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용석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 대표 미래학자다. 그는 초고령사회를 앞두고 우리가 얼마나 대비되었느냐는 질문에 “전혀 준비되지 않았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이어 “준비 없이 맞은 초고령사회의 세대 간 분쟁은 결국 노인 혐오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리는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초고령사회 진입, 위기이자 기회
초고령사회 진입은 저출산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출산율이 1.0명 미만인 유일한 국가로, 2023년 4분기 출산율이 0.6명대까지 떨어졌다. 여기에 고령화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2025년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 역대 정부는 2006년부터 인구 감소 대책에 400조 원에 가까운 자금을 투입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보진 못했다. 결국 우리나라는 인구구조의 급속한 변화를 겪으면서 생산연령인구 감소, 축소사회 도래, 초고령사회 진입 등 3대 위험 요인에 직면했다.
서용석 카이스트 교수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우리나라가 20년 전부터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가 되지 말고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자’고 하더니 초고령사회 퍼스트 무버가 되어 전 세계 관심을 받게 됐다”며 일침을 가했다.
이렇게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사실 저출산과 고령화로 대표되는 인구구조 변화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 세계가 처음 겪는 위기이자 동시에 겪는 메가트렌드다. 하지만 우리나라 외에 이렇게 빠른 속도로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국가는 전무후무하다. 대표적인 초고령사회 국가로 손꼽히는 일본도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가는 데 30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됐고, 프랑스는 무려 100년이나 걸렸다. 반면 우리나라는 17년 만이다. 정책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미처 대비하기도 전에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서용석 교수는 “고령화되고 있다는 것은 언론을 통해 많이 들어서 알고는 있지만 피부로 느끼진 못했을 것이다. 갑자기 맞이하게 된 현상으로 세대 간 분쟁이 발생하고, 결국 노인 혐오로 이어질 수 있다”라면서도 “부정적으로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 정치·경제·사회·교육 등에서 법과 제도, 시스템을 재설계한다면 미래 대한민국의 터닝포인트,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고령화를 피할 수 없다는 불편한 진실을 인정하고, 향후 인구구조 변화에 대한 전략적 목표를 ‘고령화 속도 완화’와 ‘우리 경제·사회 시스템이 충분히 적응할 시간’으로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축소사회 진입
고령화될수록 ‘연금은 고갈되고 생산인구가 줄면서 경제도 축소된다’는 내러티브(어떤 사건 등의 인과관계를 설명하고 예측하는 서사)가 근간을 이루고 있다. 정부에서 저출산과 고령화를 떼려야 뗄 수 없는 문제로 보고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출범시킨 것도 이 같은 이유다. 하지만 여전히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경제적 지원이나 가치 창출로만 연결하는 식의 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용석 교수는 “초고령사회 진입은 저출산 문제는 물론이고 재정, 일자리, 사회복지까지 모든 부분과 연결되기 때문에 단기간 성과에 집착하지 말고 중장기적으로 내다보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는 저출생·고령사회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대책 마련에 몰두하고 있지만, 인구구조의 새로운 변화에 우리가 어떻게 적응하고 대비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미비한 실정이다”라고 지적했다.
“저출산·고령사회가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그렇기에 출산율을 회복하고자 하는 노력보다 앞으로의 인구축소사회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출산·고령화 속도를 완화하면서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버는 것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비 인구 줄어도, 고부가가치 산업 가능해
그는 1인당 생산성 향상, 여성 인력이나 고령자의 경제·사회활동 참여 증진, 적극적인 기술 활용 등으로 일정 부분 만회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초고령사회가 된다고 해서 노동력이 반드시 부족해지는 것은 아니라고도 말했다. 기술을 활용할 경우 일자리를 대체하기보다 오히려 사람과의 협업을 확대해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서 교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고 무조건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거라고 본다. 인구구조 탓에 힘들어진 노동과 자본 등 전통적인 요소가 없어도 부가가치를 높이는 새로운 체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소비할 인구가 줄어들고 경제가 정체되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도 “제약·기계공업 산업 등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이동한다면 소비 인구가 줄어도 경제 규모는 더 커질 수 있고, 좀 더 윤택하게 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연금 수령 연령 단계적 조절
1880년대 독일 총리 비스마르크가 사회 붕괴를 막고 노인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회보장제도를 시행한 것이 ‘연금’의 시초라 할 수 있다. 이때 연금 수령 가능 나이를 65세 이상 고령자로 설정한 것을 UN이 그대로 준용하면서 우리나라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당시 독일의 기대수명이 50세가 채 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연령이다. 현재 우리나라 기대수명은 남성 80세, 여성 86세를 넘어 100세 시대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연금 수급 가능한 나이를 조절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연금 문제는 여러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쉽게 조절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서용석 교수는 “우리나라보다 먼저 고령화를 경험한 국가들은 단계적으로 조금씩 고령의 기준을 상향하고 있다”면서 “갑자기 상향 조정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장기적으로 조금씩 상향 조정해나가는 것이 현실적일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세대 보듬는 정책 필요
제2차 베이비부머 세대(1964~1974년생)가 60대에 접어들면서 앞으로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30~40%를 차지할 전망이다. 게다가 평균수명 연장으로 이제껏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엄청난 숫자로 85세 이상 초고령자의 급증이 예상된다. 결국 돌봄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것이다. 이에 정부의 힘만으로 급증하는 돌봄 수요를 감당할 수 없기에 커뮤니티로 구성된 지역사회가 일부 담당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국민연금 모수 개혁처럼 어떤 특정 세대가 다른 세대로 인해 손해 보거나 희생한다고 느끼면 사회적 불만과 이의가 확산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이에 서 교수는 “세대 간 자원분배에 영향을 미치는 국가와 사회 체계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출하고, 세대 간 형평성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다른 연령 세대에 공격적 태도를 보이게 된다”면서 “위기와 재난이 연쇄적이고 동시다발적으로 밀려오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혹시 일본 영화 ‘플랜75’(plan 75)를 보신 적 있나요? 허구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미래를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영화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 정부가 청년층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플랜75’ 정책을 통해 75세 이상 국민의 죽음을 적극 지원한다는 이야기예요. 즉 노인에게는 자살할 수 있는 자유를 주고, 청년의 노인 혐오를 잠재우는 거죠. 결국 노인의 수를 줄여 고령화를 막고자 하는 거예요. 이건 지속 가능한 방법이 아닙니다.”
그는 세대 간, 사회 간 소통과 협치가 중요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심지어 교육까지 모든 시스템의 전제는 인구가 계속 증가하고 경제가 성장하는 구조에 맞춰져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 그 반대로 가고 있으니 전제도 바꾸고 시스템도 바꿔야 합니다. 이번에 놓치면 더 이상 기회가 없을 거예요. 민첩하게 대응할 능력을 키우는 정책이 마련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