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윤문상 전 EBS 부사장 “나이듦의 미덕은 거리두기, 멀리보기, 방향잡기”
- 윤문상(59) 전 교육방송공사(EBS) 부사장은 대한민국의 숨 가쁜 교육현장을 유아교육에서부터 초·중·고 교육에 이르기까지 생생하게 담아온 현장 PD 출신이다. 그는 2016년 2월 교육방송 부사장을 퇴직하고 새로운 인생 2막을 준비하고 있다. 그의 인생 2막 계획은 6개월씩 타국에서 생활인으로 살아보기다. 이를 통해 “인생 리타이어가 아닌 리셋을 해보겠다”는 계획이다. 2016년 하반기는 대만에서 생활했고(4~10월), 2017년 상반기는 베트남에서 한국어와 언론학을 강의하며 거주할 예정이다. 마침 방학을 틈타 잠깐 한국에 머물고 있는 그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장 퇴직 후 여행은 많은 사람들이 세우는 계획이지요. 관광이 아닌 6개월씩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기식 ‘생활 거주’는 흔치 않습니다. “6개월씩 타국에서 살아보기 프로젝트는 나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강제적 공간 이동을 해보자는 의미에서 시작됐어요. 단지 타이어를 바꿔 끼는 리타이어가 아니라 처음부터 새롭게 리셋하고 싶었어요. 의식을 바꾸기 위해선 본인의 자발적 노력뿐 아니라 공간을 바꾸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요. 타국 거주의 강제적(?) 환경 설정으로 리셋한 것이지요. 버스를 타는 사람은 버스 안에선 자세히 볼 수 있지만 바깥 풍경은 자세히 보지 못합니다. 달리는 버스 밖에서 보면 안은 들여다보지 못하지만 객관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객관적 보기가 절실히 필요했던 이유가 있었습니까? “퇴직 후 인생 2막 하면 기존에 하던 것의 연장선으로 강도-속도만 늦추는 것을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저는 과거의 경험과 지식을 연장하는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앞으로도 30, 40년 이상 일을 하고 살아가야 할 것이기에 ‘새로운 시작은 새 무대’에서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익숙한 서울의 아파트 방에 앉아서 머리로만 생각을 하는 것과 말 설고 사람 설고 풍경 낯선 외국에서 생각하는 것은 다르잖아요. 한국에선 아무래도 한계가 있어요. 반면 외국에 갔을 때는 친한 사람도 없고, 언어와 문화 등 많이 불편하지만 원점에서 시작해 나를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보게 되지요. 외국에서 생활인으로서 살아보니 단지 출장이나 관광으로 접하던 것과는 달리 새로운 것을 느끼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나에 대해서도 깊이 성찰해보게 되더군요.” 리타이어와 리셋은 어떻게 다른가요? “리셋은 한마디로 원점에서부터 새롭게 하는 적극적, 원초적 환골탈태라고나 할까요. 리타이어가 같은 트랙에서 속도만 늦추는 소극적 의미라면 리셋은 속도와 방향, 관점 이것들을 총체적으로 합쳐 객관적으로 보자는 의미예요. 그러기 위해 내가 나를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필요하지요. 한국이라는 익숙한 환경에선 내가 잘 아는 사람, 나를 잘 아는 사람만 만나게 돼 나를 있는 그대로 파악하기 힘들어요. 객관적으로 본다는 것은 조직 브랜드, 계급장을 떼고 자연인으로서 자신만의 정체성, 주제 파악을 하는 것입니다.” 리셋은 의식과 환경을 함께 바꾸는 것이군요. 월화수목금금 열정적으로 일한 분들일수록 ‘관성의 법칙’에서 벗어나기 힘들어하시던데요. “하하. 군대 속담에 ‘졸병보다 제대병이 더 마른다’는 말이 있는데요. 퇴직자들에게 갑자기 시간이 주어지면 자율적 관리를 하지 못해요. 제 경우엔 마인드 세팅을 이렇게 했어요. ‘브랜드 없는 사무실에서 봉급 받지 않고 일할 뿐이다. 초조해하지도 말고, 시간에 끌려가지도 말고 시간을 자유자재로 끌었다 놓았다 하는 여유’를 갖자고요. 현직에 있을 때는 시간에 나를 맞췄지만, 이제 나에게 시간을 맞추자고요. 여기에 환경 리셋 작업으로 ‘6개월 낯선 국가에서 살아보기ʼ를 더한 것이고요.” ‘살아보기’ 리셋 경험 국가로 베트남과 대만 등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기본적으로는 한국어, 언론학을 강의하며 생활인으로서 거주 환경이 마련될 수 있는 곳을 골랐지요. 엄밀히 말해선 자기성찰뿐 아니라 세상 관찰에도 목적이 있습니다. 인생 2막 프로젝트를 위한 사전 심층답사라고나 할까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는데 한 템포, 아니 반 템포라도 빨리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힘은 두 배가 들면서 성과는 반 토막이기 쉽습니다. 아시아에서 사업을 할 경우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미리 준비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호치민이라는 도시가 이런 발전 단계에 있는데 미래에는 어떻게 바뀔까, 무슨 씨앗을 뿌리고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에 안테나를 세우고 관찰하고 통찰해보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노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미리 생각하고 준비하는 것이지요. 앞으로 기회와 잠재력의 나라인 탄자니아나 가나 등 아프리카 대륙으로도 가보고 싶습니다. ‘집 떠나면 고생’이란 말도 있지 않습니까. 막상 타국에서 사실 때 생각과 생활이 많이 달랐을 것도 같습니다만… “외국에 살아보니 일단 퇴직했다는 사실을 저절로 잊어버리게 되더군요. 낯설고 어색한 환경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해결해야 하니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어요. 대만에선 대학에서 언론학과 특강을 하는 한편 6개월간 랭귀지센터에서 중국어 공부를 했습니다. 말하자면 선생님과 학생 역할을 동시에 한 셈이지요. 큰 사무실, 비서와 기사 딸린 임원생활을 하다가 작은 책상에서 중국어 기초부터 배우고, 북적거리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아내와 함께 해내야 했지요. 불편하기도 했지만 신선하다는 느낌이 더 컸어요. 특히 젊은이들과 함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이제는 대만을 가이드 없이 자유자재로 돌아다닐 수 있으니 그것만 해도 큰 소득 아닙니까. 성장과 발전이라는 불편함을 통해 익숙함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큰 소득은 아내와 동지애로 끈끈하게 뭉치게 된 것입니다. 이역만리에서 한 지붕 아래 같이 사는 네이티브 한국인은 우리 둘밖에 없으니 무슨 일을 하더라도 의논하고 의지할 수밖에 없더군요(웃음).” 윤 부사장의 지인들은 그의 성공력을 넘어 성장력의 원천으로 독서를 꼽는다. 동기들 중 차장, 부장 승진은 가장 늦었지만, 임원 승진은 제일 빨랐던 역전의 힘은 바로 독서력에서 나왔다. 낯선 것을 이질감보다는 호기심으로 수용했고 그 기저에는 책이 자리한다. 신입사원 시절부터 월급의 10%는 무조건 책 사는 데 쓰셨다면서요. “네. 솔직히 말하면 직장생활 초년병 시절 10년간은 불평쟁이였어요. 늘 사표 던질 타이밍만 재며 불만이 가득한 채로 보냈어요. 그러다가 ‘이래선 안 되겠다’ 변화해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됐는데 책이 계기가 됐어요. 당시 월급이 40만원 정도였는데 4만~5만원은 꼭 책 사는 데 썼지요. 독서에 빠지다 보니 현재의 불만을 한 걸음 뒤에서 보고, 또 한 치 더 깊이 보게 되더군요. 사고력, 판단력을 넘어 힐링의 치유력을 줬다고나 할까요. 상계동 집에서 서초동 직장까지 두 시간 이상 지하철을 타고 다녔는데, 매일매일 정거장 숫자나 세면서 가는 것이 참 지루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지하철을 도서관으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 독서삼매에 빠져 지하철역을 몇 정거장 후딱 넘길 때의 기쁨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제 인생에 영향을 끼친 , , 등 수백 권은 20년 동안 모두 지하철에서 읽은 책들이랍니다. 나중엔 누군가 집에 와서 다양한 책들을 보더니 ‘교수 같긴 한데 전공을 모르겠다’고 말하더군요(웃음).” 독서삼매에 빠졌던 이유가 궁금합니다. “PD란 직업의 숙명 같아요. 여러 분야의 사람을 만나야 하는 직업상 필요에 의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누구를 만나러 갈 때 그 사람과 관련한 책을 미리 읽는 것이 기본 예의란 생각을 한 게 독서의 직접적 동기였습니다. 라는 책은 과학 관련 내용이라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용어나 이론이 나올 때마다 그 부분을 쉽게 풀어쓴 책들을 다시 사서 읽으면서 진도를 나갔지요. 1년 뒤에 보니 관련 서적 50권 정도를 읽었더라고요. 극구 언론을 기피해 30분 내에 인터뷰를 끝내는 조건으로 겨우 인터뷰를 했던 어느 교육 전문가와 서로 좋아하는 책 관련 대화를 하다가 친해져 6시간 정도 대화를 했던 일도 있습니다. 책은 사교력뿐 아니라 판단력, 자신감도 키워주지요. 위로 올라갈수록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예측력과 큰 그림에 대한 파악력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윤 부사장은 ‘독서력은 퇴직 이후에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퇴직자들의 공통 트라우마는 ‘할 일이 사라졌다’는 목표 상실이다. 거기서 스트레스가 생긴다. 이럴 때 관심 주제를 정하고 2주 내에 관련 책 몇 권 읽기 등으로 목표 설정을 해놓으면 성취감뿐 아니라 정신건강과 목표관리에도 좋다”며 책은 시간 관리, 스트레스 관리의 해결책이자 좋은 친구라고 덧붙였다. 최근 1년 새 부모상을 잇달아 치렀다는 그는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사유하며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곧 ‘어떻게 살 것인가’와 통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삶의 마지막을 미리 생각해봄으로써 남아 있는 현실을 좀 더 소중하게 느끼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죽음에 대한 준비란 어떤 의미인가요? “‘죽음’ 하면 먼 일이라 생각하기 쉬워요. 그리고 ‘임종의 사전 준비’ 하면 상조회사, 묘자리 예약 등을 퍼뜩 떠올리는데요. 진정한 죽음의 준비는 세대 간 대화라는 생각을 했어요. ‘아버지(할아버지)는 누구이고, 어떤 고민을 해왔으며, 이렇게 살아왔다’를 책이든 뭐든 다양한 형식을 통해 들려주고 공유하는 것이지요. 어느 학교, 어느 직장 어느 직급까지 올라갔다는 이력서 상의 궤적을 넘어 한 인간 고유의 고민, 즉 삶의 흔적을 나눠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본인에 대한 파악부터가 필요해요. 후손이든 누구든 대화를 나누려면 스스로를 알아야 하지 않겠어요. 기억을 되살리고 기록을 남기는 것, 생을 마무리하는 인간의 의무이자 권리라는 생각을 부쩍 하고 있습니다.” 존경받는 어른이란 무엇일까요? “‘노인 하나가 사라지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생긴 것은 그만큼 지혜의 기록화가 필요하다는 의미의 반증이라고 봅니다. 주관적 기억이 아니라 객관적 기록으로 남길 필요가 있다는 거지요. 우리나라가 현재의 부강한 국가가 된 것은 그냥 저절로 된 것이 아닙니다. 이 과정을 경험하지 못한 다른 세대, 다른 국가에게 이 무형의 자산을 무형의 기억이 아니라 유형의 기억으로 알려야 합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기성세대는 충분히 자신감과 자부심을 가질 근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 유배생활 18년 동안 500여 권의 저서를 남긴 것은 사헌부 기록만으로 세상에 알려지는 것보다, 자신을 정확히 알리고 싶다는 강한 욕구 때문이었다”며 “일부 젊은 세대들이 기성세대를 꼰대라고 무시하고 폄하하는 것은 ‘잔소리만 많고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기록’은 남기지 않은 원인일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마지막 질문인데요. 인생 2막의 기준을 속도보다는 방향에 두고 말씀하시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하하. 네, 맞습니다. ‘거리두기’를 통해 보다 객관적으로 보고,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을 깊이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진짜 의미가 있고 재미있었던 것이 무엇이었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 돌아보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중요한 것은 시설이 잘된 회의실에서 하는 대규모 회의도, 큰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도 아니더군요. 의견이 맞는 사람들과 가치 있는 성과를 하나하나 이뤄간 것이었습니다. 인생 2막은 일의 규모나 외형보다는 삶의 질에 무게중심을 두고 싶습니다. 진정한 삶의 성과는 ‘어디까지 올라갔나’보다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을 했는가’에 있지 않겠습니까.” 점심에 만나 시작된 인터뷰가 끝났을 때는 어느덧 땅거미가 지는 저녁시간이었다. 귀갓길, 저 멀리 있는 입간판 글씨가 선명하게 보이고, 코앞의 버스정류장 노선안내 글씨가 희미하게 보이면서 읽히지 않았다. 요즘 부쩍 심해진 원시(遠視)의 증상이었다. 예전이라면 ‘노안(老眼)’의 시그널로 심란했을 텐데 문득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이듦이란 가까이 보기보다 멀리 보기의 장점, 이점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는 한 발짝 떨어져 거리두기, 멀리 보기를 할 때 보다 더 잘 보일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 소장 연세대학교 졸업. 경영학 박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겸임교수. 리더십 스토리텔러. 세계일보에서 CEO 인터뷰 전문기자로 활약했다. 세계경영연구원(IGM)과 삼성경제연구소 등에서 강의했다. 저서로는 , , 등이 있다.
- 2017-03-02 09:48
-
- 주택연금으로 가택연금 피하자
- 손성동 한국연금연구소 대표 ssdks@naver.com A(65세)씨는 요즘 원치 않는 혼족 생활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친구들 모임에 열심히 나갔으나 지금은 발길을 뚝 끊은 상태다. 한때 동기회 회장까지 맡았던 그는 몇 년 동안 일체 연락도 하지 않은 채 두문불출하고 있다. 친구들 모임에 나가면 즐겁지만 식사비와 가벼운 음주 비용마저 두렵기 때문이다. 지금 그에게 유일한 친구는 TV뿐이다. 그는 지금 강남의 10억 정도 하는 아파트에서 소파를 침대 삼아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며 TV를 보고 있다. 밖에 나간 아내가 빨리 들어오지 않아 분을 삭이면서. 대기업 부장으로 재직하다 55세에 퇴직한 A씨는 그동안 모아놓은 돈으로 아내와 함께 고품격 해외여행은 물론 뮤지컬 관람 등 문화생활을 즐겼다. 이른바 액티브 시니어로서 그동안 고생한 보람을 맘껏 누렸던 것이다. 그러나 고가의 아파트도 있으니 어찌 되겠지 하는 맘으로 5년을 즐기는 동안 어느새 저축해놓은 돈이 동나버리고 말았다. 그 허전함과 불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다정했던 아내와의 사이는 벌어지기 시작했고 A씨는 집 안에 틀어박혀서, 아내는 밖으로 나도는 일상이 반복되고 있다. A씨가 다시 액티브 시니어로서 활기찬 노후를 보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주택연금 가입하면 얼마나 받을 수 있나? A씨가 가택연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역설적이게도 주택을 활용하는 방법밖에 없다. 10년 동안 일을 쉰 65세의 은퇴자에게 재취업의 길은 멀기 때문이다. A씨는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를 처분해 주택연금에 가입할 수 있는 9억원 이하의 아파트로 이사하면 1억원 정도의 여유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 A씨가 9억원짜리 아파트로 이사한 뒤 바로 주택연금 신청을 하면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주택연금 월 수령액은 신청 당시의 연령과 주택가격, 지급방식, 보증료 크기 등에 따라 다르다. 만일 A씨가 매월 일정한 금액을 종신지급받는 조건으로 가입할 경우 월 227만4000원 정도를 받게 된다([표 1] 참조). 현재 A씨는 국민연금으로부터 매월 약 70만원을 받고 있으므로 국민연금과 주택연금을 합치면 300만원 정도의 생활비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만약 생활비를 250만원 정도로 낮추면 7억짜리 아파트로 이사할 수 있고, 200만원까지 낮추면 5억짜리 아파트로 이사할 수도 있다. 월 생활비를 250만원으로 낮추면 3억 정도의 여유자금을 확보할 수 있고, 200만원으로 줄이면 5억원의 여유자금을 손에 쥘 수 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액티브 시니어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 주택연금 신청자 얼마나 되나? 주택연금은 2007년 7월에 도입된 이후 가입자 수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누적 가입자 수는 2012년 말 1만1393명에서 2016년 말에는 3만4444명으로 증가했다. 매년 주택연금에 가입하는 신규 가입자 수는 2012~2015년 5000~6000명 선에서 2016년 처음으로 1만 명을 넘어서기에 이르렀다([그림 1] 참조). 2016년 신규 가입자 수(1만309명)는 2015년보다 58.9% 증가한 수치다. 이처럼 지난해 주택연금 신규 가입자 수가 크게 늘어난 것은 ‘내집연금’ 3종 세트 출시와 가입요건 완화 덕분이다. 주택연금이 고령층의 주요 노후준비 수단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한편 2007년 7월 주택연금 출시 이후 2016년까지 주택연금 가입자의 평균 연령은 71.9세, 평균 주택가격은 2억8300만원, 월 평균 수령액은 98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 유형은 아파트가 84.0%로 가장 많았고, 주택 규모는 85㎡(약 25.8평) 이하가 78.9%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집연금’ 3종 세트란? ‘내집연금’ 3종 세트는 2016년 4월 25일 출시된 상품으로 다음 3개의 주택연금을 묶었다. ① 일시인출 한도를 70%로 늘여 만 60세 이상 고령자의 주택담보대출을 상환하고 주택연금을 이용할 수 있게 한 ‘주택담보대출 상환용 주택연금’, ② 40~50대가 보금자리론을 이용하다가 향후 주택연금으로 전환할 때 최대 연 0.3%p의 전환장려금을 지급하는 ‘주택연금 사전예약 보금자리론’, ③ 1억5000만원 이하의 주택을 보유하고 있는 60세 이상 고령자에게 월 지급금을 최대 15% 더 많이 주는 ‘우대형 주택연금’. 첫째, 주택담보대출 상환용 주택연금은 부부 중 한 명이 만 60세 이상이고 부부 기준 9억원 이하 1주택 소유자 또는 다주택 보유자의 경우는 보유주택 합산 가격이 9억원 이하이면 가입할 수 있다. 합산 가격이 9억원을 초과하는 2주택자는 3년 이내에 비거주 주택을 처분하는 조건으로 가입 가능하다. 주택연금에 가입할 때는 주택가격의 1.0%를 가입비 형태로 초기보증료를 납부해야 하며, 매년 연금지급 총액의 1.0%를 연보증료를 납부해야 한다. 보증료는 월 지급금 보장 및 미래손실 충당을 위한 재원으로 사용된다. 보증료는 연금지급 총액에서 자동 공제되므로 직접 납부할 필요는 없다. 연금지급 한도의 70%까지 일시에 인출해 주택담보대출 상환에 활용할 수 있다. 일시 인출한도 금액은 주택가격과 연령에 따라 다르므로 주택금융공사에 문의하면 쉽게 알 수 있다. 만일 인출한도 전액을 사용했음에도 주택담보대출 전부를 상환하기 어려울 경우에는 최대 1000만원 한도 내에서 서울보증보험의 내집연금연계신용대출을 이용할 수 있다. 부부 모두 사망하거나 주택소유권을 상실했을 경우, 그리고 1년 이상 거주하지 않을 경우에는 주택연금이 종료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종료 시점에 주택가격이 연금수령 총액보다 많을 경우에는 남는 부분이 자녀에게 상속되므로 주택연금 가입 후 주택가격이 오르면 손해 보는 것 아니냐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연금수령 총액이 주택가격보다 많으면 부족분에 대한 청구는 하지 않으므로 혹시라도 자녀에게 빚으로 떠넘기면 어떻게 하나 걱정할 필요도 없다. 둘째, 주택연금 사전예약 보금자리론은 40~50대 중·장년층이 주택연금 가입을 미리 약속할 경우 이자 혜택을 주는 연금상품을 말한다. 주택금융공사가 취급하는 장기 주택담보대출로 보금자리론을 빌려 집을 살 때 주택연금에 가입할 것을 약속하면 연금전환 시점까지는 대출 원금과 이자를 갚다가 전환 시점이 되면 빚을 일시에 상환한 뒤 남는 돈을 연금으로 수령하는 방식이다. 부부 중 한 명이 만 40세 이상이고 무주택자 또는 부부 기준 9억원 이하 1주택 보유자일 경우 이용할 수 있으며, 주택 소유자 또는 배우자가 만 60세가 된 후 희망하는 시기에 주택연금으로 전환할 수 있다. 주택연금 전환가능 여부는 전환신청 당시의 주택연금 가입요건에 따라 결정된다. 만일 전환신청을 했는데 가입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에는 주택연금 가입이 거절될 수 있다. 초기보증료는 주택가격의 1.5%, 연보증료는 연금지급 총액의 0.75%다. 주택연금 종료 사유는 주택담보대출 상환용 주택연금과 동일하다. 이 주택연금은 금리를 0.15%p 우대해준다. 또 은행에서 만기 일시상환식 변동금리부 주택담보대출을 이미 받은 사람이 보금자리론으로 갈아타면서 주택연금 가입을 약정하면 추가로 0.15%p를 우대받아 총 0.3%p의 금리 인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우대이자는 60세 연금 전환 시점에 전환 장려금으로 일시에 받을 수 있다. 가령 만기 일시상환식 변동금리부 은행 대출을 가진 45세 B씨(3억원 주택 소유)가 보금자리론으로 갈아타고 주택연금 가입을 예약하면 주택연금으로 전환되는 60세에 296만원을 받는다. 사전예약 보금자리론에 가입한 뒤 주택연금으로 전환할 경우 조기상환 수수료는 면제된다. 단 주택연금 전환 이후 해지할 경우에는 면제된 조기상환 수수료를 납부해야 한다. 셋째, 우대형 주택연금은 부부 기준 1.5억원 이하의 1주택 보유 고령자의 노후생활비 지원을 위한 연금상품으로 일반 주택연금보다 월 지급금이 8~15% 정도 많다. 대출한도의 45% 이내에서 필요에 따라 수시인출을 할 수 있는 것도 이 상품의 장점 중 하나다. 기존 주택담보대출이 대출한도 45%를 초과하는 경우에는 자기자금으로 초과하는 금액을 상환한 뒤 우대형 주택연금에 가입할 수 있다. 자기자금이 부족할 경우에는 주택담보대출 상환용 주택연금을 활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 상품의 초기보증료는 주택가격의 1.5%, 연보증료는 연금지급 총액의 0.75%다. 주택연금 종료 사유는 앞의 두 상품과 동일하다. 주택연금 가입 방법 주택연금에 가입하려면 ‘상담→가입신청→주택연금 약정 및 실행’이라는 3단계를 거쳐야 한다. 상담은 콜센터(1688-8114)를 이용할 수 있고, 가까운 주택금융공사 지사나 은행 지점을 방문해 받을 수도 있다. 방문상담을 할 경우에는 예약상담을 이용하면 편리하다. 예약을 하지 않고 그냥 방문하면 오래 기다리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예약상담은 홈페이지(www.hf.go.kr)나 콜센터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 가입신청 단계에서는 필요서류 제출 및 주택연금 보증신청이 진행된다. 필요 서류는 신분증, 주민등록등본 2부, 주민등록초본 1부, 전입세대열람표 1부, 가족관계증명서 1부, 인감증명서 2부 등이다. 가입신청을 하기 전에 거래할 은행을 정하고 대출 가능 여부를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주택담보대출 잔액이 있는 은행에서 주택연금에 가입할 경우 조기상환 수수료가 면제된다. 주택연금 약정 및 실행 단계는 주택금융공사에서 은행으로 보증서를 발급한 뒤 고객이 거래은행을 방문해 주택연금 약정을 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거치면 연금이 통장으로 들어온다. 주택연금 이용할 때 주의해야 할 사항은? 주택연금은 노후준비가 부족한 고령자들이 노후 생활비를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연금을 수령하다 중도에 해지하면 초기보증 수수료를 날리게 되므로 배우자와 자녀 등 주택의 이해관계자들과 충분한 의견을 나눈 뒤 신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007년 7월 주택연금 도입 이후부터 2016년 말까지 주택연금에 가입했다 중도에 해지한 사람은 총가입자(3만9429명)의 12.6%인 4985명이나 된다. 주택 소유자가 사망한 뒤 배우자가 계속 연금을 받으려면 배우자가 채무를 인수해야 한다. 배우자가 채무인수 및 소유권 이전 등기를 완료할 때까지 주택연금이 일시적으로 정지되기 때문이다. 주택연금에 가입할 때 사전에 채무를 넘겨받는다는 약정, 즉 사전채무인수약정을 맺으면 주택 소유자 사망시 추가 약정을 맺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다. 소유권 이전 등기는 소유자 사망 후 6개월 이내에 해야 한다. 주택연금 이용 중 이사를 할 경우에는 담보주택을 변경해야 주택연금을 계속 이용할 수 있다. 단, 이사하려는 주택가격(평가액)에 따라 월 지급금이 달라지거나 정산을 해야 할 수도 있으므로, 사전에 주택금융공사에 문의해보는 게 좋다. >>손성동(孫盛東) 한국연금연구소 대표 삼성금융연구소 수석연구원,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 연구실장,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연금연구실장 역임. 현재는 ‘한국연금연구소’ 대표로 있으면서 1인기업가를 꿈꾸고 있다. 공식블로그 ‘꿈꾸는 은퇴와 연금’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부산 동아대와 동서대에 출강하고 있다.
- 2017-02-28 08:53
-
- 도대체 왜 그들은 결혼하지 않는가
- 갈수록 설 명절에 그들을 볼 수 없다. 인터넷에는 그들끼리 ‘설 명절을 피하는 법’ 같은 정보를 주고받는다는 흉흉한 소문도 나돈다. 이제는 세뱃돈의 유혹도 그들을 붙잡지 못한다. 더는 결혼에 대한 추궁을 받기 싫어서일지 모른다. 그들이 빠진 안방에는 노인들만 모여 한숨을 쉰다. “도대체 걔들은 왜 결혼할 생각을 안 하는지 몰라. 앞으로 어떻게 살려는지 원….” 새해 벽두부터 ‘인구절벽’이라는 생소한 말이 떠돈다. 미래학자 해리 덴트가 최근 저서 에서 고령화 사회의 문제를 제기하고자 사용한 ‘인구절벽’이라는 용어는 젊은 층의 인구가 어느 순간부터 절벽 같이 떨어지는 현상을 표현한 말이다. 그는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의 사례를 통해 한국도 2018년을 기점으로 경제인구가 하락할 것을 예측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한국은 내년 이후 경제인구가 감소하며 일본이 겪었던 장기 침체를 경험할 것”이라며 출산율을 높이는 해법으로 보육비 지원을 언급했다. 사실 그들이 결혼하고 싶어도 못하는 이유가 보육비를 비롯한 어마어마한 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기를 키우며 직장 일을 병행할 수 없으니 이중의 고통이다. 그러나 그것뿐일까? 우리 세대의 기억 속에는 10남매 가족이 그리 놀랍지 않다. 우리도 보통 5, 6남매의 일원이지 않은가. 소위 베이비 붐 세대에게는 오히려 오늘날의 인구절벽이라는 말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생소함이다. 아이 낳는 것이 일상사였고 보조금 안 주어도 순풍순풍 아이를 낳곤 했는데 왜 그들은 아이는커녕 결혼마저 기피하는가. 하긴 인구 정책적 관점에서만 보면 인구를 늘리는데 왜 결혼을 장려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오늘날 미혼모 문제가 심각하지 않은가.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보호받지 못하고, 만약 알려질 경우 받아야 할 지탄이 두려워 몰래 버리거나 출산 기록이 남을까 겁나 이름 없이 베이비 박스에 놓고 가지 않는가. 결혼만이 인구 정책의 외곬 길은 아니라는 말이다. 주제로 다시 돌아오면 그들이 결혼을 기피하는 이유가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과거 다산을 권장하는 전통은 당시 경제력의 바탕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인력(人力)이었으므로 다산은 곧바로 미래를 보장하는 경제 행위였으나 지금은 과연 그런가? 우리만 해도 형제자매들이 취직하여 가정경제에 나름 보탬을 주었으나 이젠 노후에도 각자도생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다시 말하면 결혼하여 자식을 낳아야 할 필요성이 현저히 줄어든 것이다. 별로 필요도 느끼지 않는데 자꾸 결혼하여 국가 경제를 위해 자식을 낳으라니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이다. 게다가 꼭 자식이 아니라도 자신의 정신적 DNA를 남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글로 혹은 SNS로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는 말이다. 굳이 인구가 걱정이라면 트럼프와 반대로 이민을 받으면 되지 않겠는가. 젊은이들이 아이 때문이 아니라 사랑을 이루기 위해 결혼할 때까지 조금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주면 어떨까.
- 2017-02-06 19:13
-
- 집 잡히고 해외여행을 떠나라니요
- 가슴 떨릴 때 세계여행을 떠나야지 늙어서 다리 떨릴 때 여행 가면 사서 개고생이라고 어느 장년모임에서 젊은 강사가 말한다. 돈이 있어야 세계여행을 다녀올 텐데 무슨 돈으로 여행을 가라는 말이냐는 청중들의 질문에 강사는 답변을 준비한 듯 꼭 집어서 집을 잡히고 그 돈으로 여행을 가라고 한다. 주택 역모기지론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강사는 신바람이 나서 자식이 부모를 모시는 시대는 지나갔다, 집을 자식에게 물려줄 생각 하지 말고 신나게 폼 나게 다 쓰고 한 푼도 자식에게 줄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한다. 한발 더 나아가 셀프부양 시대라며 자신의 몸은 스스로 돌봐야지 자식이 나를 부양해줄 것이라는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고 한다. 유튜브에서 인기가 있는 어느 스님은 고부간의 갈등이나 부모 자식 간의 트러블을 예방하기 위해서 자식이 20세가 지나면 부모 자식 간 정을 끊고 서로 간섭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동물들의 세계를 봐도 다 큰 자식을 끼고 사는 동물은 없다고 한다. 자식들이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님을 자주 찾아보지 못하고 전화도 제대로 하지 않는 세태에 이런 달콤한 강의는 자식들에게는 면죄부를 주고, 부모 세대에는 찾아오지 않는 자식을 탓하기에 앞서 변화된 시대를 탓하고 자식들을 억지 이해하게 만든다. 심지어는 우리 세대가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지막 세대이며 자식에게는 버림받는 첫 세대라고 자학적으로 말한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탓에 모 대학에서 대학생들을 상대로 부모를 누가 모셔야 하느냐는 설문조사를 했는데 무려 70%가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젊어서 국가에 열심히 세금을 납부했으니 늙어서는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자식을 열심히 키워준 것에 대한 대답은 없었다. 사자가 다 큰 자식 사자를 돌보는 일은 없다, 젊은 자식 개가 늙은 어미 개에게 먹이를 갖다 주는 일도 없다는 등 짐승의 행태를 사람에게 비유해 부모 자식 간에도 남남처럼 서로 간섭하지 말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홍보하고 사회 분위기를 조장하는 모든 행위에 서글픔을 느낀다. 사람은 동물이지만 짐승은 아니다. 남녀가 성년이 되어 결혼하고 자식들이 태어나고 재롱떨며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이 살아가는 즐거움이다. 짐승이 자식에게 먹이를 주는 본능과는 또 다른 이성이 사람에게는 있어 만물의 영장이라 한다. 옛날부터 세상에서 보기 좋은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마른 논에 물들어가는 것과 자식 입에 밥 넘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자식을 위해 하는 모든 행위는 부모의 즐거움이다. 여기에 대한 보답으로 늙은 부모를 모시는 것은 수천 년 동안 해온 인류역사다. 이것이 사람과 짐승과 다른 점이다. 자식이 스무 살이 넘었다고 쫓아낸 후 나 몰라라 하고 해외여행 다니면 부모 마음이 편할까. 부모는 개천에서 뒹구는데 자식인 나만 잘살면 행복할까. 부모 자식 간은 한 몸과 같다. 오른팔이 아픈데 왼팔이 희희낙락할 수 없다. 부모와 자식 사이를 동물에 빗대어 억지로 떼어놓고 행복 운운하는 것에는 수긍할 수 없다. 행복의 최소 단위는 가족이고 가족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하다. 가족을 모아주는 정책을 개발하고 할머니 할아버지를 포함한 가족의 개념을 해체하지 않고 함께 살게 하는 묘수를 찾아야 한다. 핵가족화가 고착화되다 보니 가족의 개념도 희미해져간다. 초등학생이 함께 사는 강아지는 가족이라 하고 따로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는 가족이 아니라고 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내가 번 돈 내가 다 쓰고 죽는다고 신나게 쓰다가 돈이 떨어지는 날 죽지 않으면 어찌하는가. 인명은 재천이라고 했다. 점쟁이도 아닌데 죽는 날을 어찌 안단 말인가. 나는 해외여행보다 일하며 돈 버는 것이 좋다. 누군가 그렇게 일만 하다가 죽을 것이냐고 물어보면 일하다 죽는 것이 해외여행하다 죽는 것보다 낫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여행은 절대 안 하고 자린고비처럼 돈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해외여행을 갈 기회가 있으면 즐거운 마음으로 가겠지만 집을 저당 잡혀서까지 해외여행 갈 마음은 없다. 내 입에 고기반찬 들어가는 즐거움보다 손자 입에 사탕 하나 물려주는 것이 할아버지의 기쁨이다. 이제는 농경사회도 아니고 직장 때문에 핵가족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노골적으로 유명 강사들이 핵가족을 찬양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대가족 단위로 함께 사는 것이 경제적으로 이득임은 자명하다. 지금의 할머니 할아버지는 무식하지도 않고 위생관념도 투철하기 때문에 손주들의 양육 면에서도 함께 사는 것이 도움이 된다. 맞벌이 부부가 대세인 요즘, 아이들을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아 아이 돌보는 양육자가 바뀌고 있다. 미안한 부모는 돈으로 아이들의 환심을 사려고 한다. 어느 초등학생이 생일파티라며 4만원짜리 뷔페에 친구들을 데리고 오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부모가 아이들을 직접 관리하지 못하니까 혹 나쁜 길로 빠질까봐 이런저런 생각을 못하게 여러 학원을 투어하도록 교육 프로그램도 짠다. 아이는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인격형성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정부는 대가족제도의 장점을 홍보해야 한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영어선생, 수학선생을 하면 일거양득이다. 대가족으로 함께 사는 지혜를 정책으로 반영 보급하도록 정부는 앞장서야 할 것이다.
- 2017-02-01 16:33
-
- [함철훈의 사진 이야기] 깨어나는 실크로드의 나라들
- 가르치는 재미를 몽골국제대학교에 와서 배우고 있다. 학생들과 만나는 강의명은 ‘Liberal arts through Photography-사진으로 만나는 인문학’이다. 국제대학교라 학생들뿐 아니라 교수들도 여러 나라에서 왔기에 모든 행정절차와 강의는 영어로 진행된다. 여러 나라란 몽골을 비롯한 러시아, 중국, 우즈베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한국, 인도,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영국, 홍콩 등 다양하다. 그래서 우리 학교에는 다른 대학과 다른 독특한 분위기와 문화가 스며 있다. 나와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서로 배운다는 태도이다. 서로 호감을 갖되 존중하고 이해해야 하는 현대 국제사회에서 요구되는 자세이다. 그렇다고 이 지역 정서가 옅어지는 것은 아니다. 몽골이라는 지정학적 특징과 역사에서 우러나는 유목민적인 성격은 언제나 바닥에 녹아 있다. 지난 호에 내보낸 ‘낯선 이국에서 새 시대와 새 세대를 본다’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이러한 환경에서 알게 된 시간적인 내용이었다면 이번에는 새 시대에 공간적인 새 지역을 얘기하고 싶다. 4년 전까지만 해도 난 한 번도 몽골에 들어와 살아보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다만 사진가로 몽골을 촬영할 일이 여러 번 있었을 뿐이다. 먼저 1990년대 초 세브란스병원에서 몽골에 연세친선병원을 세우는 과정에 우연히 참여하게 되는 행운으로 첫발을 딛게 되었다. 그리고 몽골 대통령으로부터 초청을 받은 한 기업 총수의 국빈 초청 응답 선물로 몽골의 아름다움을 사진첩(Land of Lands Mongolia)으로 만들기 위해 아내와 방문하게 되었다. 그 사진첩은 국가원수의 격에 맞는 의전을 갖추어야 해서 작품 하나하나가 모두 원본 사진으로 만들어진 수제 책이다. 그리고 2005년에는 연세대학교 120주년 기념사업회로부터 ‘희석된 학교의 건학정신을 사진으로 되살려 달라’는 요청을 받게 되었다. 거기에 부합하는 기획을 준비하다가 세브란스 2회 졸업생인 이태준 열사를 찾게 되었는데 그의 활동무대가 몽골임을 어쩌랴! 그렇게 ‘이태준 선배는 왜 몽골로 갔는가’를 위해 다시 제자들과 몽골을 촬영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미국 비정부기구유엔총회라 불리는 인터랙션대회에서 대상을 받게 되었는데 그 내용이 몽골 양로원에서 촬영한 사진 ‘Such wealth and such freedom’이다. 그리고 사람뿐 아니라 가축의 생명을 귀히 여기는 몽골인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낙타의 눈물’ 스틸을 촬영하게 되었으며, 미국 캘리포니아 어바인시 파인 아트 홀과 우리나라 안양시의 알바로 시자 홀에서 연 휴먼다큐 를 준비하기 위해 몽골과 또 인연이 생겼다. 이렇게 되짚어보면 몽골에 대한 인연이 특별히 많게 보이지만, 사실 몽골만 많이 다닌 건 아니다. 따져보면 어느 나란들 그렇게 안 다녔으랴! 사진가라는 직업이 그렇게 세상을 많이 다니는 게 일이다. 몽골이 중앙아시아의 시작 지역이란 얘기를 꺼내기 위한 얘기가 길어졌다.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나라는 중앙아시아 지역의 나라들이다. 그래서 그동안 나는 몽골보단 ‘스탄’으로 끝나는 실크로드 천산북로로 이어진 중앙아시아 나라들을 몽골만큼이나 많이 다녔다.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으로 연결되어 유럽과 닿는 아시아의 서쪽 끝 보스포루스 해협이 관통하는 이스탄불까지. 또 다른 길도 다녔다. 천산 아래 중국 시안(西安), 신장 위구르 자치지역 북서쪽 파미르 고원에서 파키스탄으로 넘어가 카라코람 하이웨이, 훈자왕국을 지나 라호르와 이슬라마바드, 그리고 인도 중동 나라들과 만나는 옛 동로마제국 터키에 닿는 길에 만나게 되는 나라들. 그 중앙아시아 나라들을 생각하면 어렸을 때부터 왠지 가슴이 뛰었고 지금도 맥박이 빨라진다. 이 나라들을 꿈꾸고 가까이 보기 위해 난 몽골로 왔다. 대한민국 우리나라에서 보면 이 나라들이 시작되는 곳 중 하나가 몽골인 것이다. 오늘의 몽골은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그리고 내몽골의 중국과 맞닿아 있다. 러시아를 부를 때는 시베리아라는 러시아 지역 이름이 난 더 좋다. 거기엔 몽골의 홉스굴 호수와 연결된 바이칼이 있고, 우리와 얼굴과 정서가 많이 닮은 민족들이 살고 있다. 길은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 관심으로 퍼지며 피어난다. 앞에서 얘기한 중앙아시아 나라들과 우리를 이어줬던 길들이 소위 실크로드란 이름으로 세상에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많고 어떤 길보다 큰 길이었던 실크로드는 근세 서양 문명의 휘황찬란한 빛에 오랫동안 가려졌었다. 근세 대서양과 태평양 길의 번성으로 사람들에게 잊혔다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여기 몽골에선 분명히 보인다. 그 길을 따라 큰 기운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나라를 떠나 있는 한국 사진가이기에 보이는 것이다. 새 시대는 공간도 시간과 함께 드러난다. 이제 가려졌던 길이 드러나면서 그 공간의 시간도 새롭게 조명될 것이다. 공간의 시간은 역사로 살아난다. 역사는 서로 다른 가치가 만나 각축하는 실질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덮였던 시간이 오랠수록, 드러나는 공간은 경이로울 수밖에 없다. 그 길과 연결된 나라들이 각자의 역사와 함께 깨어나고 있다. 그래서 우리 새 세대는 그 일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아직까지 너와 나를 가르는 남의 역사에서 이제 우리를 아우르는 중앙아시아의 새로운 역사가 일어나려고 꿈틀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혹여 잃어버린 것이 소리에 있나 하고 음악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연극을 하며, 각자 열심이듯 나도 잃은 것이 있나, 있다면 그것을 찾아보려고 여기에서 사진작업 중이다. 실크로드의 나라들이 깨어나듯이 나도 새롭게 깨어나고 있다. 함철훈(咸喆勳) 사진가·몽골국제대학교 교수 1995년 민사협 초청 ‘손1’ 전시를 시작으로, 2009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 2012년 이탈리아 밀란시와 총영사관 주최로 전을 FORMA에서 개최. 2006년 인터랙션대회(NGO의 유엔총회)에서 대상 수상. 저서로 , 등이 있다.
- 2017-01-23 10:00
-
- 정유년(丁酉年)을 맞는 소회
- 시간처럼 오묘한 것도 없다. 공간은 정직하게 자기 모습을 드러내지만, 시간은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다. 시간은 강물을 닮아서 때로는 폭포처럼 정신없이 바쁘다가도 어떤 때는 평탄한 지형을 흐르는 잔잔한 강물처럼 지루하기도 하다. 때로는 가뭄에 드러난 강바닥처럼 별일 없이 왜소하게 흐르다가도 어느 때는 장마로 부풀어 올라 모든 것을 휩쓸어 가듯이 도도하게 흐르기도 한다. 한때 과학 시간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에 등장하는 시간의 개념을 배우면서 무척 신기하고 혼란스러웠던 적이 있다. 모든 시간의 흐름은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시간에 대한 우리의 느낌이 다를 수 있으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했지만, 느낌만이 아니라 실제로 과학적으로도 다르다는 것이다. 빛의 속도로 달리면 시간이 멈춘다는 데에서는 머리 회전도 멈추었다. 시간을 인식하기 시작하면 늙었다는 증거라고 하지만 사실 젊은 날에 이런 시간의 비밀을 읽어내기에는 지나치게 우리 몸이 뜨겁고 혈기 왕성했다. 시간과 한 몸이 되어 뒹굴 때는 시간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한다. 잔잔히 흐르는 강물처럼 시간을 관조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야만 비로소 시간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물론 이미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는 점이 문제이지만. 병신년이 서녘 하늘가로 꼬리를 감추고 사라지면서 정유년이 밝았다. 그렇지만 광장 촛불로 촉발된 시간의 과잉은 새해의 담장을 무시하고 정유년의 정결한 아침 마당으로 넘쳐흐른다. 인간이 설치한 인위적 시간의 칸막이가 속절없이 무너지는 광경을 보는 것이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니다. 인류가 그토록 애써서 쟁취한 시간의 분절은 나름대로 중요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넘쳐나는 시간의 흙탕물 속에서도 순결한 새해 소망을 이야기해야만 한다. 시간이 비록 우리를 속일지라도 우리는 슬퍼하지 말고 새해에는 살을 빼야 한다. 그것이 비록 작심삼일(作心三日)일지라도 우리는 새해 아침 자신과 약속해야만 한다. 새해도 주머니가 두둑해질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주머니 만드는 일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 그것이 시간에 대한 예의이다. 눈 덮인 새하얀 들판을 보듯 새해 아침은 그렇게 정결했으면 좋겠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로 첫발자국을 찍고 싶다. 새해는 그렇게 시작하고 싶다. 늘 단골로 다니는 을지로 냉면집을 찾아가다 보면 을지로 3가 못 미쳐 시비가 하나 서 있다. 새해가 되면 떠오르는 김종길 시인의 라는 시다. 올해는 유독 그 시비 앞에 서 있는 시간이 길었다.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 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중략)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 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새해는 젊고 어린 세대들의 마음에 고운 이빨이 돋기를 기원한다.
- 2017-01-02 16:38
-
- [김정렬의 재미있는 부동산 이야기] 신조어로 알아보는 부동산 풍속도
- 아파텔, 호피스텔, 벅세권, 맥세권, 스세권, 알파룸, 베이, 팬트리, 갭투자, 깡통주택 등의 신조어가 등장한 시기는 각각 다르지만 현재 부동산 시장에서 쓰이는 말들이다. 부동산 관련 용어는 주로 건축법 등에서 자주 쓰이지만 새로 등장하는 표현 중 일부는 건축업계 등의 주거용 부동산 마케팅 전략에서 만들어져 통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신조어는 현 세태를 반영하는데, 들여다보면 나름대로의 시사점도 있는 부동산 풍속도다. 오피스텔(Officetel), 아파텔(Apartel), 호피스텔(Hofficetel) 등의 신조어에는 호텔(Hotel)이란 의미가 포함되어 있으며, 이는 고급화를 지향하는 최근의 부동산 트렌드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패스트푸드 배달 서비스가 가능한 지역을 뜻하는 부동산 용어도 이제는 낯설지 않다. 지하철 역 주변 지역을 의미하는 역세권 개념을 모방해, 맥도날드와 스타벅스 배달 가능 지역을 맥세권, 스세권 등으로 만들어 부르고 있다. 이러한 신조어는 역세권에 위치한 집을 선호하듯 특히 1인가구의 젊은 세대가 프랜차이즈 등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주변 환경을 중시해서 생겨난 말이다. 이는 도시 외곽의 주택보다 도심 주택을 선호하는 현상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알파룸(α room), 베이(Bay), 팬트리(Pantry) 등 주택 실내공간과 수납공간 디자인을 지칭하는 신조어와 함께 갭투자와 깡통주택이라는 용어도 등장했다. 깡통주택의 피해자는 세입자들이다. 요즘은 부동산 투자 개념 변화 등에 따라 주택 구입과 전세 또는 월세에 대한 생각들이 예전과 많이 다르다. 집값 상승이 확실하지 않으면 목돈을 투입해 주택을 소유하는 것이 부담이라고 생각한다. 건물 감가상각과 함께 수리 유지비용만큼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파텔(Apartel) 건축업자들이 만든 신조어로 주거용 오피스텔을 말한다. 아파트의 편리함에 오피스텔의 장점이 결합된 형태로 아파트와 오피스텔의 합성어다. 발코니가 없고 욕실에 욕조 설치를 할 수 없다. 그 외는 아파트와 비슷하다. 주로 상업지역에 지어지기 때문에 고밀도로 짓는 양상을 보인다. 체크포인트 : 아파트와의 전용면적 비율 비교 오피스텔(Officetel) 오피스(Office)와 호텔(Hotel)의 합성어다. 오피스텔은 업무용 오피스텔과 주거용 오피스텔로 구분된다. 건축법에서는 오피스텔을 업무시설로 분류하고 있다. 다만 주민등록 전입신고가 되어 있으면 취사시설 등 거주시설 구비 및 실제 사용하는 용도 등을 종합해 주거용 오피스텔 여부를 판단한다. 주거용 오피스텔일 경우 이외에 다른 주택을 소유하고 있으면 다주택자로 인정되어 처분할 때 양도소득세가 중과될 수 있다. 체크포인트 : 세금과 관리비, 주차문제, 시설수리 부담, 임대수요와 회전율 호피스텔(Hofficetel) 오피스텔(Officetel)과 호텔(Hotel)의 합성어로 숙박시설을 의미한다. 체크포인트 : 지분형 숙박시설, 숙박시설 운영과 관리 부담, 고객 수요 벅세권 버거와 역세권의 합성어다. 처음에는 맥세권이라 하여 맥도날드 같은 외식업체들이 배달 서비스가 가능한 지역을 뜻했는데, 맥도날드 이외 다른 패스트푸드점들도 배달 서비스를 하고 있어 보다 포괄적 개념인 벅세권이란 용어로 바뀌었다. 스세권은 스타벅스와 역세권의 합성어다. 체크포인트 : 역세권, 주변 유흥시설, 정서문제 알파룸(α room)고객이 원하는 대로 만드는 공간을 의미하며, 아파트 평면을 설계할 때 남은 자투리 공간을 활용한다. 입주자 선택에 따라 오픈형 서재로 만들거나 벽을 올려 방이나 수납공간으로 바꿀 수 있다. 보통 드레스룸, 서재 등으로 활용한다. 체크포인트 : 자투리 실내 공간 활용과 편리성 베이(Bay) 아파트의 전면부 거실 쪽 공간을 말한다. 베이는 전면 발코니를 기준으로 기둥과 기둥 사이의 공간이다. 전면부에는 대개 거실과 안방이 각각 한 개씩 위치하는데 이를 ‘2베이 구조’라고 한다. 3베이란 거실과 방 2개가 발코니를 통해 외부로 배치되는 구조이고, 4베이는 방 3개와 거실이 전면에 노출되는 구조다. 전면부 공간수가 많으면 집 전체가 밝아지는 장점이 있다. 체크포인트 : 실내공간 규모와 배치 팬트리(Pantry) 팬트리는 다양한 물건을 수납하는, 창고처럼 사용되는 공간을 말한다. 붙박이장을 대신해 대형 팬트리를 설치하는 경우도 있다. 원래는 식료품을 보관하는 작은 방을 의미한다. 주방 옆에 설치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요즘에는 복도나 작은 방에도 설치한다. 체크포인트 : 고객수요 반영 정도, 실내공간 활용 갭투자 아파트 매매 가격과 전세 가격의 차이(Gap)가 최저치로 줄어든 상황에서 전세가율이 높은 지역 급매물을 매입한 후 기존 전세 가격보다 높게 임대해 투자 자금 회수는 물론 시세 차익을 추구하는 방식을 말한다. 체크포인트 : 주택가치 판단, 시장분석, 담보대출 깡통주택 집주인이 집을 매매해도 대출금이나 세입자 전세금을 다 갚지 못하는 주택을 말한다. 주택담보대출금과 전세보증금을 합친 금액이 주택 매매 가격의 80%가 넘을 경우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체크포인트 : 전세가격 비율, 등기부등본, 시장분석 부동산 시장, 앞으로 어떻게 될까? 지금과 같이 경기침체가 지속되면 수요자들은 도심 역세권의 소규모 실속형 임대를 더욱 선호할 수밖에 없다. 부동산 시장의 지역 차별화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또한 주택 공급과 세금, 금융정책 등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세 가격 상승과 주거문제는 여전히 큰 숙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 신혼부부, 소외계층 임대주택 제도도 도심 주택 공급의 한계로 인해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부동산 시장은 복합 시장이다. 경제를 말하고 문화를 보여주는 시장이다. 부동산 트렌드와 신조어를 살펴보면 사회 분위기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건설사와 부동산 개발 업계는 이런 수요와 분위기를 감안해 마케팅을 한다. 중요한 것은 일시적 미봉책이 아닌 장기적 안목으로서의 부동산 정책과 주거용 부동산 개발과 공급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양질의 도심 부동산 공급의 지속성, 환경과 에너지를 고려한 개발 환경 조성이 숙제가 되었다. 주택정책은 어렵더라도 늘 기본원칙이 중시되면서 공감과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다음 문제들을 풀어보세요 오피스텔 임대 수익률을 계산할 때 실수하는 것은 무엇일까? 해설과 답 임대수익률=연간 임대료(월 임대료×12개월)-대출이자/분양가격-보증금-대출금 재임대 상황 발생 시 소요시간을 생각해야 하고, 이러한 임대 공백으로 인한 월 임대료 감소는 연간 총임대료 중에서 통상 한 달 치로 추정한다. 시설 수리비용, 월세 수납관리에 따른 부담, 관련 중개수수료, 세금, 임차인이 지급하는 관리비도 적정성 등을 판단해야 한다. 오피스텔 적정 임대수익률은 보통 정기예금 금리보다 3% 내외를 더한 것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건물, 토지 등 자산가치도 물론 중요하다. 토지의 크기, 지분비율, 모양 등과 연관된다. 오피스텔 투자에 있어, 입지와 시설에 강점이 있는 좋은 오피스텔은 주변 공급물량이 많아도 매력적이며, 반대로 겉으로 나타나는 임대수익률만 높은 오피스텔은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좋은 오피스텔은 주변 공급물량이 많아도 매력적이며, 반대로 겉으로 나타나는 임대수익률만 높은 오피스텔은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김정렬(金淨烈) 한국일반행정사협회 전임교수 국내 최초로 부동산 전문가들로 네트워크를 구성, RE멤버스를 설립하고 부동산써브 대표를 역임했다.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자산신탁, 기업체, 금융기관 등에 부동산 자문을 꾸준히 하고 있다. 저서로는 , , 등이 있다.
- 2016-12-30 10:59
-
- [함철훈의 사진 이야기] 낯선 이국에서 새 시대와 새 세대를 본다
- 함철훈 사진가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만이 여행할 수 있고, 많은 것을 가진 사람만이 내려놓을 수 있다. 그리고 고향이 있는 사람만이 사진을 찍는다는 짠한 말을 네덜란드 출신 미국의 가톨릭 사제인 작가 헨리 나우웬(1932~1996)은 남겼다. 몽골국제대학교에서 일하기 위해 한국에서 울란바토르로 이사를 하고, 사진 강의를 위해 매달 홍콩으로 출장가면서 잠시 서울에 들르게 되었다. 세상을 두루 다니는 직업이라 짐을 여러 번 꾸렸지만 서울에 오면 언제나 편안하고 푸근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느낌이 달랐다. 인천공항에 내려 서울 시내로 들어가면서 우리는 이방인이었다. 그때 느낀 외로움이 무척 낯설었다. 내 고향은 서울이고, 서울은 여전히 나와 내 아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는 곳인데 말이다. 늦은 밤 인천공항에 도착한 우리가 갈 곳은 우리 집이 아니었다. 서울에선 너무나 낯선 게스트하우스란 이름의 주소를 손에 들고 있었다. 비로소 우리가 서울이라는 고향을 떠나 더 근본적인 곳으로 이미 이동했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그동안 몽골에서 막연히 느낀 여러 종류의 이질감을 서울에서 정면으로 맞닥뜨린 것이다. 서울에 가면 이런 이질감은 모두 해소될 거라고 생각하며, 이런 배타감은 잠시라며 몽골에서는 만나는 대로 뒤로 핑계 대며 미뤄왔던 것이다. 그런데 서울에서 내가 서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내가 느끼는 외로움은 불편함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소외감이었다. 몽골국제대학교에서 일을 하기 위한 이주는 여행이나 출장, 파견 근무가 아닌 아예 모든 삶의 근거를 옮긴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깨닫게 된 것이다. 우리는 다른 것과의 만남으로 다른 것이 되어 간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외로움을 느낀다. 그 외로움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나와 다른 것도 불편한 것만은 아니다. 조금 생각해 보면 자기 발전과 사람들 간의 문제는 대부분 나와 다른 것을 해석하는 방법에서 시작된다. 외로움을 어떻게 소화해 나가느냐 하는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익숙한 사람과 낯선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는 서로 모두 낯선 사람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익숙해진 사람들과 한데 모여 살아왔다. 거기가 고향이었으며, 일가친척에 둘러싸이게 되었다. 그런 한국에서의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뒤로 하고 몽골국제대학교의 초청에 응한 것은, 우리의 삶에서 생긴 일종의 자신감 같은 것이었다. 특별히 나는, 나와 다른 사람들과도 잘 살 수 있다고 믿었고, 그들과 살기 위해 고향을 떠날 수도 있다는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깊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대의 흐름과도 맞다고 판단했다. 이젠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이겨내지 못하고, 질시하고 경쟁적으로 군림하고자 했던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인들이나 특별히 젊은이들에게 국제기구나 비정부조직 또는 개인과 나라의 이익을 넘어서는 일이 갖고 있는 보람과 자부심이 앞으로는 더 폭넓고 귀하게 펼쳐질 것이라고 조언해 왔다. 21세기 지금 세대부터는 서로 다른 것과의 이해와 화합을 화두로 삼기 시작할 것이다. 그래서 내가 서울과 몽골 양쪽에서 겪는 이질감에서 오는 외로움은 한 아프리카 부족에 전해 내려오는 속담을 생각하게 한다. “사람을 정말 가난하게 만드는 것은 외로움이 아니다. 정말 가난한 사람은 곁에 아무도 없는 사람이다.” 그 속담의 반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경고를 뛰어넘는 길, 모두를 만나기 위해 먼저 떨어져야 하는 길, 감히 많은 이상주의자들이 외쳤던 그 길을 우리 세대가 넘어가리라 믿는다. 우리 대한민국의 유전인자에는 독특한 것이 있다는 것을 외국에 살면서 조금씩 확신하고 있다. 내가 나를 보기는 쉽지 않지만 내가 우리를 알아가는 좋은 길을 외국에 살면서 하나 알게 되었다. 우리와 다른 남들 안에서 나는 우리를 조금 더 잘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양쪽에서 반쪽이의 어려움을 겪는다 해도, 그래서 얻게 된 우리가 있다. 이렇게 반쪽이가 된 많은 우리를 만나는 기회가 많아졌다. 양쪽을 잘 승화시킨 우리의 꿈나무들이 무럭무럭 잘 크고 있다. 또한 광화문 촛불시위 사이 틈틈이 허리를 굽히고 타버린 초와 종이컵을 줍는 젊은이들이다. 우리의 다음 세대들이다. 늙은이들의 노파심 중에도 잘 자라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이 기대된다. 서로 다름을 시기하지 않는 길, 그 길들이 이젠 꿈에서가 아니라 분명히 보인다. 아주 추운 몽골의 눈길을 가면서도, 앞이 잘 보이지 않는 2017년 새해를 맞으면서도 새 시대를 여는 새 세대가 여기서도 분명히 보인다.
- 2016-12-20 11:30
-
- 연기 인생 60주년 배우 이순재, 다시 오른 <세일즈맨의 죽음> 무대를 향한 열정과 확신
- 대표 원로배우 이순재가 연기 인생 60주년을 맞아 아서 밀러의 대표작 을 올린다. 이번 작품은 중견배우 손숙이 파트너로 나서고, 그의 제자들이 뜻을 함께한 데 더욱 의미가 있다. 공연 시간만 약 3시간에 달하는 데다가, 주인공 윌리 로먼의 대사가 580마디에 이르는 등 이순재의 어깨가 무겁다. 그는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연습실에 가장 먼저 도착해 대본을 연구하고, 누구보다 빨리 대사를 암기하는 등 책임감 넘치는 모습으로 현장 스태프와 후배들에게 귀감이 됐다고 한다. 60년이 지나도 꺼지지 않는 배우 이순재의 연기 열정과 그칠 줄 모르는 연기자의 고뇌와 노력에 대해 들어봤다. 연기 인생 60주년을 맞이하는 소감, 기념 공연으로 을 선택하게 된 계기 그동안 40주년, 50주년일 때도 그랬지만 햇수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아요. 그것을 계기로 연극을 해본 적도 없고, 그렇게 하려 했어도 지금과 같은 무대를 마련하기는 쉽지는 않았을 겁니다. 나는 내 생일 날짜도 잘 모르고 지나갈 정도로 그런 것에 무심한 편인데 오히려 일이 커져서 송구스럽고 부담스럽지요. 그러나 막상 60주년이라는 말이 붙으니 마땅한 작품이 없더라고요. 나를 위해 일부러 쓴 작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노역이 앞에 나오는 작품도 드무니까요. 그러던 중에 이 떠올랐죠. 세월이 갈수록 새로운 의미와 의도를 발견하는 게 고전 아니겠어요. 그동안 원작을 그대로 살린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원작에 충실해 보자고 했습니다. 작품이 지닌 심오한 철학적 내용이나 깊이를 담기 위해서는 원작을 살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이 올해가 처음은 아닌데, 그동안에 변화가 있었다면? 1978년도에 처음 이 작품을 했었죠. 고 김의경 연출이 맡을 때였는데, 그 당시에 나에겐 큰 역할이라 조심스럽게 맡았던 거였어요. 그때 해보니 아주 좋은 작품이더군요. 원작은 1940년대 작품인데 당시엔 미처 잘 이해 못 한 부분이 많았던 것 같아요. 개발 후에 오는 도시 공해, 환경 문제 등에 대해 우리나라는 생각하지 않을 때라 생소할 수밖에요. 가스흡입에 대한 문제가 나오는데 그 시절 우리는 연탄을 땠으니…. 그런 문학적·상징적 표현에 대한 해석이 잘 안 됐고 그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어요. 예를 들어 1막 끄트머리에 “달이 아파트 사이로 간다”는 대사가 나오거든요. 나는 그저 기분 좋게 보았던 달인데 알고 보니 그 달의 영역이 축소됐다는 건 세일즈맨 자신의 사회적 영역이 축소된 것에 비유한 비탄이었던 셈이죠. 그러고 나서 2000년도에 드라마 이 끝나고 한 3개월 정도 공백기가 있었는데 한참 연극을 안 했을 시기라 연극 한번 했으면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 마침 제안 들어온 작품이 또 이었어요. 그땐 윤소정씨가 파트너였죠. 확실히 처음 할 때보다 더 이해가 되더라고요. 그 뒤에 김명곤 전 장관이 연출한 라고 해서 한국버전으로 했을 때, 그리고 이번에 60주년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하게 됐죠. 오래된 작품이지만 이야기가 한국적이고 가족 중심적인 부분이 많기 때문에 오랜 세월 공감할 수 있는 것 같아요. 4번째 연기하는 윌리 로먼, 이번 무대에서 특별히 신경 쓴 부분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다. 드라마는 작가의 예술이다. 그리고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연극은 일단 무대에 올라가면 배우가 다 감당해야 해요. 나중에 끝나고 연출에게 야단맞더라도 그 순간에 중단할 수가 없으니까요. 편집도 없고, 올려놓으면 끝날 때까지는 배우의 몫인 거죠. 특히 이번 작품은 배우가 표현해야 할 디테일이 아주 많습니다. 과거와 현실을 넘나들며 극의 의도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상당히 힘이 필요한 작품이죠. 해외의 한 배우가 40대에 이 역할을 맡고 “나는 젊어서 이 역할이 안 되겠다”고 했더니 연출이 “이 작품은 힘이 들어서 나이 먹으면 못한다”고 했다는 거예요. 그만큼 격렬한 역할이기 때문에 40~50대 정도 돼야 소화할 수 있다는 거죠. 그런 부분이 힘들 수 있지만, 아무래도 젊을 때보다 나이 먹어서 하니 그 정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건 장점이에요. 힘은 떨어지지만 이제야 겨우 이해할 수 있는 부분과 마음에 와 닿는 게 많아져서 다시 한번 해보자 결심했어요. 이제 작품의 갖고 있는 의미나 상징성, 작가의 의도 등은 거의 이해했고 이제는 그것을 어떻게 더 원숙하고 정밀하게 표현해내느냐가 관건입니다. 작품 속 아버지 윌리 로먼과 아버지 이순재의 닮은 점 잘나가고 떵떵거리는 아버지도 있지만 가족에 대한 의무감과 심리적인 어려움은 모든 아버지가 공통으로 느낄 거예요. 배우는 정년이 없다고 다르게 보는 이들도 있지만, 그런 아버지의 모습은 똑같아요. 나 역시 돈 못 버는 배우였고, 바쁘게 일하느라 아이들과 시간 못 보내고, 밤낮으로 돌아다니니까 집사람과 여행도 제대로 못 해보고. 또, 배우라는 명성은 있지만 배역이 없어서 그러지 못하는 친구들을 보면 얼마나 가족에게 면목 없어 하는지…. 다른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이 직종을 택했던 자존심과 의지가 있는데 뜻대로 안 됐을 때의 회의감이나 허탈감이 들겠죠. 가장으로서의 경제적 조건이 위축됐을 때의 고민이 왜 없겠어요. 은 그런 모습을 아주 적나라하게 표현한 작품입니다. 극 속 상황은 경제공황으로 밀어닥친 여파이지만, 사실 이 아버지는 세대 차이에서도 밀려요. 새로운 세대로부터 밀려 나가는 그런 필연적인 상황에서 느끼는 위기의식, 우리 사회에도 이러한 고통을 느끼는 아버지들이 많을 겁니다. 이러한 아버지의 조건은 앞으로도 달라지기 어렵고, 그런 면에서 시대를 초월한 공감대를 느낄 수 있어요. 원로배우로서의 사명감 아들 역을 맡은 배우들은 다 내가 가르친 제자들이에요. 나는 이론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은 아닙니다. 내가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오직 내 경험을 통한 하나의 실습과정일 뿐이라 생각해요. 연기라는 것은 이론도 필요하지만 작품의 주제, 사회적 메시지, 자기 역할에 대한 이해부터 시작해야 하거든요. 다행스러운 건 다양한 매체와 수단이 발달해서 젊은 친구들의 그런 이해력은 더 좋아졌어요. 그렇다고 그게 다가 아니고, 자신이 이해한 것을 표현해야 하는 게 우리 일이니까. 그건 훈련을 통해 터득할 수밖에 없고, 그런 과정을 통해 자기 역할에 확신을 해야 할 수 있어요. 그런 이야기를 제자와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함께 경험하려고 노력하고 있죠.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남다른 연기 열정에 대해 배우 손숙이 “이런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했는데, 그에 대해 답한다면? 내가 좋아하기 때문에 그렇죠. 싫은 일을 하면 이렇게 견딜 수 있을까요? 처음부터 내가 좋아하기 때문에 시작한 일이고, 그 과정에서 실질적인 어려움도 많이 있었지만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고 밀고 나갈 수 있었던 힘이 바로 거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사실 우리 일이라는 게 끝이 없어요. 예술적 창조애가 어디 끝이 어디 있겠습니까. 어느 시대의 어느 거목이라 하면, 그저 거목이 있었을 뿐이지 그게 완성과 끝은 아니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항상 도전하고 개발하고 창조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있다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아무리 막장 드라마 할아버지라도 이 할아버지 저 할아버지 다 다르지 않겠어요? 연기를 달리하겠다는 의지와 발견, 그런 창조적 활동이 재미있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지금껏 열정적으로 할 수 있었던 거지,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라면 재미없잖아요. 그게 우리 직업의 장점이자 생명력이라고 생각해요. “이번이 마지막 이라 생각하고 임했다”고 했는데, 그 의미와 60주년 이후 배우 이순재의 모습 각오라면 각오이겠고, 욕심을 부리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겠죠. 나이도 있고 하니 언제까지 현재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 물론 배우는 누군가가 불러줘야 하지만, 스스로 판단하는 기준도 있어요. 바로 암기력입니다. 대사를 못 외워서 후배나 동료들에게 민폐를 끼치면 미안하잖아요. 그러면 그때는 내가 그만두어야겠다 생각해야죠. 물론 어느 정점이나 연령에서 ‘이제 끝이 왔구나’라고 판단하고 나태해지면 정말 그걸로 끝나버리는 겁니다. 그런 한계를 두지 않고 부단히 노력하고자 하는 의지가 바탕이 돼야겠죠. 나뿐만 아니라 신구, 박근형 이런 친구들이 건재한 이유는 그런 점에서 자기 관리와 개발을 끊임없이 하기 때문이에요. 이번 연극 중 윌리 로먼이 아들에게 “봐라. 사람이 해서 안 되는 일이 없다는 말이다”라는 대사가 있어요. 인간의 능력이라는 게 물론 한계가 있을 수 있지만 어느 정도 영역은 돌파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욕심을 부리지 않는 선에서 자기 확신을 두고 최선을 다하는 게 현재의 노력이라 생각해요. △ 배우 이순재 연기 인생 60주년 기념 공연 12월 13~22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박병수 연출, 이순재ㆍ손숙ㆍ이문수ㆍ맹봉학ㆍ김기훈 등 출연
- 2016-12-13 18:06
-
- 여자의 시간은 남자보다 느리게 흐른다
- 어느새 달력이 한 장밖에 남지 않았다. 젊었을 때는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분위기에 젖어 세월의 흐름을 잊고 살았는데 언제부터인가 마지막 남은 달력 한 장이 마치 탐스럽던 잎사귀들을 모진 바람에 이리저리 뜯기고 알몸으로 을씨년스럽게 서 있는 겨울나무처럼 보인다. 새 달력이 들어와 헌 달력 밑에 두툼하게 걸어 봐도 마음이 썩 풍요롭지 않다. 새 밀레니엄을 외친 게 엊그제인데 벌써 16년이 흘러 17년째를 맞이한다. 당시 4학년이던 내가 어느덧 6학년으로 진급했지만 감개무량하기는커녕 가슴 한구석이 시리다. 어디선가 읽었던 글처럼 이 나이가 되면 하루는 느리게 가는데 한 달이나 일 년은 정신없이 빠르게 지나간다고 하더니 틀린 말이 아니다. 도대체 올 일 년의 시간이 어느 구멍으로 다 새나갔단 말인가. 시간이 무자비하게 흘러 나이 먹는 속도가 빨라지니 언젠가부터 슬며시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마치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허송세월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뇌과학자들의 설명을 들어보면 이렇게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것이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지극히 과학적인 현상이란다. 아무튼,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았기 때문은 아니라고 하니 마음이 놓인다. 카이스트 뇌과학자 김대식 교수의 설명을 빌면 어린 시절의 뇌는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새로운 자극이라 그 자극에 일일이 반응하느라 뇌가 시간의 흐름을 느리게 인식하는 반면, 늙은 뇌는 대부분의 사물이 감각에 익숙하다 보니 뇌를 자극할 일이 없어 뇌가 시간을 빠르게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시간의 세대 차이를 느긋하게 받아들이고 괴로워하지 말라는 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빠른 시간의 흐름이 과학적으로 보면 늙어가는 데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하더라도 뇌가 사물에 익숙해져 아무 감흥을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은 나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뒤집어 말하면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늘 호기심에 가득 차 새로운 사물을 접하려 노력하고 익숙한 것도 새롭게 보려 한다면 시간이 느리게 갈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시간의 흐름에 세대 차이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최근 여자와 남자 사이에도 시간의 흐름에 차이가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남편과 나는 무슨 일을 준비하거나 어디를 함께 가려고 할 때마다 서로의 시간관념이 달라 늘 작은 갈등을 느껴왔다. 처음에는 남편의 성질이 급해서 그러려니 했는데 들어보니 다른 남편들도 대부분이 그렇다지 않은가. 이 얼마나 놀라운 발견인가. 이제야 옛날 부모님과 함께 고궁에라도 나들이할라치면 아버지가 빠른 걸음으로 한참 멀리 걸어가신 후 뒤돌아보며 서서 우리를 기다리던 비밀이 비로소 이해되는 것이다. 그렇다. 서로 시간의 흐름이 다른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난 화장하는 긴(?) 시간을 참아주는 남편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마트에서 물건을 빨리 고르고 있다. 빠르게 흐르는 그의 시간을 아껴주기 위한 나름 고육지책이다.
- 2016-12-13 09: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