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를 만나기 전엔 그냥 몸이 좋은 사람이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그를 본 순간 그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83세 보디빌더, 서영갑(徐永甲) 씨를 만났다.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민소매를 입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뿐이었을까. 민소매 밖으로 마중을 나온 근육을 보니 가히 83세의 몸매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서
공기업. 안정된 직장의 표본처럼 취급받는 일터. 그곳에서 29년을 일했다. 평생 큰 굴곡 없이 살아오다 은퇴 직전에 느닷없이 찾아온 위기. 그래서 느꼈을 충격은 더 컸을지 모르겠다. “계획이 어긋나는 순간 눈앞이 깜깜하더라고요.” 그는 그때를 이렇게 회고했다. 하지만 주저앉지도 포기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평생 천직이라 생각하고 살아온 일보다 자신에게 더 맞
오래전 재미있는 보도를 접한 적이 있다. 초등학교 시험에서 “다음 중 가구가 아닌 것은?”이란 질문에 많은 아이들이 ‘침대’라고 답한 것. ‘침대가 가구가 아닌 과학’이라고 강조했던 인기 광고 영향이었다. 아이들의 이유 있는 오답에 어른들 또한 웃으면서 수긍하고 말았다는 미담이었다. 이 희대의 사건(?)을 빚어낸 주인공을 만났다. 걸어온 길이 한국 광고계의
나이가 들어 거동이 불편하면 요양 시설을 이용하는 시대다. 고령 인구가 750만 명에 이르고 부모와 자식의 동거 비율이 줄어들어 요양 시설에 대한 의식도 개선돼 선호하는 인구가 점차 느는 추세다. 전국에 21,775개의 요양 시설이 들어선 것을 보면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요양 시설이 생기기는 하지만 자세한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안전한 시설을 고르는 것이 만
2018년도 서서히 저물어가는 12월의 끝자락에서 ‘오아시스세탁소 습격사건’ 이라는 연극을 관람하게 되었다. ‘브라보마이라이프’가 동년기자들을 위해 주선해준 연극이었기에 더욱 의미가 있었다. 허둥지둥 보내온 한 해를 뒤돌아보고 잠시 쉬어갈 좋은 기회에 한 해 동안 함께 활동했던 동년기자님들과 함께여서 더욱 의미가 있었다. 저녁 8시 공연시작 시각에 맞추
집으로 오는 길 아파트 정문 한옆에 붕어빵 굽는 리어카가 생겼다. 붕어빵은 따끈한 게 겨울이 제철이라서 여태껏 없던 노점상이 자리 잡았나 보다. 사람들도 제법 몰려서 순서를 기다리는 걸 보니 아마 장사도 짭짤하게 잘 되는 모양이다. 나 또한 어쩌다 보니 천원 몇 장 들고 집을 오가면서 붕어빵을 사먹고 있다. 누가 보면 예전부터 붕어빵을 좋아했던 사람으로 보
철학자 악셀 호네트(Axel Honneth)는 인정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의 심리를 인정투쟁(認定鬪爭)이라고 정의했다. 타인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다시 말해 자신이 인정하는 가치만큼 다른 이에게도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받기를 원한다. 내가 당신을 인정하는 만큼 나 또한 인정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이르는 것이다. 직원은 상사에게, 부인은 남편에게, 제자
내 마음속에는 첫눈 오는 날의 이야기가 두 개 간직되어 있다. 첫 번째 이야기를 하려니 가슴이 미어진다.
1995년 11월 25일, 나는 아들을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야 했다. 영정을 들고 나가던 날, 어쩌면 그리도 큰 눈송이가 우리와 함께 걸어주던지…. 싸늘하고 매섭던 며칠 동안의 날씨와는 전혀 다르게 포근한 아침이었다. 눈송이는 나풀나풀 하늘을 날다가
삼총사와 자유여행 도전!
11월 마지막 주에 삼총사 친구들과 일본여행을 떠났다.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도 하지만 비행시간이 두 시간 남짓으로 여행 가기엔 적당한 곳이다. 특히 두 친구는 꾸준히 일본어 공부를 하고 있어서 웬만한 의사소통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편하고 좋았다. 이번에 우리는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자유여행을 떠나보려고 했다.
그래도 비행
한국 포크 블루스의 살아 있는 전설, 이정선의 음악 인생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에게 오랜 활동의 원동력을 물으니 “다른 걸 할 줄 모르니까”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렇게 그는 거의 모든 질문에 무심하고도 간단하게 답한다. 자신의 음악적 삶에 대해서조차도 “그냥 오래한 것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1974년에 데뷔한 이후 그가 대중음악사에서 이룬 것