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는 타계한 남편 B와의 사이에 1녀 3남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B의 타계 직후인 4년 전, A와 그 자녀들은 B의 뜻에 따라 별다른 다툼 없이 상속재산을 분배했고, 그 결과 A는 B와 거주하던 주택과 B가 남겨준 예금 중 약 30억 원, 원래 자신의 명의로 되어 있던 상가 1개를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A는 혼자 주택에 거주하면서 상가에서 나오는 임대료와 예금 이자 수입으로 별다른 경제적 어려움 없이 친구들과 가끔 여행도 다니는 등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여유 있는 노년의 삶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자녀들 또한 모두 효녀·효자라서 앞다투어 A를 방문하거나 전화로라도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는지 안부를 물었고, 종종 자신들의 집에서 며칠씩 A를 모시곤 했습니다.
A로서는 남부러울 것 없이 만족한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대략 2년 전부터 A는 예전과 달리 자신의 기억력이 자꾸 약해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나이 들면 건망증이 조금씩 생긴다는 친구들의 말도 있고 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가스불을 켜놓고 깜빡하는 바람에 냄비가 까맣게 그을리거나, 보관한 물품을 찾느라 한참 동안 집 안 곳곳을 뒤지거나, 친구들과의 약속을 기억하지 못해 실수하는 등 당황스러운 상황이 조금씩 빈도를 늘리면서 반복되었습니다.
그동안 자녀들이 걱정할까봐 말을 아꼈던 A는 결국 장녀를 불러 자신의 상황을 의논했습니다. 장녀는 A를 설득해 병원을 방문, 치매 검사를 포함한 각종 인지능력 관련 진료를 받았는데, 의사는 A에게 경증 치매 증상이 보인다고 진단했습니다. 평소 건강을 자신하던 A는 심한 충격을 받았고, 자녀들 또한 남들에게만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상황을 마주하면서 앞으로의 일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곧 A는 의사의 처방에 따라 치매를 늦출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자녀들은 예전보다 더 자주 A를 찾아뵙기로 의논했습니다.
A의 치매가 조금씩 더 진행되면서 상황은 변하고 말았습니다. 먼저 장남이 상가 명의를 자신에게 넘겨주면 상가를 안전하게 관리하면서 임대 수입을 A에게 드리겠다고 설득해 A는 상가를 장남에게 증여했고, 차남은 직접 관리하기 힘든데 너무 많은 예금을 가지고 있으면 위험하니 자신에게 맡기라고 종용하여 A는 25억 원가량을 차남에게 맡겼습니다.

뒤늦게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삼남은 형들이 주택까지 넘볼 수 있다면서 주택 명의를 자신에게 넘겨달라고 하여 A는 그렇게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장녀를 제외한 나머지 자녀들은 모두 A를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5억 원 정도의 예금을 제외한 나머지 재산을 A로부터 이전받았습니다. 당시 A의 치매 진행 정도에 비추어 볼 때 과연 A가 본인의 진정한 의사에 따라 자녀들에게 재산을 넘겼는지 의문이 남는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자녀들은 서로 비난하고 의심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고, A의 처지는 자녀들의 관심에서 점점 더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장녀는 자녀들이 직접 A를 모시는 데 한계를 느끼고 법원에 후견 개시를 청구했습니다. 법원은 A를 위한 후견인을 지정했는데, 재산을 파악한 결과 후견인은 남은 재산만으로 A의 생활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가능한 해결 방안을 모색 중이나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초고령사회에 접어들면서 연로한 어르신들은 치매라는 상황을 마주하고 처음에는 현실을 부정하면서 큰 충격을 받습니다. 이러한 충격은 자녀들도 마찬가지고,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했다면 그 충격은 더 오랜 기간 치매 어르신과 자녀들을 괴롭히곤 합니다. 그러다가 현실을 자각하면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함께 상의하면서 처지에 맞는 해결 방안을 찾아나서게 됩니다. 어렵사리 해결 방안을 찾아내고 상황이 어느 정도 안정되면, 이제는 생각하기 싫은 또 다른 난관이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고령의 치매 환자가 보유한 자산, 바로 ‘치매머니’ 문제입니다.
최근 보도를 보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조사 결과 2023년 기준으로 치매머니는 약 154조 원, 국내총생산(GDP)의 6% 넘는 규모에 달했으며, 향후 가파른 상승으로 2050년에는 약 488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습니다. 규모도 규모지만 치매머니와 관련된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이 범죄의 타깃이 되거나 자녀들 사이 분쟁을 유발할 수 있으며, 그 결과 치매 어르신의 생계 자체가 큰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우선 자녀들 사이의 분쟁과 치매 어르신의 생계에 타격을 줄 가능성은 앞서 본 사례에서 여실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부모의 인지능력에 문제가 없을 때 대부분의 자녀는 순수한 마음에서든, 상속을 기대해서든, 효성스러운 태도로 건강을 포함해 부모의 일상생활을 보살피며 정성을 다합니다.
그런데 치매 등 질병으로 부모의 인지능력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먼 일로만 생각했던 상속 문제를 피부로 느끼게 되고 부모를 향한 자신의 기여를 저울질하면서 급기야 다른 형제자매들이 부모의 치매를 틈타 부당하게 이익을 취하지는 않는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게 됩니다. 이런 지경이 되면 화목했던 가족관계는 깨지고, 정작 부모의 안위는 뒷전으로 밀려나게 됩니다.

치매로 인지능력이 약화되면 자녀들 외에도 평소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지인들, 심지어 간병인들 (대부분의 간병인은 헌신적인 태도와 노력으로 치매 어르신을 돌보고 있음을 알기 때문에 그분들의 명예를 훼손할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이 치매 어르신의 진정한 의사가 아님에도 부동산을 증여받거나, 금융거래를 위한 비밀번호와 인장 등을 확보하여 금융자산을 착복하는 등 범죄에 노출되는 경우 역시 간간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결국 치매머니의 문제는 치매 등 질병으로 인해 인지능력이 약화된 경우를 대비해 어떻게 재산을 보존하고, 그것을 토대로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할까 고민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 대책으로 신탁제도, 후견제도 등을 고려해볼 수 있지만,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것은 치매를 마주하기 전에 어르신 본인이 자신의 의사로 해결 방안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신탁, 특히 유언대용신탁은 요즘 신탁회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금융기관에서 상품화하여 판매하고 있습니다. 생전에 본인이 자산을 금융기관에 맡겨 그 수익으로 생활을 영위하다가, 본인 사후에 미리 지정한 수익자에게 미리 지정한 방법으로 자산을 이전하거나 수익을 귀속시키는 것입니다. 그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유언을 대신하는 기능이 있어, 사후 자산 처리에 관한 명확한 기준만 설정된다면 상속인들 사이의 분쟁을 최대한 예방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후견제도는 피후견인이 후견인과 미리 후견 계약을 체결해두었다가 치매 등으로 후견 개시 사유가 발생할 경우 법원의 확인을 거쳐 후견인이 후견 업무를 개시하도록 하는 임의후견, 친족 등의 청구에 따라 법원이 후견인을 선임하는 법정후견으로 구분됩니다. 법정후견은 다시 피후견인의 인지능력 정도를 고려한 후견인의 권한 범위에 따라 성년후견, 한정후견, 특정후견 등으로 구분됩니다. 후견이 개시되면 후견인은 피후견인의 대리인으로서 피후견인을 대신해 재산도 관리하고, 주거 지정 및 병원 입원 등 피후견인의 일상을 보살피는 업무를 수행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사망할 때까지 최대한 건강과 인지능력을 정상으로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앞날은 예측할 수 없습니다. 나에게도 언젠가 치매가 올 수 있다고 생각하고 미리 그 경우를 대비해 본인이 직접 준비할 필요가 있으며,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이 경우 생각할 수 있는 방안은 앞서 본 유언대용신탁(해당 상품을 판매하는 금융기관과 상담하여 결정)과 임의후견(변호사 등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신뢰할 만한 개인 또는 법무법인 등 단체를 후견인으로 정해 후견 계약 체결)이 있습니다.
이러한 대비 없이 치매 등으로 인지능력이 약화된 경우라도 배우자와 자녀 등 가족들이 특별한 분쟁과 반목 없이 치매 어르신을 잘 모실 수 있다면 특별한 문제가 없겠습니다. 하지만 가족 사이 불화로 그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면 불가피하게 가족 중 누군가가 후견 개시를 청구하여 법원으로부터 후견인을 선임받아, 후견인이 피후견인의 신상과 재산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치매머니의 해결 방안으로 치매 공공후견인제도, 공공신탁제도 등도 거론되고 있지만, 활성화를 위해서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어 보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첫째는 건강, 특히 인지능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스스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고, 둘째는 혹시나 마주할지 모르는 치매를 대비해 자신의 의사와 계획으로 필요한 준비를 다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준비가 미흡한 상태에서 치매 어르신의 재산과 신상 보호가 필요하다면 법정후견제도를 이용하는 것이 늘어나는 치매머니의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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