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초반 중공업 부문 회사의 플랜트 화공설비 부문 해외영업 팀장으로 근무하던 1980년대 초의 일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조선과 제철은 겨우 기초를 마련하였고 자동차도 현대 포니를 시작으로 국산 소형차가 출고되어 인기리에 주문받던 시기였다. 회사에서는 새로이 중화학 분야의 플랜트를 일괄수주 방식이나 주요설비의 부문별 주문방식으로 세계 시장에 진출하려 하였
인터넷은커녕 음식에 관한 제대로 된 책이라곤 백파(伯坡) 홍성유(洪性裕,1928~2002) 작가의 한 권뿐이었던 시절이었다. 차도 없이 정보도 없이 시작한 맛집 기행은 전국을 9번 돌면서 3500개의 맛집 자료로 만들어졌다. 기자 출신 음식평론가 황광해(黃光海·59)의 이야기다. 지난 30여 년 동안 잃어버린 옛 맛의 순수성을 찾아 전국을 직접 돌아다니며
자유공원에서 차이나타운 쪽으로 발길을 옮기자. 갑자기 북적이는 인파속으로 휩쓸렸다. 주말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찾았다. 여기저기 붉은 색으로 장식한 가게와 벽화들, 붉은색 물결이 마치 차이나타운을 상징하는 듯하다. 왜 그들은 붉은 색을 좋아하는 걸까? 중국인들이 홍색을 좋아하는 이유는 붉은색이 복을 가져다 준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삼국
사흘 전에 여고시절의 친구로부터 카톡이 왔다. 다음 주 목요일 11시 30분에 예전에 잘 다니던 음식점에서 점심을 함께 하자는 내용이다. 필자는 기쁜 마음으로 약속하고, 즉시 휴대폰 일정표에 친구와의 약속을 메모, 입력한다.
내일은 보고픈 친구를 만나는 날이다. 내일 날씨가 어떤지 휴대폰 인터넷을 열어 날씨를 점검한다. 오후에 비가 오락가락 할 것이라는
어느덧 강물을 배경으로 저녁노을의 붉은빛이 장막처럼 내려오더니 해가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의 강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강물에 어린 석양의 은빛 너울은 700리 낙동강의 전설 속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그 멋진 풍경을 가슴에 품고 어느새 어둠이 점령해 버린 길을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꾸역꾸역 달리고 있었다.
어느덧 피로가 덕지덕지 몰려와 몸과 마음이 지쳐갈
크로아티아 흐바르(Hvar)는 유명 여행전문잡지에 ‘세계에서 아름다운 섬’으로 자주 손꼽힐 이유가 충분하다.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가 자주 찾았던 곳이란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인과 일반인의 여행 시각이 뭐가 다를까? 그저 살아생전 찾아가봐야 할 섬이 흐바르다.
이 섬의 아름다움은 그 어떠한 미사여구로도 표현해 낼 수 없다.
진한 라벤더 향기
100세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신중년들은 인생 2막 설계에 관한 관심이 높다. 그런 요구에 맞춰 각 대학은 발 빠르게 다양한 학습 프로그램을 개발해 새로운 삶을 꿈꾸는 신중년세대를 불러 모으고 있다. 전 국민의 고등교육화를 꿈꿨던 한국방송통신대학교는 프라임칼리지를 개설해 신중년들의 미래 인생설계에 적극적으로 앞장서고 있다. 젊은 은퇴로 고민에 빠진 신중년들
따뜻한 햇살이 살살 느껴지는 3월.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바라만 봐도 봄빛 넘치는 시니어 모임 ‘봄빛클럽’을 찾아갔다. ‘노후 친구 맺기’라는 구호 아래 까다로운 선발 기준(?)을 통과한 50대에서 80대 시니어들의 모임이다. 그런데 이분들,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력이 넘친다. 눈만 마주쳐도 반짝반짝 웃음꽃이 만발한 현장. 이들이 모이게 된 이유
1970년대를 살았던 국민이라면 밤 12시에 울리는 사이렌 소리를 기억한다. 24년 전인
1982년 1월 5일, 광복 후 줄곧 갇혀 있었던 대한민국의 밤이 세상에 풀려났다. 밤 12시~새벽 4시의 야간 통행금지(통금)가 해제된 날이다. 전국 도시의 거리에 사람이 오가게 된 것도, 새벽까지 마셔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인의 술자리 습관도 모두 이때 시작됐다.
1976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한 노신사가 신문에 난 부음을 보고 빈소가 마련된 우리 집을 찾아왔다. 어머니는 그를 한눈에 알아봤다. 대한민국 초대 공보처장을 지낸 이철원 박사였다. 그는 아버지 생전에 신세를 많이 지었다며 이를 잊지 못하여 찾아왔다고 말하였다. 그제야 나는 아버지가 어릴 때 우리 형제들에게 들려주었던 얘기가 생각났다.
손우현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