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령층은 나이가 들수록 질병과 사고 위험이 커지지만 정작 보험의 보호를 받기는 쉽지 않다. 과거 병력 때문에 가입을 거절당하거나, 소득 감소로 보험료 납부가 부담스러워 기존 계약을 해지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초고령사회에 맞춰 고령 유병자를 위함 보험상품을 확대하고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지속 가능한 보장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20일 보험연구원의 ‘포용적 보험 추진 현황과 제언’ 보고서와 한국금융연구원의 ‘포용적 보험의 활성화 필요성과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포용적 보험은 사회, 경제적 또는 인구통계학적 조건과 관계없이 필수적인 보험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개념이다.
저소득층뿐 아니라 고령자와 유병자, 장애인 등 기존 보험시장에서 충분한 보장을 받지 못한 계층을 포괄한다. 높은 보험료와 정보 부족, 전통적인 판매 채널의 한계, 디지털 격차 등으로 보험시장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보장 공백을 줄이는 것이 목적이다.
보험 필요할수록 가입 어려운 고령 유병자
보험연구원은 고령 유병자의 보험 가입 문제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보장 격차로 꼽았다. 과거 보험시장에는 건강한 가입자를 중심으로 설계된 표준체 상품만 존재했다. 보험 가입을 신청한 시점을 기준으로 최근 3개월에서 5년 이내에 입원이나 수술, 질병 진단 이력이 있으면 가입이 사실상 어려웠다.
건강 상태가 나빠질 가능성이 큰 고령층은 보험의 필요성이 높아지는 시기에 오히려 가입 문턱이 높아지는 구조였다. 보험료를 낼 수 있어도 과거 병력 때문에 가입을 거절당하거나 보장 범위가 제한될 가능성이 컸다.
전환점은 2012년 유병자보험 도입이었다. 보험 가입 심사에 활용하는 청약서를 건강 상태와 심사 조건에 따라 세분화하고, 유병자의 위험 수준에 맞춰 보험료를 달리 적용할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됐다. 건강한 가입자의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대신 병력과 위험에 맞는 별도의 상품 구조를 마련한 것이다.
보험연구원은 이를 정부의 직접적인 재정지원 없이 상품 개발과 제도 개선을 통해 고령 유병자의 보장 격차를 완화한 사례로 평가했다. 보험시장의 수요와 공급이 만날 수 있도록 가입 기준을 유연하게 바꾼 것이 효과를 거뒀다고 분석했다.
다만 유병자보험은 일반 보험보다 보험료가 높거나 보장 범위가 제한될 수 있다. 가입 가능한 상품이 늘어나는 것만으로 고령층의 실질적인 보험 접근성이 충분히 개선됐다고 보기는 어려운 이유다. 은퇴 이후 소득이 줄어든 고령층에게는 가입 여부뿐 아니라 보험료를 계속 낼 수 있는지가 또 다른 장벽이 된다.

G7 보험 가입률 85%…저소득층은 52%
소득에 따른 보험 보장 격차는 해외에서도 확인된다. 한국금융연구원이 인용한 제네바협회의 2024년 조사에 따르면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일본·이탈리아·스페인 등 G7 국가의 2만8000여 가구 가운데 85%는 의무보험을 제외하고 한 개 이상의 보험 상품에 가입했다.
반면 저소득층의 보험 가입률은 52%에 그쳤다. 전체 가입률과 33%포인트 차이다. 질병이나 사고가 발생했을 때 경제적 충격을 감당하기 어려운 계층일수록 보험의 보호에서도 소외될 가능성이 큰 셈이다.
해외에서는 이러한 격차를 줄이기 위해 보험료와 가입 절차를 낮춘 상품이 등장했다. 일본 메이지야스다생명은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사망, 의료, 간병 등을 소액으로 보장하면서 가입 절차와 보험료 부담을 낮춘 상품을 선보였다. 프랑스 AXA도 저소득층과 영세사업자를 대상으로 맞춤형 보험을 공급하고 있다.
그러나 보험사는 취약계층의 위험을 산정하는 데 필요한 통계가 부족하고 손실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해 상품 공급에 소극적일 수 있다. 취약계층 역시 보험료 부담과 낮은 보험 이해도 때문에 가입을 주저한다. 수요와 공급 양쪽에서 발생하는 장벽을 함께 낮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취약계층에 무상보험, ‘한 번 가입’ 넘어야
국내에서는 취약계층의 보험료를 지원하는 정책이 확대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보험업계가 총 300억 원의 기금을 조성해 신용보험과 상해보험, 기후보험, 풍수해보험, 화재보험, 다자녀 안심보험 등의 보험료를 3년간 지원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올해 3월에는 보험회사와 지방자치단체가 협력하는 상생보험 사업이 구체화됐다. 경남의 소규모 음식점 화재배상책임보험, 경북의 소상공인 매출 하락, 휴업손해 보상보험, 충북의 소상공인 사이버케어보험이 등이 대표적이다. 신용생명보험 가입자에게 대출 우대금리를 제공하거나 보증료율을 낮춰 보험료와 이자 부담을 함께 줄이는 방안도 포함됐다.
다만 보험연구원은 보험료를 한 번 대신 내주는 방식만으로는 지속적인 보장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현재 지원 재원이 보험업계 출연금이나 휴면보험금에 의존하고 있어 경기 상황과 보험회사의 수익성에 따라 규모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원 기간이 끝난 뒤 가입자가 보험료를 감당하지 못하면 다시 보장 사각지대에 놓일 가능성도 있다. 보험료 전액 지원 이후 본인부담금을 단계적으로 높이거나, 만기환급금을 재가입 재원으로 활용하는 등 연속적인 가입 구조가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우정사업본부의 상해보험 ‘만원의 행복’이 참고 사례로 제시됐다. 차상위계층 가입자가 1년 만기 상품은 1만 원, 3년 만기 상품은 3만 원을 부담하면 나머지 보험료를 우정사업본부가 지원한다. 가입자가 낸 보험료는 만기 때 돌려받아 같은 상품의 재가입에 활용할 수 있다.
보험연구원은 일시적인 재정지원뿐 아니라 보험시장 안에서 고령자와 유병자에게 필요한 상품이 지속해서 공급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험회사는 초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에 맞는 상품을 개발하고 금융당국은 병력 때문에 보험 가입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심사, 요율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후의 보험 사각지대를 줄이려면 가입 문턱을 낮추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된다. 고령층이 감당할 수 있는 보험료와 이해하기 쉬운 상품, 대면 상담을 포함한 접근성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포용적 보험이 일회성 지원이 아닌 지속 가능한 노후 안전망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가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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