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通信使는 조선과 일본의 평화를 위한 국가 사절단이다.
지금까지 일본의 큰 도시는 거의 다녀봤지만 정작 한국에서 제일 가까운 대마도는 가보지 못했다. 그리고 책을 통해서만 대강 알고 있었던 조선통신사의 경로도 궁금했다. 연휴를 이용해 10여 명의 친구들와 함께 대마도 숲길트레킹과 문화유적지 탐방을 3박 4일 일정으로 다녀왔다.
조선통신사의 이동경로를 따라 버스를 타고 창덕궁에서 출발해 문경과 안동을 거쳐 부산에 도착했다. 먼저 대마도행 ‘오션플라워’호 국제여객선을 타기 전에 자세한 정보를 얻으려고 ‘부산항 국제여객 터미널’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에 있는 ‘조선통신사역사관’을 찾았다. 장소는 대로변에 있어서 찾기 쉬웠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정보는 충분히 얻을 수 있었다.
조선통신사란 무엇을 말하는가?
여기서 통신이란 말은 ‘통신을 교환한다’, 신의를 나눈다는 뜻으로 통신사는 조선과 일본의 평화와 우호를 위한 사절로서 양국의 문화교류에 큰 역할을 하였다.
조선통신사는 일본의 요청에 의해 파견된 사절단으로 한양에서 부산까지는 육로로 보도행렬을 하였고 부산에서는 6척의 배를 타고 대마도(쓰시마)를 거쳐 일본 열도까지 건너갔다. 도착한 후에는 각 항의 일본 관리가 직접 조선통신사 일행을 수행하였다.
1607년부터 1811년까지의 약 200여 년간 조선통신사는 일본을 12번에 걸쳐 방문하였다. 도쿠가와 바쿠후의 경사나 쇼군의 계승이 있을 때마다 방문하여, 조선 국왕의 국서를 전달하고 도쿠가와 쇼군의 답서를 받았다. 제2회 방문은 교토(京都)의 후시미(伏見)에서, 제12회 방문은 쓰시마(対馬)까지 였으나, 그 외에는 모두 에도까지 왕복하였고 제4회부터 제6회까지는 닛코(日光)에도 방문한 흔적을 남기고있다. 조선통신사는 정사(正使)·부사(副使)·종사관(從事館)의 삼사(三使) 이하, 화원(画員)·의원(医院)·역관(駅官)·악사(樂士) 등 총 400명에서 500명에 이르는 대 사절단이었다. 조선의 수도 한양(漢陽)에서 출발해 일본의 수도인 에도(江戸)까지는 반년 이상이 소요되는 왕복 약 3,000㎞의 여행이었다. 긴 여로의 곳곳에서 통신사는 일본의 많은 문인과 필담을 나누고 노래와 술잔을 주고받았다. 조선통신사의 선단(船團)과 행렬은 일본의 민중들로부터 열광적인 환영을 받으며 일본 각 계층의 사람들에게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
조선통신사역사관 안에는 어떤 자료들이 있나?
이곳에는 임진왜란 이후 1607년~1811년까지 12차례 일본에 파견되었던 내용의 자료가 다양한 형태로 소장되어 있다. 역사관에 들어서자마자 모형으로 만들어진 옛 통신사 행렬 모습이 제일 먼저 눈에 보인다. 통신사절단이 타고 온 선박들도 글과 그림과 모형으로 진열되어 있다. 실물 형태의 모형으로 만들어진 자료와 영상실에서 3D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영상을 보니 어린이들도 재미있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