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 할 때 ‘내장산 단풍’만 떠오른다면 올가을엔 무성서원에도 한번 발길을 돌려볼 일이다. 지난해 한국의 서원 9곳이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의 서원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 서원이 발원됐다는 안동 지역 3곳을(소수서원, 도산서원, 병산서원) 거쳐 전라도로 넘어왔다. 정읍은 사실상 처음이었다. 25년 전, 서울역에서 마지막 기차를 타고 정읍에 내려 고창을 간 적이 있다. 마중 나온 친구 차를 타고 고창으로 넘어가는 길은 줄곧 산등선을 따라가는 도로였다. 그때 깊은 밤이었는데도 유별나게 환
장맛비가 오락가락하고 폭우와 폭염으로 주춤해진 일상이다. 그사이 해바라기는 벌써 피고 지고 있다. 길도 나지 않은 언덕을 오르기 전 백련이 가득한 연못을 지나는데 군데군데 남아 있는 수련이 생존을 알린다. 밭둑 위로 노랗게 해바라기 군락이 보인다. 풀섶 둑길을 걸어도 뜨거운 김이 훅훅 느껴지는 여름날이다. 조붓한 그 길을 따라 오른 언덕 위 넓은 밭에는 해바라기가 장마와 폭염으로 무참하게 축축 늘어져 있다. 마치 뙤약볕 아래서 처절하게 버티고 있는 모습이다. 광활한 벌판에 모두 함께 뒤섞여 피어 태생적으로 고독과 외로움이란 단어와는
오랜만에 꽃기타 모임에 나갔다. 꽃기타란 꽃피는 기타의 줄임말이다. 중년 이후를 즐겁게 보내자는 의미로 결성된 모임인데 구성원 중 기타를 잘 치는 분이 거의 무보수로 가르쳐준다. 처음엔 잘 따라 할 수 있을까 걱정하면서도 기타를 배우는 게 어렸을 때 꿈이라 참여했는데 벌써 2년이 되어간다. 열 명 넘는 인원이 기타를 치려면 꽤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 다행히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에는 방음이 잘되는 서울시50플러스 서부캠퍼스 공간을 이용했다. 그러나 코로나가 확산되고 캠퍼스 문이 닫히면서 우리는 기타를 메고 만나는 일이 없어졌다.
아내랑 말다툼을 했다. 문을 꽝 소리 나게 닫고 내 방으로 와 문을 걸어 잠그고 책상 앞에 앉았다. 싸움의 원인은 별것 아니었다. 잠시 마음의 안정을 도모할 시간이 필요했다. 기분이 나쁘면 TV를 켜거나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그렇다고 누구에게 전화를 걸어 수다를 떨 기분도 더더욱 아니다. 이럴 때 나만의 비법이 있다. 인터넷으로 바둑 게임을 한다. 바둑을 두는 시간만큼은 몰입이 되어 잡념은 포맷되고 머리는 리셋된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직장에 다니던 형님으로부터 바둑을 배웠다. 당시 형님 실력은 8급 정도 됐던 것 같
속리산 수학여행은 학창 시절 즐겨 찾는 여행 코스 중 하나였다. 법주사를 가려면 꼬불꼬불 12고개 길인 ‘말티재’를 넘어야 한다. 마치 용이 꿈틀대듯 휘어져 돌아가는 길이다. 버스가 아슬아슬하게 낭떠러지 길을 타고 돌 때면 ‘와’ 하는 탄성 소리와 함께 간담이 서늘하기도 했다. 그 말티재를 넘어 법주사 가는 길에 높은 벼슬을 가진 명물이 있다. 바로 천연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된 ‘정이품 소나무’다. ‘정이품송’(正二品松)으로 불린 유래는 이렇다. 세조 10년(1464)에 왕이 법주사로 행차할 때 타고 가던 가마가 이 소나무 아래를
영화 포스터의 멘트와 스틸 컷이 기대를 하게 했다. 일기예보에서는 연일 내리는 장맛비와 열대야가 더해져 습한 더위가 이어지겠다고 말한다. 고온다습한 8월 한여름, 머릿속 복잡하게 엉킨 일들을 그저 우두커니 방치하고 있자니 마음이 편치 않다. 문득 122분짜리 프랑스 코미디 영화가 눈에 들어왔다.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 기분을 좀 가볍게 해줄까 하며 VOD 버튼을 눌렀다. 수영장을 배경으로 울퉁불퉁한 몸매의 남자들이 수영복 차림으로 서 있는 포스터를 보니 여름을 위한 영화 같다. 편안하게 앉아 아무 생각 없이 웃음을 터뜨릴 준비를
나이 들어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나이 든 사람의 이미지가 썩 좋지 않기 때문에 신경이 쓰인다. 초라하지 않고, 좀 더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고 싶다. 그래서 읽은 두 권의 책이 ‘곱게 늙기’(송차선)와 ‘백 살까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이근후)이다. ‘곱게 늙기’는 모든 사람의 소망이다. 외적으로도 그렇지만 내면도 잘 가꾸어 곱고 품위 있게 늙어가는 것을 꿈꾼다. 저자 송차선 신부는 곱기 늙기 위해 갖추어야 할 덕목을 8가지로 정리해 들려준다. 마음을 비우고, 남의 말에 귀 기울이고, 겸손하라. 노인의 모든 품위는 겸손함에서
아이가 여행용 가방에서 사망한 '천안아동학대사건'과 4층 높이의 베란다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창녕아동학대사건'은 국민들로부터 “부모가 자식에게 이럴 수 있느냐?”는 공분을 샀다. 최근 비슷한 사건이 또 발생했다. 생후 3개월 된 아들이 운다고 유아용 손수건을 말아 입에 넣고 방치해 아기가 사망했다. 재판부는 “누구보다도 아이가 안전하고 행복하게 자랄 수 있도록 보호할 의무가 있는 친부가 단순히 울음을 그치게 하려고 손수건을 집어넣은 채 방치한 것은 매우 위험한 행위로 볼 수밖에 없다”며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단지 아이의 울음소리가
처음 그곳은 겨울을 지낸 황량한 벌판이었다. 생명이 살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노고지리가 높이 떠 봄을 알릴 즈음 흙더미 위로 따스한 기운이 감돌았다. 초보 농사꾼인 나는 서울 도심 한편에 손바닥만 한 땅을 얻어 주말농장 간판을 내걸었다. ‘그린 텃밭’(Green family garden). 욕심껏 씨를 뿌렸다. 알이 굵은 대저 토마토, 노랑 빨강 방울토마토, 청양고추와 아삭이고추, 파프리카, 오이, 가지, 땅콩, 딸기, 쑥갓, 근대, 아욱, 깻잎 등등 겨자씨만 한 씨앗들을 뿌리고 모종도 심었다. 가지는 씨눈을 중심으로 서너 쪽
My Dear 피노키오展, 아무런 정보 없이 가서 봐도 친근한 전시 제목이다.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진다는 말이 진실인 줄 알았던 어린 시절, 그래서 정직함의 중요성을 일찍이 알게 했던 이야기 ‘피노키오의 모험’. '피노키오'는 1883년 이탈리아 작가 콜로디의 동화로 탄생했고 우리에게는 월트 디즈니가 각색하고 제작한 '피노키오의 모험'이라는 애니메이션으로 더 익숙하다. 착한 목수 제페토 할아버지가 나무를 깎아 만든 피노키오 인형 이야기는 동화나 애니메이션뿐 아니라 영화, 연극 등 다양한 장르에서 다뤄지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지금껏
주식 앱을 설치하고 돈이 일한다는 의미를 알았다. 주식의 생리를 알기 위해 이리저리 호가창을 보다가 실감했다고나 할까. 엄밀히 말하면 숫자가 오르락내리락할 뿐이지만 그 숫자가 어디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희비가 엇갈리니 무시할 수 없는 숫자다. 이를테면 요망한 숫자다. 어쨌든 저 혼자 참 열심히도 일한다. 그렇다고 모든 숫자가 바쁜 건 아니다. 어떤 숫자는 정신없이 오르락내리락하다가 숨 고르기 하듯 헐떡대다 다시 달음박질치기도 하고 또 어떤 숫자는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고갯길을 넘듯이 아주 힘겹게 한 칸 한 칸 오르기도 한다
연밭에 들어서기만 해도 연못의 수온이 후끈하게 다가오는 여름이다. 더위가 시작되면 넓은 연밭 가득 피어나기 시작하는 연꽃들은 제각각의 색상으로 품위를 내뿜기 시작한다. 한여름 땡볕에도 그 미모를 발화한다. 대부분의 연못은 여러 군데로 구획되어 있다. 열대 수련이 모여서 피어나는 데가 있고 잔잔한 모습으로 노랑어리연이 고개를 들고 있는 못도 있다. 그밖에 여러 가지 희귀 연들이 물 위를 덮고 있다. 진흙 속에서도 청결함이 돋보이는 백련과 홍련이 탐스럽다. 부처님의 진리가 스민 연꽃이 힘든 세파 속에서도 아름다운 향기를 내뿜는다. 차츰
동기들과 춘천여행을 했다. 코로나19가 신경 쓰였지만 모든 활동을 멈출 수는 없다. 50+ 세대 열두 명이 4대의 차에 나눠 타고 춘천으로 향했다. 목적지까지 차로 이동하니 조심하면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이 가을처럼 푸르렀다. 춘천에 들어서기 바쁘게 그 유명한 닭갈비를 먹었다. 춘천에서 제일 맛있는 집이라는데 입맛이 다르니 각자 판단할 일이다. 우리가 간 곳은 2001년도 범죄 없는 마을로 선정된 곳이다. 마치 증명이라도 하듯 입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관광지도 아닌 이곳을 찾은 이유는 동기 중 한 사람의 지인
공제조합에서 조합원 각자의 생각을 묻는 설문지를 보내왔다. 큰 타이틀이 ‘당신이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이었고 구체적인 질문은 ‘삶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었다. 이번 설문에 응답하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뭔지를 알게 됐다.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먼저 학업과 자기계발에 대해 물었다. 우리 시대는 공고나 상고를 졸업하고 취업전선에 뛰어든 사람이 많았다. 직장에 뿌리를 내리고 자리가 잡히면 부족한 공부를 위해 야간 대학의 문을 두드렸다. 주경야독이라는 사자성어가 등댓불처럼 좋았다. 수업
올 2월, 대구신천지교회의 코로나19 집단 감염으로 나라가 시끄러울 때 친구가 남미 쪽으로 33일간의 장기 해외여행을 떠났다. ‘집 떠난 지 15일 차 칠레 산티아고 가는 길’이라며 사진 몇 장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볼리비아 우유, 소금사막의 정경, 콜로라도 국립공원 등 아름다운 영상도 보내왔다. 여행 22일째에는 아르헨티나 남극 빙하지대로 내려간다는 소식도 들었다. 뉴스에서 하루 종일 귀가 따갑도록 전해주는 ‘코로나19’ 상황에 겁먹고 있던 날들이어서 유유자적 지구 반대편을 여행하는 친구가 샘이 나도록 부러웠다. 그때까지만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