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총사 우정이 금이 가던 날.

기사입력 2016-07-08 15:30 기사수정 2016-07-08 15:30

초등학교 4학년 필자 반으로 전학온 아이가 하나 있었다. 그 아이는 필자가 동경해마지 않는 서울에서 왔다. 필자 집으로 놀러온 그 아이와 뒷산에서 장수하늘소를 잡으면서 놀다가 “야, 이건 ‘상수리’라는 거다”고 동굴동굴한 참나무 열매를 정체를 알려주었다. “아니야, 도토리야!” 그 친구가 악착같이 ‘도토리’라고 우겼다. 그 친구를 떠올리면 ‘도토리’와 ‘상수리’를 가지고 얼굴까지 붉혀가면서 서로 우겨댔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서울내기인 그친구는 도토리만 알았지 상수리는 구경도 못해 그리 우겼는데, 세월이 많이 흘러 성인이 된 후에야 그것이 상수리였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그 아이는 생각보다 공부도 잘하고 노래도 잘 불렀다. 그래서 우리는 금새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당시 과수원이 있고 농사도 크게 짓고 있던 필자 집은 학교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어 가끔 그 친구를 데리고 집에 와서 놀곤 하였다. 그 친구에게 들으니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아버지 사업이 망하는 바람에 필자 고향 쪽으로 야반도주했던 것이다. 급한대로 남의 집 행랑채 한 칸을 빌려 살았으니 사는 형편은 나름 짐작할 수 있었다. 어느덧, 그친구와 가까워졌고 또 한 친구와 함께 우리는 ‘삼총사’라고 자칭하면서 열심히 공부도 하고 들로 산으로 싸돌아다니면서 신나게 놀았다. 특히 만화책을 좋아하는 우리는 늘 학교 앞 만화가게에서 만화를 빌려서 돌려보곤 했다.

어느덧 초등학교를 졸업할 즈음, 관내 4개 초등학교 아이들이 모여서 중학교 시험을 보게 되었는데, 삼총사 중에 한 친구는 인천의 모 중학교 덜썩 합격했고, 상수리를 도토리라고 우겼던 그 친구와 필자는 당당하게 관내 중학교에 수석과 차석으로 합격하게 되었다.

헌데, 그 시기에 필자 집은 아주 어려운 상황으로 그 많던 전답과 과수원을 빚쟁이들이 팔아 빚잔치를 하고 고향의 외곽으로 이사했다가 끝내 서울까지 옮겨가 주경야독의 생활을 이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우연하게도 인천에 간 친구와 필자는 어른이 되어 같은 직업인 군인을 길을 가게 되었다. 긴 세월 돌고 돌아 30여년 만에 군 전역을 하고 다시 만난 그 친구와는 가족처럼 어울려 왕래를 하게되었다.

그 친구 덕분에 어린 시절의 고향친구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인천의 모 중학교 실내체육관에 모여 족구를 하였다. 특히 운동에 소질이 있던 그 친구와 필자는 열심히 운동하면서 어린 시절의 우정을 다져가고 있었는데, 자주 만나다 보니 조금씩 상대방의 단점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겪어보았으니 대략의 성격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그 시절에는 그냥 묻혀 지나갔는데, 좀 더 가까이서 겪어 보니 시시때때로 그 친구의 이기적인 성격이 발동하면 자신의 이익이 우선이고 상대방에 대한 벼려는 전혀 없었다. 특히 돈과 관련한 문제에서는 무척이나 예민하였는데, 그런 행동을 하는 그 친구에게 멀미를 느끼기 시작하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으로부터 점점 멀어져가는 것을 보면서 친구들 중에 혹자는 우리 둘의 관계를 어린 시절부터 ‘라이벌’ 관계라고 호도 하지만, 절대 그런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 친구와 그렇게 멀어져 갔고 어쩌다 친목모임에서 만나면, 그저 악수정도로 끝내는 그런 친구가 되어버렸다. 어린 시절의 우정을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서먹하고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 친구를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아직도 시간이 더 필요할 듯하다. 친구란, 삶을 살아가면서 어떤 일을 겪어도 곁에 있어줌으로서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가장 친한 줄로만 알았던 친구가 그렇지 않다는 사실과 친하지 않았던 친구 중에서 진심으로 필자를 생각하는 이가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친구란, 온 세상이 다 필자 곁을 떠났을 때 필자를 찾아오는 사람이라고 하던데, 과연 필자는 언젠가 그 친구를 찾아가 진정한 화해의 손을 내밀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하루빨리 그런 날이 오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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