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혈이 주책이라니

기사입력 2017-07-11 09:40 기사수정 2017-07-11 09:40

“아이고 다 늙어 무슨 주책이야. 당신 아니라도 헌혈할 사람 많으니 그만 걱정 붙들어 매두시오.”

필자가 헌혈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는 이제 그만하라고 말린다. 나이 들어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헌혈하러 다닌다며 바가지를 긁는다. 그 말도 일리는 있다. 필자는 전혈비중이 낮아서 헌혈을 못하고 돌아선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헌혈을 말려도 말을 듣지 않으니 아내가 헌혈의 집에 직접 전화를 해서 노인네 피를 어디 쓰겠다고 그렇게 뽑아가느냐고 항의를 한 적도 있다.

헌혈은 건강의 상징이다. 헌혈할 때 주삿바늘 들어가는 따끔한 통증만 이야기하고 헌혈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건강하지 못하면 헌혈은 불가능하다. 헌혈의 집에 가면 헌혈자의 건강상태(체중, 혈압은 물론 헌혈 주기를 확인하고 말라리아 위험지역에서 숙박 등을 했는지도 문진을 통해 체크한다. 수십 개 항목의 문진을 통해 건강하지 않은 사람의 헌혈은 받아주지 않는다. 특히 헤모글로빈을 확인하기 위해 전혈비중을 검사하는데 기준치인 1.052에 미달하면 불합격이다. 필자도 이 기준치에 미달되어 불합격을 참 많이도 받았다. 헌혈하러 가서 못하고 돌아올 때의 그 씁쓸함은 마치 송충이 씹은 맛 같았다.

헌혈에 불합격된 날은 철분을 보충한다고 시장에 가서 철분이 많다는 선지 순댓국을 먹는 것은 기본이고 소 지라를 사 먹기도 했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헌혈에 매달리는 필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대다수 사람들은 주책바가지라고 비웃고 놀린다. 하지만 진실을 몰라서 그렇지 헌혈처럼 고귀한 행동도 없다.

현대 의료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피는 인공적으로 만들지 못한다. 동물의 피를 사람의 몸에 대신 넣어다가는 큰일 난다. 천 년을 산다는 거북이나 고귀함의 상징인 학의 피도 사람에게는 소용없다. 오직 사람에게는 사람의 피만 필요하다. 사람의 피는 사람에 의해 사람만을 위해 만들어진다. 인체를 소우주로 비교하면 혈액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드라마틱한 종합 예술이다. 아직까지 그 신비로운 비밀을 알아내지 못했다. 헌혈은 기계나 알파고도 대신할 수 없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사람 사랑이다.

오늘로서 헌혈을 58회 했다.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50회 했을 때는 적십자사 총재로부터 금장을 받았다. 100회에 도달하면 명예의 전당에 오른다. 주책바가지의 ‘주책’은 한자어 ‘주착(主着)’이 변한 말이다. 주착은 본래 ‘줏대가 있고 자기 주관이 뚜렷해 흔들림이 없다’라는 의미를 가진 좋은 말이다. 나이 들어 헌혈한다고 주책이라니 어림없는 말이다.

헌혈의 집에 가면 언제나 젊은 사람들로 넘쳐난다. 필자처럼 나이 든 사람이 헌혈 대열에 동참하는 것을 보고 주책없다고 놀려도 흔들림 없이 건강한 몸을 가꾸어 몸으로 보시하는 헌혈을 계속 해나갈 것이다. 헌혈은 건강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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