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이 흐름 속에서 반복되는 문제 중 하나는 연령 구간으로 구분하려는 기업들의 태도다. 물론 40대, 50대, 65세 이상 이렇게 소비자를 구분하는 것은 매우 간편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구분은 편리하지만 정확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왜곡에 가깝다.
해외는 ‘고령자’가 아닌 ‘고령 소비자’를 본다
한 예로, 67세에 전기차를 몰고 전국 골프장을 도는 여성과, 62세에 스마트폰 사용조차 부담스러워하는 남성은 같은 시장 안에 묶일 수 없다. 50대라 해도 디지털 전환에 능숙한 개발자와 오프라인 중심의 영업 관리자 간의 생활 방식은 전혀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산업계는 여전히 ‘50대 이상’, ‘65세 이상’이라는 법적 또는 행정적 기준을 시장 구획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이는 편의성과 제도 기반 설계에는 유효할 수 있지만, 실제 소비자 분석과 전략 수립에서는 위험한 단순화다.
일본과 미국의 시니어 시장 분석은 이와는 다르다. 일본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 ‘프레일 시니어(Frail Senior)’, ‘웰빙 시니어(Well-being Senior)’와 같은 세분화를 통해 고령층을 단일 집단이 아닌, 생활 능력과 욕구에 따라 구분된 소비자군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러한 분류는 단순한 연령이 아닌 건강상태, 경제력, 디지털 적응도, 여가 활동 수준 등 행동 기반의 프로파일링을 바탕으로 한다.
미국 역시 시니어 리빙 산업에서 ‘55+ 액티브 커뮤니티’, ‘어시스티드 리빙(Assisted Living)’, ‘메모리 케어’ 등 삶의 단계별 맞춤형 주거·소비 모델을 설계하고 있으며, 시니어를 자율적이고 강력한 소비 주체로 전제한다.
이러한 시장 세분화는 STP 전략(Segmentation–Targeting–Positioning)의 고전적 이론과 맞닿아 있다. 연령이라는 인구통계적 변수에 안주하지 않고, 행동적, 심리적, 기능적 변수로 세분화하는 방식이다. 이는 단순한 마케팅 기법이 아니라, 고령 소비자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한 기본 태도다.
심리학은 왜 ‘나이’보다 ‘정체성’을 보라고 하나
심리학자 대니얼 레빈슨은 중년기 이후 인간의 삶을 ‘생애 구조의 전환기’로 보았다. 나이가 들수록 나이 자체보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인식이 더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즉, 시니어의 행동과 소비는 ‘몇 살인가’가 아니라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에서 비롯된다.
또한 자아이론에서 말하는 ‘자아 동일성’은 연령보다 경험, 역할, 관계에 의해 형성된다는 점에서, 동일한 연령대의 시니어라도 소비 욕구는 극명하게 다를 수 있음을 설명한다.
따라서 시니어 소비자를 ‘60세 이상’이라는 숫자로 묶는 일은, 자아를 외면한 채 ‘껍데기’만 보고 전략을 짜는 셈이다. 그러니 설득력을 가지기 어려워진다.
한국 산업계가 시니어 시장을 이해하려면 ‘연령 세그먼트’가 아니라 ‘욕구 기반 세그먼트’로 전환해야 한다. 디지털 적응형 시니어, 실버 컬처층, 자산 기반 은퇴자, 생계형 고령 노동자, 돌봄 의존 고령자 등 행동-욕구 기반 분류체계 없이 시니어 시장을 다룬다는 것은, 아무도 없는 곳에 외치는 것과 같다.
지난달 29일 ‘2025 시니어산업-에이지테크(Age-Tech) 포럼’에서, 경희대학교 에이지테크연구소장 김영선 교수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이용 의향에 주목했다. 김 교수는 “에이지테크 시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시니어 간 디지털 격차와 구매장벽을 이해해야 한다”며 “경제적 능력과 새로운 시장에 대한 구매 의향을 지닌 중산층 시니어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60대는 다 똑같지 않다.” 이 단순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직 많지 않은 것 같다. 고령자란, 늙은 사람이 아니라 다르게 살아가는 다양한 나이 많은 사람들의 집합이다. 시니어를 이해하려면 질문을 바꿔야 한다. ‘나이가 얼마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왔나?’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