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日 시니어 비즈니스 시장 키워드는 ‘자립’

기사입력 2025-07-04 09:03 기사수정 2025-07-04 13:20

[이준호의 시니어 비즈니스 인사이드 ⑥]

2025년도 상반기가 훌쩍 지났다. 시니어 비즈니스 산업 분야도 다양한 변화를 겪고 있다. 그 중 일본 내 시니어 비즈니스 업계의 변화는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일본의 실버산업은 그 역사가 깊지만, 철학보다는 기술에 집중한 측면이 있었다. 노인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것 보다는 노인에게 필요한 기술이나 상품이 무엇인지에 더 고민했다. 일종의 ‘아이디어 상품’이 많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 일본이 변하고 있다. 최근 일본 내 동향을 살펴보면 단지 ‘노인 대상 상품’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한 어떤 서비스인가’를 정의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올해 상반기에는 ‘엑티브 시니어’, 그 중에서도 ‘아껴 쓰는 시니어’와 ‘기술에 친숙한 시니어’라는 키워드가 동시에 부상했다. 이는 단순히 ‘나이 든 사람’에 대한 접근이 아니라, 자립적이고 능동적인 고령자를 하나의 소비 계층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제 '늙은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소비자'로서의 시니어를 보고 있는 것이다.

합리적인, 활발한 삶 추구하는 노인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운영하는 비즈니스·마케팅 전문 미디어 크로스트렌드가 올해 발표한 ‘2025 상반기 트렌드맵’에서 가장 주목받은 키워드 중 하나는 바로 ‘アクティブシニア(액티브 시니어)’였다. 이들은 여행과 문화활동, 스포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건강하고 자율적인 고령자 집단이다. 시니어 골프 클럽, 전문 가이드가 동행하는 소도시 여행 패키지, 요가·댄스 교실 등이 이 시장을 겨냥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마냥 ‘풍요로운 노년’을 보내는 것은 아니다. 같은 보고서에서 ‘節約志向(절약 지향)’ 역시 주요 소비 트렌드로 꼽혔다. 일본 시니어 소비자들은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은 서비스를 선호하며, 포인트 적립과 정액제 구독, 중고 시장까지 능숙하게 활용한다. 과거의 ‘노후 여유층’ 이미지와는 달리, 현재의 시니어는 ‘돈을 쓸 줄 알지만, 아낄 줄도 아는’ 소비자로 변화하고 있다.

AI 시대를 사는 ‘레이와 시니어’

최근 일본의 유행어 중 하나는 ‘레이와 시니어(令和シニア)’다. 레이와는 현재 일왕의 연호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디지털에 익숙하고 능동적인 고령자 세대를 말한다.

과거엔 스마트폰이나 온라인 쇼핑은 ‘젊은 세대의 전유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일본 시니어의 일상 도구가 됐다. 일본 ‘레이와 시니어 연구소’에 따르면, 60대 이상의 인터넷 검색 이용률은 80% 이상, 스마트폰 보유율은 90%를 넘는다. 이들은 캐시리스 결제, 포인트 앱, 지역 쿠폰까지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디지털 정체성’을 구축해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디지털 적응을 넘어, 온라인 중심의 서비스 산업 전반에 새로운 시장을 열고 있다. ‘시니어 전용 모바일 요금제’, ‘영상 통화 돌봄 서비스’, ‘디지털 웰니스 코칭’ 등은 이들이 단순히 수용자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인 사용자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개인화 시대, 시니어도 예외 아냐

또 하나 주목할 점은 ‘퍼스널라이제이션(personalization)’의 부상이다. 일본 소비 시장은 이미 개인 맞춤형 상품의 대중화 단계를 넘어, 고령자 맞춤형 서비스 설계로 진입하고 있다. 건강 상태에 따라 운동 강도를 조절해주는 시니어 피트니스 센터, 체질에 맞는 식단을 추천하는 스마트 급식 서비스, 주거환경에 따른 돌봄 로봇 설정까지, 고령자의 세부 특성에 따라 상품 구성이 달라진다.

이는 단지 ‘편의성’을 높이는 차원을 넘어선다. 개인화된 서비스는 고령자의 자율성과 존엄성을 존중하는 새로운 기준이 되어가고 있다. "60대는 다 똑같지 않다"는 명제가 기술을 통해 시장 전략으로 구체화되고 있는 셈이다. 우리도 고령 세대를 ‘노 시니어 존’으로 차별할 것이 아니라, 개인화된 서비스를 통한 사업화를 고민할 때다.

‘돌봄’ 넘어 ‘자율’ 향하는 기술

시니어 산업에서 빠질 수 없는 또 하나의 축은 에이지테크(Age-Tech)다. 일본 정부는 최근 간병 리프트, IoT 기반 낙상 감지 센서, AI 돌봄 로봇 등에 대한 보조금 지원을 대폭 확대하며 고령자 자립을 지원하는 기술 생태계를 육성하고 있다. 이제 기술은 고령자를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기술이 이끄는 돌봄은 타인의 손길이 아닌 ‘스스로를 돌보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일본의 아쿠아비트스파이럴즈社가 출시한 스마트플레이트의 MaaS가 대표적 사례 중 하나다. MaaS는 여러 교통수단(버스, 기차, 택시 등)을 통합해 스마트폰 앱 등을 통해 경로 검색, 예약, 결제를 일원화하는 서비스다.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노인돌봄 기관의 차량 배차에도 적용하고 있다. 시니어의 이동을 포기하지 않고, 쉽게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돕는 기술인 셈이다.

이 밖에도 상반기 일본에선 외국인 간병 인력의 재가 방문 서비스 합법화도 화제가 됐다. 지난 4월부터 기술실습생 자격 외국인 혹은 특정기능1호(일본 정부가 정한 인력 부족 산업분야 체류자격) 보유 외국인이 방문 간병 업무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 노인 세대의 재취업이나 사회참여가 확대되면서 ‘에이지 프리 워크’ 개념의 일·봉사 활동도 최근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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