이 아니라는 것이다. 조부모는 가정의 느티나무와 넓은 땅이 돼 손자녀들이 편안하고, 부담스럽지 않게 뛰어 놀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또한 손자녀들의 부모가 하지 못하는 일들을 해주는 것이다. 예컨대 손자녀를 정서적으로 풍요롭게 하는 것은 조부모의 역할이 부모의 그것보다 훨씬 크다. 부모들은 사회생활과 육아 스트레스에 찌들어 여유를 갖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역할은 삶의 경험이 많은 조부모의 것이다.
백종화 소장은 “손자녀들의 기억 속에 조부모는 여유있고, 인자하고 편안한 기억으로 남는 것이 중요하다. 손자녀는 중학생이 되면 곁에서 떠나가는 것도 인정해야 하고, 그들이 떠나갔을 때를 섭섭해 하기보다 이후에도 좋은 기억 속에 조부모가 있는 곳을 ‘쉼터’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녀의 양육방식이 마음에 안 들 때
자녀의 양육방식을 100%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금물이다. 세대가 세대인 만큼 30%밖에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녀를 키우면서 경험한 좋은 방법이 있더라도 그것을 손자녀에게 강요하다보면 손자녀들이 조부모를 만나기 꺼려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때로는 손자녀에게서 느낀 섭섭함이 자녀와의 마찰로 번지기도 한다.
이때는 대화로 엉킨 실타래를 풀어야 하는데 말의 어조와 순서 바꾸기, 느낌보다 본 것 말하기만 기억하면 된다. 전자는 말 그대로다. 손자녀를 양육하는 데서 오는 섭섭함이 자녀에게 생겼을 경우 감정적으로 말하기보다는 자녀에게 고마웠던 것부터 써보고 직접 이야기를 해보라. 예를 들어 “아이가 착한 것은 네가 잘 키워서 그런 거야”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자녀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고 뜸을 들인 다음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다. 말할 때는 “~해라”의 명령조보다는 “내가 살아보니 이 방법으로 훈육을 하니 꽤 쓸만 하더라”라고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인데 좋은 것을 추천해 주는 것이다. 주 양육자가 되기보다는 육아의 조언자가 되는 것이 현명한 조부모가 되는 법이다.
아이가 산만하거나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때 자녀에게 양육을 잘못한 것이라고 다그치는 것은 좋지 않다. 아이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표현하는 것도 자제하는 것이 좋다. 자녀와 조부모간의 감정만 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는 아이를 섣부르게 판단해 느낌을 표현하기보다는 본 사실만 그대로 이야기해주는 것이 좋다.
△백종화 소장이 제안하는 멋진 조부모 10계명
1. 거울을 보고 입꼬리 올리는 연습을 하세요.
2. 손자녀의 말에 적극적으로 맞장구를 쳐주세요.
3. 아이 놀이가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처럼 진지하게 지켜봐주세요.
4. 손자녀의 모습에서 발견되는 아빠, 엄마의 좋은 점을 찾아주세요.
5. ‘요즈음 아이들’이라는 말로 손자녀와 거리를 만들지 마세요.
6. 순간의 즐거움을 위해 스마트폰이나 물질로 손자녀를 유혹하지 마세요.
7. 동요 2~3개를 더듬지 않을 수준으로 연습해서 손자녀와 함께 불러보세요.
8. 손자녀 앞에서 다른 조부모와 손자녀를 흉보거나 비교하지 마세요.
9. 손자녀 여벌옷, 칫솔, 베개를 준비해서 갑자기 와도 편히 놀 수 있게 하세요.
10. 헤어질 때 귓속말로 “할머니, 할아버지가 00를(을)많이 사랑한다”고 해주세요.
△손자녀에게 현명하게 선물하는 법
무작정 선물을 하다 보면 “버릇 나빠진다”거나 “이거 필요 없는데”라며 자식·며느리·사위에게 싫은 소리 들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선물을 하는 것이 현명할까? 물건을 사줄 때 리스트를 작성하라. 그리고 자녀들에게 어떤 것이 필요한지 물어봐라. 그들에게 직접 리스트를 받아도 좋다. 이렇게 되면 자녀들과 손자녀가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어 갈등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 손자녀에게 선물을 했다면 자식·며느리·사위에게도 조그만 선물을 하는 것도 좋다.
이럴 경우 손자녀들은 자신의 부모가 사랑 받는 존재라는 인식을 갖기 때문에 부모와 조부모를 존중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즉, 선물을 주는 행위만으로도 손자녀 교육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알아둬야 할 것은 손자녀 교육에서 자녀를 배제하면 손자녀가 부모를 무시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는 것이다.
△자녀가 손자녀를 혼낼 때?
이때는 자녀에게 센스있는 부모가 될 수 있는 기회다. 손자녀에게 “엄마가 XX와 할 말이 있는 것 같으니 잠시 할머니 나갔다 올게”라고 말하고 자리를 피하라. 그곳에서 손자녀의 편을 든다면 자녀는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된 훈육을 할 수 없다. 반대로 자리를 피하는 경우, 자녀도 마음이 편해져 이성적으로 아이를 훈육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나 다시 그곳으로 가서 손자녀의 기분을 풀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조부모가 직접 훈육을 하는 것보다는 자녀가 훈육하는 것을 완화해주는 쿠션 역할을 해야 한다. 이럴 경우, 가랑비에 옷 젖듯 조부모의 영향력이 증가한다.
△‘꺼리’를 만들면, 유쾌한 조부모 될 수 있다
이럴 때가 있다. 손자녀들과 노는 데 놀 소재가 떨어져서 선물 공세를 펼치거나, 먹을 것만 주야장천 권할 때 말이다. 이것은 놀 거리, 볼 거리, 즐길 거리, 먹을거리 등의 ‘꺼리’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유쾌한 조부모가 되는 법은 ‘꺼리’만 만들면 된다. 손자녀들과 만나기 전 이런 ‘꺼리’들을 준비해 함께 즐기는 것은 손자녀들이 조부모를 유쾌하게 느끼고 기억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전래 놀이나 책을 읽어주는 것도 좋다. 특히 조부모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의외로 손자녀들에게 잘 먹히는(?) 아이템이다. 조부모도 그 이야기를 하면서 동심에 빠질 테지만 손자녀들도 그것을 들으면서 매우 신선하고 신기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아이들의 마음이 움직여 조부모를 더욱 친근하고 매력적으로 느끼게 된다.
- 도움말 백종화 아동청소년심리상담센터 소장
이화여대 아동학과 겸임교수, SBS ‘우리아이가 달라졌어요’ 전문자문위원,
EBS ‘선생님이 달라졌어요’ 전문자문위원, EBS ‘학교의 고백’ 전문자문위원,
저서 , ,
손주에 대한 사랑은 표현하지 않아도 조부모 얼굴에 다 드러나기 마련이다. 맛있는 것을 해주는 것도 모자라 선물공세를 하기도 하고, 우악스럽게 볼을 부벼보기도 한다. 여기 또 다른 방식으로 손주 사랑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록 유산형
손주와의 추억이나 일상을 기록으로 남겨 놓는 사람도 있다. 손주를 병원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첫걸음마를 뗐을 때 등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런 것들을 후에 손주들이 봤을 때 할머니·할아버지를 어떻게 기억할까? 손주와 조부모의 관계에서 육아일기는 뜻 깊은 역사 기록물임에 틀림없다.
이계진 前 아나운서·前 국회의원
이계진은 첫 손자 규성이와 둘째 손자 지한이와의 일상 이야기를 (하루헌)라는 책에 담았다. 병원에서 처음 손자를 만난 것부터 숨바꼭질을 했던 에피소드, 그리고 사진을 보고 손주들을 그리워하는 내용까지 그때마다 느꼈던 감회를 육아일기 형식으로 풀어냈다. 두 손자가 나중에 할아버지가 쓴 책과 사진들을 본다면 할아버지의 사랑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김초혜 시인
한국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정지용문학상, 현대문학상에 빛나는 김초혜 시인의 손주 사랑도 유별나다. 김씨는 365일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첫 손자를 위해 편지를 썼다. 이 내용을 담은 (시공미디어)라는 책에서는 손자 재면이에 대한 김씨의 잔잔하지만 깊은 애정이 느껴진다.
조정래 작가
김초혜 시인의 남편인 소설가 조정래씨도 손자와 그 친구세대를 위해 위인전을 펴냈다. (문학동네)는 조씨가 직접 인물을 선정하고 쓴 시리즈물이다. 신채호, 안중근, 한용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올바른 방식으로 큰 자취를 남긴 인물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주식증여형
손자를 사랑하는 방법으로 주식을 직접 증여하는 방법을 택한 사람들이 있다. ‘그래, 돈이 최고야’라는 뜻보다 어렸을 때부터 투자가 뭔지 체험하라는 의미가 숨겨져 있다. 먹이를 직접 주는 것보다 먹이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이렇게 손주를 위한 장기 금융투자상품도 쏟아지고 있다.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
지난 2월 4일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의 취임 간담회 겸 신년회에서 화제가 된 것은 그의 특별한 손주 사랑법이었다. 그는 손주의 100일 기념 선물로 600만원어치 주식을 선물했다. 현재 저평가 받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성장할 만한 우량기업 3개사를 골라 200만원씩 손주의 이름으로 투자했다는 것이다. 황 회장은 이것으로 차후 대학 등록금도 챙겨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태어난 지 100일 만에 600만원을 갖게 된 셈이지만 할아버지의 애정은 그 10배, 100배다.
◇무장 해제형
자고로 손주는 인꽃이다. 아무리 봐도 싫증나지 않는 최고로 아름다운 인꽃 말이다. 그런 꽃 앞에서는 어떤 사람이라도 무장해제될 수밖에 없다. 마음이 열리면 행동이 바뀐다. 주로 이런 무장해제형은 카리스마 넘치는 할아버지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임권택 영화감독
메가폰을 잡으면 호랑이 감독으로 정평이 나 있는 임권택. 그의 카리스마도 손주 앞에서는 와르르 무너질 때가 많다. 요즘 아이들 대세 애니메이션인 ‘로보카 폴리’의 캐릭터 이름까지 줄줄이 꿰고 있을 정도. 자식 앞에서는 한 번도 애교를 부려 본 적도 없는 그가 손자와 함께 놀아주기도 한다. 이렇게 무뚝뚝한 할아버지도 무장해제시키는 것이 손자의 힘이다.
박근형 배우
배우 박근형은 아들과 있을 때와 손자와 있을 때의 행동이 180도 다르다. 아들과 있을 때는 다소 어색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손자와 있을 때는 ‘룰루’라는 애칭을 부를 정도로 사르르 녹는다. 최근 한 방송에서 아들 윤상훈(예명)은 박근형이 손주한테 너무 전화를 자주해 손주가 받자마자 “왜요?”라고 대답한다고 말해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윤일봉 배우·前 영화진흥공사장
사위인 배우 엄태웅과 딸 윤혜진의 혼전 임신 사실을 알고 엄태웅에게 괘씸하다며 버럭 화를 내던 윤씨. 그때 손녀 지온이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사위 앞에서는 위엄있는 장인어른이지만, 손녀가 눈을 맞추고 웃음 지을 때 머리가 개운해지고, 편해지고, 행복해진다는 그는 영락없는 무장해제형 할아버지다.
손주는 약(藥)이다. 그저 바라만 봐도 웃음이 나고, 아양이라도 떨면 엔돌핀이 솟아나는 손주는 만병통치약이다. 최근 출판업계는 조부모들의 자양강장제와 같은 손주를 소재로 한 서적들이 쏟아지고 있다. 책에는 성장하는 손주에 대한 바람과 조언이 담겨있다. 애틋한 사랑과 자상한 문체에서 깊은 사랑이 전해진다.
출판업계가 차일드 붐(Child Boom)으로 들썩거린다. 아이들과의 에피소드, 소소한 일상을 담은 신간 서적이 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대상이 딸이나 아들이 아니다. 그 세대를 뛰어넘은 손주들의 이야기다.
손주와 조부모는 상호보완의 관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부모는 손주에게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고, 손주는 조부모에게서 사회에서 갖춰나가야 할 소양과 예의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조부모들은 때 묻지 않은 손주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잃어버린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깨닫고, 가족 구성원 내에서 자신의 역할을 재정립하기도 한다.
스타 작가들도 손주들을 위해 펜을 들었다. ‘태백산맥’, ‘아리랑’ 등 베스트셀러 작가 조정래와 그의 아내 김초혜 시인이 손자들을 위해 각각 위인전과 시집을 냈다. 전직 방송인이자 정치인이었던 이계진도 손주와의 소소한 일상을 책을 통해 소개했다. (사)통일문화연구소 라종억 이사장도 손녀와의 생활을 통해 깨달은 바를 종이에 담아 독자들에게 다가갔다.
이 책들은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들이 손주들에게 남기고자 하는 것은 결코 물질적으로 풍족한 것들을 선물해 주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영원히 짝사랑만 하는 손주들에게 가족의 의미와 정의롭게 살기, 상대방 배려할 줄 아는 인간되기 등 손주들에게 남겨주고 싶은 것들은 크기가 원대하거나 부담스럽지 않다.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순수함의 중요성을 손주들과 볼 부비며 몸소 체험했기에 가능한 것들이다.
신중년들은 각박하고, 고단한 사회생활 속에서 순수함을 되찾기란 쉽지 않았다. 순수함이 주는 행복. 그 속에 피어나는 웃음이 그립다. 그리고 그 웃음의 해답은 손주다. 잊고 있던 순수함 속에 잠시 떨군 할아버지·할머니의 고개를 일으키는 것이 바로 손주의 힘이다. 그리고 그러한 손주를 보며, 우리의 지난날을 반성하기도 한다.
이제 소개할 책들을 탐독하면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느낄 것이다. 작가들이 손주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그리고 손주들이 작가들에게 주는 메시지에 이내 공감될 것이기 때문이다.
화제가 되고 있는 책 4가지를 선정했다. 작가의 일상에 공감하는 사람은 웃을 것이고, 손주에 대한 육아법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도 모르게 메모할 노트를 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 김초혜, 행복이 (시공미디어)
조정래 작가와 그의 아내 김초혜 시인. 이 부부의 손주 사랑은 못 말린다. 김초혜 시인 또한 손주에 대한 사랑을 주체하지 못하고 펜을 들었다. 그가 손주를 위해 쓴 ‘행복이’(시공미디어)다.
손자에 대한 내리사랑이 절절하다. 손자에 대한 사랑이 365일간의 기록으로 표현됐다. 저자 김초혜는 첫 손자 재면군을 생각하며 1년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편지를 썼다. 이 책은 손자에게 쓴 365개의 편지를 엮어 잔잔한 감동이 배여 있는 내리사랑의 결정체다.
‘달은 별 중에 으뜸, 해는 밝은 것 중에 으뜸, 재면이는 사람 중에 으뜸’이라고 시처럼 표현한 시작글에서 손주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느껴진다. 구구절절하고 가슴 저린 이야기를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 형태로 써 이 책에 담았다. 이 책의 저자 김초혜는 손주가 각박한 세상을 슬기롭게 살아갈 지혜를 알려준다.
이 책에는 손주가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알아야할 것들, 잃어버려서는 안 될 것들, 남들을 배려하고 사회에 유익한 사람이 되기 위해 취해야 할 것에 대한 할머니의 조언이 담겨있다. 할머니가 손자를 무릎에 앉혀놓고 옛날이야기를 해주듯 동화책을 읽어주듯 부드럽고, 나지막하게 이야기가 전개된다.
‘재면아! 넌 어떻게 이 세상에 왔지? 아버지 어머니를 통해서 왔다. 그럼 아버지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통해서 왔다. 그게 역사 인식의 기본이다. (중략) 그 인식의 역사의 흐림이고, 역사의 중대성이다.’(182쪽)
저자 김초혜는 현대 사회에서 퇴색돼 가는 끈끈한 가족의 의미를 손주 재면군에게 자상하게 전달한다. 독자들은 이를 통해 사랑과 가족, 행복의 참 의미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이계진, 똥꼬 할아버지와 장미꽃 손자 (하루헌)
30년차 베테랑 아나운서, 재선 국회의원 출신 이계진. 번쩍번쩍 정장이 누구보다 잘 어울렸던 그가 이제는 똥꼬 할아버지로 돌아왔다. 이계진과 두 손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똥꼬 할아버지와 장미꽃 손자’(하루헌)를 통해서 말이다.
이 책에는 이 씨의 손자에 대한 애틋함이 묻어난다. 손자들이 성장과정에서 겪는 소소한 일상을 관찰해 꼼꼼히 기록한 것을 책에 담았기 때문이다. 또한 자연과 더불어 체험하는 교육을 통해 손자들이 바르고 배려심 있게 성장하길 바라는 할아버지의 마음이 고스란히 책에 녹아있다. 손자가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말을 하길 바란다면,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말로 손자를 대하라는 부분은 손주 육아를 위해 저자가 고민한 흔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계진과 비슷한 세대의 할아버지‧할머니들이 고개를 끄덕거릴만한 책이다. 여느 가정의 할아버지와 같은 방식으로 손자를 사랑하고 보살피는 모습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 씨가 두 손자를 대하는 모습은 이 시대를 사는 모든 할아버지의 공통적인 모습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부모로서 아이를 대할 때 원칙과 필요한 교육 방침이 담겨 있어 초보 부모들을 위한 육아의 지침서이기도 하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성공이 아니다. 자연을 순응하고 공존하며 배려하라’는 인성교육 요령이 담겨있다.
◇ 라종억, 유지 신발이 점점 커진다 (해빗)
어린 아이들의 대답은 가끔씩 상상을 초월하다. 예상치 못한 답변에 웃음이 터지기도 하고, 당황스러워 쭈뼛대기도 한다. 어린 아이의 순진무구한 대답과 행동에서 어른들이 배워야 할 것들에 대해 (사)통일문화연구소 라종억 이사장이 책으로 펴냈다, 손녀 유지의 이야기를 시집으로 발간한 ‘유지 신발이 커지다’(해빗)를 통해서다.
“손가락을 접으며 덧셈을 가르친다. ‘두 개를 접고 세 개를 더 접으면 뭐가 되지?’, 다섯이라는 답 대신 유지는 ‘주먹이 돼요’한다.” - 중
이런 뜬금없는 대답에 이내 폭소가 터진다. 라종억 이사장은 손녀 유지양과 있었던 사소한 일상에서 특별한 경험까지 꼼꼼히 메모했다. 할아버지로서 손녀에게 느꼈던 감정을 군더더기 없이 썼다. 시를 음미하는 이들도 쉽고 가벼운 향기에 빠질 수 있다.
‘유지가 밥을 한입 가득 받아먹으면 / 왜 내가 배가 부른지 몰라’. 손주가 있는 조부모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느꼈을 만한 감정을 솔직하게 써내려갔다. 독자들의 입에 한가득 잔잔한 미소가 퍼질만하다.
손주들의 일거수일투족에 희비가 엇갈리는 조부모들. 이 시대를 사는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이 이 시들 속에 담겨있다. 아장아장 걷는 모습에서, ‘하부지 또는 함무니’라고 첫 마디를 꺼냈을 때의 감동까지. 이 책을 통해 그 순간을 공감하며 웃을 수 있다.
◇ 조정래, 큰 작가 조정래의 인물이야기(문학동네 어린이)
태백산맥, 정글만리 등 제목만 들어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스타 작가 조정래. 그가 이번에는 손자를 위한 위인전을 만들었다.
"손자들에게 손수 쓴 책들을 읽히고 싶은 마음이 늘 있었어요. 사랑하는 손자들과 그들의 친구 세대를 위해 쓴 책입니다.“
이 책은 앞서 소개한 책들과는 다르다. 손주를 소재로 한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그가 손자를 위해, 손자 세대에게 바치는 위인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오래전부터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읽힐 책을 손수 써서 읽히고 싶었던 조 작가. 그 꿈은 아들이 아닌 손자들을 통해 이뤄지게 됐다.
안중근, 김구, 박태준, 세종대왕, 이순신 등 총 7명의 위인을 직접 선정했다. 수난의 역사 속에서도 악착같이 버티고, 곧은 삶의 방식으로 이 땅을 지켜 온 위인들을 통해 손주들에게 자존심과 의지를 갖게 하기위해 동화가 아닌 위인전을 택한 조 작가다. 이 책이 주는 메시지는 비단 자신의 손주만이 아닌 이 조국의 모든 손주들을 향해있다.
이 책은 위인전이지만 건조하거나 딱딱하지 않다. 큰 작가 조정래답게 스토리에서도 긴장감이 흐른다. 문학적인 느낌은 물론이거니와 현장감 또한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울만하다. 이 시대의 할아버지 할머니로서 손주들의 영혼을 살찌울 책으로 ‘큰 작가 조정래의 인물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권하는 것은 어떨까.
손자, 손녀를 돌본 경험이 있는 할머니가 그렇지 않은 할머니보다 삶의 만족도가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연세대 아동가족학과의 전혜정 교수와 석사과정 오소이 씨는 육아정책연구소의 학술지에 발표한 '손자녀 양육 경험이 중노년 여성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이란 논문에서 고령화연구패널조사 3차년도 자료 분석 결과에 대해 밝혔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10세 이전 양육을 도와준 손자녀가 있다"고 답한 중노년 여성들은 "동년배의 다른 분들과 비교했을 때 전반적인 삶의 질(행복감)에 대해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느냐"는 문항에서 100점 만점에 61.07점을 보였다. 반면 손자녀 양육 경험이 없는 여성의 삶의 만족도는 57.59점으로 3.48점 낮았다.
자녀와의 관계 만족도에 대한 조사에서도 손자녀 양육 경험이 있는 여성은 71.49점, 경험이 없는 여성은 67.48점으로 손자녀를 돌본 적이 있는 여성이 4.01점 높았다. 자녀와의 관계 만족도는 손자녀 양육 경험이 할머니의 삶의 만족도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할머니들이 손자녀 양육을 통해 자녀와 연결감, 연대감을 느끼면서 자녀와의 관계에서 만족감을 느끼고, 친밀해지면서 삶의 만족도도 더불어 높아지게 된 것으로 분석된다.
보고서는 "이번 연구 결과는 그동안 언론매체에 의해 형성된 황혼육아에 대한 부정적 시각과는 다소 상반된다"며 "손자녀 양육으로 초래될 수 있는 일부 부정적 영향력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하거나 일반화하는 것에 주의가 필요함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손자녀 양육 경험이 중노년기 여성에게 보편적인 경험이 된 상황에서 손자녀 양육의 부정적 영향보다는 긍정적 측면에 주목하고, 이를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귀여운 아기가 인간의 협업 능력을 향상 시켰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 캠퍼스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새러 하디 박사가 ‘귀여운 아기가 다른 유인원은 전혀 갖고 있지 않은 인류의 협업 능력을 발전시킨 요인’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고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인간은 유인원들과 달리 공동육아를 해왔다. 부모뿐만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 심지어 혈연관계가 없는 이들도 함께 아기를 돌본 것이다.
그러나 침팬지나 원숭이 등 유인원들은 생모만 아기를 돌본다. 아버지나 할머니 등은 아기와 유대 관계라는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하디 박사는 일부일처제도 사람의 협업 능력을 발전 시켰다고 주장했다. 일부일처제는 아버지들도 육아에 참여하는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기를 여럿이 함께 키우며 어른들도 협업과 조정 능력이 발달됐다는 것이다. 여러 명이 정성스럽게 아기를 키우고, 아기 역시 더 오랜 시간 돌봄을 받으며 인지 능력과 공감 능력을 발달시킬 수 있었다는 게 하디 박사의 주장이다.
친엄마가 아니더라도 아기를 보는 순간 나타나는 사람들의 신체적 변화에 대한 과학적 연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귀여운 아기 사진을 보여주면 아기를 낳은 경험이 없는 여성들에게도 행복감을 느끼는 뇌 부위가 자극되는 모습이 관찰된다.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아기를 만지고 돌보면 ‘돌봄 호르몬’인 옥시토신이 뇌에서 분비돼 양육 본능이 강화한다.
하디 박사는 "아기가 갖는 귀여움이 아기의 생존을 보장하는 최고의 무기일 뿐아니라 진화론적으로 인류의 협업 등 발달을 가능케 한 중요한 계기를 제공했을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