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투우와 집시의 정열적인 플라멩코 정도로 알기 십상이던 스페인이 황영조라는 우리의 마라톤 영웅 덕분에 바르셀로나가 내게도 조금씩 부각되기 시작되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바르셀로나는 어쩐지 친근한 도시로 여겨졌고 태극기가 휘날리던 그 도시의 몬주익 언덕은 우리들의 기억 속에 강하게 남아있게 되었다.
새벽에 이스탄불에서 작은 비행기를 타고 세 시간 반 정도 날아 바르셀로나 공항에 도착했다. 책이나 영화 등으로만 보아왔던 스페인의 하늘에선 뜨거운 태양이 쏟아질 거란 막연한 기대는 간단히 무너진다. 구름이 가득 얹힌 하늘 아래 잠시 서서 스페인의 공기 속에 묻혀본다.
카탈루니아 광장 부근의 숙소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내다보는 거리 풍경이 내 가슴을 두근두근 설레게 한다. 그 거리를 오가는 까무잡잡한 피부와 높은 콧날의 스페인 사람들이 이 땅에 내가 왔음을 실감시켜 준다. 일단 예약해 두었던 호텔에 짐을 부려놓고 무조건 밖으로 나왔다.
가 볼 곳도 많고 해야 할 것도 있지만 우선 카탈루나 광장 계단에 걸터앉아 여행자의 자유로움을 느껴보기로 한다. 사람 반 비둘기 반이라고 할 만큼 사람과 비둘기가 바글바글하다. 물론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비둘기가 훨씬 많아서 수백 마리가 날개를 펴고 한꺼번에 날게 되면 여행자들에게 카탈루냐 광장의 추억을 단숨에 만들어주는 듯 한 풍경을 연출한다. 광장 옆 도로로 발걸음을 옮겨보니 마치 단체 여행객들을 쏟아놓은 것처럼 사람들로 가득 채워진 골목이어서 놀랐다.
광장 지하의 여행자 정보센터에 가서 투어 브로슈어를 몇 가지 챙겼다. 긴 날짜가 확보된 여행이 아니긴 했지만 버스나 지하철, 그리고 트램, 푸니쿨라 정보를 얻기 위해서 필요하다. 지하철 역에서 판매되는 교통권은 1회권이나 1일권이 있고 10회권, 50회권이 있기 때문에 계획된 동선이나 머무는 날에 맞게 구입하면 유용할 수 있다.
일단 여행지에서 한 달 살기라든지 2주 3주씩 머물 만큼 긴 시간이 주어지지 않다 보니 우린 짧은 날 동안이나마 바르셀로나를 충분히 느끼기 위한 마음을 활짝 열어둔다. 그리고 카탈루냐 광장을 벗어나 가우디의 세상을 향해 발걸음을 시작했다.
지난 10월 약 한 주(13일~20일) 동안 해운대에서 열리는 부산 영화제에 다녀왔다. 부산 영화제는 크게 두 분야로 거행되었다. 벡스코 A동에서는 영화기기관련 사업이 진행되었으며 벡스코 B동(Asian Project Market-APM )에서는 75개 국가에서 298편의 영화를 출품하여 선보인 영화사 담당자들을 만나서 영화를 수출입하기 위한 상담 업무가 진행되었다. 영화분야는 필자가 잘 아는 분야는 아니나 담당하고 있는 일이 국제계약분야이다 보니 한 주 동안 영화 수출입 관련 상담을 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한 주를 보냈다.
주간에는 APM 부스에서 상담을 하고 빈 시간에는 출품된 영화 시사회( P&I Screening)에 참석하느라 분주했고 야간에는 영화제 개막식 파티, 홍콩, 필리핀, 타이완 등의 영화사 초대로 Standing buffet 파티에 참석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파티에 가면 유명 연예인들을 만나 대화도 나누고 기념사진도 함께 촬영하는 행운의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 이번에 필자는 릭키 김 및 차 인표 씨와 팬으로 만나 기념사진을 찍어서 간직하는 기회가 있었다.
통상 영화제 기간 동안에 상영되는 영화는 영화의 전당, 롯데 시네마 센텀시티, CGV 센텀시티, 메가박스 장산 해운대 그리고 소향극장 센텀시티에 분산되어 일반 영화처럼 상영된다. 인기 있는 영화는 미리 인터넷을 예약을 하지 않으면 보기 힘들 정도로 영화 동호인이 많은 것 같다.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미리 회원증을 매입해두면 아주 편하다. 하루에 5편씩 영화를 관람할 수 있으며 행사장에 가려고 하면 자가용 및 버스를 제공하여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시스템이 되어 있다. 회원증 구입비는 초기에 구입하면 10만원, 중기 15만원, 말기 20만원으로 차별화 되어 있어 영화 애호가들은 매년 7월 쯤 미리 구매하여 두면 경제적인 영화 관람을 즐길 수 있다.
영화제작을 하시는 제작자나 감독하시는 분들은 출품하여 영화제 상연 작품으로 선정되면 감독 및 회사 대표에게 항공권과 호텔 숙박권을 제공해 주기도 한다. 물론 국내 언론사와 인터뷰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된다.
APM 부스는 사전 신청하면 개설을 할 수 있고 회원증을 갖고 있는 사람만 출입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어 영화 수출입 상담을 위해서는 회원증을 발급 받는 것이 필수다. 부스에서 상담은 영화제 시작 전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여 상담일정이 정해지면 약 30분씩 오전 10시 부터 오후 6시까지 계속하여 상담을 할 수 있다. 필자도 사전 예약으로 많은 수출상들과 상담을 하였으며 상담했던 영화 수출 담당자들이 수상자로 선정되는 순간은 마치 내가 수상자가 된 것처럼 기뻤다.
벡스코에서 거행된 APM 마켓은 화요일까지만 진행했다. 대부분의 주요 담당자들은 바쁜 일정으로 주말인 14일 부터 17일까지 상담을 끝내고 대부분 다음 행선지로 가거나 귀국하였다.
아직 개봉되기 전 작품인 ‘유리정원’이 개봉작으로 선정되었으며 폐막작은 중국 영화인 상애상친이었다.
‘유리정원’은 한 차원 높은 예술영화로 한 여인의 사랑과 아픔을 환상과 현실사이에서 신수원 감독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보여주는 영화다. 문근영이 박사과정의 학생 장애인으로 등장하여 나무에서 추출한 녹색의 피로 죽은 애인에게 주입하여 살아있는 나무로 살리려는 연구를 시도하였다. 연구 내용이 한 소설가의 문학작품으로 보도되어 인기를 얻자 실화임이 입증되어 경찰에 쫒기는 내용으로 스토리가 구성되어 있었다. 폐막작 ‘상애상친 (Love Education)은 딸이 아버지 산소 이장 문제로 고향에 살고 있는 아버지의 첫 번째 부인과 갈등을 소재로 다룬 영화로 그 배경음악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이번 부산 영화제의 수상자는 아래와 같다.
1.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상
수상자 : 스즈키 세이준 (감독/일본)
2. 한국영화공로상
수상자 : 크리스토프 테레히테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집행위원장/독일)
3. APM 프로젝트 시상결과
1) 부산상. 부 탁 추옌 (베트남)
2) 브라이트이스트필름어워드: 리샤오펑 (중국)
3) CJ엔터테인먼트어워드 : 리리 리자 (인도네시아)
4) 로데 어워드 : 오승욱 (대한민국)
5) 한국콘텐츠진흥위원장상: 윤가은 (대한민국)
6) 아르떼상: < 비영한,까칠한, 위험한> 비삼 샤리프 ( 프랑스, 레바논)
7) 노르웨이사우스필름펀드상 : 민 바하드르밤 (네팔, 프랑스, 독일)
8) 모네프상 : 오승욱 (대한민국)
E-IP 마켓 시상 결과
New 크리에이터상 (북투필름): 이정연/고즈넉이엔티
New 크리에터상 ( E-IP 피칭) : 이수아 (주) 위즈덤 하우스
금년 부산 영화제 기간에는 문재인 대통령께서 부산을 깜짝 방문하여 영화인을 격려하고 향후 부산 영화제의 발전을 위해 영화인들과 함께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함으로서 영화인들과 동호인들을 기쁘게 해주었다.
나날이 발전해 가는 부산 영화제 23회 2018 BIFF가 우리나라 및 세계영화산업 발전의 큰 도약의 전기가 되길 고대해 본다.
캐나다 본토에서 배로 한 시간 거리에 밴쿠버 섬이 있다. 그리고 그 섬 안에 브리티시컬럼비아의 주도 빅토리아가 아름답게 자리하고 있다. 19세기 영국에서 건너온 이주민들에 의해 발전한 땅으로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밴쿠버 섬의 빅토리아로 주도를 옮기면서 빅토리아는 BC주의 주도가 되었고, 지금까지 주도로 남게 되었다.
밴쿠버에 간다면 꼭 한번 들러봐야 할 여행지 빅토리아. 밴쿠버 항구에서 배를 타면 약 한 시간 반 만에 빅토리아에 닿을 수 있다. 가족이나 친구들이 밴쿠버를 찾을 때마다 열일을 제치고 가이드를 자처하는 형부가 이번 여행도 앞장 섰다.
7시에 밴쿠버 항을 출발하는 배를 타기 위해 칠흑같이 어두운 새벽에 집을 나섰지만 7시 배를 타는데 실패했다. 조카가, 월요일 아침이어서 빅토리아로 출근하는 사람들의 차가 많다고 했는데 진짜 그런가보다. 새벽 잠을 쫓으며 달려온 우리는 허탈한 마음을 달래며 스타벅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9시 배에 올랐다.
처음으로 찾아간 곳은 빅토리아 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차드가든이다. 빅토리아 하면 제일 먼저 아름다운 꽃이 떠오르는데 그런 이미지를 만든 장본인이다. 본래 석회석 채석장이었던 곳을 소유주인 부차트 부부가 전세계 꽃과 나무를 모아 테마별 정원으로 만들어 놓았다. 봄, 여름에 특히 예쁘다던데 가을에 만난 부차드가든도 운치있고 멋졌다. 꽃도 나무도 예쁘고 날씨마저 아름다워 감탄사가 나왔다. 가을빛으로 아름답게 물든 정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대자연 속에 사는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가꿔놓은 정원에 감동하는 이유는 뭘까 라는 생각을 하며 다운타운으로 이동했다.
빅토리아 다운타운에 들어서니 바닷가를 따라 오래된 건물들이 고풍스럽게 서있었다. 주의사당의 아름다운 석조건물과 푸른 잔디밭, 거리를 다니는 마차와 오랜 역사를 지닌 호텔 등 밴쿠버와는 다른 이국풍광을 볼 수 있었다.
1897년에 세워진 주의사당은 외관이 인상적이었다. 예전 영국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는데 주의사당 건물은 직접 눈으로 보아야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느낄 수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50m 높이의 중앙 돔과 화려한 스테인 글라스가 눈을 사로잡는다. 1층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빅토리아여왕의 초상화를 둘러보고 영국 여왕이 즐겨 찾았다는 엠프레스 호텔로 향했다.
빅토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건 아마도 앰프레스 페어몬드 호텔일 것이다. 1908년에 세운 영국풍의 호텔로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최고의 호텔이다. 영국 왕실 사람들도 묵어가는 곳이라 더 명성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빅토리아는 거리 곳곳에 영국 풍의 건물과 문화가 남아 있어 밴쿠버 속 영국을 느낄 수 있는 장소였다. 영국 귀부인들의 한가한 오후를 엿볼 수 있는 애프터눈 티 문화도 그대로 남아있다. 밴쿠버에 오기 전에 엠프레스 호텔에서 애프터눈티를 먹고 싶다고 위시리스트를 전했는데 조카들이 다른 곳에 하이티를 예약해 두었단다. 어차피 여행 중엔 영국 사람들처럼 여유롭게 애프터눈 티를 마시기 쉽지 않을 텐데 아름다운 장소 때문에 괜한 욕심을 부렸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에 호텔 커피숍 항구가 보이는 자리에서 앉아 커피와 시니그처 케익을 주문했다. 자리 탓인지 여행 중이라는 걸 잊을 만큼 한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따뜻한 봄날 같은 날씨 덕분에 빅토리아 여행은 즐거웠다. 온화한 날씨로 은퇴 후 여유를 즐기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더니 그 말에 수긍하게 되는, 좋은 날이었다. 내가 살아가면서 이런 날을 얼마나 만날 수 있을까? 커피 잔에 비친 내게 말을 걸어보았다.
이 책이 나왔을 때 신청 추첨에서 당첨되면 무료로 받아 볼 수 있었으나 아쉽게도 떨어졌다. 그런데 송파 북 페스티벌에 갔다가 신간 서적 판매 부스에서 낯익은 제목에 손이 갔다.
저자 오현석은 20여년 특급 호텔에서 근무한 호텔리어로서 호텔 VIP에게는 특별함이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이 책에서 여러 가지 보고 들은 사례를 소개했다. 여러 가지 배울 점이 많다.
유니폼 입은 사람 중에 가장 호감도가 높다는 사람들이 호텔리어들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본 호텔 VIP라면 최고의 품격을 가진 사람들이다. 일반인들은 가까이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물론 돈 좀 있다고 갑질하는 VIP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돈이 있어서 더 여유가 있고 넓게 세상을 보는 눈이 있을 것이다.
먼저 호텔리어들이 좋게 보이는 이유를 소개했다. 옷차림에서부터 걸음걸이까지 훈련을 받는 다고 했다. 기성복이 아닌 몸에 맞는 옷을 입는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불편했으나 원래 정장이란 불편해서 행동을 절제하게 만든 옷이라는 설명이다. 좀 큰 옷은 허수룩해 보이고 바지 길이가 길면 지저분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목이나 소매 부분의 때는 특히 조심해야할 점이란다. 걸음걸이도 신발을 질질 끌고 다니는 사람, 좌우로 기우뚱하게 걷는 사람 등, 자기 자신은 잘 모르지만, 걸음걸이에서 품격이 나타난다. 그 외에도 VIP들과 원활한 대화를 위해 골프 댄스 등 고급 예절을 익혀야 한단다.
호텔 VIP들의 특별한 행동은 익히 알려진 것들이 많다. 책을 많이 본다든지, 메모를 열심히 한다든지 성공한 사람들의 특성과 일치한다. 호텔 종업원들에게도 매너를 지킨다든지 예약, 입구에서 안내 받아 들어가기 등 레스토랑 매너 등도 잘 알려진 내용들이다. 예약도 안하고 들이 닥치거나, 예약을 해 놓고 늦게 나타나거나 연락도 없이 안 나타나는 예는 매너가 아니라는 것이다. VIP들은 예약을 해 놓고도 먼저 예약을 확인하다는 것이다. 레스토랑에서의 의상도 중요하다고 했다. 추리닝 바람으로 레스토랑에 가면 다른 손님들의 품격까지 떨어뜨리는 행위라는 것이다.
새로 배운 것은 착석 매너인데 앉을 의자를 약간 빼내서 앉게 하는 배려이다. 테이블 가까이 들어가 있어 의자를 약간 빼 내야 하는 불편함을 알고 그런 수고를 덜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냅킨 사용 법 등도 참고할 만하다. 댄스파티에서 자주 테이블을 떠나야 하는데 그때마다 냅킨 처리가 궁금했었다. 테이블 위에 놔두고 춤추러 나가는 사람, 의자 등받이에 걸쳐 놓고 나가는 사람 등 분분하다. 정답은 의자 위에 잘 접어놓고 가는 것이란다. 입 주변을 닦아 지저분해진 면은 다른 사람들이 안 보게 안으로 하라는 것도 중요하다.
와인 매너는 원래 서양식과 우리나라 식이 있는데 서양식을 그대로 하자니 불손하게 보일 수도 있어 절충된 방식이 우리나라 식으로 보면 된다. 서양식은 와인을 누가 따라 줄 때 잔을 그대로 둔다. 그러나 우리나라 식은 밑 부분을 테이블에 눌러주는 것이 맞는다는 것이다.
모르는 것은 물어 보는 것이 좋다고 한다. 누구라도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모른 것을 창피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배우는 것이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애기할 수 있는 것도 용기이다.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북쪽 90km 지점에 있는 ‘노비사드(Novi Sad)’는 세르비아 제2의 도시다. 세르비아어로 ‘새로운 정원’을 뜻하는 도시 명을 가진 노비사드. 19세기,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통치 시절 때 세르비아인 중심으로 경제발전을 이뤘다. 도심 메인 광장에는 번성기의 멋진 건축물이 남아 아름답게 빛을 낸다. 거기에 도나우 강변과 페트로바라딘(Petrovaradin) 요새의 어울림은 환상적이다. 현지인들은 참으로 친절하고 순수하다. 누군들 이 도시에 머물고 싶지 않겠는가.
여행 안내소 여직원과 ‘안드리아’의 친절에 감복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 역내에 있는 여행안내소의 여자 스태프의 친절은 반할 만하다. 기차역에서 노비사드로 가는 표를 사들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안내소 부스에서 밖으로까지 나와 반긴다. 이렇게 적극적인 친절은 동유럽 관광지에서 단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다. 그녀는 궁금해하는 것들에 대해 상세하게 알려준다. 또한 묻지도 않았는데 그날 저녁, 도나우 강변의 보트타기가 무료라는 정보를 알려주며 꼭 예약해야 된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그녀는 분명히 세르비아의 애국자다. 노비사드행 기차는 곧 폐차해야 될 정도로 낡아 보인다. 기차 안팎으로 그려진 그래비티가 어지럽다. 빈자리를 찾아 앉아 있다가 몸을 완전히 돌려 플랫폼에서 잠시 스쳤던 귀여운 청년 ‘안드리아’에게 말을 건다. 기차 안 사람들의 시선이 쏠린다. 그에게 이것저것 여행 정보를 묻는다. 말 튼 김에 수다도 떤다. 노비사드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유명 호텔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그. 영어뿐만 아니라 스페인어, 프랑스어도 가능하단다. 그날은 애인을 만나러 가는 중이란다. 내친 김에 여행 안내소 직원이 말해준 “오늘 유람선이 무료라고 하니 예약 좀 해줄래”라는 부탁까지 한다. 그가 기차 안이 시끄러워 안 된다고 해서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인 유람선 타기는 포기한다. 그런데 노비사드역에 내리자마자 보트 회사에 전화를 하고 있다. 결국 정보 착오로 보트타기는 실패했지만 생판 모르는 여행객에게 베푸는 친절함에 감동이 물결친다. 시내버스 타는 곳까지 그를 따라가면서 “버스비 내가 내줄게” 했다. 전화비는 줘야 한다는 한국적 사고의 행동이다. “왜? 뭐하러?”라는 그의 말에 또 감동받는다. 그날 그에게 교훈을 얻는다. 고국에서 외국인을 만나면 안드리아와 같은 친절을 베풀겠다고 다짐했으니 말이다.
19세기의 문화 부흥을 알려주는 중심 광장
노비사드 극장 거리에 내리자마자 소낙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우산이 필요할 찰나에 발견한 중국인 가게. 빨간 우산 하나 사들고 노비사드에서 교수로 있다는 젊은 중국 여성을 만나 또 한참 수다를 떨다가 길 건너 성모 승천 교회를 보고 세르비안 국립극장으로 다가선다. 1861년에 세워진 국립극장은 남부 슬라브인들의 첫 번째 극장으로 유고슬라비아의 연극, 클래식 오페라, 현대 발레 등이 공연되고 노비사드 재즈 축제도 열린다.
몇 걸음 더 걸어 노비사드의 가장 번화한 슬로보데(Slobode, 자유) 거리에 이른다. 네오르네상스 스타일의 웅장한 시청사의 건물 중심부에 뿔 같은 탑(60m)이 불쑥 솟았다. 시청사 말고도 첨탑이 뾰족한 성 마리 성당, 보이보디나 호텔을 비롯해 화려한 건축물들이 주변에 한가득이다. 노비사드의 기원은 7세기경, 남슬라브족이 정착하면서 시작되었지만 18세기,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 때 황금기를 맞는다. 17세기 오스만 제국이 발칸에 진출하자 투르크족의 지배를 거부하는 인근 세르비아인들이 도나우 강을 넘어 이곳으로 이주해오면서 일궈낸 영광이다.
매일 축제가 열리는 즈마이 요비아 거리
자유 광장에는 스베토자르 밀레티치(1826~1901)의 청동상이 있다. 작가, 극작가이자 이 도시의 시장(1861년, 1867년)이었던 밀레티치는 노비사드 발전에 큰 역량을 발휘한 위대한 인물. 그의 청동상은 20세기 유고슬라비아의 미켈란젤로라 불리는 이반 메슈트로비치(1883~1962)의 작품이다. 이어 즈마이 요비아(Zmaj Jovina) 거리로 들어선다. 길 양쪽으로 쇼핑가, 식당가가 쭉 이어진다. 매일 축제가 열리는 흥겨운 거리라지만 이른 시간이라 그런 모습은 볼 수 없다.
우선 마음 내키는 식당에 들어가 풍요로운 늦은 조식을 먹고 거리 끝으로 간다. 두나브스카(Dunavska) 광장이다. 비누거품 놀이에 빠진 아이들의 천진한 모습을 배시시 웃음 지으며 쳐다보다 요반 요바노비치 드래곤(1833~1904)의 동상을 발견한다. 의사이자 서정시인이었던 그는 매일 같은 시간에 이 골목을 걸었던 듯하다. 1984년에 그 모습 그대로 재현된 기념비다. 동상 앞에는 주교 궁전이 있다. 1741년에 만들어진 정교회는 1849년에 폭발해 새로 지었다. 세르비아의 유명한 건축가인 블라디미르 니콜리치(1857~1922)가 1899년에 지어 1901년에 완공했다. 비잔틴 스타일에 동양적인 요소가 가미된 멋진 궁전이지만 아쉽게도 관광객들에게 개방하지 않는다.
메인 타운을 벗어나 도나우 강 쪽으로 향하면 거리는 다소 한적해진다. 이 거리의 외국인 아트 컬렉션 건물 앞에서 또 동상을 만난다. 기자, 정치가, 작가였던 자사 토미치(1856~1922)다. 그는 이 도시의 시장이었던 밀레티치의 사위였다. 부인 밀리카 토미치(1859~1944)를 모함한 상대 정치인(Branik 매거진 편집자)을 찔러 죽여 7년 동안 복역했지만 출옥 후 다시 정치에 출마해 현세에도 위대한 정치인으로 남았다. 동상의 손가락에 끼워진 빨간 반지는 눈이 좋아야만 보게 될 것이다.
이어 도나우 공원과 길거리 시장을 지나 근대 미술관을 보고 도나우 강 앞에 선다. 대교와 부서진 다리 등이 있고 강 너머 야트막한 언덕(40m) 위에는 페트로바라딘 성채가 있다. 그 모습이 그림같이 아름답다. 그래서 ‘도나우 강의 지브롤터(Gibraltar, 스페인의 영국령 반도)’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강변에는 레이드(Raid) 희생자 조각(The Family)이 서 있다. 1942년 1월, 3일(21~23일)간 헝가리의 파시스트들은 세르비안, 유대인, 집시 등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을 이곳에서 처형했다. 비극적인 역사의 기록을 노비사드 출신의 유명한 조각가 요반 솔다토비치(1920~2005)가 작품(1971년)화했다.
도나우 강변의 페트로바라딘 요새
다리를 건너 페트로바라딘으로 가면 시내 중심가와는 확연히 비교될 만큼 낡은 건물들이 즐비하다. 낡은 건물들과 112헥타르(33만8800평)나 되는 요새가 촉촉이 비에 젖었다. 성채는 긴 세월 동안 파괴, 복구, 확장 등의 과정을 겪어 오늘에 이르렀다. 요새에는 시립 박물관, 시계탑, 카페, 아티스트들의 공방과 작품 숍 등 볼거리가 많다. 창조적인 디자인 숍에서는 기념품을 판매한다. 또 강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를 위해 시침보다 분침을 더 길게 한 시계탑도 볼 만하다. ‘한눈에도 예술가’처럼 보이는 화가 라이코 페트코비치의 아틀리에가 있다. 그 외 조각가 요반 솔다토비치의 기념관도 있다. 이 성채의 지하에는 무덤이 있어서 매년
7월 ‘EXIT 페스티벌’이 열린다. 비에 젖은 성채의 커피숍에 앉아 한참 한가로운 시간을 보낸다.
다시 도시로 되돌아와 유대인 회당도 보고 아인슈타인과 그의 부인인 밀레바 마리치(1875~1948)의 기억 접시관도 찾는다. 밀레바는 노비사드에서 멀지 않은 티텔(Titel)에서 태어나 노비사드에서 중등학교(1886년)를 다녔다. 아쉬움이 남는 노비사드 여행이었지만 두말이 필요치 않은 아름다운 도시다. 언젠가는 현지인처럼 이 도시에 머물고 있을 듯하다.
드디어 황금연휴라 불리는 눈부신 아름다운 계절 5월의 긴 연휴가 시작되었다. 시니어인 필자는 하루하루가 그냥 휴일이라 할 수 있지만, 직장인인 젊은 사람들에게는 정말 유익하게 보내고 싶은 휴가기간일 것이다. 4월 말의 토요일, 일요일을 포함해서 5월 4일 하루만 휴가를 낸다면 무려 9일간의 휴가를 즐길 수 있다.
우리 아들은 4일 휴가를 내지 못해 징검다리로 쉬게 되었다. 이렇게 긴 연휴를 어찌 보낼까 의논하다가 1일부터 2박 3일은 필자와 가족여행을 하고 회사 근무 때문에 돌아오는 길에 충남 계룡이 고향인 며느리와 손주들은 외가에 가기로 했다. 아들이 4일 근무를 마치고 다시 처가에 가서 나머지 휴가를 보내고 주말에 올라온다는 계획이었다.
여행은 생각만으로도 설레고 즐겁다. 아들, 며느리, 귀여운 손주들과 함께 떠나는 이번 여행도 특별한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목적지로는 전라도 부안지방의 변산반도로 정했다. 며느리의 친정이 충청도라 가까운 곳을 찾기로 했다 한다. 변산반도는 오래전 친정아버지와의 추억이 있는 곳이라 필자에겐 반갑고 아련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었는데 필자가 대학생일 때부터 학교에서 가는 선생님들의 수련회에 꼭 필자를 데리고 다니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교장 선생님의 월권이라 생각할까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그땐 교대를 졸업한 선생님들의 나이가 필자와 비슷해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따라나섰던 것 같다. 세 딸 중 필자를 가장 예뻐해주셨던 친정아버지는 공식적인 여행도 항상 필자와 동행하셨다. 40여 년 전에 아버지와 함께 왔던 격포해수욕장과 그 옆 채석강을 돌아본다 하니 감회가 새롭고 6년 전 하늘나라로 가신 아버지가 매우 보고 싶고 그리웠다. 채석강의 날 선 듯 층진 바위에 발가락을 부딪쳐 피가 났을 때 조심하라며 안타까워하던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른다. 변산반도는 그대로의 모습이겠지만 아버지를 따라왔던 그때와 같은 애틋한 느낌이 들지는 모르겠다.
출발은 연휴 시작날인 월요일 오전 10시쯤에 했다. 도로가 많이 막힐 것으로 예상했지만, 정체 구간 없이 씽씽 달려 세 시간 만에 예약한 호텔에 도착했다. 부안에는 변산과 격포해수욕장 등 바닷가와 채석강, 내소사, 개암사, 곰소항 등 가보고 싶은 곳이 많았겠지만 어린 손주들과 함께하는 여행이어서 아들 부부는 이번 여행도 편하고 아이들 놀기 좋은 스케줄을 짰으리라.
바닷가에 왔으니 점심은 해변 식당에서 근사한 회 한 상을 받았다. 저녁 메뉴도 필자가 좋아하는 해물과 아귀찜으로 고르고 식사 후에는 수성당 유채꽃 만발한 곳으로 산책을 하러 갔다.
짙푸른 동해 바다. 저 멀고 깊은 곳으로 눈길이 따라가면 하늘이 시작된다. 바람과 파도소리도 경계가 흐려져 귓가에는 하나의 소리로 들릴 뿐이다. 구름 아래 뻗은 손가락 사이로 눈부신 햇살이, 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주황색 빛이 몸을 감싸 내린다. 그곳에 서 있는 기분? 이게 바로 축복 아닐까.
산과 바다, 하늘이 이어진 예술가의 놀이터
멀리 바다에서 시야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면 청록색 소나무 숲길과 다양한 형상을 한 조각상이 자유로이 서 있다. 한적한 해안도로 옆, 예술가의 숨길과 손길이 쉼 없이 스쳐지나가는 하슬라아트월드(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발길이 머무는 순간 관람객이 아닌 설치된 미술작품의 한 소재로서 존중받는 곳이다. ‘하슬라’는 고구려·신라시대에 사용됐던 강릉의 옛 지명으로 ‘해와 밝음’이라는 의미의 순수한 우리말이다. 여기에 ‘아트월드’를 붙여 ‘강릉에 세워진 예술가의 공간’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강릉 출신 미술가 박신정·최옥영 부부의 예술가적 기질이 이 공간을 채웠다. 박신정 대표는 하슬라아트월드 홈페이지를 통해 “외국에 작품 전시를 다니면서 예술품뿐만 아니라 전시 장소와 사람들에게 더 많은 감동을 받아왔다”며 “모든 것이 조화롭게 화합하는 곳을 꿈꿨다”고 공간 건립 배경을 설명했다. 2003년 조각공원을 시작으로 2009년 뮤지엄 호텔(24개 객실), 2010년 현대미술관, 2011년 피노키오 박물관과 마리오네트 미술관을 순차 개관했다. 하슬라아트월드는 연간 약 15만 명이 찾는 강릉의 관광 명소다. 최근 SBS 드라마 와 영화 촬영 장소로 이용됐고, MBC 드라마 의 주요 무대가 됐다.
하슬라아트월드의 크고 작은 모든 공간이 예술가들의 작업 현장이자 방문객의 관람 장소다. 이곳은 뭐든 다중적인 감각과 의미가 부여돼 있다. 호텔일 수도, 전시실일 수도 혹은 그 반대일 수도 있는 것이 이곳의 특징. 보는 사람에 따라 자유로이 생각하고 상상을 즐기는 곳이다. 작가들은 이곳에 상주하면서 작품 활동도 한다. 취재를 갔던 4월 초에는 마침 최옥영 대표가 전시에 필요한 작품을 손보고 있었다. 작업복 차림의 최 대표는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온몸에 먼지가 잔뜩’이라고 멋쩍게 웃었다. 최 대표는 “자연 자체로도 아름다운 곳과 인연이 된 것에 고마움을 느낀다”면서 “예술가라 타협도 잘 못하고 부족하지만 생긴 대로 오랫동안 이곳을 지킬 것”이라고 말하고는 다시 작업에 집중했다.
고래 뱃속을 걷는 피노키오처럼
하슬라아트월드는 정해진 방식은 아니지만 현대미술관, 피노키오 박물관, 마리오네트 미술관 순으로 관람한다. 현대미술관은 호텔 건물 로비에서부터 미로처럼 연결돼 있다. 지상에서 지하로, 다시 지상으로 오르내리며 작품 감상을 하는 구조다. 동해의 파란빛과 자연광, 목조 마루, 겉치레 없는 시멘트벽을 배경으로 작품들이 자연스럽게 건물 곳곳에 녹아들어 있다. 마치 어딘가 ‘툭’ 하고 놓아둔 느낌에 시선이 간다. 감각적이고 기발함이 돋보이는 회화와 조각 작품 200여 점도 전시되고 있다.
손자·손녀의 감성자극 미술 공간이 현대미술관 다음에 이어지는 피노키오 박물관이다. 특히 박물관으로 향하는 통로가 매우 인상적이다. 피노키오가 고래 뱃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형상화한 공간으로 어린이들에게 사랑받는 공간이다. 큰 원형 통로 내부를 플라스틱 비닐로 촘촘하게 감싸놓았고, 형형색색 움직이는 조명을 설치했다. 마치 고래 뱃속을 여행하는 피노키오가 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사각거리는 비닐 소리와 사람의 말소리, 웃음소리 그리고 조명이 마블링되듯 섞여 완벽한 예술작품으로 거듭나는 곳이다.
피노키오 박물관에는 피노키오 관련 작품 500여 점이 있다. 3개월에 한 번씩 작품과 전시 성격을 바꾸고 있다고. 이곳에는 꽃으로 만들어진 피노키오와 유럽에서 들여온 각양각색의 피노키오를 만날 수 있다. 디즈니 만화영화 피노키오 관람은 덤이다.
마리오네트 미술관에서는 센서로 움직이는 하슬라아트월드의 특허품 ‘마리봇’을 만날 수 있다. 사람이 가까이 오면 팔과 다리를 흔들어 몸을 움직인다. 체코,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에서 가지고 온 특별한 마리오네트가 관람객을 맞는다.
편견 없이 예술작품을 감상할 것
실내 관람을 마치면 조각공원 산책을 한다. 호텔 안 매표소 쪽으로 다시 돌아가 실내 계단을 이용해 조각공원 입구로 간다. 반드시 편한 신발을 준비하라. 빨리 다녀도 최소 30분이고 나지막한 언덕을 걸어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솔향 가득한 소나무 정원을 지나 무심히 서 있는 조각들을 보며 걷다 잠시 뒤를 돌아보시라. 자연이 내려준 예술작품(?)을 벅찬 마음으로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외에도 동해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바다카페와 전망대, 아이들의 체험학습장과 소똥박물관 등이 있다. 자연 속 나 자신이 작품의 하나라는 것을 인식하게 해주는 소중한 공간이 하슬라아트월드 안에 있다.
하슬라아트월드에서 찾아볼 수 없는 몇 가지가 있다. 작품의 제목, 작가 이름 그리고 거울이다. 심지어 거울은 화장실에도 없다. 시멘트벽도 골조 외에 별다른 장치가 없다. 이 모든 것에는 편견 없이 작품을 바라보고 집중해달라는 대표의 철학이 담겨 있다. 단, 예약제로 진행되는 도슨트 시간에는 작품과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작품에 관한 설명이 듣고 싶다면 도슨트 설명을 들어보시라.
“배낭여행 가려는데 어디가 좋을까?” 딸아이의 물음에 “인도가 좋다던데!”라고 무심코 대답하는 아빠. 그러자 옆에 있던 엄마가 한마디 거든다. “인도는 위험하지 않을까? 당신도 함께 다녀오는 건 어때?” 그렇게 보호자 신분(?)으로 아빠는 딸과 여행을 떠났다. 딸의 꿈으로 시작된 배낭여행은 이제 함께하는 꿈으로 성장했고, 아빠는 딸의 보호자가 아닌 꿈의 동반자가 됐다. 어느덧 8년 차, 환상의 배낭여행 콤비 이규선(62)·이슬기(32) 부녀의 여행기를 들어봤다.
◇ 아빠 이규선
30년간 다닌 은행에서 은퇴 후, 시골로 내려가 자연인으로 살고 있다. 딸 덕분에 여행에 눈을 뜬 뒤, ‘어디로 떠나지?’라는 즐거운 고민에 빠져 지낸다. 자타공인 ‘딸바보’라 불리길 좋아하는 푼수 아빠다.
◇ 딸 이슬기
삼성맨을 그만두고 놀이·공연·강연을 기획하는 액션건축가로 활동하고 있다. 추억부자가 되길 바라는, 또 무엇보다 부모님의 ‘베스트프렌드’가 되길 바라는 철부지 딸이다.
◇ 이규선·이슬기, 우리 부녀의 여행은?
여행 이력 8년 차. 인도,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15개국 111개 도시 여행
여행 콘셉트 청춘여행! 나이와 무관하게 자기가 꿈꾸는 걸 실현할 수 있으면 그게 바로 청춘!
여행 시기 목표로 했던 꿈을 이루고, 그다음 꿈을 향해 갈 때
역할 분담 아빠) 그날그날 일과 짜기&요리담당, 딸) 예약 및 정보수집
여행 경비 현재까지는 아버지와 자신을 위한 선물로 딸이. but, 돈 관리는 아빠가!
사실 말은 쉽지만 가족여행은 친구들과 떠나는 여행보다 훨씬 더 어렵다. 어쩌면 ‘가족여행’이라 쓰고 이렇게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싸운다. 고로 가족이다.’ 에 딸 슬기씨가 쓴 글귀다. 낯선 이국땅에서 아빠는 딸에게 맞추느라, 딸은 아빠에 맞추느라 서로 마음고생도 적지 않았을 터. 그러나 아빠와 딸이라서 다시 애틋한 가슴으로 서로를 껴안을 수 있었던 그들이다.
첫 배낭여행, 싸우며 싹 틔운 부녀의 동지애
아빠: 인도에 도착하고 처음 며칠은 거의 공포 수준이었죠. 여행 초보자가 감당하기엔 버거웠거든요. 그런 데다가 딸이 이거는 이렇게 해라, 저거는 하지 마라는 둥 잔소리를 하니 서럽더라고요. 그때만큼은 한국에 있는 아내가 무척 보고 싶었어요. 그래도 그런 과정을 거치다 보니 아빠와 딸이라는 수직적 관계에서 벗어나 어느새 동지애를 느끼는 친구가 되어 있더라고요. 이전보다 대화거리도 풍부해졌고, 딸에 대한 믿음도 더 확실해졌죠.
딸: 처음 배낭여행을 떠나는 아빠인데, 친구와 함께 간다고 착각하고는 티케팅 30분, 배낭 싸기 한 시간, 그리고 여행 관련 책 한 권 달랑 가방에 넣고는 여행 준비를 끝내버렸죠. 여행 초반에는 아빠와 하루에 열 번, 아니 그 이상 싸웠어요. 그래도 그 넓고 낯선 곳에서 믿을 사람은 아빠와 나뿐 아니겠어요. 긴급한 상황에 서로 의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똘똘 뭉치게 되더라고요.
서로의 낯선 얼굴과 마주하다
아빠: 살면서 자식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요? 우린 자식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슬기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다고 자신했는데, 집 밖에서 본 딸애의 모습은 문화적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얘가 언제 이렇게 컸나? 이런 모습도 있네? 신기하고 대견하기도 하면서 이제 더 이상 품안의 자식이 아니라는 생각에 조금 슬프기도 했습니다.
딸: 내게 익숙한 아빠의 모습은 ‘가장’이라는 책임의 가방을 메고 있는 남자였어요. 히말라야에서의 밤,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촛불을 켜고 카드게임을 하며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눴죠. 아빠는 어떤 학생이었는지, 첫사랑은 누구였는지…. 이야기 속에는 나보다 어린 나의 아빠가, 그리고 내 나이의 아빠가 있었습니다. 아빠라는 책임감을 어깨에 메기 전, 그도 한 소년, 한 남자였다는 것을 알게 됐죠. 여행을 하면서 아빠는 내게 ‘이규선’이라는 한 사람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는 꿈과 희망, 열정으로 가득한 멋진 남자였습니다.
“또 같이 갈까?” 여행 유발자는 누구? 아빠? 딸? 둘 다!
아빠: 첫 여행 때 호되게 (딸아이에게) 시집살이를 하고 다시는 슬기와 여행 가지 않겠다고 입에 거품을 물었습니다. 하지만 나의 60대 버킷리스트, 유럽여행을 위해 다시 딸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동안 여행을 다닌다고 다녔지만 여행 일정, 이동 경로와 수단, 숙박까지 스스로 해결하기엔 어려울 것 같더라고요. 혼자 끙끙거리는데 때마침 슬기가 전화를 해 여행을 가자는 거예요. 첫 여행에서 당한 것이 떠올라 잠시 망설이기도 했지만, 결국 함께 떠나기로 했죠.
딸: 여행은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면서, 또 다른 꿈을 키울 수 있는 소중한 휴식시간과 같아요. 그럴 땐 어느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아야 하고, 그러면서도 무엇을 하든 응원해줄 수 있는 동반자가 필요하죠. 내겐 아빠가, 아빠에겐 내가 그런 존재입니다. 그래서 자주 함께 떠나는 것 같아요. 여행을 다녀오면 그때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자연스럽게 ‘이번엔 어디 갈까?’라는 말을 꺼내게 되죠.
‘부모·자식’ 여행을 꿈꾸는 이들에게
아빠: 은퇴 후, 공허함이 밀려왔습니다. 갑자기 주어진 자유를 이겨내기 어렵다고 느꼈을 때, 사랑스러운 딸 슬기가 배낭여행이라는 요술로 그 굴레를 벗어나게 해주었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무조건 떠나세요. 나의 분신, 자식과의 여행은 여러분을 행복한 추억부자로 만들어줄 것이라 확신합니다.
딸: 온 가족 여행도 좋지만, 장기 여행이라면 모녀, 부자 등 두 사람이 떠날 것을 권합니다. 여행은 보러 가는 것보다 느끼러 가는 게 더 크다고 생각해요. 여럿보다 단둘일 때,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죠. 이왕이면 상대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을 수 있도록 여유 넘치는 곳으로 가면 좋겠어요. 그런 점에서 ‘산티아고 순례길’도 추천할 만합니다. 걷고 싶은 데서 걷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어 생각만큼 부담스럽지 않아요. 함께 걸으며 건강도 챙기고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답니다.
◇ 자녀와 함께 떠나는 해외여행 Tip 10가지
1. 망설이지 말자. 때는 바로 지금!
2. 잘만 먹어도 성공한 여행이다. 필수품으로 팩소주와 라면, 그리고 고추장.
3. 많이 걷자. 여행 책자와 지도를 들고 발이 가는 대로 무작정 걸어보자.
4. 대중교통을 이용하자. 다양한 사람을 구경하는 것이 유명 관광지보다 볼거리가 더 풍성할 때가 많다. 대중교통 표를 직접 구입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5. 긴장을 풀고 (자식보다) 앞장서 가보자.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고 느끼는 순간 마음은 편해지고 여행도 한결 즐거워질 것이다.
6. 사진을 많이 찍자. 셀카봉은 필수! 자연스러운 사진을 찍고 싶다면 몰래 찍는 파파라치 컷을 추천한다.
7.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여행을 떠나자. 자녀가 골라주는 곳도 좋지만, 직접 여행지를 찾아 떠나면 즐거움과 더불어 성취감까지 얻을 수 있다.
8. 다양한 숙소를 경험하자. 호텔, 게스트하우스, 호스텔, 현지인의 집 등이 있다. 이 중에서 서로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현지인의 집을 추천한다.
9. 그 나라 언어를 알지 못해도 여행을 ‘잘’ 할 수 있다. 물건을 사고, 음식을 주문할 때 직접 도전해보자. 손가락 몇 개와 간단한 영어로도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경험하면 자신감이 붙는다.
10. 배낭여행이지만 한 벌쯤은 휴양지에서 갖춰 입을 복장을 챙기자. 차려입었다는 기분 덕분에 해변에서 마시는 맥주가 더 맛있게 느껴질 것이다.
최근의 여행 트렌드는 친구나 연인과의 여행보다는 가족과 함께 떠나는 테마 여행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여행의 보편화와 맞물리는 현상으로 보인다. 여행이 일상이 된 현재, 보다 일상적인 이벤트로서 가족과 함께하는 모습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시인 류시호씨는 며느리, 사위, 손주 등 온 가족과 자주 여행을 떠난다. 이번 5월에 떠나는 여행지 그곳의 시간이 느리게 흘렀으면 좋겠다.
류시호 시인ㆍ수필가
얼마 전, 가족 9명을 데리고 보라카이로 여행을 떠났다. 큰아들 부부와 작은아들 부부가 직장을 다니며 고생하기에 손주들과 시원한 바다에서 여유롭게 쉬도록 우리 부부가 경비를 마련했다. 여행은 어디를 가든 즐겁다. 준비할 때부터 기분이 좋다. 우리 가족은 그동안 강원도 양양의 바닷가에서, 강원도 영월에서, 그리고 충북 수안보에서 숙박을 하면서 여러 번 가족여행을 했기에 서로가 여행 분위기를 잘 느낀다.
이번 가족여행은 해외로는 처음 가는 것이라 어린 손주 3명이 걱정스러웠다. 이동 중 간식을 먹이는 문제도 그랬고 장거리 비행 중 아프지나 않을까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염려가 됐다. 어린아이들 때문에 인천공항까지 가는 길에도, 비행기에 탑승할 때도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 우리가 탈 비행기는 게이트 번호가 100번이 넘는 곳이라 탑승구로 가기 위해, 지하로 내려가 열차를 타고 가서 비행기를 타야 했기에 탑승시간에 임박해서 겨우 게이트에 도착했다. 그동안 여러 번 해외여행을 했지만, 공항 내에서 지하철로 이동한 것은 처음이었다.
비행기 안에서 이륙할 때 큰 손주는 좋아서 웃고 작은 손주들은 울음을 터트렸다. 장거리 비행기를 타다 보니 둘째 손주가 기내 공기가 안 좋아서인지 좁은 곳이 갑갑해서인지, 며느리 가슴에 음식물을 토하기도 했다. 막내 손주는 인천공항 비행기가 이륙할 때, 그리고 보라카이 섬과 가까운 칼리보 공항으로 비행기가 착륙할 때 울어댔다. 기압 차이로 귀에 통증이 왔던 것이다. 막내 손주가 어디가 불편한 건지 표현을 잘 못해 며느리가 고생을 많이 했지만, 그 외 시간은 비행기 안에서도 잘 놀아 다행이었다.
작년과 재작년에 필자가 방문한 베트남과 미얀마는 공항 입국 심사대에서 한국인들을 우대해줬는데 이곳은 세관 심사가 너무 까다로웠다. 보라카이 휴양지는 세계적으로 유명해 하루에 이곳을 찾는 여행객이 2만 명이나 된다 하니 작은 섬의 인기가 대단하다. 이 섬의 치안은 안전한 편이라고는 하지만, 10년 전 필리핀을 여행할 때도 총기사고가 있었다. 최근에는 불법으로 유통되는 총기가 100만 정이나 된다는 뉴스도 있었다. 심지어 총기 규제가 허술하니 ‘필리핀에서는 택시를 타지 말라’는 경고도 있다.
칼리보 공항에 내리니 밤이었다. 그곳에는 한국인 가이드가 아닌 필리핀 가이드가 서 있었다. 필리핀 가이드는 어디론가 전화를 하더니 한국인을 바꿔줬다. 그분이 하는 말이 오늘 한국 여행객들이 많이 와서 안내하느라 자신이 두 시간 거리인 보라카이에 있으니 현지 가이드와 같이 오라고 한다. 공항에서 낯선 필리핀 사람이 우리 가족들 이름이 쓰인 피켓을 들고 서 있는 것을 보고 약간 실망도 했는데 어두운 밤에 그 외국인을 따라 목적지인 보라카이로 가려니 걱정도 됐다. 그러나 가는 동안 필리핀 가이드와 대화를 한 뒤 불안감은 조금 가셨다.
얼마 후 보라카이 섬으로 들어가는 부두에 도착했다. 현지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배를 타니 한국 여행객들이 많았다. 그제야 비로소 안심이 됐다. 섬에 도착하니 보라카이의 대표적인 교통수단인 자전거 택시 베디카부와 오토바이를 개조해 좌석을 몇 개 만든 3륜 오토바이 트라이시클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을 타고 우리 가족은 호텔로 이동을 했다. 10여 년 전, 마닐라를 방문했을 때는 미군이 사용하던 군용 지프를 개조한 작은 버스 지프니가 대중교통 역할을 했다.
우리 가족이 예약한 호텔은 이 지역에서 꽤 유명한 호텔로 시설이 아주 좋았다. 다음 날 호텔 수영장을 배경으로 한국인 모델이 촬영을 하고 있어 관계자에게 문의하니 인기 있는 호텔이라 한국에 선전하려고 찍는다고 했다. 그만큼 괜찮은 호텔이라는 의미라서 기분이 좋았다.
보라카이는 세계 3대 화이트비치라는 소문에 세계 여러 나라의 자유여행객들에게 인기 있는 여행지 중 하나로 손꼽힌다. 보아하니 한국인들도 많이 온 것 같았다. 숙소인 ‘파라다이스 가든’에는 넓은 부지에 야자수를 비롯한 다양한 꽃들이 심어져 있었다. 조용한 휴식과 레저 스포츠를 즐기기에도 적합해 보이는 이곳은 아름다운 정원과 함께 상쾌한 물줄기를 내뿜는 인공폭포가 마련된 옥외 수영장이 인기였다. 전체적으로 안락한 분위기에 우수한 시설로 불편이 없었고 도보로 5분 거리에 화이트비치가 있어 참 편리했다.
호텔에서 주는 아침은 열대식물이 있는 정원에서 가족 9명이 대화를 나누며 즐겁게 먹었다. 아름다운 섬 보라카이의 멋진 정원에서 식사를 하니, 대기업에서 스트레스받으며 일하는 큰아들 부부, 부부 공무원으로서 민원인들에게 시달리며 일하는 작은아들 부부가 기분이 좋은지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 손주들도 신이 나는지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아파트에 사는 손주들에게 늘 했던 “조심하라”는 말을 안 해서 필자도 즐거웠다.
옥외 풀장에서는 가족 모두가 물놀이를 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특히 우리 부부가 손주들과 놀아주니 아들과 며느리들이 오랜만에 해방된 기분이라며 이구동성이다. 점심은 보라카이 다운타운 디몰(D-mall)에서 먹기로 했다. 세계 각지에서 온 여행객들이 많아서인지 멕시코식, 일식, 그리스식, 스페인식, 이탈리아식, 스위스식, 한식 등 여러 나라 음식이 많았다. 우리 가족은 이곳저곳을 살피다가 필리핀 음식점에서 닭고기와 돼지고기로 만든 음식을 주문했다. 공장에서 만들었는지 종이에 싼 밥도 나왔다. 손주들과 며느리들이 맛있게 먹어주니 기분이 좋았다. 후식은 자리를 옮겨 필리핀 특산물인 망고로 만든 망고쉐이크를 주문했다. 가족들 모두가 좋아했다. 길을 걷다가 이탈리아식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젤라토를 사 먹기도 했다. 그런데 큰손주가 망고쉐이크가 맛있다고 또 사달라고 하니, 둘째 손주도 덩달아 자기도 사달라고 해서 할머니가 지갑을 분주히 열고 닫아야 했다. 가족들 모두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사는 맛이 났다.
다음 날, 바다에서 물놀이도 하고 밀가루 같은 모래로 손주들과 두꺼비집도 지으며 놀았다. 큰손주는 신이 나서 아예 이곳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이어서 필리핀 전통 선박으로 엔진 없이 바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돛으로만 이동하는 세일링 보트를 탔다. 그물망에 앉아 바람을 느끼며 보라카이의 에메랄드빛 바다를 즐겼고, 가족 모두가 흥겨워하니 쪽빛 바다, 흰 파도, 그리고 멋진 모래사장이 있는 이곳으로 여행을 잘 온 것 같다.
저녁에는 가족 모두가 방에 모여 맥주와 위스키, 간식을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손주들이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면서 가족과의 행복한 시간을 만끽했다. 특히 손주들이 이 방 저 방으로 옮겨 다니며 즐거워하니 아들과 며느리들도 만족스러운지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그동안 국내 여행을 자주 함께하며 가족 간 사랑을 나눴던 게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부모와 형제는 수족 같고 처자식은 의복과 같다고 했다. 어른이든 아이이든 사랑을 받아야 삶의 활력이 생긴다. 사랑은 살아가는 이유가 될 만큼 아름다운 감정이다.
세상의 아버지들은 어깨 위에 올려놓은 자식과 손주를 절대로 짐으로 여기지 않는다.
자녀들은 가족이 함께 있을 때는 소중함을 잊고 살지만 공부와 취업, 그리고 결혼 때문에 떨어져 살거나 부모 중 한 분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그제야 부모의 소중함을 더욱 느끼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은 각자 자기 둥지에서 살다가 인간관계, 심리적인 문제 등이 생겼을 때, 가족을 찾는다. 가족이 가장 편하고 세상 어느 누구보다 든든한 지지자이기 때문이다. 특히 어머니는 늘 따뜻한 마음으로 자녀들을 안아주고, 아버지는 투명한 빛으로 자녀들의 길을 밝혀주기에 부모가 오래 곁에 있다면 최고의 복이다.
이 세상에서 가정의 행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집이 대궐같이 으리으리하고 돈이 많아도 가족 간에 사랑이 없으면 행복한 가정이라 할 수 없다. 가정의 행복을 맛본 사람은 인생의 햇볕을 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그 빛으로 아름다운 삶의 꽃을 피울 수 있다. 보라카이로 떠난 가족여행은 행복했고, 무사히 귀국하게 되어 감사한 마음이다. 덕분에 가족들의 아름다운 미소는 오랫동안 우리 가정의 풍경이 되고 에너지가 됐다.
주말에 큰손주가 오면 “할아버지 할머니 보라카이 또 가요. 그리고 망고쉐이크 사주세요” 한다. 그 말에 필자와 아내는 싱긋이 웃는다. 그리고 또 다른 여행 계획을 짜본다. 가족이 함께 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은 큰 행복이다. 재충전의 기회도 된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그동안 가족의 소중함을 잊고 살았다면 가까운 곳이라도 여행을 떠나보자. 손을 잡고 눈을 마주치는 시간 속에 어쩌면 꽃보다 더 아름답고 향기로운 웃음꽃이 만발할 것이다.
>>류시호 시인ㆍ수필가
초등학교 교사로 정년퇴임한 후 시인과 수필가로 등단해 현재 중부매일신문의 오피니언 ‘아침뜨락’에 2008년부터 고정필진으로 있다. 이외 대구일보와 현대문학신문의 필진으로 있으며, 한국예술인복지재단 2016년 문학 창작금 수혜(受惠)를 받았다. 서울특별시장의 ‘서울사랑 이야기 공모전’ 수상 외 6건을 수상했고, 저서로 과 등 4권이 있다.
‘에게 해의 진주’와 ‘바람의 섬’이라는 별명을 지닌 미코노스는 유럽인들이 즐겨 찾는 휴양지로 손꼽힌다. 영화 등 촬영지로도 인기를 누리는 섬. 특히 동양인에게 많이 알려진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이 섬에 머물며 소설 를 쓰기 시작했고 에세이 에는 이곳의 ‘한 달 반’ 생활이 낱낱이 그려져 있다. 하지만 이 섬은 예술가나 특정인들만이 누릴 수 있는 호화로운 곳은 절대 아니다.
이신화 여행작가 ('On the Camino' 저자, www.sinhwada.com)
아폴론의 손자 미콘스의 이름을 딴 섬
그리스는 섬들의 나라다. 6000개가 넘는 섬 중에서 유인도는 227개. 에게 해의 섬들 중에서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 미코노스다. 미코노스 선착장에서 ‘워터 택시’를 타면 코라(구항구)에 금세 다다른다. 이 섬의 첫 느낌은 ‘눈부신 흰색’이다. 그리스 동남부에 위치하고 있는 미코노스는 그리스령 키클라데스 제도 가운데 하나다. 북서쪽에 티노스 섬, 남쪽에 낙소스 섬과 파로스 섬이 있고, 델로스 섬과는 2㎞ 떨어져 있다. 면적은 86㎢로 작으며 최대 고도는 364m로 산토리니 섬의 깎아지른 듯한 벼랑과는 달리 평지다. 지질은 주로 울퉁불퉁한 화강암이고 신선한 자연수가 적어 염분을 제거한 해수도 이용한다.
미코노스에 사람이 정착한 것은 BC 11세기경으로 이오니아인들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프텔리아 해변에서 발굴된 신석기시대의 카레스(Kares)족의 유물은 BC 30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미코노스 섬 이름은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됐다. 제우스를 우두머리로 하는 올림포스 신들과 거인족 기간테스가 신들의 지배자 자리를 놓고 10년간이나 필사적인 전투를 벌였다. 제우스를 도운 헤라클레스가 거인족을 섬멸하기 위해 던진 바위 조각이 바로 이 섬이라고 전해진다. 이후 태양신 아폴론의 손자인 미콘스(Mykons)의 이름을 딴 섬이 됐다고 한다.
만토 광장, 좁은 골목길 걷다 만난 보니스 풍차
바닷가 옆, 마토이아니 거리에서 만토 광장으로 들어서면 만토 마브로게누스(1796~1848)의 동상이 있다. 그녀는 그리스 독립운동(1821~1832)을 위해 헌신한 애국자다. 그리스 동전(1988~2001)에도 얼굴이 새겨져 있는 그녀의 삶은 영화로도 제작됐다. 만토 광장을 비켜나면 아기자기한 부티크숍, 레스토랑, 호텔, 작은 박물관 등이 있는 좁은 골목이 나온다. 여름철, 화사한 부겐빌레아꽃이 피어나면 ‘흰 빛’의 가옥들은 차라리 눈이 부시다. 화분으로 치장한 발코니가 있는 앙증맞은 집들을 지나 언덕 위로 올라가면 보니스(Boni´s) 풍차가 보인다. 더 이상 돌지 않은 풍차이지만 미코노스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좋은 자리다. 구항구에 떠 있는 큰 배와 부산하게 움직이는 작은 배들, 그리고 교회, 하얀 집들이 어우러진 섬의 모습은 너무 아름답다.
미코노스가 산토리니와 다른 점은 건물 색이다. 획일화를 싫어하는 그리스인들의 성격을 보여주듯 흰색에 밤색, 청색을 덧칠했다. 보니스 풍차를 기점으로 서쪽으로는 선사유적지가 있고 동쪽 끝으로는 다섯 개의 풍차(Kato Milli, Lena´s House)가 있다. 원래 16대였던 풍차는 이제 5대만 남아 미코노스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이 풍차들은 육지에서 가져오는 곡식을 빻는 방앗간 역할을 했다. 현재는 바람을 거절하는, 돌지 않은 풍차이지만 농업박물관으로 개조되어 관광객에게 무료 공개되고 있다. 풍차를 등지면 에게 해가 에둘러 섬을 감싸 안고 알록달록한 ‘리틀 베니스’ 건물들이 휘어진 해안선을 만난다.
그리스 정교회가 400개를 웃도는 섬
미코노스에는 그리스 정교회의 작은 교회가 유난히 많다. 무려 400여 개나 있어 미코노스 작은 시가지에서는 엄청난 교회와 맞닥뜨린다. 가장 유명한 곳이 파라포르티아니(Paraportiani) 교회다. ‘중세 성채의 뒷문’이 있던 곳이어서 뒷문을 뜻하는 ‘파라포르티’라는 이름이 붙었다. 현지인들은 ‘성모 마리아 파라포르티아니’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이 교회는 독특하게도 5개의 예배당이 하나로 합쳐져 있다. 지상에서 보면 한 개의 건축물(1425년)이지만 지하에 4개의 예배당이 더 있다. 지상 건물이 가장 오래됐고 지하는 16~17세기에 걸쳐 만들어졌다. 비잔틴 스타일에 미코노스 섬과 서구 교회 양식이 조합돼 오묘한 분위기를 보여주는, 키클라데스 군도에서나 볼 수 있는 전형적인 건축 양식이다. 교회 앞쪽으로는 ‘리틀 베니스’로 불리는 골목이 이어진다. 때때로 펠리컨이 친구가 되기도 한다. 특히 이 섬은 낮보다는 밤 문화가 발달된 도시로 고요함보다는 생동감이 넘친다. 활동적인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섬이다.
◇ Travel Data
항공편 한국에서 그리스까지 가는 직항 노선은 없다. 프랑크푸르트, 파리, 로마, 이스탄불, 두바이 등을 경유해 아테네로 들어가야 한다. 많은 이들이 터키 여행과 함께 그리스를 선택한다. 한국에서 터키 이스탄불까지는 직항 노선이 있다. 터키 항공사를 이용하면 가격이 저렴하다. 11시간 40~50분 소요.
현지 교통 아테네 피레우스 항구에서 페리나 그리스 국내 항공을 이용하면 된다. 항공편으로는 약 35분 정도 소요. 초고속 페리는 3시간, 완행은 6시간 정도 소요된다. 파로스, 산토리니, 크레타, 테살로니키 등에서도 페리가 연결된다(배편 인터넷 예약 사이트는 hellenicseaways.gr). 주말, 연휴 때는 가격이 두 배로 오른다. 표를 직접 구하기 어려울 때 항구 주변의 여행사를 통하면 알아서 척척 저렴한 가격의 표를 만들어준다.
현지 정보 올드 타운은 걸어 다니고, 그 외 델로스 섬은 투어 상품을 이용하면 된다. 파라다이스 해변 등은 올드 타운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할 수 있다. 피크 시즌에는 숙박 가격이 매우 비싸다. 시즌을 피해서 가는 것이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호텔보다는 가정집을 빌려주는 아파트를 이용하면 저렴하다. 그리스의 일반 식당으로 알려진 타베르나(taverna)가 많고 문어, 새우 등 해산물 요리를 즐길 수 있다. 화덕에 굽는 숨은 빵집(Gioras Wood Medieval Mykonian Bakery)이나 피아노 바인 몽파르나스도 기억해두자.
기타 정보 그리스 경기가 불안하다고 대대적인 보도가 나왔지만 실제로 여행을 할 때는 체감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매우 밝고 친절하다. 통화는 ‘유로’이고 물가는 싼 편이다.
시니어 여행 포인트 미코노스를 기점으로 델로스, 시로스, 파로스, 낙소스, 산토리니 등 주변 섬 여행을 해봄직하다. 섬 여행이 지루하다면 아테네로 나와 그리스 내륙 여행을 즐기면 된다. 메테오라, 테살로니키, 델피, 칼라마타 등 그리스는 한 달 이상 머물러도 충분히 즐길 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