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30년차 배우 김법래, “지금이 빛나는 순간”

기사입력 2025-03-07 08:24 기사수정 2025-03-07 08:24

오징어 게임 시즌2로 세계적 관심… 무대 위에서 계속 사랑 받고파


올해로 데뷔 30주년을 맞은 배우 김법래는 노련한 뮤지컬 배우이자, 다양한 캐릭터로 분해 영화와 드라마에서 압도하는 연기력을 선보인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중저음 목소리와 귀여운 눈웃음이 매력적이다. 이토록 다채롭고 스펙트럼 넓은 세계를 가진 김법래의 초대.


오늘 화보 촬영 어떠셨어요?

이른 아침 촬영이고, 집이 멀어서 새벽 6시에 출발했어요. 그래서 ‘촬영 중간에 힘들면 어쩌나’ 싶었는데 괜한 걱정이었네요. 전혀 힘들지 않았어요. 생각보다 빨리 끝나기도 했고요. 재미있는 경험이었어요.


요즘 근황이 궁금합니다.

뮤지컬 ‘블러디 러브’*가 막 끝났어요.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쓴 공연이라 한 달 정도는 휴식을 가지려고 해요. 이후엔 드라마 촬영을 시작할 것 같아요. 잘 쉬어야 또 최상의 컨디션으로 작품을 할 수 있으니 지금은 최선을 다해 여유롭게 지내려고 노력 중이에요.

*뮤지컬 ‘블러디 러브’는 2월 16일 서울 공연의 막을 내렸다.



‘블러디 러브’의 드라큘라 역을 엄청 하고 싶어 하셨다고 들었어요. 그런 만큼 끝나서 아쉬움도 크실 것 같아요.

브람 스토커의 고전 스테디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인데요. 현대적인 감각으로 새롭게 재해석한 뮤지컬이에요. 원래는 3막까지 있는 작품인데 1막과 2막으로 나뉘고 전혀 다른 시공간으로 구성했죠. 그래서 기존의 ‘드라큘라’와는 완전히 차별화된 무대라고 할 수 있어요. 체코 원작 뮤지컬을 봤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가 없어요. 부정적인 충격이 아니라 ‘왜 지금껏 이 작품을 못 했지?’라는 충격이었죠. ‘이건 무조건 해야 한다’는 욕심이 생겼다고 할까요. 정말 목숨 걸고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스토리라인도 탄탄하고, 무대에서 폭발적인 에너지를 낼 수 있다는 게 너무도 매력적이었어요. 오랫동안 버킷리스트처럼 담아두던 역할을 하고 나니 시원섭섭하긴 해요. 하는 동안은 사실 체력 소모가 너무 커서 힘들었거든요. 오죽하면 오랜만에 제 공연 보러 온 지인들이 “55살에 무대를 어떻게 그렇게 뛰어다니냐, 목은 안 아프냐”며 놀랄 정도였다니까요. 그래서 회차 좀 적게 맡을걸 후회하기도 했는데, 막상 끝나니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싶어 아쉬운 맘도 들어요. 어쩔 수 없나 봐요.

그래도 드라큘라 하면 흔히 떠오르는 하얗고 장발인 데다 깡마른 이미지가 아니라, 김법래표 드라큘라를 정립할 수 있어서 아주 만족스러운 작품이었어요.(웃음)


예상하지 못한 멜로 연기에 주변에서 많이 놀랐다고 들었어요.

주변에서 “그 목소리로 로맨스가 되네?”라며 많이 놀렸죠. 드라큘라도 알고 보면 순정남인데 왜 놀랐을까요? 전 그게 더 궁금해요. 대중들도 제가 악역을 많이 했다고 생각하시더라고요. 거칠고 강한 캐릭터 때문이겠죠. 이런 제 모습을 처음 보셨겠지만, 저도 속이 따뜻한 남자랍니다. 그리고 정의로운 역할도 많이 했는데 약간 억울한 마음이 드네요.(웃음)



‘엄유민법’을 있게 한 ‘삼총사’가 인생작일까요? 아니면 간절히 원했던 드라큘라 역을 맡은 ‘블러디 러브’가 인생작인가요?

인생작이라… 굳이 인생작 하나를 꼽자면 저의 찐 인생작은 ‘노트르담 더 파리’예요. 초연의 콰지모토 역을 맡았는데요. 아이돌이나 티켓 파워가 있는 배우가 아니었음에도 매회 전석 매진을 기록했거든요. 무대에 서는 게 너무 행복하다는 걸 처음 느꼈던 것 같아요. 물론 말씀하신 대로 뮤지컬 ‘삼총사’를 하면서 ‘엄유민법(엄기준, 유준상, 민영기, 김법래)’이 생겼고, 지금도 형제처럼 지내는 세 사람을 만났으니 의미 있는 작품이고, ‘블러드 러브’도 제 버킷리스트를 이룬 작품이니 어찌 소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모든 작품이 소중하고 특별합니다.


중저음 보이스가 정말 매력적이에요.

지금이야 그런 평을 듣지만, 데뷔 초반에는 대본 리딩 현장에서 잘린 적도 있어요. ‘역이랑 안 맞는 것 같으니 얇게 내달라, 일부러 낮고 굵게 내는 거냐’ 등의 질책을 들으며 설움도 많이 받았어요. 목소리 좀 편하게 냈으면 좋겠다는 얘기도 많이 듣고요. 지금은 세상이 변해서 목소리 좋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제 장점으로 받아들이게 됐지, 전에는 완전 단점이고 콤플렉스였어요. 정말 많이 힘들고 고민스런 부분이었는데, 돌이켜 보면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없는 목소리니까 익숙하지 않아서 생긴 오해였다고 생각해요.



음반도 여러 번 내신 걸로 알고 있어요. 콘서트 계획은 없나요?

가수들도 마찬가지겠지만 개인 콘서트가 아니면 노래 부를 무대가 없잖아요. 음악방송도 거의 없어지고. 제 온라인 채널에서만 노래 부르고 홍보활동을 해요. 프로 가수가 아니니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한 거죠. 그래도 조회수가 76만 회 정도 되더라고요. 엄청난 숫자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최초로 일본에서 뮤지컬을 공연한 적이 있어요. ‘잭 더 리퍼’라는 작품이었는데 브로드웨이 뮤지컬보다 더 인기 있었던 걸로 기억해요. 그때 저도 좀 인기 있었고. 뮤지컬 한류의 시초랄까요?(웃음) 팬클럽도 생기고 한국 뮤지컬이 인기를 얻다 보니, 그 인연으로 일본에서 콘서트 요청이 와서 몇 번 했어요. 간혹 동남아나 해외에서 콘서트를 해달라고 연락이 온대요. 너무 신기해요. 우리나라에선 ‘엄유민법 콘서트’를 하니까 단독 콘서트를 하고 싶다는 마음은 없어요. 그 정도의 깜냥도 아닌 것 같고요.


‘오징어 게임’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김 대표가 죽는 장면이 너무 강렬했습니다.

‘생과 사를 오가는 캐릭터의 일촉즉발 순간을 생생하게 표현하며 극의 흐름을 쥐락펴락했다’는 평이 많더라고요. 감사하죠. 일부러 더 긴박한 분위기를 형성하려고 한 건 아닌데, 총구가 내 머리를 겨누고 있다는 상황에 몰입하다 보니 저절로 눈빛이나 표정이 나온 것 같아요. 근데 그 상황은 생각만 해도 너무 무섭지 않나요?


실제로 김 대표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다면, 똑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현생의 김법래는 김 대표와 아무리 같은 상황이라 해도 절대 못 해요. 할 수 없어요. 지켜야 할 가족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진짜 김 대표라면, 비슷한 상황을 100번 맞이한다 해도 똑같은 결정을 했을 거예요. 의리의 김 대표라서가 아니에요. 뭐랄까, 본능적으로 김 대표와 같은 선택을 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사채업자한테 의리가 어디 있어요. 그냥 한번 사는 인생이지.(웃음)


성악을 전공하고, 오페라 가수를 꿈꾸다 뮤지컬을 시작하셨어요. 그렇게 벌써 데뷔 30주년인데요. 오페라 가수를 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은 없나요?

전혀요. 학생 때 ‘라보엠’이라는 무대에 오른 적이 있는데, 당시 오페라는 가만히 서서 노래 부르는 거였어요. 그럼에도 전 학생 공연이니 다르게 하고 싶고 넘치는 끼를 주체하지 못할 때라 춤추는 장면을 삽입했는데, 그게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서울예술단에 입단해서 30년이 흘렀네요. 처음 입단했을 땐 힘들어서 많이 울기도 했는데, 선배들의 열정과 에너지를 보면서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연처럼 시작했지만 운명이었던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제 중년 배우가 되었어요. 과거에 비해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일단 성격이 많이 부드러워졌죠. 지금도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욱하는 면이 있긴 한데, 과거보단 덜해졌어요. 모난 돌이 깎이고 깎여서 둥글게 되듯이 제 성격도 그렇게 변한 것 같아요. 점점 사회화됐다고 할까요?(웃음) 주변 사람들도 많이 유해졌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성격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체력은 20대 때랑 현저하게 다르죠. 이 부분은 어쩔 수 없잖아요. 그래서 더 신경 써서 운동을 하려고 해요. 물론 술도 마시고 전자담배도 피지만 이 정도 체력을 유지하는 것도 운동 덕분인 것 같아요. 계속 무대에서 활동하려면 관리해야 하고요. 건강이 제일이니까. 보통 새벽 5~6시에 일어나 온몸이 땀에 젖을 정도로 운동해요. 운동으로 몸을 힘들게 만드니까 잡생각도 안 나고, 멘털 관리에도 도움이 돼요.



앞으로의 계획이나 도전하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요?

솔직히 배우라면 욕심이 똑같지 않을까요. 유명해지고 싶은 욕심, 내가 하는 공연이 호응이 좋고 흥행했으면 하는 욕심이요. 어떻게 만족이 되겠어요? 일단 11월부터 시작할 공연 준비 잘해서 무사히 무대에 서는 게 목표입니다. 이것도 국내 초연이라 진짜 잘 만들어서 좋은 공연으로 관객과 만나고 싶어요. 아주 오랫동안 무대에서 노래하는 김법래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선배님들이 무대에서 연기하다 죽고 싶다는 말씀 많이 하시는데요. 저도 똑같아요. 정말 죽는 날까지 무대에 서고 싶어요.


Bravo Question

나에게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은?

열정일 것 같아요. 무대에 서기 시작하면서 열정이 없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열정이 없었다면 데뷔 30주년을 맞는 배우 김법래는 없었겠죠? 힘들고 다 그만두고 싶었던 시기도 있었지만, 그 힘들었던 시기에도 잠깐 속상하고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자신해요. 동료 배우들이 이 험한 세상에서 잘 버텨야 한다, 잘 버티자고 얘기하는데, 그 버티는 원동력도 열정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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