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문제는 내가 죽고 사느냐의 문제입니다”

입력 2025-11-18 16:42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 "덜 쓰고, 함께 쓰고, 다음 세대를 위해"


최열 이사장은 지난 45년간 한국 환경운동의 최전선에 서왔다.

그가 주창하는 ‘각성한 시민’의 힘, 정부·기업·시민사회가 협력하는 커다란 변화, 그리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향한 그의 집념은 오늘날 더욱 절실하게 요구된다. 공해 추방에서 시작된 그의 환경운동은 지금도 기후변화와 생태 위기 해법을 찾아 끊임없이 진화한다.​


45년 넘게 한국 환경운동의 최전선에 서온 최열 이사장은 “환경문제는 내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라고 단언한다. 그에게 기후 위기는 단순한 기온 상승이나 미세먼지의 문제가 아니다. 생태계 붕괴, 난민 증가, 사회 불평등 심화가 모두 얽힌 ‘생존의 총체적 위기’다. 1970년대 공해 추방 운동으로 시작해, 1990년대 낙동강 페놀 사건과 동강댐 반대 투쟁을 이끌었고, 지금은 기후 위기 대응과 환경교육으로 영역을 확장해온 그는 오늘도 묻는다.

“우리는 지금, 지구의 몇 시를 살고 있습니까?”


기후 위기 시계 ‘9시 53분’

최열 이사장은 1949년 대구에서 태어나 1970년대 민주화 및 인권운동과 맞물려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처음 인식했다. 1976년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됐고, 옥중에서 250권 넘는 환경 관련 서적을 읽으며 ‘공해 평론가’로 스스로를 규정했다.​


1982년 국내 최초의 민간 환경단체 ‘한국공해문제연구소’ 소장을 시작으로 온산병 사태, 낙동강 페놀 사건, 동강댐 반대 투쟁 등 한국 환경사 전면에 섰다. 1995년 골드만 환경상, 이후 유엔환경상 글로벌 500인 등 다수의 수상 경력을 지녔다.​

최 이사장은 한국 최초의 환경 전문 공익재단인 환경재단을 2002년에 출범시켰다. 이후 20여 년간 국내외 14개국 44개 단체와 협력, 430만 명의 ‘그린리더’ 육성에 힘썼다.​ 그는 “환경운동은 더 이상 시민단체만의 영역이 아니다. 정부와 기업, 시민사회가 함께 각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80년대만 해도 ‘공해라도 배불리 먹었으면…’이란 인식이 지배적이었어요. 환경은 낯선 단어였죠. 하지만 공해와 기후 위기, 미세먼지 등 실질적 위협으로 지구는 생존의 임계점을 향해 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환경문제는 내가 죽고 사느냐의 문제입니다. 이제 시민 모두가 환경운동가가 돼야 해요.”

그는 매년 일본 아사히글라스재단과 공동으로 ‘지구 환경 위기 시계’를 발표하고 있다. “12시는 지구 종말이고, 12시에 가까워질수록 위험하다는 뜻인데, 현재는 9시 53분”이라며 “위험 단계에 들어섰음에도 한국 사회는 정치적 사건에 묻혀 환경문제를 후순위로 두고 있다. 위기의 일상화가 불감증을 낳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실제로 전 세계 난민 중 약 3500만 명이 기후로 인해 발생했다. 우리가 아무 노력도 하지 않으면 2050년에는 10억 명이 난민이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그는 1992년 ‘리우 지구정상회의(COP1)’부터 2015년 파리협정, 2023년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COP28)까지 총 16차례 국제기후총회에 참여했다.

“30여 년간 국제회의를 다니며 느낀 건 약속보다 행동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이제 한국도 환경정책 ‘수용국’이 아니라 ‘실행국’이 돼야 합니다.”


‘생각하는 환경’에서 ‘행동하는 세대’로

“우리 국민은 환경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실천은 부족합니다.”

최열 이사장은 ‘행동하지 않는 인식’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것이 개인의 의식 부족 때문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구조적 한계와 맞닿아 있다고 말한다. 한국의 산업구조는 여전히 에너지 다소비형이다. 석탄과 석유 중심의 발전, 제조업 중심의 경제가 온실가스 배출의 주된 원인이라는 것이다.


“기후 문제의 근본 원인은 에너지 과소비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석탄 발전에 의존하고 있어요. 석탄 1톤을 태우면 이산화탄소를 2톤 넘게 배출하죠. 그런데도 여전히 발전소를 짓고 있습니다. 이걸 몰라서 짓는 게 아니에요. 이제는 산업의 형태 자체를 바꿔야 합니다.”

그는 환경운동이 더 이상 시민단체만의 몫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정부와 기업, 시민사회가 동시에 각성해야 합니다. ESG를 구호로만 외칠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시스템 변화 없이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따라서 정부는 탄소중립을 촉진할 명확한 로드맵을 제시하고, 기업은 기술혁신으로, 시민은 행동으로 응답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교육의 부재도 문제다. 독일은 네 살짜리 아이도 쓰레기 처리장을 견학해 자원순환과 환경에 관해 배우지만, 우리는 ‘환경’이라는 과목과 수업을 찾아보기 힘들다. 환경교육의 핵심은 ‘체험’이다. 그는 “어린이 환경캠프와 생태체험학교를 통해 초등학생이 환경 감수성을 키우는 모습을 수없이 봤다”고 주장했다.

“초등학생이 중고등학생보다 환경을 더 잘 압니다. 입시가 시작되면 마음의 눈을 닫거든요.”

그래서 그는 어린이를 위한 환경책을 10여 권 썼다. ‘최열 아저씨의 지구 온난화 이야기’, ‘최열 아저씨의 지구촌 환경 이야기’ 등은 100만 부 가까이 팔리며 세대의 교과서가 됐다.

“어릴 때 읽은 책과 체험이 인생을 바꿉니다. 성인이 된 후 찾아와 ‘당신 책으로 환경운동을 시작했다’고 말하는 이들에게서 희망을 봅니다.”

그뿐 아니라 최열 이사장은 해양 생태계 복원을 위한 ‘잘피 숲(Seagrass Forest)’ 해양 복원 사업, ‘어스 아워(Earth Hour)’ 캠페인, 기후 시계 프로젝트 등 구체적 사업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환경정책과 생태계 회복에 기여해왔다.​ 환경재단은 공공기관 및 민간기업, 시민사회와의 거버넌스를 꾸준히 확대 중이며, 아시아 환경단체들과 연대해 해양생물 다양성 증진을 위한 학술적·실증적 연구도 전개했다. 한국 사회 대기질 개선, 저탄소 정책 확산, 미래 세대 지원 등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사업들이 진행되고 있다.​


문화로 환경을 움직이다

최열 이사장은 22년째 환경영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전 세계 3000여 편의 출품작 중 약 80편을 상영하는 이 영화제는 단순히 영화만 상영하는 행사가 아니다. 17개 시·도 교육청과 연계해 학교 상영과 토론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매년 100만 명 이상 참여한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환경영화제를 꾸준히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구호가 아니라 문화다. 좋은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그의 굳건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환경은 교육입니다. 어린이들이 영화를 보고 토론할 때, 지구의 미래는 조금 더 건강해집니다.”

환경재단의 또 하나의 상징은 ‘그린 보트(Green Boat)’다. 한·일 양국 시민이 함께 타는 환경 교류 크루즈로, ‘바다 위의 학교’라 불린다. 그는 “바다 한가운데 있으면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절감하고, 그 겸손이 환경운동의 출발”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린 보트에서는 일회용품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텀블러 없이는 물도 마실 수 없다.

“환경재단이 크루즈를 운영한다고 비난을 엄청 많이 받았어요. 하지만 그건 잘 모르고 하는 이야기예요. 크루즈가 환경을 해친다는 건 오해입니다. 비행기보다 탄소 배출이 훨씬 적어요. 모든 화물이 왜 배로 이동하는지 생각해보세요. 중요한 건 태도입니다. 불편을 감수하면서 배운다는 태도.”

그의 철학은 분명하다.

“환경운동은 반대가 아니라 ‘대안’을 보여주는 일입니다. 지구를 지키려면 먼저 인간이 겸손해져야 합니다.”


▲못 쓰는 부품으로 만든 소화기 '불 끄는 펭귄'
▲못 쓰는 부품으로 만든 소화기 '불 끄는 펭귄'

‘각성한 시민’의 힘이 바꿀 미래

기후 위기는 건강, 식습관, 산업구조 등 삶 전반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그는 암 증가의 원인으로 식품첨가물, 농약, 합성화학물질, 미세플라스틱을 꼽으며 말했다.

“공장에서 나오는 발암물질뿐 아니라 옷에서 나온 미세플라스틱이 바다로 들어가 우리 몸으로 돌아옵니다. 이제는 뇌에서도 검출돼요. 미세플라스틱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축적되는 위험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그는 “소고기 1인분이 10㎏의 온실가스를 만든다”며 “우리나라는 소고기를 수입까지 해서 먹고 있으니 얼마나 많은 온실가스를 만드는 것인가. 고기를 안 먹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좀 적게 먹었으면 한다”며 식생활 변화의 필요성을 호소했다. 실제로 소 한 마리가 하루 평균 280ℓ의 메탄을 배출하는데, 이는 자동차 한 대가 배출하는 하루 배기가스량과 맞먹는 수준이다. 전 세계 소가 연간 내뿜는 메탄은 약 1억 톤이며,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18%에 달해 이산화탄소보다 온실효과가 80배 이상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자동차를 아예 소유하지 않는다. 자동차 한 대가 내뿜는 탄소가 텀블러 1만 개로도 상쇄되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경기를 비롯한 수도권은 대중교통으로 얼마든지 이동 가능하지만, 자동차가 필요한 지역이 있다는 점은 이해합니다. 그런 지역은 지역 중심형 마을 구조로 바꿔야 합니다. 학교, 병원, 상점이 모여 있으면 차가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최 이사장은 중장년 세대의 역할을 강조했다. “산업화를 이끈 중장년 세대가 이제는 지속 가능한 전환의 주체가 돼야 한다”면서 “잘 먹고 잘 사는 시대를 만든 것처럼, 이제는 ‘잘 살려내는 세대’로 기억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의 책과 강연, 영화제, 캠페인에는 ‘지구를 살리는 건 지식이 아니라 실천’이라는 메시지가 흐른다. 그가 26.44㎡(약 8평)짜리 사무실에서 시작한 외침은 이제 세대의 유산이 됐다. 지금, 우리 각자의 시계가 ‘9시 53분’임을 잊지 말아야 할 때다.

“기후 위기는 과학이 아니라 윤리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압니다. 이제는 ‘행동’이 남았습니다. 국가 안보보다 환경 위기가 더 중요한 시대로 바뀌었습니다. ‘나 혼자 노력한다고 되겠어?’라는 안일한 생각 대신,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환경운동은 은퇴 후 취미가 아니라 후손에게 남길 유산입니다. 덜 쓰고, 함께 쓰고,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것. 이것이 진짜 문명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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