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상징하는 목소리가 있다. 포크음악의 전설 세시봉의 막내인 김세환의 목소리가 바로 그렇다. 1970년대를 수놓았던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세상의 아름다움에 대한 노랫말과 귀공자 같은 외모와 함께 어우러져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화려하게 부활한 세시봉의 멤버로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며 새로운 전성기를 이어가고 있는 그는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연기는 내게 산소이자 숨구멍 같은 의미예요. 배우가 아닌 나를 생각할 수가 없어요. 배우인 게 정말 좋습니다. 가능만 하다면 다음 생에 태어나도 다시 배우를 하고 싶습니다.” 췌장암으로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오는데도 연기에 방해가 된다며 진통제도 거부한 채 드라마 촬영을 마친 뒤 숨을 거둔 연기자 김영애의 말이다. 그녀는 KBS2 주말극 50회 촬영
햇살이 따사로운 봄날,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손관승(58) 전 iMBC 대표를 만났다. 전 MBC 베를린 특파원, 전 iMBC 대표이사, 교수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쳐온 그는 여러 개의 호칭을 갖고 있다. 스스로 부여한 현업(業)은 스토리 노마드, 즉 이야기 유목민이다. 강의와 강연, 기고와 저술을 하는 삶이다. 전반전은 수치와 가치를 추구한 2치의 삶이었다
“요즘 재미난 일도 없고 밥맛이 자꾸 없어져.”
“남편이 은퇴하고 집에만 있으니 날로 스트레스만 쌓여.”
“이제 자식도 다 크고 할 일 했으니 혼자 사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자주 들어.”
시니어들이 만나면 흔히 하는 말이다. 몇 년 계획을 세우고 노년 준비를 했지만 자꾸 움츠러드는 기분…. 신체적, 정신적 변화 때문에 오는 우울 증상이다. 취미로
과거 족보나 문헌들을 조사해보면 고려시대(918~1392년) 임금 34명의 평균수명은 42.3세, 조선시대(1392~1910년) 임금 27명의 평균수명은 46.1세로 나타난다. 왕들의 수명은 40세 전후에 불과했던 셈이다. 조선시대 임금 중 가장 장수했던 임금은 21대 영조로, 현재 우리나라의 평균수명을 뛰어넘는 83세까지 살았다고 한다. 의료기술이 발달하
뭐 대수랄 게 있나? 오히려 추세 아닌가? 설거지하고 청소기 돌리고 또 빨래 개고 등등 그간 하지 않았던 일이라 처음엔 어색했지만 막상 해보니 점차 재미있기까지 해서 ‘체질인가?’ 하며 속으로 놀라기까지 한다. 돌이켜보니 부모님과 함께 살던 시절, 부엌 근처엔 갈 일이 없었고 밤중에 보채는 아이들 업어줄 일도 없었다.
그런데 요즘 전에 없던 생각이 든다.
흑백 갈등을 다룬 할리우드 영화는 많다. 그러나 솔직히 그런 영화들을 보는 일은 불편하다. 마치 우리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보는 것처럼 백인들의 원죄의식이 바닥에 깔려 있기 때문에 지나치게 잔혹하거나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흐름이 서서히 바뀌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아마도 오바마를 배출한 자부심 때문은 아닐까?
하긴 시간이 많
색다른 분위기를 자랑하는 상점이 많기로 유명한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평일 점심시간이었지만 가로수길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듣던 대로 각양각색의 개성들이 넘치는 상점들이 즐비했다. 그중 ‘한복 팝니다’라는 네온사인이 기자 눈에 들어왔다. 유리창 너머로 갓을 쓰고 곰방대를 문 흑인 모델 사진이 보였다. 외국인과 곰방대 그리고 한복과의 조화라니. 이곳의 이름
한낮에도 그저 적요한 읍내 도로변에 찻집이 있다. ‘카페, 버스정류장’이라는 간판을 달았다. ‘버스정류장’이란 떠나거나 돌아오는 장소. 잠시 머물러 낯선 곳으로 데려다줄 버스를 기다리거나, 마침내 귀환하는 정인을 포옹으로 맞이하는 곳. 일테면, 인생이라는 나그네길 막간에 배치된 대합실이다. 우리는 모두 세월의 잔등에 업히어 속절없이 갈피없이 흔들리며 먼 길
어린 시절 학교에서 색종이로 카네이션을 만들며 생각했습니다. 부모님에게는 카네이션을 만들어 가슴 한 쪽에 달아드리면 그게 효도라고 말입니다. 나머지 364일은 그저 철없는 자식이었습니다. 속없는 말썽꾸러기였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부모님이 내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내 사는 형편이 어렵다 생각하시는 부모님은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