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한복판에 청정 숲과 계곡이 숨겨져 있다. 회색빛 빌딩 속 푸른 오아시스 같은 그곳에는 가재와 버들치가 산다. 추사 김정희가 살았던 집터와 연못 터에서 옛 선비의 망중한을 그려 본다. 계곡의 원류를 찾아 세검정에서 거슬러 오르다 시작점은 종로구 신영동에 있는 세검정이다. 세검정은 조선 시대에 손꼽히는 경승지였다. 이름에 대해서는 몇 가지 기록이 남아있는데 이곳에서 칼을 씻어 인조반정을 도모했다는 이야기와 실록이 완성되고 난 뒤 사관이 그동안 기록한 사초를 이곳에서 물로 씻었다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과거에 세검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 1883~1956) 하면 그녀의 연인이자 시인인 기욤 아폴리네르를 떠올린다. 그녀를 비롯한 당대 여성 예술가들은 사랑하는 연인의 빛에 가려 탁월한 예술성이 평가절하되곤 했다. 로댕의 연인 카미유 클로델, 디에고 리베라의 연인 프리다 칼로 등이 그러했다. 그러나 시대가 변화하면서 그녀들의 작품도 속속 빛을 발하기 시작했고, ‘누군가의 연인’이 아닌 독자적인 아티스트로서 작품세계를 인정받고 있다. 그중 대표적 인물이 바로 마리 로랑생이다. 로랑생의 작품에는 기욤 아폴리네르를 향한 애틋한 사랑
스무 해가 훌쩍 넘어서 다시 온 파리에 낯섦이 기다려주어 다행이다. 그러나 파리는 이전에 보았던 것처럼 수백 년 된 건물에 거뭇하게 묻은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센강은 여전히 느리게 흐르고 있었고 퐁네프 다리도 더 깨끗하거나 새롭게 단장되지도 않았다. 센강 양쪽으로 오래된 옛 건물들이 자아내는 분위기가 여전하다. 산천은 의구하되 나만 바뀌어 왔다. 김영하 작가의 글에 “한 번 간 곳을 또 가는 것이야말로 여행의 묘미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걸 볼 수 있어서가 아니다. 산천은 의구한데 오는 '나'만 바뀌어있다는 것, 내
주식투자를 하고 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암울한 경제전망이 방송을 타면서 보유주식이 반 토막이 났다. 현재는 좀 회복이 되었지만 아직도 ‘-20%’ 손실을 안고 있다. 이제 와서 손을 털고 일어서기도 난감하고 여유자금으로 하는 투자라 언젠가는 회복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지루한 시간 싸움을 하고 있다. 주식은 언제나 오르락내리락하고 그 방향성은 누구도 자신 있게 말을 못한다. 지금의 코로나19 사태가 주식시장에 메가톤급 대폭락이라는 폭탄을 터트릴지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이런 때 시의적절한 책 ‘대폭락(CRASHES)
임철순 언론인ㆍ전 이투데이 주필 아이들은 호모 루덴스(유희하는 인간)다. 아이들은 여러 가지로 논다. 요즘 아이들은 게임하고 카톡을 하면서 주로 비대면으로 혼자 논다. 하지만 1960년대의 아이들은 또래들과 만나서 놀고, 동물들과 놀고, 말장난 수수께끼에 노래 가사를 바꿔 부르며 놀았다. 장난감이 없던 시대의 아이들에게는 말이 장난감이었다. 그런데 숫자를 차례로 나열하는 말장난이나 끝말을 이어가면서 약간의 멜로디와 리듬을 붙여 소리치고 다니는 유희, 이런 걸 뭐라고 하지? 예를 들면 “애들 모여라, 애들 모여라. 여어자는 필요 없고
시대를 앞서간 명사들의 삶과 명작 속에는 주저하지 않고 멈추지 않았던 사유와 실천이 있다. 우리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자유와 사랑과 우정 이야기가 있다. 그 속에서 인생의 방향을 생각해본다. 이번 호에는 질투로 얼룩졌던 마티스와 피카소의 우정을 소개한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젊은 예술가들의 산실로 불리던 파리에는 다양한 국적의 보헤미안들이 몰려들었다. 스페인에서 온 풋내기 청년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1906년 그는 그곳에서 운명처럼 한 사람을 만난다. 바
보통 전쟁은 적대세력 간에 벌어지는데, 코로나19는 전 인류를 상대로 무차별 공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공격하는 의도가 무엇인지도 분명치 않습니다. 이 전쟁은 코로나19가 이겨 인류가 망하면 코로나19도 멸망하는 공멸의 전쟁입니다. 전 지구적 지혜로 대처해야 할 이 전쟁에서 인간의 단합을 방해하기라도 하려는 듯이 코로나19는 사람 사이는 물론 나라 사이를 단절시키고 있습니다. 학교와 교회와 공항의 문이 닫히고, 올림픽이 연기됐습니다. 공장이 문을 닫아 실업자가 쏟아집니다. 한국에서는 5000만 명의 전체 인구가 마스크를 쓰는, 단군
가정의 달 5월. 예년 같으면 휴가를 이용해 가족여행을 계획했겠지만, 올해는 쉽지 않은 분위기다. 멀리 떠나지 못하는 아쉬운 마음, 국내에서 즐길 수 있는 호텔 패키지로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건 어떨까? 사진 각 사 제공 ◇ 프라이빗 손주 돌잔치 ‘패밀리 게더링’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은 최상위 객실에서 돌잔치도 열고 휴식도 취할 수 있는 ‘패밀리 게더링’ 패키지를 진행한다. 10인 기준 게더링 식사 및 파티 후 남산프레지덴셜 스위트 객실에서의 1박과 그라넘 다이닝 라운지에서의 조식 혜택이 포함된다(10인 기준 540만 원).
● Exhibition ◇ 프렌치 모던: 모네에서 마티스까지, 1850-1950 일정 6월 14일까지 장소 고양아람누리 아람미술관 미국 최초로 인상주의 전시를 열었던 브루클린 미술관의 유럽 컬렉션 중 59점의 대표작을 만날 기회다. 이번 전시에서는 19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의 프랑스 모더니즘 예술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폴 세잔, 마르크 샤갈, 앙리 마티스, 클로드 모네 등 총 45명 작가의 작품들을 풍경, 정물, 인물, 누드 등 4개의 섹션으로 구성했다. 각 작품의 의미와 특성을 통해 모더니즘 전반에 걸친 미술사의 맥락을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전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 마음만 동동 구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이번 호에는 박형숙 소설가가 편지를 써주셨습니다. 당신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2년 전 봄날의 어느 오후입니다. 그전까지는, 미안하지만, 당신을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요즘에 당신 같은 손님은 희귀하지도 않아서 쉬이 오간다는 소식도 건성으로 들었을 뿐입니다. 정기건강검진 후 여의사가 내민 진료의뢰서에는 당신을 암시하는 문구가 있었지요. 담담했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수술
겨울에 만나는 썸머 크리스마스, 상상만 해도 마음에 낭만이 밀려들어 오지 않는가. 지난겨울에 하와이를 다녀왔다. 전 세계를 펜더믹으로 몰아넣은 코로나19가 퍼지기 전이다. 12월의 썸머 크리스마스, 푸른 잎사귀들 사이로 크리스마스트리가 반짝거렸다. 반바지에 티셔츠 하나를 걸치고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캐럴을 허밍 하듯이 따라 부르는 이들은 삶에 여유로운 순간을 선물하려는 하와이 여행자다. 발길 닿는 대로 유유자적, 오하우(Oahu) 일정이 길지 않아 오하우 섬에만 머물렀다. 특별히 하와이다운 관광을 한 것은 아니었으나 해가 뜰 무렵
데뷔 45년차 가수 혜은이의 파란만장한 인생사가 공개된다. 오늘(29일) 밤 10시에 방송되는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는 무대에선 그 누구보다 화려했지만,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던 혜은이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1975년 ‘당신은 모르실거야’로 데뷔해 국민 여동생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혜은이는 2년 만에 ‘당신만을 사랑해’로 가수왕에 오르고, CF 모델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등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혜은이는 무대 위 화려한 조명 아래서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다고 고백한다. 그녀는 아버지를 대신해 집안이 가장이 됐고, 온갖
모든 예술가는 '돌+아이'여야 작품이 나온다고 믿는 사람 중의 하나다. 그렇지 않고서야 평범하고 멀쩡한 정신으로 어떻게 그 위대한 예술작품들을 창조할 수 있단 말인가? 위대한 ‘돌+아이’ 중의 하나인 툴루즈 로트렉 전시회를 보러 갔다. 한국에서는 처음 열린다는 로트렉 작품 전시회. 물랑 루즈의 작은 거인이라는 타이틀로 열리는 로트렉 전은 예술의 전당에서 오는 5월 3일까지 열린다. 최근 미술계에 정착된 도슨트 해설도 풍성하다. 특히 젊은 관객들을 몰고 다녀 도슨트계의 아이돌로 불리는 정우철 도슨트의 해설 시간대에 맞춰 입장을 기다리
춥지 않은 겨울이었습니다. 그렇다 해도 겨울은 겨울이어서 추위를 견디지 못해 숨을 죽였던 풀들이 봄이 되니 새싹을 돋우고 마침내 찬란하게 꽃을 피웠습니다. 나무들은 움을 돋아내더니 곧 신록을 우거지게 했습니다. 참 좋습니다. 올봄은 황사조차 심하지 않아 더 봄이 봄답습니다. 그런데 이 봄을 누리질 못합니다. 누리기는커녕 꽃을 찾아 예쁘다는 탄성조차 낼 수 없습니다. 봄바람을 쐴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혼자서도 그렇거니와 여럿이서는 감히 꿈도 꾸지 못합니다. 이제 봄은 없습니다. 있어도 없습니다. 아니, 옛날의 봄은 온갖 그때의 알
세월이 참 쏜살같습니다. 화창한 봄 가곡 ‘동무 생각’을 부르던 누이들 얼굴엔 어느덧 주름이 깊게 파이고 흰머리 가득한 할머니들이 되었습니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던 들녘을 나비처럼 사뿐사뿐 날아다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설익은 앵두처럼 풋풋했던 황혼의 누이들이 가만가만 속삭입니다. “꼭 신설동에서 청량리 온 것만 하지?” ― 유자효의 시 ‘인생’ 중에서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 온 산이 풀빛으로 물들어가는 강원도 삼척의 고갯길을 지나다 갑자기 들려오는 웅장한 교향악 소리에 멈춰 섰습니다. 그 옛날 누이들이 입을 모아 합창하던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