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러한 업계의 폐단은 결국 공급에 비해 정상적으로 모델을 수용할 수 있는 시장 수요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시니어들의 자아를 찾고 자존감을 높이고자 하는 욕구와 노력을 비난할 수 없다. 평생을 가족과 남을 위해 희생한 인생의 황혼기에 시니어모델 데뷔는 이들이 주인공이 되는 첫 경험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니어모델 지원자 중 상당수가 가정주부인 것도 이 때문이다.
꿈 대신 의상을 파는 교육기관들
“해외 유명 패션쇼에 참가할 수 있습니다.” 많은 시니어모델 지망생들이 이 한마디에 고액의 비용을 지불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해외 패션쇼 참가를 약속한 일부 교육기관들은 수백만 원의 여행비를 받고도 관객도, 클라이언트도 없는 ‘허울뿐인 쇼’를 제공한다. 참가자들은 결국 자신의 꿈을 산 것이 아니라 값비싼 해외여행과 낡은 옷을 입는 기회를 산 셈이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있다. 시니어모델 대회 참가자들은 주최 측과 협력 관계인 의상업체의 고가 의상을 강요당한다. 대회 결선 무대에 오르기 위해서는 최소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100만 원 이상의 드레스를 입어야 한다. 일부 브랜드는 쇼피스를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구매를 전제로 한 룩북 단위의 고가 스타일링을 요구하기도 한다. 대여라기보다 판매에 가까운 행태다. 이 같은 현실은 대회의 목적이 모델을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의상 대여를 통한 이익 극대화에 있음을 드러낸다.
선발대회의 유혹, 표를 사야 1등이다?
시니어모델 산업의 또 다른 병폐는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선발대회의 불공정성이다. 일부 대회는 ‘대중 투표 시스템’을 도입하며 공정성을 강조하지만, 현실은 반대다. 투표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포인트가 필요한데 이 포인트는 돈으로 살 수 있어, 사실상 현금으로 표를 사는 것과 다름없다. 실제로 1등을 하려면 천만 원이 넘는 금액을 쓴다는 이야기가 들릴 정도다.
더 큰 문제는 우승자에게 주어진다는 부상이다. 해외 패션위크 참가나 해외 화보 촬영을 약속하지만, 실상은 국내 휴양지에서 진행하거나, 현지 패션계와 무관한 행사에 초대하는 방식으로 바뀌는 일이 빈번하다. 심지어 패션쇼라면서 브랜드 쇼룸도 아닌 임대홀에서, 언론인이나 바이어 한 명 없이 ‘공연’처럼 꾸며지는 경우도 있다. 부상을 믿고 노력한 시니어모델들의 기대는 허탈감과 상처로 돌아온다.
최근엔 과거의 영광을 지닌 일부 디자이너 브랜드마저 직접 시니어모델을 겨냥한 수익 사업에 뛰어들었다. 명성 있는 디자이너 브랜드가 개최하는 쇼에 서게 해주겠다고 유혹하지만, 실상은 신작이 아니라 창고에서 꺼낸 재고 의상을 비싼 대여료를 받고 제공하는 식이다. 패션 브랜드가 시즌 오더나 프레젠테이션 없이 단순 런웨이만 운영하고, 그마저도 과거 의상으로 채우는 것은 업계 기준에서도 납득하기 어려운 방식이다. 의상에서 담배 냄새가 나거나, 해외 쇼핑몰에서 똑같은 의상이 발견돼 ‘공장 패션쇼’가 의심되는 사례까지 나오며 브랜드의 명성을 믿고 투자한 모델들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이들 브랜드들의 명성을 기억하는 소비자는 결국 ‘시니어’ 뿐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서글픈 일이다.
문제의 본질은 ‘공급 과잉’이다
시니어모델 산업에서 이와 같은 폐단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시니어모델을 꿈꾸는 이들의 수는 급증하고 있지만, 그들을 정상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실제 무대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수요 대비 공급이 과도하게 넘쳐나면서 이들이 설 자리가 부족해 정상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작동하지 못하는 시장이 됐고, 결국 시니어모델의 배출 자체를 매출로 연결시켜야 하는 기형적 구조가 만들어 진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 해답은 결국 시니어모델이 설 수 있는 진짜 무대를 늘리는 데 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모델료보다는 현실적인 활동의 기회다. 한편 시니어 대상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스타트업과 중소기업들은 마케팅용 자료를 만들기 위한 모델료가 부담스럽다. 이 두 주체를 연결하는 플랫폼이나 시스템이 만들어진다면, 양측 모두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다.
이제 시니어모델 산업은 꿈만 팔 것이 아니라 현실을 팔아야 한다. 화려한 환상보다는 현실적인 기회를 제공하고, 표면적 과시보다는 실질적인 시장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진정한 시니어모델 산업의 성장은, 환상을 좇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인정하고 그 현실 위에 올바른 구조를 만드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