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을 맞으며] 6월에 쓰는 엽서

기사입력 2016-05-10 10:11 기사수정 2016-06-22 12:56

집안에 특별한 행사가 없는 달에 아내 직장으로 꽃바구니를 보냈다. 엽서에 다음과 같이 짧은 글을 넣었다. ‘특별한 일이 없는 달이라서 보냄. 온 산야에 꽃이 만발했으니 자기 책상에도 꽃을 놓아두길….’ 그 꽃바구니는 마침 아내가 자리를 비운 틈에 도착했고 짓궂은 직장 여성 동료들이 동봉한 카드를 읽게 되었다.

저녁에 집에서 만난 아내는 표정 관리하면서 자기는 현금이 좋은데 뭐하러 쓸데없이 꽃을 보냈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그러면서 직장 동료들이 나를 소환했다고 한다. 정신적으로 심하게 타격을 받았기 때문에 꽃을 보낸 남자를 소환해 밥을 뺏어 먹어야겠다고 했단다. 아내 직장 동료들은 특별한 날이 있을 때도 꽃을 받아보지 못했는데 이건 너무 잔인한 처사라고 했다던가.

소환되던 날 아내의 직장 동료들은 나를 성토하려고 잔뜩 벼르고 나온 듯했다. 그러나 나도 그냥 당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저녁 식사는 그들이 자주 회식장소로 이용하는 횟집을 선택했다. 그리고 회식할 땐 거의 못 먹는 그 집에서 제일 비싼 특선 회 코스요리를 주문했다. 일단 푸짐한 특선 요리로 기를 좀 누른 다음 술로 적당히 분위기를 띄우고 나서 노래방으로 유도했다. 그날 나는 오십 대 아줌마들 앞에서 체면을 다 버리고 망가졌다.

다음 날 퇴근한 아내는 매우 난처한 표정으로 나에게 다음과 같은 충격적인 이야기를 했다. “어제 자기하고 놀고 나서 그들이 더 큰 상처를 받았대. 그래서 한 번 더 자기를 소환해야겠다는데….”

지금 우리는 카톡과 밴드가 난무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루에도 글이 수십 건씩 올라온다. 그것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휴대폰을 징징거리게 한다. 똑같은 내용이 이 밴드, 저 카톡으로 복사돼 날아다니기도 한다. 깨알같이 작은 글씨라서 읽는 게 고통인데 내용은 왜 그리 많은지. 그 많은 내용대로 읽고 답하려면 도덕군자도 힘들 거라는 생각에 대부분 앞부분만 읽고 지워버린다.

우리는 이제 더는 손 글씨 안부 인사를 주고받지 않는다. 연말이면 수많은 안부 인사와 도덕적인 말귀를 담은 현란한 연하장 이미지들이 SNS를 타고 날아다닌다. 그 이미지들을 누가 그렇게 많이 만들어 내는지 궁금하다. 디자인도 수준 이하인 경우가 많다. 서로 전달하고 퍼 나르다 보면 같은 이미지가 돌고 도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렇게 종이 연하장이 사라진 것은 대세가 된 SNS 때문이기도 하지만 연말에 행사와 모임도 많아 지인들에게 손 글씨 연하장를 쓰기가 쉽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필자는 역설적으로 6월에 엽서를 쓴다. 그동안 잊고 지내던 고마운 분들과 바쁘다는 핑계로 한참 못 만나고 지내는 지인들에게 아주 짧으나 진정성 가득한 엽서를 쓴다. 또 엽서를 쓰면서 명함첩도 정리한다. 명함첩을 넘기다가 문득 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전화를 건다. 아주 친근하고 반가운 사이라는 것을 목소리로 확인할 수 있다.

6월은 봄과 여름의 경계라서 좀 어정쩡한 느낌이 드는 달이다. 지천으로 꽃이 널려 있는 봄과는 좀 거리가 있는 것이다. 또 ‘호국보훈의 달’이어서 마음도 다소 무겁다. 더구나 6월이 되면 세월의 빠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벌써 한 해의 반이 지나갔다고…. 곧 닥칠 장마가 지나면 여름의 한가운데에 있을 것이고, 이어 가을, 겨울이 오면 또 해가 바뀐다.

그러나 계절이 어정쩡하고, 순국선열의 아픔이 가슴을 저리게 하고, 일 년의 반을 접은 탓에 마음이 답답하더라도 이길 방법이 있다. 바로 6월에 쓰는 엽서다. 이 엽서 한 통이 특별한 이유 없이 아내에게 보낸 꽃바구니와 같은 특별함을 가져다줄 것이다. 특히 못 만나던 친구들의 소환도 은근히 기대해볼 수 있으니 일거양득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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