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비즈니스의 함정, ‘내가 제일 잘 안다’는 착각

기사입력 2025-06-13 07:29 기사수정 2025-06-13 07:41

[이준호의 시니어 비즈니스 인사이드 ③]

한국 사회가 초고령사회로 접어들며 ‘시니어 비즈니스’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헬스케어, 금융, 레저, 교육, 주거, 패션 등 전 산업 분야에서 고령층을 새로운 시장의 ‘블루오션’으로 간주하고,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상품과 서비스를 기획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 이러한 사업을 기획하는 실무자들과 교류를 진행해 보면 걸림돌은 엉뚱한 곳에서 발견된다. 바로 ‘의사결정권자의 착각’이다. 대기업이든 스타트업 이든, 시니어 소비자 전략을 수립하는 자리에 있는 임원, 경영자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내가 시니어니까 시니어 소비자를 가장 잘 안다.” 하지만 바로 그 확신이, 시장을 가장 왜곡시키는 오판의 씨앗이 된다.


자기 동일시의 오류, 시장을 오도하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참조편향’이라 부른다. 자신의 경험과 감정 체계를 기준으로 타인의 행동이나 감정을 해석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특히 나이, 세대, 지역, 성별 등 자신과 겹치는 속성을 상대에게도 그대로 투사하려는 심리가 강하게 작동한다.

예컨대 “나도 60대니까 60대가 뭘 원하는지 안다”는 믿음은, 실제로는 자신의 취향, 환경, 경제력, 가족구성, 디지털 역량 등을 시니어 전체에게 일반화하는 오류를 낳는다. 하지만 시니어 세대는 단일 집단이 아닌 다양한 성향과 욕망을 가진 이질적인 집합체다. 현재 대한민국의 65세 노인인구는 1천만 명이 넘는다. 이들이 같은 라이프 스타일을 고집할 수 있을리가 없다.

경영학에서는 이러한 인지 편향이 전략 수립 단계에서 반복될 경우, 의사결정의 질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한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이를 경험 기반 리더십의 함정이라 명명하고, 과거의 성공 경험이 현재의 판단을 흐리는 결정적 원인으로 분석한다.

당신의 나이가 몇 세이던 시니어 소비자는 당신과 같지 않다. 한국의 시니어 시장은 단일하지 않다. 고령자라고 해서 모두 은퇴한 것도 아니며, 모두 손주 돌보며 건강식품만 찾는 것도 아니다. 일부는 스마트폰으로 해외주식까지 거래하며, 일부는 기초연금으로 생계를 잇고, 일부는 SNS에서 팬덤 활동을 하고, 일부는 온라인 티켓팅이 어려워 여행을 포기한다.

그러나 “나는 자전거를 타니까, 60대는 활동적인 것을 좋아할 것이다” “나는 노래교실은 안 가니까, 그건 옛날 시니어 이야기다” 이런 판단이 회의에서 쉽게 결론처럼 통과된다. 단 한 사람의 경험이, 수백만 명의 데이터 위에 군림하게 되는 순간이다.

의사결정자의 ‘연령’은 달콤한 함정

시니어 비즈니스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연령에 민감한 시장임에도, 연령 기반의 판단이 가장 위험한 시장이다.

경영학에서 말하는 ‘시장 세분화’ 이론은 반드시 적용되어야 한다. 단순히 나이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행태적 특성, 심리적 요인, 디지털 적응도, 은퇴 여부, 건강 수준 등 다양한 기준을 조합해 고객군을 정의해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소비자 중심적 사고’다. 이것은 곧 자신이 고객과 같다는 착각을 버리는 것에서 출발한다.

리더십 연구에서는 ‘인지 겸손’이 점점 더 중요한 역량으로 부각되고 있다.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고, 고객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전문가와 데이터를 신뢰할 줄 아는 태도다.

시니어 비즈니스는 '가장 수명이 짧은 소비자'를 상대하는 사업 분야다. 시니어 시장은 빠르게 변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내부 이질성이 극심한 시장에서는 의사결정자의 겸손이 전략의 정확도를 결정짓는 핵심 요인이 된다. 진정한 시니어 비즈니스는 시니어가 시니어에게 말하는 사업이 아니라, 자신과 다른 시니어의 삶을 이해하려는 사업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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