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발, 미니스커트 그리고 명동 이야기

기사입력 2017-09-05 11:16 기사수정 2017-09-05 11:16

▲그리운 명동 거리(박혜경 동년기자)
▲그리운 명동 거리(박혜경 동년기자)
필자는 명동을 좋아한다. 서울의 심장부라는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는 젊은 날의 추억이 빼곡히 담겨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대학을 다닐 때도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명동에 나와 노는 시간이 더 많았다.

한때는 겉멋이 들어 사보이호텔 골목의 ‘화이어 버드’나 예쁜 이름의 칵테일 집을 찾아다니며 커피보다 두세 배는 더 비싼 슬로우 진이나 스쿠르 드라이버, 카카오 주스 같은 칵테일을 마시고 다니기도 했다.

명동은 바둑판 같은 모양으로 펼쳐져 있어 어디를 가든 어떤 골목이든 예전 모습과 같다. 물론 거리를 장식한 쇼윈도의 업종은 많이 바뀌었지만, 그때의 낭만과 추억을 찾아보기에는 그리 어렵지 않다.

요즘 길거리에 나가 보면 쭉쭉 뻗은 각선미를 자랑하는 젊은이의 모습이 넘쳐난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의 차림새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 건강해 보이고 예뻐서 한참을 바라볼 때가 있다. 비록 나이는 많이 들었지만 필자도 미니스커트를 좋아한다. 그렇다고 다리를 훤하게 내놓는 짓은 하지 않는다. 겨울날 긴 코트를 입으면 그 안에 살짝 미니스커트를 착용하는 정도다.

젊었을 때 미니스커트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다. 대학 3학년인가 4학년 때 우리나라에서는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을 했다. 장발을 한 청년이 단속에 걸리면 머리카락 일부가 가위로 싹둑 잘려나가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여자들은 그 당시 얼마나 단속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옷을 양장점에서 맞춰 입던 시절이었는데, 가봉을 할 때마다 양장점 아저씨 아줌마(디자이너)들과 실랑이를 벌이곤 했다. "조금만 더 짧게요, 더, 더.", "안 돼!! 그만 올려!" 하면서 말이다.

 

어느 날 단짝 친구 영주와 명동엘 갔다. 물론 필자는 초미니 차림이었다. 그런데 명동예술극장 근처에서 필자가 경찰관에게 체포(?)되고 말았다. 파출소에 가 보니 장발한 청년들로 북새통이었다. 요즘도 가끔 옛 생각을 하며 그리운 명동을 거닌다. 그러다가 파출소가 보이면 그날이 생각 나 항상 미소가 지어진다.

그날 필자 친구 영주는 쇠창살을 두른 유리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필자는 죽고 싶을 정도로 창피했고 또 무서워서 벌벌 떨었다. 경찰이 학교에 연락하겠다고 엄포를 놓았기 때문이다. 학교와 과를 물은 뒤 훈방되었지만 무척이나 가슴을 졸였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필자 인생에서 그런 에피소드라도 있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밋밋하고 싱거웠을 인생이었을 테니 말이다.

다음 날 학교에 가니 교수님이 "자네 어제 명동파출소에 갔었나?" 하고 물으셨다. 필자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창피했으므로.

"아닌데요…."

그때 우리 과에 필자랑 이름이 같은 친구가 있었다.

"아, 그럼 그 녀석인가보군."

그쯤에서 사건은 마무리되었는데, 교수님이 그 친구에게도 같은 질문을 하셨는지는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그렇게 무사히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 죽고 싶을 만큼 부끄럽고 창피했던 일도 훗날에는 하나의 추억이 되기도 한다. 그 시절이 자꾸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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