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아내는 술을 못 마신다. 아니 넘기기는 하는데 곧 이상이 생긴다. “우리 막걸리 마실까?” “웬 막걸리요?” “TV서 지금 막걸리들 마시는데 맛있어 보여서….” “그럼 하시죠, 제가 사올게요.” 막걸리가 어울리는 나이도 됐다 싶다. 학창 시절 무교동에 낙지 골목이 있었는데 찌그러진 양은 대접에 술안주라곤 매운 새끼낙지볶음과 단무지가 전부. 단숨에 한잔하고 저어새처럼 휘익 돌려 젓가락에 걸리는 게 있으면 먹고 아니면 젓가락만 빨다가 밥 한 공기 시켜 매운 국물 넣어 비벼 먹었지. 그 밥을 또 안주 삼아 인원수대로 한 주전자씩
초등학교 통지표에 ‘의자에 앉는 자세가 바르지 못하다’는 말과 함께 나오던 단골 멘트는 ‘나름대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서 오류가 많다’였다. 필자는 그 시절 자그마한 걸상에 비스듬히 앉아 선생님의 설명을 듣기보다는 마루 사이에 낀 지우개 가루를 쉽게 파내는 방법 따위를 생각하느라 골몰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 말씀이 맞다. 학교에 갔다가 집으로 올 땐,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녔다. 노량진의 오래된 동네라 구불구불 골목이 많았다. 필자는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새로운 경우의 수를 조합해보느라 분주했다. 가끔은 막다른 골목
지난 3월 14일 한국공정거래위원회 주최로 ‘열린소비자포털 행복드림 설명 및 시연회’가 있었다. 필자는 상공회의소 9층 공정거래조정원 회의실에서 열린 이 시연회가 똑똑한 소비생활을 위해 우리가 꼭 알아둬야 할 많은 정보가 있을 것 같아 기대감을 갖고 참석했다. ‘행복드림’은 상품에 대한 정보 확인과 피해 구제 신청이 원스톱으로 가능한 포털 사이트로서 각 민원을 어느 부처에서 담당하는지 알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이 사이트에서 상품의 바코드나 QR코드를 스캔하거나 검색란에 상품명을 입력하면 상품의 정보뿐만 아니라 그 상품의 위해
33년 만에 초등학교 동창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다. 동창생들은 그동안 얼마나 변했을까. 첫 모임 때에는 30명가량이 나왔는데, 다시 각자 아는 동창생들에게 연락을 해서 모일 때마다 인원이 늘었다. 나중에는 전체 동창생 500명 중 200명가량이 모였다. 그런데 덜컥 내가 동창회장으로 추대되었다. 재학 시절 전교 회장을 한 이력이 있어 봉사의 책임감도 느끼긴 했다. 이때부터 전체 모임, 각 지역 모임, 임원 모임, 경조사 모임 등 만남이 잦아졌다. 우리 모임을 계기로 후배들까지 동창회를 결성하다 보니 자동으로 총동문회장까지 맡게
나이가 들어가면서 노여움을 자주 느낀다. 과거 한창때라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도 가슴에 맺히고 자꾸 곱씹게 된다. 글쎄 이런 현상이 나이를 먹으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인지 아니면 늙어갈수록 옹졸해져가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여하튼 이제는 남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말도 듣기 싫고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자기 자랑하는 모습도 꼴불견이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마음을 접으며 하나둘 관계가 소원해지더니 이제는 멀어져간 관계들이 꽤 된다. 옛날에는 왜 그리도 잡다한 모임이 많았던가. 다양한 모임들이 모두 나름대로 필요에 따라 결성됐
야채를 썰다 놓친 부엌칼이 발등 근처에 떨어져 크게 놀라거나, 매일같이 오르던 계단이 어느 날부터 유독 높아 보이거나, 맛있는 깍두기가 제대로 씹히지 않는 날이 있다. 누구나 일상 속에서 개의치 않고 넘길 수 있는 일들이다. 체력이 좀 떨어졌거나, 며칠 쉬지 못해 그러겠거니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어두운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우고 있는 중일 수도 있다. 바로 중증근무력증이다. 안석원(安錫源·42) 중앙대학교병원 신경과 교수와 함께 중증근무력증에 대해 알아봤다. 중증근무력증은 많은 사람에게 병명조차 생소한
50세가 넘으면 몸 이곳저곳이 고장 나고 아프기 시작한다. 배불뚝이에다 운동 부족으로 계단을 오를라치면 금방 숨이 차오른다. 이렇게 되면 누구나 나이를 의식하게 되고 운동의 필요성을 느낀다. 대안으로 헬스장을 찾기도 하고 등산도 해본다. 더러는 탁구나 배드민턴 같은 운동에 얼굴을 내밀어보는 등 마음이 급해진다. 그러나 신체의 지구력이나 민첩성은 젊을 때와 다르다. ‘왕년에는 내가’ 하는 의욕만으로 덤비다가는 운동 효과를 보기 전에 몸부터 다친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고 하지만 몸도 정신을 받쳐줘야 한다. 안 그러면 작심삼일이
며느리가 세상을 떠난 지 이제 3개월이 되어간다. 그동안 뭔가 정리가 안 된 듯 미진함이 늘 남아 있었다. 어느 날 영정 사진이 필요하니 찾아놓으라는 아들 전화를 받고 사진을 찾다가 아들 방 한쪽에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는 흰 주머니를 봤다. 뭘까? 하는 궁금증이 일어 살짝 열어보니 새하얀 봉투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알고 보니 며느리 장례식 때 조문객들에게 받았던 봉투들이었다. 필자는 그 봉투들을 하나씩 꺼내봤다. 봉투 주인들의 마음이 아주 또렷하게 전달되었다. “감사합니다!” 봉투를 하나씩 꺼내어 거기에 쓰인 글들을 하나하나 조심
“엄마, 이 오빠 알아? 이 오빠 엄마가 엄마 안다던데?” 교회에 다녀온 딸이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얘, 민철이 아니야?” “맞지? 맞지? 오빠랑 얘기하다 우리가 옛날 살던 동네 얘기가 나왔는데 자기네도 거기 살았다고….” 민철이 엄마와 필자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다. 아랫목에 배를 깔고 팝송을 함께 듣고, 디제이가 있는 빵집에 들락날락했던 둘도 없는 친구였다. 친구가 결혼해서 외국으로 떠났다가 여기저기 이사를 다니면서 연락이 끊어졌다. 그런 친구 소식을 딸을 통해 듣게 되니 여간 반가운 게 아니었다. 당장 연락을 하고 단짝
사람은 왜 사는가. 어디선가 홀로 피어나 고통과 울음으로 맞이한 삶의 시작. 살아온 과정이야 어떠하듯 결국은 순서 없이 이별 하는 것을. 그 떠남을 예감치 못하고, 예약 없이 혼자 훌쩍 떠나가는 것을. 그 악다구니로 살아온 짧은 삶의 여정 속에서 과연 쥐고 가는 것은 또 무엇이었을까. 누군가의 삶은 이별의 아쉬움 세상 속에 아주 진한 색깔로 떠들썩하고 어떤 삶은, 조용히 몇몇 친지 들만의 가슴 저 편 속에 묵묵히 들어앉는다. ‘블랙 앤 화이트’ 색깔의 조화처럼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 감회의 눈물은
들어갈 땐 마치 UFO 우주선 안으로 끌려가는 기분이었고, 들어가 보니 우주의 다른 행성에 도착한 느낌이다. 바로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DDP 이야기다. 밖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는 밀폐형임에도 하늘이 보이고 수풀처럼 곳곳에 아름다운 디자인 작품들이 널려있다. 지하철 한번 타면 도착할만한 거리에 이런 곳이 있는데. 알면서도 미뤄온 게으른 방문이었다. 피에로 포르나세티 PRACTICAL MADNESS(실용적인 광기) 전은 그의 작품이 프린트된 자동문으로 들어서며 광기의 세계가 확 펼쳐진다. 단번에 첨벙 또 다른 세계로 빠진다.
더 이상 좋을 수 없다. 박세리가 세계 정상의 깃발을 높이 치켜든 이래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의 투어는 발전을 거듭해왔다. 해마다 정신력과 기술로 무장한 최강의 여성 골퍼들이 새롭게 모습을 드러내며 대회 수준을 한껏 끌어올렸고, 그에 따라 대중의 관심과 규모 면에서도 확장과 성장을 거듭해왔다. 더할 나위 없는 한국 여자 프로 골프, 그 전성기가 올해도 계속될까? 우리나라 여성들이 골프 종목에 유독 강한 이유를 두고 별의별 분석들이 언론에 소개돼왔다. “한국 고유의 바느질 전통 덕분에 손끝 감각이 예민하기 때문”이라는 믿
동양 문화권인 중국이나 일본 초상화 역시 각기 조선시대 초상화와 비슷하면서도 분명한 차이점을 보여준다. 중국 초상화는 피사체의 복장이 화려한 문양으로 권위를 마음껏 ‘뽐내고’ 있다[사진 1]. 그리고 일본 초상화는 얼핏 간결하고 담백한 아름다움을 보이는 것 같지만 피사체의 의상인 ‘하오리(羽織)’의 양 어깨선이 일직선과 함께 날카로운 각(角)을 형성하고 있다. 더 일본적인 문화 코드라고 할 수 있는 ‘일본도(日本刀)’를 초상화에서 본다[사진 2]. 이는 일본 문화를 ‘국화와 칼’이라는 두 단어로 절묘하게 상징화한 미국 인류학자 루스
겨울에도 꽃이 달린다고 해서 이름 붙은 동백(冬柏). 늦겨울부터 봉오리가 맺기 시작해 3~4월이면 꽃망울이 터져 절정을 이룬다. 대개 울릉도나 대청도, 오동도 등 섬에서 자생하지만 육지에서도 선홍빛 동백꽃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있다. 충남 서천군의 동백나무숲이다. 천연기념물 제169호로 지정된 마량리 동백나무숲에는 80여 그루의 동백나무가 자라고 있다. 동백나무로 유명한 부산 동백섬이나 여수 오동도 등보다 늦게 개화해 4월에도 만개한 꽃을 볼 수 있다. 이곳 전설에 의하면 500여 년 전 마량의 수군첨사(水軍僉使)가 꿈에 바닷
‘정해진 둥지도 없어 아무 데나 누우면 하늘이 곧 지붕이다. 코끝에 스치는 바람, 흔들리는 풀잎 소리, 흐르는 도나우 강물이 그저 세월이리라. 우린 자전거 집시 연인이다.’ 최광철(崔光撤·62) 전 원주시 부시장이 유럽 자전거 횡단 중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글이다. 자유로운 영혼의 감성이 물씬 느껴지는 그의 여정에는 빠질 수 없는 것이 한 가지 있다. 바로 아내 안춘희(安春姬·59)씨다. 자전거의 두 바퀴처럼 언제 어디서나 나란히 함께하는 두 사람의 유유자적 여행기를 들어봤다. 최광철 전 부시장이 50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