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27 (토)

문자의 주춧돌 위에 美의 사랑채를 짓는 건축가

기사입력 2021-07-12 08:00:08기사수정 2021-07-26 09:38

[브라보가 만난 사람들] 파주출판도시 명예이사장 이기웅

경기도 파주시 문발동(文發洞). ‘글이 피어나는 마을’이라는 뜻을 가진 이 동네는 예부터 문인을 많이 배출한 곳으로 유명했다. 이후 출판인들이 하나둘씩 모여서 하나의 도시를 이루고, 현재는 명실상부 한국 출판산업의 뿌리로 거듭났다. 파주출판도시를 기획하고, 반세기 동안 열화당의 대표이자 출판편집인으로 살아온 이기웅(82) 대표를 만나 지난 여정과 더불어 기획자로서의 철학과 책의 가치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파주출판도시 명예이사장 이기웅(브라보 마이 라이프)
▲파주출판도시 명예이사장 이기웅(브라보 마이 라이프)

21세기의 여명을 앞둔 1989년 젊은 출판인들은 새로운 시대로 한 발짝 더 나아가기 위해 ‘출판도시’란 청운의 꿈을 품었다. 그로부터 어언 3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끝내 그들은 꿈을 이뤄냈으며, 그 터전에서 새로운 세대는 또다시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최근엔 출판도시 기획자인 이 대표의 삶과 경험을 바탕으로 출판도시의 과정을 담은 책이 출간되기도 했다.

“제 삶과 경험을 토대로 출판단지의 과정을 쓰겠다고 했을 때 저도 흔쾌히 동의했죠. 책은 기록의 유산으로 가치가 있잖아요. 다만 책 표지에 제 사진을 쓴다기에 정중히 재고를 부탁드렸죠. 결국 출판사의 뜻에 따라 지금의 표지로 책이 출간됐지만요. 저자와 출판사의 뜻은 충분히 존중하지만, 제가 주인공이 된 것 같아 개인적으로 좀 민망해요. 출판도시는 제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이기 때문이죠. 단지 제가 한 일은 이사장으로서 순서상 맨 앞에 선 것일 뿐이죠. 가장 먼저 서 있다고 해서 같이 이룬 것을 제가 소유할 수는 없잖아요.”

그렇다면 책을 편집하던 편집자가 왜 도시를 기획하게 된 것이고, 어쩌다 맨 앞에 서게 된 것일까?

“말하자면 ‘공동성’의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서였죠. 이해관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가치를 함께 실현해보자, 그런 의기투합이 이뤄졌어요. 당시 출판산업의 체계가 엉망이었어요. 편집, 인쇄, 디자인, 유통 등 출판의 프로세스를 한곳에서 효율적으로 운영해서 더 큰 시너지를 얻기 위함이었죠. 산업의 체계를 조정하고 선순환을 만들면 만들수록 더 양질의 책을 만들 수 있다고 봤어요. 그런 차원에서 출판도시를 기획했고, 당시 주위 사람들이 공동성이란 큰 달구지를 우직하게 이끌고 가는 공공의 심부름꾼이란 소임을 제게 맡겨주셨어요. 첨엔 잘할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섰지만, 이왕 하기로 한 것이니 최선을 다해보고 싶었어요.”

▲파주출판도시(출판도시문화재단)
▲파주출판도시(출판도시문화재단)

편집은 나의 힘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순탄치 않았다. 파주에서 첫 삽을 뜨는 데까지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원래 부지는 파주가 아니라 일산이었다. 애초에 계획대로라면 일산출판단지가 됐을지도.

“한국토지개발공사(현 LH)가 땅값으로 터무니없는 가격을 불러서 일산에 자리를 잡으려고 했던 계획을 접고 지금의 문발리로 왔어요.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분하고 아찔해요. 근데 운명적이라고 할까요?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문발의 뜻처럼 책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어요. 이 일에 뛰어든다고 했을 때 열화당 직원들이 모두 말렸어요. 하지만 이 일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완수하기 위해 무진장 노력했어요. 그때 우리 직원들을 살뜰히 챙겨주지 못해서 그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제일 커요. 한편으론 말없이 묵묵히 따라주었던 이들이 고맙기도 하고요.”

그림자의 뒷면에는 빛이 있기 마련이다. 그가 출판도시를 기획하면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꼽은 것은 처음으로 들어선 건물인 ‘인포룸’이었다.

“출판단지 내 첫 건물이 인포메이션 센터로 지은 ‘인포룸’이에요. 독일의 포츠담광장에 있던 빨간 컨테이너 박스 형태의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영감을 받아 건축가에게 부탁했어요. 그 건물보다 더 멋있는 건물로 만들어달라고. 완공된 건물을 본 그날을 잊지 못해요. 의리 있는 소 얘기가 있어요. 자신을 호랑이로부터 지켜준 주인이 죽자 따라 죽었다는 소의 얘기예요. 소가 자신을 희생하면서 의리를 드러낸 것이지요. 남들에게는 많은 건물 중 하나겠지만, 제게는 남달랐어요. 출판도시를 만들면서 겪었던 곡절의 세월에 대한 보답이자, 저를 믿고 맡겨주고 도와준 모든 이에 대한 신의와 고마움이 그 건물에 담겨 있어요. 의리의 인포룸이라고 할까요?”

출판기획과 도시기획. 기획이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한 권의 책을 만드는 것과 하나의 거대한 도시를 만드는 것은 다른 일로 보였다.

“전혀 다르지 않아요. 출판편집자 경력이 오히려 가장 큰 힘이 됐어요. 책은 문자의 도시예요. 정교한 설계가 이루어져야 독자들이 길을 잃지 않죠. 기획부터 시작해 감리까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할 수 없어요. 책을 만드는 데 오탈자는 물론이고, 종이의 재질이나 크기, 색감의 상태 등 여러 가지로 고려할 것이 많아요. 편집자라면 시집은 시집답게, 학술서적은 학술서적답게 그 맥락과 목적에 맞게 편집할 줄 알아야 해요. 이 모든 것이 도시를 기획하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무엇보다 책과 건축, 모두 인간의 삶을 담는 그릇이죠. 담는 물만 달라질 뿐 그릇은 변하지 않는 법이에요. 그래서 건축가들과 상의할 때 ‘편집회의 하러 가자’고 그랬어요.(웃음)”

▲그는 열화당을 통해서 선교장의 정신을 이어나갔다(열화당)
▲그는 열화당을 통해서 선교장의 정신을 이어나갔다(열화당)

물려받은 DNA와 정직한 삶

그는 어쩌다 출판편집자가 된 것일까? “얼결에 됐지만, 그 결은 분명하다”라고 말했다.

“그 결은 선교장에서 체득한 것이죠. 선교장은 우리 조상이 대대로 터전을 잡은 곳인데, 사랑채인 열화당은 지금으로 말하면 사립도서관 같은 곳이에요. 잊을 수 없는 게 ‘만권의 서책’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책이 많았어요. 거기서 저는 심부름을 하면서 자랐죠. 고등학교 때는 서점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어요. 콧수염이 인상적인 사장님은 ‘사지도 않을 거면 뒤적거리지 말아라!’라고 말씀하셨죠. 뜨끔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책을 보다가 나오곤 했죠. 책을 사는 날엔 어깨를 당당히 펴고 들어갔고요.(웃음) 친구들은 무섭다고 안 가는데 전 무서워도 갔어요. 제게 책은 공기와 같은 것이었고, 편집자는 자연스레 제가 해야 할 일이 됐죠.”

1960년대 중반부터 편집자로 일했고, 1971년에 출판사 열화당의 대표가 된다. 그에게 출판사 열화당은 운명과도 같았다.

“선교장은 언어와 미술의 학교였어요. 열화당(悅話堂)은 도연명의 ‘귀거래사’ 구절에서 따온 것인데, 열화는 가까운 이와 정다운 얘기를 나눈다는 뜻이죠. 실제로 어른들은 상대의 얘기를 경청하면서 대화를 나누셨어요. 저도 그런 걸 본받고 싶었고요. 선교장 건물은 미학적으로도 정말 아름다워요. 하나의 작품처럼. 정교하게 건물을 만들었고, 문틀 하나 허투루 짜지 않으셨죠. 편집자로서 출판사 열화당을 통해 이런 정신을 이어가고 싶었어요. 미를 지향하되, 아름다운 언어의 가치를 발견하는 데 소홀히 하지 않는 일. 그게 열화당 대표로서의 소임이자 어른들이 물려준 DNA라고 생각했죠.”

책 ‘산의 기억’에 얽힌 일화를 통해 편집자의 자세를 엿볼 수 있었다.

“편집자로서 정직한 삶의 얘기를 좋아해요. 아름다움은 진실할 때 비로소 더 가치를 발휘하는 것 같아요. 이 책의 저자 김근원 사진가는 산악 사진으로 일생을 바친 분이에요. 산이란 게 얼마나 정직해요. 날씨란 변수에 그대로 영향을 받잖아요.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안개가 끼면 안개가 끼는 대로 고스란히 나타나죠. 3대가 덕을 쌓아야 일출을 볼 수 있다는 곳도 있고요. 정직한 산을 정직한 사람이 렌즈를 통해서 바라본 모습. 사진에 담긴 자연의 아름다움도 좋지만, 그 순수한 열정과 그가 겪었을 고생을 생각하니 눈물이 다 나더군요. 생전에 열화당과 작업하는 게 소원이라고 했는데, 그 소원을 이루어드리지 못해서 참 미안한 맘이 컸어요. 그때 제가 좀 덜 바쁘고, 그가 계속 졸랐다면 했을지도 모를 텐데. 지금이라도 아드님을 통해 그의 정신을 이을 수 있어서 참 기뻐요.”

▲파주출판도시 명예이사장 이기웅(브라보 마이 라이프)
▲파주출판도시 명예이사장 이기웅(브라보 마이 라이프)

‘어떻게’를 위하여

정직한 삶의 얘기에 귀 기울이는 그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이는 바로 안중근이다. 열화당 근처 다리의 이름을 응칠교로 지었으며, 준비 중인 영혼도서관의 명칭은 안중근기념 영혼도서관이다. 그에게 안중근은 어떤 존재였을까?

“일본에서 출판된 안중근 관련 기록을 번역해 엮으면서 장군의 내면세계에 감탄했어요. 부정한 것은 용납하지 않는 시대정신으로 일본 법정에서 제국주의 일본과 법정 투쟁을 벌이죠. 동양 평화를 꿈꾸던 뜻을 옥중에서 계속 집필함으로써 제국주의를 향한 ‘말’과 ‘글’의 투쟁을 홀로 하셨어요. 이상을 이론으로 남기지 않는 자세. 끝내 실천으로 완성하고자 하는 마음가짐. 그것이 제게 큰 울림을 줬죠.”

안중근 정신의 핵심은 공허한 이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행이었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책은 무엇이고, 그것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물어봤다.

“종이책 시장의 위기라고 하는데, 오히려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진정한 책을 만날 기회인 거죠. 디지털로 전환할 수 있는 건 빨리 전환하고, 정말로 가치 있는 책을 신중하게 기획해서 종이책으로 남겨야 한다고 봐요. 팔리는 예술을 하는 게 아니라, 가치를 남기는 예술이 필요해요. 가치란 말이 공허한데 개인적으로 삶의 진실한 기록을 담은 책이 가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해요. 현재 준비 중인 안중근기념 영혼도서관이 가치 있는 책에 깃든 저자의 진심을 모실 수 있는 곳이 되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공적으로는 열화당이 이제껏 단단히 지켜온 가치를 오랫동안 유지했으면 좋겠어요. ‘왜’도 중요하지만 ‘어떻게’를 고민하고 싶어요. 물론 시대에 역행하려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깨졌다는 이유로 주춧돌을 버리는 게 아니라, 주춧돌이 깨져도 어떻게 하면 그것을 보존할지 우선 고민을 해보는 거죠. ‘좋음’이라는 가치에 머물지 않고, 그 가치를 위해 ‘어떻게’ 실현할지 고민하고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제 삶의 기록을 열심히 정리하는 작업 중이에요. 쓰려고 30분만 앉아 있어도 몸이 피곤해서 힘들지만, 글로 정리하면서 제 삶을 돌아보고 싶어요.”

▲파주출판도시 명예이사장 이기웅(브라보 마이 라이프)
▲파주출판도시 명예이사장 이기웅(브라보 마이 라이프)

그가 열화당을 운영하면서 아름다웠던 장면 중 하나로 꼽는 것은 바로 콧수염 사장님과의 재회였다. 열화당을 운영한다는 소식을 듣고 강릉에서 그를 만나기 위해 온 것이다. 서점에서 책을 읽던 소년이 어엿한 출판사의 사장이 되는 시간 동안 젊었던 사장님은 백발의 노인이 됐다. 운영하던 서점을 정리하던 차에 그의 소식을 듣고 먼 강릉에서 그를 만나러 온 것이다. 그는 이 만남을 “데미안을 다시 만난 싱클레어”의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서점을 지키던 사장님처럼, 그가 책의 가치를 오랫동안 지키면서 달려올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아름다운 장면이 그의 삶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열화당은 선교장의 사랑채이자, 그가 지금껏 이룬 모든 것의 근간이었다. 선교장의 어른들은 말의 가치를 중요시했고, 말을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을 근본으로 여겼다. 만권의 책에 둘러싸인 곳에서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눌 정도로 책을 좋아하셨다. 그로부터 배운 정신을 토대로 그는 ‘열화당’을 반세기 동안 운영해왔다. 열화(悅話)의 뜻처럼 정다운 이와 얘기하듯 책을 통해 저자와 독자가 소통할 수 있는 아름다운 사랑채를 만들고 있었다.

실제로 그가 젊은 시절에 매료되었던 정읍의 고택이 다 쓰러져간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 고택을 출판단지 내의 부지로 옮겼다. 깨지고 닳은 주춧돌부터 시작해 기왓장 한 장 버리지 않고 그대로 문발리로 옮겨왔다. 깨진 기왓장을 버릴 수도 있지만, 그는 문화의 보존이란 이유로 절대 버리지 못하게 했다. 문틀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고 정교하게 틀을 짰던 선교장의 어른들처럼. 이제껏 그가 실천해온 삶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미술적(美術的)인 출판을 지향하며 오랫동안 정직한 삶의 언어를 발견하고, 이를 아름다운 한 권의 책으로 만들기 위해 헌신하고, 끝내는 모두가 함께 누리는 하나의 정신문화가 될 수 있도록 하나의 도시를 계획하고 완성했다.

검이불루(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 흔히 한옥의 미학을 일컫는 말로,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뜻이다. 문자의 ‘주춧돌’ 위에서 그가 지은 책이란 ‘사랑채’는 검소했으나 누추하지 않았고, 아름다웠으나 사치스럽지 않았다. 흔히 그를 책마을 연출가라 부르지만 그와 정다운 얘기를 나누며 잠시나마 엿본 그의 삶을 바탕으로 보건대, 그는 문자의 주춧돌 위에 美의 사랑채를 짓는 건축가였다. 그의 사랑채가 오랫동안 독자들과 열화의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바라며 마친다.

<이 기사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 2021년 7월호(VOL.79)에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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