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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소도, 반품도 가능한 입양?
- 임철순 언론인ㆍ전 이투데이 주필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이야기입니다. 손자가 넷이나 되는 미국 시카고의 한인부부에게 어느 날 손녀가 생겼습니다. 아들이 둘인 큰딸 크리스틴이 딸아이를 입양하겠다고 했을 때 부부는 반대했답니다. 자식이 없는 것도 아니고, 엄마가 전업주부도 아니고 노상 출장 다녀 주말에나 귀가하는데 꼭 입양을 해야겠느냐는 거지요. 피붙이도 아닌 아이를 친손자처럼 사랑해줄 자신도 없었답니다. 그러나 큰딸은 “이번에 처음으로 엄마에게 실망했다”며 생각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한국인들이 한사코 핏줄을 따지고 입양을 꺼리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엄마마저’ 그런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는 게 너무 놀랍고 실망스럽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크리스틴은 남편 조(미국인)와 함께 한국에 가서 아홉 달 된 아기를 안고 돌아와 자기 동생과 같게 엘리자베스라는 이름을 주었습니다. 참 예쁘고 귀여웠습니다. 그런데 사흘쯤 지났을 때 전혀 듣지를 못하는 선천적 청각장애아인 걸 알게 됐습니다. 가족들은 큰 충격과 슬픔에 빠졌습니다. 놀란 홀트아동복지회는 거듭 사과하면서 “파양 권한이 있으니 원하면 아이를 데려가겠다”고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다렸습니다. 크리스틴은 한 달 내내 울며 생각하더니 “입양한 날부터 내 자식인데 귀머거리라고 포기할 수는 없다”며 키우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미 너무 사랑해서 보낼 수 없다는 말에 모두가 참 많이 울었답니다. 크리스틴은 “이 아이에게 엄마, 이모, 할아버지, 할머니가 모두 한국 사람인 우리 집보다 더 좋은 곳이 어디 있겠느냐”는 말도 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사위였습니다. 엘리자베스는 큰돈이 드는 수술을 받아야 하고, 지속적으로 치료 받아야 했습니다. 또 매일 재활센터에 데리고 다녀야 하고, 장애아를 키우는 교육도 받아야 하는 등 아이에게 하루 종일 매달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사위는 아이를 돌보기 위해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한창 일하는 나이 마흔 살에 회사 부사장직을 포기했습니다. 사직서에는 이렇게 썼습니다. “그동안 회사에서 저는 다른 사람의 말을 잘 경청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평을 받았습니다. 사실이겠지요. 저는 앞으로 듣지 못하는 사람을 통해서 잘 듣는 걸 배울 것입니다. 제가 가능하다고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입니다.”(It has been said that I am not the strongest listener in the group! While this may have been true, I can assure you that through deafness I am learning to listen in ways I never thought possible.) 입양을 결정하면서 크리스틴은 부모에게 긴 편지를 보냈습니다. 편지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엄마, 누가 우리만큼 엘리자베스에게 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요? 설령 있다 해도 우리도 절대 뒤지지 않는, 최고로 좋은 부모라고 자신해요. 엘리자베스가 자라서 우리가 엘리자베스 때문에 행복했던 것처럼 자기도 우리를 만나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라요….” 이것은 미국의 내 블로그 이웃이 2008년의 일이라면서 19일에 되살려 올린 글을 요약한 내용입니다. 글을 다시 올린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문재인 대통령의 하루 전 신년회견 발언 때문입니다. “입양 자체는 위축시키지 않고 활성화해나가면서 입양 아동 보호할 수 있는 대책도 필요하다. 입양 부모 경우에도 마음이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일정 기간 안에는 입양을 취소하거나 여전히 입양하려는 마음은 강하지만 아이하고 맞지 않는 경우 입양 아동을 바꾼다든지 (하는) 여러 방식이 있다.” 귀가 의심스러운 발언이었습니다. 생후 16개월 된 아기 정인이는 입양된 후 양모의 학대와 폭력으로 끝내 목숨을 잃었지요. 그런 사건의 재발 방지책을 묻자 대통령이 한 대답입니다. 발언이 알려지자 충격과 실망, 분노를 담은 비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입양하려는 아이가 공산품인가요?”, “입양이 무슨 홈쇼핑이냐. 무슨 정신 나간 소리냐”, “개와 고양이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소시오패스가 아니라면 이런 발상 자체가 불가능하다” 등등. 지금 국민들은 정인이 사건으로 큰 내상을 입은 상태입니다. 양부모의 끔찍한 학대로 고통스럽게 짧은 생을 마감한 정인이 때문에 슬퍼하는 국민들에게 대통령의 발언은 상처에 소금을 뿌린 격이었습니다. 사실 이런 황당한 발언은 처음이 아닙니다. 세월호 사고로 목숨을 잃은 아이들에게 “고맙다”고 방명록에 쓰거나 북한의 목함지뢰 폭발사고로 다친 병사를 만나 “짜장면이 먹고 싶은가”라고 물은 일도 있었습니다. 왜 말을 그렇게 한 것일까요? 신년회견을 앞두고 네 번이나 리허설을 했다던데, 당연히 나올 걸로 예상되는 질문이었을 텐데. 일부의 지적대로 ‘공감능력의 결여’ 탓일까요? 대통령은 기자들을 자주 만나지도 않지만 회견을 할 때마다 일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올해에는 그 말을 받아서 “대통령도 반품이나 취소를 해야겠다”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말은 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더 서툴러집니다. 귀는 남의 말을 듣지 않으면 않을수록 더 어두워집니다. 그러니 언론과 담을 쌓고 살거나 아랫사람의 듣기 좋은 말만 듣고 살다 보면 본의도 아니고 고의도 아니지만 실언도 허언도 아닌 망언이 나오게 됩니다. 그나저나 그 여자는 왜 굳이 입양을 해서 어린 생명을 앗아갔을까요? 잊고 싶기도 하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정인이의 모습이 자꾸만 되살아납니다. 선의를 가장하고, 입양 사실을 자랑하면서, 시시덕거리면서 살던 양부모의 영상을 보는 것도 괴로운 일입니다. 말은 쓸어 담을 수도 없고, 반품도 취소도 안 되지만, 그래도 대통령님, 어디 다시 한번 대답을 해보세요.
- 2021-01-20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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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하나를 하나같이 사랑해
- 아주 특별한 외손자가 태어났다. 첫째가 태어날 때 정상적인 분만으로 고통을 느낀 딸이 이번에는 제왕절개수술로 출산하기를 원했다. 제왕절개는 독일어 ‘카이저슈니트’(Kaiserschnitt)를 직역한 말이다. 즉 ’황제‘의 의미를 갖는 ’카이저‘와 ’자르다‘의 뜻을 지닌 ’슈니트‘가 합해진 합성어라고 한다. 로마 황제 카이사르가 수술로 태어난 데서 유래된 말이라고 하는데 외손자가 이런 수술로 태어나다니 우리 집안에서는 처음 있는 일로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동양철학에서는 사람이 태어나는 때를 중요하게 여긴다. 나는 사주팔자(四柱八字)에 호기심을 느껴 공부를 해본 적이 있다. 생년, 생월, 생일, 생시의 네 간지(干支), 곧 사주(四柱)에 근거해 그 사람 인생의 길흉화복을 알아보는 방법이다. 중국에서 전래됐고, 그 역사가 아주 오래된 학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사주학의 깊이는 전문가들이 보면 아주 보잘것없어도 가족들은 내 실력을 어느 정도는 믿어준다. 사람이 태어나는 것은 하늘의 뜻으로 알고 살았는데 이제는 제왕절개로 생년, 생월까지는 불가능하지만 생일, 생시는 산부인과 의사의 손에 달렸다. 딸은 유명하다는 명리학(命理學) 전문가로부터 태어날 손자의 좋은 사주를 받고서 의사와 제왕절개 시간을 상의했다. 의사는 그 시간에는 긴급한 용무가 있어 불가능하다면서 다른 시간대를 제안했고 딸은 따를 수밖에 없었다. 실망한 눈치의 딸을 위로하기 위해 지금 출생한 시간이 오히려 좋다고 장황하게 설명했다. 가장 높은 봉우리에 우뚝 솟은 나무는 강한 바람을 홀로 이겨내다가 죽기도 한다. 운명적으로 가장 좋은 시간대에 태어나 여러 사람의 추앙을 받으면 물론 좋겠지만 그만큼 세상 사람의 질투도 받아야 한다. 한 단계 낮은 시간대에 태어나 겸손하게 살면서 운이 아닌 본인이 노력으로 열심히 살아가며 차근차근 성공하는 것이 더 행복한 삶이라는 요지로 딸을 설득했다. 예쁘게 보면 다 예쁘다. 세상사를 좋게 보고 그렇게 믿으면 결과도 좋은 법이다. 한 사람의 생명이 탄생하기까지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다. 과학의 발달로 생명의 신비가 밝혀지고 있다. 수많은 정자 중에서 하나가 선택되어 난자와 결합해 생명이 탄생되는 것도 신비스럽지만 어머니 뱃속에서 수만 배로 자라면서 사람의 형태로 점차 발전되는 모습은 신의 영역이라 볼 만큼 경이롭기까지 하다. 식구들이 하나씩 태어날 때마다, 생명의 소중함을 경건하게 받아들이고 언제나 기뻐하고 있다. 나는 시골의 농사짓는 부모의 슬하를 떠나 고등학교부터는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군대를 다녀오고 취직을 했다. 혼자였다.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한 후 아들과 딸을 얻었다. 식구가 네 명으로 불어났다. 아들을 품에 안고 산부인과 병원을 나설 때 세상을 모두 얻은 것처럼 기뻤다. 둘째인 딸을 안고 나올 때는 아빠에게 재잘거리며 앙증맞은 손으로 어깨를 두드려줄 것이라는 기대감에 마냥 행복했다. 이렇게 키운 자식들이 부모 품을 떠나 제 짝을 찾아가더니 이제는 손자, 손녀들이 하나둘 태어나기 시작했다. 친손자 하나에 친손녀가 둘, 그리고 외손자도 둘이나 태어났다. 손주들만 다섯이다. 명절날 집에 다 모이면 나를 정점으로 식구가 열한 명이다. 축구 한 팀의 숫자와 같다. 하나에서 출발해 세월이 열한 명을 만들어주었다. 성이 다른 친손주, 외손주 구분 없이 하나같이 사랑스럽다. 이번에 태어난 외손자를 보고 주위 사람들이 눈매는 아빠 닮고 입꼬리는 엄마 닮았다고 하다가 나를 슬쩍 보고는 외할아버지인 나를 꼭 빼닮았다고 수다를 떤다. 나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인지 알면서도 듣기 싫지가 않다. 아이들을 키우고 돌보기가 힘들다고 푸념하는 며느리에게도 딸에게도 인생 선배로서 한마디해줬다. “그래도 인생에서 품 안에 자식을 품고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봐가며 뭘 먹일까 생각하던 시절이 제일 행복한 시절이다. 지나보면 다 알게 된다”라고 말해줬다. 자식이 자라면서 부모를 향해 방긋 웃어주고 예쁜 짓 하는 것만으로도 효도의 제 몫을 다하는 거라고 했다. 초등학교 3학년인 큰손녀는 직장에 나가는 엄마를 돕겠다고 어설픈 설거지를 해주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며느리는 감동을 받는다고 한다. “아! 우리 딸이 제법 컸구나! 고맙다”라는 생각이 든다며 며느리의 눈망울이 촉촉해진다. “아이들은 가정을 건강하게 해주는 비타민이다. 아이들 잘 키워라.” 자식들에게 자주 이런 말을 한다. 이런 말 해줄 자식이 있다는 것, 또 그 자식의 자식이 있어서 대물림의 정점에 내가 있는 오늘이 행복하다.
- 2020-12-14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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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만나면, 학교가자 할머니!" 90대 치매 조모 지킨 20대 손녀
- 1920년대 태어난 90대 할머니와 2020년을 사는 20대 손녀. '아흔 살 슈퍼우먼을 지키는 중입니다'(다다서재)는 치매 할머니의 삶의 마지막 과정을 기록한 동시에, 한 세기를 용감하게 살아낸 한 여자의 인생을 그린다. 할머니의 삶과 죽음을 통해 우리 시대 여성의 역사를 더듬고 자신의 삶을 다듬어간 저자 윤이재(27) 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할머니의 이야기를 소재로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취업준비생이 되어 집에 갔을 때 할머니는 치매에 걸린 상태셨어요. 그 전까지는 가족, 조부모에게 특별히 관심 있지는 않았죠. 할머니가 몇 년생인지도 몰랐으니까요. 그랬던 제가 할머니와 종일 있으면서 이런저런 ‘말’을 들었는데 전처럼 흘려듣지 않게 되더라고요. 그러다보니 내 할머니가 아닌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산업화시대를 거쳐 현재를 사는 한 명의 사람, 국민, 여성으로 보이더군요. 저는 할머니가 살던 시대를 교과서에서 배웠고, 그 내용을 달달 암기해 수능을 봤어요.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할머니의 입으로 들으니 새삼 충격적이었죠. 역사 속 위인은 아니지만 그 시절을 살아낸 범인(凡人)이 바로 내 할머니구나. 근데 그런 이야기가 할머니의 기억과 함께 사라지는 것이 아쉽더라고요.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Q. ‘아흔 살 슈퍼우먼을 지키는 중입니다’ 스스로에게 지니는 의미는 무엇인지요? 1920년도에 태어난 할머니와 1990년도에 태어난 제가 겪은 일을 엮은 책이죠. 할머니의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사실 제 이야기이기도 해요. 할머니가 살던 세상과 제가 사는 세상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그 전에는 소위 ‘세대차이’라는 어른들의 생각 차이를 터부시하고 넘어갔었어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책을 쓰면서, 가족과 더 많이 대화하면서 그 시대를, 할머니와 부모님을 이해하는 과정을 거쳤어요. 특히 할머니, 엄마라는 역할이 아닌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여성으로 보게 됐죠. 동시에 그 분들이 살아온 사회 구조와 편견, 차별이 어떻게 개인에게 영향을 미쳤는지 비로소 알게 됐어요. 그것이 다른 형태로 대물림 되고 반복된다는 사실도요. 변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것을 고민할지 성찰할 기회이기도 했죠. 책을 쓰던 중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완성하는 게 감정적으로 힘들었지만 다 쓰고 나니 20대 중반에 꼭 해야 할 일을 해낸 느낌이에요. 이런 시절이 주어졌다는 게 감사하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Q. 할머니와 함께한 2년 동안 틈틈이 글감을 마련해온 것 같습니다. 어떤 형태로 글을 남기기 시작했나요? 할머니와 대화하면서 영상을 많이 촬영했어요. 혹여나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그리울까봐, 움직이고 말씀하시는 할머니를 기록하고 싶었어요. 나중에 볼까 싶어서... 그러다가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적극적으로 소스를 모았죠. 동시에 하나의 주제가 될 만한 것들은 글로 남기고 있었고요. 그러다가 영상보다 글로 남기는 게 빠르겠다 싶어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모아놓은 글감에 영상으로 찍어둔 할머니와의 대화로 살을 붙여 글을 작성했어요. 그렇게 브런치에 글을 올리다가 다다서재에서 출간 제안을 해와 책으로 나오게 됐습니다. Q. 할머니께서는 글을 못 배우신 것이 한이셨죠. 손주가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썼다면 굉장히 뿌듯해하실 것 같은데요. 할머니께서 책이 나온 걸 아셨다면 뭐라 말씀하셨을까요? 사실 저도 궁금하기는 해요.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할머니는 가끔 제 생각과 다른 말씀을 많이 하셔서 감히 예상해 보기도 어렵네요. 그래도 생각해 보면... 제가 예상할 수 있는 수준은 이정도 인 것 같습니다. “나? 내 얘기를 글로 썼다고? 그런 걸 누가 궁금해 한다고 글로 쓰냐? 그때는 다 그랬다!” “우리 애기가 책을 썼어? 대견하다 대견해!” Q. 제목에서도 그러하듯, 할머니를 ‘슈퍼우먼’이라 비유했습니다. 내 가족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 본 할머니는 어떤 분인가요? 참 ‘사람’다운 분이셨어요. 할머니는 글도 배우지 못하고 학교에 다니지 못했지만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명하게 알고 행동하셨다고 해요. 할머니는 도덕성, 이타심, 배려심, 인간으로서의 도리 같은 것들을 평생 말이 아닌 행동으로 가르치셨어요. 지금 우리는 할머니보다 더 나은 교육을 받고, 지식수준은 더 높을지언정 정작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가치는 많이 잊고 사는 것 같아요. 어리고 철없을 때는 많이 배우지 않아서, 부유하지 않아서, 역사책에 이름을 남기지 못한 조부모님이 조금은 부끄럽고 원망스럽기도 했는데요. 돌아보니 사실은 더 중요한 것들을 제게 남겨주신 것 같아요. 할머니에게는 언어가 없었지만 언어보다 더 강력하고 의미 있는 행동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존경스럽습니다. Q. 슈퍼우먼이었던 할머니께서 무기력해지신 모습을 보고 ‘마음의 은퇴보다 몸의 은퇴가 먼저 찾아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 할머니를 곁에서 보는 심정은 어땠나요? 많이 안타까웠어요.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어서 죄송스럽기도 했고요. 마음의 은퇴를 하고 싶어도 하실 수 없는 세상에서 사신 것 같아서 너무 속상했어요. 여러모로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습니다. Q. 책에서 할머니를 위한 취미를 찾던 중 ‘소소한 현재의 습관과 취미가 훗날 노인이 된 나를 살아가게 할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런 깨달음을 통해 바뀐 일상이 있다면요? 취미 자체보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지금 할 수 있는 취미도 할머니의 농사처럼 나이 듦에 따라 할 수 없을 수도 있고요. 앞으로 세상에 또 얼마나 재미있는 것들이 쏟아져 나올까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열린 태도, 나이 들어도 할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해줄 건강한 신체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지금은 건강한 20대의 몸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열심히 즐기고 있어요. 동시에 새로운 취미를 탐색하고 있습니다. 후보로는 주짓수, 드럼, 베이스기타 배우기가 있어요. 하고 싶은 취미와 그걸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알기에 하나씩 해볼 예정입니다. Q. 할머니가 건강하실 때 이야기를 많이 못한 것이 후회된다고 했습니다. 할머니와 다시 시간을 보낸다면 무얼 가장 하고 싶나요? 먼저 “학교가자 할머니!”일 것 같아요. 할머니가 기억을 잊어가면서도 습관처럼 말씀하시던 게 글을 배우지 못해 원통하다였거든요. 그 한을 꼭 풀어드리고 싶어요. 두 번째는 ‘글도 모르는 시골 노인네’가 아닌 할머니 스스로 인생에 자긍심을 가지도록 존경심을 표현하고 싶고요. 세 번째 할머니의 욕망을 찾아드리겠어요. 할머니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할머니의 취향을 더 견고하게 만들어 드리고 싶어요. 누군가의 어머니로서의 욕망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 욕심 부리고 성취할 수 있게 도와드렸음 해요. 마지막으로는 할머니의 죄책감을 덜어드리고 싶어요. 할머니는 마지막까지 미안해 하셨는데 함께하며 저는 얻은 게 정말 많거든요.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이건 제 욕심인데, 할머니가 직접 말한 언어로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요. 박막례 할머니처럼 유튜브를 할 수도 있고요. 책이 될 수도 있고요. 다큐멘터리가 될 수도 있고요. 할머니의 고유한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더 섬세하게 꺼내고 다듬어젊은 사람들의 시선에 맞춘 의미 있는 콘텐츠로 만들고 싶어요. 이제 할 수는 없지만요. Q. ‘효녀’라는 말이 칭찬이지만, 때론 그것이 의무감으로 다가와 부담을 느끼기도 했죠. 다른 가족도 있었는데, 유독 자신이 할머니께 마음 쓸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상황이었죠. 할머니가 치매에 걸렸을 때 아주 우연히도 함께 살았던 손녀딸이 직업이 없었던 것이죠. 제가 특별히 착하거나 할머니와의 애정도가 다른 형제보다 더 커서라고 보긴 어려워요. 다른 형제들도 같은 상황이었다면 저처럼 했을 거예요. 제 또래들은 조부모님과 사는 친구들이 거의 없거든요. 저는 어릴 때부터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애착관계가 형성되어 그런지 거부감은 없었어요. 사실 별 생각이 없었어요. 항상 할머니와 살았고, 집에 늘 할머니가 계셨는데, 그런 할머니가 조금 아프셨던 거죠. 다만 조금 용감하긴 했어요. 처음에는 치매 노인이 어떤 행동을 할지, 어떻게 사람이 늙고 죽어 가는지 몰랐기에 용감했던 것 같아요. 그때는 정말 밥만 차려드리면 되는 줄 알았어요. Q. 그렇게 간접적으로나마 노인의 삶을 가까이 하며 힘든 점도 있지만, 어떤 인생의 깨달음도 얻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땠나요? 감히 인생에 대해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기에는 부끄럽고요. 할머니와 함께 하면서 삶에 대한 태도가 바뀌기는 했어요. 알고는 있지만 간과하기 쉬운 “우리에게는 모두 끝이 있다”라는 사실을 절절하게 느꼈던 것 같아요. 삶의 활력이 가장 충만한 시기에 끝을 생각하면서 지금 제게 주어진 일상과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았어요. 지금의 삶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충실하자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요. 어떤 결정을 할 때 효율이나 성공 가능성 보다는 ‘후회를 덜 할 것 같은’ 것을 기준으로 선택해요. 그러면서 스스로에 대한 고민도 많아졌고요. 조금 진부하지만 일상에 감사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Q. 할머니를 지켜드리느라 정작 자신을 돌보지 못했다는 생각도 들었을 텐데요. 자신을 지키고 돌보기 위해 어떤 방법을 택했나요? 그 당시에는 엄마도 저도 방법을 찾지 못했고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쳤어요. 그래도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오시면서 많이 나아지기는 했는데, 길게 계셔도 4-5시간이거든요. 그 외 시간은 가족의 손길이 필요했죠. 다행이었던 것은 할머니가 자식이 많고 가까이 산다는 거죠. 고모들도 종종 오셔서 돌봄을 나누셨어요. 이런 측면에서는 우리 가족은 특이한 케이스였어요. 동시에 대가족이 아닌 지금의 가족형태에서 돌봄노동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어떤 방식이 될 지 상상이 안 돼서 두려워요. 치매는 정말 누구나 걸릴 수 있지만, 가정에서 개인들이 오로지 감당할 수 있는 병이 아니니까요. 만약 경제활동을 하는 구성원밖에 없으면 요양시설에 가거나, 누군가가 경제활동을 포기하고 전담하는 상황이겠죠. 국가 차원에서 제도적인 정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없는 건 아니지만 더 섬세하게 고민하고 보완해야겠다 싶어요. Q. 할머니의 죽음을 바라보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달라지고 성장한 부분이 있다면요? 조금 단적으로 말하면 사람이 어떻게 ‘죽어가는지’를 너무나 생생하게 지켜봤어요. 근육이 사라지고 쪼글해진 살이 뼈에 간신히 붙어 있고, 사람을 기억하지 못하고, 걷지 못하고, 말을 못하고, 누워만 있는 말 그대로 육체적인 노화의 과정이요. 그 과정을 지켜보고 할머니의 장례식까지 치르면서 상상하는 것조차 두려워 외면하고 살았던 부모님의 죽음과 저의 죽음을 상상했어요. 그 상상이 너무나 뻔하고 진부하더라고요. 우리 사회가 ‘죽음’을 말하는 것을 얼마나 터부시 하는지, 그 방식에 대해 다양성이 얼마나 허용되지 않는지 새삼 느꼈어요. 죽음을 고민하지 않고 죽음을 맞이했을 때의 과정이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을 때 단언컨대 저는 “No”거든요. 그런 부분에서의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아직 명쾌한 답을 찾은 건 아니지만 고민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Q. 아쉽지만 할머니의 마지막 순간을 지키지는 못하셨습니다. 인터뷰로나마 할머니께 마지막 인사를 전한다면 어떤 말씀을 하고 싶으신지요? “할머니 정말 고맙고 사랑해.” Q. 끝으로, 치매 가족을 둔 분들, 또는 자신처럼 치매 조부모를 둔 또래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개인적으로 할머니를 돌보며 가장 많이 들었던 위로가 “언젠가 복 받을 거야”라는 말이었는데요. 그 말만큼 공허하고 듣기 싫은 말이 없더라고요. 물론 말의 선한 의도는 알지만 사실 환자를 돌보는 입장에서는 눈앞에 환자가 있고, 무언가 기대를 하면서 돌봄을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가족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눈앞에 환자에게 충실한 거였거든요. 딱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지 않도록 지켜드리는 것뿐이었어요. 각자의 사정과 환경이 있는데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이 있을까 싶은데요. 그저 정말 수고가 많고 고생이 많으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우리 가족도 그랬지만 모두 각자의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고 계시는 것일 테니까요.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기억을 잊어가는 가족을 보는지 치매 환자를 돌본 경험이 있는 가족으로서 이해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2020-11-09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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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래사막 지구는 물려주고 싶지 않아
- ‘한 그루 나무를 심으면 천 개의 복이 온다’ ‘푸른 아시아’ 오기출 사무총장이 펴낸 ‘한 그루 나무를 심으면 천 개의 복이 온다’라는 책을 얼마 전 읽었다. 저자는 기후 위기 대응 NGO 활동으로 ‘유엔사막화방지협약’(UNCCD, United Nations Convention to Combat Desertification)에서 수여하는 ‘생명의 토지상’을 받았다. 2017년 5월에 출간됐으니 이미 한참 구간이 된 책이다. 물론 화제의 베스트셀러는 되지 못했다. 이 책은 몽고에서 온도가 급격하게 상승하면서 유목민들이 대대로 살아왔던 초원이 사막으로 변해 황폐화된 후,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초원이 사막으로 황폐화되면서, 몽고 유목민들이 초원 대신 대도시 쓰레기장 근처의 난민촌으로 몰려들며 어떻게 환경 난민이 됐는지, 또한 어떻게 ‘푸른 아시아’와 함께 극복하고 있는지, 생태 회복에 관한 NGO 활동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발간된 지 3년이 지나서야 이 책을 읽었고, 그 후 생각이 많아졌다. 그동안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며 살았구나 하는 질책도 스스로에게 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지구 온난화와 미세먼지, 황사를 짜증스러워하고 불평만 해댔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실천을 해야 하는지는 적극적으로 고민하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 세대는 목적지를 향해 돌아가는 사람은 바보취급 당했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든 지름길과 사잇길로 남보다 더 먼저 도착하고 남보다 더 멀리 도달하려고 안달했다. 늘 바쁘고 분주한 삶이었다. 이런 일상 속에서 지구 환경을 염려하고 작은 행동을 실천하는 건 사치의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했던 건 아닐까? 물 절약을 위한 나만의 생활 철칙, 소소한 방법 두 가지 이제 비로소 눈을 위로 치켜뜨지 않고 내 발밑까지 두루두루 훑어볼 수 있는 나이가 됐다. 이제부터라도 모두가 작은 힘을 보태야 한다. 더 늦기 전에.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해 내가 보태는 작은 힘을 꼽아보라고 묻는다면 정말 소소하지만 그래도 답할 것이 두 가지 있다. 한 가지는 ‘이틀에 한번 머리 감기(?)’, 또 하나는 ‘양치질하면서 세면대 물 안틀어놓기’다. 이런 생활 습관을 갖게 된 것도 불과 5년 전부터다. 물과 기름을 가진 자, 미래 사회 지배자 되리 2015년에 영화 ‘분노의 도로’(Mad Max: Fury Road)를 보고 난 후, 며칠을 당혹감에 시달렸다. 영화를 보면서 손과 다리가 덜덜 떨릴 만큼 공포스러웠던 적이 없었다. 사막으로 변한 미래의 지구에서 물과 기름을 독점한 권력자 임모탄은 그 일가와 자신을 지키는 병사들만 견고하게 구축된 절벽 위 동굴에서 지내게 하고 자신의 왕국을 건설해 세상을 지배한다. 가끔 절벽 아래 사막을 떠도는 이들을 모아놓고 하사하듯 물을 절벽 밑으로 방류하면서 마치 조물주가 된 듯 세상을 주무른다. 절벽 위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기 위해 아래 세상은 지옥이 된다. 임모탄의 지배를 거부하는 이들은 물도 없고 기름도 없는 사막을 떠돌다 말라 타들어 죽거나 광폭한 지배자 휘하의 무장병사들에게 사냥감처럼 잡혀와 온갖 인체 실험 대상이 되어 서서히 죽어간다. 황폐한 미래 사회를 그린 너무나 리얼한 영상들에 손과 다리가 떨리고 공포감이 엄습했다. 미래에 내 딸의 아들 혹은 딸(그러니까 내 손자 손녀)이 저런 황폐화된 지구에서 살게 되는 건 아닌지 극도의 불안감이 몰려왔다. 물론 27세가 된 나의 딸은 결혼 생각도 없고 언제 결혼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오버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나는 그저 불안하기만 하다.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는 미국 서부지역, 물 부족 심각 미국 캘리포니아도 가뭄으로 사막화가 진행되는 곳 중 하나다. 사막에 자리 잡고 있는 라스베이거스의 경우 주택 정원을 선인장으로 꾸며놓는 게 일반적인데 요즘엔 거주 구역별로 정해진 시간에 물을 줘야 한다. 집주인 맘대로 정원에 물을 주면 어김없이 벌금 고지서가 날아온다. 인근 주민이 몰래 지켜보다가 신고를 하는 것이다. 사막화가 진행되면서 캘리포니아는 부족한 물을 콜로라도 주로부터 구매해 끌어 쓰고 있다. 과거에 미국 이민자들의 아메리칸 드림이었던, 초록색 잔디가 깔린 정원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스위트 드림은 이제 머릿속에서 지워야 한다. 가뭄이 심해지자 주 정부는 각 주택이 정원의 잔디를 걷어내고 돌과 선인장, 물이 많이 필요 없는 플랜트로 디자인해 새롭게 정원 공사를 하면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이 밖에 물 절약을 위한 다양한 홍보와 마케팅도 실시하고 있다. 이때 나온 슬로건이 바로 ‘Brown is New Green!’이다. 사막화를 막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미국 서부지역의 현실이다. 내가 전혀 관심조차 갖지 않았던 몽고.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고비사막으로 여행이나 가볼까 하는 안일한 생각을 하며 지냈던 모습이 부끄러워지는 책, ‘한 그루 나무를 심으면 천 개의 복이 온다’. 20년 전부터 나무를 심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유목민들이 늘고 있고 새롭게 마을이 형성되고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나무 심는 일을 묵묵히 해오고 있는 이 NGO 단체를 한국인들이 운영하고 있다니 자랑스럽기만 하다. 기후 환경 변화에 관심을 갖게 해줄 한 권의 책, ‘한 그루 나무를 심으면 천 개의 복이 온다’와 한 편의 영화 ‘분노의 도로’. 깊어져 가는 가을날, 미래 세계의 황폐화를 막기 위해 깊은 사색의 시간을 가져보기를 권한다. 코로나 바이러스 출현도 결국 인간의 난개발과 이로 인한 기후 변화, 생태계 변이로 이어지는 연결고리 속에서 발생한 게 아닐까? 코로나19로 전 세계 어디도 안전한 곳이 없다는 것을 실감하는 요즘, 기후 변화라는 거대한 모래폭풍 속으로 우리 모두 들어가고 있음을 자각하게 됐다.
- 2020-10-27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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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스크 걸이도 패션 아이템
- “언니, 저 이번에 쇼핑몰 열었어요.” 학부모로 인연이 된 친구의 문자가 왔다. 링크를 타고 들어가니 알록달록 마스크 걸이를 파는 인터넷 쇼핑몰이다. 어린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핑크핑크는 물론 투명한 유리알이 조르르 연결된 것 등 예쁜 스타일이 꽤 많다. 마스크 착용이 일상이 되면서 하나의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은 게 분명하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한 일이다. 이미 사용하는 마스크 걸이가 있지만 몇 가지 아이템을 골라 장바구니에 넣었다. 꼬맹이들을 위한 알록달록한 모양도 있었는데 손녀 몫으로 선택했다. 나중에 받아보니 내가 구매한 것 외에 2가지 아이템이 더 들어 있었다. 물건이 더 왔다고 연락했더니 "언니한테 어울릴 거 같아서 더 넣었어요." 한다. 이렇게 주면 남는 게 있나? 염려가 된다. 주말에 딸이 왔다. 요리조리 다니며 장난칠 궁리를 하던 손녀가 거실 탁자 위에 둔 마스크 걸이를 발견하고는 "할머니, 이거 나 가져도 돼요?" 한다. "엄마, 마스크 걸이가 왜 이렇게 많아?" 딸도 묻는다. 딸은 가느다란 검은색 마스크 걸이를, 손녀는 제 것 외에 투명한 것 하나를 더 고른다. 몇천 원짜리 선물로 아이들이 즐거워하니 마음이 뿌듯하다. 마스크 안 쓰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라는 마음과 그녀의 마스크 걸이가 많이 팔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겹치면서 예전에 우산장수 아들과 짚신장수 아들을 둔 어머니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비가 오는 날에는 짚신 파는 아들을 걱정하고 활짝 갠 날에는 우산 파는 아들을 걱정했다는 어머니. 아이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치는 친구인데 쇼핑몰을 시작한 걸 보면 코로나로 학원 운영에 차질이 생긴 게 분명하다. 요즘은 하나의 직업으론 살아남기 어렵다는 얘기가 실감난다. 땀 흘린 노동만 팔아서는 살아가기 어려운 시대. 자본이 많은 곳으로만 몰리는 시대. 경제적 자유를 외치면서도 성실하게 실력을 기르기보다 요행을 바라는 청년들이 늘어나는 시대.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노년의 경제적 불안이 늘어난 시대. 마스크 걸이가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은 시대. 내일은 또 어떤 일이 생길까?
- 2020-10-13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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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편이 그리운 날
- 모 방송국에 ‘편애중계’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었다. 중계진 이름은 축구팀, 야구팀, 농구팀으로 왕년에 축구, 야구, 농구로 이름을 떨치던 운동선수 출신 세 사람과 입담 좋은 예능인 세 사람이 1대 1로 팀이 되어 출연자를 선택하고 편애중계를 하는 것이다. 이들은 일단 자신의 팀이 될 출연자가 정해지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편이 되어 응원한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응원하듯 없는 이유를 만들어서라도 칭찬을 한다. 그러다 보니 가끔 억지스러운 경우도 있었다. 별로 내세울 일도 아닌데 어떻게든 아름답게 버무려 띄워주는 모습이 시청자의 배꼽을 잡게 했다. ‘편애중계’를 보면 예전에 본 ‘계춘할망’이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제주도에서 해녀로 살아가는 계춘 할망에게는 손녀 혜지가 있다. 어느 날 계춘 할망이 장을 보는 사이 혜지가 사라진다. 백방으로 찾아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로부터 12년이 흐른 어느 날 혜지가 찾아온다. 하지만 혜지는 가짜다. 계춘 할망은 혜지가 아닌 걸 알면서도 모른 체한다. 이후 더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영화를 안 본 분을 위해 여기까지 하겠다. 영화에서 계춘 할망은 자신을 속인 혜지(은주)에게 이런 말을 한다. "나가 느 편 해줄 테니 너는 느 원대로 살아라." ‘편애중계’에서 한 팀이 된 출연자를 위해 무조건 지지하고 응원하는 걸 보면서 계춘 할망이 생각난 것은 이 대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혜지가 아닌 걸 알지만 편이 되어줄 테니 원대로 살아라 하던 그 말은 영화 속 혜지(은주)뿐 아니라 그날 영화를 보던 내 마음도 흔들었다. 이 세상에 무조건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거. 이보다 더 든든한 일이 있을까? 문득 내 편에 대해 생각해본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응원해주는 내 편. 아이들에게 부모의 존재가 그렇겠지. “우리 엄마는 무조건 내 편이야” 하는 믿음. 우리 아이들도 그렇다. 지극히 사소한 일들, 특히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인 늦둥이는 가끔 잘생긴 남자 연예인의 이름을 대곤 "엄마 000이 잘생겼어, 내가 잘생겼어?" 하고 묻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당연히 우리 아들이 잘생겼지. 그걸 말이라고 하니?" 한다. 내 얼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대답을 기다리던 아이는 "엄마는 그럴 줄 알았어! 에이 그래도 그건 아니지. 하하" 하면서 자신이 이미 내 대답을 알고 있었다는 듯 폭소를 터트린다. 고슴도치도 제 자식 예쁘다는 말이 괜히 나왔을까. 나도 그랬다. 어린 시절 부모님은 언제나 내 편이라고 믿었고 실제로 그랬다. 결혼한 뒤에는 남편을 내 편이라고 생각했다. 더 살아보니 부모님은 늘 내 편이지만 남편은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았다. 중년이 되어서는 남의 편이라는 말이 왜 생겼는지 이해하게 되었으니 남편은 확실히 자신 있게 내놓을 내 편은 아니다. 내 편은 고사하고 적이 되지 않은 것만도 고맙다고 해야 할까. 일주일에 한 번 오직 한 사람을 응원하던 ‘편애중계’는 얼마 전부터 다른 프로그램으로 바뀌었다. 이유를 불문하고 편이 되어주는 게 힘들었을까? "나는 무조건 네 편이야!" 하며 응원해줄 내 편이 그리운 날이다.
- 2020-09-02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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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서가 진란한 말장난
- 임철순 언론인ㆍ전 이투데이 주필 요즘 언론보도 기사를 읽다 보면 하품이 나거나 기가 막힌다. 7월 8일(온라인 기준) 모 신문에 이런 기사가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8일 ‘다시는 아파트 양도차익으로 터무니없는 돈을 벌 수 있다는 의식이 사라지게 하겠다.’고 말했다. (중략) 이 대표는 ‘당에서 대책을 만들고 있는데 가능한 7월에 할 수 있는 조치를 이번 국회에서 하고(하략)’라고 했다.” 이게 말이 되나? 다시는 사라지게 하겠다? 가능한도 가능한 한이라고 써야 맞다. 이 대표가 원래 이렇게 말을 한 걸까? 아니면 기자에게 후레자식이라고 욕할 걸 미리 알고 미워서 망신 주려고 일부러 이렇게 쓴 걸까? 호감이 가는 취재원의 말은 전달도 잘해주던데. 더 기가 막히는 기사도 있다. 8월 12일(이것도 온라인 기준) 모 일보의 기사에 이런 제목이 있었다. . 육아를 키워? 눈이 의심스러워 죽 읽어보니 기사는 “남편 없이 육아를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생후 1개월 된 딸을 살해한 뒤 3년간 오피스텔에 방치한 40대 여성이 경찰에 붙잡혔다”로 시작된다. 육아를 키운다는 말은 취재기자가 쓴 게 아니라 제목을 잘못 붙인 거였다. 育(기를 육)兒(아이 아)라는 한자를 몰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이렇게 써도 말이 된다고 생각한 걸까? 아니면 너무 바빠서 무심결에? 잘못된 건 사후에라도 부장 이상 데스크들이 고쳐야 할 텐데 왜 그대로 두고 있을까? 그들도 너무 바빠서 데스크도 보지 않고 기자에게 기사를 내보내게 한 걸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의미상 중복되는 말, 앞뒤가 바뀐 말이 의외로 많이 쓰이는 걸 알게 됐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잘못된 말이 일상적으로 쓰이는 경우, 혀가 꼬이거나 음운상 착각으로 인해 웃기는 말이 만들어지는 경우 등이다. 단어나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고 혀끝에서 뱅뱅 도는 설단현상(舌端現象) 때문에 엉뚱한 말을 만들어내는 것과 어구전철(語句轉綴), 이른바 애너그램(Anagram)과 관계있는 말장난이다. 이 중 어구전철은 1)장난→난장, 모로코→코모로, 방배역→배방역, 문전박대→대박전문 식의 음절 단위, 2)상주→장수, 김치→기침, 소년→손녀, 출동→충돌 식의 음운 단위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먼저 중복 사례부터 살펴보자. 독자들을 위해 억지로 글을 하나 만들었다. “나는 아들 출산 낳고 나서 육아를 키우느라 무지 고생했어. 남편은 1도 도와주지 않았어. 초등학교 입학 넣기 전부터 조기교육 가르치느라 돈도 많이 들었지. 태권도 차고, 체르니 치고, 바둑도 놓고 했던 아이는 초등학교 등교 다니면서 본격적으로 공부 배우고, 필기 쓰고, 작문 짓고, 더러는 백일장도 쓰고, 암산 외우고, 미술 그리고, 음악은 부르고 불고 치고 타고 켜고, 방과 후엔 서예도 쓰고 그러느라 힘들어 했지. 나는 나름대로 식사 먹기, 청소 쓸기, 복장 입기, 인사 숙이기, 용변 누기 이런 예절을 일일이 가르쳤어. 근데 이 녀석이 지 애비 닮아서 공부는 뒷전이고 축구 차고 농구 넣고 야구 때리고 그러는 것만 좋아하는 거야. 유도 메치고 복싱 싸우고 펜싱 찌르고 검도 휘두르고 아이스하키 치는 것까지 하러들면 어쩔 뻔했어? 다치기 쉽고 돈도 많이 들잖아. 역도 드는 건 다행히 지가 안 하겠다고 하데. 고등학교 졸업 나온 뒤에는 이발도 이상하게 깎고 친구들과 음주 마시고 가무 추고 걸핏하면 외박 자고 하더니 면허도 없는 놈이 아버지 차를 몰래 운전 몰다가 가로수 충돌 받는 사고를 냈지 뭐야. 그날도 음주 마셔서 도주 놓다가 경찰에 잡히자 폭행 때리기까지 했어. 이야기 더 하까? 이쯤만 해도 알 만하지?” 이번엔 어구전철 차례. 나는 걸핏하면 물서가 진란하다는 말을 한다. 요즘 나라의 물서가 진란하고, 여당과 국회는 더 말할 것도 없고, 부동산정책도 엉망인데 도대체 이렇게 물서가 진란해서야 되겠느냐고 목청을 높이면 사람들이 다 알아듣고 공감해준다. 한자로 바꿔봐도 말이 된다. 물서(物序)가 진란(盡亂)하다… 어디가 어때? 어떤 젊은이가 SNS에 이런 글을 썼다. “삶은 달걀 글자가 너무 이상해서 닮은 살걀이 맞는 건가 잠시 고민했다. 이게 다 멸린 말치랑 짚고 긴한 커피 때문임.” 그러자 다른 사람이 이렇게 응수했다. 며칠 동안 연구했는지 몰라도 이 사람은 내가 보기에 거의 천재다. “노인코래방, 번둥천개, 껍던 씸, 알르레기, 노란계른자, 동사봉아리, 치자피즈, 곱은 졸목, 통치꽁조림, 야치참채죽, 수없는 씨박, 치킨타올, 모자리나, 우뎅오동, 메장외모리, 중고딘 알라서점, 기능재부, 맥걸리와 막주….” 김영삼 전 대통령은 대선 유세할 때 충남 보령 대천을 보천 대령이라고 한 적 있는데, 나도 그런 거 좀 추가해볼까. 키친마니아, 오장향육, 사우나차이나 모닝토스트(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 해문한석사전, 고와 개양이, 소 치는 양년, 소 치는 북년, 잔후소리원, 발따보, 하장외드, 역사의 아이노리, 친공정소기, 닥터와 왈츠만, 민가긴가, 덤벙엄벙, 남씨사정기, 임산배수, 출신임산, 케이데어, 갤프골러리…. 그런데, 이렇게 헷갈리게 만들어도 사람들은 금세 알아듣는다. 인간은 모든 글자를 하나씩 읽는 게 아니라 단어 하나를 한눈에 전체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래 글은 오래전부터 인터넷에 떠도는 예문인데, 정작 케임브리지대에서는 이런 연구를 한 적이 없다고 한다. 하여간 읽어보자. “캠릿브지 대학의 연결구과에 따르면, 한 단어 안에서 글자가 어떤 순서로 배되열어 있지는는 중하요지 않고, 첫 번째와 마지막 글자가 올바른 위치에 있는 것이 중하다요고 한다. 나머지 글들자은 완전히 엉진망창의 순서로 되어 있라을지도 당신은 아무 문제없이 이것을 읽을 수 있다. 인간의 두뇌는 모든 글자를 하하나나 읽는 것이 아니라 단어 하나를 전체로 인하식기 때이문다.” 그러니 어쩌라구? 설마 엉터리 말이나 문장을 만들어 퍼뜨려도 괜찮다는 건 아니겠지? 문학 작품이든 보도 문장이든 글을 쓰는 사람들은 자기 글이 어법에 맞는지, 중복은 없는지, 적확한 단어를 쓴 건지 늘 따져보고 점검해야 한다. 갈수록 이상한 말이 늘어나는 세상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대중의 올바른 어문생활에 기여한다는 힘과 꾸망을 가져야지. 아닌가. 훔과 끠망을 가져야 되나? 아무래도 힘과 꾸망이 더 낫겠다. 이쪽이 더 알아듣기 쉬우니까. 그런데 늉눔은 무슨 말이지? 난 서울 중부경찰서 출입기자이던 1981년 여름 기자실 칠판에 이렇게 써놓고 목욕탕에 가곤 했다. 어구전철 중에는 이렇게 글자를 뒤집어 전혀 다른 말로 만드는 것도 있다. 곰을 뒤집으면 문(문재인 대통령을 말하는 게 아님)이 되고, 논문을 뒤집으면 곰국이 된다. 말장난이 심해서 죄송합니다.
- 2020-08-26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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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혼육아, 할 수는 있지만 의무는 아냐
- "말도 마. 지난번 네가 조언한 대로 했다가 딸하고 싸워서 요즘 말도 안 해." 오랜만에 전화한 친구가 작정한 듯 하소연을 시작했다. 어떤 상황인지 대충 짐작이 갔다. 지난 모임 때 황혼육아가 힘들다고 토로하는 그녀에게 딸이 심정을 모를 수도 있으니 솔직히 말해보라고 조언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던 해 열한 살 나이 차 나는 남편과 결혼했다. 중매나 마찬가지였는데 친정아버지가 평소에 눈여겨보다가 합격점을 준 사람이란다. 부모님이 생각하는 사윗감의 첫 번째 조건은 경제적으로 안정된 사람이었고 그녀의 남편은 당시 안정된 사업체의 대표였다. 스무 살이면 참 어린 나이이지만 그 시절에는 이런 일들이 심심찮게 있었다. 남동생만 둘 있던 그녀는 싫다는 말 한 번 해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결혼했다. 결혼 후에는 연년생으로 딸 둘을 낳았다. 그때부터 한 남자의 아내와 두 딸의 엄마로 살았다. 딸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이 다 자라 독립하면 그때부터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씩 하면서 살아야지 생각했다. 시간은 흘러 딸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은행과 대기업에 각각 취직했다. 일이 척척 풀려 무리 없이 둘 다 결혼도 했다. '이제는 자유다!' 그녀는 드디어 자신의 시간이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곧 손자가 태어났다. 딸의 직장은 흔히 말하는 좋은 직장. 아기가 생겼다고 그만두기엔 너무 아까운 곳이었다. 딸은 당연히 '친정엄마가 봐주겠지' 기대를 했고, 결국 손자 돌보는 일은 그녀 차지가 되었다. 첫손자가 어느 정도 자라 편해질 무렵 이번엔 손녀가 태어났다. 손녀도 그녀가 맡아 키웠다. 그토록 원하던 자유는 주말에야 겨우 주어졌다. 처음엔 그랬다고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주말에도 아이들을 맡기는 상황이 잦아졌다. 그뿐만 아니라 평일에도 회식이 있거나 볼일이 있으면 밤늦도록 아이들을 돌봐줘야 했다. 친정엄마이니까 편해서 그러겠지. 한동안 이해도 했다. 그러나 두 딸은 차츰 육아를 그녀가 해야 할 당연한 일처럼 생각했다. 어쩌다 한 번씩 친구들 만나는 낙으로 살았는데 손자들 보느라 모임에 나갈 수도 없었다. 손자를 데리고 나가면 민폐란 걸 잘 알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그녀는 점점 우울해졌다. 육아에 지치고 딸들을 향한 서운한 마음이 깊어져 결국 신경정신과 상담을 받을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모임에서 만난 그녀에게 딸과 솔직히 대화를 해보라고 했다. 그러면 딸도 엄마 마음을 이해할 거라고. 그녀는 딸에게 힘든 이야기를 했고 딸은 결국 휴직을 했다. 그러나 친정엄마를 이해하면서 내린 선택이 아니었다. 딸은 아이를 키우며 보내기엔 자기 인생이 너무 아깝다면서 엄마에게 섭섭함을 내비쳤다고 한다. 그 말이 그녀를 화나게 했다. "그럼 내 인생은?", "내 자식은 내가 키웠으니 네 자식은 네가 키워!" 했단다. 이후 그녀는 자유를 찾았지만 딸하고의 관계는 소원해졌다. 그녀는 두 시간 넘도록 하소연을 하더니 조만간 만나서 얘기하자며 전화를 끊었다. 마치 네 조언을 들어서 생긴 일이니 이 정도 하소연은 들어주라는 것 같았다. 어떤 선택을 하든 누군가는 불편할 수밖에 없는 육아. 시간이 흐르면 딸도 엄마 입장을 이해할 것이다. 당장은 서운하겠지만 혼자 속으로 곪느니 솔직하게 대화를 나누는 게 서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녀는 얼마 후 이런 말을 하지 않을까? "네 말대로 하길 참 잘한 거 같아!"
- 2020-07-0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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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목항의 야간 모의
- 임철순 언론인ㆍ전 이투데이 주필 “벗들아, 우리는 복된 자다.” 서울 보성고(普成高) 60회의 ‘고교 졸업 50년, 인생 70년’ 행사 초대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싱그럽고 풋풋한 소년으로 처음 사귄 이래 반세기 걸어온 길, 꾸려온 삶은 서로 달라도 나라와 사회를 위해 살리라던 청운의 그 꿈은 어제처럼 여전히 젊고 새롭다.” 말이 그럴듯하지만, 첫 문장은 이은상 ‘가고파’ 후편 가사의 “벗들아, 너희는 복된 자다”를 내가 베껴서 우려먹은 거다. 이 ‘복된 자’들은 6월 17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칠순잔치를 겸한 기념행사를 하고, 18~19일 1박 2일로 강릉 속초 하조대 화진포를 여행하고 돌아왔다. 10년 전 졸업 40년 때인 2010년에는 남자들끼리 2박 3일 여행을 했는데, 이번엔 아내들이 동행했다. 모내기가 갓 시작됐던 그때보다 1주일 늦은 이번 여행에서는 제법 자란 모를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10년 전 여행에서 나는 ‘항아리를 보았다’고 썼다. https://blog.naver.com/fusedtree/70088131225 이번엔 뭘 보고 느꼈던가. 10년 전에는 앉으면 마시고 버스에 타면 노래를 불러 ‘유행가 모르는 게 없고 3절까지 다 부르는 녀석’이라는 말을 듣는 쾌거를 이루었는데, 이번엔 시종 점잖고 조신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다들 늙어 기가 빠진 탓도 있지만 마나님들이 계시니 아무래도 분위기가 다를 수밖에 없지. 1박 2일 여행은 쉽지 않았다. 코로나 때문에 일정을 한 달 늦추었는데도 상황이 나아진 건 없었다. 오히려 코로나가 더 번지는 바람에 여행 취소자가 많아 떠나기 전날까지 인원 변동이 심했다. 손자 손녀를 봐야 할 사람이 여행 갔다가 코로나라도 걸리면 어떡하냐, 당신은 기저질환잔데 가긴 어딜 가, 이래서 가느냐 안 가느냐로 부부싸움을 하고, 호텔 행사에 마누라 몰래 참석한 경우까지 있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총 58명이 버스 세 대에 나누어 타고 잘 다녀왔다. 그런데 여행 다니며 살펴보니 다리를 절거나 질질 끄는 사람이 의외로 많았다. 배는 볼록 나온 채 어깨는 구부정하거나 몸의 좌우 균형이 맞지 않고, 차에 타거나 오르는 행동거지가 답답할 만큼 느린 경우도 있었다. 풍을 맞아 얼굴이 일그러진 녀석, 신장을 이식해 술을 한 잔도 못 마시는 녀석, 어머니처럼 늙어 보이는 아내를 손잡아 이끌고 다니는 녀석…. 몸에 새겨진 세월의 풍화작용을 보는 게 안타깝고 서글펐지만, 그래도 코로나 와중에 즐겁게 떠들고 웃으며 이렇게 여행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이게 복된 게 아니고 뭐냐. 아예 수학여행을 취소한 학교도 많더라. 첫날 강릉의 호텔에서 저녁을 먹은 뒤 좀 거닐어보려고 바다로 나갔다. 그러나 하늘이 잔뜩 흐린 데다 반소매 차림으로 다니기가 어려울 만큼 날씨가 추웠다. 그래서 바닷가를 걷는 걸 포기하고 나와 아내, 다른 친구 둘까지 네 명이 택시를 타고 안목항의 커피거리를 찾아갔다. 제법 큰 집의 2층에 올라가 커피를 마시다가 우리는 갑자기 10년 후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수주 변영로의 명저 ‘명정(酩酊) 40년’ 식 표현을 빌리면 ‘진무류’(珍無類)의 그날 대화는 이런 식으로 전개됐다. -10년 후에도 우리가 졸업 60년 여행을 할 수 있을까? 그때는 팔순인데. -해야지. 몇 명이나 올지 모르지만, 그때는 애들이 어린 자네가 위원장을 하셔. 기발한 아이디어가 많잖아(이래서 딸 둘이 아직 중2인 친구가 만장일치로 위원장이 됐다). -좋아, 그러면 궁리를 좀 해보자. 우선 참가자들한테서 돈을 거두면 안 돼. 그때 그 나이에 누가 돈을 내겠냐? 오히려 돈을 벌어야지. 〇〇상조의 협찬을 받아야 돼. 낄낄낄. -왜 하필 〇〇상조여? -거기가 젤 커. 큰 데하고 해야 일이 편하고 남는 것도 있지. 낄낄낄. -그러면 상조회사하고만 하지 말고 리무진 회사, 목발, 휠체어, 지팡이 이런 제조회사들도 끌어들여야겠다. 여행 중에 누가 죽거나 쓰러지면 신속 정확하게 모든 걸 처리해야 되잖아. 낄낄낄. -의사 간호사도 동행해야 돼. 앰뷸런스도 대기시키고. 낄낄낄. -행사 중엔 제약회사한테 약을 팔 수 있게 하자. 우리가 몇 퍼센트나 먹을지 미리 정하고. 낄낄낄. -〇〇〇이 그때는 뭘 하고 있을까? 대통령 되고 싶어 안달인 사람인데, 그 사람 영상메시지도 받자고. 거기다 앞뒤로 광고도 좀 붙이고. 낄낄낄. (이미 눈치 챘겠지만 이 대화에는 모두 ‘낄낄낄’이 후렴으로 붙는다. 무슨 말이든 우리가 혼자만 웃은 경우는 없다. 그러니 이하 ‘낄낄낄’ 표기가 없더라도 그걸 꼭 붙여서 읽기 바란다.) -그러면 캠프를 하나 차리자. 체계적으로, 합리적으로, 단합적으로, 민주적으로 일을 해야지. -캠프? 사람이 너무 많으면 우리가 먹는 게 줄어들잖아. 수익이 확실히 보장돼야 하니까 우리 넷이서만 하자. 돈을 딱 4등분하는 거야. -고교 졸업 60년, 인생 80년 행사는 뉴스거리도 되지 않을까? -신문·방송 보도는 니가 책임져. 노인들이 이런 수준의 기획력 창의력 추진력 단결력과 사업마인드를 갖고 있다니 다들 놀라 자빠질 거야. -광고 섭외가 들어올지도 몰라. 그럴 때 반갑다고 덜컥 헐값에 계약하면 안 돼. 이런 것도 미리 생각해둬야 해. -행사 치르고 나면 노인들의 자문, 상담 신청이 국내외에서 빗발칠걸? 컨설팅은 원래 니 전문이잖아? 잘해봐. 이른바 2030프로젝트, ‘일견 과대망상적 10년 대계’의 얼개는 이렇게 빈틈없이 짜였다. 이제 남은 일은 재미있고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마구마구 더 보태고, 그때까지 건강을 잘 챙겨 몸과 마음이 온전하고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해 사업 추진에 지장이 없게 하는 것이다. 2시간 여 동안 웃고 떠들다 보니 오붓하게 데이트를 하러 온 다른 좌석의 젊은이들에게 좀 미안했다. 저 사람들도 10년 후를 생각하려나. 유리문으로 내다본 바다에는 이미 어둠의 검은 장막이 짙게 깔려 저 멀리 오징어잡이 배들의 불빛만 바람에 희미하게 굴절되고 있었다. 아래층으로 내려와 문을 나서니 파도와 풍랑은 더욱 거세지고, 강풍에 모자가 날아갈 것 같았다. 다시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가는 동안에도 우리는 계속 낄낄거리며 10년 후를 이야기했다. 낄낄낄, 낄낄낄.
- 2020-06-24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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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 할빠 연맹’ 출범 방지책
- 경기도 용인에 사는 김남일 씨(66·가명)는 최근 손자 돌봄을 다시 시작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지난 5월 2일 양재역에서 만난 김 씨는 “은퇴 후 할빠 역할을 한 지난 3년간의 세월은, 은퇴가 아닌 또 다른 노동의 세월이었다” 라고 말했다. 그는 맞벌이 아들의 5살, 2살 손자들을 아내와 같이 돌보러 다녔다. 처음에 아내는 “애들 집에서의 식사와 간식 마련, 청소 등 어려운 일들은 내가 할 테니 당신은 그저 어린이집에서 데려와 몇 시간 놀아주기만 하면 된다”라고 유혹했다. 그런데 그는 ‘애들과 놀아준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 것이지 몰랐다. 과거 육아 경험이 있던 아내와는 달랐다. “사실 근무시간보다 강도에서 여자들과 차이가 많이 나요. 한 명을 안아주면 또 한 녀석이 울며 보채요. 몇 차례 반복하면 힘이 쏙 빠져요. 달래는 요령도 없고 업는 기술도 부족하니... ” 라고 그는 말했다. 시간 잘 가는 게임이나 TV 시청은 며느리에게 금지 당했으니, 애들과 놀아주는 할빠들의 콘텐츠는 단순할 수밖에 없다. 공놀이, 총싸움, 레슬링 등은 모두 육체적인 활동을 수반한다. 한 시간이면 탈진이 된다. “할빠들을 위한 교육 강좌가 있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거기서 남자들끼리 서로 머쓱하게 마주칠 장면을 상상하니 엄두가 나질 않아요”라고 그는 말했다. 현실과 직결되는 돌봄비도 문제였는데, 며느리가 김 씨의 아내에게 주는 방식이었다. 애들의 간식비 등, 장 보는 비용도 포함되어 있어 구체적인 액수를 밝힐 수 없다는 아내는, 그것을 자신들의 생활비로 사용한다며 그동안 단 한 푼도 김 씨에게 지불하지 않고 있다. 그렇게 지쳐 가던 김 씨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외국 여행 다녀온 사람을 접촉했기 때문이었다. 그 후 자가 격리를 강력히 시행하면서 적당한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았으나, 손자 돌봄 거부 시의 후환이 두려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그래도 김 씨는 나은 편이다. 서울 구로동의 양주석 씨(64·가명)는 아예 병을 얻은 경우다. 양 씨는 유방암 수술을 한 아내와 함께 세 살배기 외손녀를 돌봐주러 다닌다. 건강이 나쁜 아내를 대신하다 보면, 거의 모든 것이 양 씨의 몫이다. “손녀도 나한테 안기는 게 편하니 나만 찾고, 눈치가 빤하니 모든 사항을 저에게만 요구해요”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다가 교직에 있는 딸의 야근이 잦아지면서 양 씨의 허리에 탈이 났다. 아내와 손녀를 동시에 돌보다 생긴 병이었다. 그래도 그간 마음은 편했었는데, 딸이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시작하면서 갈등까지 생겼다. “종일 딸과 같이 있다 보니까, 혼자 애를 볼 때와는 다르게 평가와 감시를 받는 기분이 들었고 또 실제로 잔소리도 많이 들었죠. 나중에는 유일한 낙인 담배까지 끊으라고 요구당했어요”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면서 불면증까지 생겼다. 그런데도 앞서의 김 씨와 마찬가지로 보상이 없었다. 역시 딸이 아내에게 돌봄 비를 지불하기 때문이다. 그간 아내에게 항의도 해보고 협상도 해봤지만 실패했다. 사업가였던 그는, 생활비를 주는 데에만 익숙했기 때문이다. “사실 따로 통장 입금을 해 주면 가장 좋겠지만 그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아요. 그저 한 달에 한두 번 아내 몰래 봉투를 찔러 줬으면 해요”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사회 환경의 변화에 따라 육아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황혼 육아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할빠들이 증가하고 있다. 그들은 체면 때문에 혹은 가정의 평화를 위하여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자식들 집으로 향하고 있다. 앞의 예에서 보듯이, 은퇴 후의 남자들이 겪는 가정 내에서의 권력 변화라고 하기에는 가혹한 경우도 많다. 그래서 태업이나 파업도 생각해 보았지만 직장폐쇄로 ‘집 나가면 개고생’ 이기에 그러지도 못한단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일부 악덕 부인들은 이러한 상황을 악용하여 권력을 남용하고 있다. 할빠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대가를 바라고 손자들을 돌보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저 공정하길 바랄 뿐이다” 이러한 상황이 고착된다면, 전국 할빠 연맹이 결성되어 공동 근로의 대가를 혼자 착취해 가는 부인들을 국세청에 소득세 탈루 혐의로 신고할 수 있다. 이것은 황혼이혼->독거노인->복지예산 증가로 국가에 큰 부담이 될 것이다. 또한 부인들에게만 돈을 지급하는 자식들에게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혐의를 둘 수도 있다. 이러한 사회적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돌봄 비용 지급 경로를 다변화해야 한다. 즉 아들과 사위도 관심을 가지고 할빠들에게 봉투를 얹어 드려야 한다. 지금 할빠는 미래의 그들 모습이기 때문이다. 은퇴 후, 그래도 가정 내에서의 역할이 있다는 것에 안도하며, 묵묵히 자신을 희생하는 선량한 할빠들의 서러운 눈물을 닦아주는 사회적 관심이 절실한 시점이다. 그래야 국가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전국 할빠 연맹의 출범을 방지할 수 있다.
- 2020-05-07 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