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 남녀가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지난 8월 말부터 매주 금요일 모여 난타 연습과 스포츠 댄스를 배운다. 강남시니어플라자 대표 싱글 모임인 회원 중 8명. 11월 말에 있을 플라자 내 교육 프로그램 발표회에서 난타 공연을 할 예정이다. 싱글들의 모임이라 그럴까? 생기가 넘친다. 왠지 모를 자연스러움에 나이까지 잊게 만든다. 그렇지만 속내는 알 수 없다. 탐색을 하고 있는지, 정말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지 말이다. 격 있는 싱글들이 모인 김에 솔직하게 물어보기로 했다. 당신들의 속내, 지금 연애가 하고 싶습니까?
난타와 댄스스포츠를 가르치는 이복자씨 속사정
난타 소모임의 반장격인 이복자씨를 제일 먼저 만나 살아온 얘기를 들어봤다. 초등교사로 은퇴한 이복자씨는 부유한 집안에서 나고 자랐다. 한국무용을 공부했고 초등학교 교사로 지내면서도 무용학교 입시 안무가로 젊은 시절 제법 잘나갔다. 스포츠 댄서로서도 한 획을 그었다고 자부하는 이복자씨. 그랬던 그녀는 재작년 황혼이혼을 했다. 작년 9월부터는 싱글의 몸으로 봄빛클럽 회원이 됐다. 지금은 나름의 재능을 살려 회원들에게 난타와 댄스스포츠를 가르친다.
이복자 황혼이혼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였어요. 남편의 술버릇 때문이었죠. 젊을 때는 교사라서 못하고, 아들 결혼식에 빈자리를 만들기 싫었습니다. 결국 이혼했어요. 아들이 결혼하고 나서 호주로 떠났는데 제 걱정을 많이 했거든요. 혼자 있다 보니 외로웠어요. 자존심상 주위에 혼자된 사실을 알리고 싶지도 않고요. 그러다가 봄빛클럽을 알게 됐습니다. 법적으로 혼자라는 것을 증명하고 상담도 받은 뒤 회원이 되면 싱글들끼리 만날 수 있는 곳이라고 들었어요. 건전하고 나 또한 싱글이니까 마음놓고 얘기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봄빛클럽 안에 최근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지만 말 그대로 탐색 중이다. 그녀에게는 분명한 것 하나가 있다.
이복자 남자 경제력은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가지고 있는 것과 연금으로도 두 명 충분히 살 수 있거든요. 마음이 맞고 편한 상대를 만나고 싶어요. 사실 제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그분에게 당신이 편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뭐 어때요? 여자라도 마음에 들면 말하는 게 맞죠. 말 못할 이유가 없잖아요(웃음)?
하나, 둘 회원들이 모이고 왁자하게 웃음꽃이 폈다
난타 모임은 발표회를 위해 급조된 모임이다. 이곳에 모인 회원들은 공연이 끝난 뒤에도 매주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사진 촬영을 위해 테이블 주위에 회원들이 오순도순 모였다. 봄빛클럽 단장이었던 이활주씨와 난타를 가르치는 이복자씨, 이영조·최연서·현정원·김순섬씨. 그리고 이복자씨의 댄스스포츠 파트너인 박노용씨도 나오지 않은 회원을 대신에 자리를 채웠다. 이날 모인 사람 중 유일하게 가정이 있는 남자다.
본격적으로 싱글 남녀와 대화를 열다
싱글이신데 젊었을 때와 지금 이성을 만나는 느낌은 어떻게 다른가요?
이영조젊을 때는 좀 화끈하잖아요. 그런데 나이든 사람들의 만남은 하루하루 만나면서 즐거운 상태를 유지하는 거죠. 서로가 함께 있으면서 취미를 공유하고 같이 모이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봐요.
이복자 모여서 떠들면서 스트레스도 날리고 외로움도 해소하는 거죠.
최연서 젊었을 때의 연애는 쓰나미 같은 것이고, 지금의 연애는 밀물 같아요. 이 나이에는 쓰나미처럼 사랑할 수 없어요.
Q. 좋아하는 사람이 있나요?
최연서 우리 생각은 시시때때로 바뀌어야 맞잖아요? 다른 사람 보면 또 바뀌고 그래야죠. 우린 싱글이니까요. 어떻게 사람이 같은 사람만 좋아할 수가 있어요(웃음)?
이복자 취미활동을 하다 보면 마음이 맞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고 그러다가 개인적으로 만남을 갖는 사람들도 생기지 않을까요?
Q. 주로 어디서 만나시나요?
이영조사람이 그리울 때 저는 주로 저희 집으로 오라고 합니다. 집에 볼 만한 영화도 많고, 노래방 기계도 있어요. 그런데 전부 다 모여 먹고 마시다 보면 같이 영화 보고, 노래 부를 사람이 없더라고요. 다음에 영화 볼 때는 몇 사람만 와서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때 갑자기 최연서씨가 이영조씨와 이복자씨가 함께 영화 을 봤다는 얘기를 꺼낸다. 야한 장면이 나오는데 둘이 괜찮았냐며 소녀처럼 묻는다.
이복자 문제는 그런 거를 같이 봐도 아무 감각이 없었다는 거 아냐? 이제 완전히 고목이 됐나봐. 지금 연서씨가 얘기하니까 그런 게 있었나보다 하지. 이제는 그런 장면을 봐도 감정이 막 생기고 그런 게 없더라고요.
Q.댄스스포츠 같은 거 하다 보면 찌릿한 느낌 없나요?
최연서 그럴 만한 사람을 만나면 그렇겠죠. 그런데 친구 사이로 생각하는데다가 배우는 데 집중해서 그런지 잘 몰라요, 그런 거.
이복자 지금은 댄스스포츠를 배우고들 있으니까 배우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라도 더 배워서 안 잃어버리려고 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은 잘하나 못하나 그거에만 신경을 쓰지 남녀라는 느낌이 없어요.
이영조 지금 자꾸 내용을 그런 쪽으로 몰고 가는 거 아닌가요?
수줍어서인지 즐거워서인지 다들 박장대소한다. 격조 있는 싱글들이 만났으니 뭔가 있을 거 같다고 느꼈다.
이활주 우리가 만나봐야 한 달에 번개까지 해서 한두 번 만나요. 좀 얘기하다가 식사하고 노래방 가고, 끝나면 집에 가기 바쁘니까 따로 시간 내서 한잔 더, 혹은 차라도 한잔 이런 걸 못 해요. 지금 그것을 파악하는 중이지요. 그래도 처음보다는 서로를 많이 알게 됐어요.
Q.솔직히 말해보셔요, 다들 연애는 하고 싶으세요?
최연서 좋은 친구는 만들고 싶죠.
김순섬 마음 통하는 친구가 있으면 좋겠어요.
Q. 얘기가 잘 통할 때 연애가 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으신가요?
이영조 희망사항이죠. 문제는 생각하는 이성이 없는 건 아니에요. 솔직히 말해서 이곳에서 혹시 남녀가 불이 붙으면 이 모임에 나올까요(웃음)? 관둡니다. 그건 분명해요.
이복자 자기들끼리 만나야 하니까.
이영조 맞아요. 남들과 어울리지 않고 둘이 만나니까 안 나오더라고요.
Q. 혹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면 헤어졌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일 수 있겠어요?
김순섬 다시 들어오지는 않겠지. 자존심이 있는데 헤어졌다고 들어오나?
이활주 사실 예를 들어 “나 누구하고 만난다”고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자존심이고 뭐고 없어요. 시치미 떼고 다시 오면 오는 거죠. 아무도 모르니까요. 그리고 모임 회원 중 많게는 몇 사람 혹은 한두 사람은 서로 신상 탐색을 위해 밖에서 만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Q. 이 모임은 싱글 모임인데 다른 모임과 차이가 있다면 얘기해주세요.
이복자 제 친구들 중에는 싱글이 많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친구들하고 모임을 하다가도 시간이 되면 바삐 집으로 가요. 남편 밥 챙겨주러요. 집안일이 그렇게 딱 걸리더라고요. 그런데 우리 같은 싱글들은 집에 빨리 가야 하는 부담이 없어서 좋아요. 여기는 싱글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니까 위화감은 없어요.
Q. 싱글 모임을 하면서 좋은 점이 있다면요?
김순섬 다른 내 친구들은 싱글이 아니니까 내가 만나고 싶을 때 못 만나요. 그런데 여기는 내가 전화하면 만날 수 있어요. 요즘 다른 친구들한테 자랑해요. 너희들 없어도 요새 나는 잘 놀고 있다고요(웃음).
Q. 같이 갔던 장소 중에 좋았거나 기억에 남는 곳이 있었나요?
현정원 춘천 갔을 때도 재밌었고, 대하도 먹으러 갔었어요. 11월에는 충남 태안에 천리포수목원으로 2박 3일 계획하고 있어요. 봄빛클럽에서 희망하는 사람들만 갑니다.
솔직하지 못한 싱글 남녀들의 머뭇거림에 이날 객원 멤버로 참여한 무용실 원장 박노용씨가 한마디한다.
박노용 너무 생각이 깊어요. 만나는 거 자체는 흥미롭고 좋은데 열지 못하는 거죠. 가정이 있는 제가 느끼기에도 몇 가지 장단점이 느껴집니다. 자유로운 모습을 보니 한편으로 좋아 보이기도 하네요. 각자에게 주는 감정이 참 세밀합니다. 그런데 젊음이 떠나서 그런가 들이대는 게 부족해요(웃음).
이활주 그 말이 맞을 거예요. 다른 사람 눈치를 보게 돼요. 가족의 눈 등 일단 다른 사람들의 눈이요. 좋아하는 상대의 좋은 점을 발견하고 알아가면서 좋은 감정을 만들 수도 있으련만.
최연서 자신에게도 신중해야 하고 남들도 생각해야 하고 젊었을 때랑은 다를 수밖에 없죠.
이복자 나이 들어보니 감정은 뒷전이고 이성적으로 이것저것 가리게 되니까 빨리 뭐가 안 이뤄지는 거죠.
박노용 남녀 간의 사랑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따뜻한 친구는 얻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이런 싱글 모임이 좋은 거 같아요.
최연서 누군가 말하기를, 이성 친구는 딱 보고 1분 내로 결정하라더군요. 단 지성과 양심 중에 양심 쪽을 택하라고 하더군요. 나이 많은 사람과 젊은 사람은 만남이 달라요.
시니어 싱글 남녀. 이들도 결국은 진짜 사랑을 만나고 싶고, 지금까지의 삶을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젊은 사람들처럼 사랑을 표현하고 내세울 수 없다. 삶에 대한 책임감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보다 클 수밖에 없다. 바로 이 마음이 시니어들이 사랑을 생각하는 방식이 아닐까.
18대 국회의원을 지낸 정옥임씨(鄭玉任·56)는 6년 전에 이혼하고 황홀한 돌싱(돌아온 싱글) 생활에 푹 빠져 있다. 데이트를 질리도록 하고 난 후 밤에 떨어지기 싫을 정도로 사랑하는 남자가 생겨도 앞으로 다시는 결혼 안 한다고 잘라 말한다. 지금처럼 뭇 남성들의 사랑고백을 받으면서 연애만 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그녀의 속내를 들춰보자.
이봉규 시사평론가
정옥임은 미녀 정치인의 대명사이자 베스트드레서로도 꼽힌 바 있는 매력적인 여인이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나이가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여전히 눈부시게 아름다웠고 날씬했다. 레스토랑에서 저녁 6시에 만났는데 나 혼자만 밥을 먹었고 그녀는 생맥주 한 잔으로 저녁을 대신했다.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평소 저녁을 거를 정도로 필사적이다. 외모에 자신감이 충만해서일까 반지나 목걸이 같은 보석은 착용하지 않았다. 그녀의 외모 가꾸기는 “자기 자신의 관상용”이라고 항변하지만 아직도 뭇 남성들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기에 자신의 외모는 가장 자랑스러운 자산일 것이다.
6년 전에 이혼하고 황홀한 돌싱(돌아온 싱글) 생활에 푹 빠져 있다. 그렇다고 방탕할 만큼 어리석은 여자는 절대 아니다. 자기관리에 충실하면서도 적당히 즐길 줄 아는 앙큼한 여인이다.
“마음에 드는 남성이 나타나면 먼저 대시할 용기 있다”고 말하면서도 상당히 재고 또 잰다. 알다가도 모를 그런 여자다. “여자들은 비밀스러운 스토리가 많아서 양파와 같다”면서 “알려고 파고들면 곤란하다”고 나에게 엄포를 놓는다. 그렇다고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내가 적당히 물러날 리 만무하다. 한량 이봉규가 느물느물하게 파고들어가니 그녀는 서서히 무장해제된다. 앙큼한 것 같으면서도 순진하고 순수한 여인이다.
10세 이상 연하의 남성에 매력이 끌린다고 고백한다. 최근 띠동갑 정도 어린 남자와 야릇한 감정을 교환한 적이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육체적 관계로까지 발전하기에는 겁이 덜컥 나서 적당히 밀고 당기는 정신적인 감정만으로 짜릿했다”고 말하는 그녀의 볼은 어느새 붉어진다. 몇 년 있으면 환갑인 나이에도 소녀 같은 표정이 묻어 나온다. 띠동갑 연하의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지만 자칫 자신이 무너질까봐 겁이 나서 밀고 당기는 심리일까? 영화 의 주인공으로 나오는 중년 남자(제레미 아이언스)처럼 주체할 수 없는 격정으로 치닫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처럼 보인다. “인생은 짧은데 후회하지 말고 저질러보라!”는 나의 도발에도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일정 틀 속에 가둔다. 그런데 그 틀이 조만간 깨질 수도 있겠다는 조심스런 예감도 들었다.
정치토론할 때 터프하게 도발하는 그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그래서 본인의 입으로 여자는 양파와 같다고 말했는지 모른다. 정당하게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나는 완전한 자유인이다”라고 외치면서도 이리저리 까다로울 정도로 재고 또 잰다. 정치인이자 세 명의 딸을 둔 엄마로서 띠동갑 연하의 남자와 대놓고 육체적 사랑을 하기에는 잃어버릴 것이 너무 많아서일까? 아니면 10년 후까지도 가지 못할 사랑이라서 미리 ‘손절매’(주식용어)라도 하는 걸까? 10년 후면 정옥임은 60대 후반인 데 반해, 그는 50대 중반의 팔팔하게 젊고 매력적인 남성이기에 자신이 추해 보일까봐 미리 겁을 먹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우려하는 표정을 읽었는지 그녀는 곧바로 “어느 도사님이 그러는데 나는 늙어서도 남자들이 줄줄 따르는 타고난 남복(男福)이 있다”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본인 입으로는 말을 안 했지만 내 추측으로 띠동갑 연하의 남자와의 정신적인 밀고 당김은 현재도 진행형인 듯싶다. 틀려도 할 수 없고….
눈이 작고 쌍꺼풀이 없는 남자이면서 건강미가 있고 뇌섹남(뇌가 섹시한 남자)을 좋아한다고 하니 그의 모습이 대충 그려진다. 어린 남자를 좋아하는 심리는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누구에게 의지하기보다는 누군가를 보호해주고 싶고 포용해줄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어린 남자의 신선한 육체와 순수한 영혼이 늙은이들과 비교되어서 그럴까? 어린 여자를 좋아하는 대부분의 남자들 심리와 같은 것이겠지!
전 남편과 1983년 결혼해서 4년 만에 갑자기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버렸는데 그제야 남편과 안 맞는다는 불편한 진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불행을 타파하기 위해 내놓은 고육지책이 애들 데리고 미국에서 공부하는 것이었다. 단단히 마음먹고 1995년 비행기에 올랐다. 늦은 나이에 공부하면서 아이 세 명을 키우는 일이 보통 어렵지 않았기에 스파르타식으로 살았다고 회상한다. 어릴 적 를 감명 깊게 읽었는데 어려운 시기에 큰 지침이 되었다고 한다. 다행히 아이들도 엄격한 생활을 잘 이겨내고 나름 멋지게 성장해주었다. 대견하게 생각하면서 스스로 자랑스러움을 느낀다. 남편과 떨어져 살면서 바쁘고 힘든 생활이었지만 오히려 행복감을 느꼈기에 6년 전 이혼하고 말았다.
“전 남편이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하니 돌싱으로 사는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뒤돌아보지 않는 그녀의 화끈한 성격 탓일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여자들은 옛사랑보다는 현재에 충실하다는 어느 심리학자의 말이 떠오른다.
데이트를 질리도록 하고 난 후 밤에 떨어지기 싫을 정도로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도 앞으로 다시는 결혼 안 한다고 잘라 말한다. 지금처럼 뭇 남성들의 사랑고백을 받으면서 연애만 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그녀의 본심은 인생의 여백을 즐기기 위함일 것이다. 지금까지 처절하게 살아온 자신에 대한 보상심리일 수도 있겠다.
그녀의 인생은 최고를 향한 처절함의 연속이었다. 서울 성신여대부속여자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고 고려대학교 정경대학에 특차 수석 입학해 정치외교학을 전공하는 4년 내내 장학생이었고 정경대학을 수석 졸업했다. 결혼 후 딸 셋을 두고도 뒤늦게 고려대학교에서 1995년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 후 과정(Post-doc)으로 스탠포드대학에서의 강의를 시작으로 미국 후버연구소, 세종연구소,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CNAPS(동북아정책센터) 등 국내외 최정상의 연구기관에서 활동했다.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캠프에 참여했고 이후 외교·안보·통일 분야의 전문성을 인정받아 18대 국회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당선되었다.
이렇게 최고 전문가로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은 늘 남는다고 한다. 국내 박사라는 이유로 우리 사회에서 차별도 많이 받았다. 보통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최고 전문가를 지향했고 남다른 자존감이 있었기에 그녀 나름의 견디기 어려운 박탈감이 있었을 것이다. 특히 국제정치 분야에서는 국내 박사보다는 미국 박사를 더 우대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상대적으로 차별을 당했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도 자신이 제일 잘하는 일이 외교 분야이고 가장 하고 싶은 일도 외교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다시 태어나도 외교 전문가가 되겠다고 하니 그녀는 천직을 가진 행복한 사람임이 분명하다.
분위기가 무르익어 국내 정치 얘기로 화제를 옮겼더니 금방 표정이 달라지면서 흥분한다. “지금 새누리당이 제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고 날선 비판이다. “문재인이 집권하면 위험하다는 위기의식이라도 보여줄 수 있는 대권 후보조차 보이지 않아서 걱정”이라고 탄식한다. “반기문 UN 사무총장은 그동안 스펙만 보여줬을 뿐 대통령으로서 역량과 결기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고 깎아내린다. 김무성 전 대표도 지난 총선 때 자신이 주장했던 ‘오픈프라이머리’를 지키기 위해 온몸을 던졌어야 하는데 대권 주자로서 기회를 놓쳤다고 애석해했다. 김무성 스스로의 대권 욕심 때문에 망쳤다는 진단이다. 당 대표까지만 생각하고 조율자로서 큰 그림을 그려야 했는데 자기 욕심 때문에 판단력이 흐려져 본인 지지율도 떨어뜨리고 당도 망쳤다고 강한 비판을 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지금의 난국과 새누리당을 이 꼴로 만든 것은 결국 대통령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자기반추 없이 정권 재창출을 노린다면 양심 없는 행위”라고 힘주어 말한다. 심지어 “지금의 정치를 보고 있노라면 조선시대 내시와 상궁들이 정치하던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비판한다.
불과 30분 전에 연애 얘기 할 때와는 사뭇 다른 톤으로 거침이 없다. 정치 얘기에는 이리저리 재질 않는다. 이래서 정옥임은 정치를 하는구나!
“자기 자신의 일생에 대해 몇 점을 줄 수 있나?”는 질문에 주저 없이 “A플러스”라고 대답하면서 “자기 자신은 못 속인다”고 덧붙인다. 그만큼 자신의 인생에 당당할 수 있다는 자기 진단이다. 당찬 모습 뒤에는 여리고 순수한 모습도 어른거린다. 알 수 없는 앙큼한 양파 같은 여인과의 짜릿한 시간이었다.
박정희 혜담(慧潭) 인상코칭 연구원장 ilise08@naver.com
샤워를 하거나 화장을 할 때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자기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게 된다. 가끔은 눈에 안 띄었던 점이나 잡티, 기미 등이 발견되어 속상해지기도 한다. 또 좁쌀 모양의 돌기들이 피부 위에 우둘투둘 돋아 있으면 마음이 심란해진다. 얼굴색만 봐도 건강을 알 수 있다는 말을 우리는 종종 듣는다. 일면 타당한 얘기다. 그러나 얼굴색으로 가까운 미래를 알 수 있다면 좀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얼마 전 가까운 지인과 만나 저녁식사를 하는데 지인의 이마 색이 어두웠다. 무슨 일이 있어 보였지만 묻기가 조심스러워 눈치를 살피고 있는데, 직장 일이 많이 힘들다고 털어놓는다. 설상가상으로 부모님의 건강도 좋지 않다며 한숨을 쉰다. 그 고단함과 염려스러움이 얼굴에 고스란히 나타난 것이다.
사춘기 아이들이나 취업 준비생들의 이마에는 여드름 종류의 뾰루지가 많이 난다. 이마가 붉은 색을 보이면 심장에 열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걱정이 많거나 신경 쓰는 일이 많다. 신경이 예민하면 더 심해지기도 한다. 이마를 덮는 헤어스타일은 피부에 붉은 반점 등 염증을 일으킨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이마에 붉은 색의 뾰루지가 나면 관상학적으로 자신의 실력을 다 발휘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길 수 있으니 피부과에 가서 치료를 받을 것을 권한다. 특히 여행을 가거나 중요한 업무로 먼 길을 가야 할 때는 이마(특히 머리카락이 나 있는 경계 부분)를 잘 살펴보자. 이마 윗부분이 검은 구름이 낀 듯 어둡거나 뾰루지가 나 있으면 여행지에서 건강이 나빠질 수 있으며 재산 등의 손실을 볼 수 있다. 과거에 필자는 여행 전날 이마에 붉은 뾰루지가 나더니 여행지에서 지갑을 잃어버리고 배탈까지 나서 여행을 망친 경험이 있다. 그 후로는 더욱 조심하게 됐다.
“연애하고 싶으냐, 눈 밑을 밝혀라.” 어느 회사의 한방화장품 광고 카피다. 눈 밑 살은 와잠(臥蠶) 또는 애교살이라고 부른다. 힘들고 피곤해 보이는 사람을 보면 우리는 “다크서클이 발밑까지 내려왔다”라고 표현한다. 마음이 힘들고 몸이 고되면 가장 먼저 티가 나는 곳이 눈이다. 빨갛게 충혈이 되고 다크서클이 생기는 것이다. 오랫동안 눈에 이상이 있다면 건강에도 이상이 있을 수 있다. 건강은 잃고 나서 후회해봐야 소용없다. 틈틈이 자신이 무리한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어떤 때는 과감하게 정리하는 것이 더 큰 손실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관상학적으로 볼 때 눈 밑이 어두운 사람은 애정전선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후회할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관계에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
얼굴에서 다음으로 중요한 곳은 뺨이다. 얼굴을 전체적으로 빛나게 해주고 건강미를 자랑할 수 있는 부위다. 뺨에 가장 많이 생기는 것은 기미와 잡티다. 특히 뺨에 생기는 기미는 아름다운 얼굴을 망가뜨리는 주범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당신은 건강하지 않아요”라고 호르몬이 이상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기미와 잡티는 위가 좋지 않을 때 생긴다. 다이어트 부작용이 심할 때 검은 기미가 올라와 고생한 분들은 알 것이다. 필자의 지인도 다이어트 약 부작용으로 위궤양을 심하게 앓고 기미까지 생겨 아직도 고생하고 있다. 다이어트도 건강을 먼저 챙기면서 해야 한다.
특별한 질환도 없는데 뺨에 기미와 잡티가 생기면 자신의 위상이나 체면에 손상이 가는 일이 생길 수 있다. 또 남 일에 휘말려 책임 질 상황이 생기거나, 모함을 받거나, 좋은 일을 하고도 억울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러나 갑자기 열이 오른 것처럼 뺨이 불그스레하게 물들면 즐겁고 행복한 일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사랑하는 사람의 두 뺨이 붉은 복숭아 빛처럼 아름다운 것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관상을 좀 볼 줄 아는 사람들은 콧방울에 뾰루지가 나면 돈 나갈 일이 생긴다고 걱정을 한다. 콧방울 뾰루지는 원하지 않는 일로 지출이 생긴다는 경고 메시지다. 경미한 자동차 사고가 일어난다든가 지인과 사소한 오해로 다툴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필자는 콧방울에 뾰루지가 생기면 가족들에게 돈을 쓴다. 기분 좋게 용돈도 주고 맛있는 것을 사주며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 지출에 대한 걱정이 즐거움으로 바뀐다.
사람들을 만나면 얼굴에 있는 점에 대해 많은 질문을 한다. “입가에 있는 점은 먹을 복을 가져다줘서 좋지요?”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필자는 늘 “아니요, 빼세요”라고 말한다. 입 주변에 있는 점은 지출을 부른다. 먹을 복은 곧 먹을 것을 많이 사야 하는 의미도 될 수도 있다. 입은 출입(出入)을 담당하는 부분이기에 걸림이 없어야 한다.
얼굴에 있는 점이나 잡티는 어둡고 힘든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밝은 기운이 아닌 검은 기운과 같다. 점이나 잡티는 어느 한순간에 올라오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생긴다. 색깔이 짙을수록 오랜 시간에 걸쳐 생긴 것이므로 원인을 잘 파악해 근심 걱정을 없애야 한다.
붉은색 뾰루지나 반점은 급한 일이 생길 수 있는 조짐이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일이나 건강상의 문제를 찾을 수 있다. 비립종이나 흰색 얼룩도 마찬가지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으면서 힘든 일이 생기거나 신경 쓸 일이 많아지면 어느 날 피부로 확 올라와 당황하게 만든다. 레이저 시술을 받아도 또 올라오므로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다. 얼굴에 흰색이 보이면 놀랄 일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침착한 마음으로 자신감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얼굴에서 가장 화려한 부분은 입술일 것이다. ‘립스틱 짙게 바르고’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노래다. 립스틱을 짙게 바른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제는 강하고 건강한 삶을 살겠다고 선언을 하는 것이다. 여성의 얼굴에서 입술의 색깔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필자는 강의를 할 때마다 사람들에게 밝고 건강한 색의 립스틱을 바르라고 강조한다. 가끔 멋을 좀 알고 좋은 인상을 풍기는 분들이 어둡고 흐린 립스틱을 바르는 것을 보면 마음이 답답해진다.
몇 년 전, 한 여성을 알고 있었는데 그녀의 남편은 큰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늘 회색 또는 보라색 옷을 입고 다녔다. 세련되고 아름다운 색깔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우울해 보였다. 특히 어둡고 빛바랜 듯한 색의 립스틱이 눈에 거슬렸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립스틱을 밝은 색으로 바꾸시면 안 되냐고 물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그녀는 바꾸지 않았다. 그 뒤 남편의 사업이 많이 기울어졌다. 립스틱 색깔 때문에 사업이 기울었다고 하면 비웃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입술은 60세 이후의 운을 관장한다. 우울한 색에 이끌리는 것은 먼저 그 기운을 감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세련되고 멋있는 색이라 해도 자신의 건강과 재물과 행복의 기운을 억누르는 색이라면 한 번쯤 고민해봐야 한다.
여성들이여, 건강하고 여유 있게 나이 들어가고 싶다면 이제부터라도 밝고 건강한 색깔의 립스틱을 발라보자. 아름답고 건강한 붉은 입술을 만들자. 내 얼굴은 내가 만드는 것이다. 그 안에 행복과 건강도 담겨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자.
>> 박정희(朴正姬)전 동방대학원대학교 문화교육원 인상학 교수
혜담 인상코칭연구원 원장으로 기업체와 대학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tv조선 인상학자 패널, 관상학 전문가 패널로 밝고 아름다운 인상미학에 대해 전파하고 있다. 저서로 , 등이 있다.
김진 세계문학사 편집장
비로소 편안해졌다
20대, 30대의 소위 결혼 적령기를 지나 40대에 이르도록 나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결혼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받아야 했다. 혼자 산다는 이유만으로, 어느 자리에서나 ‘남자’와 ‘결혼’에 대한 질문을 받아야 했고, 나는 원하지 않는 대답을 강요받아야 했다.
“독신주의자는 아니지? 그래도 결혼은 할 거잖아.”
40대에는 심지어 내가 아무 남자라도 만나 결혼을 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결코 내가 원하지 않는 만남을 주선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술자리를 만들거나 모임을 만들어서 슬쩍 남자를 끼워 넣어서는 강제로 짝을 맞춰주는, 그들의 호의는 폭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제발 나를 내버려 둬! 내가 원하는 때 원하는 사람과 할 테니까!’
이런 외침을 수도 없이 했다.
나는 물론 독신주의자가 아니다. 한 번도 연애를 해보지 않은 것도 아니다. 다만 결혼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혼자 사는 삶’에 대한 불안을 나 자신보다 더 크게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나와 같은 경우를 많이 겪었을 것이다. 하지만 50대가 되자 그런 일들도 거의 사라졌다. 50대쯤 되면 이젠 어떤 변화라든가 새로운 시작을 꾀할 때가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깨닫게 해준다. 비로소 편안해졌다.
마냥 자유롭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먼저 음악을 틀고, 느긋하게 저녁 준비를 한다. 무엇을 먹을까 하는 고민은 않는다. 그때그때 마음에 달렸다. 어떤 날은 국수를 삶는다. 멸치육수를 내고, 호박과 양파 등을 볶고 달걀지단을 부쳐 고명을 만들어 근사하게 먹을 수도 있고, 그냥 삶은 국수에 간장을 휘휘 뿌리고 참기름 둘러 슥슥 비벼먹기도 한다. 어떤 날은 삼겹살을 굽는다. 그리고 어떤 날은 햇반을 돌려 김치 한 가지를 놓고 먹어도 된다. 나는 음식을 먹으면서 자유로움을 만끽한다. 아무렇게나 먹기도 하고, 성찬을 차려 먹기도 한다. 식구가 있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식구들의 취향도 생각해야 하고, 건강도 생각해야 하고, 예의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저녁을 먹은 후에도 자유롭다. 무엇을 하든 내 맘 대로다. 멍하니 있어도 좋고, 책을 읽어도 좋고 영화를 봐도 좋다.
혼자 사는 것의 가장 좋은 점은 자유로움이다. 행동에 걸림이 없다. 내가 원하는 일만 할 수 있다. 얼마든지 게을러질 자유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게으름을 ‘불온’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게으름이야말로 최대의 자유이고 정신의 빈 공간이며 무엇이든 채울 수 있는 무한한 여백의 공간이기도 하다. 게으름은 혼자 있을 때만 완벽하게 가능하다. 단 한 사람만 있어도 게으름이 찾아오기란 쉽지 않다.
두려움이 찾아올 때면
우주의 물질이 가진 총 질량은 물질이 변화를 가져와도 변하지 않는다는 질량보존의 법칙이 있다. 흔히들 이를 빗대 인생에는 총량의 법칙이 있다고 한다. 삶을 살면서 겪어야 할 고통이나 기쁨, 즐거움, 외로움, 두려움 등등은 누구나 공평하게 주어지고, 그것은 인생 어느 때든 주어진 양만큼은 꼭 채운다는 것이다. 그저 재미있는 농담처럼 만들어진 이 말은 사실은 우리 삶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이 총량의 법칙으로 헤아려보면 삶은 참 공평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물질적으로 많이 가지거나 가지지 않거나, 혼자 살거나 가족과 살거나 총량의 법칙은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삶에 대한 두려움도 마찬가지이다. 누구나 삶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할 것이다. 혼자 사는 나의 두려움은 지금보다 더 늙고 병들었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가 가장 큰 문제이다.
잠자리에 들 시간이면 문득문득 그런 고민에 가슴이 무거워질 때가 있다. 몇 년 전 한밤중에 갑자기 열이 나면서 몹시 아팠던 적이 있다. 그때 이러다가 혼자 죽겠구나, 싶었다. 그때부터 생긴 고민이다. 아플 때 옆에서 돌봐줄 사람이 없으면 자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죽음 앞에서 사람이 있든 없든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으로 두려움을 가라앉히곤 한다.
외롭지 말고 고독하라
“외롭지 않은가.”
혼자 사는 사람들이 흔히 듣는 질문이다. 물론 외롭다. 외로움은 인간의 본질적인 정서다. 오욕칠정처럼 밑바닥에 있는 감정이다. 외롭기 때문에 사람들은 타인과의 관계를 맺는다. 관계 속에서 소통을 해 외로움을 해소하고 위로를 받고자 한다. 하지만 타인과의 관계를 한다고 해서 외로움이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소통이 되지 않을 때 외로움은 괴로움으로 변질이 되고 만다. 부처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이처럼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인 외로움이 혼자 산다고 더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때때로 나는 외로움보다는 고독하기를 즐긴다. 외로움은 타인을 통해 위로를 받아야 하지만, 고독은 스스로의 힘으로도 위로를 받는다. 고독은 내면의 공간을 확장시키는 힘이 있다. 고독할 때만이 내면 깊숙이 들여다보면서 성찰할 수 있다. 인간은 성찰을 통해 성숙해진다. 고독의 공간이 넓을수록 삶은 평화롭고 고요하고 아름다워진다.
최상의 노후는 미니멀리즘으로
백세시대라고들 한다. 나는 이 말에 대해 긍정적이지 않다. 산다는 것은 단순히 수명의 연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스스로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비로소 사는 것이다. 건강한 몸으로 사유와 성찰을 하며, 삶을 살지게 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살진 삶을 위한 가장 큰 요건은 경제적 문제이다. 수명의 연장은 비용이 드는 일이다. 정년까지 근무해서 벌어놓은 돈은 한정되어 있고, 이에 반해 삶의 비용은 늘어날 것이다. 이런 생각 끝에 나는 차츰 삶의 규모를 줄이고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기로 했다. 일단 새로운 물건은 가급적이면 구입하지 않는다. 사실 물건을 소유하는 것만으로도 비용은 발생하기 마련이다.
갑자기 소유한 물건을 줄이려면 그것도 큰 비용이 든다. 지금부터 하나씩 줄여나가는 것이 좋다. 소유한 것들이 적으면 적을수록 정신의 여백은 넓어지고, 보다 풍요롭고 깊은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언제부터 인가 영화를 보면 당연히 팝콘 통을 끌아 안고 한손에는 콜라를 든 모습이 극장의 자연스런 풍경이 되었다.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에서 연애를 시작하는 단계에 거의 빠지지 않은 장면이 있다.
극장으로 데이트를 가서 팝콘 하나를 나눠 먹으며 영화를 보다가 서로 손이 닿는 장면이다.
첫 데이트의 설렘을 표현하는 장면으로 거의 공식처럼 등장하곤 하는 것이다.
실제 데이트 하는 연인이 극장에서 영화 볼 때 팝콘을 안 먹는 커플은 찾아보기 힘들 지경이다.
영화 보면서 팝콘 꼭 먹어야 하나?
국내 대형 멀티플렉스의 팝콘세트 가격이 8천원 내외로 영화 티켓 가격과 거의 맞먹는 금액이다. 한 끼 식사도 아닌 주전부리 값으로는 만만치 않은 가격이다. 배 보다 배꼽이 더 큰 형상이다.
극장의 수익이 영화보다 팝콘이 더 많다는 것은 이젠 비밀도 아니고 공공연한 사실이다.
가격 뿐 아니라 극장에서 파는 팝콘이 칼로리도 매우 심각하다.
소비자보호원의 올해 2월에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극장의 팝콘 세트를 성인 2명이 먹으면 열량은 1일 권장량의 42%에 달한다. 이 뿐 아니라 당류 229.8%와 포화지방 74%로 과하게 섭취하게 된다고 한다.
이런 두 가지 부정적인 부분을 기꺼이 감수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은 영화를 보면서 팝콘과 콜라를 먹는 것을 포기할 수 없는 또 다른 재미라고 말을 한다.
언젠가 부터 극장에 가면 영화. 팝콘. 콜라를 패키지로 인식하는 이런 사람들의 기호를 무작정 하지 말라 할 수는 없다.
극장에 들어서자마자 확 풍겨오는 고소한 팝콘 냄새의 유혹을 떨치기가 쉽지는 않다.
꼭 먹고 싶다면 예의를 갖춰라.
천만 영화의 시대인 요즘은 중. 장년들도 많이 극장을 찾는다. 천만이 되기 위해서는 중. 장년이 극장을 찾아야 만 가능하다고 한다.
시니어 들 역시 대부분 팝콘 통을 안고 영화감상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어차피 팝콘을 먹으며 영화 한 편 보는 것이 한 정서가 되었다면 다른 사람 영화 감상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팝콘 통에서 꺼내는 부스럭 소리, 입안에서 팝콘 부서지는 소리, 콜라를 빨대로 쭉쭉 빠는 소리가 주위 사람에게는 몹시 거슬리는 소리가 될 수 있다.
코미디나 가벼운 액션 영화를 볼 때는 그래도 참을 만하다. 그러나 영화가 긴장감을 유지하는 중간 또는 슬픔이 극에 달했을 때는 팝콘 먹는 소리는 몹시 몰입에 방해가 된다.
영화에 몰입한 사람에게는 작은 소음, 작은 불빛조차 방해가 되어 짜증을 유발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먹는 팝콘 소리 하나에도 다른 사람의 소중한 시간을 방해하지 않도록 작은 배려가 필요할 것이다.
천재 피아니스트와 괴짜 음악교수의 소통과 우정을 그린 음악극이다. 과장된 유쾌함 속에 비극의 역사를 묻고 살아가는 주인공 마슈칸 교수 역을 맡은 배우 이호성을 만나봤다.
작품을 선택하게 된 계기
"욕심이죠. 좋은 작품을 해보고 싶은 욕망은 모든 배우에게 다 해당할 거예요. 특히 이 작품이 2인극이라는 데 더 매력을 느꼈어요. 모노드라마나 2인극의 경우, 무대에서 더 많은 연기와 주장을 하고, 나를 보여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니까요. 스케줄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버거운 점이 있지만, 그 과정이 고통스럽더라도 한편으로는 그 고통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왜 소화를 못 할까?’ 고민하면서 그 생각을 화두 삼아서 인물에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갈피를 잡기도 하거든요. 힘들어도 그런 짜릿한 맛이 있어요."
가장 염려스러운 부분
2인극이기 때문에 외워야 할 대사 분량이 많아서 부담스럽긴 하죠. 내가 실수를 해서 상대역을 하는 젊은 배우가 당황하면 결국 무대를 제대로 형성화하지 못하잖아요. 파트너나, 연출, 관객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겠다는 게 목표예요. 그래서 지금은 욕심을 많이 줄였어요. 대사를 정확히 외워서 적어도 민폐는 끼치지 말아야죠. 사실 제가 박치고, 목소리가 저음인데 우리 음악극에서 불러야 하는 노래가 굉장히 고음이거든요. 고음을 내는 두려움이나 호흡이 부족하긴 하지만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다는 것, 젊은 배우 못지않게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그런 오기를 부리지 않으면 살아 있다는 존재감을 느끼기 어려울 것 같아요.
주인공과 닮은 점이 있다면
먼저 똑같이 홀아비라는 거죠(웃음). 그리고 고독하다는 것. 사람의 살결도 그립지만 나와 접촉하거나 부딪히는 사람의 마음을 그리워한다는 게 닮은 것 같아요. 그런 이야기들 하잖아요. 연애해라 그래도 외로울 것이다, 연애하지 마라 그래도 외로울 것이다. 결국 이렇든 저렇든 인간은 외로운 존재라는 거죠. 그런 점에서 관객도 공감할 부분이 있을 거예요.
작품 속 사제관계에 대해
두 인물 다 보편적인 캐릭터는 아니죠. 젊은 괴짜 학생과 늙은 괴짜 교수가 부딪히고 언쟁도 하지만 자연스럽게 대화도 하며 서로를 이해해요. 알고 보면 두 사람 모두 평범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죠. 상처나 외로움 때문에 자기방어를 하기 위해 거만한 척 소리를 내는 것이지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가는 관계입니다.
고독을 다스리는 방법
사람들과 모여 웃고 떠들 때는 즐겁지만, 막상 자리에서 나와 헤어지고 나면 다들 홀로 집에 가잖아요. 죽음도 마찬가지고요. 아무리 사랑하는 부부라도 함께 세상을 떠날 수 있나요. 인간은 누구나 다 외롭고 고독한 존재예요. 그러니 오히려 즐기는 게 낫다는 거죠. 그렇다고 항상 고독한 건 아니잖아요. 사람을 만나면 이성 동성을 떠나 그이를 사랑하고요. 그렇게 따로 또 같이 고독을 친구처럼 여기며 아가야겠죠.
>>배우 이호성
뮤지컬 , 연극 , 외 다수, 영화 , 드라마 , 등 출연.1988 백상예술대상 신인상, 1993 제30회 동아연극상 남우주연상 등 수상.
>>음악극
일정 9월 21~10월 23일
장소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연출 김지호
출연 이호성, 안석환, 이현욱, 강영석
여백서원(如白書院)의 주인장 전영애(全英愛·65) 서울대 교수에게 “정말 나이가 안 들어 보이신다”라고 말하자 “철이 안 들어서”라는 대답이 웃음과 함께 돌아온다. 어쩌면 이 각박하게만 보이는 세상에, 서원이라는 고풍스러운 세상을 만든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철이 안 든 일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태도는 철이 안 든 게 아니라 자신이 올바른 길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에 실천할 수 있는 일일 수도 있다. 서원에서 확인한 책과 책의 가치에 관한 문답들. 글 김영순 기자 kys0701@ 사진 이신화 여행작가
경기도 여주군 강천면 걸은리의 여백서원(如白書院)은 말 그대로 책의 집이다. 전영애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가 아버지의 호 여백(如白)을 빌려 와 ‘맑은 사람들’을 위해 만든 이 공간에는 전원의 한적함과 생명력이 함께 어우러지고 있었다. 인터뷰는 늦은 매미 소리가 힘차게 울려 퍼지고 있는 가운데 소장한 책이 몇 권이냐는 질문부터 이뤄졌다.
“우와, 책이 얼마나 되나요?”
“몰라요. 그런 거 알아 뭐해요.(웃음)”
서원을 통해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다
전 교수는 올해 모교인 서울대에서 20년 동안의 교수 생활을 마치고 은퇴했다. 2009년에 국내 최초로 괴테 시 전집을 번역하고 독일 바이마르 괴테학회로부터 괴테 금메달을 받는 등 독일문학 분야에서 학문적인 업적을 탄탄히 쌓은 그녀에게 아쉬운게 있는지 궁금했다.
“늘 그렇죠. 절대적인 낙원이 어디 있겠어요. 이곳도 사람들 보고 숨 좀 쉬라고 만들었지만, 언제나 위협이 있죠. 예를 들면 여기에 조경을 잘 해놓으니까 주변에서는 농사도 못 짓는 땅인데 비싸게 내놓고. 갑자기 수영장 딸린 별장을 짓는다는 등 뭐 그런 얘기들도 있고. 도리 없죠.”
못다 한 걸 물으니 개인이 아니라 서원을 먼저 생각한다. 서원의 완성을 떠올린다. 전 교수에게 여백서원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좋은 사람들이 많이 오세요. 좋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더 바랄 게 없어요. 조경하시는 분도 오고, 을 읽으시고 암 치료 받는 분도 오시고. 그분들 중에 놀라운 분들이 많아요. 세상에 이상한 사람들이 난리 쳐도 귀한 분들이 숨어 있는 거예요. 그러니 처음 만난 사람들이 여기서 밤새도록 얘기하고 그래요.”
전 교수는 만난 사람들에 대해 연신 예쁘고 아름답다는 표현을 거듭했다. 마치 세상을 다시금 발견하게 된 사람처럼. 그녀는 자신이 운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어머니와 할머니가 참 좋은 분이어서 순전히 조상 덕에 잘 사는 게 아니냐며 웃음 짓기도 했다.
귀하게 여긴 책에서 느낀 힘
전 교수는 오래된 보자기에 싸 놓은 책들을 조심스레 꺼내 보였다.
먼저 어머니(김한섭)의 책. 1990년에 작고한 어머니는 학교 근처에도 가보지 않았다. 평생 고생만 한 그 어머니가 필사한 책이 있다. 배움에 대한 욕망이 컸던 어머니는 책이 귀했던 시절, 한지에 책을 베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보고 외웠다. 소설본, 조선시대 가사를 적은 두루마리들이 전 교수의 손에 남았다.
그리고 아버지(전우순)의 책. 서울대 정치학과 출신으로 사업을 했던 아버지는 60대 후반에 등산을 시작해 90세까지 매년 에베레스트를 올랐다. 그의 조부는 소수·도산서원장을 지낸 유학자인데, 250년 전 괴테의 글은 줄줄 읽는 딸이 증조부의 글을 못 읽는 게 안타까워 조부의 문집을 한글로 번역해 1000장의 종이에 붓으로 썼다. ‘91세 우순이 피로 번역하고 쓰다’라고 서명한 번역 작업을 2011년 6시간 반에 걸친 담도암 수술을 받은 뒤 마무리하고 6개월 만에 별세했다.
여백서원에는 괴테의 초간본(1819), 희귀본(1853)을 비롯한 200여 권의 독일문학 관련 서적이 있다. 바이마르 괴테학회 재정 감사였던 홀레씨는 별세하기 직전 다시 전 교수를 식사에 초대했고, 며칠 후 “당신이 갖고 있는 게 가장 좋겠다”면서 항공편으로 자신의 장서를 부쳐 왔다. 홀레씨가 임종을 앞두고 정리를 해서 보낸 것이다. 다들 훌륭한 사회인들인 당신 자녀들도 있는데 홀레씨는 가장 귀중한 책들을 전 교수한테 보냈던 것이다.
“그 책들을 누구에게 보내야 가장 귀하게 읽히고 잘 보관될 것인가를 많이 생각하신 것 같았어요. 11일 동안 그 집에 쌓인 수많은 편지를 보고 여러 일화를 들으면서 그의 생애가 얼마나 아름다워 보였던지요.”
여백서원에는 이 책들과 함께 전 교수가 시의 스승으로 모시는 동독 출신 시인 라이너 쿤체의 책, 학문의 스승으로 모시는 헨드릭 비루스 교수의 책, 자신이 쓰고 번역한 책, 교양수업 ‘독일 명작의 이해’를 수강한 제자들이 종강 때 각자 한 권씩 만든 책, 서원에 다녀간 사람들의 책까지 소중하게 간직돼 있다.
전 교수는 여백서원의 존재 이유로 이처럼 좋은 책의 보관과 함께 좋은 사람들의 보존을 든다. 책과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 한국에 대해 알고 싶은 외국 시인 누구에게나 여백서원은 열려 있다. 책이 있는 집, 서원에서 삶의 여백을 찾도록 해주고 싶다고.
힘들면 책을 읽어요
전 교수는 몸이 힘들면 책을 읽고 책을 읽다 머리가 아프면 몸을 움직인다. 그녀는 글을 알면 세계가 열린다고 말한다. 그래서 시험을 보려고 배우거나 출세하려고 배우는 건 너무 불쌍하다고도 했다.
“차 한 잔을 마셔도 사람이 가까워지는데 누군가가 온 힘을 기울여 쓴 책을 읽는다는 건 상당히 많이 받는 거예요. 그러면서 남들을 이해하게 되고 그러는 거지. 그래서 나이 먹어서 책을 읽는 것은, 아무 거나 읽어도 좋은 거예요.”
그녀와 괴테의 인연은 남다르다. 어떻게 괴테를 접하게 됐는지 물어봤다.
“중학교 때 어디선가 시를 하나 봤어요. 그때는 괴테도 모르고 시 제목도 몰랐어요. 그런데 괴테가 쓴 이라는 만년의 시집이 굉장히 중요하고 정말 어렵거든요. 그 책 한 권을 다 읽으니 끝에 괴테가 그 시집에 넣지 않고 버린 것을 편집자가 넣은 시가 몇 편이 붙어 있었어요. 그런데 거기에 제가 중학교 때 봤던 시가 들어 있는 거예요. 하도 놀라서 중학교 때 읽은 그 시가 어떻게 아직까지 잊히지 않고 기억 속에 남아 있었을까, 그 이유가 뭘까 고민하며 그 시를 분석하는 게 제가 독일의 출판사에서 낸 괴테 연구의 첫 페이지입니다.”
40여 년 만에 다시 만난 괴테의 시
중학교 때 본 시를 다시 보게 되기까지 어언 40여 년이 흘렀다. 그 세월 동안 남아 있는 괴테 시의 힘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
“괴테 본인이 많은 힘을 거기에 쏟은 거예요. 그게 읽는 사람에게 다가온 거죠. 놀라운 체험이었어요. 괴테는 자기가 경험하지 않은 건 하나도 안 썼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평생 연시를 썼어요. 그렇다면 평생 연애 경험이 있다는 건데, 그게 뭘 저지른 게 아니고 아름다운 글을 남김으로써 그 단계를 넘어선 거예요.”
전 교수는 자연스럽게 예술의 인간적인 한계를 넘어선 숭고한 단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런 괴테가 전 교수에게 어떤 롤모델로 작용한 부분이 있을지 궁금했다.
“괴테에게서 탐나는 점이라면 자만이 아닌 자긍심이었어요. 예를 들어 저는 계단을 꼭 뛰어다녀요. 그런 제 모습을 보면 어떤 사람은 스포티하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바쁘다고 해요. 그런데 제가 계단을 뛰어다니는 건 계단을 걷는 게 힘들어서예요. 물론 괴테가 계단을 뛰어다니고 그러진 않았어요. 그런데 그 사람의 생활 태도가 그랬어요. 힘든 게 있을 때 그렇게 극복하더군요. 그게 자긍심이죠. 눌리지 않고 자기 방식으로 극복하는 것. 세상을 대하는 훨씬 더 적극적인 태도죠.”
우리 의젓하게 살자
그녀가 인터뷰 내내 강조한 말이 있다. 나만 힘든 게 아니라 모두가 다 힘드니까, 힘든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말이었다.
“자기 분야에서 잘하시는 분에게는 무슨 일을 하든 간에 박수를 치고 싶어요. 힘 안 드는 일이 어디 있어요. 하지만 의젓하게 살아야 해요. 옆도 좀 돌아보고. 애들이에요? 울기만 하면 돼요?”
최근에 흔히 쓰이는 헬조선이라는 말에 대해서, 그녀는 매섭게 비판했다.
“우리나라를 헬조선이라 치고, 우리를 누가 여기에 넣은 건가요? 우리가 만든 건데. 금수저, 흙수저… 뭐 어쩌라고요. 형편이 어려운 건 다 알지만 누구나 어려워요. 그런데 승복이라는 게 없고 ‘넌 운이 좋아서 그런 거고 난 재수 없어서 이러고 있어서 너 미워’, 이거 아니에요? 나보다 힘들지만 열심히 사는 사람을 돌아보면 나도 힘을 얻고 그러는 건데 애들처럼 찡찡거려서 되겠어요? 부딪혀서 아프면 자기가 부딪힌 거지 그게 기둥이 때렸어요, 땅바닥이 때렸어요? 자꾸 남 탓하고 여건 탓하는 건 아닌 거 같아요. 그런데 이상하게 정서가 그렇게 가는 것 같아서…. 남 탓하는 건 어마어마하게 잘 하고 자기를 돌아보는 건 못 하는 것 같아서 걱정돼요. 우리 좀 의젓하게 살자고요.”
책이 즐거우면 계속 하고 싶어진다
서원 본관을 둘러보니 그녀의 강의를 들었던 학생들이 만든 책들이 보였다. 한 학기 교양 수업을 듣고 만든 책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책들이었다. 그녀의 수업은 교재가 없고 시험이 없는 대신, 각자 학기말에 교재를 만들어 내게 한다. 그녀가 갖고 있는 공부 철학이다.
“공부는 자기가 스스로 해야죠.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는 것 정도로 제가 잘 가르칠 자신이 없어요. 내 자식들에게도 마찬가지였고. 요즘 부모님들은 어떻게 그렇게 자신이 넘치는지 모르겠어요.”
가끔씩 독자들이 물어보는 말, 손주가 책을 안 읽는데 어떻게 읽게 하느냐는 고민에 대해 전 교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말했다.
“세상에! 아이가 책을 읽지 않으려 하면 읽지 말아야죠. 왜 읽어라 마라 해요. 아이는 책 읽는 시간이 즐거우면 나중에도 즐겁게 책을 읽게 돼요. 전 아무리 바빠도 잘 때가 되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줬어요. 아이들도 그 시간이 너무 즐겁기 때문에 책에 익숙해졌어요. 아이들에게 피아노 배우라고 들들 볶으면 아이들은 피아노를 배우는 게 아니라 들들 볶는 걸 배우게 돼서 대대로 들볶게 돼요. 그러나 엄마가 즐겁게 피아노를 치면 애들도 피아노를 치죠. 그걸 왜 억지로 시켜요? 책을 같이 재미있게 읽으세요. 즐거우면 즐거운 시간의 기억을 되풀이하고 싶어지죠. 그런데 즐거운 시간이 안 만들어지니 책과 멀어지는 거죠.”
고서의 향기를 품고
즐거움과 보람은 전 교수가 지향하는 공부법이었다. 그것은 그녀의 자녀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행해졌다.
“사람들이 운동이 중요하다는 거 다 알잖아요? 그런데 돈을 내고도 안 하기도 하고. 하지만 운동보다 훨씬 더 중요한 건 노동이에요. 노동을 하면 보람이 있으니까. 그래서 아이들에게 일을 시키는 게 제 주장입니다. 일을 안 시키면 약해져요. 제 아이들이 걷기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시킨 일은 현관에서 냉장고까지 우유를 배달하는 거였어요. 자기가 우유 배달을 안 하면 온 식구가 우유를 못 먹게 되죠. 얼마나 보람 있어요?”
전 교수는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을 ‘말도 아닌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녀는 대신 ‘올바른 목적이 있는 길은 그 어느 구간에서도 바르다’는 말을 믿고 있었다. 그러한 마음이 그녀의 삶의 태도를 결정하고 지금 여백서원의 주인으로서 살아가는 삶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나이가 들어가는 마지막 질문에 대한 대답도 그녀다웠다.
“나이 들면 얼마나 좋은데요. 저는 젊었을 때도 나이 들기를 소망했어요. 언제나 지금이 좋은 때여서, 두려움 등의 온갖 생각이 하나도 없어요.”
고서(古書)의 기품이 나는 전 교수 같은 분들이 세상에 온전히 남아 있으면 그게 바로 세상이 나아지는 길이 아닐는지. 여주에서 올라오는 차 안에서 내내 ‘말이 서야 나라가 선다’던 함석헌 선생의 문구가 맴돌았다.
>>전영애 서울대 명예교수
서울대를 졸업하고, 1996년부터 모교인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지내다 올해 은퇴했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고등연구원 수석연구원, 뮌헨 대학과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대학의 초빙교원을 겸임했다. 2011년 바이마르에서 ‘괴테금메달’을 수상했다. , , (공저), , , , , , 등 60여 권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손성동 연금과 은퇴포럼 대표 ssdks@naver.com
몇 년 전 모 대학 교수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평생교육원에 다니고 있는 남성에게 가장 인기 있는 여성은 누구일까? 옷 잘 입는 여성? 돈 많은 여성? 요리 잘 하는 여성? 셋 다 아니다. 가장 인기 있는 여성은 단연코 ‘예쁜 여성’이었다. 젊으나 늙으나 남자에게는 예쁜 여성이 최고다. 남자는 참 단순하다. 사람마다 미의 기준이 다른 게 그나마 다행일 정도다.
그럼 평생교육원에 다니는 여성에게 가장 인기 있는 남성은 어떤 사람일까? 잘 생긴 남자? 돈 많은 남자? 근육질 남자? 모두 아니다. 여성이 가장 좋아하는 남성은 ‘연금 많이 받는 남자’다. 잘 생기거나 근육질 남성은 온전한 내 남자가 되기 힘들고, 돈 많은 남자는 자식들 차지이거나 분란의 소지가 크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정경제를 꾸려온 사람들답게 여성들은 참 현실적이다.
상대적으로 이성을 지배하는 좌뇌가 발달한 남성은 감성에 휘둘리고, 감성을 지배하는 우뇌가 발달한 여성은 이성에 좌우되는, 남녀관계는 정말로 모를 일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실버파산, 노후파산이라는 단어가 사회적 화두로 등장했다. 노후에 생계를 꾸려갈 만큼 수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결국 파산이라는 달갑지 않은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현실적인 여성들이 미리 냄새를 맡고 연금에 손을 들어 준 이유를 알 만하다.
연금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노후에 일정한 주기로 일정액의 현금이 내 통장에 꽂히는 것. 일정한 주기는 매달일 수도, 분기일 수도, 매년일 수도 있다. 물론 매달인 경우가 일반적이다. 연금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지만 사람마다 연금에 부여하는 의미는 다를 수 있다.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세계적으로 유명인사인 오 노레드 발자크(1799~1850), 한스 안데르센(1805~1875), 오토 폰 비스마르크(1815~1878)를 통해 연금의 다양한 의미를 에이브러햄 매슬로(1908~1970)의 욕구 5단계설에 비춰 살펴보도록 하자.
오 노레드 발자크 : 절대적 생존 수단으로서의 연금
19세기 전반의 프랑스 소설가로 사실주의 선구자로 알려진 인물, 나폴레옹이 칼로 시작한 일을 자신은 펜으로 완성하겠다는 포부를 지닌 나폴레옹 숭배자, 이라는 90여 편의 소설로 구성된 소설 위의 소설을 구상한 혁신자, 짓누르는 눈꺼풀을 커피로 녹여 낸 커피 중독자…. 오노레 드 발자크를 지칭하는 말들이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에서 발자크를 ‘현대 문학의 가장 위대한 노동자’ ‘환상적인 작업 기계’로 묘사한다. 사흘에 잉크병 하나를 비우고 펜 10개를 닳아 없앨 정도로 많은 글을 썼기 때문이다. 필자는 여기에 색다른 별명을 하나 더 붙이고 싶다. 바로 ‘연금 애호가 발자크’다.
발자크의 소설에는 유독 ‘연금’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언어학에서는 작가가 특정 주제에 관련된 어휘를 집중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면 그것이 곧 그 작품의 중심 테마일 확률이 매우 높은 것으로 본다. 발자크가 그의 소설에 ‘연금’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곧 ‘연금’이 소설의 중심 테마임을 의미한다.
발자크가 연금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잠시 엿보기로 하자. 에서 발자크는 연금을 ‘열심히 일한 사람들의 한가로움을 보장’하는 수단으로 묘사한다. 에서는 딸의 사교 비용을 대느라 연금증서까지 팔아 치운 나머지 비참한 말로를 맞이하는 고리오 영감의 마지막 절규를 숨 막힐 정도로 리얼하게 묘사하고 있다. 연금에 대한 발자크의 생각이 가장 잘 녹아 있는 대목은 에 나오는 하녀 나농의 이야기다.
“160㎝가 넘는 큰 키 때문에 키다리 나농이라 불리게 된 그녀는 35년 전부터 그랑데 집에 살고 있었다. 1년에 60리브르밖에 받지 못하지만 그녀는 소뮈르 지방에서 제일 부유한 하녀로 통했다. 35년 동안 60리브르를 차곡차곡 모은 결과 최근에 크뤼쇼 집에 4000리브르를 종신연금으로 맡길 수 있게 되었다. 오랫동안 이루어진 나농의 끈질긴 저축의 결과는 어마어마한 것으로 보였다. 하녀들은 그것이 고된 노역의 대가라는 사실은 생각지 않고 60대의 노파가 마련해 놓은 노후자금에 질투심을 드러내곤 했다.”
위 구절을 보면 연금에 대한 발자크의 생각과 당시 프랑스 사회를 읽어낼 수 있다. ①노후에 연금을 받으려면 오랜 기간 동안 차곡차곡 돈을 모아야 한다. ②연금은 고된 노역의 대가다. ③연금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④유력 집안이 금융회사를 대신해 연금을 지급한다. ⑤여자가 160㎝만 넘으면 큰 키로 인정받는다. ④와 ⑤번을 제외하면 요즘과 별반 다르지 않다.
발자크가 그의 소설 속에 연금을 자주 언급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집안 내력과 극도의 경제적 궁핍을 겪은 경험에서 자연스레 나온 것이지 않을까. 츠바이크의 에는 그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다른 누구보다도 오래 살려는 그의 의지는, 가입자가 죽으면 남은 사람에게 연금이 덧붙여지는 이른바 톤틴식 연금에 들었다는 사정을 통해서 더욱 강화되었다.”
발자크는 자라면서 아버지로부터 연금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발자크는 젊었을 때 인쇄업과 활자제조업에서의 연이은 사업실패로 평생 빚더미에 짓눌려 살았다. 다시 츠바이크의 말이다. “3년 동안의 사업가 활동에서 얻게 된 10만프랑의 빚은 그에게 ‘시시포스의 돌’이 되었다. 그는 평생 근육을 거의 망가뜨리면서 이 돌을 꼭대기로 굴려 올리곤 했지만, 언제나 다시 아래로 떨어졌다. 생애 최초의 이 잘못은 그를 언제까지나 채무자로 남도록 운명지었다. 자유롭게 창작하고 종속 없이 산다는 어린 시절의 꿈은 절대로 실현되지 않을 것이었다.”
발자크에게 연금은 생존 수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딱 생존의 문제였다. 빚의 노예로 노동자처럼 소설을 써야 했던 그이기에 같은 사회성 짙은 소설이든 같은 연애소설에도 어김없이 연금이 등장한다. 매슬로의 욕구 5단계설에 접목하면 1단계인 ‘생리적 욕구’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안데르센 : 복합적 의미로서의 연금
한스 안데르센은 소개가 필요 없을 만큼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덴마크의 동화작가다. 하지만 안데르센과 관련하여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이야기도 있다. 바로 안데르센이 그렇게도 연금 받기를 원했다는 점이다. 안데르센은 젊은 시절 엄청난 고통과 각고의 노력 끝에 정상에 오른 인물이다. 그가 정상에 오르고 나서도 마음 한구석에 빈 곳이 있었으니 바로 연금이다. 그의 경쟁자이면서 자신보다 역량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받는 사람은 연금을 받고 있는데, 국민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자신은 연금을 받지 못하는 사실에 꽤 자존심도 상했던 모양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안데르센의 에 매료된 덴마크 총리가 그의 거처를 방문한다. 물론 안데르센은 그가 총리인지 모른다. 방문 목적과 자신의 신분을 밝힌 총리는 안데르센에게 어려운 점이 없는지 묻는다. 이에 안데르센은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할 수 있도록 연금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국왕 면담을 주선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인 총리는 돌아가 덴마크의 유명한 물리학자인 외르스테드를 통해 국왕 면담을 주선한다. 국왕과 면담 후 안데르센은 그렇게도 원하던 연금을 받게 되었는데, 그 장면과 감정을 자신의 자서전인 에 자세히 기록해 놓았다.
“프레데릭 6세 때 이미 몇 년 전부터, 문학청년이나 예술가들을 해마다 선발해 여행 경비를 주는 제도 외에도, 이들 가운데서 이렇다 할 소득이 없는 사람들을 골라 많지 않은 돈이지만 연금을 주는 제도가 있었다. 대부분의 유명한 시인들이 모두 이 보조를 받고 있었다. 욀렌슐레게르, 잉게만, 하이베르그, 카를 빈터 등이 그런 사람들이었다. 헤르츠도 얼마 전부터 이걸 받고 있어, 그의 미래는 생계가 탄탄하게 보장되어 있었다. 나도 그럴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것이 내 희망이자 소원이었다. 그 꿈이 이루어졌다. 프레데릭 6세는 내가 1년에 200릭스달러를 받을 수 있도록 허락했다. 나는 기쁘고 고마운 나머지 펄쩍펄쩍 뛰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단지 살기 위해서 억지로 글을 쓰지 않아도 된다! 몸이 아프거나 병에 걸려도 마음 놓고 기댈 수 있는 확실한 버팀목이 생긴 것이다. 늘 신세를 지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조금 더 자유로워졌다. 바야흐로 내 인생의 새로운 장이 시작되었다.”
안데르센이 연금을 받고 펄쩍펄쩍 뛰며 좋아했던 장면을 상상하면 웃음이 나온다. 안데르센이 연금에 집착한 이유는 뭘까? 하나는 안정적으로 창작활동에 몰두하기 위한 경제적 토대를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안데르센은 여행을 매우 좋아했다. 당시 여행비용은 꽤 비쌌다. 여행을 통해 자신의 정신과 사상을 깊게 하고 넓혀 나갔던 안데르센은 여행을 포기할 수 없었다. 영국 여행에서는 찰스 디킨스를, 프랑스 여행에서는 빅토르 위고와 발자크 등 세계적 작가들을 만나고 교류했다. 결국 안데르센에게 연금은 더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한 경제적 안정 수단이었던 셈이다. 매슬로의 욕구5단계설의 두 번째 욕망인 ‘안전욕구’였다.
“여행은 마법의 물약처럼 마음을 정화하고 육체에 원기와 젊음을 불어넣는다. … 나의 내면에 보석 같은 소재들이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이 보석들을 제대로 다듬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이 보석들을 정력적으로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다듬어 종이에 옮겨 놓기 위해서는, 정신을 신선하게 재충전할 필요가 있다. 내게 있어서 여행은 정신을 정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나는 늘 더 젊어졌고 더 강해졌다.”
다른 하나의 이유는 연금을 통해 국왕으로부터 인정받는 명실상부한 명사의 반열에 오르고 싶은 욕구이지 않을까. 국왕과의 연결선이 없어 자신보다 못한 경쟁자가 연금받는 것을 부러워하고 시샘하던 안데르센이 드디어 자신도 그들의 리그에 속하게 된 것이다. 매슬로의 욕구5단계 중 3단계인 ‘사랑과 소속 욕구’를 쟁취한 셈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확실한 기반을 구축하는 덤까지 얻었다. 5단계 욕구 중 4단계인 ‘존경 욕구’를 충족하는 기쁨까지 누리게 된 것이다. 이처럼 안데르센에게 연금은 매우 복합적인 의미를 지닌 도구였던 것이다.
오토 폰 비스마르크 : 정치 도구로서의 연금
비스마르크는 우리에게 독일의 철혈재상으로 잘 알려져 있다. 비스마르크가 철혈재상으로써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당근과 채찍을 효율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리라. 그는 항상 한 손에는 채찍을, 다른 한 손에는 당근을 들고 다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878년 10월 9일 공산주의 운동을 탄압하기 위한 ‘사회주의자법’ 제정을 논의하는 자리에서도 여지없이 다음과 같은 당근책을 제시한다.
“나는 노동자들의 처지를 적극적으로 개선하며, 노동자들에게 기업 이윤의 배당을 보장하고, 기업의 경쟁력과 시장상황을 고려한 범위 내에서 노동시간을 단축하려는 모든 계획들을 후원할 예정입니다. … 만약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이성적인 방법으로 미래를 내다 보면서 노동자들의 운명을 개선하기 위한 긍정적인 방안을 제안한다면 나는 국가부조라는 이념을 염두에 두면서 자구책을 강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방안을 호의적으로 검토할 것입니다.”
1881년 3월 8일 산재보험법을 제안하면서는 “국가란 오직 유복한 사회계급의 보호를 위해서만 창안된 것이 아니다. 무산계급의 요구와 이익에도 봉사하는 복지기구”라고까지 강조했다. 1881년 11월 17일 자신이 직접 작성한 황제교서에서는 “사회적 폐단을 단지 사회민주주의의 과격행위를 탄압함으로써만이 아니라, 노동자 복지를 적극적으로 도모함으로써 척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4대 사회보장제도인 건강보험, 국민연금, 산재보험, 고용보험 등은 사회주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비스마르크의 당근책의 일환으로 도입된 것이다. 비스마르크에게 연금은 5단계 욕구 중 가장 높은 단계인 ‘자아실현 욕구’의 실현 수단의 한 방편이었던 셈이다.
>> 손성동(孫盛東) 연금과 은퇴포럼 대표
삼성금융연구소 수석연구원,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 연구실장,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연금연구실장 역임. 현재는 ‘연금과 은퇴포럼 대표’로 있으면서 1인기업가를 꿈꾸고 있다. 공식블로그 ‘꿈꾸는 은퇴와 연금’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부산 동아대와 동서대에 출강하고 있다.
필자에겐 예쁜 여자 조카가 두 명 있다. 둘째 동생과 막냇동생의 딸들인데 둘 다 외모가 출중하고 날씬하고 성격과 학벌도 좋아 신붓감으로 흠잡을 데가 없다.
그런데 순서대로 둘째 동생네 조카가 먼저 결혼했으면 좋았을 텐데 막냇동생의 딸이 얼마 전에 먼저 결혼을 했다.
다행스럽게 중매쟁이나 어른의 소개를 거치지 않고 소개팅이라는 저희끼리의 만남을 통해 결혼까지 한 것이다.
신랑감도 조카와 어울리는 좋은 사람을 만난 것 같아 축하해주었고 엄마의 걱정을 덜어주었으니 효녀라고 칭찬해 주었다.
이렇게 축하해 주긴 했는데 실은 사촌 동생이 먼저 결혼을 한 터라 둘째 동생에게는 좀 걱정스러운 일이 되었다.
둘째 동생의 딸도 참 예쁘게 생겼다. 그런데 본인의 눈이 너무 높은 것인지 아직 인연을 만나지 못해서인지 서른을 넘긴 지가 언제인데 아직 시집갈 생각을 안 한다고 한다.
스튜어디스로 오랜 시간을 해외에서 보냈기 때문에 퇴사하고 집에 있는 것이 엄마로서 아주 좋았다고 한다.
항상 보고 싶었던 딸을 옆에 두고 있으니 대만족이었는데 이제 나이 어린 조카가 먼저 결혼하는 걸 보고서 마음이 급해졌나 보다.
아는 사람을 통해 중매를 부탁했다고 하는데 일단 50만 원을 내면 다섯 명의 신랑감을 선보여 준단다.
그 후에 잘 되어 결혼이 성사되면 100만 원을 사례금으로 내면 되고 안 되면 그것으로 끝이어서 다시 돈을 내고 선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참 답답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 조카는 왜 연애도 안 하는 것일까? 적령기의 선남선녀는 저희끼리 만나서 서로를 알아가며 정을 쌓고 결혼에 이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어떤 글에서 보니 결혼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한 20, 30대 남녀의 몸부림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한다.
남자는 외모, 여자는 조건을 본다는 말은 옛말이고 남녀를 불문하고 불안한 미래를 보장받기 위해 사랑도 조건도 더 꼼꼼히 살피려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남녀 모두 배우자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로 성격을 들었다.
그 외에 남자는 외모, 경제력, 직업, 가정환경을 꼽았고 여자는 경제력, 직업, 외모, 가정환경을 우선순위에 두었으니 순위는 달랐지만, 남녀 모두 성격, 경제력, 직업, 외모, 가정환경을 중요시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떤 커플매니저는 이전에 여성들이 따지던 조건들을 남성들도 많이 보고 상담을 해온다고 했다.
여성은 현재의 경제력을 중요시하는 반면 남성은 맞벌이를 할 수 있는 직업 안정성을 우선시한다는데 어떤 남성고객은 교사를 원한다고 하며 기간제교사인지 정년이 보장되는지도 꼼꼼히 묻더라고 했다.
이렇게 따지는 것 많고 원하는 것도 많으니 결혼 시장에서 승리하기는 그리 쉬운 일 같지는 않다.
결혼정보회사에 등록하는 건 그만큼 집안이나 주위의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을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결혼을 염두에 둔 만큼 누구나 만남에 까다롭기 마련이지만 조건에 집착하다 보면 사람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니 생각을 줄이는 게 중요하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런 조건도 보긴 하지만 사실 진검승부는 만났을 때의 첫인상과 매력일 것이다
사진으로 보아도 실물과는 다를 수 있을 것이며 원하는 조건이 맞아도 만나보면 생각과는 다를 수도 있다.
결혼에 성공하는 커플은 조건보다는 사람에 이끌리는 게 대부분이라 하니 성공적인 결혼생활을 꿈꾼다면 남녀 모두 현재에서는 상대의 성실성을, 미래 시점에서는 상대를 신뢰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는 게 아주 중요하고 필요한 일일 것이다.
‘짚신도 짝이 있다‘라는 말처럼 언젠가는 좋은 짝을 만날 테지만 이제부터 다섯 명의 신랑감 후보를 만나보게 될 우리 예쁜 조카가 빨리 좋은 사람 만나 시집가서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
나는 부모님처럼 늙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은 자신들의 뼈와 진을 녹여 자식들 뒷바라지 하느라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소진되어 버렸다. 아무 준비 없이 맞이한 노년은 무료한 일상과 건강을 잃어버린 신체 때문에 고통스러워 보였다. 이런 부모님을 보면서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라는 말을 습관처럼 되뇌었다.
그러다가 나도 늙어가고 있다는 걸 깨달은 건 마르케스의 ‘내 슬픈 창녀의 추억’을 읽고 난 후다. 거기에는 ‘늙음의 첫 번째 증상이 자신의 부모와 비슷해지는 것’이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 천장에 새는 비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엄마의 외모를 닮아가고, 아버지의 말투를 쓰고있던 나는 책을 읽으면서 늙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이 소설은 ‘백년동안의 고독’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마르케스의 자전적 소설이다. 그가 쉰다섯 무렵 파리에서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일곱 시간 동안 잠자는 아름다운 여인을 보며 소설을 구상하였다고 알려졌다.
주인공은 90살의 신문사 칼럼이스트다. 평생을 창녀들과 함께 보내느라 결혼할 시간이 없었던 그는, 돈을 지불하지 않고 여자와 잠자리를 가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사랑을 믿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90세 생일을 맞아 스스로에게 꿈같은 하룻밤을 선물하기로 한다.14세 숫처녀를 소개 받은 그는 그녀를 점점 사랑하게 되고, 사랑의 떨림과 기대, 흥분 등을 경험하면서 사랑에 빠져든다
사랑에 빠진 그의 변화가 재밌다. 어머니가 억지로 읽게 시켜도 읽지 않았던 낭만주의 문학작품에 빠져드는가 하면, 평생 고수해 왔던 전통적 만평형식 대신 연애편지 형식의 칼럼을 게재해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기도 한다. 사랑 때문에 죽는 것은 시적 방종에 불과하다고 믿던 그가 사랑 때문에 죽는 일은 가능한 일일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이 사랑 때문에 죽어가고 있음을 깨닫고 ‘내 고통의 달콤함을 이 세상 무엇과도 바꾸지 않으리라'고 말한다. 사랑에 푹 빠진 것이다 .
우리는 90세라는 나이가 사랑이라는 감정과는 거리가 먼, 퍼석퍼석한 나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틀렸다. 주인공은 죽는 날까지 아름답고 황홀한 감정을 간직하고 건강한 심장으로 백 살을 산 다음, 어느 날 행복한 고통 속에서 사랑을 느끼며 생을 마감하고 싶어 한다. 소녀에게 어떠한 것도 바라지 않는다. 노동에 지친 그녀는 그에게로 와서 잠만 잘 뿐이지만 그는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걸 깨닫는다. 자기가 태어난 침대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아흔살 노인은 생애 처음 자신에게 온 첫사랑의 설레임을 잊지 않을 것이다.
오십 줄에 들어서자 나도 기억에 구멍이 뚫리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안경을 쓰고도 안경을 찾고, 하루종일 스마트폰을 찾아 헤맨다. 아는 얼굴과 이름을 일치 시키기 힘들 경우가 빈번해지고, 약속을 잊어버리는 일도 많아진다. 이런 일에 대해 마르케스는 소설에서 ‘노인들이 본질적이지 않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는 사실은 생의 승리다. 우리는 우리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은 잊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면서 ‘자기 보물을 어디에 숨겼는지 잊어버리는 노인은 없다’는 키케로의 말을 인용했다.
늙는다는 건 나이 앞에 무릎 꿇는 일이 아니라 내 보물을 발견해 나가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으니 인생 2막이 설레이기도 하다. 나이 먹는 것에 대한 걱정을 많이 덜게 해 준 고마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