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무대는 압구정이다. 마피아가 주로 애용한다는 보르살리노 모자와 젊은 층이 열광하는 디젤 청바지를 즐겨 입는, 멋을 제대로 아는 사람. 패션 감각이 조금이라도 빠진다 말하면 서러워할 이 남자의 직업은 ‘서예가’다. ‘서예가’라고 해서 갓 쓰고 도포 자락 휘날리며 나타날 것으로 생각했나? 완벽한 오산이다. 현재라는 프리즘으로 시공간 너머와 호흡하는 서예가 하석 박원규(何石 朴元圭·69)를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만났다. 서예가 하석 박원규(이하 하석)는 만나기 전 겁부터 났다. 먹 묻힌 붓 들어본 지 어언 20년은 됐
아침(Breakfast)과 점심(Lunch) 사이에 먹는다는 ‘브런치(Bruch)’. 나들이 가고 싶은 봄날엔 점심때보다 일찍 만나 아침처럼 가벼운 브런치 한 끼 어떨까? 글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 건강을 생각하는 유기농 브런치 ‘빙봉(Bimbom)’ 보사노바의 한 곡과 이름이 같은 ‘빙봉(Bimbom)’은 그 음악처럼 묘한 즐거움을 주는 곳이다. 매장으로 들어서면 세련되고 깔끔한 모습의 오픈 키친이 돋보인다. 훤히 보이는 주방만큼이나 믿음직스러운 유기농 건강 브런
서양음악은 좋아하면서도 1970년대 초까지 필자뿐만 아니라 친구들까지 모두 국악은 물론 소위 뽕짝이라고 하는 가요도 고무신 또는 엽전이라고 비하하면서 들어 볼 생각조차 안 했으니 교육 탓이었을까, 분위기 탓이었을까. 1960년대 초 김치 캣의 ‘검은 상처의 블루스’를 좋아하긴 했지만 그 곡도 실은 실 오스틴의 ‘Broken Promises’를 번안한 것이었으니 우리 음악이라고 하기에는 그렇고 1960년대 말 펄 시스터스가 부른 신중현의 ‘님아!’나 ‘커피 한 잔’, ‘빗속의 여인’ 등이 겨우 젊은이들에게 어느 정도 인기가 있었던
영양제에 관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의 하나가 바로 자신의 연령대에 꼭 맞는 영양제가 무엇인지에 관해서다. 아무래도 중년의 나이로 접어들게 되면, 체력이 감소하다든지, 노안이 생긴다든지 하는 증상부터 시작해서 근육이나 뼈를 삐끗해서 후유증이 오래가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 사실 영양제는 고사하고 삼시 세끼도 잇기 어려웠을 때를 돌아본다면, 노화가 현대사회에 비해서 급속히 진행된 것을 알 수 있다. 이전 세대의 사진을 유심히 보게 된다면, 그 차이를 더 확연히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50대에 접
삼국시대 한반도와 만주에 살고 있던, 오늘날 ‘한국인’이라고 부르는 우리 선조들 간에 말이 통했을까? 언어의 진화 속도는 엄청나게 빠르다. 오늘날 어린아이들이 하는 말을 어른들이 못 알아듣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천년 넘게 고립되어 진화되어 온 제주도 방언을 본토 사람들이 못 알아듣는 건 당연하다. 산이나 강으로 나눠진 채 교류가 없이 지나온 삼국시대 선조들 간의 말이 다를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삼국시대는 전체적으로 보면 한국사에서 가장 역동적인 시기였다. 삼국 간에는 물론이고 말갈, 부여, 낙랑, 마한, 진한, 변한, 가야
최성환 한화생명 은퇴연구소장·고려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 아니, 배우자가 둘이 필요하다니? 나이 든 부부에게 불 지를 일이 있나? 필자가 강의를 하다가 불쑥 “나이 들수록 배우자가 둘이 필요하다”라고 말하면 대다수 청중은 뜨악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이어지는 설명을 듣고 나면 “아하, 그렇구나!”라고 하면서 무릎을 친다. 나이가 들수록 필요한 배우자 둘 중 하나는 남편 또는 아내를 뜻하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뭔가를 배우자는 ‘배우자’이기 때문이다. 배우자는 가장 좋은 친구 다
한복은 참 아름답다. 가지런히 역삼각형으로 내려오는 새하얀 동정 깃에 고운 빛의 저고리와 치마가 이루는 조화는 세계의 어느 나라 드레스에 비할 바 없이 멋지다. 예쁜 색상과 날렵한 선도 멋지지만 음식을 많이 먹어도 배가 감춰지는 치마의 풍성함도 좋다. 그러나 제대로 갖춰 입으면 행동하기에 쉽지 않다는 단점이 있어 상용하는 옷이 되기에는 힘들다는 생각으로 명절 때나 찾아 입게 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거리에서 한복 입은 아가씨가 눈에 띄인다. 특히 서울 삼청동부터 광화문까지 거리엔 한복을 차려입은 아가씨가 많이 보인다. 삼청동,
'놓친 고기가 더 커 보인다’는 속담이 있듯이, 사람은 대부분 잃어버린 물건을 아깝게 생각하고 지금의 것보다 예전의 것이 더 좋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그런 일을 내가 직접 겪고 보니, 위 속담이 더욱 실감 나게 느껴진다. 주로 지하철로 출ㆍ퇴근하는 필자는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5호선 전철을 이용해 퇴근하고 있었다. 여의도역에서 환승해 전철 안에서 잠시 스마트폰을 본 후 느낌이 이상해 윗주머니에 손을 댔더니 지갑이 없었다.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어디서 잃어버렸을까, 소매치기를 당했나“ 등 온갖 잡생각이 떠올랐다. 지갑을
따뜻한 봄소식은 겨우내 꽁꽁 얼었던 우리 마음을 다시 따뜻하게 만들지만, 봄과 함께 찾아오는 불청객 소식도 들린다. 꽃가루나 황사와 같은 각종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는 인자들이 대표적인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이다. 특히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하는 천식은 속 시원한 치료법이 없는 호흡기 질환으로 꼽힌다.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도움말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소아청소년과 유영 교수 천식(喘息)은 가슴이 답답해지고, 기침이 나거나, 천명(喘鳴) 혹은 호흡곤란과 같은 증상이 반복적으로 나
사진은 아마추어나 비전문가에게 일종의 ‘오락 부산물’ 같은 것이다. 좋은 곳으로 여행을 떠나거나, 즐거운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때 우리는 사진을 찍는다. 즐거움과 기억, 과시하고픈 욕망을 사진에 담는다. 하지만 사진작가에게 사진은 창작의 고통이고, 노력만큼의 보상이다. 경기도 일산의 작은 작업실에서 만난 사진작가 이병용(李秉用·57)에게 사진은 마땅히 해야 할 감사를 담은 각고의 산물이었다.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사진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
최근 출시된 스마트폰들은 전문가용 부럽지 않은 기능들을 갖춰 다양한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러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당연히 무용지물. 상황에 따라 어떻게 하면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는지 알아보자. TIP 1 여행지 기념사진을 잘 찍자 배우자나 가족과 여행을 갈 경우 보통의 기념사진은 딱딱하게 전신이 다 보이는 사진이 대부분. 이런 경우 표정을 제대로 알 수 없어 좋은 사진이라 할 수 없다. 다행히 대부분의 휴대폰 카메라들은 광각렌즈를 갖추고 있으므로 배우자나 가족이 조금 앞에 다가와도 뒤의 관광지가 나오는 데
스마트폰이 대세인 세상, 구태여 ‘사진기’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구식이라 생각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술적인 이야기를 모두 차치하더라도 나들이를 떠나면서 어깨 한 쪽에 혹은 목걸이처럼 카메라가 한 대 걸려 있지 않다면 마음가짐 자체가 달라지는 것 아닐까? 나들이가 잦아지는 계절이 찾아온 지금 배우자를 위해, 혹은 가족을 위해 멋진 사진 한 장을 위한 준비를 해 보는 것은 어떨까? 글·사진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다니다 보면 간혹 “요즘 세상에 사진을 누가 카메라
투박하지만 솔직한 화법. 박동현(朴東炫·60) ‘더 클래식 500’ 대표의 말투가 그렇다. 그러나 그러한 순박한 인상 속에는 맡은 지 2년여 만에 회사를 흑자로 전환시킨 수완 좋은 경영가의 모습이 담겨 있다. 신라호텔, 조선호텔 등을 거치며 호텔업계의 스페셜리스트로 활동하다가 만년을 맞이하여 시니어타운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몸담은 박 대표는 최근 전국노인주거복지시설협회의 회장으로도 취임했다. 해야 할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듯한 그의 행보에는 시니어 주거공간의 필요성과 사회적 패러다임의 변화를 꿈꾸는 의지마저 담겨 있었다. 박동현
박정희 혜담(慧潭) 인상코칭 연구원장 ilise08@naver.com 1975년 8월 발행된 1000원권의 인물은 조선중기 문신이며 성리학의 대가로 영남학파를 형성한 퇴계 이황(李滉 1501~1570)이다. 영남학파는 영남지방을 중심으로 하는 유파로, 조선 중기에 영남좌도에서 이기심성론(理氣心性論)과 예학(禮學)을 바탕으로 한 사변적(思辯的)인 성리학을 더욱 중시하였다. 우계(牛溪) 성혼(成渾)과 율곡(栗谷) 이이(李珥)를 중심으로 한 기호학파에 대칭되면서 학문적으로는 주리론(主理論), 정치적으로는 동인의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던 청년은 광복을 6개월 앞두고 고통 속에 생을 마감했다. 윤동주, 안타까움과 연민으로 기억되는 그의 숨결을 찾아갔다. 윤동주는 1941년 24세가 되던 해, 연희전문학교 후배 정병욱과 종로구 누상동에 있는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약 4개월간 하숙을 했다. 짧은 기간이지만, 이 시기에 윤 시인을 기억하게 하는 대표 시 ‘십자가’, ‘또 다른 고향’, ‘별 헤는 밤’, ‘서시’가 쓰였다. 이 인연으로 설립된 것이 인왕산 자락에 있는 ‘윤동주 문학관’이다. 더는 쓰이지 않는 수도 가압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