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명동성당이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일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인천 개항지에 세워진 답동성당이 그보다 앞선다. 19세기 말 프랑스 신부들이 지었고, 1920년대부터 미국 메리놀 선교회 신부들이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낯선 땅에서 그들은 성당과 학교, 병원을 세우고 지역 사람들의 삶을 지켰다.
한국전쟁의 총탄 속에서도, 산업화와 도시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신부들은 늘 곁에 있었다. 수많은 세월과 발걸음이 쌓여 오늘날 100만 명 신자를 가진 인천교구의 토대가 되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마지막 메리놀 신부가 한국을 떠나면서 긴 여정은 끝이 났다. 그 순간을 담은 영상의 제목은 ‘빛나는 소멸’이다.
메리놀 선교회의 원칙은 간단하다. 성당을 세우고, 그 성당을 이끌 현지 사제가 자라면 그때 떠나는 것. 화려하게 남기보다 조용히 물러서며 빛을 남기는 것. 마지막 신부의 퇴임사는 단순했지만 울림이 컸다.
“우리가 떠날 수 있는 것은 이제 한국 교회가 스스로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답동성당을 거닐다 문득 내 삶이 겹쳐졌다. 공직에 있으면서 늘 마음속에 새겼던 말, ‘공수신퇴(功遂身退)—임무를 이루면 물러나라’는 가르침이 떠올랐다. 이제 인생의 2막도 어느덧 10년 가까이 흘렀다. 앞으로 남은 시간, 나는 무엇을 남기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
노년은 단순히 나이를 먹는 시간이 아니다. 더 채우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남기고 어떻게 다음 세대를 세울지가 중요한 시기다. 한국 사회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다. 이 문제는 개인만의 숙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과제가 됐다.
답동성당에서 만난 메리놀 신부들의 발걸음은 우리에게 조용히 묻는다. “당신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존재의 의미를 다했을 때 찾아오는 소멸은 허무가 아니라 충만이다.
삶이 흘러가 끝을 향해 가더라도 그 끝이 ‘소멸’이 아니라 ‘빛남’이 될 수 있도록, 남은 길을 깨어 있는 마음으로 걸어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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