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와 나 - PART4]DO 대화법 VS Do Not 대화법

기사입력 2015-06-02 08:31 기사수정 2015-06-02 08:31

손주 생일에 며느리 선물도 챙겨요

누구나 자녀에서 부모로, 다시 조부모가 되어 가는 과정을 밟는다. 삶의 종반부에서 맞닥뜨리는 조부모 단계는 인생의 핵심이자 하이라이트다. 실제 60대 부부와 아들 내외가 손녀 ‘애지’를 중심으로 즐거운 이야기, 우울한 대화를 나누는 소소한 일상을 그려봤다.

손녀 애지의 여덟살 생일 아침 아들 내외 집에 갔다.

손녀 선물 사기가 어찌나 힘들던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애지를 위해 책가방 란도셀을 62만원 주고 샀다.

제 에미가 잘 기른 덕에 초등학교 1학년치고는 영어 실력은 좀 된다며 은근히 딸 자랑을 한다. 며늘아이의 맘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나는 자식자랑 한 번 못하고 일만 했는데. 국제시장 덕수마냥. 허허허.

제 자식 이쁘다면 싫어할 부모가 어디 있으랴만 손주는 참말로 이쁘다.

“할아버지, 할머니 보고 싶었어요.”

“해피버스데이 투 유…나도 애지 사랑한데이.”

내 얼굴을 손녀가 만지고 부비고 뽀뽀를 하니 세상이 다 아름다워지는 순간이다.

“애지 키가 또 컸네. 할머니 키보다 더 크겠네. 에미 네가 참 수고한다.”

아내는 며느리를 먼저 칭찬한다.

“네 동생 보고 싶지 않니?” 하며 둘째 낳을 생각 않는 아들만 서운한 듯 바라본다.

“다 큰 자식 뭐라 한다고 듣기는 하겠어요?”

아내가 며늘아이 안 들리게 한마디 한다.

“제놈두 아마 세월이 가면 늠름한 자식놈 앞세워 목욕도 가고 산에도 가고 운동도 하며 아들놈과 호연지기를 맘껏 펼쳐보고 싶을 텐데.”

아들놈은 아들을 낳으라는 압력을 못 알아들은 척 인상을 찌푸린다.

손녀가 태어나고 자라는 동안 내 아이들을 키울 때 나는 어땠는지 생각하게 된다. 유감스럽게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솔직히 아내 혼자 아이들을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일만 하고 아이들과 대화로 해결한다고 하면서도 많은 것을 내 고집대로 결정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손자녀가 태어나 걷고 젖니가 빠지고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된 걸 보면서 내 아이들에게 잘 해주지 못했다는 죄의식이 되살아나 꿈틀거린다.

아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똑같은 사건을 아이들이 나와 전혀 다르게 기억하는 것이 놀라웠고, 내가 전혀 모르는 이야기나 나의 이면을 알게 된 적도 있다.

“그런 일이 있었다고?”

“나는 기억에 없는데…….”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이 든 부모가 장성한 자녀들과 소통하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나이 들어 생기는 부모와 자녀 사이의 거리감은 당연하다.

“그래 이제 와서 내가 간섭한다고 한들 아버지 말을 듣겠니?”

장성한 자녀에 대해 10%만 알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부모는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

우선 중요한 것은 말을 거는 것이다.

“요즘도 야근이냐? 종친회 모임이 이번 주에 있는데, 같이 갈 수 있니?”

아들에게 조심스레 말을 붙여본다.

“바빠요, 아버지는 제가 싫어하는 종친회를 왜 가자고 하는지? 거기 가면 싸우고 선산이 어쩌고…….”

아무리 친구처럼 지내도 부모는 자녀를 속속들이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어릴 적 키울 때처럼 자녀에 대해 모든 것을 알려고 한다면 오히려 갈등의 골만 깊어지고, 자녀는 불효자식이 되고 말 것이다.

“할아버지, 왜 아빠랑 싸워?”

“응, 괜찮아. 싸우는 게 아니고. 할아버지랑 아빠랑 의견을 나누시는 거야.”

며늘아이가 내 눈치를 보며 위로하듯 손녀에게 응대한다.

세대를 잇고 과거를 이해하게 만든 소중한 존재는 바로 손주다.

손주가 없었다면 서툰 부모로만 남았을 것이다.

사실 내 배가 좀 나왔다. 앉아 있는 내 모습이 웃겼던지 손녀가 내 배를 두들긴다.

아프지만 손녀가 나를 좋아해줘서 흐뭇하다.

내 친구 손녀는 할아버지한테서 냄새가 난다며 얼굴도 못 만지게 한다는데.

혼자라서 지 멋대로 하는 손녀가 때로는 짠하다.

할머니 등을 때리고 가슴을 치는 일들이 생긴다. “할머니는 이것도 몰라?”

흔히 엄마들은 할머니가 아이 버릇을 망친다고 걱정하지만, 아이 버릇을 최종적으로 책임지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엄마 아빠다.

손녀가 할머니에게 버릇없는 행동을 할 때 엄마가 아이에게 잘못을 알도록 호되게 꾸짖는다.

“에미야, 애지가 요즘 투정이 부쩍 늘었어.”

이렇게 살짝 말하고 슬그머니 화장실로 자리를 피해준다.

떨어져 살고 있기 때문에 예전처럼 아이가 조부모와 깊은 가족애를 나누기 힘들다. 친밀감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에게 화부터 내는 것은 옳지 못하다. 이 같은 행동으로 인해 오히려 아이가 관계 형성에 부담을 갖고 피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손녀에 대한 일은 부모보다 앞서 나가지 않도록 조심한다.

조부모는 앞서가는 자리가 아니라 따르는 자리에 있어야 좋다.

“애지 낳느라 고생이 많았다. 오늘은 애지 생일이지만 네가 축하 받아야 한다.”

며늘아이에게 가방 선물을 건넸다.

살짝 수줍어하며 “아버님, 뭘 이런 걸 다…….”

며늘 아이가 내 마음을 좀 알아주니 고맙다.

“하나만 더 낳아다오” 하고 말하려다 꾹 참았다.

아들, 딸 키우던 내 젊은 날엔 ‘먹고살기에 급급해 일만 하다 여유가 없었다’는 변명으로 무책임함을 덮어버린 채 살아왔지만, 이제는 손주들에게만은 후회 없는 사랑을 듬뿍 주고 싶다.

내 인생 후반전은 손녀 녀석으로 너그럽고 풍요롭게 성숙해져가고 있다.

<손주를 위한 5월 실천계획 BEST 15가지>

만화 보며 사춘기 손녀 마음 읽기

손자랑 가계도(족보) 써 보기

손자에게 신문 읽는 재미 알려주기

손자랑 야구(운동) 연습해보기

손자랑 서점 가서 책 보기

손자랑 창덕궁 관람하기

손자녀와 자원봉사 활동하기

손자 운동회 가서 늠름한 모습 눈에 담기

손자 학교 앞에 가서 군것질하기

손자녀랑 천체관측 데뷔하기

손자녀와 산에 가기

할아버지 할머니 인터뷰해보기

손자녀랑 1박 2일 캠핑 가기

손자녀의 부모가 좋아하는 일 해보기

손자녀와 커플룩 입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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