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필자의 부업(副業) 중 하나는 주례를 서는 것이다. 말이 부업이지 돈이 생기기는커녕 꽤나 품과 시간이 들어가는 일이다. 하지만 필자는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흔쾌한 마음으로 주례를 서고 있다. ‘저출산·고령화시대에 주례가 없어서 결혼을 못하면 안 되지~’ 하는 은퇴연구소장으로서의 애국심(?)이 아니라면 진작부터 손사래를 쳤을 것이다.
주례랍시고 다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라는 말을 흔히 합니다. 동의보감에서 이른바 두한족열(頭寒足熱), “머리는 차게 발은 뜨겁게 하라”고 한 건강의 원리와 비슷한 말입니다. 아기를 재울 때에도 머리는 서늘하게, 가슴과 배는 따뜻하게 해주는 게 육아의 상식입니다.
그러나 ‘머리와 가슴’은 ‘머리와 발’보다 상징하는 바가 더 많고 큽니다. 머리가 지혜·지식·두뇌·
내가 2003년에 낸 에세이집 를 읽은 많은 독자들이 던지는 질문 가운데 하나. “어떻게 하면 그렇게 모여 살 수 있나요?” 많은 분들은 궁금증을 가집니다. 자녀 네 가족과 우리 내외가 한 지붕 아래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 신기한가 봅니다. 호기심으로 묻는 분도 있고 부러워하면서 묻는 이도 있습니다. 성질 급한 분은 당장 그 비결을 알려 달라고도 합니다.
누구나 자녀에서 부모로, 다시 조부모가 되어 가는 과정을 밟는다. 삶의 종반부에서 맞닥뜨리는 조부모 단계는 인생의 핵심이자 하이라이트다. 실제 60대 부부와 아들 내외가 손녀 ‘애지’를 중심으로 즐거운 이야기, 우울한 대화를 나누는 소소한 일상을 그려봤다.
손녀 애지의 여덟살 생일 아침 아들 내외 집에 갔다.
손녀 선물 사기가 어찌나 힘들던지.
올해
손자녀들을 보면 괜히 미소가 나온다. 보고 있으면 맛있는 것 입에 넣어주고 싶고, 좋은 옷 입히고 싶은 것이 조부모 마음 아닌가. 그런데 가끔은 자녀들이 아이를 잘못 키우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때도 있다. 우리 때와 다른 육아 방식으로 아이를 키우고 있으니까. 그러나 그것은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니다. 좋은 조부모가 되는 방법, 자녀·사위·며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주변국들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개항 이후 구한말 시대가 대표적이다. 청일전쟁에서 중국이 패하자 중국의 속박에서 벗어났다고 기뻐하며 대한‘제국’을 선포했던 시기에 일본과 러시아는 3번의 협정으로 한반도 문제를 입맛대로 요리했다. 이 시대를 러시아-일본에 의한 ‘공동관리(condominium)’시대라고도 한다.
1970년대를 풍미했던 ‘쎄시봉’ 가수, 라디오 장기 DJ, 예능 프로그램에 감초 게스트, 그리고 독보적인 소재를 활용하는 화가로도 이름을 떨치고 있는 조영남. 올해 칠순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여전히 다양한 영역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조영남과의 인터뷰는 그가 지금까지 어떻게 현역으로 살아갈 수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자유의 상징과도 같은
은퇴 후 부부가 함께 보내는 시간은 평균 40년. 진짜 부부생활은 은퇴 이후에 시작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황혼이혼이 처음으로 신혼이혼을 앞질렀다고 한다. 진정한 노후 대비는 재테크가 아니라 부부간의 ‘평화로운 공존’과 ‘갈등 관리’다. 침묵은 금이 아니라 병이다. 하루 24시간을 함께 있어도 꼭 필요한 말 외에는 입을 닫는다. 많은 경우 남자는 여자가
음반을 모으면서 예전에 가지고 있던 것들은 물론 분야별로도 어느 정도 구색을 갖추게 되자 이제는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를 것까지 욕심을 내게 되었다. 그중 하나가 전에 소개했던, 중학교 때 본 라는 영화의 OST(Original Sound Track)로 음반가게에만 가면 한 번씩은 꼭 확인을 해 보았다.
그러다가 1997년쯤 미국에 갔을 때, 그때도 예외는
1)“내가 물어볼 테니 알아맞혀 봐. ‘뚝에치’가 뭐어게? ‘깐에짝’은?”
2)한 신입 사원에게 부장이 “우리 어머니 수연에 와 달라”고 말했다. 무슨 뜻인지 몰라 망신을 당한 그는 무식을 만회하려고 에티켓 사전을 뒤진 끝에 ‘망구’라는 말을 찾아냈다. 그가 “자당 어른께서 망구가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라고 하자 부장은 불같이 화를 냈다. “뭐?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