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 시리즈] ④치매와 만나게 된 60대 남편의 이야기

기사입력 2014-03-10 07:19 기사수정 2014-03-10 07:25

고통의 입구에 선 나를 지탱시켜주는 것

“여보, 언제 와 있었어?”

아내가 의아하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한창 연애를 하던 시절, 서로가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었던 40년 전 그 시절의 순진하고도 반가운 눈동자를 하고서.

아내는 올해로 예순다섯 살이다. 똑똑한 수학 교사였던 아내를 같은 학교에서 처음 본 영어 교사였던 나는 첫눈에 반해 끈질기게 구애했고, 결국 결혼에 성공했다. 주변의 축복 속에 아들과 딸을 하나씩 낳았고 아이들은 잘 자라서 그들의 가정을 꾸렸다. 그때만 해도 우리 두 사람의 미래는 안정된 노후로 향해 갈 거라고 믿고 있었다.

불행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아이가 생기지 않아 노심초사하던 딸이 마침내 아들을 낳았던 해인 5년 전, 아내는 자꾸만 기억력이 감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똑똑하고 주변에 폐를 끼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아내였다. 아내는 스스로 먼저 치매가 아닌지 모르니 검사를 받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진단 결과, 알츠하이머병 초기라는 결과가 나왔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

무언가 무너지는 기분이라는 건 그런 것이리라. 치매는 완전 치료가 불가능하고 그저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나아가는 병 아니던가. 무엇보다도 주변에서 듣기만 하고 겪지 못한 병이기에,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다가올 것들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의연했던 건 되려 아내 쪽이었다. 자신이 그 갑작스러운 불행에 걸려 들었다는 걸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침착했다. 그리고 치매에 관한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환자가 어떻게 되는지, 어떻게 되어가는지를 책과 지인들을 통해 꾸준하게 알아냈고 그 내용들을 정리해서 나에게 알려줬다. 자신이 어떻게 될는지 알려 줄테니 그럴 때면 이렇게 해달라고. 그리고 매번 마지막으로 강조하는 말이 있었다. “나에게 말을 거는 걸 멈춰주지 말아달라”고.

치매란 걸 알게 되었을 때부터 치매를 막으려는 아내의 노력도 함께 시작됐다. 우선 혈관성 합병증을 막고 소화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식단부터 조절했다. 그리고 치매 치료와 함께 정기적으로 경보와 수영을 하기로 했고 머리를 잠들지 않게 하기 위해 영어를 배우고 그림을 그리는 등의 새로운 활동을 시작했다. 아내는 무척 진지했고 그 모든 일에 열성을 다했다. 그런 활동들에 나 또한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아내에게 힘이 되어주고자 했다. 아내를 위해 함께 경보를 하고 수영과 마사지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마침 영어는 내 전문 분야기도 했으니까. 아내는 잊어버리지 않으려는 것처럼 그런 나를 볼 때마다 “고마워”라고 말했다.

그러한 노력들이 아내에게 치매가 본격적으로 다가오는 걸 최대한 늦췄던 것 같다. 하지만 치매는 조금씩 그 마수를 분명하게 뻗어왔다. 무언가를 잊어버리거나 잃어버리는 일이 서서히 잦아졌고, 혼자 옷을 입거나 몸을 씻는 것을 힘들어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아내를 안타깝게 지켜 보면서 어떻게든 그 흐름을 되돌리려고 애썼다. 그러나 한계가 찾아왔다. 어느 날엔가 집으로 들어갔을 때, 아내는 조깅복을 입은 채 방 한가운데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나는 절망스러운 기분으로 겨우 입을 열고 뭘 하느냐고 물어봤다.

“여기 올림픽공원 아냐? 민이 아빠랑 같이 걷는 데. 그런데 이상해. 이상해서 못 뛰겠어.”

말을 끝내고 잠시 멍하니 있던 아내는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런데 아저씨는 누구야?”

▲ 치매부부가 앉아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사진=뉴시스

내가 지키고자 하는 가치, 소중함의 기억

이제부터 마음다짐을 단단히 해야 했다. 나는 모든 바깥 활동을 그만 두기로 했다. 이제부터 아내 하나만을 바라보는 생활이 되어야 했다. 아내가 했던 활동들을 모두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제는 위험할 수도 있는 것이기에,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선 안에서만 외부 활동을 하기로 했다. 도우미가 해주던 식단도 내가 손수 맡기로 했다.

아내는 자신이 좀 더 심각한 단계로 들어갔다는 걸 자각했다. 그리고 그걸 자각한 순간부터 아내는 그때까지보다 훨씬 더 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됐다. 나는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거듭 말했지만 막상 자신의 예상보다 빨리 닥치게 되니 아내 본인은 참기가 어려운 부분들이 있었던 것 같다. 아내의 혼란은 과거의 아내가 보여줬던 강인하고 똑바른 모습과는 다른, 초라해지고 신경질적인 아내를 불러 들이고 있었다. 그런 아내의 모습은 자식들을 당황스럽게 만들고, 자식들과 우리들의 연을 가늘게 만들었다. 그런 태도를 보이는 자식들을 보니 아쉽고 화가 났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부디 그 아이들이 자신들도 겪게 될지도 모를 일이란 걸 일찍 깨닫고 아내를 이해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아내는 합병증을 겪지 않았고 치매 환자들에게 닥치는 마비 증세를 보이지 않았다. 육체적으로 아내는 아직 건강한 편이다. 그러나 ‘아직 건강하다’는 사실은 치매라고 결정이 난 이상 아직 초기 단계라는 걸 알려주는 사실일 뿐, 희망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조바심이 떠오를 때마다 아내가 한 말을 한 번도 잊어버린 적이 없다. ‘자신에게 말을 거는 걸 멈춰주지 말라’는 말. 그 말은 언젠가 기억들을 다 잊어버리고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될지도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기도 했고, 그걸 막아달라는 간절한 호소이기도 했을 것이다. 나는 매번 그 말에 담긴 고마움에 대해, 그리고 아내가 그토록 버리지 않으려 애쓰는 과거의 기억들에 대해 깨닫는다. 그래서 나는 더욱 힘을 내서 말한다.

“응, 와 있었지.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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