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이 되었다. 외국이지만 아이들에게 우리의 설을 느끼게 해 주려고 정성들여 녹두전도 부치고 삼색 나물도 무치고 내 식으로 설음식을 만들었다. 아이들도 신이 나서 만두를 빚었고, 전을 부치는 곁에서 호호 불어가며 먹고 떠들어대었다. 온 식구가 모이는 떠들썩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오붓한 설날 분위기는 부러움 없는 즐거운 풍경이었다. 만두 속이 터져라 꼭
체질학을 10년도 넘게 공부하고 있다. 듣고 또 듣고 시간이 나면 저절로 내 발길이 닿는 교실이다. 그러나 듣고 뒤로 돌아서면 가물가물해서 이거였었던지 저거였나? 하며 정리가 안 되어 또 가게 되곤 했다. 수업은 이주일 단위로 되어 있지만 10년이 넘었는데도 계속 듣고 있고 그래도 전연 싫증이 안 난다. 어이없게도 매일 새로운 걸 하나씩 더 알아져 가는 재
서울역사 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인현동 인쇄 골목’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요즘은 성수동, 파주 출판단지 등으로 분산되어 있지만, 그래도 인현동은 인근 필동, 을지로동, 광희동과 함께 전통의 인쇄골목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인현동 인쇄골목은 충무로역을 중심으로 중부세무서, 대한 극장 맞은편의 작은 한 구역이다. 원래 인현동이라는 지명은 선조의 일곱째
뭔가 있어 보이는 영화이다. '아버지와 딸'이란 뜻이다. 늘 진지한 연기를 보여주는 러셀 크로우가 아버지 역에, 연기의 화신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딸 케이티 역으로 나온다. 가브리엘 무치노 감독이 만들었다.
딸은 어렸을 적 아버지가 7개월 동안 이모집에 맡겨두었다가 찾으러 간다. 그러나 이모집에서도 이 딸을 예쁘고 보고 입양을 원한다. 비록 백만장자 이
2003년이니 스포츠 댄스를 배운지 10년쯤 되었을 무렵이다. 당시만 해도 댄스에 대한 이미지도 아직 개선되지 않았었고, 스포츠댄스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스포츠 댄스를 가르친다 하여 등록했으나 배우다 보니 스포츠 댄스가 아닌 포크댄스였다. 지터벅 같은 사교댄스를 가르치기도 했다. 3년쯤 지나자 그 강사 밑에서는 더 배
이 나이에 이렇게 책에 치어 살게 될지는 몰랐었다. 뒷방에는 책이 공간의 절반을 차지하고 나머지는 옷장이라 방의 활용이 안 된다. 거실에도 한 쪽 구석에 쌓아두기 시작하면 금방 그 옆에 다른 줄이 생기고 책에 치여 산다.
어린 시절에는 책이 그리 흔치 않았다. 단편소설이나 세계 문학전집 중 몇 권이 있기는 했으나 밖에서 노는 걸 좋아해서 책을 좋아한
1999년 말에 퇴직 후 영어 번역 일을 시작했다. 박사 학위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해 영어 원서를 번역하는 업무였다. 학위 논문에 원서 내용을 인용해야 하는데 원서를 해독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 필자 같은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영어와 실무에 밝으니 필자 만한 전문가가 따로 없었다. 매수에 따라 금액이 올라가므로 밤낮없이 집에서 번역에 매달렸고 수입은 오
머지않아 추석이 다가옵니다. 설날이나 추석은 우리민족의 최고의 명절입니다. 고향의 부모님을 찾아뵙고 차례를 지내고 동기간에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행복입니다. 명절날은 객지에 나가있는 친구들도 몰려드니 온 동네가 들썩들썩 합니다. 가고 싶은 고향에 가기위한 열차표 예매를 새벽부터 나가서 기다려서 구입한 추억도 갖고 있습니다. 자가용 시대가 도래
아이들이 어릴 때였다. 안방 한쪽에 ‘생각의 의자’라는 것이 있었다. 이유 없이 떼를 쓰거나, 자매끼리 싸움이라도 하게 되면 그 의자에 앉아 반성의 시간을 갖게 했다. 그럴 때면 왜 화가 났는지, 울어야 했는지 억울한 얘기도 들어주었지만, 이기적인 마음도 내려놓게 다독이며 두 손을 잡아주곤 했었다. 이제 그 아이들은 다 자라 기억이나 하는지 모르겠지만 지
아지트란 사전적 용어는 좌익운동 과정에서 관헌의 눈을 피하기 위하여 항상 이동하며 소재를 모르게 하고 비밀지령을 발하는 지하운동의 집합소이다. 러시아어로는 원래 아지트풍크트(agitpunkt)라는 선동본부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으나, 그 운동 과정의 특성을 반영하여 이동본부, 지하본부, 비밀본부의 뜻으로 사용되지만 우리생활공간에서 적절하게 사용된다면 스트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