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직 후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일본은 이 질문에 가장 먼저 직면한 나라다. 그 해답의 한가운데에 ‘고령자대학교’라는 독특한 평생학습 모델이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오사카부 고령자대학교는 일본 시니어 평생교육을 상징하는 대표 사례로 꼽힌다. 이곳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교육기관을 넘어, 고령자의 삶을 다시 사회와 잇는 거점으로 주목받고 있다.
연금만으로는 불안한 노후, 길어진 기대수명, 빠르게 줄어드는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시니어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여가 프로그램이 아니다. 삶을 다시 설계하고, 사회와 다시 연결할 수 있는 구조다.
오사카부 고령자대학교(大阪府高齢者大学校)의 이모토 히로쓰구(井本弘嗣) 부이사장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나라가 만들고, 시민이 지켜낸 학교
오사카부 고령자대학교는 일본 고령사회 정책의 변천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1970년대 후반 일본에서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7%를 넘어서며 본격적인 고령사회가 시작되던 시기, 오사카부는 1979년 ‘노인대학’을 설립했다. 당시 일본은 55세 정년이 일반적이었고, 퇴직 이후의 삶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책임져야 할 사회적 과제로 인식되던 때였다.
초기 노인대학은 오사카부의 전면적인 재정지원으로 운영됐다. 수업료는 무료였고 평생학습은 복지의 연장선에 있었다. 그러나 2008년 오사카부가 재정위기에 직면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모든 보조금이 중단됐고, 학교는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된다.
이때 놀라운 선택이 이뤄졌다. 학교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 수강생들과 관계자들이 직접 나서 NPO(특정비영리활동) 법인을 설립한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자원봉사자들이 운영하는 현재의 NPO 법인 오사카부 고령자대학교다. 2009년 4월 재개교 이후 단 한 푼의 공적 보조금 없이 오직 수강료와 기부, 그리고 자발적 참여만으로 17년째 운영되고 있다.

오전엔 배움, 오후에는 자주 활동
오사카부 고령자대학교를 기존의 문화센터나 일반 평생교육 강좌와 구분 짓는 가장 큰 특징은 하루의 구조에 있다. 이곳의 하루는 오전과 오후가 분명히 다른 역할을 맡는다.
오전(10시 30분~12시 30분)에는 정규 강의가 진행된다. 오후(13시~15시)는 ‘자주 활동(自主活動)’ 시간이다. 오전에 배운 내용을 단순히 듣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과 함께 토론하고 복습하며, 때로는 현장에 나가 직접 확인하는 과정이 이어진다. 역사 수업을 들은 뒤 실제 유적지를 방문하고, IT 수업 후에는 서로 가르치며 실습을 진행하는 식이다.
이모토 히로쓰구 부이사장은 이 시간을 학교 운영의 핵심으로 꼽았다.
“이벤트도 아주 많습니다. 체육대회, 문화제, 미술 전시회는 물론 소풍이나 졸업 여행까지 모두 수강생이 자주적으로 기획하고 운영합니다. 자연스럽게 동료들 간의 대화가 늘어나고 관계가 깊어집니다.”
같은 반 구성원들은 매주 한 번 정기적으로 얼굴을 마주한다. 그 과정에서 동료의식이 형성되고, ‘학교에 오는 날이 일주일 중 가장 기다려진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배움이 관계로 이어지고, 관계가 다시 삶의 리듬을 만들어내는 구조다.


학습자 중심의 맞춤 설계
작년 기준 60개 과목에 2401명의 수강생이 참여했으며, 올해는 62개 과목에 2542명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평균 연령은 72.4세로, 90세를 넘긴 수강생도 세 명이나 된다. 성별 비율은 여성 60%, 남성 40%다.
학교를 떠받치는 운영 구조 역시 눈길을 끈다. 강사는 약 400명, 운영 스태프는 약 40명으로 모두 자원봉사자다. 이들은 별도의 보수를 받지 않고 교통비만 지급받고 있다. 수강료는 1과목당 연간 56만 1384원(약 6만 엔)으로, 공적 보조금 없이도 학교가 유지되는 기반이 되고 있다.
이 같은 규모와 안정성 이면에는 ‘학습자 요구에 따른 맞춤형 설계’라는 운영 원칙이 자리하고 있다. 운영 사무소 내에는 별도의 교과연구팀이 있다. 수강생 반응을 토대로 매력 있는 과목을 발굴하고, 수요가 낮은 과목은 과감히 폐지한다.
이모토 부이사장은 최근의 변화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드론 조작처럼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과목이 인기를 끌고 있고, 영어 회화나 컴퓨터 조작 강좌도 꾸준히 수요가 많습니다. 우리 학교는 수강생들의 높은 학습 의욕과 새로운 요구를 반영하기 위해 ‘수강생 과목 제안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에는 한 수강생의 제안으로 ‘세계의 요리’를 배우고 직접 만들어보는 강좌가 개설됐다. 해당 과목은 현재 인기 강좌로 자리 잡았다.
코로나19 이후 단순히 앉아서 듣는 강의보다, 배운 뒤 직접 현장을 찾아가는 체험형 강좌의 인기가 높아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젊어지는 목소리(若返りボイス)’ 강좌다. 이 강좌는 큰 호응을 얻으며 한 개 반에서 세 개 반으로 확대됐다. 단순한 발성 훈련을 넘어 자세 개선과 자신감 회복으로까지 이어진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재수강 비율이다. 수강생의 60~65%가 매년 다시 등록해 다른 과목을 듣고 있으며, 10년 이상 꾸준히 다니는 수강생도 적지 않다. 이는 학습 만족도가 매우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배움에서 역할로, 다시 연결되는 노년
학교의 운영 철학은 분명하다. 지식과 호기심을 충족하는 평생학습, 배움을 실천으로 확장하는 사회참여다. 이곳에서 배움은 졸업과 함께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졸업 이후부터 또 다른 시작이다.
많은 수강생이 졸업 후에도 동아리나 OB 모임을 통해 활동을 이어가며, 지역사회로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옮긴다. 아이들을 위한 과학 실험, 수제 장난감 만들기, 지역 축제 운영, 외국인과의 교류 프로그램, 강변 청소 등 환경정화 활동까지 참여 분야도 다양하다. 배운 내용을 각자의 방식으로 사회에 환원하는 구조다.
이모토 부이사장은 이를 ‘배움의 다음 단계’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낭독을 배우는 과목이 있습니다. 1년간 기술을 익힌 뒤, 유치원이나 복지시설을 찾아가 자원봉사로 낭독 활동을 합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오사카부 고령자대학교 수강생들은 매년 일본 내각부가 주관하는 ‘에이지리스 상(사회공헌 부문)’을 수상하고 있다. 개인의 성취를 넘어, 시니어 집단의 사회적 기여가 제도적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 모델은 학교 울타리를 넘어 지역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다. 오사카부 고령자대학교는 종합형 기관으로서 2013년 오사카 시내 주민을 위한 ‘오사카 구민 컬리지(大阪区民カレッジ)’, 2016년에는 오사카 전역을 대상으로 한 ‘오사카 부민 컬리지(大阪府民カレッジ)’를 설립했다. 현재 구민 컬리지는 9곳, 부민 컬리지는 15곳으로 확대돼 ‘오사카부 고령자대학교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고령자대학교가 감당하는 현실
오사카부 고령자대학교를 운영하며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일까. 이모토 부이사장은 잠시 망설인 뒤 ‘치매’라는 단어를 꺼냈다.
“수강생의 평균 연령이 해마다 높아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치매 문제가 큽니다. 치매를 앓고 있다고 해서 입학을 거부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수업이 시작된 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본인의 교실을 찾지 못해 헤매는 일도 적지 않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반장이 운영 사무소에 알리고, 필요할 경우 사무소 직원이 가족을 불러 대화를 나눈다. 상황이 심각하다면 학습 지속 여부를 신중히 논의한다.
그럼에도 ‘배우고 싶다’는 본인의 의지가 분명할 경우, 이 대학은 쉽게 등을 돌리지 않는다. 같은 반 수강생들이 자연스럽게 옆자리를 챙기고, 수업 흐름을 따라갈 수 있도록 돕는다.
이모토 부이사장의 설명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바로 이 지점이었다. 치매나 인지 저하가 있는 수강생을 배제하지 않는 원칙은 운영 측면에서 분명 큰 부담이다. 그러나 이 학교는 이를 ‘문제’가 아니라, 함께 감당해야 할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수강생은 ‘배우는 사람’인 동시에 ‘서로를 돌보는 사람’이 되고, 학교는 노년의 삶을 지탱하는 공동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국이 배워야 할 세 가지 핵심
오사카부 고령자대학교는 한국의 시니어 교육에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시니어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그 이후 삶을 어디까지 책임지고 있는가?”
시사점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연속성 있는 학습 구조다. 한국의 시니어 교육은 여전히 3개월, 6개월 단위 단기 프로그램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반면 오사카부 고령자대학교는 1년 과정, 반복 수강, 졸업 이후 활동까지 이어지는 장기 구조를 갖추고 있다.
둘째, 학습과 사회참여의 연결이다. 배움이 봉사·역할·지역 활동으로 이어질 때, 시니어는 다시 ‘필요한 존재’가 된다. 이는 노후 우울과 무기력, 사회적 고립 문제를 완화하는 효과적인 해법이다.
셋째, 시니어가 운영 주체가 되는 구조다. 오사카부 고령자대학교는 수강생이 과목을 제안하고, 졸업생이 새로운 학교를 만들며, 운영을 자원봉사로 떠받친다. 이는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시니어 자치 공동체에 가깝다.
한국 역시 ‘시니어를 위한 교육’에서 ‘시니어가 주도하는 배움의 생태계’로 전환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