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3년 전 일이다. 그해에 작은 딸이 마침내 취업을 했는데 그동안 애쓴 엄마에게 보답을 한다며 함께 홍콩 여행을 가자고 했다. 필자도 내심 따라나서고 싶었지만 직장에 얽매어 있던 터라 오붓하게 모녀간의 여행을 즐기라며 응원했다. 걱정하는 아내에게는 자신만만하게 "괜찮아, 염려 말고 잘 다녀와"라고 했다. 하지만 아내와 딸이 여행을 떠난 날 당장 저녁밥과 국 끓일 일이 걱정이었다. 세탁기와 난방기 작동법, 화초에 물주기 등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들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필자가 가사 무능력자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딸내미와
그간 전철을 탈 때 ‘정기권’을 이용했었다. 한 달 동안 60회 사용할 수 있고 5만5천원이다. 날짜로 30일이 지나거나 횟수로 60회가 되면 재충전해야 한다. 단 서울에서만 사용할 수 있고 서울을 벗어나면 추가 요금이 나간다. 2회 사용 정도로 빠져 나간다. 서울 밖에서 서울로 들어 올 때도 사용할 수 없다. 버스 환승도 안 된다. 각 전철역 사무실에서 기본요금을 받고 발급해 주는데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정기권을 쓴 이유는 한번 탈 때 917원 꼴이라 싸다. ‘티머니교통카드’를 사용하면 기본요금이 1,250원이다. 거기에 거
는 7년 반 동안 전 세계 87개국 95,000km를 자전가로 달린 일본의 이시다 유스케가 쓴 책이다. 1969년 생으로 대기업에 잘 다니다가 뜻한 바 있어 1995년 회사를 퇴사하고 자전거 여행길에 나섰다. 원래 3년 계획으로 여행길에 나섰는데 여행의 재미에 빠져 2배 이상의 기간이 걸린 것이라고 했다. 걷는 것보다야 나았겠지만, 자전거로 세계 일주를 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것도 혼자였다. 때로는 삭막한 사막 길을 혼자 자전거로 달려야 했고 주로 텐트를 치고 잤다. 강도를 만나 돈을
늘 함께하려고 남편과 혼인서약을 했고 언제까지나 함께하는 줄 알고 살았던 적이 있다. 신혼 무렵엔 남편이 출장만 가도 허전했고 하루만 지나도 보고 싶었다. 요즘처럼 봄꽃이 눈부실 때는 같이 봐야 하는데, 집안 모임에 같이 가야 하는데 하며 남편의 부재를 아쉬워했다. 창밖으로 아스라이 한 점 비행기가 날아갈 때면 그가 보고 싶어져 가슴이 저릿해지기도 했으니 내게도 분명 풋풋한 시절은 있었다. 하지만 누구에게든 한가할 틈 없도록 희로애락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그래서 예기치 않은 변화무쌍한 일상들이 이어지고, 인간은 도전하듯 주어진
“거기, 아무 것도 없어” 공주와 부여, 익산 일원의 백제역사유적지구 팸투어를 간다는 말에 지인이 한 마디 툭 내뱉었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가방을 메고 출발하는데 김빠지는 소리였다. 그러나 공주 공산성에서 시작해 공주와 부여 일원을 둘러보자, 지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짐작이 됐다. 기원 전 18년, 고구려에서 쫓겨난 비류와 온조가 한강유역 위례성에 세운 백제는, 고구려의 남하로 한성을 내주고 웅진(공주)으로 쫓겨 내려갔다가 사비(부여)에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지만, 결국 나당 연합군의 공격을 멸망하고 만다. 패배의 역사로 얼룩진 백
한 해 후배인 명희는 눈은 샛별같이 빛났고 코가 오똑한 예쁜 소녀였다. 그러나 그 애는 골수염으로 다리를 절었다. 노래를 끝낸 그 애에게 선생님들과 우리들은 가엾어서, 동정심으로 ‘잘했다’고 칭찬해주며 손바닥이 따갑도록 박수를 쳐주었다. 그러자 그 애는 눈치 없게도 정말 자기가 잘해서 칭찬해주는 줄 알고 거푸거푸 자기만 계속 노래를 부른다고 하여 그 애를 보기가 참으로 딱했고 선생님들 뵙기도 민망했다. 그날, 명희가 소풍을 따라올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조용민 선생님 덕이었다. 가장 어린 나이에 속하면서도 병마와 싸우느라고 가엾
“안전벨트 꼭 매세요. 출발합니다.” 2017년 총동문회 상반기 안보 탐방을 진해로 떠난다는 말에 얼마나 들떴는지 잠을 제대로 못 이루고 뒤척이다 일어나 탐방 준비를 했다. 일 년에 두 번 탐방이 있지만 매번 함께하지 못해 아쉬웠는데 어린 시절 수학여행 떠나는 기분으로 버스에 몸을 실었다. 들떴던 마음과는 달리 긴 여행이어서 슬슬 허리가 아파오고 몸 여기저기가 결려올 때쯤 협력국장이 팔을 걷고 앞으로 나가 마이크를 잡았다. 앉아서 할 수 있는 풍선게임과 각종 레크리에이션이 시작되자 우리는 친구들과의 수학여행을 떠올리며 깔깔거리며
"멀리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이제 못 와?" “네, 늘 건강하시길 기도할게요. 방구 어르신은 술 즐기실 만큼만 드시구요. 쌕쌕이 어르신 우리 경로당 위해 공원청소 건강 위해서라도 계속해주시구요. 녱녱이 할머니 우는 소리 그만하시고 그동안 맛있는 점심 고마웠어요. 욕쟁이 할머니 언제 다시 와도 그 욕 들려주셔야 해요. 타짜 할머니 고스톱 바닥 쓸어가기 기술 재미있었어요.” "우린 어떡해~" 한사코 섭섭해하시는 투박한 손을 뿌리치고 나오는 필자 마음 역시 무너진다. 화요일: 구룡마을 물품 배분 목요일: 경로당 두 곳 배분
싫증을 잘 내는 사람들이 유행을 만든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참 변화무쌍하다. 요사이 스키니와 통바지가 다시 유행이다. 필자가 대학 1, 2학년 때 꽉 끼는 바지와 통바지가 유행했었다. 외출할 때면 가끔 듣는 소리가 있었다. 스키니를 입으면 “그 바지는 입고 꿰맸니?”라는 말을 들었고, 통바지를 입으면 “동네 다 쓸고 다니겠다”라는 말을 들었다. 일정한 주기로 유행은 되풀이된다. 이에 따라 화장법도 진화해가고 있다. 미의 관점이 바뀌는 것이다. 겉에 걸치는 옷뿐만 아니라 몸매의 기준도 바뀌었다. 필자가 어렸을 때는 통통하고 배가
아내는 뭐든지 ‘모아두는 습관’이 있다. ‘모아두는 습관’은 ‘버리지 못하는 습관’과 동의어다. 우리 집은 현관 신발장에서 거실, 그리고 안방에서 아이들 방까지 온통 짐이다. 거실 책꽂이와 장식장에는 책과 서류, 장식품, 각종 필기구, 골동품, 술 등이 빼곡하다. 방에 있는 옷장을 열면 숨이 막힐 정도로 옷이 빽빽하게 걸려 있다. 서랍에도 더 이상 뭐를 넣어둘 공간이 없다. 압권은 냉장고다. 김치냉장고와 두 대나 있는 냉장고 안은 빈틈이 없다. 냉동실에 꽝꽝 얼어 있는 것들은 고기인지 해물인지 구별도 잘 안 된다. 돌덩이처럼 생긴
신접살림을 따로 차려 살던 맞벌이 아들 내외가 아기가 태어나자 혼자 사는 시어머니 집으로 들어왔다. 당연히 손자 보는 일은 시어머니 몫이 되었다. 손주가 자라서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날 한눈판 사이에 손자가 의자에 부딪쳐 작은 멍울이 생겼다. 시어머니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며느리가 퇴근하자 손자가 의자에 부딪쳤던 일을 이야기했다. 그 순간 며느리의 손바닥이 시어머니의 뺨을 후려쳤다. 갑작스럽고 황당한 일에 시어머니는 어이없어하며 꾹 참았다. 화를 속으로 삭이고 있던 시어머니는 밤늦게 아들이 집에 오자 자초지종을 말
1978년, 필자는 아이 둘을 데리고 남편을 따라 영국으로 갔다. 동경 경유, 알래스카에서 기름 보충, 그리고 비행기를 갈아타느라고 드골공항에서 두 시간이나 기다려야 해다. 그곳에서 만국 인간박람회에 온 듯 온갖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을 봤다. 우물 안 개구리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당시 필자는 호기심이 철철 넘치는 눈으로 다가온 동전 수집가 프랑스 꼬마에게 우리나라 동전을 설명하며 챙겨주기도 했다. 일본은 알면서 코리아는 전혀 몰라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나라라고 간단히 말해줬다. 히드로 공항에 도착해 짐을 찾아
한동안 BBC에서 제작된 이란 요리 프로그램을 즐겨 본 적이 있다. 개구쟁이처럼 생긴 그의 젊은 팔뚝에서는 청춘의 힘이 느껴졌고, 빠른 손놀림으로 요리하는 모습을 바라만 봐도 즐거웠다. 그렇게 만들어내는 요리를 보면 당장이라도 따라 하고 싶어지곤 했다. 영국의 천재 요리사로 불리는 제이미는 영국 요리의 이미지 개선으로 국위선양을 한 공로로 영국 여왕으로부터 훈장도 받았다. 또 요리사로서 영국의 어린 학생들의 학교 급식 개선을 위해 앞장서는 모습도 보여줬는데 그의 직업적 사명감의 표
인간의 심리는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일전에 친구들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다. 친구 A는 10여 년 전 남편 사업이 기울어져 그동안 어렵게 살아왔는데 최근 재기에 성공해 친구들이 모두 축하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A의 오랜 친구이며 유독 A의 어려움을 걱정하고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던 친구 B가 마지못해 함께 축하했지만, 표정에는 혼란함이 역력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흔쾌히 축하하지 못하는 마음이 이해되지 않아 이런저런 말을 걸어보다가 한 가지 단서가 감지되었다. 그 마음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아마도 상실감이 아닌가 추측되었
점심을 먹은 후에는 모두 빙 둘러앉아서 수건돌리기 놀이와 ‘어, 조, 목 놀이’도 했다. 어, 조, 목 놀이는 리더가 종이방망이를 들고 다니다가 한 사람을 지목한 후 어, 조, 목을 몇 번 되뇌다가 ‘어’ 하면 제한된 시간 안에 재빨리 물고기 이름을 대야 하며 ‘조’ 하면 새 이름을, ‘목’ 하면 나무 이름을 대야 한다. 3초 안에 이름을 말하지 않으면 종이방망이로 한 대씩 얻어맞았는데 엉겁결에 ‘조’ 하면 “새!” 하거나 '목’ 하면 “나무!”라고 말하는 아이들이 있어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곤 했다. 당황한 가운데 터져 나오는 틀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