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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3세에 독일로 어학연수를 떠난 친구
- 해외 어학연수는 학생들이나 가는 일로 여겨왔다. 국제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차원에서 좀 더 젊은 나이에 현지로 어학연수를 떠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서 대학생까지 어학연수를 떠나는 계층은 주로 학생들이다. 그런데 필자의 한 친구가 아내와 함께 2015년 5월부터 이듬해 4월 말까지 1년 동안 독일에서 어학연수를 해 주변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의 나이 63세 때였다. 지난해 연말 광화문 한 커피숍에서 친구 부부를 만났다. 어학연수를 다녀온 효과였을까? 친구는 커피를 주문하면서 만난 외국인과 독일어로 스스럼없이 대화를 했다. 친구는 국내에 있는 독일문화원에서도 독일어를 배울 수 있음에도 현지로 굳이 떠났다. 어학연수 당사자는 친구였지만 그의 아내도 여행 겸 함께 떠났다. 그것도 잘되던 사업까지 스스로 접고서 말이다. 게다가 아흔 살이 넘는 모친이 요양원에 있어 장기간 외국에 머무르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렇게 녹록지 않은 현실임에도 과연 무엇이 환갑이 지난 그를 독일 현지로 떠나게 한 것일까? 친구는 어학연수를 마치고 돌아와 자신의 블로그에 ‘황 첨지의 독일 유랑기’를 올렸다. 그 후일담에서 이유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친구는 “내게 있어서 정말 후회 없는 시간이었고 순수하게 나를 위해서 시간과 내가 벌었던 돈을 쓴 보람 있는 과정이었다”라고 썼다. 우리는 반생의 삶을 살아오면서 자신보다는 가족이나 직장을 위해 희생한 면이 많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역할과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하면 자신이 인생의 주인공이면서 가족을 위해 조연 역할을 자처해온 삶인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이나 이루고 싶은 꿈도 접어두기 십상이었다. 친구의 어학연수는 접어두었던 꿈을 위한 시간이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고등학교에서 독일어 교사로 잠시 근무하다 보험사로 이직했는데 이때 필자와 인연을 맺었다. 보험사 지점장을 마지막으로 퇴직한 후에는 여러 가지 사업에 손을 대며 살아왔다. 그런 생활 속에서 늘 마음 한구석에 늘 독일어 공부에 대한 욕구가 꿈틀댔지만 환갑의 나이를 훌쩍 넘어설 때까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세월만 흘려보냈다. 그 사이 가까운 친구도 한둘 세상을 떠났다. 이렇게 살다가는 영영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엄습했을 때 뒤늦은 나이인 60세에 시작한 사진을 통해 인생 2막을 활기차게 보내고 있는 필자의 모습을 보고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그리고 세월은 결코 자신을 기다려주지 않음을 느끼며 결단을 내렸다. 꿈을 펼쳐보자고 말이다. 어느 정도의 노후자금을 마련해놓은 점도 한몫했다. 물론 돈이 풍족해도 자신의 꿈을 위해 새로운 출발을 하는 사람들은 흔치 않다. 처음에는 서울에 있는 독일문화원 어학과정에 등록해 공부하려 했단다. 그런데 자신의 이야기를 들은 같은 교회 신자 한 분이 “이왕에 시작하려면 아예 독일 현지로 떠나면 어때요?”라고 조언을 했고 친구는 동감했다. 그런데 그를 망설이게 하는 걱정거리가 있었다. 요양원에 모셔놓은 아흔 살 넘은 어머니였다. 자신이 독일에 가 있는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때 또 다른 신자가 조언을 했다고 한다. 남편이 시어머니 때문에 결정하지 못한 일이 있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1년이 지나가더라고 말하면서 걱정은 내려놓고 무조건 독일로 떠나라고 했다는 것이다. 친구는 그렇게 해서 독일행을 결정했고 1년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지 벌써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요양원에 있는 어머니에게는 다행히 큰 변화가 생기지 않았다.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지인들의 진솔한 조언은 꼭 필요하다. 독일 어학연수는 친구의 인생에서 참 잘한 결정으로 남았다.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면서 중요한 오늘을 허비함은 옳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은 셈이다. 오늘도 친구는 또 다른 꿈을 이룰 계획을 세우며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인생 2막을 의미 있고 보람 있게 살아가려는 은퇴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친구 이야기다. 일본의 한 호스피스가 임종을 앞둔 1000명에게 ‘가장 후회되는 일’이 무엇인가 물었을 때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한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인생 마지막 순간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머뭇거리지 말고 꿈을 향해 당장 결단을 내려야 하지 않을까?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 오간다는 신조어 “욜로족(YOLO, You Only Live Once. 한 번뿐인 삶, 즐기자”)이라는 삶의 방식도 생각해보는 요즈음이다.
- 2017-01-11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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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에 달라진 것들
- 희망찬 새해에 새로 시행되거나 달라지는 민생관련 제도들이 많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잔금대출 요건 강화다. 내년 1월 1일 이후 분양 공고를 내고 입주자를 모집하는 아파트 잔금대출에도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이 적용돼 원금과 이자를 동시에 갚아나가야 한다. 보험료가 지금보다 25% 저렴한 실손 의료보험이 4월 출시된다. 스마트폰으로 24시간 예금가입ㆍ대출 등 주요 은행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인터넷전문은행이 2월 본격 영업을 시작한다. 소득세 과세표준에 ‘5억원 초과’ 구간이 신설되고, 이 구간 세율은 40%가 적용된다. 현행 최고세율은 1억5,000만원 초과 구간에 적용되는 38%이다. 상속 및 증여세 신고세액 공제율이 현행 산출세액의 10%에서 7%로 축소된다. 새해에도 군인처우는 크게 개선된다. 상병월급은 19만5,000원, 병장은 21만6,000원이 되며 숙소인 병영생활관에는 에어컨이 100% 설치돼 여름철 찜통 더위에서 벗어날 것으로 보인다. 매달 있었던 의무경찰시험이 3월부터 두 달에 한번으로 바뀐다. 탈락자들의 매월 응시에 대한 시간과 비용 절감 차원이다. 무자격 의무병의 의료보조행위를 해소하기 위해 의료 관련 면허나 자격 보유자와 관련 학과 전공자들을 별도 모집한다. 시간당 최저임금이 6,030원에서 6,470원으로 인상된다. 일급으로 환산하면 8시간 기준 5만1,760원, 월급으로 환산하면 주40시간 기준(주당 유급주휴 8시간 포함) 월 135만2,230원이다. 상시 300인 미만 사업장 및 국가ㆍ지방자치단체에 정년 60세 이상 의무화에 이어 올해는 정년 60세 의무화가 모든 사업장으로 확대된다. 출산전후휴가 급여 상한금액이 월 135만원에서 150만원으로 올라간다. 종이 계약서 대신 스마트폰, 컴퓨터 등으로 부동산매매ㆍ임대차계약을 맺는 부동산 전자계약 시스템이 상반기 전국으로 확대 시행된다. 현행 ‘3층 이상 또는 연면적 500㎡ 이상’인 내진설계 의무화 대상이 ‘2층 이상 또는 연면적 500㎡ 이상’ 건물로 확대된다. 어린이통학버스 운전자가 운행을 종료한 경우 어린이들이 모두 하차했는지 확인하고, 이를 위반하면 20만원의 범칙금을 물도록 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6월부터 시행된다. 노후차량 운행 금지 규제가 서울시 전역으로 확대된다. 운행 제한 대상 차량은 2005년 이전 등록한 경유차 가운데 종합검사를 받지 않았거나, 불합격한 차량이다. 위반 시에는 과태료 20만원이 부과된다. 면류(국수 냉면 유탕면) 및 즉석섭취식품(햄버거 샌드위치) 일부의 제품 포장지에 소비자가 알아보기 쉬운 형태로 나트륨 함량을 표시하는 제도가 5월 시행된다.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HACCPㆍ해썹)에 따른 인증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대상이 전년도 매출액 100억 원 이상인 식품제조업체의 전 품목으로 확대된다.
- 2017-01-03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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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댓연금] 60대의 연금술
- 어느 60대 여성들의 대화 어느 화창한 주말 오후! 어린이 놀이터를 빙 둘러싸고 있는 벤치에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 두 분이 앉아 있다. 놀이터에서는 아이들이 할머니의 존재를 잊은 듯 신나게 노느라 여념이 없었고, 할머니 두 분은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잠시 손주들의 존재를 잊은 듯했다. 우연히 그 옆에서 할머니들과 아이들을 번갈아 쳐다보며 어정쩡하게 서 있던 필자는 어느 순간 벤치 쪽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시선을 고정했다. 남 이야기를 엿들은 것 같아 조금 민망하지만 직업병 탓으로 돌리며 그 내용을 여기에 잠시 소개하고자 한다. 할머니 한 분이 많은 돈은 아니지만 곗돈을 탄 모양이었다. 그 곗돈을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 서로 의견을 나누는 중이었다. “요즘은 은행에 넣어둬도 이자가 얼마 붙지 않아 재미도 없는데, 곗돈을 어디에 쓸 거유?” “연금에 가입해 매달 연금으로 받으려고 해요.” “연금으로 받으면 몇 푼 되지도 않을 텐데, 차라리 여행을 다녀오거나 며느리에게 주면 좋아하지 않을까?” “얼마 되지 않는 돈이라도 매달 받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한데…. 그리고 이제 우리 노후는 우리가 책임져야 하는 시대잖우.” 이 말을 들은 여성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성과 감정의 줄타기 게임 위의 대화는 오늘날 60대의 고민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 돈이 좀 생기면 고민도 생긴다. 자식을 위해 써야 할지, 아니면 이기적으로 보이더라도 자신을 위해 써야 할지, 자신을 위해 쓴다면 어떻게 쓰는 게 과연 좋을지 판단이 잘 안 선다. 노후를 위해 연금에 가입하는 게 좋을까? 이성은 연금에 가입하라고 권하는데, 감정은 자식을 위해 쓰라고 부추긴다. 이성과 감정의 줄타기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감정의 힘에 굴복하고 만다. 하지만 위의 사례에 나오는 여성처럼 꿋꿋하게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사람도 있다. 그 결과는 어떨까? 감정적으로 내린 판단보다는 이성적 판단이 지혜로운 판단이었음을 곧 알게 된다. 2001년, 미국의 저명한 두 교수가 2001년 이전에 태어난 사람 중 2150년까지 생존해 있을 가능성을 두고 내기를 걸었다. 미국 앨라배마 버밍햄대학교 오스태드 교수는 메트포르민과 라파마이신 등이 인간의 수명을 상당히 늘려줄 것이라며 생존 쪽에 내기를 걸었고, 시카고대학교의 올생스키 교수는 유전적 프로그램이 걸림돌로 작용해 아무리 오래 살아도 115세밖에 못 살 거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2001년에 각각 150달러씩 내어 300달러를 펀드에 투자했다. 이 펀드는 2016년까지 연평균 9.5%의 높은 수익률을 보여 300달러가 1275달러로 늘어났다. 2016년 이들은 각각 300달러씩 또 내어 600달러를 이 펀드에 추가로 넣었다. 이 펀드가 2150년까지 연평균 9.5%의 수익률을 실현하면 2150년에는 약 2억 달러가 된다. 이 돈은 내기에서 이긴 사람의 유족이 다 가져가기로 했다. 지금의 60대가 150세까지 생존할 가능성은 없지만 앞으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수명이 더 길어질지도 모른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연금을 선택한 이성의 판단은 옳은 것이다. 60대 연금술의 핵심과 전략 60대 연금술의 핵심은 어떤 연금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효과가 달라진다는 점에 있다. 가진 돈을 모두 연금으로 전환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바로 여기에 60대 연금술의 전략이 있다. 모든 자산을 연금화한 뒤 매달 받는 연금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발생하면 대응할 수 없다. 연금은 마치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계속 나오겠지만, 당장의 큰 지출을 감당할 수 없어 빚을 얻게 된다면 그 빚을 다 갚을 때까지는 쪼들린 생활을 해야 함을 물론 최악의 경우에는 하류노인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 소개되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후지타 다카노리의 저서 는 연금으로 일상적인 생활은 그럭저럭 유지하더라도 여윳돈이 없는 상황에서 질병 등 추가로 돈 들어갈 일이 생기면 곧바로 하류노인으로 전락하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현금이 흘러넘치는데도 경제 주체들이 돈을 움켜쥐고 풀지 않아 경기가 나아지지 않고 마치 경제가 함정에 빠진 것처럼 보이는 상태를 ‘유동성 함정’이라 한다. 은퇴자의 경우도 연금이 쉼 없이 나오는데도 일시적 지출에 대응하지 못하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이를 ‘은퇴자의 유동성 함정’이라고 하자. 은퇴자는 이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결국 60대 연금술의 핵심은 연금화와 유동성의 적절한 조화라 할 수 있다. 정상연금이냐? 연기연금이냐? 60대가 연금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은 국민연금의 수령시기를 법에서 정한 시점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뒤로 미룰 것인지를 결정하는 데 있다. 2017년에 만 60세가 되는 1957년생은 만 62세가 되어야 국민연금을 신청할 수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국민연금은 정상 수령 연령부터 받는 것이 기본이지만 최대 5년간 앞당겨 받을 수도, 늦춰 받을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앞당겨 받는 것을 조기연금, 늦춰 받는 것을 연기연금이라고 한다. 조기연금을 신청하면 정상연금보다 일찍 수령하므로 1년당 6%씩 수령액이 낮아지며, 연기연금을 신청하면 1년당 7.2%씩 수령액이 늘어난다. 1957년생이 62세에 연금을 신청할 경우 연간 1200만원(월 100만원)을 받는다고 해보자. 이 사람이 연금 수령을 5년 늦게 신청할 경우와 5년 빨리 신청할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 5년 늦게 신청할 경우에는 1년당 7.2%씩 급여액이 올라가므로 첫해 연금액은 36% 증가한다. 반면에 5년 빨리 신청할 경우에는 1년당 6%씩 급여액이 삭감되므로 첫해 연금액이 정상연금액보다 30% 줄어들게 된다. 첫해 받게 되는 월 연금액은 조기연금 70만원, 정상연금 100만원, 연기연금 136만원이다. 이렇게 보면 언뜻 연기연금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연기연금에 비해 조기연금은 10년 먼저, 정상연금은 5년 먼저 받기 때문이다. 어떤 수령 방법이 가장 유리한지는 누적연금액을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에서 보는 바와 같이 누적연금액 곡선의 기울기가 가장 가파른 것은 연기연금이고, 그다음이 정상연금이다. 이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정상연금의 누적연금액이 조기연금의 누적연금액을 초과하지만, 연기연금의 누적연금액에게는 추월당함을 의미한다. 정상연금 월 100만원과 이 연금액이 매년 물가상승률(2% 가정)만큼 증가한다고 했을 때 76세가 되면 정상연금의 누적연금액이 조기연금의 누적연금액보다 많아지고, 80세가 되면 10년 늦게 시작한 연기연금의 누적연금액이 조기연금의 누적연금액을 추월하며, 84세가 되면 연기연금의 누적연금액이 정상연금의 누적연금마저 넘어서게 된다( 참조). 이는 84세 말까지 생존해 있을 경우 연기연금의 누적연금액이 가장 많음을 뜻한다. 2015년 완전생명표에 따르면, 62세 여성의 기대여명이 25.1세이므로 여성은 평균적으로 연기연금을 신청하는 것이 가장 많은 연금을 받는 방법이며, 남성의 기대여명은 20.6세이므로 연기연금을 우선으로 생각하되 상황에 따라 정상연금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많은 연금을 받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상황이란 가족력이나 본인의 건강상태 등을 말한다. 이 상황을 감안해 기대여명보다 오래 살 가능성이 낮으면 정상적으로 62세에 연금을 신청해야 가장 많은 연금액을 받는다. ‘은퇴자의 유동성 함정’ 피하기 이제 60대 연금술의 전략이라 할 수 있는 ‘은퇴자의 유동성 함정’ 피하기에 대해 살펴보자. 미래에셋은퇴연구소에 따르면, 사망할 때까지 연금이 나오는 종신연금의 적정비율은 은퇴 자산의 규모, 국민연금 수령액, 주택연금 가입금액 등에 따라 달라지는데, 은퇴파산 확률이 가장 낮은 종신연금의 비중은 24~42%라고 한다. 종신연금의 비율이 24% 이하로 떨어지면 장수리스크와 변동성리스크 때문에, 42%를 넘게 되면 구매력리스크와 이벤트리스크 때문에 은퇴파산 가능성이 높아진다( 참조). 모든 자산을 종신연금으로 전환해버리면 은퇴파산 확률이 90%로 올라가는데, 이는 일반 국민들이 이용하는 사적연금의 경우 연금액이 일정 금액으로 고정되어 있어 인플레이션에 취약하고, 이 상황에서 질병이나 사고 등 큰 금액의 지출이 생기는 일이 발생하면 대응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는 국민연금을 포함해 종신연금의 비중을 3분의 1 정도로 유지하고, 나머지 자산은 인플레이션 헤지와 유동성 확보를 위해 운용할 필요가 있다. 은퇴 후 인플레이션 헤지를 위해서는 투자형 상품을 활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저축 투자형 소비’가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는데, 이는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 세대(1947~1949년생)가 은퇴 자산을 운용하는 새로운 패턴을 말한다. 과거의 은퇴자들이 저축한 돈에서 매달 생활비를 빼 쓰는 방식을 취했다면, 단카이 세대는 저축한 돈의 일부를 투자로 운용하는 것이다. 단카이 세대는 투자를 위험한 행위로만 생각하지 않고, 돈에게 일을 시켜 새로운 돈을 벌어들이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요즘 일본의 50~60대 남성들의 일상 대화 속에 건강 이야기 못지않게 ‘돈이 되는 금융상품’이 회자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새로운 어른 문화 연구소’의 소장인 사카모토 세쓰오는 저서 에서 아베노믹스가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 잡은 것은 일부 기관 투자가나 해외 펀드만으로는 불가능하며 많은 개인 투자가들이 참가했기에 가능했다고 주장하면서 “그 개인 투자가의 중심적 존재가 바로 단카이 세대였다”고 말한다. 투자를 통해 돈이 제대로 일을 수행하면 괜찮은데, 반드시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는 게 투자의 세계다. 이런 경우에 대비하고 아울러 유동성을 확보하기에 좋은 것이 주택연금이다. 주택연금은 만 60세 이상(주택 소유자 또는 배우자)의 고령자가 소유 주택을 담보로 맡기고 평생 혹은 일정 기간 동안 매월 연금 방식으로 노후생활 자금을 지급받는 국가 보증의 금융상품(역모기지론)을 말한다. 주택연금을 받으려면 우선 주택금융공사로부터 보증서를 발급받고, 이를 제휴 금융기관에 내면 그 금융기관에서 주택연금을 지급해준다. 주택연금에서 특히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연금지급방식이다. 주택연금의 지급방식은 월 지급금을 종신토록 지급받는 종신방식과 고객이 선택한 일정 기간 동안만 월 지급금을 지급받는 확정기간방식으로 나뉜다. 종신방식은 다시 인출한도 설정 없이 월 지급금을 종신토록 지급받는 종신지급방식과 수시인출한도(대출한도의 50% 이내) 설정 후 나머지 부분을 월 지급금으로 종신토록 지급받는 종신혼합방식으로 구분된다. 수시인출한도를 잘 활용하면 ‘은퇴자의 유동성 함정’을 피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주택연금을 신청할 때 무조건 종신지급방식을 고집할 게 아니라 국민연금 수령액, 퇴직연금 등 사적연금 수령액을 먼저 계산한 뒤 부족한 월 생활비만큼을 종신연금으로 수령하고 나머지는 수시인출한도를 설정해 유동성을 확보해둘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하면 종신토록 안정적으로 생활비를 조달받으면서 갑자기 도래할 수 있는 예상외 지출 건에도 대응할 수 있어 은퇴파산에 빠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손성동(孫盛東) 연금과 은퇴포럼 대표 삼성금융연구소 수석연구원,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 연구실장,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연금연구실장 역임. 현재는 ‘연금과 은퇴포럼 대표’로 있으면서 1인기업가를 꿈꾸고 있다. 공식블로그 ‘꿈꾸는 은퇴와 연금’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부산 동아대와 동서대에 출강하고 있다.
- 2016-12-30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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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똑똑한 은퇴] L·E·D(Learn, Exercise, Do), 배우고 익혀서 행하면 기쁘지 아니한가?
- 필자는 은퇴 전문가로 활동하면서 몇몇 신조어(新造語)를 만들어냈다. 예를 들면 5F(Finance, Field, Fun, Friend, Fitness), 5자(놀자, 쓰자, 주자, 웃자, 걷자), 연타남(연금 타는 남자)과 연타녀(연금 타는 여자) 등이다. 그중에서도 큰 인기를 얻은 것 중 하나가 LED다. LED는 원래 ‘발광다이오드(Light Emitting Diode)’라고 불리는 반도체 소자를 말한다. LED를 사용하는 LED TV와 LED 전구는 매우 밝을 뿐 아니라 수명이 길면서도 유지비용은 적게 든다고 한다. 이에 필자가 저금리·고령화시대의 어둠을 밝혀줄 뿐 아니라 수명이 길면서도 비용과 노력은 적게 들어가는 3가지 은퇴 설계 전략을 기왕이면 ‘L·E·D’로 시작하는 영어 단어에 맞춰본 것이다. 먼저 ‘L’은 ‘롱 워크(Long work·오래 일하기)’로부터 가져왔다. 고령화시대인 만큼 어떻게 해서든 오래 일해야 한다는 의미다. 기대수명이 늘어나면 그에 따라 근로기간도 늘어나야 하지만 우리나라는 거꾸로 가고 있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은퇴가 빨라지면서 주된 직장에서 물러나는 나이가 평균 53~54세에 불과하다. 2016년부터 정년 60세 의무화가 시작되었지만 은퇴 연령이 크게 늘어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자녀들에게만 ‘스펙’을 키우라고 요구할 게 아니다. 중·장년들도 현역으로 있을 때 스스로 자기계발을 통해 인생 이모작, 삼모작에 나설 준비를 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E’는 남보다 빨리 시작하자는 ‘얼리 스타트(Early start·빠른 준비)’를 의미한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속담처럼 가능한 한 일찍 돈을 벌기 시작하고 돈을 버는 순간부터 은퇴 설계를 염두에 둬야 한다. 일찍 시작하고 늦게까지 소득을 올리는 맞불작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제 직장을 잡았으니 좀 즐기고 놀아야지 하다가는 나이 들어서 은퇴 설계 전문가로부터 “노후 설계·은퇴 설계가 안 나오는데요” 하는 말을 듣게 된다. 유능한 의사도 손을 놓을 수밖에 없는 ‘은퇴 중환자(重患者)’가 되지 않으려면 1년이라도 빨리, 지금 바로 시작하는 게 노후 준비와 은퇴 설계의 핵심이다. ‘D’는 ‘더블 인컴(Double income·맞벌이)’으로 부부가 맞벌이 전선에 나서야 한다는 의미다. 외벌이로는 은퇴 설계가 불가능해진 현실이기 때문이다. 기대수명이 70세였던 시절에는 남편 혼자 30년 벌어 부부의 여생 20년(남편의 60세 은퇴 후 부부가 평균 10년씩 더 산다고 가정)을 설계하면 그만이었다. 30년으로 20년을 설계하는 것이므로 산술적으로도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30년 벌어서 적어도 60년(부부 두 사람이 각각 30년)을 먹고살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맞벌이 비율은 43%로 주요 선진국들에 비해 크게 낮다. 미국이 65%, 독일이 61%, 프랑스가 60% 등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 57%에 달한다. 가부장적 관습, 육아 및 교육, 가사 분담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맞벌이 비율이 급속하게 높아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물론 기업과 개인들도 꾸준히 고민하고 노력해야 할 과제다. L·E·D는 결국 “인생 이모작을 미리 준비하고, 일찍 일어나는 새가 한 집에 두 마리는 있어야 한다”는 지침이다. 사실 이 3가지 중 쉬운 것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어렵다고 걱정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현실을 피할 수 없는 게 우리네 인생 아닌가. 이렇게 LED를 설명하면 30~40대의 직장인과 자영업자들은 크게 공감을 하면서 어떻게든 헤쳐 나갈 궁리를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현재 50대 이상, 특히 60~70대에게는 LED가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분위기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챙겨보라는 말에는 이의가 없다. 하지만 이 나이에 나도 일할 자리가 없는데 배우자까지 일을 찾으라고? 거 돼도 않는 말, 실상과 맞지도 않는 말 하지도 마쇼!” 필자도 50대 이상 나이 드신 분들에게 LED를 권장할 마음은 없다. LED는 오히려 그분들의 자녀 세대들에게 적용되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그 대신 새로운 LED를 소개하고자 한다. 두 번째 LED의 ‘L’은 ‘배우자(Learn)’,‘E’는 ‘연습하자(Exercise)’, ‘D’는 ‘하자(Do)’를 의미한다. ‘배우자’라는 말은 얼마 전 기고에서도 주장한 것처럼 나이 들수록 필요한 두 배우자 중 하나다. 다른 한 배우자는 남편과 아내를 뜻한다는 것을 이미 눈치채셨을 것이다. 은퇴한 후 30~40년을 별달리 하는 일 없이 보낼 수는 없다. 은퇴 후의 배움은 소득을 얻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뭔가 할 일(Field)’을 찾기 위해서 하는 행위에 가깝다. 취미활동도 배워야 더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또 실내에서 온라인 등을 통해 배우는 것도 좋지만 밖에 나가 사람들과 부딪치면서 배우는 것이 신체적·정신적 건강에도 훨씬 더 좋을 것이다. 예를 들어 댄스, 악기 등과 같이 서로 만나 함께 배우고 취미생활을 하면 덤으로 다양한 친구들까지 사귈 수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다. 배운 뒤에는 부지런히 익히고 연습(Exercise)해야 한다. 피아노 또는 사진 촬영, 커피 만드는 법을 배운다고 예를 들어보자. 무엇에 빠지면 시간도 잘 가고 재미도 있다. 그러다가 자신감이 생기면 가족과 친구들에게 배운 것을 실행해보기도 하고 동호회는 물론 봉사활동 등에도 적극 나설 수 있다. 배우고 익힌 다음 실제 활동(Do)에 나서는 것이다. 좀 서툴다고 탓하는 사람은 없다. 공자님께서는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易說好)’, 즉 ‘배우고 익히는 것만으로도 기쁘다’고 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배우고 익힌 것을 실행한다면 더 기쁘지 않을까? 그래서 필자는 ‘學習而時行之 不易說好’, 즉 ‘배우고 익혀서 때때로 행하면 또한 기쁘지 않은가?’로 바꿔 말하고 있다. 한 선배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좋은 말씀을 해주셨다. “할까 말까 고민이 되면 하고, 갈까 말까 고민이 되면 가야 한다. 나이 들면 무엇이든 하는 게 좋다. 다만 더 먹을까 말까 고민이 될 때는 그만 먹는 게 좋다.” 은퇴학자로 유명한 미국의 칼 필레머 교수가 쓴 책 에는 “비가 올 때 필요한 것은 걱정이 아니라 우산”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그렇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막연한 걱정이 아니라 전략과 준비, 학습과 실행, 즉 ‘L·E·D(Long work, Early start, Double income)’와 ‘L·E·D(Learn, Exercise, Do)’ 같은 여러 개의 꼭 있어야 할 우산이라는 점을 명심하자. >>최성환(崔聖煥) 한화생명 은퇴연구소장·고려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 한국은행 과장, 조선일보 경제전문기자, 고려대 국제전문대학원·경영대학원 겸임교수, 한화생명 경제연구원 상무, 은퇴연구소장 등 역임.
- 2016-12-30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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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봉규의 心冶데이트] 고독한 애주가 장은숙의 눈물, "70대가 되어도 최강 동안 소리를 듣고 싶다"
- 1957년생 장은숙은 1977년에 데뷔해 1995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자기애로 똘똘 뭉친 장은숙은 고독한 생활을 즐겼다. 고독했기에 행복했고 그래서 늙지 않는 것일까. 무엇보다 그녀의 가수 인생은 파란만장했지만 고독했기에 노래에 집중할 수 있었고 성공과 행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것. 시집 한 번 안 간 그녀는 요즘도 혼자 밥 먹고 혼자 술 마시는 것이 편하고 재밌단다. 올해로 60세인 장은숙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최강 동안을 자랑하며 ‘함께 춤을 추어요’와 ‘당신의 첫사랑’ 등 여전히 매력적인 허스키 보이스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 몇 년 전 (KBS 1TV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 무대에 오랜만에 나타난 장은숙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젊었을 때 보았던 장은숙의 모습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세련되어졌고 농후한 맛까지 더해져 젊었을 때보다 훨씬 더 섹시해져서 나타난 것이다. 그녀의 나이가 60인데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최강 동안(童顔)이었다. 그때 TV를 보면서 장은숙의 미모와 목소리에 푹 빠져 팬이 되어버렸다. 그 후 유튜브로 그녀의 노래를 듣고 또 들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와 마주앉아 인터뷰를 하고 있으니 한량 이봉규는 정말 행운아다. 인터뷰를 마친 후 내가 내린 그녀의 최강 동안 비법은 고독이다. 그녀는 결혼한 적이 한 번도 없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연애도 못해봤다. “남들은 결혼을 세 번씩도 하는데 난 이게 뭐냐?”고 페인트 모션(feint motion)까지 쓴다. 그런 엉성한 페인트 모션에 넘어갈 한량 이봉규가 아닌 걸 금방 눈치 챘는지, “혼자 밥 먹고 혼자 술 마시는 것이 편하고 재밌다”고 자기 진단을 내린다.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과 살지 않는 바에야 혼자 사는 것이 편할 수 있다. 하기 싫은 것을 파트너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억지로 하다 보면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 그러다 보면 툭하면 싸우게 되고 스트레스는 가중된다. 그런 일상이 켜켜이 쌓인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버리면 어느새 늙어버리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그런데 장은숙은 철저하게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아왔다. “싫은 사람은 아무리 비즈니스로 연결되어 있어도 만나지 않는다”는 고집불통적인 자기애(自己愛)가 최강 동안의 비법이 된 것이다. 고독하기에 자기만 사랑했고 그러다 보니 고독을 즐기는 선순환이 오늘의 장은숙을 만들었다. 물론 나름대로 젊어지려고 발버둥치는 노력도 병행했다. 15년째 경락 마사지를 받고 있고 운동은 늘 일상이다. 이런 노력도 결국 자기애의 일환이다. “70대가 되어도 최강 동안 소리를 듣고 싶다”는 그녀의 욕심은 무죄다. “더 이상 예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없을 때는 다 팽개치고 화장도 안 하고 산에 파묻혀 전원생활을 즐기고 싶다”고 말하는 걸 보라. 얼마나 자기애가 강한지 알 수 있다. 아무리 고독을 즐기기로서니 나이 60인데 여태껏 제대로 된 연애를 못 해봤다는 그녀의 말이 믿기 어려워 파고들었다. “가끔 섹스하고 싶은 충동이 없냐?”는 이봉규의 도발에 그녀는 “솔직히 운동하고 일하는데 열정을 쏟다 보면 피곤해서 그런 생각이 나질 않는다”고 답변한다. 그러나 오히려 섹스 생각이 나는 게 두려워 일부러 운동과 일로 몸을 피곤하게 만드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운동과 일은 그녀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에너지 발산법이기에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가 나는 것이다. 그녀는 20대부터 요즘 유행하는 ‘혼술(혼자 마시는 술)’을 좋아했다. 지금도 집에서 혼술을 즐긴다. 어떨 때는 혼자 단골 바(bar)에서 새벽 두시까지 마신다. 언제부터인가 술 마시는 모임도 피곤해서 차단하고 혼자 마신다. “모임에 나가 말 상대하기도 피곤해서 싫고 차라리 편하게 집에서 마시는 것이 훨씬 즐겁다”는 그녀의 진단을 백퍼센트 이해한다. 한량인 나도 혼자 집에서 TV 보면서 막걸리를 마시곤 했다(지금은 띠동갑 마누라와 신혼생활에 푹 빠져 집에서 음악 틀어놓고 제대로 막걸리를 즐기고 있지만). 고독을 즐기고 혼자 술 마시는 것을 밥 먹듯 하는 그녀도 한 달에 한두 번은 대화가 통하는 멋진 남자와 한잔하고 싶을 때가 있다고 털어놓는다. 특히 공연이 끝나고 혼자 집에서 술 마시면 뭔가 허전함을 느낀단다. 오늘은 나와 ‘그루브’라는 라이브 카페에서 진토닉을 마시고 있다. 이미 1차로 주꾸미에 막걸리를 마신 후라서 취기가 슬슬 오르는지 “혼자 술 마시면 슬플 때도 있다”고 고백한다. “언젠가 남산에서 혼자 술 먹고 걸어서 집에 가는데 눈물이 났다”고 회상하는 그녀의 눈가가 촉촉하다. 그녀도 사람인지라 가끔은 고독에 지칠 때도 있는 것이 당연하다. 나의 피아노 반주에 장은숙이 노래를 뽑아댔다. 김정호의 ‘이름 모를 소녀’가 다시 태어난 느낌이다. 걸쭉한 허스키 보이스에 서구적인 마스크가 김정호의 노래를 지워버린다. 내친김에 앙코르, 삼코르, 사코르를 막 받는다. 토니베넷의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 카펜터스의 ‘This Masquerade’를 재즈풍으로 너무나도 멋지게 불러젖힌다. 그녀가 아직 독신으로 살고 있는 것은 몇 번의 찬스를 놓쳤던 이유도 작용했다. 어린 시절부터 남동생과 친척 동생까지 키우고 뒷바라지하느라 젊었을 때는 마음의 여유조차 누릴 수 없는 시간들을 보냈다. ‘함께 춤을 추어요’와 ‘당신의 첫사랑’ 등 잇따른 히트로 스타가 되었을 때는 바빠서 정신이 없었고, 37세 때부터 시작된 일본 생활은 엄격하고 혹독했기에 연애가 여의치 않았다. 매일 6시 반에 기상해서 학교에서 일본어 배우고 노래와 춤까지 연습하느라 마치 군 생활을 하는 것 같았다고 회상한다. 그녀가 결정적으로 찬스를 놓친 것은 일본 가기 전에 잠깐 사귀던 남자와 헤어지면서부터다. 마음의 상처를 받았기에 또 다른 사랑을 찾기가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혹독한 일본에서의 연습생 시절, 한국에 있던 그 남자는 장은숙과 연락도 잘 안 되고 이상한 헛소문(“아쿠자에 잡혀갔다”)까지 돌자 그녀를 잊고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 그러나 마음의 상처를 달랠 여유조차 없을 정도로 바빴다. 그 뒤 몇 번의 기회가 더 있었지만 음양의 조화가 안 맞아 연애를 못했다. “내가 어떤 남자를 좋아하면 그가 도망가고, 나에게 달려드는 남자는 내가 싫고, 남자에게 애교도 부릴 줄 모르는 성격이라 연애가 잘 성사되지 않았다”고 애써 핑계를 댄다. 이토록 매력 있는 여성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연애를 즐길 수 있었겠지만 자기애로 똘똘 뭉친 장은숙은 고독한 생활을 즐겼다. 고독했기에 행복했고 그래서 늙지 않는 것이다. 그녀의 가수 인생은 파란만장했지만 무엇보다 고독했기에 오히려 노래에 집중할 수 있었고 성공과 행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그녀는 1977년 동양방송(TBC)에서 주최한 대한민국 최초의 오디션프로그램인 에서 연말까지 승승장구한 끝에 우수상을 받고 데뷔했다. 이때 처음 받은 참가번호가 행운의 숫자인 ‘7번’이었는데 월말 결선에서도 7번을 받았고, 연말 결선에서도 7번을 받았다. 하늘이 그녀를 미리 점지했는지도 모른다. 어릴 때 국악을 배운 그녀는 가끔 절에 들어가서 연습을 하곤 했다. 연말에 우수상을 타고 나서도 득음을 위해 화곡동에 있는 절에 들어가서 2년간 목청을 가다듬었다. 그래서인지 끈적끈적한 허스키 보이스는 어느 누구도 감히 흉내 낼 수 없을 정도로 독보적이다. 1981년에는 코미디언 이주일과 이라는 영화의 주인공도 했다. 톱스타로서 승승장구하던 장은숙에게 해외 진출의 기회가 온 것은 1995년. 그녀는 일본 토라스레코드 사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장수(Chang Suu)’라는 예명으로 일본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계은숙이 일본에서 한참 활동한 후여서 같은 이름의 은숙이라는 본명 대신 일본 기획사에서 지어준 ‘장수’라는 예명을 사용했다(2009년부터는 본명 장은숙으로 다시 바꿨다). 그녀는 데뷔 첫해 일본 유선대상에서 신인상을 받았고, 2000년 발표한 ‘운명의 주인공’으로 방송 및 각종 차트에서 12주 이상 1위를 차지하며 총 25만 장의, 당시로서는 상당한 앨범 판매 기록도 세웠다. 지금까지 그녀가 발표한 음반은 21장인데 이 중 14곡이나 유선방송(리퀘스트 차트) 1위에 올랐다. 지금은 2003년에 설립한 연예기획사 ‘오피스 장수’의 대표로서 후배 양성도 하고 있다. 요즘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바쁘게 생활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한국에서의 활동 비중을 점차 늘려나갈 예정이다. 나는 그녀의 노래 중 ‘당신의 첫사랑’을 가장 좋아한다. 예전에는 이 노래 가사의 의미도 제대로 모르고 불렀는데 지금은 감정이 달라 다른 분위기로 노래한다고 한다. 이 노래를 부를 때면 스무살 시절, 다섯 살 연상의 연대생 오빠와 신촌에서 막걸리 마시던 추억이 떠오른단다. 최강 동안이니만큼 이제는 다섯 살 이상 연하의 멋진 남자와 첫사랑 같은 싱그러운 사랑에 빠지면 좋겠다. 그런 날이 빨리 와서 ‘고독한 최강 동안’에서 ‘고독한’이라는 형용사를 빼고 다른 형용사가 붙기를 기대해본다.
- 2016-12-30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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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웰에이징] 건조한 겨울, 시니어 괴롭히는 피부병 건선
- 시니어들은 고령에 접어들면서 다양한 크고 작은 질환에 시달린다. 흔히 이야기하는 노화의 과정인 셈이다. 다양한 질환은 부위와 병증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시니어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 대부분의 병들은 증세가 가볍다면 삶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바로 피부병. 단지 가렵고 변색이 되는 것을 떠나 인간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건선(乾癬)은 겨울철 건조한 환경과 함께 시니어들을 속 썩이는 대표적 질환. 한의원에서는 드물게 건선치료만 전문적으로 하고 있는 강남동약한의원 이기훈 원장(李起熏·46)을 만나 이 병의 원인과 치료법에 대해 알아봤다. 글·사진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건선은 피부에 작은 좁쌀 같은 발진이 생기면서 발진된 부위 위에 새하얀 비듬 같은 각질이 겹겹이 쌓여 나타나는 만성 피부병이다. 붉은 발진도 함께 나타나는데, 맨 처음에는 작은 크기로 나타나다 새로운 발진들과 합쳐져 커지고, 주위로 퍼져 나간다. 심한 경우에는 온몸이 빨갛게 발진으로 뒤덮이는 경우도 많다. 양의학에서는 건선의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피부에 있는 면역세포인 T세포의 활동성이 증가되어 면역물질이 과다 분비되는 것이 주된 원인이 아닐까 추정만 하고 있는 상황. 그렇다면 한의학에서는 건선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을까? 이기훈 원장은 건선의 원인으로 열(熱)을 지목한다. “건선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 요인으로 해석할 수 있어요. 먼저 첫 번째 원인은 외적인 요인이에요. 건조한 환경입니다. 건조한 환경은 건선을 악화시키는 데 큰 영향을 미쳐요. 실제로 겨울철에 건선 환자가 늘어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요인은 바로 열이에요. 체내에서 발생한 열이 몸 밖으로 방출되지 못하고 피부에 누적되면서 여러 증상으로 발병하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건선이에요.” 건조한 환경은 건선과는 떼어놓을 수 없는데, 환자 중 일부는 겨울철에 발병했다가 여름이 되면 자연스럽게 증상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바로 습한 여름 공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건선 환자가 건조한 공기를 피해 습한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가서 지냈더니 건선이 말끔하게 나아 실제로 이민까지 심각하게 고려한 사례가 있었을 정도라고 했다. 시니어에 발병하면 반점이 온몸 덮기도 해 건선은 보통 20~30대 젊은 층에 많이 생기지만, 60세가 넘어 처음 발병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일반적으로 젊은 나이에 발병하는 건선은 편도염이나 고열 감기를 앓고 나서 건선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렇게 발병하는 건선은 대부분 물방울 모양으로 나타난다. 당연히 편도염이나 고열 감기를 앓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발열과 관련이 있다. 이에 반해 시니어들이 앓는 건선은 조금 다르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땀의 배출이 줄고 피부가 건조해지는데, 전신의 건조함이 건선 발병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발병하는 형태도 물방울 모양이 아닌 홍피성(紅皮性), 즉 붉은 반점이 전신을 덮는 모양으로 대부분 나타난다. 또 이런 홍피성 건선은 가려움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아 더욱 골치 아프다. 이 원장은 “피부에 습기가 없이 건조하고 기초 대사가 떨어지면서 열을 밖으로 배출하지 못하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건선으로 이어지게 되고요. 실제로 실내 습도를 인위적으로 높이는 것만으로도 건선에는 많은 도움이 됩니다”라고 설명한다. 이렇게 붉어지는 피부는 대인관계까지 어렵게 만든다. 많은 사람이 피부병은 전염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어 피하려는 경향이 있고, 본인 스스로도 붉은 피부를 부끄럽게 생각해 대인기피증까지 겪는 경우도 있다. 스테로이드 연고 조심해서 사용해야 이렇게 붉은 반점과 함께 가려움을 유발하는 질환이 또 있다. 바로 아토피다. 아토피와 건선은 서로 같은 듯 다른 질환이다 보니 치료의 혼선을 주는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아토피 환자는 건선으로 오해받아 엉뚱한 치료를 하고, 또 건선 환자는 아토피 치료로 시간을 헛되이 버리는 것이다. 건선이나 아토피가 생명과 직결되는 병은 아니지만 정확한 진단부터 이뤄져야 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발병하는 위치부터 아토피와 건선은 차이가 있습니다. 아토피는 관절 안쪽을 중심으로 퍼져나가고, 반대로 건선은 관절 바깥쪽에서 발병해요. 예를 들어 무릎관절 앞쪽의 무릎뼈가 있는 쪽에 발병하면 건선일 가능성이 높고, 반대로 오금 쪽에 나타나면 아토피로 볼 수 있죠. 건선은 외부와의 마찰이 잦은 부위에서 일어나는 셈이에요.” 아토피와 건선 치료를 할 때 가장 유의해야 할 것은 바로 스테로이드 사용이다. 스테로이드는 아토피 질환에서 단기적인 효과를 보이는 약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건선에서도 표면적인 효과가 나타난다. 물론 그 부작용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피부가 얇아지거나 화상과 유사한 금단증상이 나타나거나 얼굴이 달덩이처럼 붓고 어깨에 비대증이 나타나는 등의 현상이다. “만약 건선으로 스테로이드제를 처방받았다면 3개월 정도 발라보다가 시험 삼아 중단해볼 필요가 있어요. 그때 만약 건선이 다시 심하게 올라온다면 그건 건선을 치료하고 있는 게 아니라 부작용을 동반하면서 건선을 일시적으로 막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장기적으로 치료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증상이 되레 심해질 가능성도 높아요. 물론 부작용으로 인한 피해도 마찬가지고요. 때문에 달리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일부에서 처방하는 면역억제제도 마찬가지예요. 특히 고령의 시니어들에게는 장기적 복용이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치료는 6개월에서 9개월 소요되는 장기전 그럼 어떻게 치료할 수 있을까? 이 원장은 건선은 그 원인을 제거해야지 외치(外治), 즉 침이나 연고 같은 외부의 치료는 그 효과가 5% 정도에 불과하다고 설명한다. “원인을 해결하지 않으면 치료에 대한 진행 속도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한의학에서 바라보는 건선의 원인, 그러니까 피부가 마르고, 열 배출이 어려워지는 원인을 몇 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스트레스와 음식, 과로, 편도염 그리고 환경적 요인이에요.” 치료를 하면 기간은 얼마나 걸릴까? PASI(건선의 중증도를 나타내는 국제기준) 수치가 10% 이하로(PASI90) 내려가는 데 걸리는 기간은 6개월에서 9개월 정도라고 한다. 물론 이것은 일반 성인 기준이며, 시니어의 경우에는 3개월 정도 더 소요될 수 있다고 말한다. “건선 치료는 일종의 빙산이라고 보면 돼요. 질환이 눈으로 확인될 만큼 발현되는 것은 일부일 뿐이고 진짜 문제는 수면 아래에 자리 잡고 있어요. 회복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얘기죠. 그래도 환자의 85~90%는 PASI90에 도달합니다.” 고기는 담백하게, 튀김은 피해야 일상생활에서 건선을 예방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이기훈 원장은 일단 음식을 꼽는다. “기름진 음식을 피해야 해요. 가장 나쁜 건 튀김. 고온 상태에서 기름으로 조리한 음식은 좋지 않아요. 볶음도 마찬가지고요. 찬 음식에 가열되지 않은 기름이 첨가된 건 별문제 없어요. 그리고 닭이나 오리 같은 가금류보다는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드세요. 호두나 잣 같은 견과류나 배같이 단맛이 나는 과일은 도움이 됩니다. 대신 신맛이 나는 귤과 오렌지, 사과는 피하셔야 합니다.” 조심해야 할 음식은 역시 술이다. 상대적으로 몸의 열을 덜 올리는 맥주가 그나마 낫고, 양주와 같은 독한 술은 상극이다. “일상생활에서 고쳐야 할 습관 중 하나는 잠이에요.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불면이 있다면 치료해야 합니다. 또 샤워할 때 비누나 보디클렌저 같은 계면활성제를 너무 자주 쓰시면 몸이 건조해져요. 특히 때 미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그리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스트레스 없이 생활하시면 건선 걱정은 줄일 수 있습니다.” 이기훈 원장이 말하는 건선 자가진단법 1 겨울이 되면 빨간 반점이 나타난다. 2 몸에 두드러기가 잘 생긴다. 3 피부 가려움증을 겪는다. 4 무릎이나 팔꿈치에 각질이나 반점이 생긴다. 5 각질을 떼어내면 피가 맺힌다. 6 여름에는 괜찮다가, 겨울에 반점이 생긴다. 7 붉은 반점 주위가 가렵다. 8 수포나 농포가 생기기도 한다.
- 2016-12-28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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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 라이프] 2017 정유년, 닭띠 연예인과 이들의 새해 포부는?
- 글배국남 대중문화 평론가(knbae24@hanmail.net) 2017년 정유년(丁酉年)의 새해가 밝았다. 힘찬 닭 울음소리로 새해를 희망차게 여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닭띠 연예인들이다. 닭띠생은 지능과 지모에 뛰어나고 앞을 내다보는 예견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날카롭고 단정하며 체계적이고 결단력도 있다는 말도 많이 듣는다. 이 때문에 연예인 스타 중에는 닭띠가 유독 많다. 정유년을 자신의 해로 만들겠다는 닭띠 연예인은 누구일까. 대중과 만나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2005년생 12세 아역 스타 김유빈에서부터 1933년생 84세 원로가수 명국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연예인이 닭띠다. 가장 어린 2005년생 12세 닭띠 연예인에는 아역 스타 김유빈, 김지영, 홍화리와 리틀 싸이 황민우 등이 있다. 1993년생 24세 닭띠 연예인은 드라마 , 으로 스타덤에 오른 박보검, 가수와 연기자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아이유·정은지, 국민 남동생으로 뛰어난 연기력을 펼치고 있는 유승호가 있다. 이 밖에 1993년생 닭띠 연예인에는 힙합 스타 비와이, 최고 아이돌 그룹 엑소의 디오, 오디션 프로그램 스타 로이킴과 백아연 등이 있다. 1981년생 36세 닭띠 연예인 중에는 대중의 뜨거운 사랑을 받는 톱스타들이 아주 많다. 요즘 시청자들과 만나고 있는 드라마 에서 여자 주인공으로 나와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최고 인기를 얻고 있는 톱스타 전지현, 등 수많은 영화에서 강력한 흥행 파워를 자랑하고 있는 최고 미남 스타 강동원,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여성들의 절대적인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조인성이 대표적인 36세 닭띠 연예인이다. 뛰어난 가창력으로 사랑을 받으며 드라마 OST 여왕으로 등극한 거미와 린, 저음과 고음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목소리 하나로 대중을 감동시킨 9연승에 빛나는 록밴드 국카스텐의 하현우, 매력적인 목소리로 여성 팬들의 가슴을 뒤흔드는 박효신과 케이윌, 여자 힙합 뮤지션 중 가장 인기가 높은 윤미래, god 출신으로 시원한 가창력이 강점인 김태우 등이 36세 닭띠 가수들이다. 원조 걸그룹 SES의 요정에서 연기자로 변신한 유진, 드라마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소유진, 예능과 드라마를 오가며 활동하는 송지효, 강렬한 연기로 존재감이 확실한 김래원, 부드러운 감성을 드러내는 이상윤, 훈남 이미지의 이동욱은 36세 닭띠 연기자이고 개그맨 허경환도 1981년생 닭띠 연예인이다. 1969년 48세 중년의 나이에도 대중에게 강렬한 존재감을 발산하며 왕성하게 활동하는 닭띠 연예인도 적지 않다. 드라마와 영화에서 코믹 연기는 물론 중후한 연기까지 해내며 다양한 캐릭터 연기를 소화하고 있는 김승우, 작곡가·가수·예능 프로그램 MC로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윤종신과 주영훈,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선도하는 YG엔터테인먼트의 양현석 대표, 모델 출신 연예인 이소라, 높은 인기를 누리며 연기자로 맹활약하고 있는 하희라, 신애라, 윤유선이 48세 닭띠 연예인이다. 신세대 스타를 능가하며 전방위 활동을 펼치고 있는 1957년생 60세 닭띠 연예인도 많다. 최근에도 신곡을 발표하며 가수로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노사연과 최진희, 이용, 김수철, 팔색조 연기로 시청자와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는 송승환, 김갑수, 강석우, 김보연 등이 대표적인 60세 닭띠 연예인이다.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영화, 무대 등을 통해 대중과 만나는 1954년생 72세 닭띠 연예인은 조영남, 임현식, 선우용녀, 현철, 이상해, 박인환, 박인희, 박일남, 장용, 최주봉, 김도향, 서유석 등이고 84세라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여전히 무대에 서는 원로가수 명국환, 원로 코미디언 임희춘 등은 1933년생 닭띠 연예인이다. 2017년 정유년, 자신의 해를 맞은 닭띠 연예인들의 새해 포부는 무엇일까. “건강이 허락하는 한 무대와 방송에 계속 출연하겠다. 84세라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가수로서 열정과 노래에 대한 애정, 그리고 팬이 존재하는 한 노래를 부르겠다. 2017년에는 닭띠 해인 만큼 더 많이 활동하겠다.” 원로가수 명국환의 새해 포부다. 조연 연기자로 최고의 위치에 오르며 수많은 드라마에서 감초 연기로 빛을 발하고 있는 중견 스타 임현식은 “1969년 MBC 공채 1기로 연기활동을 시작한 이후 한 번도 연기를 하지 않은 해가 없었다. 지난 48년 동안 드라마와 영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시청자와 관객들을 만난 것처럼 올해도 드라마 등을 통해 시청자와 만나고 싶다. 특히 올해는 노년의 사랑을 멋지게 소화하는 멜로 연기에 도전하고 싶다”며 새해 바람을 피력했다. 여전히 청춘스타의 외모와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60세의 강석우는 “나이 들어가면서 더 절감하게 되는 것은 가족의 소중함이다. 연예인이라는 직업의 특성상 생활이 불규칙해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지 않다. 올해는 라디오 DJ와 드라마 활동을 하면서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도 많이 갖고 싶다. 연예인으로서뿐만 아니라 가장으로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며 소박한 소망을 밝혔다. 세 아이와 함께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48세의 신애라는 “미국 캘리포니아 히즈 유니버시티에서 밟고 있는 기독교 교육학 박사과정을 충실하게 공부하고 싶다. 아이들이 건강하고 밝게 자랄 수 있도록 보살피는 것도 소중한 일이다. 미국에서 부모를 잃는 한인 청소년들이 급증하고 있는데 한인들이 입양해서 맡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올해 더 열심히 노력해서 미국의 많은 한인들이 부모가 없는 한인 청소년들을 입양해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새해 목표 중 하나다”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왕성하게 펼쳤던 사랑 나눔을 미국에서도 여전히 실천하는 모습이었다. 지난해 2월 출산해 아이 엄마가 됐지만, 여전히 빼어난 외모를 자랑하는 36세의 전지현은 “현재 출연하고 있는 드라마 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새해 목표다”라고 말했고 여성 팬뿐만 아니라 남성 팬도 많은 조인성은 “올해는 이전과 다른 모습과 분위기를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나 작품을 선택해 시청자와 관객들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많은 중년 여성 팬들로부터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국민 남동생 박보검은 “새해에도 좋은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 국내외 팬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작품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 닭띠의 해인 2017년 정유년의 가장 큰 목표다”라며 원칙적이면서도 진정성 있는 바람을 드러냈다. 자신들의 해를 맞은 수많은 닭띠 연예인들이 2017년 정유년에 어떤 활동을 펼칠지 벌써부터 기대가 크다.
- 2016-12-23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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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보가 만난 사람] 기자 겸 사진작가 ‘조이스 리’, 용감무쌍한 길 위의 여자
- 파워 블로거이자 미국의 미술 잡지 기자인 조이스 리(Joyce Lee·70)는 우리나라에서 세 번의 개인 전시회를 가졌다. 그녀는 블로그(‘커피 좋아하세요’)를 시작하면서 사진에 입문하여 미국 곳곳의 자연을 찾아다니며 찍은 사진들과 재미있는 이야기로 블로거들에게 인기를 얻었고, 60세에 본격적인 기자로 데뷔했다. 그런데 그녀의 전직은 패션 디자이너. 대체 그녀의 인생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강한 제스처와 자그마한 몸, 진한 눈 화장, 쭈뼛쭈뼛 서 있는 머리, 영혼을 빨아들이는 목소리에서는 쉬이 범접할 수 없는 인디언 추장 같으면서 천진스런 어린왕자를 보는 듯했다. “내가 좀 말이 많아요. 내 안에 있는 것들을 쏟아내야 하는 강박관념 때문에 이렇게 돼버렸어요. 나를 이해하려 하지 마세요(웃음). 그냥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것도 있어요.” 조이스 리와의 인터뷰는 꼭 숨바꼭질 같았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여전사의 옷자락을 잡고 마냥 헤맸다고 생각했는데, 또다시 멈추고 싶은 말들이 오갔다. Art&Culture 매거진 기자로 세 번의 사진 전시회를 가진 조이스 리는 오래전 명동에서 ‘이동희 부틱’을 운영했던 디자이너였다. 나름대로 자리 잡은 전문 디자이너였던 그녀가 미국으로 떠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서른두 살에 낳은 딸이 하나 있어요. 그 아이가 중학교 1학년이었을 때 막 조기유학 붐이 불었죠. 그때 남편의 형님이 미국에서 살았고, 딸이 유학을 가고 싶다고 해서 보내기로 했어요. 아이를 먼저 보냈는데, 처음에는 나는 갈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하지만 운명이라는 것은 어떻게든 작용을 하기 마련인가보다. 딸의 친구 어머니가 딸에게 충고를 했단다. “그분이 ‘네 엄마가 오든지, 네가 들어가는 게 좋겠다’라고 말씀하시더라는 거예요. 바른말을 한 거지. 사춘기를 겪고 있는 자식 문제인데, 가게 문 닫고 달려갔어요. 저는 재단사 자격증이 있었던 덕분에 영주권을 얻는 것은 쉬웠죠. 그래서 미국에서도 패션 디자인 일을 할 수 있었어요.” 미국에서 뿌리내리기 위해 조이스 리 부부와 딸은 비장한 각오로 견디며 버텼다. 60세에 시작한 기자로서의 삶 그녀는 2008년 기자로 입사했다. 그때 나이가 미국 나이로 60세였으니 좀 놀랍다. “어느 날 남편의 신장이 멈췄어요. 신장 투석을 일주일에 세 번씩 하면서 남편은 직장을 관두게 됐죠. 그런데 미국에서는 둘이 벌어도 융자를 감당하는 게 어려웠어요. 그래서 작은 아파트로 옮겨서 살았죠. 그리고 힘든 시간으로부터 도망가지 않으려고 시작한 것이 블로그를 통한 세상과의 소통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컴퓨터를 배우고 사진을 시작했습니다. 블로그를 하기 위해서.” 그녀는 다음 블로그의 우수 블로거가 400명이었던 시절에 그 중 한 명으로 뽑힐 만큼 성공적인 블로그 운영을 했다. 하루에 2000명 정도가 다녀갈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와중에 그녀의 글을 눈여겨보던 사장이 그녀를 사진기자로 캐스팅했다. “경향신문에 연재되던 안의섭의 라는 만화가 있었어요. 그 네 컷짜리 만화가 정치, 경제, 사회를 다 다뤘잖아요? 그런 느낌으로 이 여자의 글도 실어보자는 게 잡지사 사장의 의도였다는군요. 그런데 그 의도보다 내가 좀 더 잘했다고 해요(웃음). 하긴 정말 사명감을 가지고 다녔어요. 기자생활을 위해 손톱도 안 기를 정도였거든요.” 그녀는 컴퓨터를 배우고 기자가 된 게 참 잘한 일이라고 거듭 말했다. 무엇보다 자신을 써주는 데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했다는 것이다. “제 첫 번째 라는 책이 나온 게 2012년이었어요. 어느 날 지나가던 사람이 제 책을 들고 와서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어요. ‘50이 되고 갱년기가 와서 인생이 너무 슬픈데 선생은 60부터 이걸 하셨다니 놀라워요. 제가 60이 되려면 앞으로 10년이 남았는데, 10년을 더 노력하면 무엇인들 안 되겠습니까’라고요.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희망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정신심리학 박사인 김효숙 교수는 조이스 리의 사진을 수천 장 넘게 갖고 있다고 한다. 그녀가 찍은 사진이 심리치료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기자의 시선으로 왜곡되지 않은 자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조이스 리 사진의 힘일지도 모른다. 일주일에 5일은 일하고 주말에 홀로 미국 대륙의 수천 마일을 오가며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자연인이 된다. 작은 체구이지만 그녀의 눈빛과 몸짓에서 뜨거운 용트림이 느껴진다. 그 에너지가 견딤의 실체라는 걸 알아채는 데는 얼마 안 걸린다. 20만 번의 셔터 누름, 결국 고장 난 카메라 “닷새 동안 3000마일이 넘는 먼 거리를 혼자 돌아다니다 집에 돌아와 네 시간 정도 잔 후 새벽 3시에 일어나 다시 작업을 시작해 정오까지 마치고 시장을 다녀왔어요. 남편은 그런 나를 보고 철인 3종 경기에 나가도 챔피언이 될 거라며 혀를 찼습니다.” 그녀는 다시 태어나면 꼭 누군가의 남편이 되어 아내가 마음 놓고 여가를 즐기며 쉬엄쉬엄 여행도 할 수 있도록 배려하겠다고 수없이 다짐한다. 그녀가 사진을 배운 것은 철저히 필요에 의해서였다. “기자는 본격적으로 사진을 다룰 줄 알아야 하니까요. 50대 후반의 나이에 컴퓨터를 배우는데 어찌나 어려운지. 봄여름 학기와 가을겨울 학기 중 네 명의 장학생을 선발해 포토샵을 무료로 가르친다더라고요. 그게 욕심이 나서 열심히 공부했죠. 대상포진이 두 번이나 올 정도로 무리를 했어요.” 카메라 셔터 수명은 대략 15만 번 누르면 고장이 난다고 한다. 그러나 조이스 리의 카메라는 5년 정도 사용하면서 20만 번을 찍었고 결국 셔터는 고장이 나고 말았다. 셔터의 감각을 익히고자 했던 그녀의 집중력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제가 싫어하는 게 왜곡이에요. 그래서 어안렌즈는 아예 구매를 안 했어요. 줌도 잘 안 써요. 그런데 작가라는 이름을 안 쓰는 이유는 아직 카메라를 못 다루기 때문이에요. 저는 그냥 지나가다가 좋으면 찍거든요. 그러니 작가라고 말하지 못하죠.” 그녀는 글쓰기에도 욕심을 부린다. “현재 집필중인데, 2년 후에 소설을 발표할 거예요. 제가 미국 서부의 내셔널 공원을 다 가봤는데 가장 아름다운 곳이 그랜드 티톤이었어요. 그곳에 가면 엘크 떼 수백 마리를 아침에 만날 수 있어요. 저는 엘크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남성성을 좋아해요. 그리고 버펄로, 울창한 숲, 거대한 연못과 그리즐리, 스네이크 리버도 있죠. 그곳에 가면 대자연을 만날 수 있어요. 소설은 그곳에서 일어나는 서정적인 이야기들이에요. 세계에서 최초로 한국어와 영어로 쓰인 인터넷 소설이 될 거예요.” 나의 전생은 ‘인디언’ 역마살을 타고난 여자, 조이스 리는 어느덧 9년차 기자가 됐다. 인터뷰 후 얼마 있다가 잡지가 나오는데 이번에 그녀가 심혈을 기울인 것은 인디언 문화다. “요즘 미국 사람들이 자기들 역사는 아니지만 본래 그 땅의 주인공들인 인디언들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어요. 저는 이전부터 인디언에 대해 관심이 굉장히 많았는데, 3~4년 후에는 기자의 눈으로 만난 인디언들 얘기를 책으로 쓸 거예요.” 원래 미국의 인디언들은 거의 서부에 있었다고 한다. 동부에는 체로키족이 있었는데 이들이 유럽인을 가장 먼저 만나 백인 중심 인텔리 사회로 편입할 수 있었다. 그에 반해 서부에는 아직 야생의 문화가 남아 있다고 한다. 그녀의 인디언에 대한 관심과 집착은 남다르다. 심지어 과거에 열렸던 조이스 리의 사진전 이름도 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전생에 인디언이었다고 주장한다. “난 믿어 의심치 않아요. 그들에 대한 알 수 없는 연민이 있거든요. 그리고 언덕에서 붉은 계곡을 내려다볼 때 느끼는 감동 같은, 마음으로 통하는 데자뷔를 느껴요. 그것은 굉장한 희열이에요.” 지금 당장은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일이 결국에는 인생을 아름답게 채색해준다면 누구라도 그 험한 세상을 향해 달려갈 것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손주 시후의 일기를 쓰는 여전사 할머니 영어와 한국어에 능통한 조이스 리의 딸은 지니프러덕션 L.A. 전산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손주는 이제 막 학교에 들어갔는데 공부를 진짜 못해요. ‘0점’만 받아와요. 그래도 자연에 대한 감수성은 굉장히 좋아요. 이 아이에 대한 이야기, 를 요즘 페이스북에 올리고 있어요.” 는 할머니의 시선으로 손주의 마음을 그려내는 글이다. 독특한 관점이다. “네가 이렇게 자랐다, 할머니는 네가 이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여겼지만 정말 이렇게 생각할 줄은 몰랐다…. 현실을 바라보는 하나의 상상인 거죠. 제 딸이 사춘기에 방황을 했어요. 저는 딸이 형제가 없어서 그렇게 방황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손주만큼은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요. 손주가 엄마랑 비밀이 있겠지만 저랑도 비밀이 있으면 좋겠어요. 자기편이 있다고 생각하면 힘들지 않잖아요.” 손주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각은 항상 밝다. ‘빵점 맞으면 어때. 그리고 설마 영어를 못하겠어? 긍정적 시각으로 미래를 보라 이거야.’ 손주 시후에게 항상 희망을 심어주는 그녀만의 특별 도구다. “손주의 자랑이라면 유머가 풍부한 편이에요. 지금 시대는 먹고사는 걱정이 크지 않기 때문에 즐겁게 사는 게 중요해졌잖아요. 이 아이는 그렇게 살 수 있을 거예요. 그래서 저는 손자의 개구쟁이 짓을 절대로 야단 안 쳐요. 어른을 놀려먹으려고 하는 게 아닌 이상은.” 손주가 어렸을 때 밥을 먹다가 먹던 것들을 컵에다 붓고 손가락으로 주무르는 행위를 자주 했다고 한다. 다른 식구들은 “저걸 왜 내버려둬” 하면서 경악했지만 그녀는 “지금 재미있는 놀이를 하는 거다, 2년만 지나면 안 한다”라고 말했단다. 그녀는 손주가 촉감을 익히는 중이니 내버려두는 게 맞다고 생각한 것이다. 손주 시후에게는 언제라도 미소를 지어주는 할머니다. 틀에 갇히지만 않는다면 시니어와 젊은이의 삶은 다르지 않다 이미 제2의 인생을 성공적으로 펼쳐나가고 있는 조이스 리는 멋진 인생을 살고자 하는 시니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야 이놈아 네 나이가 몇이냐?’ 하는 말이에요. 그 말을 해서 얻는 건 경멸밖에 없어요. 안 그래도 요즘 젊은이들은 노인네를 인류의 한 부족으로 생각하잖아요. 그러지 말고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어렵지만 앞으로 함께 나아가면 좋겠어요. 대화를 통해 지혜를 나눠주되 절대 잘난 척하지 말아야 하고, 나이 같은 건 의식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본능처럼 여겨온 삶의 철학, 느낌과 경험을 축적해 체득한 깊은 진심이 묻어났다. 조이스 리는 틀에 갇히는 것을 거부한다. 간절함을 미끼로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이다. 한숨 쉬어갈 수 있는 삶의 여유를 찾았으면 하는 프레임, 그리고 그 안에는 세상 그 무엇보다 다정하고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다. 그녀의 사진처럼 말이다. 그녀가 세상 사람들에게 간절히 전하고 싶은 메시지다. ◇ by 조이스 리 몬순기에 장대 같은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하면 대지가 거의 바위로 이어져 있는 계곡 때문에 물이 그대로 강물이 되어 내달린다. 이 물의 힘이 수수만년 이어지면서 협곡이 생기고 겹겹의 층 사이를 깎아내어 아름다운 속살을 드러낸 골짜기가 형성되었다. 산타페의 대표적인 건물은 어도비(Adobe)식 흙집으로, 해발 2200미터가 넘는 고지대인 이 지역의 혹독한 겨울과 뜨거운 여름을 잘 견뎌내도록 지어졌다. 두께가 50센티미터가 넘는 두꺼운 벽이 외부의 온도를 차단해주기 때문이다. 모래언덕 데스밸리. 여름 5월부터 9월까지는 날씨가 섭씨 50-60도를 웃돌므로 피하고 가을 한철 또는 이른 봄에 방문하는 것이 좋다. 이와 같은 척박한 사막의 땅에도 봄이면 야생화가 만발하고 동물들이 삶을 이어가고 있어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 2016-12-05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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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댓연금] 50대의 연금술
- 글 손성동 연금과 은퇴포럼 대표 ssdks@naver.com 어느 택시기사에게서 엿본 50대의 자화상 온 나라가 최순실 게이트로 들끓던 어느 날 택시를 탔다. 갑자기 불편해진 다리와 피곤한 몸에 잠깐이나마 휴식을 주기 위해서였다. 푹신한 의자에 등과 목을 기대고 편히 쉬고 있는데 기사분이 말을 걸어왔다. 눈을 감고 건성으로 대답해도 눈치 채지 못하고 계속 말을 걸어왔다. 피곤한데다 슬슬 짜증지수가 올라왔지만 어느 순간 호기심이 발동했다. 사연은 이렇다. “제가 퇴직을 하고 마땅히 할 일이 없어 택시를 몰고 있는데, 하루 12시간 일해도 한 달에 100만원 벌기가 어려워요.” “그래요?” “3년 무사고면 개인택시를 신청할 수 있는데, 그걸 기다리며 참고 있습니다. 근데 그게 만만찮아요.” 동병상련인가. 기사에게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무리 초보 택시기사라 해도 하루 12시간 일하고 한 달에 100만원 벌기가 힘들다니…. 일주일에 12시간 강의하고 한 달에 200만원 정도 버는 나는 그에 비하면 호사스런 퇴직자가 아닌가! 이번에는 내가 먼저 질문을 던졌다. “하루에 몇 킬로미터 운전하세요?” “대략 230킬로미터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교통지옥 같은 서울 시내에서 하루 230킬로미터씩 운전하는 것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정말 힘든 노동이다. 3년 무사고가 만만찮다는 것을 처음엔 수긍하지 못했지만 고개가 끄덕여졌다. “한 달에 100만원 벌기도 힘든데 누구는 한 방에 10억, 20억, 100억을 해먹었다니 박탈감이 너무 커요.” 최순실 일당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마음의 상처가 큰 것 같았다. 3년 뒤 개인택시 신청할 날을 기다리며 힘든 나날을 참고 견뎌나가는 초보 택시기사에게 최순실 일당은 정말 못할 짓을 했구나. 저 마음의 상처는 누가 보듬어줘야 하나. 택시에서 내려 걷는 동안에도 초보 택시기사가 한 말이 내내 귓가를 맴돌았다. 무거운 발걸음 위로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고군분투하는 50대들의 자화상이 슬그머니 내려앉았다. 지금 50대는 지독한 몸살을 앓고 있다. 한창 공부할 자녀도 있는데, 구조조정의 칼바람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자신들의 노후 준비도 불확실하고, 고령의 부모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급한 마음에 자영업에 뛰어들어보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은 경우가 허다하다. 100세 시대에 50대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연령대다. 50대 10년을 잘 견뎌내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노후는 크게 달라진다. 50대 10년을 잘 견뎌낸 사람은 국민연금을 기본으로 하고 부족분을 사적연금이나 다른 자산으로 보완하면서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는 반면에,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그동안 쌓아온 노후 자산에 손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진퇴양난의 길에 내몰린 50대! 연금해지의 경제학 요즘 연금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최순실 일당에겐 연금이라는 말 자체가 낯설겠지만, 일반 서민들에게 연금은 금과옥조 그 자체다. 기나긴 노후를 안정적으로 보내느냐, 불안에 떨며 보내느냐는 연금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금과옥조 같은 연금을 깨트려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린 50대들이 많다. 필자의 이야기부터 해본다. 어느덧 1년 전의 이야기다. 갑작스레 닥친 퇴직은 나름 평온했던 필자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버렸다. 엄청난 대지진이었다. 이로 인해 지상의 평화로운 날들은 순식간에 극도의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고 필자의 일상도 완전히 망가져버리고 말았다. 정신은 혼미해졌고, 가슴은 불구덩이로 활활 타올랐고, 두 발은 갈 길을 잃고 방황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한줄기 빛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연금이었다. 연금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계속 유지해야 하나, 해지해야 하나. 한 달 보름 정도의 고민 끝에 아내를 대동하고 해지의 길에 올랐다. 해지의 길에서 자괴감이 몰려왔다. “당신은 연금 전문가라면서 이렇게 해지를 해도 돼요?” 아내의 말에 뜨끔했다. “나만 믿어.” 그 당시 뭘 믿고 아내에게 그렇게 큰소리를 쳤을까? 당시 내게 남은 유일한 길은 ‘배수의 진’이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었으므로, 살기 위해서는 무조건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우선 몸을 가볍게 만드는 게 중요했다. ‘배수의 진’을 친 장수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거운 갑옷으로 몸을 감싼다면 행동이 굼떠 적의 포로가 되거나 몇 발짝 나가지 못하고 지쳐 쓰러지고 말 것이다. 몸을 보호하기 위해 입은 갑옷 때문에 오히려 위험에 빠지는 역설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당시 내 형편은 엄청난 무게의 갑옷을 입은 것처럼 무거웠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안게 된 수억의 빚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빚을 안고서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내 몸을 꽉 쪼이며 발걸음을 무겁게 만드는 이 족쇄를 떼어내지 못하면 사즉생(死則生)의 ‘배수의 진’도 별무소용일 터! 그래서 선택한 길이 ‘연금을 죽임으로써 연금을 얻는 방법’이었다. 연금을 해지해 우선 몸을 가볍게 만든 후 난관을 돌파하고, 그 과정에서 획득한 수확물로 즉시연금을 구입한 셈이다. 나는 해지가 불가능한 국민연금을 제외한 모든 연금을 해지해버렸다. 그런데 필자와 같은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 문제다. 올 상반기에만 보험 해약 환급금이 사상 최대인 14.7조원을 넘어섰고, 작년 한 해의 연금저축 해지 금액은 2.5조원에 달한다. 대부분 손해를 감수하며 해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해지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필자처럼 어쩔 수 없이 모든 사적연금을 해지해야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일부만 해지하면 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흔히 개인연금과 퇴직연금을 합쳐 사적연금이라고 부른다. 개인연금에는 연말정산 때 세액공제 혜택을 받는 연금저축이 있고, 이런 혜택은 없지만 10년 이상 유지할 경우 발생한 이자소득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연금보험이 있다. 연금저축의 경우 5년 이상 유지하고 만 55세 이후에 연금으로 수령하면 3.3~5.5%의 연금소득세만 부담하면 되지만, 중도에 해지하면 16.5%의 기타소득세를 납부해야 한다. 따라서 연금저축을 중도에 해지하면 납입 원금도 건지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연금보험은 다소 복잡하다. 연금보험을 중도에 해지하면 세제상 불이익을 보는 일은 거의 없지만 해지 환급금이 납입 원금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납입 원금 대비 해지 환급금의 비율을 의미하는 해지 환급률은 어느 보험사 상품이냐, 적용 이율이 무엇이냐에 따라 다르다. 공시이율형 연금보험의 해지 환급률이 납입 원금의 100%가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공시이율형 연금보험이 대략 7년, 최저이율보증형 연금보험이 10년 정도다. 퇴직연금은 근무기간과 최종 3개월간의 평균 임금에 의해 급여가 결정되는 확정급여형, 적립금의 운용 수익률에 따라 급여가 결정되는 확정기여형, 이직할 때 적립금을 계속 쌓아가는 계정인 개인형 퇴직연금(IRP)으로 나뉜다. 퇴직연금 적립금을 연금으로 인출할 경우에는 나이에 따라 3~5%의 연금소득세를 적용받지만, 일시금으로 인출할 경우에는 퇴직금에 해당하는 금액은 퇴직소득세를, 근로자 자신의 불입금이나 운용 수익에 해당하는 금액은 기타소득세(16.5%)를 적용받는다. 연분연승법이 적용되는 퇴직소득세는 계산이 복잡하지만 가입해 있는 퇴직연금사업자에게 문의하면 알 수 있다. 이처럼 각각의 연금은 세제가 다르고 세부 내용으로 들어가면 더욱 다르다. 따라서 개인 사정으로 연금 해지를 고려할 때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감안할 필요가 있다. 첫째, 충분한 시간을 두고 고민하자. 일분일초가 급한 경우가 아니라면 굳이 해지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 연금은 한 번 해지하면 해지 이전의 상태로 회복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둘째, 해지가 아닌 다른 방법은 없는지 살펴보자. 납입액이 부담스러워 해지를 결심한 경우라면 해지보다는 납입 중단을, 자금이 필요해 해지를 결심한 경우라면 중도인출 후 추가납입이나 담보대출 등의 방법을 먼저 생각해보자. 중도인출 후 추가납입은 연금보험 가입자가 자금 필요시 해약 환급금 범위 내에서 중도인출하고 나중에 추가납입으로 인출액을 보충할 수 있는 제도를, 담보대출은 퇴직연금 적립금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제도를 말한다. 셋째, 해지를 해야 할 경우에는 손해율을 따져보고 손해율이 적은 것부터 해지하자. 개인이 손해율을 계산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각자 가입해 있는 금융회사에 문의하면 된다. 가교연금 만들기 지금까지 빚 때문에 고민이 많은 50대의 연금술에 대해 살펴봤다. 이른바 연금해지의 경제학이다. 인생 100세 시대의 50대는 매우 중요한 시기다. ‘50대 10년의 강’을 무사히 잘 건너는 사람은 안정적인 노후를 보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50대에 연금을 무턱대고 해지해버리면 노후에 가택연금당하기 십상이다. 50대 연금술의 핵심은 죽을 때까지 연금에서 소득이 창출되도록 만드는 일이다. 어떻게 하면 될까? 빚 규모가 미미하거나 없는 50대 중에 퇴직으로 인해 생활비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 그동안 적지 않은 돈을 벌었지만 자녀교육과 내 집 마련, 부모님 봉양 등으로 수중에 남은 돈이 별로 없는 50대들이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이 나올 때까지 생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일이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소득이 적더라도 제2의 일자리를 찾고 가교연금을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는 가교연금에 대해서만 살펴보겠다. 먼저 국민연금을 수령할 수 있는 나이를 확인하고, 지금부터 그 나이까지 안정적인 소득 흐름을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가입해 있는 개인연금이 있다면 수령 방법으로 수급기간이 정해져 있는 확정연금형을 선택하면 된다. 이 방법으로도 생활비를 마련하기 힘들다면 퇴직할 때 받은 퇴직 급여를 활용해 부족한 생활비를 보충할 수 있도록 확정연금형 즉시연금이나 인출형 예금상품, 월지급식 펀드 등에 가입한다. 고정적인 수입을 보장하는 즉시연금과 인출형 예금상품과 달리 월지급식 펀드는 수입이 일정하지 못하거나 예상보다 일찍 수입이 중단되는 일이 생길수도 있지만 적극적인 운용을 통해 높은 수익을 추구할 수 있으므로 각자의 위험 성향이나 처한 상황에 따라 적합한 상품을 선택하면 된다. 가교연금을 구축하고도 남은 퇴직 급여가 있다면 국민연금 수급 연령에 도달했을 때 종신지급형 즉시연금에 가입해 부족한 국민연금 급여 수준을 보완하도록 해야 한다. 그동안에는 개인형 퇴직연금에 넣어두고 계속 운용할 필요가 있다. 이때는 안정적이라는 이유로 낮은 수준의 이율에 만족하지 말고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적극적인 운용을 통해 수익률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퇴직 급여를 가교연금 만들기에 다 써버린 50대라고 불안에 떨 필요는 없다. 집이 있다면 60세 이후에 주택연금을 신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신연금 만들기 50대 중에는 생활비가 전혀 문제가 안 되는 사람들도 있다. 50대 후반의 A씨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임원까지 지내다 지금은 가교직업(bridge job) 형태로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A씨의 고민은 자녀의 결혼이다. 최근 직장에 다니는 아들이 A씨의 재산 상태에 관심을 가지며 눈치를 살피기에, 결국 A씨는 두 자녀에게 결혼자금으로 거액을 떼어주기로 결심했다. 그러고 나니 A씨 부부의 노후생활 자금이 빠듯해질 것 같더란다. 더 이상의 재산을 자식에게 빼앗길 수는 없다고 결심한 A씨는 비상자금을 제외한 금융자산은 모두 즉시연금으로, 집은 주택연금으로 활용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 손성동(孫盛東) 연금과 은퇴포럼 대표 삼성금융연구소 수석연구원,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 연구실장,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연금연구실장 역임. 현재는 ‘연금과 은퇴포럼 대표’로 있으면서 1인기업가를 꿈꾸고 있다. 공식블로그 ‘꿈꾸는 은퇴와 연금’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부산 동아대와 동서대에 출강하고 있다.
- 2016-12-02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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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회가 만난 CEO 스토리] 은퇴교육 열정 전도사 윤만호 EY한영 회계법인 부회장
- 글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 소장 ‘브라보’는 ‘잘한다’, ‘좋다’, ‘신난다’ 등의 갈채를 의미하는 이탈리아어다. ‘성공적으로 2막을 살고 있는’ 우리 사회 시니어들로부터 ‘인생 2막 설계의 지혜와 조언’을 들어보고자 한다. 리타이어(retire)는 타이어를 빼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타이어를 새로 바꿔 끼운다는 의미다. 단지 1막의 재현에 불과한 리플레이(replay)도 아니고, 1막을 완전히 지워버린 채 맨땅에서 헤딩하는 리셋(reset)도 아닌, 새로운 재생의 르네상스(renaissance)를 설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은퇴라는 용어를 은퇴시키고’ 멋진 2막의 르네상스를 설계하기 위해 ‘이어야 할 것과 끊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본지를 통해 살아온 길의 여정에 담긴 ‘온기’뿐 아니라 살아갈 길의 이정표를 세우는 데 필요한 ‘용기’를 얻길 기대한다. 윤만호 언스트앤영 어드바이저리 부회장(62)은 한국산업은행 부행장, 산은금융지주 사장 등을 역임하며 평생 ‘경제·금융 전문가’로 살아왔다. 이런 전문가로서의 이력을 넘어 주목되는 점은 열성적 은퇴교육 전도사라는 점. 그는 2011년 금융권 퇴직자들을 재교육, 창업자들에게 금융·입지권 조사 등 컨설팅을 해주는 사회공헌자 프로그램인 ‘시니어 브리지 센터’를 만드는 등 일찍이 퇴직자 재교육에 앞장서왔다. 최근까지도 서울시 50+재단 이사장으로 재임하면서 은퇴자들을 위한 제도적 교육과 일자리를 지원해왔다. 그가 설파하는 신(新)퇴직 또는 은퇴혁명 패러다임의 핵심은 ‘당하는 퇴직을 준비하는 퇴직으로 바꾸라’이다. 과거와 오늘날의 은퇴 의미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인간의 평균수명이 짧았던 과거에는 50이 넘도록 사회생활을 하면 웬만큼 살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요즘은, 생애주기가 바뀌면서 앞으로는 살아온 만큼 더 살아야 할 시간이 남아 있지 않습니까? 고령화 사회에서의 퇴직은 마지막 골라인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지요. 이제 일은 평생 하는 것입니다. 은퇴란 말을 은퇴시켜야 합니다. 평생 현역이 될 각오를 다져야지요.” 평생 현역은 오늘날 은퇴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된 것 같습니다. 말 그대로 인생의 반환점으로 보람찬 2막을 만들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미 고령화가 진행된 우리 사회에서는 80세부터를 본격적 노후 시작으로 볼 수 있습니다. 50~60대에 은퇴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적어도 80세까지 평생 현역으로 일하기 위한 키워드는 3가지입니다. 일, 배움, 나눔이지요. 책을 통해 더 많이 배우고, 사람도 더 만나고, 일을 통해 경험과 경륜을 더 나누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이 급변할수록 ‘과거의 경험, 인연, 경력’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일하면서 배우고 나누는 삶이 인생 2막의 패러다임입니다.” 영화 을 보면 대기업 부사장이 벤처기업의 인턴이 되어 젊은 여사장의 시중을 드는 내용이 나옵니다. 영화와 달리 현실에서는 ‘갑에서 을로의 갑작스런 전락’이 2막 부적응의 이유가 될 것 같은데요. “대부분의 시니어들이 퇴직 후 피부로 느끼는 것이 갑(甲)에서 을(乙)로의 입장 변화이지요. 이 변화를 약자라는 소극적 의미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도와준다, 기여한다는 적극적 의미로 재해석하는 시각 전환이 필요합니다. 예컨대 퇴직 후 자신을 대하는 세태 변화에 위축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잘나갈 때는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고 일정이 빡빡했는데, 퇴직하거나 작은 데로 옮기니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일정도 텅텅 빈다면서 우울해합니다. 이럴 때는 인심을 탓하기보다 ‘그동안은’ 만나야 할 사람만 만나느라 선택당했는데 이제는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을 선택해 만날 수 있으니 좋다’라고 시각 전환을 해야 합니다. 을(乙)적 사고야말로 창의적이고 도전적이고 적극적인 것이라고 전향적으로 해석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인생 2막은 성공 마인드보다는 성숙-섬김마인드로 임해야 합니다.” 윤 부회장의 말을 들으니 시니어가 멀리 해야 할 한자로 단단할 ‘고(固)’ 자가 떠올랐다. 고(古)의 울타리[口]에 갇혀 고착돼 있으면 고루해진다는 의미가 떠올라서다. 인생 2막이 힘든 것은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라 성장이 멈추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꼰대적 사고를 그쳐야 퇴직을 종착역이 아닌 간이역으로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보통 사람들이 퇴직 때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재정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먼저 현역에서의 퇴직 준비부터 말씀해주시겠습니까? “현역, 퇴직 통틀어 지켜야 할 것은 ‘버는 범위 내에서 써야 한다’는 재정 원칙입니다. 현역 활동 때 현재의 수입을 모두 가처분소득이라고 생각하면 큰 착각입니다. 평생 내가 쓸 돈이 얼마나 되는지, 60세 이후 100세까지는 무슨 돈으로 살 것인지 꼼꼼히 계산해보십시오. 버는 것의 30%는 무조건 개인연금을 부어야 합니다. 국민연금, 퇴직연금 외에 개인연금을 들어 노후에 ‘3층 연금’의 단단한 방어벽을 준비해놔야 합니다. 특히 요즘은 저금리시대 아닙니까. 10억원을 버는 것도 힘들지만, 이것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매달 100만원씩 나오게 하는 현금흐름을 만들어놓는 것입니다. 자녀 교육비도 과잉투자해선 곤란합니다. 노후를 잘 대비해놔야 자식 앞에 부모가 바로 서고 자식도 바로 세울 수 있습니다.” 이미 퇴직한 분들은 지금이라도 대비해야 할 것들이 있는지요? “있는 범위 내에서 써야 한다는 원칙은 퇴직자도 같습니다. 막연히 불안해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나의 어셋’은 어떻게 되는지 점검하고 이에 따라 할 일을 리디자인하는 게 필요합니다. 퇴직 후 가능한 일자리 형태는 사회공헌형, 봉사형, 생계형, 전문가형 등이 있습니다. 어느 형태가 되든 평생 일을 찾아서 해야 합니다. 이때 연금을 들어놨으면 선택의 폭이 넓어집니다. 퇴직 후부터는 버는 것보다 나눔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해요. 저는 flowing-흘려보내기란 말을 좋아합니다. 퇴직 후에는 아등바등 살기보다는 ‘지금까지 나에게 위탁된 것을 잘 이용하고 남에게도 흘려보낸다’는 나눔의 사고가 필요합니다.” 인생 1막과 2막, 그 분수령을 전후해 삶의 정비사항, 중점사항도 달라져야 할 것 같은데요? “삶이 변하면 사람도 바뀌어야지요. 1막에선 급한 것에 휘둘려 살았다면 2막에선 정말 중요한 것에 따라 여러 가지를 성찰하고 재조정해야 합니다. 그간 바쁘다는 핑계로 ‘사는 대로 생각’했다면 2막부터는 ‘생각하는 대로 살고 있는지’ 성찰해보고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인지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에 따라 증진시킬 것은 증진시키고, 회복시킬 것은 회복시키는 등 삶의 우선순위를 재편, 재조정해야지요. 다시 말해 돈, 시간, 몸을 우선순위에 따라 써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윤 부회장은 구체적 성찰 및 재정비의 대상을 관계, 시간, 재무, 건강(정신-육체), 웰다잉의 순서로 꼽았다. 그리고 이 5가지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관계의 리디자인’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하버드대의 조지 베일런트 교수는 하버드대학 학생 268명의 인생을 72년간 종단연구하면서 인생을 행복하게 하는 가장 큰 조건이 무엇인지를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지성이나 계급이 아니라 사회적 적성, 즉 인간관계였으며, 65세에 잘살고 있는 사람의 93%는 형제·자매와 원만하게 지낸 사람들이었다. 많은 가장들이 ‘처자식 먹여살리느라’ 바쁘게 일하다 보니 가정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막상 퇴직하고 나자 ‘찬밥 신세’라며 서러움을 호소하기도 하는데요. 윤 부회장께선 가족관계 경영을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저도 월화수목금금 일해야 하는 산업화 시대에 공직자로 살았으니 집사람,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갖진 못했습니다. 야근은 물론이고 주말에도 나가서 일해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지요. 하지만 ‘온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을 일주일에 한 번은 꼭 갖고 대화를 나누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습니다. 명절 때면 온 가족이 모여 ‘가위바위보게임’을 하는 등 소소한 재미 디자인을 했지요. 매년 가족사진도 찍습니다. 아이들이 자라고 가족들이 늘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큰 즐거움입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가슴에 따뜻한 가족 램프를 걸어두며 사는 것, 그것 이상 삶의 성공, 행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의 선친은 고(故) 윤재건 전 제주체신청장이다. 윤 부회장은 “우편제도가 열악했던 시절, 지방이든 해외든 출장을 가면 ‘부인에 대한 사랑, 자녀에 대한 자상한 관심’을 담은 엽서부터 보내는 아버지를 보며 알게 모르게 가족사랑은 ‘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표현해야 함을 배운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일, 재물도 그렇지만 가족관계 역시 ‘공짜로 얻어지는 것은 없다’며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8월 부친상을 당하셨는데요. “(눈시울이 붉어지며) 아버님은 건강하게 사시다가 간암 선고를 받은 지 일주일 만에 돌아가셨답니다. 소천 전 일주일간 오 남매를 불러 각각 독대 면담을 하며 당부의 말씀을 일일이 남기셨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다 지키고 계획한 대로 산 삶이었다는 점에서 웰리빙, 웰다잉의 표본이셨다고나 할까요. 선친께서는 늘 ‘요행을 기대하지 마라, 노력으로 거둔 보람만이 참된 것이다. 대가를 바라지 말고 끝없이 사랑을 주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하셨는데 제 삶의 피가 되고 살이 된 말씀이랍니다.” 선친이 그에게 남겨준 가보 제1호는 17세 때부터 61세 노년기까지 44년간 고이 모아온 우표책 한 질이다. 체신부(지금의 정보통신부)에서 한길을 걸어온 소신과 자부심의 표상을 아들에게 담아 물려준 것이다. 그 역시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 우표 수집을 이어가고 있다. 윤 부회장은 지난 1997년 부친의 고희 때 만든 가족 문집 를 가져와 필자에게 보여주었다. 문집에는 부부-부모자녀-손주 간 사랑이 듬뿍 담긴 편지글, 사진 등 3대 가족의 역사가 오롯이 담겨 있었다. 그는 자신이 팔순이 될 때 이 같은 가족 문집이 더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환하게 웃었다. 인터뷰를 진행한 회의실 8층 창문 밖으로 내려다보이는 여의도공원의 늦가을 경치가 아름다웠다. 같은 낙엽이지만 ‘추풍낙엽’의 조락의 의미로도, ‘만산홍엽’의 서정적 의미로도 묘사된다. 이는 퇴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당신은 지금 미래의 계획 아래 ‘추일서정’의 퇴직을 준비하는가, 계획 없는 미래에 손 놓고 ‘추풍낙엽’의 조락을 당하고 있는가. >>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 소장 연세대학교 졸업. 경영학 박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겸임교수. 리더십 스토리텔러. 세계일보에서 CEO 인터뷰 전문기자로 활약했다. 세계경영연구원(IGM)과 삼성경제연구소 등에서 강의했다. 저서로는 등이 있다.
- 2016-11-30 09: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