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슬픈 가족사가 있다. 아버지는 뭇매를 맞았다. 아버지는 오봉산 꼭대기에 숨어 있었으며, 거기는 증조할아버지의 산소가 있는 곳이다. 할아버지의 산소가 있어서 의지가 된다고 생각했을까. 아버지는 외아들이었고, 북으로 도망치는 인민군에게 발각돼 아버지는 혼쭐이 났다. 우리 집은 인민군의 숙소가 됐고 주인인 아버지는 눈치를 보느라 산 속에서 지냈다.
6월이면 한해의 전반부가 마쳐지고 2016년 후반부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올해 환갑인 제 입장에서 이 시점은 제가 살아가는 기간 중에 반드시 의학적인 연구가 이어져 아마도 120세사시는 분이 많이 보여질 그 시대가 될 것이기에 인생의 후반부가 이제 시작되는 나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노인정어르신들의 분포도를 볼 때 90세 이상은 되어야 어른대접을 받고
나는 대한장애인댄스스포츠서울연맹 소속 선수 겸 코치이다. 자원봉사자로서 시각장애인들을 대상으로 댄스스포츠를 가르치고 있다. 시각장애인들은 혼자서는 댄스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나 같은 비장애인이 파트너로 같이 경기대회에 나간다. 올해가 4년째이다.
장애인들은 겨울철 빙판이 위험하기 때문에 겨울 동안에는 훈련을 쉰다. 그리고 대략 4월부터 새로 선수등록을
지난 5월, 집집마다 활짝 피어 올랐던 카네이션 꽃들이 아쉬운 눈빛으로 저만큼 자취를 감추고 그 남은 향내마저 시들어 뒹굴 때쯤이면 부서진 꽃잎들은 흐린 미소로 전해온다. 또다시 6월의 꽃들은 정녕 눈부심이라고 나지막하게 내 귓가에 희망을 담고 속삭여온다.
장하다. 내 딸들아! 그리고 앞으로도 화이팅!
내게는 두 딸이 있다. 그리고 그 딸들은 6월이 되
집안에 특별한 행사가 없는 달에 아내 직장으로 꽃바구니를 보냈다. 엽서에 다음과 같이 짧은 글을 넣었다. ‘특별한 일이 없는 달이라서 보냄. 온 산야에 꽃이 만발했으니 자기 책상에도 꽃을 놓아두길….’ 그 꽃바구니는 마침 아내가 자리를 비운 틈에 도착했고 짓궂은 직장 여성 동료들이 동봉한 카드를 읽게 되었다.
저녁에 집에서 만난 아내는 표정 관리하면서
나는 경상도 산골에서 읍내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는 할아버지의 권유로 대도시인 인천으로 갔다. 할아버지가 나를 대도시로 보내고자 한 데는 그분 나름대로 믿음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경상도 사람이 소백산 준령을 넘어 서울로 가면 잘 산다는 옛말이 있다고 너는 서울로 가라고 몇 번 말했다. 어린 마음에도 궁금했다. 할아버지는 농사지으며 시골에 살면서 나보고는
6월이면 으레 옷장을 정리한다. 겨울옷과 여름옷을 바꿔 넣고 내친김에 잡동사니들도 버리느라 대청소로 접어들곤 한다.
올해도 손쉬운 서랍장부터 열어 본다. 재킷 속에 받쳐 입었던 목 긴 스웨터와 짧은 소매 스웨터가 엉켜 있다. 원래 계절이 바뀔 즈음엔 서랍 속 내용물이 엉키기 마련이다. 가끔은 계절을 거스르는 날씨 탓이다.
중년을 넘어서면 점점 어울리는
이재준(아호 송유재)
꼭 42년 전 이맘때, 설악산 장군봉의 금강굴에서 홀로 7일을 지낸 일이 있었다. 군 제대 후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깊은 생각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매일 마등령을 오르내리며, 세찬 바람에 스쳐지나가는 운해(雲海)의 그림자 밑에 누워 마음을 비우려 안간힘을 다했다. 새벽마다 비선대까지 내려가 찬물에 얼굴을 담그고, 그 물빛만큼이나
서울 종로구 원서동, 창경궁 돌담길을 지나 걷다 보면 고즈넉한 분위기의 고아한 한옥들과 만나게 된다. 그중에서도 옹기종기 장독들이 따스한 햇볕을 머금는 곳이 있으니, 바로 ‘궁중음식연구원’이다. 1971년 궁중음식의 대가이자 인간문화재인 황혜성(黃慧性·1920~2006) 선생이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인 ‘조선왕조 궁중음식’을 전수하기 위해 마련한 곳으로,
시니어 패션에 관해 이야기를 해달라는 말에 가슴 가득히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사실 시니어의 스타일은 비단 입는 것으로만 표현되지 않는다. 멋있게 늙어가는 것이 바로 제대로 된 시니어 인생을 사는 모습이 아닐까. 과거의 영광은 버리고 품격을 입어야 한다. 거기에는 물론 옷을 입는 패션 스타일도 있을 것이고, 봉사활동도 하며 책도 많이 읽어야 한다. 시간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