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의 결혼식을 앞두고 박명수(59·여)씨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양가 하객을 50명씩만 초대하기로 했는데, 남편과 딸의 손님, 친척들을 꼽다 보니 자신이 부를 수 있는 친구는 10명도 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겨우 친구 몇 명을 추려 결혼식을 마쳤지만, 그 후가 더 골치 아팠다. 왜 자신은 부르지 않았냐며 섭섭해 하는 친구들을 달래기 바빴고, 기껏
어느 늦은 가을날에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일기예보를 들으니 오늘 비가 그치지는 않는단다. 아침에 학교 갈 때는 맑음이었는데 비가 그칠 줄 모르고 오니 우산을 안 가지고 간 아이들이 걱정이 되었다. 여름이면 마음을 놓을 수가 있으나 이런 비는 아직 일본 날씨에 적응도 못한 아이들이 감기라도 걸릴까 마음이 쓰여 우산 두 개를 챙겨서 학교에 갔다. 전교생이 학
결혼식 문화도 많이 바뀌었다. 젊은이들은 그들의 기호에 따라 주례가 없는, 나름대로 멋진 예식을 연출한다. 주례를 대신하여 신랑, 신부 아버지의 축사가 들어간다. 남편은 필자에게 원고를 부탁해 와, 그저 형식이 아닌 부모의 마음을 그대로 써 내려가보았다.
“안녕하세요?
우선 귀한 시간을 내시어 저의 자식들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참석해주신
휴일 나들이 나선 고속도로에서 시원하게 달리며 “와 오늘 차가 잘 빠지는데?” 했는데 얼마 못 가 꽉 막혀서 거북이걸음을 하게 되었을 때 입찬소리했다며 핀잔을 받게 된다. 또 어떤 일에 대해서 의견을 말했는데 잘 안 풀리면 입바른 소리를 해서 안 되었다고 원망도 듣는 일이 생긴다. 어느 젊은 엄마가 시어머니와 담소 중에 우리 아기는 다른 아이들보다 덜 아프
외국 관광객들이 한국에 왔을 때 질색하는 것이 있다. 길을 가다가 어깨를 밀치고는 그냥 가버리는 사람들이다.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복잡한 전철에서 내려 출구로 가려면 타려는 사람은 물론 같이 내린 사람 중에도 앞질러 가려고 어깨를 부딪치고는 그냥 간다. 전혀 미안하다는 기색도 없다. 피해를 당하는 사람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
아버지가 큰형 집에서 분가하기 전인 1956년 봄빛이 찬란한 4월 말에 필자는 태어났다. 찻길도, 전기도 없는 북한강 변 오지 강 마을이였다. 넉넉하지 않은 강촌의 아이는 끼니를 걱정할 정도의 궁핍과 결핍을 껴안고 살아야만 했다.
예닐곱 먹었을 때부터는 부모님이 논밭에 일 나가면 동생들 등에 업고 소 풀 뜯겨 먹이려 풀밭을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드디어
지금까지 여름에는 아들·딸 가족과 함께 가족여행을 갔었다. 하지만 쌍둥이 손주가 초등학생이 된 올해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각자의 업무일정과 아이들의 방학을 다 맞출 수 없어, 여러 날 다녔던 장거리 여행은 꿈도 꾸기 어렵게 되었다.
방학 동안 여행커녕 오히려 손주들을 보살펴야 하는 지경이 되었다. “3가족 9식구가 함께 여행하는 것은 일정을 맞추기 매우
현대인에게 무인도 표류는 동화나 소설 속에서나 상상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서양처럼 대양을 무대로 활동 할 일도 없거니와 바쁜 일상이 무인도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누구나 무인도라는 상상 속의 세계를 꿈꿔 본다. 사람들이 아무도 없는 곳에 나 혼자 만 있다. 당장 생존이 급선무이니 뭐부터 해야 할까, 우선 확보해야할 것들은 무엇이 있
할아버지께서 생전에 선암이란 이름은 마을 앞까지 배가 들어와서 배를 묶는 바위가 있어서 그렇게 불리었다고 내가 어릴 때 말씀해 주신 기억이 난다. 아마도 오래전에 심한 지각 변동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바다에서 먼 이곳까지 배가 들어올 수 없기 때문이다. 월출산을 바라보면서 우리 선조께서 4월의 따스한 기온이 내리쬐는 이곳 선영에 자리하고 계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