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08

[쓸 수 있나요 ③] 고령층 금융 해법 "이용 가능성까지 제도화"

입력 2026-04-08 06:00

영국·일본·미국은 ‘취약성·거래·보호’ 기준으로 관리

(이미지=AI 생성)
(이미지=AI 생성)

고령층의 금융 접근성을 바라보는 기준은 국가마다 다르다. 영국과 일본, 미국과 같은 해외 주요국은 고령층을 포함한 취약 금융소비자 보호를 법과 감독 체계로 관리하고 있다. 금융사가 서비스 제공을 넘어 ‘이용 가능성’까지 책임지도록 하는 구조다.

한국 역시 금융소비자보호법을 중심으로 소비자 보호 체계를 갖추고 있다. 최근에는 고령층 금융 피해 예방과 거래 보호를 강화하는 개정안도 국회에 발의된 상태다. 금융당국과 금융권은 ‘쉬운 모드’ 도입을 확대하고, 금융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고령층의 금융 이해도와 디지털 활용 능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대응은 여전히 개별 서비스 개선이나 교육 중심에 머물러 있다. 고령층을 별도의 보호 대상으로 규정하고, 이용 가능성까지 제도적으로 관리하는 구조와는 차이가 있다.

고령층 금융, ‘연령’이 아니라 ‘사용 능력’의 문제

고령층 금융 문제는 단순히 연령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디지털 활용 능력, 인지 수준, 사회적 환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실제 국내에서도 연령이 높아질수록 디지털 금융 이용률은 급격히 낮아진다. 같은 고령층이라도 이용 수준에 따라 금융 접근성에는 큰 차이가 발생한다.

디지털 금융 확산은 이러한 격차를 더욱 확대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최근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이 발표한 ‘2025년 인터넷 이용 실태조사 통계표’ 자료에 따르면 60대의 인터넷 뱅킹 이용률은 82.4%인 반면 70대는 31.8%로 큰 차이를 보인다.

▲2025년 인터넷 이용 실태조사 통계표 자료(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2025년 인터넷 이용 실태조사 통계표 자료(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이 때문에 고령층을 하나의 집단으로 묶는 방식으로는 이용 격차를 설명하기 어렵다. 핵심은 ‘연령’이 아니라 ‘얼마나 사용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이와 관련해 국내 연구기관과 금융당국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과 일본, 미국 등 주요국은 고령층을 포함한 취약 금융소비자를 별도의 보호 대상으로 규정하고 이를 법과 감독 체계로 관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취약성’ 기준으로 본다

영국은 이러한 취약 소비자 개념을 제도적으로 반영한 대표적인 사례다. 고령층을 단순히 나이로 구분하지 않고 금융사가 취약 소비자의 이용 환경을 고려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금융소비자보호재단의 ‘고령 금융소비자 보호 정책 분석과 시사점’ 연구를 보면 금융행위감독청(FCA)은 취약 소비자를 단순한 연령 기준이 아니라 건강 상태, 생애 변화, 재정 여건, 금융·디지털 이해 능력 등 네 가지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의하고 있다.

이 기준에 따르면 고령층은 취약 소비자에 포함될 수 있지만 연령 자체가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같은 70대라도 디지털 금융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이용자와 그렇지 않은 이용자를 구분해 접근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접근은 고령층을 하나의 집단으로 묶기보다 실제로 얼마나 금융서비스를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제도에도 반영돼 있다. FCA가 2023년부터 시행한 ‘컨슈머 듀티(Consumer Duty)’는 금융사가 상품을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소비자가 이를 이해하고 적절히 활용할 수 있도록 ‘좋은 결과’가 발생할 수 있도록 책임지게 하는 규제다. 이 제도는 제품과 서비스, 가격, 소비자 이해, 소비자 지원 등 네 가지 결과 영역을 중심으로 작동하며 금융사가 서비스 단계부터 소비자의 이해 수준과 이용 환경을 반영하도록 요구한다. 결국 영국은 금융 접근성을 편의가 아니라 책임의 문제로 보고 있다.

일본, 연령 세분화하고 거래 관리한다

일본은 고령층 금융을 연령 기준으로 세분화하는 동시에 인지능력과 이용 상황까지 반영하는 방식으로 관리하고 있다. 일본 금융권은 75세 이상을 고령 고객으로 분류하고 80세 이상에 대해서는 더욱 강화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특히 연령 구분에 그치지 않고, 고객의 인지판단능력 수준에 따라 거래 방식을 다르게 하는 점이 특징이다. 실제로 금융업권 가이드라인에서는 고객의 기억력과 이해력 등을 고려해 일반 거래, 대리인 거래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에 맞춰 고령 고객의 금융거래에서는 사전 확인 절차가 강화된다. 고위험 상품인 경우 일정 기간 숙려 절차를 두거나 확인 과정을 재차 거치도록 내부 기준을 운영하는 금융기관이 많다. 이 같은 흐름은 금융감독원 도쿄사무소가 분석한 ‘고령화에 따른 일본 금융기관의 과제 및 대응사례’에서도 확인된다.

이와 함께 일본 은행들은 금융서비스를 넘어 일상생활 지원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방문 상담, 지역 복지기관 연계, 상속 및 장례 지원 등 비금융 서비스까지 포함해 고령 고객의 생활 전반을 지원하는 구조다.

일본은 고령층 금융을 인지 상태와 생활 환경을 고려한 ‘관리 대상’으로 보고 있다. 연령 구분에서 출발하지만 실제 운영은 거래 단계의 통제와 사전 예방에 초점이 맞춰진 구조다.

(이미지=AI 생성)
(이미지=AI 생성)

미국, 거래 과정에서 개입한다

미국은 고령층 금융 문제를 ‘보호’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특히 금융사기나 금융착취를 사전에 차단하는 데 제도적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와 관련해 국회도서관이 발표한 ‘미국의 고령자 보호를 위한 금융서비스 입법례’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고령자 금융 문제를 ‘금융착취(financial exploitation)’로 정의한다. 이는 타인의 영향이나 속임으로 자산이 빠져나가는 모든 상황을 포함하는 넓은 개념이다.

이 때문에 금융기관의 역할도 달라진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상 거래를 감지하고 개입하는 기능까지 맡는다. 2018년 법 개정을 통해 금융기관 직원은 고령자 금융착취가 의심될 경우 관계기관에 통보할 수 있고, 이에 대한 법적 책임도 면제받는다.

주 단위에서는 조치가 더 적극적이다. 금융기관은 의심 거래를 일시 중단하거나 지급을 지연할 수 있고, 필요하면 가족 등 ‘신뢰할 수 있는 제3자’에게 상황을 알릴 수 있다.

직원 교육도 의무화돼 있다. 금융기관 내부에서 금융착취 징후를 파악하고 대응하는 체계를 갖추도록 한 것이다. 미국은 고령층 금융을 사용 편의보다 ‘위험 관리’로 접근한다. 거래가 끝난 뒤가 아니라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상 징후를 확인하고 대응하는 구조다.

한국형 ‘쓸 수 있는 금융’으로 바꿔야

해외 주요국은 고령층 금융을 편의보다는 이용 가능성과 위험 관리의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 서비스 제공을 넘어서 실제로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는지 그리고 피해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지까지 제도적으로 관리하는 구조다.

반면 국내 정책은 여전히 연령 기준과 기능 개선 중심에 머물러 있다. 고령층을 하나의 집단으로 묶는 방식으로는 실제 이용 격차를 해소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범용 한국금융소비자보호재단 연구교육팀 책임연구원은 “현재 국내 고령층 금융 정책은 연령 기준에 기반을 둔 서비스 도입 단계로 아직 초기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쉬운 모드나 금융 교육 중심의 접근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서비스 설계 단계부터 이용 가능성을 반영하는 구조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고령층을 단순히 나이로 구분하기보다 실제 이용 수준을 고려한 세분화가 필요하지만, 이를 일률적인 제도로 적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당국은 가이드라인과 감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전환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고령층 금융 문제는 연령 기준이나, 단순한 화면 개선으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핵심은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한국형 고령층 금융 역시 사용자의 수준과 상황을 반영하는 구조로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더 궁금해요0

최신 뉴스

  • [현장에서] 카카오뱅크, ‘AI 금융 비서’로 진화…초개인화 서비스 승부수
    [현장에서] 카카오뱅크, ‘AI 금융 비서’로 진화…초개인화 서비스 승부수
  • “연금만으로 부족한 시대” 중국이 보여준 노후 현실
    “연금만으로 부족한 시대” 중국이 보여준 노후 현실
  • [쓸 수 있나요 ①] “스마트 뱅킹 시대“ 고령층 금융도 스마트한가요?
    [쓸 수 있나요 ①] “스마트 뱅킹 시대“ 고령층 금융도 스마트한가요?
  • 고유가 피해지원금, 나도 받을 수 있나?
    고유가 피해지원금, 나도 받을 수 있나?
  • 잠자는 돈, 숨은 돈, 5분이면 찾는다
    잠자는 돈, 숨은 돈, 5분이면 찾는다
저작권자 ⓒ 브라보마이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브라보 스페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