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문제는 단지 개인의 고통을 넘어서 사회 전체의 경제 선순환을 가로막는 장애 요인이기도 하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전수조사에 따르면, 2050년까지 치매 노인의 총자산 규모는 488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정부가 처음으로 실태를 정리한 수치이며, ‘잠자는 돈’이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실물경제의 동결된 부분임을 방증한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거나 보호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정책은 거의 전무하다. 그나마 마련된 치매 공공후견제도는 복잡한 업무의 특성상 이용률이 낮고, 민간 신탁은 고액 자산가 중심의 영리 서비스로 설계되어 있어 대부분의 치매 환자에게는 현실적인 대안이 되지 못한다. 2018년 9월부터 2023년 말까지 누적된 후견 심판 청구 접수 건수가 680건에 불과하다는 점은, 이 제도의 활용 가능성이 얼마나 협소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재명표 정책 국정운영 5개년 계획안에 담아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인지한 이재명 정부는 지난 13일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안’을 통해 ‘치매안심재산관리서비스’라는 이름의 새로운 접근을 꺼내들었다. "기본이 튼튼한 사회"라는 국정 목표 아래 ‘은퇴세대 맞춤형 지원’ 과제로 명시된 이 서비스는, 단지 제안 차원이 아닌 공공 시범사업으로의 도입을 전제하고 있으며, 복지부와 연계한 구체적 정책 실행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그 핵심은 지난 3월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국회에 대표발의된 ‘치매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골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법안은 치매환자 또는 경도인지장애 진단자 등 자산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대상으로, 재산의 관리·운용·지출을 지원하는 재산관리지원서비스의 제공을 명문화한다. 특히 국민연금공단이 이 사업의 주된 위탁 기관이 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필요시 관련 법인 또는 단체에 업무를 재위탁할 수 있는 조항을 포함해 민간 참여의 제도적 통로도 열어두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 법안은 고령자 보호와 민간 생태계의 연결고리를 어떻게 조화롭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실질적 효과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는 이미 지난 6월 실무 지침 마련을 위한 연구에 착수했다. ‘치매환자 재산관리지원서비스 운영매뉴얼 개발’이라는 이름의 이 연구는 공공신탁 시범사업의 기반을 조성하는 작업이다. 이용 대상자 선정, 신탁 재산의 범위, 서비스 이용 기간, 계약과 배분, 종결 및 사후 처리, 상담 프로토콜, 회계 기준, 교육 프로그램, 수탁 기관의 조직과 역할 설계, 이해관계자 교육 체계까지 아우르는 이 작업은 국민연금공단을 중심으로 법조계, 금융계 전문가들과 함께 진행되며, 향후 제도 도입 시 적용될 표준으로 기능할 전망이다.
日 지난해 가이드라인 통해 민간 성장 유도
해외의 움직임도 주목할 만하다. 일본은 사회복지협의회와 은행, 비영리 법인이 협력해 치매 환자의 예금 접근을 제한하고 보호하는 구조를 구축해왔다. 더 나아가, 후생성은 지난해 6월 ‘고령자 등 종신 서포트 사업자’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공공책임 하의 민간 서비스 활성화를 독려하고 있다. ‘전국 고령자 등 종신 서포트 사업자 협회’가 설립되는 등 제도 외부에서 시장의 공백을 메우려는 자발적 움직임도 활발하다. 일본의 사례는 단지 행정적 통제를 넘어, 민간의 자율적 역량과 공공의 신뢰성을 조화시키는 거버넌스 모델을 보여준다.
일본 ‘전국고령자등종신서포트사업자협회’의 구로사와 시즈노 위원장은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지금은 가족이 없는 고령자, 자녀와 관계가 단절된 고령자가 너무나 많다. 이들은 치매에 걸리거나 사망하면 누군가에게 맡기기도 어렵고, 맡아줄 사람도 없다. 이제는 개인 중심의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종신지원 사업이야말로 이러한 개인 중심 사회로의 이행에 필요한 제도적 기반이라 강조하며, 건강할 때 본인의 의사에 따라 의료, 요양, 재산관리, 사후 절차까지 신뢰할 수 있는 민간조직에 위임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가족이 없어도, 혼자여도 괜찮은 사회 되어야
한국도 같은 고민 앞에 서 있다. 이제는 정부가 전면에 나서서 공공신탁 제도의 구조를 설계할 때다. 하지만 동시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치매 자산 관리라는 영역이 지극히 개인적이고 민감한 문제이며, 획일적 공공서비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재산의 구성, 가족관계, 의료적 상태, 삶의 목표는 모두 제각각이고, 이는 민간의 유연함 없이는 대응할 수 없는 지점들이다.
따라서 정부는 제도의 틀을 짜되, 민간이 그 안에서 혁신할 수 있도록 제도적 유연성과 정책적 인센티브를 마련해야 한다. 다행히 이번 개정안은 국민연금공단이 업무를 법인·단체에 재위탁할 수 있도록 하여, 비영리 법인이나 사회적 기업, 지역 기반의 복지 단체 등이 이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열었다.
초고령사회에서 우리가 마주한 핵심 과제는 ‘돈’이 아니라 노후의 삶 자체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구조를 갖추는 일이다. 판단능력이 저하되더라도 의료·요양·주거·재산·사후사무까지 삶 전반이 흔들리지 않도록, 신뢰 가능한 제3자에게 표준화된 계약과 투명한 감독 아래 위탁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가 최소 제공기준과 인증·감독을 책임지고, 민간은 전문성과 유연성으로 개인별 설계를 뒷받침하는 민관 결합형 서비스 체계가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지점은 “가족이 없어도, 혼자여도 괜찮다”는 사회적 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