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일 현대백화점 천호점에는 색다른 팝업 스토어가 열렸다. 과거에는 유행에 민감한 청년층을 겨냥한 기획전이 일반적이었으나, ‘액티브 에이징 라이프 페어’라는 이름의 이 행사는 보청기·돋보기·고령자용 운동기기 등 시니어를 위한 상품들로 채워졌다는 점이 다르다.
그간 고령친화 제품은 백화점의 문턱을 넘기 쉽지 않았다. 고령층 제품의 전면 노출이 ‘백화점 이미지’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인식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안티에이징 화장품이나 건강기능식품을 제외하면 입점 자체가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65세 이상 인구가 1천만 명을 넘고 초고령사회로 들어선 지금, 백화점 역시 시니어 고객의 방문과 구매에 더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를 겪은 일본의 최근 사례만 보더라도, 변화의 방향은 분명해졌다.
시니어와 더 자주·더 가깝게 외치는 일본
일본에서는 대형 백화점들이 시니어 고객을 겨냥해 매장 재편과 서비스 확장을 병행하고 있다. 세이부 백화점은 최근 이케부쿠로점 대규모 리뉴얼에서 식품과 화장품 매장을 전면 개편해 ‘자주·가깝게’ 이용하는 수요를 겨냥했다. 특히 이달 진행된 지하 식품 매장의 재개장은 고령층의 일상적 방문과 소액·반복 구매를 다시 끌어들이는 관문이 된다. 소고 백화점은 요코하마점 9층에 고령자 주거·요양 선택지를 안내하는 상설 창구를 열었다. 쇼핑 동선 속에서 주거·돌봄 정보를 원스톱으로 제공해, 소비와 생활 설계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려는 의도다. 다카시마야는 물리치료 서비스 등을 도입한 리하빌리 연계 모델을 운용하며, ‘건강 유지–장보기–문화 체험’이 한 공간에서 이어지도록 접점을 넓히고 있다. 요컨대 ‘상품 진열’에서 ‘생활 동선 설계’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팝업 스토어를 넘는 ‘상시화’가 관건
이번 천호점 팝업은 신호탄에 가깝다. 무엇보다 현장의 반응은 분명했다. 저시력자를 위한 돋보기 관련 제품을 가지고 출점한 아이루페 김묘경 대표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오프라인 매장 폐점이 늘면서 온라인에 의존해 왔다”고 말한다. “돋보기는 배율·크기·무게를 직접 비교해야 하는데 매장이 부족하니 본사까지 찾아오는 고객도 있다”고 했다. 시니어 전문 복지용구 쇼핑몰 그레이몰 이준호 대표 역시 “백화점 고객 반응을 직접 확인할 기회가 없었는데 좋은 계기”라 평가하며, “소비자 체험 공간이 늘길 기대한다”고 했다. 결국 핵심은 ‘체험–상담–구매’의 상시화다. 일주일짜리 이벤트를 넘어, 상설 코너·상담 창구·체험형 매대로 이어질 때 시장은 비로소 작동한다.
모든 고객은 액티브 하지 않은 시니어 돼
아직 공백도 선명하다. 보행기나 지팡이처럼 ‘액티브 하지 않은’ 시니어를 위한 필수 재활·이동 보조품은 매대에서 보기 어렵다. 이는 이미지 리스크를 경계해 고기능·고가의 ‘멋있는’ 카테고리에만 치우칠 때 생기는 왜곡이다. 고령 고객의 스펙트럼은 넓다. 체력·인지·경제력·생활환경에 따라 필요가 다르다. ‘튼튼하고 보기 좋은’ 제품만큼, ‘안전하고 쓰기 쉬운’ 제품을 같은 층위에서 소개하는 균형이 필요하다. 일본 사례가 말하듯, 식품·화장품처럼 반복 방문을 부르는 카테고리 강화와 함께, 주거·돌봄·재활 상담을 점내에 끌어들여 생활 전반을 연결하는 것이 어떨까.
고령화는 더 이상 ‘변칙 이벤트’로 응대할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팝업이 ‘시험장’이었다면, 이제는 매장과 서비스의 구조를 바꾸는 본게임을 더 고민해 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